그나마 밑줄 그어진 부분은 수험기간에 도움이 될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있는것 같습니다. 너무 긴 글이라 읽기 귀찮으시면 그부분이라도 읽든지, 다음글을 보시던지 하시길^^
(진짜 간만에 올리는 글이라...)
-감평을 주워 듣다.
제가 감평에 입문하게 된 계기는 단순했습니다. 군대를 제대하고 학교생활에 충실하던중 공대에서 전과(경영대)한 친구를 사귀게 됐는데, 그 친구가 서울에서 노무사 공부를 하고 오더니 감평사라는게 있더라, 괜찮은것 같더라, 너 한번 해보지 그러냐? 라고 하길래, 처음에는 경영학도로서 CEO에 부푼 꿈을 갖고 있던지라 일언지하에 거절을 했었는데... 어느 순간 제 왼손엔 9850흰둥이가, 왼손엔 사라사 펜이 쥐어져 있더군요...(-,.-;;
사실 그 친구는 노무사를 거진 1년(만년안됨)만에 패스하곤 고시생활을 청산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4년간 공부를 할때 밥도 많이 사주고 많은 도움을 줬었는데... 올해 발표를 기다릴때 ‘혹시 넌 이 공부 시작한걸 후회하진 않냐?’라고 물었습니다. ‘4년정도는 인정하지. 그리고 어차피 내년엔 유예생이니까 만약에,, 진짜 만약에 올해 안되모 내년까지는 할 생각이다. 그라고 적어도 그때까진 후회하진 않을꺼 같은데?’라고 말했었습니다. 물론 진심이었고, 그 친구가 미안해 할 것같은 마음에 한 대답이기도 했습니다.
장수에게 실패는 병가지상사 라고 했습니다. 고시생에게 불합격또한 마찬가지 인것 같습니다. 사실 세네번떨어져야 고시생이자나요~ 2년차에 붙으면 감평섬생아니자나요~ 5년차이상되면 쪼끔 불행한겁니다(행복전도사??ㅋㅋ)
저는 18회에 2년차였고, 19회에 1차시험에서 부관법1문제 과락으로 떨어졌었습니다. 소송까지했었는데, 구제되진 않더군요. 저 나름대로는 정신력이 강하다고 생각했는데 그 당시 너무 힘들어서 ‘이래서 자살을 하는구나..’라고 자살하는 사람들을 이해하게 됐었습니다. 억울하고 분해서 울어본적도 거의 처음이었습니다. (거의 처음이란건 없죠??ㅋㅋ) 그런데 지나고 보니 별 것 아니더군요. 만약 그때 사고를 쳤다면 제 인생이 별것아닌게 됐었겠죠. 혹시나 힘들어하고 계신분들 모두 힘내시고.. 지금 이 상황이 별것 아닌 것이 되길 바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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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차> 눈을 감고, 귀를 막고, 발을 묶고 공부를 하다.
저는 06년1월에 학교를 휴학하고 서울 신림9동에 올라왔습니다. 낯선 풍경이었습니다. 느기적느기적 움직이다 저녁 늦게 방을 보러 다녔습니다. 신림동엔 아는사 람도 없었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이래저래 살펴보다 신림9동의 꼭대기로 방을 찾아갔습니다. 말그대로 꼭대기입니다. 집의 바로 앞에는 등산로가 있는 곳 이었습니다. 하지만 일반 고시원보다 방크기가 1.5배정도 됐었고, 가격도 13만원으로 싼 편이었습니다. 한층에 사람도 별로 없어 화장실, 샤워실도 크게 문제 되지 않았으며, 독서실도 위쪽에 잡았기에 이동간의 불편함은 없었습니다. 사실 ‘하루 출근할 때, 퇴근할 때 딱 두 번 걷는 거린데 운동도 되고 좋지머’ 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마음은 쭉유지 됐었고 올해 9월에 좀 힘든 느낌이 있었을 뿐입니다.
독서실은 성원독서실이라고, 조그만 독서실이었으며 이곳도 가격이 저렴해서 다녔습니다. 그리고 실상 저는 독서실 문닫는 총무를 했었기에 돈을 지불해 본적도 없습니다. 진짜로 수험기간에 독서실비는 두 번정도 총12만원이 든게 전부입니다. 독서실도 고지대에 있어서 고시생들이 많이 다니는 길엔 가지도 않았습니다. 고생하시는 부모님생각해서라도 무조건 공부만 해야 한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까페에 잘 들어오지도 않고 무조건 1차만 그것도 책만 디립따 팟습니다. 어느 순간엔가 독서실이 제 자리를 기준으로 한쪽으로 기울어지는 느낌이 들더군요. 너비 6.7m 깊이 48m의 대심도깊이로 삽질 중이었습니다.
나름 돈아낀다고 학원도 안가고 강의도 안듣고(실제로 1차강의는 들어본적이 없습니다.) 하다 보니 방향과 강약을 조절하지 못했고, 하지 않아도 되는 부분도, 하지 말아야 하는 부분도 ‘아닥공(아닥치고열공?)’ 의 자세로 일임하고 있었습니다. 그 시기엔 아침에 7시에 독서실문을 열고 새벽1시에 문을 닫아야했기에 절대적 시간은 확보가 됐었습니다.
저는 시골의 면단위 고등학교를 나왔습니다. 학년당 2반이 있는 학교 였는데, 당연히 공부라는 건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때도 학원이란건 다녀본적도 없고요. 그래서 상황을 만들어 버렸습니다. 공부를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을요. 고시식당은 독서실건물에 있는 식당에서 해결을 했고, 전화기는 들고 다니지 않고, 독서실 마감총무를 한 것도 그 이유에서 였습니다. 어쨌든 앉아는 있더군요. 1차공부를 하던 시기에 2차공부도 병행했습니다. 물론 학원은 다니지도 않았고, 까페에 싸게 올라온 플러스3판과, 이병철행정법책을 사서 책만 또 읽었습니다. 나름 배우는 맛도 있고 재미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배운 것은 분명히 있지만 효율적이지 못했습니다. 써본 적이 한번도 없었습니다. 플러스를 3회독하면서 답안지에 써본적이 없었으니까요.
그 당시엔 1차에 12시간(net아님), 2차에 4시간정도를 투자했습니다. 비율은 비슷했지만 시간은 변동되기도 했습니다.
저에게 있어 이시기(06.01~06.09)에 가장 힘들었던것은 외로움 이었습니다. 하루종일 말해볼 기회가 없었습니다. 일주일에 한번 부모님께 안부전화 드리기 위해서 전화기를 들고 나온때를 제외하고는 전화기도 잘 안들고 다녔으니까요. 사실 그렇다곤 해도 거의 2주에 한번 꼴로는 일반인을 만나면서 영화도보고 놀기도 했습니다. 아마도 느낄 감정이 외로움 밖에 없었기 때문에 기억나는 감정이 외로움인것도 같습니다.
그리고 다행히도 17회 1차시험에 합격했습니다. 가채점 평균이 거의 60.xx 로 붙었었습니다. 그당시 중복답안이 많았기에 최종적인 점수는 더 올랐을지 모르지만요. 그리고 2차시험까지 두달 여 또 혼자서 공부를 했습니다. 이땐 아무래도 자료가 필요 할 것 같아서 세글자 복사집에 가서 그해 1기 실무, 이론, 법규 자료를 모두 복사해 달라고 했습니다. 저의 삽이 포크레인으로 트랜스폼 되는 순간 이었습니다. 그리고 또 그 자료만 디립따 읽었습니다. 흐름은 알겠고, 뭘 말하려는지는 모르겠더군요. 이해는 다된다고 느꼈습니다. 단지 뭘 물어봤고, 뭘 답해야 되는 건지 알 수 없었습니다. 사실 그 당시엔 그런 생각도 없었습니다. 그냥 ‘당연한걸 이렇게 써놨데??’라는 느낌뿐 이었습니다.
그리고 2차시험장에 들어갔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들려있던 애완흰둥이와 사라사로 나름 중무장을 하고 갔습니다. 근데 가관이더군요. 책상깔판에 스템플러, 스카치테잎, 만년필에, 방석, 슬리퍼, 스톱워치, 긴 상.하의 등등 전 그것 하나 배우고 나왔습니다. 문제에서 뭘 물어 보는지도 몰랐습니다. 그래서 2교시 이론 시험만 보고 나왔습니다. 경험있으신 수험생분들이 말씀하십니다. 시험장에 한번 들어가보는건 수험생으로서 중요한 자산이다. 그 이유를 잘 몰랐습니다. 그래서 도중에 퇴실을 했고요. 그 이유는 시험장의 분위기를 경험하고, 필요한것들을 알아보고, 어떤 식으로 무엇을 대비해야 하는 것인지 알 수 있단 것 외에, 비록 처음이더라도 어떻해서든 자료를 읽어 본다면 한글로 써진 이상 할 말이 생긴다는 것 이었습니다. 그것이 자료해석능력 자신의 위치파악이 아닌가 합니다. 절대 주무시지 마시고, 아무것도 모르신다면 실무는 자료만 3번 4번 읽으시고, 이론, 법규는 10번 20번 읽어보세요. 제가 그렇게 하지 못했기에 이렇게 말하는 게 웃기지만, 누군가 제게 그런 말을 해줬다면 전 그렇게라도 했었던 게 낫지 않았나... 싶습니다.
1년차에 2차시험치기 까진 독방에 갇힌 빠삐용 처렁 공부했던 것 같습니다. 숟가락으로 삽질하느라 욕좀 봤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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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차> 신림10만대군의 접견, 백인대장만 1000명이 넘었다.
-실무계산술술신공(實務計算術述神工)
06년10월에서야 개별스터디(실무)라는 것을 시작했습니다. 다들 2년차였고 공부량도 그렇게 많진 않은 사람들 이었습니다. 실무의 중요성을 귀가 따갑게 듣던 시긴지라, 저는 아침8~12시까지 200점 저녁8~12시까지 200점 하루 400점을 풀었었습니다(06년말까지). 물론 풀었다고 해도 100점을 100분에 풀던 실력이 아닌지라 초반엔 총 8시간에 100점을 풀까 말까 였습니다. 400점을 풀면서 복기는 제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쓴답안을 보고 모범답안을 보고 그냥 단순히 맞춰보는 식 이었습니다. 어떠한 반성도 없는 그냥 읽기에 불과했었습니다. 풀지 못했던 문제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다시 풀어보지 않고 그냥 답안지보고 확인하는 것에 그쳤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제 기준에서는 크게 잘못된 것 은 없는 것 같습니다. 400점이라는 분량이 커버를 해줬으니까요. 시간의 효율성 측면에서 문제는 있었지만요.
아무리 문제를 못 풀어도 답안 해석능력에서는 뒤지지 않았었습니다. 모범답안이 무엇을 말하는지 이해는 다됐었으니까요. 그리고 어떤 때는 뭣도 모르는 놈이 답안을 비판하기도 합니다. 사실 전 공부에 있어선 약간 독불장군 스타일인지라 제가 이해 할 수 없으면 그 답안은 틀린 것 이었습니다. 당연히 이젠 그 답안이 제 답안과 다를 뿐 이란 걸 이해하는 수준은 되지만 당시엔 답은 하나란 생각이 강했었 습니다.
초반에 실무를 접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것은 ‘이해’였습니다. 비록 400점을 매일 풀었지만 복기를 제대로 안했었기 때문에 다시금 같은 문제를 풀어도 그 문제의 문제점을 알지도 못했고 다시금 자료를 이해하면서 풀었었습니다. 그런 습관은 지금까지 이어져, 전 답안을 거의 외우지 못합니다. ‘에브리데이 뉴 페이지‘였죠 그래서 4년차인 지금도 100점을 100분에 푸는게 힘듭니다. 하지만 어떤 문제(아주 쉬운 기본문제가 아닌다음엔)가 나와도 비슷한 시간에 마칩니다. 그리고 올해 실무문제는 다 풀었을때 95분이었습니다(이건 나중에 다시 이야기 하겠습니다.).
시험엔 선택할 것 투성이죠. 공부방식에선 선이해 후암기냐? 선암기 후이해냐? 라는 게 있죠. 실무에선 선택이 없습니다. 실무에선 보상법규외엔 외울게 없으니까요. 자료의 형태가 다르게 나오고 자료의 내용도 다 다르기 때문에 외울 필요도 없고, 그래서도 안됩니다. 그런데 실무 공부하면서 2년차를 지나면 자신이 얼마나 이론적으로 접근하려 해봤는지 돌이켜본다면 회의스러우실 겁니다. 실무공부는 개별스터디와 문제복기밖에 없는 게 실정이니까요. 기껏 듣는 것 은 보상실무특강이나, 주말 실무스터디 강평정도죠. 홍규엉아의 책은 책장에 거꾸로 꽂혀있는지, 냄비받침으로 쓰는지도 확실치 않습니다. 그나마 최근엔 과목별 크로스오버 된 단 말 때문에 실무를 공부할 때 실무이론을 같이 공부하시는 분들이 있긴합니다. 그런 분 들에게 배우셔야 합니다.
그렇게 공부를 하다 18회 2차시험을 봤습니다. 처음 중원에 나온 느낌 이었습니다. 완전 떨려서 한 2분간은 글이 잘 읽히지도 않고 손도 떨려서 글자도 잘 못썻습니다. 하지만 집중되더군요. 1번을 푸는데. 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다들 잘 풀겠네.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평소에도 꼼꼼하게 풀었지만 더 꼼꼼하게 풀었습니다. 그리고 2번 3번도 풀고, 마지막 주식평가하는데 분개하다가 종이 쳤습니다.
뭐가 그렇게 쿨하다고, 종이 치자마자 펜을 딱!! 놓고 팔짱끼고 걷어가길 기다렸습니다. 마지막문제가 20점인가 15점이었던것 같은데.. 한 2점정도 쓰다가 말았던 거죠. 그리고 쉬워서 다들 잘 풀었을건데. 전 다 풀지도 못했으니까 올해 실무점수는 잘 안 나오겠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66점 이었습니다. 얘길 들어보니 가라친 사람도 있고, 빨리 푼다고 대충 푼 사람도 있고 그렇더 군요. 사실 아직까지 미스테리인 점수입니다. 다른 잘하시는 분들이 어떻게 썻길래...
-이론작문신공(理論作文神工)
이론공부는 실무를 하면서 쭉 같이 했었습니다. 하지만 책을 많이 사지도 않았고 그럴생각도 없었습니다. 2년차 시절 갖고 있던 책이라곤, 안정근 평가이론과 현대부동산학, 패스 감정평가이론, 일본기출이 전부 였습니다. 그 외에 학원 주말 스터디문제를 복사해서 보기도 했습니다만 한번정도 읽고 마는 수준 이었습니다. 그리고 1월 학원스터디 시작하던 때부터 서브를 만들기 시작 했습니다. 서브라고해서 어떻게 만드는 것인지도 몰랐었기에, 그냥 제 나름대로 파트별로 요약 정리하는 수준 이었습니다. 서브 만들고 나니 3월까지 후딱 가버리더군요. 서브 만드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제 생각은 [ 1.만드는 과정에서 이해하고 키워드를 생각하게 된다는 점. 2.다른 책에서 발췌하는 과정에서 특정부분의 특정책의 우수함 발견. 3.두문자.]입니다. 저 만 그런 것 인진 모르지만 저는 서브를 만들고 2번 이상 읽어본적이 없습니다. 이것만 보면 된 단 그런 느낌은 아녔거든요. 실제로도 그랬고요. 그래서 공부시간이 부족하신 분들은 굳이 서브는 만들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는 바입니다. 무시 못할 장점이 많지만. 자신의 절대적인 공부시간이 부족한 분들은 서브는 만들지 말고 팀장들 자료를 발췌 하는 것이 더 효과적 인 것 같습니다. 다들 말씀하시는 것 처럼 이론은 열린 사고방식과 각 파트별 연계성을 부여하는게 어렵지만 중요한 부분인 것 같더군요. 사실 전 이론은 아는대로 꽂히는대로 쓰는 타입이라. 뭐라 말씀드리기도 뭣한 과목이기도 합니다. (그런 면에서 먼저 점수를 밝힘이 계속 읽을지 말지 판단하는 기준이 될 수 있겠군요. 18회엔 54점이었고, 20회엔 53.5점 이었습니다.)
저는 2년차 07년4월정도??부터?? 아무튼 김성유평가사님이론 핸드북 을 손에 달고 살았습니다. 독서실과 스터디장소및 고시식당(07년부터 식당 바꿈)과의 거리가 있었기에 이동간에 시간낭비를 막기위해 주로 핸드북을 들고 다니면서 읽곤 했거든요. 물론 이동시 60%는 안들고 다녔습니다. 그래도 제가 본 것 중 회독수가 가장 많은 책(??)이었습니다. 이동간에만 읽었지만 3.5년차(올해도 봤음)까지 쭉 봤으니까요. 거기에 첨삭도 많이 하고, 이것 저것 많이 붙이고 바꿨었습니다. 그 만큼 많이 도움이된 책이기도 합니다. 2000원으로 소히 뽕을 뽑았죠.
이론에서 드릴 말씀은 별로 없습니다. 다만 유념 하셔야 할 부분은,
첫째, 선이해 후암기도, 선암기 후이해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해하고 암기하고 또 연계해서 이해하고 암기하고 제련의 과정에서 이랬다, 저랬다, 하면 위대함이 태어납니다.
둘째, 이론만큼 답안이 다르게 쓰여질 수 있는 과목도 없습니다. 일단 까고 보자는 식의 접근은 금물입니다. 팀장이 일본식으로 문제를 냈는데 미국식답안이 최고답안이 됐더라도 까지 마세요. 팀장이 굳이 일본식을 의도한 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이론(理論)의 다른 말은 논리(論理)입니다.
작문은 안드로메다에서 짓는게 아닙니다. 시험장의 문제지 안에서 지으세요. 채점은 지구인이 한답니다.^^
-법규성실신공(法規誠實神工)
법규는 하는 만큼 나온다는 말을 합니다. 그리고 그만큼 가장 객관적인 점수가 나온다는 과목이기도 하죠. 그래서 전략과목으로 삼으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공부뿐만이 아니라 답안도 성실하게 써야 점수가 잘 나오는 과목인것 같습니다.
책의 선택에 있어도 말들이 많습니다. 누구책이 좋은지 어떤 책이 어떤 점이 나쁜지, 저에겐 가진자의 여유였습니다. 있는 책 하나면 되지 무슨 책을 비교해가면서 볼 시간적, 금전적 여유가 되야 말이죠. 사실 어떤 책이 좋은지 결론이 있다면 책이 왜 두권 세권 나오겠습니까?
답이없는 질문에 대해 답을 내려고 노력하시는 분들이 꽤나많다는 사실에 가끔 놀랍니다. 사실 그런 질문을 한사람은 답도 모르는 수험생이거나 아니면 그런 질문을 하지도 않았는데 말이죠. 그냥 대새인 책 하나 사서 디립따 파면 됩니다. 물론 여러 책을 갖고 발췌독하기 위한 용도로 쓴다면 더없이 좋긴 하겠지만, 그것도 효과는 있더라도 효율적이진 않은 것 같다는 게 제 사견입니다.
사실 그렇게나 까다롭게 선택한 책도 2회독을 하지 않습니다. 왠지 부족한 것 같아서 또 다른 책을 찾아 킬리만자로의 수험생이 되더라고요.
2년차시절 맨날 행정법책만 보고 노병철평가사님 책만 보다가 1기 스터디를 갔는데.. 문제를 어떻게 푸는지 모르겠더군요. 그런데 다른 분들은 다들 쓰느라 정신이 없으셨습니다. 법규 때문에 한동안 방황을 많이 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위원장님께서 문제풀이강의를 하신다 길래 거금 들여서 처음으로(학원스터디외)강의를 들으러 갔습니다. 개별스터디누나의 부탁으로 녹음도 하고(공소시효 안 지났는데 이런 거 말하면 안되낭??)착실히 들었습니다. 총20회 강의였는데, 한2번정도 강의가 밀리더군요. 공부스케줄이 엉키긴 했지만 그건 크게 상관 없었습니다. 4회정도 들으니 답안을 어떻게 써야 되는건 지 알겠더이다. 그리고 법규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실강을 다듣곤 mp로 문제별로 끊어서 3번을 더 들었습니다. 당시 판서도 열심히해서 동영상같은 느낌으로 mp를 들었었습니다. 그리고 그 기간에 법규 실력은 부쩍 는 것 같습니다. 단기간에 반복해야 오래기억에 남고 학습효과도 뛰어나잖아요.
이건 3년차때 아는 누님이 해주신 얘긴데, 합격을 위해서 100장을 공부 해야 한다면 그 100장을 채워내야 하는 시간도 100시간 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무슨 말 이냐면, 100장을 다보는 데 120시간이 걸렸다면 그건 100장을 본 게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3년차의 공부량이 2년차와 같아선 안된다 는 것입니다. 다만 3년차라도 실질적으로 2년차와 같은 시기에 시작을 해서 실질적 공부시간이 100시간이면 상관 없겠죠? 다년차분들이 새겨야할 부분인것 같습니다. 다년차에 접어들면 사실 할 건 없거든요. 다년차분들은 100장을 100시간에 하려하지 마시고 50장을 50시간에 하려 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아무리 200장 300장 하시더라도 그 상대적 시간이 400시간 500시간이면 합격권에선 멀어지지 않을까요?
저는 18회 법규를 망쳤는데, 그 당시 위원장님이 가장 논란을 불러 일으켯던 파트는 단연코 경계,분리 이론 이었습니다. 정답이 있는 진 모르겠지만, 그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너무 논리적이고 정당해 보였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을 답안지에 써주려니 정리가 안되더군요. 결국은 요약을 못했고,
14회 시험에서 나왔었기에 또다시 나오진 않겠지란 생각으로 버린 부분이었습니다. 그런데 18회 1번문제로 뜨더군요. 그나마 많이 접해서 내용은 알겠는데 평소완 또 다르게 쓸 내용은 많은데 35점짜리로 나오더군요. 쓰다가 급마물하고 2번으로 넘어갔습니다.
그 문제는 3,4기 스터디다닐때 2번정도 나왔던 문제 였습니다. 하지만 그 문제도 시험전 에 꽂힌 부분 때문에 눈이 돌아가서 이상한 내용을 썻습니다. 3번은 개별법문제로 개정부분이었기에 나름 쓰고 나왔습니다. 결과는 51점. 평균 57점으로 어중 띈 점수로 떨어졌죠.
패인은 실무에 있어 마지막까지 악착같이 풀지 않았던 안일함과, 법규에 있어 미리 버리고 들어간 불성실함 이었습니다.
-2년차 여담(餘談)
2년차 결과를 받아보던 시기 전 학교에 복학을 해서 기말 고사를 보던 시기 였습니다. 발표날에 시험이 있었기에 발표전날 정독실에서 친구들과 공부를 하고 있었습니다. 근데 핸드폰 액정에 불이 들어오더군요.
뜬 번호는 02-xxx-xxxx, 곧장 심장이 뛰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충북청주에 있고 서울번호가 떳으니까, 혹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진정시키고 나가서 전화를 받았습니다. ‘여보세요’ ‘아네~ 조흠윤..’ 사람의 생각이 얼마나 빠른지 제 이름을 말하자마자 심장이 터질것 같았습니다. ‘이사람은 누군데 내이름을 아는 거지? 혹시? 혹시?? 진짜 혹시 협회에서 전화를 준건가??? 나 합격한건가????’ 그런데 이어지는 말은 ‘신x은행 인데 새로운 대출상품이 나와서 연락드렸습니다.’ 촤~악!! 기분이 가라 앉더군요 ‘됐거든요’하고 끊고... 자리에 앉아 궁시렁대는 중 불현듯 생각이 들더군요. 내가 대출을 받을만한 사람도 아니고, 그은행과 거래를 튼적도 없는데, 신x 이라는 우량은행에서 뜬금없이 내게 왜 대출전화를 줬을까?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시험공부는 못하겠더군요. 친구들과 술한잔 걸치고, 무려 24시간 기분이 완젼 좋았습니다. 하지만 결과는~ㅋ 떨어졌더군요. 당시에도 그런글 을 올린적이 있는데, 그 은행에게는 그런 기쁨을 하루동안 느끼게 해준점에서 전 오히려 감사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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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차> 1차없인 2차없다.
원래 제가 시험에 있어 갖고 있던 신념 이었습니다. 그리고 3년차때 실행을 했었기도 했고요. 비록 2차를 좀 오랫 동안 잡고는 있었지만 1차 모의고사 성적은 80점을 상회했고, 방심도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시험 당일이 문제였습니다. 그렇게 긴장해본적은 처음이었습니다. 공부를 별로 하지않는 타
입이라, 예전엔 모든 시험(수능포함)에서 적당히 긴장한 덕에 본래 실력보다 좀 더 잘나오곤 했는
데. 이번엔 너무 긴장을 했었습니다. 전날은 잠도 못잤고, 시험을 볼 때도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렇
다고 잠을 못잔게 패인은 아닙니다. 비록 잠은 못자더라도 사람의 정신력으로 그정도의 피곤함은
이겨낼수 있거든요. 혹여나 전날에 잠을 못잤다고 괜히 불안에 떨거나 그러진 마시길 바래요.
원래 전략은 민법에 최대 40분을 투자하고, 회계를 40분간 16문제 이상 정확히 풀고, 부관법으로 돌아와서 최대한 풀고 다시 시간이 남으면(남는경우가 대부분이죠) 회계로 다시 돌아가 회계를 푸는 방식 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다시피 부관법이 이번엔 지문도 길고 기존의 방식과는 좀 색다른 문제 형태들이 등장했습니다. 당황스러웠죠.
제게 있어 가장 어려운 시험은 지문중 2개가 헛갈리는 경운데요. 왜냐면 시간은 시간대로 끌고 답은 결국 찍게 되는 경우가 많거든요. 이번 부관법이 그랬습니다. 시간은 시간대로 낭비하고. 뒤에 남은 회계문제 때문에(5문제정도 밖에 안남았기에 안 풀어도 상관없었을 것들..) 급한마음에 문제도 제대로 못 읽고 찍기에 급급했습니다. 그리고 5분여남짓 남았을때 회계를 풀었죠. 그 시간을 부관법에 썻더라면 당연히 합격했을 건데요. 근데 웃긴건 제 스톱워치는 아직 3분이 남았는데 답안지를 쏙 빼가버리더군요. 종소리는 듣지도 못했는데 말이죠. 얘긴즉슨, 그날 여자감독관님이 계산기리셋 때문에 제 계산기 리셋하다가 전 종이 친줄도 모르고 팔짱끼고 있었던거죠. 덕분에 3분정도 늦게 시작했는데 스톱워치를 늦게 누른것도 까먹고 문제를 풀고 있었던거죠. 다행히 저는 문제 풀면서 페이지마다 마킹을 하는 방식으로 해서 답안을 체크 못한건 회계 5문제뿐 이었죠. 더 웃긴건.. 어쩌면 슬픈건. 제 뒷사람은 제가 뺏기는걸 보고 안뺏기려 답안지 잡고 있다 결국은 제출못하고 2교시 시험은 보지도 못했다는 거죠. 2교시 시험을 보고 시험장을 나와 사촌과 통화했을때 이런말을 했습니다 ‘과락만 없으면 합격한거 같은데?’ 근데 과락이더군요. 부관법 한문제로...
이번 패인은 마인드컨트롤이었습니다. 과도한 긴장 때문에 사고회로가 정상적이지 못했죠. 굳이 회
계를 더 풀지 않았어도 되는데 말이죠. 모의고사만큼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없었고, 어려운 문제
를 만났을때 대처해야할 자세에 대해 이미지 트레이닝을 못했었습니다. 시험당일날 아침에 그런 이
미지 트레이닝만 한다면 심리적으로는 가장 안정적인 상태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결국 시험장에
들어가는 40%정도는 실력이 그만그만한 사람들 일테니까요. 그 날의 컨디션이 합격을 좌우할건데
그 컨디션은 자기최면으로 충분히 컨트롤이 되는 것 같습니다.
1차가 없으니 2차가 없더군요. 저는 다시금 학교에 복학해서 마지막 학교생활을 연애질도 좀하고 술도 퍼마시고, 잼나게 놀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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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년차> 엄살부리지 말자.-by yooniqcho
올해 비록 동차였지만 1차에는 비중을 별로 두지 않았습니다. 작년에 1차를 열심히 했었고, 모의고사를 보니 점수가 낮게 나오지도 않더라구요. 그래서 1차:2차를 1:9정도의 비율로 했습니다. 4월부터 주말에 모의고사만 아는 형님들과 보고 그거 복기하는게 끝이었습니다. 그래도 점수는 모의고사점수는 70점대로 나오더군요(잘나서 그렇단게 아니라 그만큼 작년에 열심히 했단말이니 오해마시길 -,.-;;) 그리고 2차는 6월에 놨습니다. 그래도 1차없이 2차없음을 아니까요. 당연히 이런 방법을 추천하진 않습니다. 저는 2차공부가 그때도 덜됐다는 생각이 강했기 때문에 그런 방식을 택할 수 밖에 없던 것 이었습니다. 다행히 올해 1차시험은 문제가 좀 쉽게 나와(일반적 평가)저도 84점인가로 합격을 했습니다. 올핸 그렇게 높은 점수도 아니더군요 -,.-;;
올해도 예년과 다름없이 제 스스로를 옭아 맷 습니다. 독서실은 저녁에 환기만 시키는 보직으로 바뀌어서 아침 기상과 퇴근시간을 강제시켜주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아는 형과 7시 20분에 기상스터디를 했습니다. 아침에 개별스터디를 구했는데 아쉽게도 오래가진 못했습니다. 어느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고 다만, 공부방식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저는 스터디가 깨져도 지속적으로 관계를 유지하고 잘 만난답니다. 헤어지는것과, 잊혀지는것을 특히 좋아하질 않아서요.
아무튼 스터디를 안하다보니 아침이 루즈 해졌습니다. 독서실 자리에 아침부터 앉아 있기는 힘들더
라고요. 그래서 아침엔 한림자습실에서 공부를 하고 점심을 먹고 독서실로 올라가 공부하는 방향으
로 했습니다. 한곳에서 하루종일 앉아서 공부하기 보다 저는 그렇게 자리를 한번이라도 옮겨 공부
하는게 더 효과적이 더라고요. 지루하지도 않고, 한림자습실엔 대부분이 감평인지라 자극도 많이
됐거든요. 하루종일 꿈쩍도 안하고 공부만 하는 것 같은 분들도 있고 나이가 조금 있으신 분들의 열
공하는 모습을 보면 저자신의 행태가 가히 한심해질 정도 였으니까요.
어느 순간엔가 그런 마음이 들었습니다. ‘내가 엄살을 부리고 있구나!!’ 항상 말은 공부가 제일 편하
다곤 하고, 한시간 공부하고 쉬고, 주말이라 느긋하게 공부하고, 외롭다고 전화기나 붙잡고 있곤 하
는 모습을 보니 그게 전부 엄살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책상앞에 써 붙였습니다. ‘엄살 떨
지 말자!!’ 라고요. 제가 깨닳은 제 모습이었기에 그 글을 볼 때마다 한 글자라도 더 보려고 노력하
게 됐었습니다.
세상의 그어떤 명언도 자기가 깨달아야 자기것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공부하면서 얻은 깨닳음중에 하나는 가끔 사람들에게 얘기 하곤 하는 데,
슬램덩크에서 불꽃남자 정대만에게 안선생님이 말씀하신 ‘호호호~ 끝이라고 생각하는 그 순간 끝
이예용~ 호호호’라는 말입니다. 예를 들어 학원강의가 5시에 시작하는데, 공부를 하다가 잠깐 화장
실에 갔다 오니 4시30분 인 경우, 학원가는 시간 빼고 ‘20분밖에 안 남았으니 그냥 쉬지 뭐’ 라고 하
거나, 12시30분쯤 보던 파트를 끝났는데 독서실 문닫는 시간이 1시라면, 그냥 마무리 짖고 쉬어버
리는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말 그대로 끝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공부는 끝이 나버렸습니다. 시간은
금이되 돌같이 보면 안된다는 것이 증명되는 순간이었습니다. 만약 그러한 자투리시간을 잘 활용했
다면 단언컨데 하루 1시간이상 공부를 더 할 수 있었고, 하루 10시간씩 공부한다고 했을 때 일년365
시간을 번다고 한다면, 대략 한 달을 더 사는 것과 다름없다고 결론이 났었습니다. 물론 여기서 첫
번째 “끝”은 포기라는 단어가 다르게 표현된 것이기 때문에 포기의 의미가 아니라면 끝맺을 때 끝맺
는 것 도 중요하다 생각하고 있습니다.
-올해 시험
올해 시험은 전반적으로 18회때 느낌과 유사했습니다. 실제 시험당시 저는 ‘실무는 모두가 접근은 가능
했던 문제였고, 그래서 얼마나 꼼꼼히 또 전부 논리적으로 기술 하느냐가 관건이다.’ 고 생각했었고
이론은 ‘이거 뭐가 뭔지 모르겠네.. 3,4,5번은 잘쓴거 같은데...’ ‘2교시까지 실무에서 좀나오고 이론
이 깍아먹어서 평균 60점이니까 법규만 잘보면 되겟다.’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법규시간엔
‘1번은 아무도 모르겠는데, 정확히 이번 판례도 아니고, 그럼 다 모르는 거니까 착실하게만 쓰고 2
번 3번은 꼼꼼히 잘 써야 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법규 1번에 대한 마인드컨트롤이
주효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무난하겐 본 것 같으나 누구나 하는 실수를 나도 했고, 특별히
잘쓴점(사실 그당시엔 검토를 해보지도 않았습니다.)도 없기에 어쩌면 떨어질 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이 많
았습니다. 실제로 실무를 그래도 잘한다고 생각했고 그랬었는데, 거기서 특별한점을 발견하지 못했으니까
말다한거 였죠.
비록 올해 법규 점수가 72점으로 고득점을 했지만, 2-2번에 있어서 특별희생에 대해 쓰긴 다썻지만 그게 정답이다 라는 어조로 쓰지 못했기에.. 이건가요? 라는 어조의 자신감결핍답안으로 점수는 더 낮게 나 올거라 생각했었습니다. 문제 1번은 남들이 다썻다는 최신(09년)판례를 쓰지도 않았고(지금도 그렇지만 그 당시에도 그 판례와는 무관하다고 생각했음) 다들 어렵다고 하니까, 그문제는 당연히 나도 못썻겠지 라는 생각이 강했거든요. 근데 결과는 상상을 초월하더군요.
아무튼 실무51,5점 이론53.5점 법규72점 평균59점으로 합격을 했더군요. 감사했습니다.
올해 시험의 승리요인은 마인드컨트롤 이었던 것 같습니다. 올해는 시험 시작전에 적당한 긴장을
유지하기위해 이미지트레이닝도 많이하고, 편안한 마음가짐으로 시작을 했고, 가장 문제 됐던 법규
1번문제 에서도 나름 처리는 하고 다른 문제에 영향을 미치지 않게 마인드를 컨트롤했었으니까요.
- <합격후기>
눈을 뜨고 살아가기 때문이 아니라, 피곤함을 느끼고 잠을 자기에 살아있음을 느낀다. -by yooniqcho
이제 갖 합격한 방년(2009)29살되는 젊은 놈이 무얼 많이 알겠습니까 만은, 젊은 놈이기에 이런 마음을 가지려 합니다.
올해 축하연에서 나상수평가사님께서 김성유평가사님을 지칭하여 개천에서 용났다며 칭찬해주셨습니다.
뭐 저랑은 기수가 다르고, 능력상으로도 차이가 나기에 비교대상자체가 안되겠지만, 그 말씀을 듣고 제가 느낀점은 ‘다수의 실패를 보고 실패를 기억하느니, 한명의 성공을 보고 나의 성공을 꿈꿔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애초 지사에서 근무하려던 것을 지금은 서울 본사에 도전해보려 합니다.
저는 단순히 눈 뜨고 살아가기 때문에 저의 존재의 당위성을 인정 할 수는 없었습니다. 피곤하게 이리 저리
뛰어 다니며 나의 발자취, 땀방울을 흘려가면서 영역이 표시되어지고, 또 더많이 표시하기위해 뿌듯한 미
소와 함께 내일을 꿈꾸며 잠을 청할 때 비로소 제 존재의의를 깨닿게 되고 이 우주의 티끌로도 가치 있다고
느껴졌습니다. 눈뜨고 있다고 살아있음을 느낀다면 그냥 우주의 티끌이라는 점 유의하세요!! ㅋㅋ
아쉽게도 절친하게 지내던 친구도, 존경스런 형님도, 사랑하는 누나도, 이쁜 동생 등 올해 안 된 사람이 몇
명 있습니다. 그 분들에게 이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못난 저도 합격했는데, 저 많이 부러워 하시고 그거에
자극 받아서 내년엔 꼭 합격 하셨으면 해요. 당연히 합격하실 거고요. 친구야~ 형님~ 누나~ 동생~!!! 아자아자화이팅~!!!
글이 두서가 없는 것 같습니다. 긴 글 읽느라 고생하셨는데 뭔가 건진게 있으신지 모르겠네요. 사실 누구에
게 도움을 줄 정도의 노하우는 갖고 있지 못한듯해서... 개인적으로 만나 설명을 한 다면 어느 정도는 도움
이 되겠지만.... 아무튼 건승하시고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