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은 뿔이다』는 철학의 영역에서 이런 금기를 깨는 과감한 시도를 담고 있다. 이 책에서 헤겔철학을 화두 삼아 저자가 논쟁의 장으로 끌어들인 철학자들은 바로 김상봉, 이진경, 김상환, 이어령이다. 현재 우리 지식계를 대표하는 이들과 맞서며 저자는 주체와 근대의 문제를 새롭게 조명한다. 우리 지식계를 이끌어온 철학에서 가짜 근대화의 논리를 읽어내며, 이제 외부인 놀이를 벗어나 제자리에서 자기 목소리로 대화할 것을 촉구한다.

 

 

 

 

저자 : 전대호
저자 전대호는 서울대학교에서 물리학을 공부한 후 칸트의 공간론에 관한 논문으로 같은 대학 철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어서 독일학술교류처의 장학금으로 라인강가의 쾰른에서 주로 헤겔철학을 공부했다. 헤겔의 논리학에 나오는 양적인 무한 개념을 주제로 박사논문을 쓰던 중에 여러 이유로 유학생활을 청산하고 귀국했다. 애당초 학위취득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귀국 후 한동안 헤매다가 번역가로 정착했다. 영어와 독일어를 우리말로 옮기는데, 대개 과학책과 철학책을 일거리로 삼는다. 고등학교 문예반 시절부터 시를 썼으며 큰 마음고생 없이 이른 나이에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두 권의 시집을 낸 후 시와 멀어진 채로 거의 20년이 흘렀지만 언젠가 시인으로 복귀할 생각을 버리지 않고 있다.
시집으로 『가끔 중세를 꿈꾼다』 『성찰』이 있고 번역서로 『인터스텔라의 과학』 『위대한 설계』 『기억을 찾아서』 『로지코믹스』 『헤겔』(공역) 『초월적 관념론 체계』를 비롯한 많은 책이 있다. 시집을 제외한 저서는 『철학은 뿔이다』가 처음이다.

 

 

 

들어가는 말

1. 항상 이미 서로이며 홀로인
김상봉의 『서로주체성의 이념』에 응답함

2. 근대적 주체는 대화한다
이진경의 『철학과 굴뚝청소부』에 맞섬

3. 무릇 하나임은 맞선 둘의 얽힘이다
김상환의 『철학과 인문적 상상력』에 담긴
헤겔철학 해석을 비판함

4. 아주 오래된 외부인 놀이
이어령의 한국인론을 그 계보를 따져 비판함


5. 인어공주의 치명적 거래
가짜 근대화의 마법과 헤겔이라는 해독제

나오는 말

 

 

 

 

탈근대적 주체, 외부인 놀이는 끝!
제자리에서 자기 목소리로 대화합시다!!


바둑에서 한판의 좋은 대국은 양편의 실력은 물론 구경꾼들의 실력을 향상시킨다. 좋은 논쟁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우리 지식계에서는 이런 논쟁의 전통이 너무나 부족하다. 하물며 서로의 실명을 걸고 펼치는 논쟁은 더욱 기대하기 힘든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전대호의 『철학은 뿔이다』는 철학의 영역에서 이런 금기를 깨는 과감한 시도를 담고 있다. 이 책에서 헤겔철학을 화두 삼아 저자가 논쟁의 장으로 끌어들인 철학자들은 바로 김상봉, 이진경, 김상환, 이어령이다. 현재 우리 지식계를 대표하는 이들과 맞서며 저자는 주체와 근대의 문제를 새롭게 조명한다. 우리 지식계를 이끌어온 철학에서 가짜 근대화의 논리를 읽어내며, 이제 외부인 놀이를 벗어나 제자리에서 자기 목소리로 대화할 것을 촉구한다.

전대호가 맨 먼저 대화의 장으로 끌어온 철학자는 김상봉과 그의 대표작 『서로주체성의 이념』이다. 저자는 주체의 제1성격을 ‘만남’으로 규정한 김상봉의 철학을 높이 평가한다. 그러나 주체는 만남이자 결속이기 이전에 싸움이며, 무엇보다 대화다. 대화는 상대방과 나 사이의 자기거리가 드러나는 과정이며, 따라서 서로주체뿐 아니라 ‘홀로주체’, 즉 나 자신과의 대화 역시 이미 훌륭한 주체다. 또한 주체는 언제나 시스템 안과 밖에 동시에 있다. 쉽게 말해 내가 삼성전자의 직원이라면, 나는 또한 삼성전자 밖에서 얽매임 없이 말할 수 있는 존재인 것이다. 모든 주체는 이렇듯 만남이라는 과정에 상관없이 이미 대화에 나선 주체다.
김상봉의 철학에서 드러나는 또 하나의 문제점은 오직 한국적 주체만이 자기상실을 경험했으며 예속과 수동성에 사로잡혀왔다는 생각이다. 만약 김상봉의 자기상실이 타자와 주체 사이에 실재하는 ‘자기거리’를 뜻한다면, 한국적 주체만이 아니라 모든 주체는 자기상실을 경험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주체에서는 지배냐 예속이냐가 중요하지 않다. 다시 말해 삼성전자 사장이냐 직원이냐가 문제가 아니라, 그 관계 전체를 두고 대화할 수 있는 자가 주체라는 말이다. 따라서 ‘예속된 수동적 주체’로서의 한국인을 옹호하는 김상봉의 철학은 막상 주체 자신을 위해서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로지 모든 각자가 서로를 아무 조건 없이 주체로 인정하는 것, 어떤 시스템 안에 있든지 그 시스템 바깥의 허공을 품고 그 허공과 대화하는 자를 주체로 인정하는 것이 더욱 요긴하다.

주체는 맞선 둘의 얽힘이다
이진경의 베스트셀러 『철학과 굴뚝청소부』에 대해서 저자는 더욱 날카로운 비판을 가한다. 이진경의 주체론은 근대에 들어 주체가 신으로부터 떨어져나온 동시에 대상으로부터도 분리됨으로써 제3자의 판정이 없는 한, 자신의 앎이 진리인지를 확인할 길이 없어졌다는 주장으로 요약된다. 이진경은 유명한 굴뚝청소부 일화를 통해 주체(주인공)와 대상(동료)만으로는 자기 얼굴이 깨끗한지 더러운지 알 수 없게 된 근대의 상황을 역설한다. 그러나 저자는 이 일화가 그저 주인공의 표상(더러워짐)과 그 대상(얼굴)이 일치하지 않은 흔한 경우일 뿐 주체와 대상의 일치와는 상관이 없다고 주장한다. 저자가 보기에 주체와 대상을 분리시키고 각각의 실체로 바라보는 이진경의 관점은 큰 오해를 품고 있다. 주체는 홀로 독립된 실체라기보다는 항상 대상에 스며들어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주체는 ‘나’라는 명사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보기에’라는 부사구로 존재한다. 따라서 주체는 ‘무엇은 어떠하다’라는 술어를 반드시 필요로 한다. ‘내가 보기에 무엇은 어떠하다’라는 문장 안에는 주체가 대상에 스며드는 과정, 그리고 대상과 거리를 두는 과정이 모두 포함돼 있다.
이로써 문제는 다시 대화로 돌아온다. 이진경은 근대적 주체가 처한 곤경을 진리 보증의 딜레마, 곧 진리인지를 보증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데서 찾았다. 그러나 데카르트나 칸트, 헤겔 같은 근대철학자들은 이런 진리보증 문제를 제기한 적이 없다. 이들이 중요시한 것은 오히려 ‘내가 보기에’라는 전제이며 이런 전제들 사이에서 오가는 대화다. 결국 이진경의 실체존재론은 근대철학과 근대정신 전체를 가리고 주체를 말소하고 말았다.
‘헤겔만가’라는 부제가 붙은 김상환의 『철학과 인문적 상상력』을 두고서도 저자는 치열한 논쟁을 마다하지 않는다. 이 책에서 저자가 가장 집중하는 개념은 헤겔의 ‘부정성’이다. 저자가 보기에 부정성(이항대립)은 헤겔철학의 생명과도 같은 것이다. 그것은 언제나 맞선 둘의 대립을 묵묵히 인정하는 것이며 그리하여 주체 그 자체와 같은 것이다. 저자가 동의하기 어려운 것은 김상환이 이항대립 사이에 어떤 절대자(매개자)를 끼워넣어 대립되는 두 항을 제3의 항에 복속시키는 것이다. 헤겔철학에서 중요한 것은 매개자가 아니라 이항대립 그 자체다. 다시 말해 높은 심급의 전체란 없으며 맞선 둘이 각각 ‘이게 내 생각이야’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저자가 보기에 김상환은 마치 염상섭의 『만세전』에 나오는 이인화처럼 불행한 의식을 내세워 나-세계의 분열만을 인식하는 책상도련님의 전형이다. 저자는 나-세계의 합일도 진실의 한자락으로 인정하며 이로써 진실이 맞선 둘의 얽힘임을 깨닫는 것이야말로 올바른 헤겔 읽기라고 주장한다.

가짜 근대화와 헤겔이라는 해독제
4장에서 저자는 이어령을 필두로 야나기 무네요시, 이광수 같은 한국인론 저자들의 ‘외부인 놀이’를 비판한다. 야나기 무네요시가 조선의 예술을 슬픔과 한(恨)의 예술로, 이어령이 한국인을 한과 정(情)의 민족으로 규정할 때, 우리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그 개연성을 인정해왔다. 그러나 이들의 한국인론은 지금 여기에서 나온 주체의 목소리와는 거리가 멀다. 이들의 목소리는 오히려 자신을 철저히 외부인으로 인식하는 관점, 다시 말해 서구와 동양 사이에서 자신만이 이 민족을 세계와 매개할 수 있다는 관점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슬픔이니 한이니 하는 것들은 실제 우리의 삶과는 거리가 먼 허구일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이러한 허구적인 규정이 탈정치적 성향을 가지며, 실제로 정권이 바뀔 때마다 등장하여 병적인 개조의 과정을 정당화하고 비민주적인 통치를 은근히 수용해왔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우리가 겪은 근대화를 헤겔적 의미에서 재해석한다. 저자는 우리의 근대화는 주체의 자기관계가 아니라 오히려 자기관계의 부정, 즉 세계화니 출세와 같은 것들이었다고 비판한다. 이는 마치 다리를 얻기 위해 목소리를 내준 인어공주처럼 ‘출세’를 위해 ‘자기표현’을 잃어간 우리의 초상과 다름없다. 저자는 변신과 출세를 강요하는 이런 가짜 근대화에 맞설 가장 강력한 해독제로 헤겔을 꼽는다. 헤겔의 근대화는 자기표현을 나 자신의 본질이자 운명으로 삼는 것이며, 그리하여 제자리에서 자기 목소리로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 전대호의 자기표현에 과연 누가 먼저 대화 상대자로 나설지 귀추가 주목된다.

 

책속으로

나는 김상봉이 자꾸 “아픔”이나 “고통” 같은 감정에 호소하는 것이 안타깝다. 그의 “자기상실”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도 감정은 제쳐두어야 하지 않겠는가. ?본문 1장에서

이진경은 굳이 지배와 복종의 도식으로 근대사회를 재단하려 하는데,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 동등한 주권자들의 공동체, 우리가 스스로 정하고 따르는 규칙과 제도와 법은 정녕 허상일까? ?본문 2장에서

“자신의 내면으로 잠수한다”는 김상환의 주체에서 내가 식민지시대 “책상 도련님”(염상섭, 『만세전』)의 체취를 맡는 것은, 나 자신이 그 체취에 아주 익숙하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본문 3장에서

이어령은 ‘외부’로 향한 시선을 거두지 못하는 사람이다. 바꿔 말하면, 열패감과 복수심의 시선으로 ‘외부’ 창조하기를 그만둘 생각이 없는 사람이다. 그는 동양과 서양을 대비하는 작업에 큰 의미를 둔다.

 

 

 

 

 

 

 

 

 

INTRO 영화는 재발명되어야 한다

TRACK 1 전체적으로 그런 기운이 느껴지는 섹스
「감각의 제국」, 오시마 나기사
TRACK 2 비정상적 영혼의 정상화를 위한 폭력
「시계태엽 오렌지」, 스탠리 큐브릭
TRACK 3 배신하지 않는 동물의 왕국을 꿈꾸는 정치
「살로, 소돔의 120일」, 피에르 파올로 파솔리니
TRACK 4 온 우주가 나서서 도와주길 바라는 종교
「비리디아나」, 루이스 부뉴엘

OUTRO 시험해 보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

 

 

 

 

“위대한 작품을 남겼던 작가들의 공통점은 그들이 다른 누구도 흉내 내지 않고 자기만의 목소리를 자기만의 스타일로 남겼다는 데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하루라도 빨리 회복해야 할 인문정신입니다. 그렇습니다. 인문정신을 회복하는 순간, 우리는 정치가나 자본가, 혹은 멘토의 말을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무력감에서 벗어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저 자신에게 그리고 여러분에게 원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인문정신을 제대로 갖춘 사람은 우리에게 항상 물어봅니다. 스스로 주인으로 사유하고 생각할 수 있을 정도로 당신은 용기가 있는가? 당신은 주인으로서의 삶을 감당할 힘이 있는가?”

 

 

■ 섹스·폭력·정치·종교…… 검열 아래 숨죽이고 있던 네 편의 영화를 통해
우리의 욕망을 통제하며 길들이는 금기들과 당당히 마주 서다


『30금 쌍담』은 이제껏 우리가 경험해 온 상담과 다르다! 최근 각박한 현실, 소통 부재의 상황 속에서 갖가지 상담, 카운슬링 프로그램이 성행하고 있다. 그런데 가만 살펴보면 문제의 핵심에 다가서지 못하고 겉도는 질문들, 전부 어디에선가 들어 봤음 직한 대답만이 들려올 뿐이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가, 왜 모두 꾹꾹 참고 침묵을 지키고 있는가? 이 문제에 응답하고자 인간의 밑바닥까지 내려가 보는 철야 상담으로 유명한 철학자 강신주와 영화 비평계의 ‘매의 눈’으로 통하는 이상용이 『씨네샹떼』에 이어 한 번 더 뭉쳤다. 마침내 두 사람은 금기가 우리의 생각과 입을 틀어막고, 말 잘 듣는 노예로 길들이고 있다고 지적하며 보다 강력한 ‘충격 요법’을 권한다. 금기에 주눅이 든 상태로는 자기 자신에겐 물론, 한 사회의 주체적인 구성원으로서도 당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비상경보를 울려 대는 우리 사회를 위해, 그곳의 주인이자 변화의 주체인 명랑 시민들을 위해 『30금 쌍담』이 세상에 나온 것이다.
한데 왜 하필 두 사람은 우리의 삶을 옥죄는 금기와 맞닥뜨리는 자리에서 영화를 꺼내 든 걸까? 영화는 오늘날 사람들이 가장 친숙하게 접하는 대중 매체다. ‘영화 관객 1000만 명 시대’, 즉 수천 만 명의 사람들을 한자리에서 웃기고 울릴 수 있는 게 바로 영화인 것이다. 그 때문에 영화만큼 검열과 사회적 금기에 민감한 매체도 없다. 실제로 영화는 지난 한 세기 동안 파시즘을 선동하기도, 혁명을 불러오기도 했다. 따라서 두 사람은 이처럼 위력적인 영화, 그중에서도 권력 집단이 줄곧 금기시해 온 네 편의 작품을 공개 상영함으로써 우리의 억압된 욕망을 두드리고 금기가 지닌 허위를 드러내 보이고자 했다. 이제껏 권력과 사회가 거부해 온 영화들은, 우리가 애써 외면한 진실들을 가장 강력하게 까발려 줄 것이다. 진짜 성숙은 바로 이 지점에서부터 시작된다.

우리는 이들 영화가, 그리고 이 책이 단순히 ‘교양’이나 ‘입문’ 수준에서 읽히기를 바라지 않는다. 우리는 이 책이 삶을 재발명하고, 섹스를 재발명하고 사유를 재발명하게 하는 ‘본격적인 재발명 도구’가 되기를 원한다. 『30금 쌍담』이 다룬 강렬한 영화들이, 정신을 번쩍 뜨이게 하는 언어를 만나 안온한 삶을 후려치는 거센 망치가 되기를 소망한다.―이상용

■ 당신은 착한 아이가 아니다, 부조리한 사회에 저항하고 권력을 고발하라!
금기와 직면해 본 사람만이 진짜 어른이 될 수 있다


처음 ‘악명 높은’ 영화들을 보고 잠시 우물쭈물하던 사람들이, 두 선생의 ‘도발적인’ 강연을 듣고 나자 하나둘 자신들의 문제를 스스럼없이 쏟아 내기 시작했다. 우리는 금기가 둘러친 벽과 마주한 순간부터, 자신의 인생과 이 사회를 전혀 새로운 관점에 보게 된다. 「감각의 제국」을 보며 적나라한 성애 묘사에 헉 하고 놀라던 사람들이 어느새 자기 욕망을 되돌아봤고, 「시계태엽 오렌지」를 보고 난 뒤엔 국가 권력 앞에서 무기력해지는 악인의 모습을 지켜보며 정의와 폭력에 대해 갑론을박을 벌이기도 했다. 또 「살로, 소돔의 120일」을 가득 채운 기괴한 성행위와 고문 장면을 보고 나서는 파시즘에 대한 분노를, 「비리디아나」가 끝난 뒤에는 종교적 구원이 지닌 한계와 허망함을 줄줄이 토로했다. 저마다 ‘나만 이상한 거면 어쩌지? 입을 다물자, 모른 척하자, 이제껏 배워 온 대로 침묵하자!’라고 생각하며 잠자코 있던 사람들이, 부조리한 현실과 자기 내면이 뿌리내린 허위적인 금기를 낱낱이 고발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러한 도전 혹은 도발을 통해 우리는 금기를, 기성세대의 꼰대 짓을, 국가 권력의 폭압과 수수방관을 넘어설 수 있다. 결국 ‘진짜 성숙’은 그동안 우리를 길들여 온 권력자의 가르침과 금지를 뿌리침으로써, 즉 자기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나쁜 사람’이 됨으로써 가능하다. 이것이 바로 메르스를 뚫고 심야(새벽 4시까지!)에 열린 「30금 시네마」, 그리고 그 강연 내용을 책으로 엮은 『30금 쌍담』의 최종 목표다. 우리는 누구나 만 20세가 되면 성인된다고 여긴다. 또 30세 즈음이면 사회의 기둥으로서 주체적 시민되리라 믿고 있다. 하지만 단지 나이를 먹었다고, 출세했다고 해서 ‘성숙’한 건 아니다. 진정으로 성숙한 사람, 즉 우리 사회를 보다 나은 미래로 이끌 명랑한 민주 시민이 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민얼굴을 똑똑히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한다. 조금 늦었더라도(30대 이상이라도 상관없다.), 다소 이르더라도(20대면 뭐 어떤가?) 『30금 쌍담』이 들려주는 어려운 시대에 살아남기 위한 ‘생존 교양’에 귀를 기울여 보자. 나를 위해, 너를 위해, 우리 모두를 위해서 말이다.

우리는 『30금 쌍담』을 통해 착한 사람을 나쁘게 만들고 싶었다. 타인들이 나쁘다고 했을 때에만, 우리의 행동은 타자의 이익이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한 행동이 된다. 그래야 우리는 타인의 평가가 아닌 진정한 자기 평가에 따라 행동하게 될 테다. 자신의 삶에 진짜 좋은 건지 나쁜 것인지, 혹은 자신에게 유쾌한지 불쾌한 일인지를 알려면, 우리는 어떤 규칙이나 금기에 연연하지 말고 직접 도전하고 행동해야만 한다.―강신주

■ 『30금 쌍담』을 뜨겁게 달군 질문들

계속 섹스를 해도 허무감을 느낀다면 그 관계를 정리해야 할까요? 사랑에 국한되지 않더라도, 여러 관계에서 끊임없이 허무감을 느낀다면 그런 관계들을 그만두는 게 옳을까요?

‘예전 같지 않다, 별로다.’ 하는 느낌인 거죠? 뭔 관계를 정리해요, 관계가 이미 끝난 건데요. (……) 종종 관계가 끝났음에도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을 때가 있죠? 그럴 때 우리는 추억에 젖듯 섹스를 하게 돼요. 그러니까 다른 관계는 전부 무너져 버리고, 오직 섹스만 남은 셈입니다. 따라서 허무할 수밖에 없어요. 이제 이야기를 주고받는 관계, 함께 여행을 다니는 관계, 맛있는 음식을 나눠 먹는 관계…… 이런 모든 것들이 붕괴됐으니까요. 섹스를 마치고 나서도 함께하고 싶은 관계가 존재하지 않으니, 관계 후에 허무만 남는 겁니다. 그러니 또, 자꾸 섹스를 시도하게 될 테죠. 그래도 허무한 관계가 지속된다면 먼저 얘기하세요, ‘헤어지자.’라고요. 지지부진하고 괴로우면, 서로를 갉아먹을 뿐이에요. 지금까지의 좋은 추억도 저주하게 될 겁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인간의 선의지에 대해 이야기하는데요, 진짜 그런 게 존재하기는 하나요? 악과 또 다른 악이 있을 뿐이죠. 이것은 곧 선과 악, 모두 다 없음을 의미하는 게 아닐까요? 그렇다면 과연 선과 악은 무엇일까요?

선은 영원한 선이고 악은 영원한 악이라고 보는 시선이 있어요. 그런데 니체는 『선악의 저편』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했어요. “나에게 선(good)과 악(evil)은 없다. 단지 좋은 것(good)과 나쁜 것(bad)만 있다.”라고요. 나한테 어떤지가 중요해요. 독을 써서 죽는 사람이 있고 치료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근원적인 선과 악은 존재하지 않아요. 존재한다면 선생님, 아버지, 체제, 사회가 주장하는 선악일 뿐이죠. 따라서 우리에겐 좋은 것과 나쁜 것이 있을 따름입니다. 이걸 스스로 선택하지 못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끊임없이 뭐가 맞는지 물어보죠. 그러다가는 평생 남의 명령만 받다가 죽는 거예요.


가난한 상황 탓에 삶이 점점 더 불리해지는 듯합니다. 애초에 돈이 많았다면 편법 따윈 생각하지도 않았을 텐데, 저처럼 없는 사람에게까지 벌금을 먹이다니! 변호사를 구해 억울함을 풀 수도 없고, 막막한 형편입니다. 돈이 없을수록 돈을 더 많이 써야 하는 이런 사회! 정말 약자에게는 강하고, 강자에겐 약한 사회가 된 것 같습니다.

(……) ‘절차적 민주주의’라는 게 있죠? 이 절차들이 우리를 죽여요. 가령 우리가 시위를 한다고 해 봐요. 헌법에 ‘집회와 결사의 자유’가 있으니, 당당하게해도 될 것 같아요. 그런데 놀랍게도 ‘도로 교통법’을 더 우선시하죠. 헉, 이게 뭐야? 그래서 불만을 제기했더니, 옳다구나 하면서 소송을 걸어 보래요. 지금 시위하기도 바쁜데, 대법원까지 가야겠어요? 절차를 복잡 미묘하게 만드는 게, 바로 부르주아 사회의 특징이에요.
소송이 발생하면 대기업이나 자본가들은 당장 변호사를 사죠. 하지만 대다수의 가난한 사람들은 변호사를 만날 수조차 없어요. 그러니 소송 과정에서 우리는, 약자들은 진이 빠질 수밖에요. 대기업은 변호사에게 소송을 맡기고 다른 일을 하는데, 우리는 생업을 제쳐 두고 재판에 몰입해야 해요. 설령 소송에서 이기더라도 우리는 망한 거죠. 그중 제일 치사한 게 파업했다고 업무 방해죄로 고소하는 놈들이죠. 정말 법대로 끝까지 가면 결국 노동자가 이길 테지만, 법정에서 소송을 이어 가는 수년 동안 그 사람은 뭘 먹고살겠어요? 어느 광고 문구처럼 ‘따라올 테면 따라와 봐!’ 하는 거죠. 만약 그때 질문자가 민병대한테 반항했다면, 그들은 분명 이랬을 거예요. ‘나한테 돈을 내는 게 좋을 걸요? 내 뒤엔 더 센 놈들이 있어요.’

저는 제법 독실한 기독교 신자입니다. 기독교의 핵심은 순수한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현실에서 그런 사랑을 만나기는 거의 불가능하죠. 서로 알게 모르게 대가를 요구하니까요. 앞서 말씀해 주셨지만, 순수한 사랑에 대한 인간적 불가능성을 극복하기 위해 종교에 들어서는 사람들을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순수하고 절대적인 신성을 모독해야, 복잡하고 상대적인 우리의 인간성이 회복되지요. 사실 순수한 절대성이 있다고 믿는 건 이상주의적 태도입니다. (……) 그런 이상주의적 태도를 버리고 나면, 내 곁에 있는 사소한 사랑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깨닫게 돼요. 더 큰 그림, 내가 만들어 낸 거대한 틀만 꿈꾸다 보면 오히려 그게 자신을 옥죄고 힘들게 하죠. 대기만성이라며 큰 그릇을 내다보지 마시고, 작은 간장 종지를 꿈꾸세요. 간장 두 종지만으로도 충분할 수 있어요. 종지에도 은근히 많은 걸 담을 수 있으니까요. 커다란 대야를 놓고 여기에 뭘 넣을지 고민하면 힘들어져요. 참기름을 넣자니 돈이 아깝고요. 차라리 그릇을 줄이는 게 좋은 방법이죠.

 

 


(……) 나만을 위한 순수, 그것이 바로 종교의 감각이에요. 순수가 정당할 때는 나 자신을 위할 때가 아니라 상대방을 아낄 때죠. 본래 청소는 더러워지라고 하는 거예요. 립스틱을 바르고 애인을 만났는데 뽀뽀도 못 하게 하면 대략 난감하죠. 키스하다가 입술에 립스틱이 번지려고 만나는 건데요. 또 아이가 새로운 마음으로 집 안을 어지럽히길 바라며 청소를 하는 부모가 돼야 해요. 아이한테 집에 오자마자 ‘발 씻어! 손 씻어!’ 하면 그 애가 집에 오고 싶겠어요? 괴로울 뿐이죠. 타인을 위한 순수가, 결국 사랑이 아닐까 싶어요. 사랑엔 분명 순수의 요소가 들어가지만, 사랑 자체가 순수인 건 아닌 셈이지요.

■ 강신주와 이상용이 적극 권장하는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교양!
『30금 쌍담』을 읽고 바로 도전해 봐야 할 버킷 리스트


□ 내 감정, 내 인생은 나의 것, 숙제 검사받지 마라!
□ 과연 사랑일까, 욕정일까? 마음에 들면 일단 자고 보자!
□ 나약한 존재일수록 타인을 짓밟는다, 압도적으로 강해져라!
□ 서열 정리에 목맬수록 꼰대다, 형님이라 부르지 마라!
□ 용서는 강자만이 할 수 있다, 약자일수록 복수를 생활화하라!
□ 나답게 살 수 없다면 무슨 소용인가? 수치심을 넘어서라!
□ 삶을 먼저 배려하는 믿음, 집과 절을 구별하라!
□ 관용 없는 신앙은 지옥이다, 격하게 여행을 떠나라!

 

 

 

 

 


생각한다는 것

저자
고병권 지음
출판사
너머학교 | 2010-03-31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젊은 철학자 고병권이 청소년에게 주는 지혜의 메시지 ‘너머학교 ...
가격비교

 

기획자의 말

 

 

철학, 좋아하세요?
잘 살고 싶다면 철학을 하세요
생각하는 기술, 철학
생각 없이도 살 수는 있어요
생각이 일어나면 다른 내가 되어요
생각이 공부이고 공부가 자유입니다
철학은 친구가 되는 겁니다
철학은 행복이고 우정이고 자유이고 공부입니다
철학자 작은 사전

 

 

 

저자는 철학을 "잘 사는 기술"로 정의한다.

 

잘 산다는 것은 행복하게 산다는 것이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생각을 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생각을 한다는 것 = 깨어있는 것, 다르게 생각하는 것이다.

 

생각한다는 것은 습관이나, 관습, 통념, 편견, 고정관념 등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단순히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생각, 다른 생각을 하는 것, 기존의 것을 항상 의심하고 늘 새로운 시각을 가지는 것 이것이 바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새로운 생각, 새로운 삶을 낳을때 우리는 무언가를 깨닫고 배운 것이며 이것이 바로 진정한 공부이다.

 

공부는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

 

자유롭기 위해서 우리는 죽을 때까지 쉬지 않고 공부해야 한다.

 

뒷 부분의 철학자들에 대한 간단한 소개는 참고할 만 하다.

 

 


100억짜리 생각

저자
마이클 미칼코 지음
출판사
위즈덤하우스 | 2011-06-30 출간
카테고리
자기계발
책소개
아인슈타인도, 리처드 파인만도 모두 이 9가지 방법으로 세상을 ...
가격비교

 

 

 

창조성을 업 시키는 방법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9가지 방법을 참조해 보세요.


1. 네모 상자에서 벗어나기
창조는 남들이 놓친 새로운 관점을 발견하는 데서 나온다.
한 가지 관점에서 사물을 본 후,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고,
다시 다른 관점으로 이동하면서 자신의 문제를 재구성해 보라.


2. 연습을 시각화하기
어떤 최소한의 언어적 유창성을 획득하면,
이를 시각화하고 입체화하여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면서 능력을 개발하라.
그림, 그래프, 도표라는 다양한 언어로 표현해 보라.



3. 풍부하게 생각하기
엄청난 생산성은 천재들의 특징이다.
모차르트는 600편이 넘는 음악을 작곡했고
아인슈타인은 상대성이론 외에도 248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위대한 과학자들은 우수한 연구뿐 아니라 열등한 연구도 했다.


4. 새로운 조합 만들기
새로운 조합을 계속해서 만을어 내어보라.
한 바구니의 레고 블록을 가지고 노는 영리한 아이들처럼
계속해서 의식적 사고와 잠재의식적 사고로
아이디어와 이미지, 생각을 다르게 조합한다.


5. 서로 연관 없는 것을 연관 짓기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도록
서로 무관해 보이는 것들을 인위적으로 연결하는 능력을 훈련하라.


6. 상황의 이면 보기
다른 방식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정반대이거나
비교할 수 없는 주제 사이에 존재하는 양면가치를 인정하라.


7. 다른 영역에서 보기
두 가지 독립 영역 사이의 유사성을 파악하는 사람을 특별한 능력을
연마하라. 비슷하지 않은 것들이 여러 가지 면에서 실제로 비슷하다면
아마 이것들은 다른 면에서도 비슷할 것이다.


8. 찾고 있지 않는 것들 발견하기
기회의 선물을 기다리지 않는다.
그 대신 우연한 발견을 적극적으로 찾는다.


9. 합작 정신 일깨우기
집단의 합쳐진 지능은 위대하다.

 

 


-출처: 마이클 미칼코, (100억짜리 생각), 위즈덤하우스, pp.10-14

 

 

 

 

 

프롤로그 | 남자들은 왜 아무것도 모를까

 

 

1장 남자들의 본성

 

남자의 자존심과 질투의 본질

 

‘정신과 의사’라고 자기소개를 했을 때/상처 받기 쉬운 남자의 자존심/남자들이 질투하는 대상/질투심은 착각을 부른다

 

 

아내를 사랑하면서도 바람피우는 남자

 

남자들의 모순적인 태도/가정은 가정, 애인은 애인/이기적인 남자의 특징

 

 

남자들은 왜 ‘성 기능’에 집착할까

 

중년 남자와 젊은 여자/남자의 갱년기/갱년기 장애를 극복하는 방법/‘자연스러운 노화’일까, ‘치료해야 할 질병’일까

 

 

혼자 남은 남자는 왜 약해질까

 

담담한 여자, 허둥대는 남자/배우자를 잃는다는 것/자립하는 남자가 오래 산다

 

 

2장 남자들이 잘못 알고 있는 것들

 

 

어떤 아내들은 남편이 죽기를 바란다

 

이혼을 꿈꾸는 아내들/‘별 문제 없는 남편’의 문제/결혼 생활에 대한 아내의 만족도와 남편의 만족도/아내 보살피기

 

 

‘성실한 남자’와 ‘나쁜 남자’

 

성실한 남자가 인정받던 시대는 갔다/왜 불량한 타입의 남자들이 활약하게 되었을까/‘신개념 성실남’에게 필요한 한 가지/‘남이 먼저’ 형과 ‘내가 먼저’ 형/자기애가 강한 남자

 

 

인기 있는 남자의 특징

 

여자가 바라는 것을 헤아릴 줄 아는 남자/내버려둠으로써 마음 얻기/‘어떻게 말할까’보다 중요한 것/미움 받는 남자들의 공통점

 

 

품격과 야심

 

품격은 타고난 우아함이다/품격은 현대인이 찾아낸 신성/야심은 어디로 사라졌나/어머니만 사랑하는 아들/잃어버린 ‘아버지의 시대’

 

 

황금만능주의와 이상주의

 

남자와 돈벌이/황금만능주의와 이상주의의 사이/착한 일을 했다는 자기만족/제대로 소통하기/천박하지 않게, 시대에 뒤처지지도 않게

 

 

남자의 권위

‘권위’라는 착각/남자에게 ‘어머니’란/여자들의 속마음

 

 

3장 상처 받는 남자, 상처 주는 남자

 

 

직장에서 상처 받는 남자들

상사의 괴롭힘/남자에게 상처가 되는 말들/세대 간에 가로놓인 괴리/상사의 괴롭힘을 피하기 위한 필수 조

건/이상적인 상사

 

 

남자는 노화 앞에서 작아진다

 

건강에 집착하는 남자들/조금은 살찐 사람이 장수한다/노화는 자연스러운 현상/세월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는다

 

 

남녀 사이에서 일어나는 정신적 폭력

 

정신적 폭력이 미치는 심각한 영향/트라우마와 폭력성/비뚤어진 자기애가 낳은 정신적 폭력

 

 

‘치한’이나 ‘몰카’로 치닫는 심리

 

원래 생활로 되돌아갈 수는 없다/페티시즘에 빠지는 남자, 마초가 되는 남자/있는 그대로의 자신

시대와 사회가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

 

지위와 권한은 사람을 바꾼다/사명감의 잘못된 인식/대중매체가 만들어낸 신형 우울증/사람은 시대와 문화의 영향을 받으며 성장한다

 

 

에필로그 | 남자들을 위한 작은 선물


 

 

 

 

 

 

 

 

 

“내가 왜 화났는지 몰라?”

무엇이 문제인지 결코 스스로 깨닫지 못하는 남자들,
아버지, 남편, 아들까지 평생 남자들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여자들을 위해
정신과 전문의 가야마 리카가 ‘남자들의 문제’에 답하다


남자를 단숨에 혼란에 빠뜨리는 여자의 질문이 있다. 꽤 많은 남자들이 이 질문의 해답을 찾기 위해, 혹은 이 질문을 교묘하게 빠져나가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했다는 사례들이 보고되었으나 성공했다는 이야기는 전해오지 않는다. 그 질문은 바로 이것이다. “내가 왜 화났는지 몰라?” 남자들은 아마도 여자친구 혹은 아내의 이 질문에 영영 답하지 못할 것이고, 그리하여 매번 그녀들의 화를 돋울 것이다. 대부분의 남자들은 자신의 행동을 여자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깨닫지 못할 때가 많다. 마찬가지로 여자는 남자의 행동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한다. 천진난만한 남자의 표정을 보며 여자들은 대부분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어떻게 내가 화난 이유를 모를 수가 있지?’

 

 

 

 

정신과 전문의이자 다양한 사회문화 현상을 다루는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가야마 리카는 『남자는 언제나 이유를 모른다』에서 남자들의 생태와 심리를 탐구한다. 남자의 자존심과 질투심, 남자의 모순적인 태도들, 얼핏 보기에 ‘별 문제 없는 남편’의 문제점, 상처 받는 남자들의 모습까지, 다양한 사례를 바탕으로 때로는 따끔하게 때로는 다정하게 남자들의 심리를 짚어준다. 이 책은 남자들에게 스스로를 진단해볼 기회가 되어주고, 여자들에게는 남자를 볼 때 어떤 면을 보아야 하는지를 말해준다.

 

당신의 아내는 지금 이혼을 꿈꾸고 있다

 

진찰실에서 아내들은 내뱉듯 이렇게 말한다.
“이젠 더 이상 말도 섞고 싶지 않아요.”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화가 울컥울컥 치밀어요.”
“같은 방에 있으면 오싹해요.”
“남편이 들어갔다 나온 욕실엔 들어가고 싶지도 않아요.”
“남편의 빨래는 저나 아이들 속옷과 절대로 같이 안 빨아요.”
“매일 밤 생각해요. 이대로 잠들어서 깨어나지 않으면 좋을 텐데, 라고요.”

 

 

말하자면 생리적인 혐오감이다. 아마 남편은 아내가 자신을 이렇게까지 까닭 없이 싫어하고, 심지어 진심으로 죽기를 바란다는 것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다. 물론 이런 말들은 진찰실에 오기까지 하염없이 고민하고 깊이 생각한 사람들의 말이고, 남편에게 불신감, 혐오감을 이제 막 품기 시작한 사람들은 그렇게까지는 생각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입문자’들도 남편이 ‘말을 걸면 짜증이 난다’느니 ‘외식하자는 소리 좀 안 했으면 좋겠다’느니 하는 가차 없는 말을 입에 담는다. 아내는 언제부터, 왜, 사랑해서 결혼했을 남편에게 이처럼 생리적인 혐오감을 품게 되었을까.
―본문 중에서

 

A씨는 나이 많은 대학교수와 오랫동안 불륜 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그와 연구 주제도 겹쳐서 동반자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애인이 자신에게 대학을 갓 졸업한 딸의 취직자리를 부탁해왔다. A씨는 그의 행동이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

 

50대 주부 B씨는 시간제 근무로 일을 하고 있긴 하지만 전업주부와 다름없다. 남편은 한 회사에 꾸준히 다니고 있는 성실한 사람이다. 술이나 폭력, 여자 문제도 전혀 없다. 하지만 이제 B씨는 남은 인생마저 남편과 살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애인에게 딸의 취직자리를 부탁하는 남자의 심리는 무엇일까? 성실한 남편을 두었음에도 이혼을 꿈꾸는 아내의 심리는 무엇일까? 그리고 남자들은 왜 그토록 어린 여자를 좋아할까? 여자들은 집착하는 남자 때문에 괴로워하면서도 왜 헤어지지 못할까? 저자는 남자와 여자 사이에서 오해와 착각이 발생하는 이유를 다양한 사례를 통해 짚어준다. 남녀가 너무도 다르다는 사실은 이미 누구나 인정하고 있고 잘 알고 있지만, ‘다름’을 안다는 것이 서로에 대한 ‘이해’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큰 병에 대한 선고를 받거나 배우자를 잃었을 때 남녀의 상반된 대응 방식, ‘남이 먼저’ 형 남자와 ‘내가 먼저’ 형 남자의 차이점, 자기애가 강한 남자의 특징, 남자들이 겪는 갱년기 장애 등 실제로 마주하는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남자들의 심리와 생태를 유쾌하게 풀어냈다.

 

남자들 스스로도 미처 깨닫지 못한

 

남자들의 심리, 남자들의 생태!

ㆍ 남자들이 질투하는 대상이 늘 남자는 아니다
ㆍ 남자의 질투심은 착각을 부른다
ㆍ 아내를 사랑하면서도 바람피우는 남자들의 심리는?
ㆍ 남자들은 왜 ‘성 기능’에 집착할까?
ㆍ 남자들의 갱년기는 ‘자연스러운 노화’일까?
ㆍ 아내 없이 혼자 남은 남자는 왜 약해질까?
ㆍ ‘별 문제 없는 남편’의 문제는 무엇일까?
ㆍ 여자들은 왜 나쁜 남자에게 매력을 느낄까?
ㆍ 여자에게 ‘어떻게 말할까’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ㆍ 미움 받는 남자들의 공통점은?

 

- 책속으로 이어서 -

 

친구들 사이의 관계나 유대는 사귄 기간이 길수록 깊어지겠지만 부부 사이에서 커뮤니케이션의 양과 질은 결혼 생활이 길수록 떨어진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자신의 생각이나 기분을 스스럼없이 배우자와 이야기하고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을 보아도 결혼 생활이 길수록 긍정적인 답변의 비율이 낮아진다. 특히 남편은 스스로 ‘아내와 대화가 적다’는 자각이 있는 모양이다.

 

 

그런데 여기에서도 흥미로운 남녀의 차이가 보인다. 남편 쪽은 40대부터 50대에 걸쳐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고 대답하는 사람이 늘고 있는 데 반해 ‘부부 사이에 대화는 없다’고 대답하는 아내의 비율은 결혼 생활이 길어짐에 따라 높아지기만 한다.

 

 

이 결과를 두고 다음과 같이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즉 실제 대화 시간은 늘었지만 ‘좀더 이야기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아내가 부족함을 느끼고 있거나, 대화는 늘지 않았지만 남편이 제멋대로 대화가 늘었다고 착각하고 있을 뿐이다. ―79쪽

 

굳이 냅킨을 펼쳐 무릎에 깔아주는 등 ‘공주님’처럼 대해주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그저 ‘아, 이 사람은 내 입장에서 지금 무엇이 필요한지, 무엇이 싫은지 생각해주는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도록 행동한다면 어떤 말보다 효과적으로 의사를 전달할 수 있다.

 

그렇지만 술자리에서 한마디도 하지 않는 것도 어불성설일 테니 말을 매개로 한 의사 전달에서 주의해야 할 점을 하나 일러둔다.

 

그것은 여자는 대부분 사생활에 얽힌 소문이나 음담패설을 썩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사실도 모르고 많은 남자들이 터무니없는 착각을 하는 것 같다.

 

종종 회사에서 상사나 동료를 소재로 아슬아슬한 음담패설을 자랑스럽게 늘어놓는 남자가 있다. 주위 여자들이 “어머! 부장님이 정말 그래요? 설마 아니겠죠?”라며 반응하는 것을 보고 ‘좋았어. 제대로 먹혔어.’라고 생각하겠지만 이것은 여자들이 그런 이야기밖에 할 줄 모르는 남자를 동정하면서 즐거운 척 대꾸하고 있을 뿐이라고 생각해도 좋다. ―106쪽

 

 

책속으로

 

“남자들은 왜 아무것도 모를까?”

 

지금까지 이 말을 몇십 번, 몇백 번을 하고, 또 들었던가.

 

기본적으로 나는 ‘남자와 여자는 신체의 차이밖에 없다’라는, 이른바 남녀평등주의를 옹호한다. 물론 내 주변에도 여자지만 전혀 맞지 않는 동료가 있는가 하면 남자지만 가족처럼 마음이 통하는 친구도 있다.
그런데도 “하여튼 남자들이란……”이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상황과 종종 맞닥뜨린다.

 

남자는 이렇게 반론할지 모른다.

 

“정말 그래? 난 집사람이나 회사 여직원들한테서 그런 말 들어본 적이 없는데. 그러기는커녕 내가 하는 말에 다들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다고. 나 말고 다른 남자들 이야기 아냐?”

 

이렇게 말하는 것이야말로 바로 아무것도 모른다는 증거다. ―5쪽

 

흔히 남자들 사이에서는 한 여성을 서로 빼앗으려 할 때 질투심이 더욱 격렬해진다고 하는데 이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남자는 ‘그 여자가 나보다 그놈을 더 좋아하는 게 아닐까’ 하고 여자의 사랑을 둘러싸고 연적을 질투하는 것이 아니다. ‘그 여잔 결국 남자만 있으면 그만이니 나 따윈 아무래도 상관없겠지’ 하고 남자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여자에게 질투의 칼날을 겨눈다.

 

 

그렇다고 해서 그 남자에게 동성애적 성향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 성향이 아니더라도 남자는 자신에게 소중한 친구나 동료, 상사가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눈길을 주고 관심을 기울이는 것만으로도 그 사람을 경쟁자로 간주하고 질투한다. 설령 그 사람이 이성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23쪽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연예인 부부가 탄생할 때마다 스포츠신문에서는 대단한 사건인 양 다루면서 축하를 늘어놓는다. 물론 나이 많은 남자 연예인이 나이 어린 미녀를 아내로 맞을 때이다. 예전에 니혼게이자이신문 사이트에도 텔레비전 드라마 프로듀서의 다음과 같은 발언이 소개된 적이 있다.

 

“젊은 여성이 정말 40대 남자에게 관심이 있는지 설문조사를 실시했더니 놀랍게도 40대 남자와 결혼할 수도 있다는 대답이 예상보다 많았다고 한다.”(‘마흔 넘은 남자는 왜 인기 있는가?’ 2011년 2월 19일자)

 

아마 이 기사를 읽고 남자들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을 것이다.
20대 여성과 연애하고 싶은 40대. 30대 여성과 연애하고 싶은 50대. 나이 차는 무려 스무 살이다. 그렇다면 60대, 70대는 어떨까? 각각 스무 살 적은 40대, 50대 여성과 연애하고 싶을까? 사실은 그렇지 않다. ―40쪽

 

“남편은 줄곧 지금 다니는 회사에서 성실히 근무했어요. 월급도 전부 제게 주었죠. 작지만 단독주택에 살고 있고 대출도 다 갚았습니다. 술은 싫어하지는 않지만 과음하지도 않고, 도박도 사람들과 어울리기 위해 조금 하는 정도예요. 폭력도 안 쓰고 바람도 안 피워요. 그 덕에 몸도 여전히 건강해요. 친구들은 저더러 정말 행복하게 산다고 하지요.”

 

처음 이런 말을 들었을 때에는 ‘도대체 이 사람은 무슨 상담을 하러 온 걸까’ 하고 희한하게 생각했다. 문진표의 ‘지금 신경 쓰이는 증상’ 항목에는 ‘빠른 심장 박동, 호흡 곤란’이라고 적혀 있었고, ‘예상 원인’에는 ‘남편과의 문제’라고 되어 있었다.

 

“생활에 딱히 문제는 없군요. 그럼 왜……”라고 말을 꺼내자마자 B는 내 말을 가로막고 이렇게 말했다.
“맞아요. 제 생각에도 이상해요. 하지만 저도 이제 예순이 눈앞인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이대로 계속 살아도 괜찮을까? 확실히 지금 생활에 불만은 없어요. 남들이 보기엔 행복해 보일지도 몰라요. 그래도

이대로 남편과 일흔, 여든까지 함께 산다고 생각하니 도저히 참을 수 없어요.” ―71쪽

 

“저는 업무 스트레스 때문에 이렇게 우울증에 걸리고 말았지만, 아내는 전업주부라서 하루하루가 편합디다. 부럽기 짝이 없어요.”

 

 

그런 남성에게 “사모님은 낮 동안 무슨 일을 하십니까?”라고 질문하면 “낮에요? 글쎄요, 뭘 할까요? 뭐, 딱히 변변한 일은 안 하겠죠. 텔레비전을 보든가 낮잠을 자지 않겠습니까?”라는, 거의 ‘무관심’이라는 것을 대번에 알 수 있는 대답이 돌아올 때가 많다.

 

 

물론 전업주부인 아내가 늘 마음 편히 아무것도 하지 않을 리 없고, 일하는 여성 이상으로 남편의 정서적 지지를 기다리고 있지만 남편은 그것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한다. 주말에 아내가 “가끔은 외식하면 어때요?”라고 해도 남편은 “난 매일 밖에서 먹고 있으니 주말만이라도 집에서 먹게 해줘.”라며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으려 한다는 이야기도 자주 듣는다. ―76쪽

 

 

 

 

 

기술을 사유하는 인문학, 인간다움을 성찰하는 과학!

 

인문학과 과학기술, 융합적 사유의 힘 테크노 인문학. 오늘날, 과학기술이 사회를 움직이는 핵심 동력일 뿐 아니라 일종의 권력으로 인간과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인간과 기계의 결합 속에 인간의 생물학적 한계마저 사라지고 있는 이 시대에, ‘테크노 인문학은 과학기술에 대한 철학적 성찰을 통해 과학과 인문학의 융합을 시도하고자 한다.

21세기 근본 방향을 가상현실사이보그가 대변한다고 보는 저자는 1부에서 현대의 디지털 이미지 기술이 현실을 어떻게 해석하고 구성하는지 정리한다. 가상현실이 이미 구체적 현실이 되었다는 인식으로부터 출발하여 가상현실의 이미지와 이러한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미디어의 관계를 비판적으로 탐색한다. 2부에서는 사이보그로 상징되는 현대 과학기술의 경향을 집중적으로 조명하며 사이보그의 함의를 살펴본다.

 

 

들어가는 말 - 왜 테크노 인문학인가

서문 - 인문학과 과학기술, 그 융합적 사고의 힘

 

 

제1부 이미지와 미디어

 

1장 인간학적 기계 : 몸, 미디어 그리고 상상력 - 21세기 이미지 테크놀로지는 왜 형이상학을 필요로 하는가

2장 이미지의 권력과 권력의 이미지

3장 영상 인문학은 가능한가 - 이미지의 '실재성'과 '초월성'을 중심으로

전통 인문학이 '이데아의 이미지'로 이미지를 파악하였다면, 영상 인문학은 '이미지의 이데아'로 이데아를 파악하고 있다

     

 

  

1. 이미지의 최대 적은 두말할 나위 없이 플라톤이다.

 

그는 현상이 지배하는 감각의 세계와 진리가 존재하는

 

이데아의 세계를 이원론적으로 구분하고,

 

감각은 이데아에 이르는 철학적 통찰을 왜곡하고

 

굴절시킬 뿐이라고 질타하였다.

  

 

2. 그가 이미지를 비난하는 이유는

 

철학적 통찰은 우리를 진리의 길로 인도하지만

 

현상과 환상은 우리를 혼란에 빠뜨릴 뿐이라는 것이다.

 

종종 오해되는 플라톤의 철인 왕은 사실 이성이 지배해야 한다

 

전통 인문학의 핵심 명제를 구체하한 것이다.

  

 

3. 그런데 이 이성 지배의 당위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크면

 

클수록, 욕망이 현실을 지배하고 있다는 인식이 더욱 더 강렬하게 고개를 쳐든다.

 

 

이데아의 최대 적은 역시 욕망과 환상이 빚어내는 현실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플라톤은 철학과 시 사시에는

 

오래된 일종의 불화(diaphora)가 있다고 단언한다.

  

 

4. 플라톤에 따르면 우리 내면에는 세계를 보이는 대로

 

보려고 하는 천성이 내재하고 있다.

 

우리의 감각은 보이는 것을 실재하는 것으로 간주하려는

 

경향이 있고, 이러한 경향은 결국 영혼을 혼란시킨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플라톤이 이러한 감각의 경향을

 

이용하고 강화하는 예술을 요술또는 마법이라고 매도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5. 디지털 정보기술은 실제로 이미지를 현실보다 더 현실답게 만드는 마법을 실현함으로써, 현상의 뒤에 있다고 여겨진 이데아의 세계를 철저하게 해체하고 있다.

 

 

자본의 논리에 따라 이루어지는 현대사회에서 자신의 존재근거와 필연성을 정당화해야 하는 것은 이미지가 아니라 이데아다. 상황이 정반대로 역전된 것이다.

 

 

 

6. 만약 이데아와 이미지, 철학과 시가 여전히 불화의 관계에

 

있다면, 플라톤의 이데아가 스스로를 정당화 하기 위하여

 

이미지를 필요로 하였던 것처럼, 현대의 이미지는 거꾸로 삶의

 

의미를 해명하기 위하여 이데아를 요구하는 것이 아닐까.

 

만약 그렇다 하더라도, 디지털 정보사회에서 요구되는

 

이데아는 이미지를 배척하는 이데아는 결코 아닐 것이다.

  

  

7. 현대의 이미지가 어느 지점에서 삶의 의미를 해명하고

 

또 어느 지점에서 현대인의 삶을 왜곡하고 소외시키는 지를

 

정확하게 판단하려면, 우선 이데아와 이미지의 불화 관계에서

 

나타나는 이미지의 이중성을 정확하게 인식해야 한다.

  

 

8. 이데아와 이미지의 불화관계에 관한 물음은 미메시스(mimesis),

 

즉 모방의 문제로 연결된다. 플라톤은 예술가를 이상 국가에서

 

추방하는 근거로 미메시스 이론을 제시하고 있다.

  

  

9. 플라톤의 미메시스 이론은 근본적으로 이미지 이론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형상은 우리가 그때그대 만나는 다수 및 다원성과

 

관련하여 동일한 이름을 붙일 수 있는 어떤 하나의 모습을 일컫는다.

 

그렇기 때문에 이미지 생산 과정의 첫 번째 단계는 신이

 

어떤 형상이 떠오르도록 원형적 이미지를 만드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신이 자연이 있는 그대로 나타날 수 있도록 만든 것이

 

 

바로 형상이다. 여기서 우리는 플라톤의 형상(eidos),

 

개념이 아니라 무엇인가의 모습이라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간단히 말해서 형상은 어떤 사물이 있는 그대로 나타나는 진리의

 

이미지인 것이다.

  

 

10. 그러나 우리가 현실 세계에서 만나는 것은 우리에게

 

보이는 것들(phainomena)'이다. 자연의 사물들을 우리의 감각에구체적으로 나타나는 것들이다.

 

pp.119-123

 

 

 

 

제2부 몸과 기계

4장 멀티미디어 정보 시대의 정신과 육체 - 사이보그의 인간학은 과연 가능한가

5장 사이보그도 소외를 느끼는가 - 디지털 시대의 자아와 정체성

6장 태어난 인간과 만들어진 인간 - 인간 복제에 관한 철학적 성찰

7장 인간 복제 시대의 책임윤리 - 개별적 인간은 종 전체에 대해 책임이 있는가

8장 생명공학 시대의 '주체'또는 '탈주체' - 유전공학에 관한 지젝의 정신분석학적 계몽

결론 인간과 기계의 융합 - 휴머니즘, 포스트휴머니즘, 그리고 트랜스휴머니즘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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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者必誠心向道하여 不以世俗雜事로 亂其志然後에 爲學有基址라 故로 夫子曰 主忠信이라하시니 朱子釋之曰 人不忠信이면 事皆無實하여 爲惡則易하고 爲善則難이라 故로 必以是爲主焉이라하시니 必以忠信爲主而勇下工夫然後에 能有所

成就니 黃勉齋所謂眞實心地, 刻苦工夫兩言이 盡之矣로다

     

 

학자필성민향도하여 불이세속잡사로 난기지연후에 위학유기지라 고로 부자왈

주충신이라하시니 주자석지왈 인불충신이면 사개무실하여 위약즉이하고 위선

즉난이라 고로 필이시위주언이라하시니 필이충신위주이용하공부연후에 능유소

성취니 황면재소위진실심지, 각고공부야언이 진지의로다.

배우는 자는 반드시 진실한 마음으로 도를 향하여 세속의 잡된 일로 자신의 뜻을 어지럽히지

않은 뒤에야 학문을 함에 기초가 있게 된다. 그러므로 부자(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충(忠)

과 신(信)을 중심으로 삼아야 한다.”고 하셨으니, 주자께서 이를 해석하여 말씀하시기를, “사

람에게 충과 신이 없으면 하는 일이 모두 진실함이 없어서 악(惡)을 저지르기는 쉽고 선(善)을

실천하기는 어렵다. 그러므로 반드시 이를 중심으로 삼아야 하는 것이다.”고 하셨으니, 반드

시 충과 신을 중심으로 삼고 용감하게 공부에 착수한 뒤에야 성취하는 바가 있을 것이다. 면

재(勉齋) 황간(黃榦)이 이른바 “마음을 진실하게 하고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 공부하라.”는 두

마디 말씀이 그 뜻을 다하였다고 할 것이다.

 

 

 

 

 

常須夙興夜寐하여 衣冠必正하고 容色必肅하여 拱手危坐하고 行步安詳하며 言

語愼重하여 一動一靜을 不可輕忽苟且放過니라

상수숙흥야매하여 의관필정하고 용색필숙하여 공수위좌하고 행보안상하며 언

어신중하여 일동일정을 불가경홀구차방과니라.

모름지기 항상 일찍 일어나고 밤늦게 자서 의관을 반드시 바르게 하고, 얼굴빛을 반드시 엄숙

하게 하여 두 손을 모으고 무릎 꿇고 앉으며, 걸음걸이를 편안하고 조심스럽게 하며, 언어를

신중히 하여 일동일정을 가볍고 소홀히 하여 구차스럽게 지나쳐 버려서는 안 된다.

 

 

 

 

 

 收斂身心은 莫切於九容이요 進學益智는 莫切於九思하니 所謂九容者는 足容重,

(不輕擧也 若趨于尊長之前 則不可拘此) 手容恭,(手無慢弛 無事則當端拱 不妄

動) 目容端,(定其眼睫 視瞻當正 不可流眄邪睇) 口容止,(非言語飮食之時 則口

常不動) 聲容靜,(當整攝形氣 不可出噦咳等雜聲) 頭容直,(當正頭直身 不可傾回

偏倚) 氣容肅,(當調和鼻息 不可使有聲氣) 立容德,(中立不倚 儼然有德之氣像)

色容莊이요(顔色整齊 無怠慢之氣)

수렴신심은 막절어구용이요 진학익지는 막절어구사하니 소위구용자는 족용중,

(불경거야 약추우존장지전 즉불가구차) 수용공, (수무만이 무사즉당단공 불망

동) 목용단,(정기안첩 시첨당정 불가류면사제) 구용지,(비언어음식지시 즉구

상불동) 성용정,(당정섭형기 불가출홰해등잡성) 두용직,(당정두직신 불가경회

편의) 기용숙,(당조화비식 불가사유성기) 입용덕,(중립불의 엄연유덕지기상)

색용장이요(안색정재 무태만지기)

몸과 마음을 거두어들이는 방법은 구용보다 더 친절한 것이 없고, 배움을 진보시키고 지혜를

더하는 방법은 구사보다 더 친절한 것이 없다. 이른바 구용이라는 것은, 발의 움직임을 무겁

게 하고,(가볍게 거동하지 않음이다. 어른 앞에서 종종걸음으로 걸을 적에는 이 조목에 구애

받지 않아도 된다.) 손 모양을 공손히 하고,(손을 함부로 늘어뜨리지 않음이다. 일이 없을 때

는 마땅히 단정히 손을 모으고 함부로 움직이지 않는다.) 눈 모양을 단정히 하고,(눈동자를 안

정시켜 마땅히 시선을 바르게 할 것이요, 흘려보거나 훔쳐보아서는 안 된다.) 입은 꼭 다물고,

(말을 하거나 음식을 먹을 때가 아니면 입은 항상 움직이지 않는다.) 목소리는 조용히 하고,

(마땅히 형기를 가다듬어 구역질을 하거나 트림을 하는 따위의 잡소리를 내서는 안 된다.) 머

리는 곧게 세우고,(마땅히 머리를 바르게 세우고 몸을 곧게 해야 하며 기울여 돌리거나 한쪽

으로 치우치게 해서는 안 된다.) 숨쉬기는 조용하게 하고,(호흡을 고르게 하여 소리가 나게 해

서는 안 된다.) 서 있는 모양은 덕스럽게 하고,(똑바로 서고 치우치지 않아서 엄숙하게 덕스러

운 기상을 지녀야 한다.) 얼굴 모양을 장엄하게 하는 것이요.(얼굴빛을 단정히 하여 태만한 기

색이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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