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광철 팀장 합격수기

 

 

연광철 팀장 합격수기(한성 수/금요반 스터디 법규 팀장)

 

 

 

 

1. 들어가며

 

 

먼저 이 글을 보시는 모든 분들의 합격을 기원합니다. 저는 13회 감정평가사 자격시험에 합격한 연광철이라고 합니다. 개인적으로 이런 글을 쓸 수 있게 되어 무척 기쁘게 생각합니다.

 

 

 

 

저도 공부를 하면서 월간 감정평사가를 꾸준히 보아 왔고, 새로운 월호가 나오면 가장 먼저 본 것이 합격수기였습니다. 이미 합격한 사람들의 어려운 수험과정을 보면서 나만 힘들게 공부하는 것이 아니구나 하면서 위안을 삼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이 글을 보시는 분들도 힘든 수험생활 속에서 잠시 휴식을 얻고 나도 합격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되셨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그러면 저의 수험생활과 공부한 방법들에 대해서 간략히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2. 수험생활

 

 

 

 

 

 

1) 2000년 1차 시험

 

 

 

 

조교생활을 2000년 2월 말일자로 그만두고, 3월에 개강하는 1차시험 4과목 종합반을 접수하였습니다. 민법과 경제학은 공부를 해보았던 과목이었고, 부동산관계법규는 단순 암기과목이라 별로 걱정을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회계학이 걱정이 되었으나, 4개월의 시간이면 충분하리라 예상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계산기를 사용하여 공부하는 과목은 생전 처음이라 생소하였고, 좀처럼 적응이 되지 않아 1차시험을 치를 때까지 회계학 때문에 발목을 잡혔습니다.

 

 

 

 

다행스럽게도 그 해의 회계학이 무척 쉽게 출제되었고, 저도 회계학 52.5점으로 1차 시험을 통과할 수 있었습니다. 대학입학 시험을 합격한 이후로는 운전면허를 취득한 것을 제외하고 처음으로 합격소식을 접한 나는 너무나 기뻤습니다.

 

 

 

 

감정평가사 시험은 역시 별 것 아니라는 자만심에 빠져서 해가 바뀔 때까지 2차 공부를 소홀히 하였습니다. 다만 11회 시험에 합격한 과 후배의 충고를 받아들여 2000년 10월부터 12월까지 1기 스터디를 참여하였습니다. 기본강의를 하나도 듣지 않고 책으로만 공부를 하면서 스터디를 하였기 때문에 스터디 내내 저의 점수는 D를 벗어나지 못하였습니다.

 

 

 

 

3) 2001년 2차 시험

 

 

 

 

2001년도에 저는 1기 스터디를 참여하지 않고 1월부터 3월까지 혼자서 서브를 작성하였습니다. 작년에 저와 같이 1차 시험에 합격한 과 후배들과 오전에 실무스터디만 하였습니다. 그리고 4월부터 시작된 2기 스터디는 참여하였습니다.

 

 

 

 

그러나 답안을 작성하는 연습이 부족한 저는 실무, 이론, 법규 모두 다 100점을 채우지 못하였고, 스터디가 진행되면서 조금씩 나아지기는 하였지만 좋은 점수를 맞지는 못하였습니다.

 

 

 

 

3기 스터디에서는 어느 정도 답안은 채울 수 있었으나, 아직도 부족한 점이 많이 있음을 저는 느끼고 있었고, 시간이 조금만 더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였습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가고 2차 시험을 치르게되었습니다. 실무시험에서 타당성분석을 요구하는 1번문제를 순수익을 구하지 못해서 반도 못풀고 포기하고 나머지 문제만 풀었습니다.

 

 

 

 

점심시간에는 아내가 챙겨준 도시락이 차마 입으로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의 반응도 나와 비슷하다는 것으로 애써 위안을 삼으며 이론과 법규시험을 준비하였습니다.

 

 

 

 

이론 시험과 법규 시험은 그런대로 무난하였으나, 각각 1문제씩 모르는 문제가 출제되었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접근해야할지를 몰라 간신히 지면을 채우는데 만족해야 했습니다.

 

 

 

 

발표가 임박한 시점에서 아내는 만삭의 몸으로 회사를 다니고 있었습니다. 꼭 합격해야지 떨어지면 어떻게 하나하고 걱정을 많이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불합격이었고 아내와 나는 오랜 시간 함께 눈물을 흘렸습니다.

 

 

 

 

점수를 보니 실무는 간신히 과락을 면하였으나, 이론과 법규에서 50점대 초반을 얻어 평균 1점 차이로 낙방을 하였습니다.

 

 

 

 

4) 2002년 1차 및 2차 시험

 

 

 

 

이번에 마지막으로 한번만 더 시험을 치르겠다고, 어머니와 아내를 설득하여 다시 공부를 시작하였습니다. 영어를 매일 한두시간씩 공부하고, 1월 2월에 걸쳐 부동산관계법규만 학원수강을 하였습니다.

 

 

민법은 교과서만 보았고, 경제학은 정병렬 문제집과 테잎으로 정리하였습니다. 회계학은 김상운 회계사의 동영상강의를 수강하였습니다. 가능한 움직이는 시간을 줄이고 공부시간을 확보하고자 하였습니다.

 

 

 

 

2차과목은 실무만 2시간 정도 푸는 것으로 연습을 하였습니다. 저는 작년에 2차 시험을 준비하면서 실무, 이론, 법규 모두 서브노트를 작성하였기 때문에 1차 시험이 끝난 후에도 충분히 정리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1차 시험에만 매진하였습니다. 2차 학원스터디는 2기(4월, 5월)만 참여를 하였습니다.

 

 

 

 

대한민국 전역을 휩쓸었던 월드컵의 열기 속에서도 저는 한 경기도 보지 않고 공부만 하였습니다. 그 때는 TV를 볼 시간이 없었다기 보다는 집에서 애기 때문에 고생하는 어머니와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 때문에 TV를 시청하면서 웃고 즐길 마음에 여유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1차를 떨어지면 2차를 볼 수 없다는 생각 하에 실무를 제외하고는 꾸준히 1차 시험만을 준비하여 1차 시험을 치렀습니다. 역시 회계학이 관건이었으나, 52.5점, 평균 77.5점으로 합격하였습니다. 여유있게 합격하였다고 생각하니 마음 편히 1차 시험 직후 2차 시험에 전념할 수 있었습니다.

 

 

 

 

본격적으로 2차 시험을 준비하면서 7명 정도가 모여 개별스터디를 하였습니다. 오전에 8시 30분쯤 모여 실무를 200점을 풀고 나머지 시간은 각자 공부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다시 저녁 10시쯤 모여 이론과 법규를 번갈아 가면서 30점 내지 40점을 답안지에 써보는 연습을 하였습니다. 개별스터디로 하루를 시작하고 마무리 한 결과 절대시간이 많이 확보되었고, 50일 정도의 시간이었지만 참으로 열심히 공부하였습니다.

 

 

 

 

또한 개별 스터디에서 서로 문제를 내고 함께 풀어 보면서 그 동안 공부하면서 소홀히 하였던 부분들이 많이 밝혀지고 정리가 되었습니다. 개별스터디에서 여러 사람들과 이야기를 해 보면서 어렵고 구석진 곳에 있는 내용보다도 오히려 기본적인 내용을 소홀히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시험장에서 어차피 모르는 문제가 나올 수밖에 없으니 기본에 충실하게 공부하자고 했던 것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50여일의 기간도 지나고 2차 시험을 치렀습니다. 알던 모르던 침작하게 풀고자 노력하였습니다.

 

 

 

 

1교시 실무에서 다른 문제들은 평이하였으나, 담보평가와 경매평가는 배점이 크지 않고 자료는 많았는데, 다른 문제들을 다 풀고 해결할 수 있는 부분만 해결하였습니다.

 

 

 

 

이론시험은 역시 처음보는 문제가 나왔으나 최유효 이용원칙의 내용을 활용하여 답안을 작성할 수 있었습니다.

 

 

 

 

법규시험은 1번 문제가 사업인정과 부관이 출제되어 많이 당황하였고 상당히 힘들게 답안을 작성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시험을 끝내고 나오면서 아쉬움도 많았지만 후회없는 시험이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모르는 문제도 기본으로 돌아가 침착하게 대응하였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가볍게 느껴졌고, 결과는 합격이었습니다.

 

 

 

 

이로써 10년 동안의 기나긴 수험생활을 마감하게 되었고 10번째 타석에 들어선 이후에야 안타를 치게 되었습니다.

 

 

 

 

 

 

3. 공부방법

 

 

 

 

1) 1차 시험

 

 

 

 

영어는 거로워크샵의 어근해설집으로 단어를 정리하였고, 각종 고시에 기출된 문제만 풀었습니다. 어느 정도 수준에 이르면 고득점은 어려워도 과락은 충분히 면할 수 있는 과목인 것 같습니다. 민법은 그 속에서 다루어지는 내용이 우리의 실생활과 밀접히 관련이 있으므로 실생활과 민법을 연결시켜 생각해보는 연습을 꾸준히 한다면 도움이 많이 될 것 같습니다. 부동산관계법규는 많은 내용을 꼼꼼히 챙겨야 하는 과목이라고 생각하며, 경제학과 회계학은 오답노트와 같이 자주 틀리는 부분을 정리하면 도움이 많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2) 2차 시험

 

 

 

 

① 실무

 

 

초보자들이 접근하기 매우 어려운 과목입니다. 저는 특히 더 실무에 적응하는 속도가 남들보다 느렸습니다. 그래서 많은 시간을 투자하여 실무서브노트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문제를 풀다가 틀리는 부분은 그 서브노트에 정리를 하여 활용하였습니다. 그리고 많은 문제를 풀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며, 저도 매일 200점씩 풀었고, 시험에 임박하여서는 시중에 나와있는 문제는 거의 다 풀어보았습니다.

 

 

 

 

 

 

② 이론

 

 

각론 부분은 실무에서 많은 부분이 중복되므로 시험의 출제위원들도 말씀하시지만 총론부분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총론의 대부분의 논의들은 부동산 가격으로 귀결되며, 그 가격은 최유효 이용의 표현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총론 부분의 논리는 일본부동산감정평가기준해설서(방경식 역)와 일본 기출문제집(김인식 편저)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시중의 대부분의 서브들은 이 책들의 부분 부분을 옮겨 놓은 것들인데, 차라리 원전을 직접 보는 것이 좋을 듯 싶습니다.

 

 

 

 

 

③ 법규

 

 

법규의 시험범위는 행정법의 일부분이므로 행정법을 깊이 있게 공부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저는 행정법을 서브로 작성하였으며, 끝까지 행정법 서브를 보면서 감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였습니다.

 

 

 

 

류지태, 노병철 공저의 감정평가 및 보상법규를 주로 보고, 주종천 평가사의 사례문제집과 팀장들의 서브로 정리하였습니다. 그리고 월간 감정평가사를 꾸준히 보면서 특히 교수님이 출제하고 강평해주는 글에서도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4. 나오며

 

 

지금까지 두서없이 많은 말들을 하였습니다만, 제가 끝으로 여러분들께 당부드리고 싶은 말씀은 자신감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합격을 하기 위해서는 열심히 공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이 자신의 합격을 믿어 의심치 않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공부를 하면서도 시험장에서 시험을 치르면서도 자신의 능력을 십분 발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앞서 소개한 것처럼 끈기와 집중력 등의 부족으로 인하여 10여년의 기나긴 수험생활을 해야만 했습니다. 지금에 와서 돌아보면 아쉬운 순간들이 많이 있습니다. 좀더 노력했으면 상당한 기간이 단축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남습니다.

 

이 순간도 곧 지나갑니다

 

 

 

이 종 원

(제13회 감정평가사 자격시험 최종합격)

 

 

 

Ⅰ. 전반전

 

 

제가 “감정평가사”를 처음 접한 것은 1999년 가을이었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지리나 지도, 지형 등 땅에 대한 관심이 많았고, 이와 관련하여 역사에 대한 관심도 높아져 이를 전공으로 선택했습니다. 그러나 학창시절이 끝날 때까지 도대체 저의 관심분야를 사회에서도 지속시킬 만한 영역을 찾지 못했고, 더욱이 IMF시절을 맞아 단순한 생존의 길을 모색하는 것조차 만만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복잡다난한 사회생활을 거친 후 학문의 길을 가거나 아니면 다른 계획실행을 위한 시간을 벌 요량으로 사학과 대학원에 진학하던 중 “감정평가사”시험 권유를 받았으나, 당시는 시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으로 마음속에 남겨둘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조만간 집안형편도 어려워지고 제 자신으로도 더 이상 세상에의 두려움으로 허송세월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강렬해져, “감정평가사”시험을 보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졸업이후 딱히 진로가 없이 방황하던 저였기에, 못미더워하는 주변 사람들의 반대가 너무 컸지만, 도저히 다른 것을 해볼 마음의 힘이 전혀 없었기에, 그저 저에게 쏟아지는 비난과 질책을 모두 들으며 제발 한번만 더 기회를 달라는 말밖엔 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그해 1차시험에 합격하는 것을 조건으로 일단 공부를 시작할 수 있었고, 2000년 3월 대학원을 휴학하였습니다.

 

 

 

 

 

큰 마음먹고 모 학원 상담실을 찾자, 출신학과도 본 시험과 무관하고 시기도 4개월밖에 남지 않았다하여 다음해를 준비할 것을 권유하더군요. 그러나 저로서는 다음해고 뭐고 그 해에 떨어지면 끝장이라는 생각밖에는 없었습니다. 3~4월간 오전반 수업을 들은 후 저녁때까지 학원의 빈강의실을 전전하며 공부하다 다시 저녁반 수업을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초발심으로 별고민없이 무조건 밀어붙이다가, 어느샌가 다시 타성에 젖어 합격하겠다는 일념을 놓고 합격여부를 고민고민하게 되었습니다. 벌써 시기는 5월인데 못풀어본 문제도 많이 밀렸고 마음은 점점 불안해졌습니다. 더 돌아갈 곳이 없다고 생각하니 더욱 심란해져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습니다. 다행히 주변 사람들이 마음의 고통을 덜어주어 다시 힘을 내어 마무리를 한 끝에 생각보다는 우수한 성적으로 1차시험을 합격할 수 있었습니다.

 

 

 

 

 

 

Ⅱ. 후반전

 

 

5월 중순까지도 불안한 상태에 있다가 한번 마음의 힘을 내어 밀어붙인 끝에 좋은 결과를 얻자, 아예 2차까지도 한번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식한 사람이 용감한 경우였죠. 학원에서 2차 기본강의를 듣고 교재는 적당히 골라서 무조건 문제연습만 해보았습니다. 사실 그때가 가장 공부를 열심히 한 듯 싶습니다. 정말 많이 쓰고 연습했지만 45일만에 2차 합격은 좀 무리였죠. 그래도 마지막까지 죽어라고 쓰고 서울대를 나왔습니다.

 

 

 

 

사실은 2000년 가을부터 2차공부를 본격적으로 해야 그나마 좀 안정적으로 합격을 바라볼 수 있었을 텐데… 저는 다음해 1월부터 시작되는 학원스터디를 들으면 된다는 것 말고는 아무런 정보도 없었습니다. 금전적인 문제도 심각한 상태였기 때문에 작은 회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실무문제나 좀 베껴보는 정도로 그해를 보냈습니다. 따라서 2001년 스터디에 들어서자마자 쫒아가기에 바빠 아무 정신도 없을 정도였고, 답안쓰는 요령조차 스터디시작 1개월여가 지나서야 겨우 터득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도 곧 고수가 되어 합격권에 들거라는 생각은 버리지 않았습니다. 이론․법규야 숙제 열심히 하고 스터디에서 문제풀어보는 동안 약간의 요령을 터득하게 되었지만, 실무는 정말 쉽지 않았습니다. 기본문제집을 풀면서 다른 실무팀장들의 문제도 얻어 풀었는데, 덕분에 보는 문제의 양은 엄청났지만 정리되지 않은 채로 머리는 점점더 복잡해졌습니다. 1주일 동안 죽어라고 풀고 베끼고 해도 막상 스터디에 오면 왜그리 문제파악이 안되는지… 스터디에서 실무시간만 끝나면 답답한 마음에 끊었던 담배도 다시 물고, 집에 오는 버스에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린 적도 많았습니다.

 

 

 

뭐가 문제인지도 모르겠고, 어떻게 해야 점수를 올릴 수 있을지 감도 잡지 못했습니다. 누구하나 속시원히 알려주는 사람도 없고, 모든 것을 저혼자 하나하나 알아가야 했습니다. 그나마 4월부터 아는 형과 개별스터디를 하게되면서 실전감각을 조금씩 채득해나가기 시작했습니다.

 

 

 

 

3기 스터디에 접어들자 이론과 법규는 점수가 나오든 안나오든 대충 쓰게 되었는데, 실무만은 매번 뒷북을 치고 있었습니다. 즉 스터디시간에는 잘 못풀고 집에 돌아와서 몇 번이고 연습해보는 일상을 반복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 늘 쫒아다닌다는 불안감에 젖어 있었습니다. 그나마 6월 중순이 되자 실무에서도 좋은 성적이 나기 시작했는데, 당시 집중호우로 집이 물에 잠겨 며칠간 정신없던 차에 다시 또 쫒기는 기분으로 돌아왔습니다. 3기 스터디가 끝나고 최종 sub를 작성하면서 정리하던 중에 사정이 생겨 시험 1주일 전에 이사를 해야했고, 안정감과 불안감이 되풀이되던 중 시험일은 다가왔습니다.

 

 

 

 

실무문제지를 받아들고 전반적인 검토를 하는데 긴장된 탓인지 문제가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하는 수 없이 서술형부터 쓰고 다시 1번 40점짜리를 검토하는데, 시간이 지나도 문제가 잘 들어오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당황한 마음에 일단 풀기 시작했지만, 도무지 두 눈이 다 막힌 것 같이 아무리 글을 읽어도 내용 파악이 되지 않았고, 급기야 공시지가 자료조차 못보던 것을 나중에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순간 시험을 포기해야겠다는 생각밖엔 없었고, 조금지나자 답안지를 바꾸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단 새 답안지를 받아든 때에는 이미 60분이 경과하고 있었고, 알 수 없는 내면의 소리는 포기하지 말라고 저를 이끌었습니다. 다시 종전 잘못 쓴 답안지를 찬찬히 수정하여 20여점이나 채우지 못한 채 실무시간을 마무리 했고, 점심을 먹으러 나오는 제 기분은 지옥을 몇 번이고 오락가락 한 듯 했습니다. 실무시간에 너무나 많은 에너지를 소모한 탓인지 이론․법규시간에는 아는 문제도 잘 대처하지 못했으며 결국 한 두장의 빈장을 남긴채 12회 시험을 마무리해야 했습니다.

 

 

 

 

 

실무 1번이 유난히 어려웠다는 분석을 듣고 합격에의 희망을 저버리지 않은 채 12월까지 기다렸습니다. 다시 수험서를 잡는 대신 평소 관심분야였던 컴퓨터 프로그래밍과 웹편집 및 웹호스팅 등을 익히면서 세상에 대해 공부할 기회도 가졌습니다. 발표날 확인해 보니 커트라인에서 5점정도가 부족하더군요. 제 실력이 부족했고, 눈도 막혔고, 마음도 약했고 등등 불합격한 원인을 충분히 납득했지만 그날 밤은 잠이 오질 않았습니다. 다음날 마음을 굳게 먹고 같은 스터디팀원으로서 합격한 유경․영배에게 전화를 걸어 축하인사와 함께 내 답안이 그들에 비해 부족했던 점이 무엇이었는지를 분석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이번에는 8과목이었습니다.

 

 

 

 

 

 

 

Ⅲ. 연장전

 

 

뜻밖에도 실무에서 정리가 되어 답안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무작스럽게 머리에 집어 쳐넣은 문제들이 4개월여 머리를 쉬는 동안 나름대로 정리되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다만 아직도 문제에 따라 눈이 막혀 자료를 제대로 보지 못하는 실수는 거듭되었습니다. 몇 달간 고민을 하다가 과 후배와의 개별스터디를 통해 차츰 극복해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이론․법규도 초년도보다는 많이 내용이 익어있었고, 이에 2차는 오히려 수월하게 정리되었습니다.

 

 

 

 

다만 1차가 문제였습니다. 영어문제가 어떻게 나올지 몰라 일단은 긴장한 채 고급난이도를 위주로 대비를 했습니다. 다른 과목들은 생소하지 않았으나, 그래도 학원 강의를 들으며 정리하였습니다. 결국 1차과목은 2달여만에 익숙함을 찾았지만, 1차강의에 2차 스터디 및 실무 개별스터디까지 하느라 너무도 힘이 들었습니다. 3월쯤 되자 ‘떨어지면 떨어졌지 더 이상 강의는 못듣겠다’싶어서 듣다만 강의는 테이프를 사서 정리하였고, 1차는 최종점검강의를 수강하면서 마무리 하였습니다. 회계학이 예상외로 생소하게 출제되어 긴장되었지만, 나머지 과목은 별 어려움없이 처리하였고, 1차시험을 치른 이틀 후부터 2차에만 전념하였습니다. 1차준비를 위해 잠시 접어두는 동안, 실무는 다시금 머릿속에서 정리되었고, 나머지 과목들도 4기 스터디과정 중에 비교적 잘 마무리 한 끝에 시험일이 다가왔습니다.

 

 

 

 

역시 실무시간은 굉장히 긴장되었습니다. 다행히 문제가 잘 파악되었지만 혹시나 실수하지 않았을까하는 불안감도 많았습니다. 점심식사를 하면서 다시는 실무 때문에 마음졸이는 일은 없게 되기를 빌 정도였습니다. 이론․법규시간은 역시 몇몇 문제가 당황스럽기는 했지만 문제에 밀리지 않고 적당히 쓸 수 있었습니다. 시험장을 나오면서 생각보다 문제의 의도대로 답안을 구성한 느낌이 들었고, 결국 발표일에 좋은 소식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Ⅳ. 공부방법 및 참고교재

1. 동차로 준비하시는 분은 영어와 실무를 우선적으로 정리하셔야 합니다. 영어는 각종 시험에서 시험의 난이도를 조정하는 중요 과목이므로 어렵게 준비하시는 것이 합격에 도움이 되리라고 봅니다. 제가 주로 본 교재는 셀파모의고사 및 셀파토플입니다.

 

 

 

 

2. 기타 1차 교재로는

경제학 : 정병렬 문제집, 최근 문제집

회계학 : 천승호 문제집

민법 : 김준호 문제집

부동산관계법규 : 공민달 기본서 및 문제집 등입니다.

 

 

 

 

3. 2차 중 실무과목은 결과적으로 시중에 나온 거의 모든 문제를 풀어본 셈이 되었으나, 마지막 년도에는 신체계실무의 유형별문제 부분만 5개월 이상 집중적으로 반복하였습니다. 기타 일반적으로 추천되는 핵심, Plus, 4인공저, 정해감정평가실무 및 기출문제집, 안정근 실무 등이 기본적인 교재라고 생각됩니다. 이론은 안정근 이론, 법규는 김동희 행정법을 주로 보았으나 마지막 년도에는 Sub를 위주로 정리하였습니다.

 

 

 

 

4. 2차과목의 경우 가능하면 Sub를 작성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됩니다. 특히 이론의 경우 ‘막판에 이론 때문에 발목잡힌다’는 말이 있을 정도여서, 스터디진도에 맞추어 미리미리 내용을 소화하지 않으면 시험 직전에 정리할 분량이 너무나 많아져 낭패보는 경우가 생길 수 있습니다.

 

 

 

 

 

 

Ⅴ. 감사의 글

 

함께 공부했던 장칠성․남유정․이응진씨의 합격을 축하드립니다. 제가 확실성 없는 일에 매진하고 있어도 도와주고 격려해 주신 부모님․동생 및 일가분들과, 주변의 친구들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비록 당분간 고단하게 될 터이지만 언젠가 기쁨의 과실을 안게 될 수험생 여러분들께 격려를 드립니다. 이 순간도 곧 지나갑니다. 여러분들이 원하는 일은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믿습니다. 수험생활은 우리가 세상을 배우는 또하나의 장이며, 이를 통해 우리의 마음과 정신이 더욱 강인하고 아름답게 될 것임을 믿습니다. 환절기에 건강 조심하시고, 늘 새롭고 즐거운 하루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Ⅰ. 글머리에

 

 

2002년 12월 13일 오후. 전년도에는 2일전 정도에 합격소식을 알 수 있다는 말을 듣고, 혹시 또 떨어진 것 아닌가하는 불안감에 싸여 있을 때 스터디 팀원이었던 정민씨에게 떨리는 전화 목소리로 ‘합격’이라는 목소리를 들었을 때, 순간 멍해지는 느낌은 지금까지 아니 앞으로도 느낄 수 없을 것 같다.

 

 

 

감정평가사 시험을 처음 도전하면서 부동산 고시의 합격수기를 읽으면서 나도 올해는 합격수기의 주인공이 되어야지 하고 꿈을 가져왔었다.

 

 

그러나 그 꿈은 한해 두해 늦춰지면서 남들이 써놓은 합격수기 부분을 기피하기 시작했다. 왠지 모를 열등감, 아니 질투심이 더 컸을까?

 

 

그후 2002년 1월부터 올해가 정말 마지막이라는 다짐을 하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이라는 각오로 그 동안 4년여의 나의 공부방법론의 잘못을 인식하기 위해 부동산고시의 합격수기를 읽어보았다. 이때 느낀 교훈은 합격은 공부기간과 관계없고, 배우는 사람은 자존심을 세울 때와 버릴 때를 알자는 것이다.

 

 

저의 두서 없이 써 내려갈 글을 읽고 단 한사람이라도 합격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으면 성공이라는 마음으로 저의 수험생활, 공부방법, 수험생의 자세 등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Ⅱ.격동의 4년

 

 

1. 1999년 1월부터 7월

 

 

영어가 시험과목에 없다는 매력(?)과 시험과목도 1차는 4과목 2차는 3과목이라는 표면적으로 적은 과목 수에 끌려 감정평가사 시험에 도전하게 되었다. 우선 1차과목은 전공이 경제학이었고, 공인중개사 공부를 한 경험이 있어 큰 부담이 없었다. 따라서 봄까지 2차과목을 공부하고 이후 1차를 공부하면 1년 또는 2년안에 충분히 합격할 수 있으리라는 막연한 계획을 가졌다.

 

 

따라서 2차의 ‘가나다라’도 모르는 상태에서 S학원의 그룹스터디에 들어가게 되었다. 이때 나의 어설픈 계획은 깨지기 시작하였다. 20명 내외의 수험생이 교실에서 그룹과외처럼 기초부터 가르쳐 주리라 생각했는데 첫 시간부터 시험을 보고, 토론을 하는 것이었다. 도저히 적응을 할 수 없었고 단지 팀원들간의 회식자리에 참여하는 정도로 거의 포기상태였고, 결국 1개월만에 도망치듯이 그만두게 되었다. 이후 3월까지 어영부영 지내다가 우선 1차시험에 합격하자라는 각오를 하고 7월까지 나름대로 열심히 하여 합격하였다.

 

 

 

 

2. 1999년 8월부터 2000년

 

짧은 기간 내에 1차합격이라는 기쁨으로 8월부터 12월까지는 인생의 전성기(?)가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친구들과 어울렸다. 1차는 4과목이지만 2차는 3과목밖에 안된다는 단순한 계산에서 였다.(전년도의 실수를 잊은 채) 2000년 1월에 다시 S학원 스터디그룹에 지원하였다. 역시 전년과 마찬가지의 상황이 벌어지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물러날 수 없다고 생각하여 스터디 3기까지 버텼다.

 

 

물론 학원 모의시험에서 상위권 등수 안에 들어본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그러나 실제 시험을 치루고 나서는 왠지 느낌이 좋았다. 그어렵다는 실무를 시간 내에 다 풀고, 법규도 어느 정도 논점에서 벗어나지 않게 썼다. 단, 이론에서 자신 있게 쓴 문제가 하나도 없어서 불안하기는 하였으나 100점분량은 채웠으니 과락을 넘기면 합격이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지게 되었다.

 

 

 

2000년 12월 합격자명단을 확인한 결과 나의 이름은 없었다. 실무․법규는 60점대를 육박하는 성적을 얻었으나 이론에서 우려했던 과락이 나왔다. 너무 허무했고 부모님의 얼굴을 보니 눈물이 쏟아졌다. 아마 태어나서 가장 많은 양을 흘린 것 같다.

 

 

 

 

3. 2001년 동차도전

 

 

불합격의 충격으로 잠시 방황하다가 부모님을 설득하여 1년만 기회를 더 부탁하여 동차 합격을 계획하였다. 1차는 항상 자신이 있다고 생각하여 3월까지 2차 위주로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주위 친구들이 강심장이냐고 1차공부를 하라고 협박(?)하여 4월 중순부터 1차공부를 시작하였다. 더 이상 학교를 휴학할 여건이 안돼서 학교수업,1․2차 수험공부를 병행하다보니 학원수강은 불가능하였다.

 

 

래서 부동산고시 모의고사문제, 학원모의고사문제를 구해서 혼자 연습하였다. 7월 1차시험을 치르고 그날 오후 서울법학원에서 답안을 구해 인근 놀이터에서 채점을 하여보았다. 다른 과목은 70점이상이 나왔는데 관건은 회계학이다. 1번부터 20번까지 현재상황 6문제만 맞았다. 떨리기 시작하여 21번부터는 한 문제 맞출 때마다 기도하며 정답을 확인하였다. 다행이 후반에 선전하여 42.5라는 각본 없는 드라마가 연출되었다.

 

 

 

이제 2차시험까지 시간이 없었다. 작년에 작성한 엉성한 서브위주로 법규․이론을 공부하였고, 실무는 같이 공부하는 친구의 스터디 자료를 복사하여 풀었다. 2차시험당일날 1교시 실무시간에 언뜻 보니 내가 자신있는 DCF문제였다. 얼굴에 미소가 감돌았으나 막상 풀어보니 60분이 경과하여도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온몸이 땀으로 젖었다. 1교시를 마치고 점심을 먹으려하니 넘어가질 않았다. 집으로 가고싶었으나 친구들의 만류로 3교시 까지 버텼으나 1교시의 충격으로 제대로 집중을 할 수 없었다. 결과는 실무과락으로 다시 한번 고배를 마셨다.

 

 

 

 

 

4. 2002년의 Happy ending

 

 

정말 더 이상 감정평가사공부를 하기 싫어졌다. 그래서 취직자리를 알아보러 다녔으나 이때 형수님이 이번엔 자신이 뒷바라지 할 때니 1년만 더 해보라고 권유하였다. 그래서 나는 한번더 하기로 결심하고 기존의 공부장소를 버리고 새롭게 봉천동에 짐을 풀었다. 2002년은 월드컵분위기로 1개월 정도 슬럼프에 빠지게 되었다. 아마 대부분의 수험생들이 그런 것 같다. 따라서 기본위주로 마무리 정리를 하였고, 2차시험장에 들어섰다.

 

 

 

 

과욕을 부리지 말자는 다짐으로 시험에 임하였다. 1교시 실무시간에는 완벽하지는 못하나 100점을 다풀고서도 5분 여의 시간이 남았다. 일단과락은 넘겼구나 하는 스스로의 만족을 하고 2․3교시에 임했다. 차분한 마음을 가지고 임하니 2․3교시도 큰 과오 없이 5분 여의 시간이 남은 상태에서 시험지를 다 채울 수 있었다. 무나하게 시험을 본것같아 시험장을 나오는 발걸음이 어느 해보다 가벼웠고, 결과는 예상보다 좋은 점수로 합격의 영광을 안게되었다.

 

 

 

 

 

Ⅲ.과목별 공부방법

 

 

1. 개설

지금은 1차시험에 영어가 포함되지만 저는 포함되지 않을 때에만 시험을 보아 영어에 대해서는 말씀드릴 수 없는 점 양해하시고, 특히 2차시험을 중심으로 말씀드립니다.

 

 

 

2. 1차시험

1차시험은 5지선다형객관식 문제로서 과락 없이 평균 60점이상이면 합격입니다. 따라서 효율적인 공부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전략과목을 잡으시고 취약 과목은 면과락을 목표로 하시는 게 빠른길 같습니다. 모든 과목을 잘하는 것이 좋지만 현실적으로 힘들고 평균100점이나 60점이나 차별없는 합격이기 때문입니다.

 

 

 

(1) 민법

과거 민법이 고득점을 위한 전략과목 중 하나였으나 최근 문제난이도가 높아지고, 특히 판례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추세입니다. 저는 노종천박사 교재와 학원모의고사문제 부동산고시문제등 문제중심으로 정리를 하였습니다.

 

 

 

(2) 경제학

전공인 터라 큰 어려움이 없었고, 저는 주로 정병렬씨의 경제학연습을 반복하여 공부하였습니다.

 

 

 

(3) 부동산관계법규

공부량이 많은 과목인 것 같습니다. 처음 공부하시는 분은 조병욱교수 강의나 교재가, 어느 정도 공부가 되신 분은 공민달 감정평가사님의 교재 및 강의가 좋다는 견해가 많습니다.

 

 

 

(4) 회계학

항상 면과락 목표의 과목이었고, 그래서 김영호회계사님의 교재만 가지고 이해 안되면 통째로 외우는 식으로 공부하였습니다. 천승호회계사님 강의도 좋다는 견해가 많습니다.

 

 

 

 

3. 2차시험

2차시험은 과목 수만 가지고 판단한다면 큰 오산일것같습니다. 많이 개선되었지만 바이블로 삼을 수 있는 확실한 교재가 없는 것 같고 출제위원이 누구냐에 따라 공부방향이 바뀌는 경향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하 스터디 기간별 공부방법을 중심으로 말씀드립니다.

 

 

 

(1) 실무

 

 

2차시험의 가장 큰 관문이나 다름없습니다. 실무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전체 공부시간을 100이라 할 때 실무의 비중이 50 내지 70% 차지한다고 봅니다.

 

 

 

1) 스터디 1기

실무공부방법 중 많이 푸는 것과 한 문제라도 정확히 푸는 방법이 있습니다. 이 기간에는 기본원리. 이론을 중심으로 한 문제라도 정확히 푸는 연습을 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동료수험생과 토론을 통해 많은 의문점을 제기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2) 스터디 2기

이 기간에는 그 동안 쌓아온 기본실력을 바탕으로 다양한 유형의 문제를 접해보고, 답안을 돋보이게 하는 테크닉 등을 연구해보며, 주어진 시간 안에 문제를 풀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3) 스터디 3기

어느 정도 정리할 시간이기에 다시 기본원리 중심으로 돌아가서 유형별 쟁점 등을 파악하여야 하고, 이때 기출문제 분석도 좋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또한 최근 실무이론의 비중이 높아지는 가운데 이에 대한 대비는 필요합니다.

 

 

【참고교재】플러스실무(최창섭, 김성중), 핵심실무(이정훈, 신병기), 부동산고시, 학원스터디자료

 

 

 

 

 

 

(2) 이론

책을 읽으면 알 것 같으나 막상 답안에 쓰려면 생각 안나고, 그 범위도 명확하지 않아 시험전날까지 자신의 위치를 알 수 없는 과목이 이론인 것 같습니다.

 

 

 

 

1) 스터디 1기

이 기간에는 교수님들의 책을 여러 회독하여 기본지식을 쌓는 것이 필요합니다. 처음부터 요약서나 서브위주의 공부는 실력향상에 한계를 나타내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답안의 세부적인 내용의 우수성을 떠나 주어진 시간 안에 배점을 채우는 연습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2) 스터디 2기

그 동안의 기본서를 통한 지식과 시간 내에 답안을 채울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답안의 내용을 좀더 세련되게 작성하는 연습을 할 필요가 있고 특히 서론이나 결론의 내용을 좀더 돋보이게 하는 연습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시중의 다양한 문제를 접하여 기본서 내용을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3) 스터디 3기

특히 이 시기에는 시사적인 무제가 많이 제기되므로 동료 수험생들과 협동해서 정리하실 필요가 있고, 기출문제 분석을 통해 방대한 분량을 좁히는 방법, 키워드를 중심으로 하는 목차서브를 작성하는 방법을 강구하여야 합니다.

 

 

 

 

【참고교재】안정근 평가이론, 현대부동산학, 이창석외 3인공저

부동산평가이론, 부동산학개론 은민수 평가사 서브,

김세중서브, 스터디팀장자료

 

 

 

 

(3) 법규

 

처음 접근하는데 어려움이 있지만 한번 정리하고 나면 오히려 큰 부담이 없는 과목으로 보입니다.

 

 

 

1) 스터디 1기

행정법공부를 통한 기본기를 다지시고 가장읽기 쉽다고 생각하는 기본서를 선택하여 반복하여 읽어 전체적인 큰 틀을 잡는게 중요합니다. 너무 세부적인 논점에만 빠져들면 숲을 보지못하는 실수를 범할 수 있습니다.

 

 

2) 스터디 2기

사례문제를 통해 구체적 논점을 파악하고 각 논점에 대한 다양한 교수님들의 견해를 찾아보고 이에 따른 각각의 결론을 도출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법규를 공부할때는 스스로 수험생일뿐 학자가 아니라는 겸손한자세가 중요합니다.

 

 

 

3) 스터디 3기

중요논점별 문제유형을 정리하여 공부하고, 중요판례를 답안에 실제 옮길 수 있는 분량으로 정리하셔야합니다. 그리고 시험이 다가올수록 법전을 자주 읽으시길 바랍니다.

 

【참고교재】- 류지태감평행정법, 김동희행정법, 이병철행정법

 

- 류해웅 신수용보상법론, 박평준 토지수용보상법론

 

- 스터지자료, 부동산고시의 교수님 강평 및 논문

 

 

 

 

 

 

Ⅳ.수험생활의 조언

 

 

1. 신앙생활

신앙생활은 외롭고 힘든 수험생활에 큰 도움이 되는것같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크리스천이라 힘들 때마다 기도하면서 버텼습니다. 따라서 어떤 종교에 상관없이 선택하여 의지하는 것도 좋은 방법인 것 같습니다.

 

 

 

 

 

 

2. 자존심

 

 

수험생은 합격이 목표이기 때문에 배우고자 할 때에는 나이, 공부연수, 성별 등에 상관없이 자존심을 버리고 적극적으로 배우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또한 주위에서 평가사에 대한 무지 등으로 인한 상처를 기꺼이 감수하고 합격후 당당한 자신의 모습을 그리며 공부에 열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3. 여가시간 활용

때로는 1주일에 한번정도 쉬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때는 가능한 동료수험생과 등산, 영화감상 등을 통해 스트레스를 푸실 필요가 있습니다. 사회친구들과의 만남은 오히려 더 큰 스트레스가 쌓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Ⅴ.맺으며

 

 

귀한 공부시간을 쪼개어 저의 두서 없는 합격수기를 읽어주신 수험생 분들에게 감사드리고 조금이나마 수험생활에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끝으로 저의 합격과정에서 너무나 감사드릴 분들이 많습니다. 우선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기도로 후원해주신 한빛교회 이억희 목사님과 성도 님들, 아낌없는 사랑으로 키워주신 부모님, 당근과 채찍으로 지원해준 형과 형수님, 끝까지 지도해주신 이주석, 김원태, 박시우, 권혁진 팀장님, 나의 영원한 친구 병옥, 병광, 춘곤 등에게 감사드리고, 지금도 합격을 위해 밤낮을 어두운 도서관에서 책을 보시는 수험생여러분들의 합격을 진심으로 기도합니다.

 

최선의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




Ⅰ. 글을 시작하며

“합격 축하한다. 그 동안 고생 많이 했다.”

 

친구의 감정평가사 시험 합격을 축하해 주기 위해 제가 했던 말입니다. 이젠 그 친구가 제게 똑같은 말을 합니다. 합격을 축하한다고요.

 

그렇습니다. 감정평가사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낯설고 그저 친구의 꾸준한 노력에 대한 결실을 축하하려 했었는데, 평생 그럴 것만 같았는데 이젠 제가 그 낯선 자리에 서게 되었고, 일생동안 같은 분야에서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아직도 합격이란 두 글자에 실감이 나지 않는데 이렇게 합격수기를 쓰려하니 제가 자격이 있는 건지 걱정되고, 부담스럽고 책임감을 느끼지만 저도 수험생활 중 매달 빠지지 않고 읽었고 지칠 때마다 의욕을 얻고, 격려가 되었기에 제 글이 다른 분들께도 그럴 수 있기를 바라며 수험생활에 대해 조심스럽게 몇 자 적으려 합니다.

 

Ⅱ. 인생의 전환점

 

1. 첫번째 선택과 실패

 

97년 3월 군제대 후 고시공부 중 무엇인가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신중한 고려없이 과를 생각하여 행정고시 재경직을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열심히 공부하려 했으나 제 운명은 아니였던지 몇달후 몸에 이상이 와서 두달 정도 책을 볼 수 없었습니다. 꼭 합격해야겠다는 의욕도 사라지고, 체계적으로 학원수업을 들으며 공부했어야 했는데 생소한 책을 혼자서 독학하다 보니 조금씩 둔해지게 되었고 생활도 흐트러져서 처음의 결심은 사라지고 공부에만 전념하지 못하다 보니 결국 98년 1차 시험에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분명 수험생활에 충실하지 못했고, 혼자서 학원도 다니지 않고 공부하여 방법상에도 잘못되어 떨어진 것이 당연함에도 속상하고 허전함 때문에 무척이나 힘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한 번의 실패는 제게 조금만 더하면 되겠다는 자신감과 가능성을 주었습니다. 실패로 방황하다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2차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몇달이 지나서 공무원 임용제도에 대한 불안감과 때마침 집안사정으로 인해 그해 9월에 공부를 그만두고 취업을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제 첫번째 도전은 힘없이 최선의 노력도 해보지 못하고 접어야만 했습니다.

 

 

2. 인생의 전환점이 된 두번째 도전

 

군제대시 벌써 평가사 공부를 먼저 하고 있던 친구 동경이는 98년에 2차를 마치고 함께 학교생활을 하고 있었고 전 그때 행정고시를 그만두고 다음해에 4학년이 되므로 학과 공부와 영어에만 매달리고 있었습니다. 제 머리에는 오직 진로에 대한 고민이 가득하였습니다. 인생의 중요한 시점에서 신중하지 못했고 충실하지 못했기에 1년이라는 시간을 의미없이 보내야 했기 때문이고 다가올 제 미래가 너무 불안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친구들은 모두 행정고시, 공인회계사 공부에 열심인데 저는 그저 어학실에서 영어공부하고 학과수업 듣는 것이 고작이었는데 남들보다 욕심이 많은 성격인 저에겐 제자신에 대한 실망과 후회를 가져다 주게 되었습니다. 막연히 공부하겠다는 생각으로 무엇을 위한 것인지도 생각하지 않고 게으름 피웠던 지난 1년의 제가 그렇게 미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 때쯤 절친한 친구 교중이는 공인회계사 공부에 열심이었고 동경이는 합격소식을 전해왔습니다. 분명 제에게는 무엇인가 다시해야 한다는 강한 자극이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교중이와 진로에 대해 고민을 토론하다 젊을 때 1, 2년 투자해서 더 나은 미래가 보장된다면 과감하게 투자해야 겠다고 결심하게 되었고, 그 길을 함께하기로 99년 1월에 경영대 구름다리 가로등 밑에서 굳게 결심하고 새로운 도전을 하기로 결심을 굳히게 되었습니다.

 

Ⅲ. 1차 수험대비 (99. 1 ~ 99. 7 )

 

결심을 굳힌 다음날 바로 노량진 학원으로 가서 우린 학원수강을 했는데 아마도 부동산 관계법규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때부터가 수험생활의 시작이었던 것입니다. 노량진에의 첫걸음, 그때 낯선 곳에의 첫걸음과 생소한 사람, 새로운 도전에 대한 두려움 모든 것이 지금도 그때 생각하면 가슴이 뜁니다.

 

1차과목 중 경제학은 전공과목이고 행시공부시절 했던터라 크게 걱정되지 않아, 조금씩 복습정도하면 되겠다고 생각했지만 회계학과 기타 과목은 큰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철저히 학원수업 위주에 복습하는 것으로 일단 계획을 세우고 1, 2월에 최대한 빠듯하게 강의를 들으며 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1, 2월에 정말 1분 1초의 시간도 소중히 여기며 생활했었습니다. 사정상 과외 3개를 하고 있었으므로 매일 저녁엔 과외에 가야만 했기 때문에 시간은 아무리 쪼개도 부족했었고, 3월엔 4학년 1학기 수업을 들어야만 했기에 시간은 더 부족했던 것이지요. 게다가 회계학은 학원수업만 듣는데도 3개월이 걸리는 방대한 분량이고 처음하는 것이라 심적인 부담이 커서 더욱 그러했습니다.

 

1월엔 웅지경영아카데미에서 회계원리, 남부학원에서(現 한교) 원가관리회계, 민법, 부동산관계법규 이렇게 4과목을 수강하였고 2월엔 중급회계(상), 민법, 관계법규, 3월엔 중급회계(하)를 수강하므로써 일단 한번씩 수업을 다 들을 수 있었는데 이때는 정말 학원수업을 듣고 복습하는데 시간을 쏟았습니다.

 

정말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새벽 6시부터 저녁11시까지 빈틈없이 생활해도 학원복습에 시간이 부족했고 과외까지 가야 했으니 너무 힘에 벅찼고, 결국 과외는 3월부터 그만두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제가 그땐 어떻게 그렇게 했는지도 이해가 가지 않고 이때가 아마 수험기간 중 가장 열심히 했었던 같다 생각됩니다.

 

나머지 기간은 학교를 다니면서 수업시간외의 모든 시간은 도서관에서 공부하였고, 마무리정리는 학원의 최종점검반을 수강하면서 하였습니다. 1차 대비는 전부가 학원수업위주의 공부였습니다. 1차 시험 2주전에서야 학교의 기말고사가 끝이 났기 때문에 2주 동안은 정말 죽은 듯이 공부에만 매달렸습니다. 모든 시험이 그렇지만 마무리정리를 잘하기 위해서 준비기간동안 꾸준히 공부해 온다해도 과언이 아닐것입니다. 특히 객관식시험에서는 더우기 그러하고요.

 

그렇게 저의 1차 준비는 끝났고 시험전날 한숨도 자지 못했지만 무난하게 시험을 치렀고 합격여부에 대한 큰 부담없이 2차를 준비 할 수 있었습니다.

 

Ⅲ. 2차 수험대비 (99. 9 ~ 2000. 8)

 

1. 9월 ~ 12월

 

1차 시험이 끝나고 절대평가 시험이므로 떨어지지 않겠다는 확신이 있어서 학원 2차 기초점검반 수업을 수강하면서 2차 대비는 시작되었습니다. 그와 동시에 시립대에서 여름방학을 이용한 2차 기초특강을 수강하였습니다.

 

그러나 처음 하는 내용과 1차시험 후 공허함으로 공부가 손에 잡히질 않았고 복습은 커녕 수업에 빠지기가 일쑤였습니다. 이 때 절대 발을 디뎌 놓아서는 안됐어야 할 PC게임 스타크래프트에 빠지게 되었고 급기야는 2차 시험당일에도 실무시험을 치르고 난 후 이론, 법규 시험은 치르지 않은 채 친구들과 게임하며 밤을 지샐 정도에 이르렀습니다. 지금도 공부하시는 분들 중에 게임을 즐기시는 분들은 심각히 생각하시고 그만두셔야 할 것입니다.

 


본격적인 2차 수험대비는 9월부터 은민수 이론강의와 서정욱 보상법규, 이상주 실무를 들으면서 시작하였고 12월까지는 학원수업과 복습으로 2차준비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때에도 게임에 빠져서 밤을 새며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의 그 마음을 잊고 살았던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절대적인 공부량이 부족하여 후에 스터디에 들어가서 고생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이 기간 중 들었던 수업으로는 이영오 일본기출, 신종웅 실무, 서동기 이론, 노병철 보상법규, 신병기 보상실무 등을 들었고 스터디 하면서 일요일에 들었던 수업으로는 안정근 실무, 유영조 실무, 김윤조 보상법규와 기타 특강 등이 였습니다. 안정근 이론과 기타 실무 문제집등은 혼자서 해나갔는데 시간의 허비로 많은 학습량이 이루어지지 못했던 시기였던 것 같습니다.

 

2. 2000. 1 ~ 2000. 8

 

⑴ 스터디 1 기 과정

 

1월 스터디를 시작하면서 진짜 2차 공부의 시작이 되었다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스터디 가면 모든 것이 해결될 줄로 믿었는데 그게 아니였습니다. 시작되는 첫날부터 시험을 보았고 문제정도 풀고 끝나는 것이어서 공부는 미리해 와야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동안 공부가 많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너무도 힘든 과정이었고, 스터디에는 실력이 출중하신 분들이 많아서 그 심적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짧은 기간이지만 살아오면서 누군가에게 크게 뒤처지지 않고 살아왔었는데 스터디에만 오면 제가 가장 못하는 것 같아 정말 미칠 듯이 힘이 들고 스트레스를 받아 잠자리에 누우면 눈물이 날것 같고, 제자신에 대한 실망과 후회로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2차 답안을 처음 적어보는 것이라 답안의 구성요령도 엉망이고 물론 내용도 턱없이 부족했었습니다. 매주 매주 힘들게 범위 따라가기가 바빴었습니다. 힘이 들때마다 친구이자 이론 팀장이었던 동경이에게 조언을 구했고, 충고에 따라 월■화는 그주의 범위학습, 수■목은 과제물 작성, 금요일은 과제물의 암기, 토요일은 스터디의 순으로 일주를 계획하고 그대로 실천에 옮겼습니다. 그렇게 1기의 과정은 예습위주로 진행했습니다.

 

너무나도 힘들었고 최선을 다했던 기간이었고 저의 2차공부의 밑바탕을 쌓을 수 있는 기간이였던 것 같습니다. 1기과정 마지막 수업을 마치고 회식자리에서 “보통2기 과정에서부터 나아지는데 현상이 너는 실력이 눈에 보이게 치고 올라온다.”고 법규팀장님께서 해주신 말씀은 아직도 있지 못합니다. 그때 그 한마디에 지금까지의 고생은 다 잊고 노력이 헛되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공부하는 기간중의 가장 뿌듯한 순간이였던 것 같습니다.

 

지금도 각 학원에서 스터디 하시는 분들 중에 저와 같이 힘들어하시는 분들이 많으실 줄 생각합니다만 절대 포기하시지 말고 그 주 그 주 최선을 다하시면 분명히 좋아질 것이라고 충고하고 싶습니다.

 

⑵ 2기 3기 스터디 과정

 

2기의 과정은 모의고사 형식으로 진행되었는데 팀장님의 1기자료의 암기와 해당범위내의 다른 책들의 범위를 모조리 찾아서 대비했었고, 소그룹 스터디도 학원 스터디 범위로 공부를 한정시켰습니다.

 

이론과 법규의 경우는 매주 범위내의 철저한 암기와 준비로 괜찮은 점수를 받았지만 실무는 제 자신이 스스로 만족할 수 없었으며 절대적 공부량이 부족한 상황에서 반복이 되지 않아 가장 헤쳐가기 힘든 과목이었습니다. 내용이 어렵다기 보다는 100점을 100분의 시간 내에 풀어야 하는 것이 가장 큰 부담이었습니다. 2기과정 까지는 한번도 실무는 100점을 다 풀어 보지 못해서 내가 시험장에서 100점을 다 풀 수 있을까? 정말 시간 내에 가능할까? 라는 걱정은 늘 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은 사람이 시간 내에 다 풀기를 바라는 것은 우물에서 숭늉 찾는 격이었습니다. 실무는 수많은 문제와 반복된 풀이로만 시간단축이 가능하며 노력 외에는 왕도가 없는 그런 과목입니다. 여러분들도 명심하십시요. 실무가 어렵게 느껴지시는 분들 자신이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스스로 반성하시고 쉬지 말고 반복하시라고 충고 드리고 싶습니다.

 


저의 경우도 1기 2기 과정을 거치면서 꾸준히 하다 보니 시간이 자연스레 해결해 주게 되었습니다. 2기 과정을 마치고 그동안 풀었던 문제들을 한꺼번에 200점 남짓씩 쉬지 않고 푸는 연습을 계속하다 보니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시간이 단축되었고 급기야는 시간이 남기까지도 하게 되더군요. 정말이지 저도 믿기지가 않았습니다. 그래서 3기에 가서는 한번도 문제를 다풀지 못한 적이 없었고 점수도 세 과목 중 가장 잘나와 시험장에 갈 때에도 가장 안심하고 들어갈 수 있는 과목이 되었습니다.

 


소그룹 스터디는 3월부터 신림동으로 이사하면서 같은 반 스터디 팀원이던 분들과 6명이 함께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매일 아침 함께 모여 실무 100점 모의고사를 풀고 난 후 서로의 풀이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논란이 되는 사항이나 모르는 내용은 함께 정리하였는데 그게 이해에 큰 도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매주 목요일에는 함께 모여 그 주 그 주의 스터디범위 중 주요사항을 함께 체크하고 토의하는 식으로 준비했습니다.

 

 

 

소그룹의 스터디의 가장 큰 장점은 혼자선 시간을 지키며 풀기 힘든 실무모의고사를 함께 모여 함으로써 하루도 빠짐없이 풀어봄으로써 실전감각을 키우고 여러 사람의 생각을 접해보면서 사고의 폭을 넓힐 수 있으며, 꾸준히 해 나가다 보니 시험 전까지는 시중의 거의 모든 문제를 다루게 된다는 점이라 생각합니다.

 

그렇게 1, 2, 3기 과정을 거치고 난 후 마무리 정리는 공부를 시작했던 학교 도서관에서 하게 되었습니다. 40여일 정도 기간동안 그동안 보았던 모든 책들을 정리하였고 시험 몇일전부터는 써브노트 중심으로 정리하여 시험장에는 어느 정도 안정감을 가지고 들어갈 수 있었고, 무난히 시험을 치를 수 있었습니다.

 

평가사 시험대비에 가장 강력한 길이 있다면 스터디 제도인 것 같습니다. 특히 빠른 시간 내에 합격하시길 바라는 분들은 스터디의 길을 믿고 따라가시면 됩니다. 그 안에서 남들에게 뒤처지지 않고 공부하신다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입니다.

 

3. 공부하시는 기간에 당부드리고 싶은 말

 

첫째, 공부하시는 도중 아무리 힘들고 심적으로 괴로워도 포기하지 말고 그 만큼 더 노력하고, 항상 자신감을 가지고 공부하시라는 것입니다. 실제 저의 경우도 1기과정에서 남에게 뒤처진다고 생각했을 때에도 ‘내가 곧 따라잡는다.’ ‘나는 결코 남에게 지지 않는다.’고 혼자서 마음을 다잡았고 수험기간 중에 한번도 떨어진다는 생각을 해 본적이 없었습니다.

 


둘째, 현실을 바라보시고 공부하십시오. 합격해서 평가사로 활동하는 것이 추상적이 아닌 자신의 현실이라고 그리고 그걸 위해 자신이 지금 노력하고 있는 것이라고, 막연히 시작했으니 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자신이 지금 가는 길이 옳다고 믿고 마지막 도전이라고 생각하고 최선의 노력을 하십시요. 그러면, 꼭 좋은 결과가 있을 겁니다.

 


셋째, 슬럼프가 왔을 땐 공부에 대한 생각을 잠시 접은 후 마음을 비우고 푹 쉬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합니다. 되지도 않은 공부를 잡고 있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슬럼프 기간만 길어질 뿐이라 생각합니다.

 


넷째, 술과 게임을 하루라도 빨리 끊으십시요. 지나친 과음이나 밤을 새며하는 게임은 절대 수험기간 중에 피하셔야 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흔한말이지만 항상 머리속에 넣고 살아왔습니다. ‘최선의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말... 틀리지 않는 말인 것 같습니다. 여러분도 명심하시고 최선의 노력을 하고 있는지 되돌아보시기를 바랍니다.

 

 

Ⅳ. 합격 그 순간

 

 

시험을 치르고 난 후에는 학교생활로 돌아가서 학교수업을 들으며, 시험에 대한 생각을 잊고 지냈습니다만 어느덧 학교기말고사 기간이 돌아왔고 그와 함께 자연스레 합격자 발표일도 눈앞에 이르게 되더군요. 잊고 지냈던 아니 잊으려 애썼던 시험에 대한 두려움이 엄습했습니다. 바로 다음날의 기말고사 공부를 위해 애써 태연하려 했지만 감정을 숨기기가 너무도 힘들고 떨렸습니다.

 

‘합격’이란 말을 처음 들었을 때 그때서야 힘겹게 지냈던 수험생활이 떠오르며 저도 모르게 두 눈에서 눈물이 흘렀습니다. 자신을 희생하시며 아들 뒷바라지에만 전념하신 부모님 생각. 그 거칠어지고 주름지신 두 손에 이제서야 부모님께 작지만 아들로써 무엇인가 해드린 것 같아 너무도 기뻣습니다. 한없이 가슴이 후련했고.....

 

 

그러나 같이 공부를 시작했던 친구가 합격되지 않아 다음 시험에 도전하게 되어 너무도 안타깝습니다. 그 친구도 꼭 합격의 영광을 올해 12월에 느끼게 되기를 바랍니다.

 

Ⅴ. 글을 마치며

 

 

“합격 축하한다. 그 동안 고생했다.” 바로 제가 공부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된 친구에게 합격을 축하하기 위해 했던 말을 2년 후에 돌려 받았습니다. 지금껏 그 한마디를 듣기 위해 공부했나 봅니다. 제가 이 글을 쓸 수 있기까지 도움을 주신 분들께 지면을 빌어 감사하단 말씀 전하고 싶습니다. 먼저 저를 세상에 있게 해 주시고 항상 아들을 위해 헌신하신 부모님께 감사하단 말과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지난 몇 달간 스터디에서 지도해 주신 박병우 팀장님, 최지흠 팀장님께 너무도 감사드리고 친구이자 팀장이었던 동경이에게도 진심으로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같이 공부했던 용오형님, 현희누나, 민희, 순미, 교중이가 있었기에 여기까지 왔다고 전해 주고 싶고 작년 한해 같은 반에서 스터디 함께하셨던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지금도 12회 시험 합격을 위해 공부중인 종민, 성훈, 정봉, 교중이의 합격을 기원하고 저와 함께 스터디 하시며 고생하시고 계신 모든 분들의 합격을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마지막으로 지금껏 지루한 글 소중한 시간내어 읽어 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Profile
74. 광주출생
2001. 고려대학교 경제학과 졸업
제11회 감정평가사 자격시험 합격
現 한교고시학원 스터디 팀장 ..


박시우 감정평가사 합격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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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번의 1차시험과 1번의 2차시험

 

 

 

들어가며

 

 

2001년 12월 12일에 합격소식을 들은 지 한참지난 지금에서야 합격수기를 쓰려고 하니 조금은 어색합니다. 합격수기란 것이 합격했을때의 그 느낌과 합격하기 까지의 노력했던 과정을 다시 되짚어 보면서 쓰는 것이라 지금 쓰는 합격수기가 얼마나 그때의 느낌을 전달해 줄 수 있을지 의문이지만 약속도 하고 했으니 수험생활 동안 해왔던 과정을 끄집어 내어 잘 정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공부의 시작

 

 

 

저는 대학을 갈때부터 감정평가사를 알고 있었습니다. 고등학교때 우연히 접하게 된 감정평가사라는 직업은 막연하게 한번쯤 도전해 볼 만한 직업이라는 생각을 들게 만들었고, 그래서 부동산학과를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대학교1학년과 2학년은 저에게 더할 나위 없는 좋은 여러 가지 경험을 할 기회였으므로 감정평가사는 잊은 채로 학과활동과 써클활동을 하며 나름대로 재미있는 대학2년 생활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2학년을 마치고 군대에서 제대한 97년 8월 저는 제가 대학 갈 때의 계획대로 평가사 공부를 시작하기로 마음먹고, 97년 9월 신문광고를 통해 노량진에 있는 전문학원에 등록하고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이 당시에는 1차과목이 경제학, 회계학, 민법, 관계법규 4과목이었기 때문에 우선 98년 1차시험합격을 목표로 잡고 1차과목 4과목만을 수강하여 수업을 듣기 시작했습니다.

 

 

이 당시 수업을 들을때만 하더라도 저와 비슷한 또래는 아주 적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또 아직 감정평가사라는 직업에 대해 같은 또래의 대학생들은 대부분 생소하게 느끼고 있었던 시절이었습니다.

 

 

 

 

첫 번째 1차시험 불합격

 

 

97년 8월에 제대하고 98년 3월에 복학하였기 때문에 97년 9,10,11,12월과 98년1월과 2월6개월의 기간동안은 1차 기본강의에 충실한 예습복습과 공부에 일정한 절대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기에 실력은 생각보다 빠르게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걱정했던 경제학과 회계학은 흥미가 붙어 오히려 민법 관계법규보다 점수가 더 잘 나와 약간의 자만심 또한 갖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98년 3월 학교에 복학하고 나서는 학교공부와 평가사 시험공부를 충분히 병행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나름대로 잘 해나갔는데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를 거치면서 평가사 공부의 리듬이 흔들렸고, 평가사 시험을 불과 10일 남기고 나서 기말고사가 끝나게 되면서 막판 정리가 잘 안되었는지 첫 번째 치른 1차시험에서 1문제차이로 낙방하게 되었습니다.

 

 

 

 

 

두 번째 1차시험 불합격

 

 

처음 치른 98년 1차 시험에서 낙방한 뒤 저는 조금은 조급해진 마음과 내년에 1차는 반드시 합격할 수 있을거란 기대를 가지고 1차공부는 두고 2차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이때 학교는 3학년 2학기를 다니고 있었고, 99년 1학기(즉 4학년1학기)를 휴학하여 공부한다는 계획하에 1차는 회계학 말고는 쳐다보지도 않고, 학교 감정평가사반에 들어가서 주말에는 서울로 학원을 다니며 기본강의를 듣고, 평일에는 선배들이 도와주는 스터디를 시작했습니다.

 

 

1차공부를 다시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3월이 되어서였습니다. 물론 그 동안 회계학은 계속 공부했고 2차는 실무, 이론, 행정법을 계속 꾸준히 공부했습니다.

 

 

“작년에 1문제차이로 떨어졌으므로 올해 다시 1차에서 떨어지지는 않겠지“ 라는 생각으로 3월이 되어서야 시작한 1차는 생각보다 성적이 빨리 오르지 않아 애를 태웠지만, 시험을 얼마 안 남기고는 합격할 수 있는 점수들이 나오기 시작해 큰 걱정을 안 했습니다.

 

 

그런데 시험장에서 민법을 풀고 관계법규 문제를 접한 저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작년까지와는 너무 다른 문제 형태와 지문들로 인하여 풀이하는데 시간을 너무 많이 소요하여 뒤의 회계학과 경제학은 무슨 정신으로 풀었는지 모를 정도였으니까요!

 

 

그래도 왠지 떨어지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에 8월에 있을 2차시험을 위해서 실무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었던 전 청천벽력 같은 불합격 소식을 접하게 됩니다. 그것도 작년보다 더 나쁜 성적인 3문제차이 불합격(당시에는 건설교통부에서 답을 발표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학교는 졸업까지는 두학기가 남았고, 저는 고민에 빠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가사 공부를 계속해야 하는가? 아니면 공부를 접고 취업 공부에 매진해야 하는가? 지금과는 다르게 그 당시는 영어가 없었기 때문에 취업을 위해서 영어는 다시 처음부터 시작했어야 했습니다.

 

8월과 9월은 공부를 하지 못하고 고민을 하고 지냈습니다.

 

하지만 항상 그렇듯이 답은 결국 둘 중 하나더군요 공부를 할 것이냐 말것이냐

 

저는 다시 한번 도전하기로 했습니다. “어디까지나 나의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라고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단 1차에 두번 떨어져서 그런지 이번에는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기로 했습니다.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우선 1차 합격을 최우선과제로 잡았고, 2001년을 최종합격의 해로 설정해 공부 스케줄을 잡았습니다.

 

 

 

세 번째 1차시험 합격

 

99년 1차시험이 끝나고 나서 두학기가 남았었기 때문에 저는 다시 학교에 복학해서 수업을 들으며 실무와 회계학, 경제학을 공부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마음 먹었습니다. 1차 합격을 위해서는 넉넉하게 평균70점 이상은 꼭 받아야 한다. 그래서 제가 정한 문제집과 기본서를 10번 정도는 다시 보기로 마음먹고 공부 했습니다. 물론 2차 과목 중 실무는 계속해서 공부를 해 나갔습니다.

 

 

공부는 학교 수업을 들으면서도 진도에 밀림이 없이 꾸준히 공부해 나갔습니다.

 

2000년 1월부터는 실무공부도 안하고 오직 1차 공부만을 했습니다.

 

2000년 3월 다시 한번 휴학을 하고 공부장소를 학교 감정평가사반에서 노량진 고시원으로 옮겨 학원에서

 

문제풀이반과 최종점검반을 들으며 공부했습니다.

 

 

학원에서 보는 모의고사 점수는 5월에 이미 합격선을 충분히 상회하는 점수가 나왔지만 그간의 경험이 있는지라 더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그리고 시험날 문제를 풀던 저는 합격을 확신했습니다 공부를 열심히 하기도 했지만 문제가 쉬웠던 까닭도 있었습니다.

 

 

정확히 일주일을 쉰 뒤 바로 2차 공부에 돌입했습니다.

 

 

그리고 1차 합격자 발표날 확신은 있었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이 떨리는 목소리로 합격여부를 확인한 저는 소리를 크게 한번 질렀습니다.

 

 

남들은 경제적으로 공부하지 못했다고 평을 하기도 했지만 1차에 합격하지 못하면 2차는 시험장에 가보지도 못한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습니다.

 

 

평가사 공부를 시작한지 3년이 되어서야 1차 시험을 합격하게 된 것입니다.

 

 

 

 

첫 번째 2차시험 합격

 

 

1차시험 합격 후 2차 시험 공부를 다시 처음부터 시작한다는 생각으로 저는 기본강의부터 다시 들었습니다. 일단 8월과 9월에는 노량진의 학원에서 기본강의를 듣고, 9,10,11월에는 봉천동의 학원에서 0기 스터디를 시작했습니다. 물론 학교에서의 휴학은 1년 더 계속 연장했습니다.

 

 

2차공부는 오히려 1차공부때 보다 재미있었습니다. 우선 과목수가 적었고, 주관식 이었으며 2차공부를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절 기분좋게 공부하게 했습니다.

 

 

단 저는 2차공부를 막 처음 시작한 사람들보다는 훨씬 잘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공부의 만족수준을 보다 높여 잡았습니다.

 

 

12월부터는 학원에서 0기스터디를 하면서 만난 동기, 형님들과 개별스터디를 시작했고, 단결이 잘된 저희 팀은 학원1,2기스터디도 같은 요일 같은 반에서 듣게 되었습니다.

 

 

큰 슬럼프없이 꾸준히 공부했던 저의 실력은 아무래도 그 전에 공부해 놓은 것들이 내공을 높여주어서 그런지 빠른 속도로 향상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1기 스터디 2월말부터는 실무, 이론, 법규 세과목을 시간내에 모두 쓰기 시작했고 느린 글씨로 고민했던 것도 지속적인 연습을 통해서 극복해 냈습니다.

 

 

그리고 5월이 되면서 저는 우리학교 같은과 선배들과 3명이서 또 하나의 스터디를 결성해서 운영하기 시작했습니다. 기존의 스터디는 일주일 중 하루를 할애하여 미리 교재와 진도를 정해놓고 시험과 똑같이 시간을 설정하여 시험을 보고 토론하는 형식을 취하였고, 선배들과의 스터디는 매일 하되 같은 장소에서 공부하고 같이 식사하고 같은 고시원을 등록하여 진도와 교재를 정해놓고 해당문제를 풀고 토론하는 형식을 취하였습니다.(점심때 실무토론 ,저녁때 이론토론, 고시원에서 실무토론, 공부장소는 학원자습실)

 

 

스터디가 잘 운영되서 인지 남들이 많이 겪는 5월 슬럼프도 저에겐 문제되지 않았습니다.

 

학원스터디와 개별스터디2개를 통해서 위력이 발휘되자 저의 실력은 더 상승하기 시작했고

 

 

7월부터는 일요일에 시험장소인 서울대에 직접가서 모의시험을 보고 왔습니다.

 

 

많은 연습을 통해 글씨를 쓰던 저의 오른손목의 뼈가 기형적으로 튀어나오던 것이 절정에 다다를 무렵 저는 2차시험을 보게 되었고, 첫시간 실무의 난해함과 이론의 시간부족, 법규의 조심스러움을 조절하면서 답안을 채워나갔습니다.

 

 

 

그리고 시험 후 남은 한 학기를 다니면서 마지막 대학생활을 보내고 이것도 거의 끝날 무렵인 2001년 12월 12일 저는 같은 과 선배를 통해서 합격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합격의 기쁨을 나타내는 저의 커다란 고함과 함께 그것으로 저의 길었던 4년간의 수험생활은 마침표를 찍

게 됩니다.

 

 

 

 

 

수험생활 중 공부에 관한 고찰

 

 

저는 공부에 대한 단점이 집중력이 약하다는 것이었고, 장점은 잠에 대한 조절이 가능한 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남들보다 1시간 이라도 더 공부하려고 노력하였고, 평균적으로 보면 하루에 약11시간정도를 수험기간 중에는 공부했던 것 같습니다. 단 그날 보기로 했던 진도에 못 미칠 경우에는 진도를 마칠 때 까지 공부를 했습니다.

 

 

진도는 매월초에 그 달에 봐야 할 교재와 진도를 정한 후 이를 그 해당 달의 공부 할 수 있는 날짜로 나누어 책상앞에 붙여놓고 하나씩 지워나가면 공부했습니다.

 

 

그리고 하루의 공부구성도 하루는 실무, 하루는 이론 이런 형식으로 보지 않고, 하루에 실무, 이론, 법규를 다 보는 방법을 택했고, 처음에는 실무6시간, 이론,법규는 각각2시간30분씩 보다가 시험이 가까워질수록 실무는 조금씩 줄이고 이론, 법규는 조금씩 늘리는 방법을 사용했습니다.(이는 1차에서도 마찬가지 입니다.)

 

 

각과목을 공부 할때는 여러권의 교재보다는 우선 기본이 되는 교재를 선정한 후 10번정도 본 뒤 다른 교재들 중 중요한 부분이나 중복되지 않는 부분만을 발췌하여 공부하는 방식을 취하였으며, 실무는 기본적인 문제는 자주 그리고 많이 풀고 특이한 형식의 문제들은 풀이방식을 암기하기 위해 노력했으며 이론과 법규는 써브보다는 기본서를 많이 읽는 쪽으로 공부방향을 잡았습니다.(물론 시험에 가까워져서는 써브를 이용했지요)

 

 

1차시험은 객관식 시험이고 과목도 2차보다 많은 5과목(제가 붙을때는 4과목)이나 되니 특히 좋은 기본서와 문제집을 정한 후 이것만 집중적으로 공부하는 방식이 여러 가지 방법 중 가장 효과적인 것으로 보이며 2차시험은 아무래도 주관식 시험이다 보니 자주 읽는 것 만큼 자주 쓰는 것이 반드시 병행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리고 2차시험에서의 개별스터디는 제 경험에 비춰 볼 때 학원스터디 보다 오히려 더 중요할 수도 있으니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스터디를 결성하여 진도에 밀리지 않게 실전적인 공부와 토론을 해나가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봅니다.

 

 

 

또한 수험공부가 1~2달내에 끝나는 단기공부가 아닌 만큼 휴식하는 방법도 필요합니다.

 

 

저는 공부를 하다가 스트레스를 받거나 몸이 많이 피곤하다고 느껴질때면 3단계로 나누어 1단계는 만화가게에서 한참동안을 만화책 보기, 2단계에는 가까운 분들과 음주후 푹 자기 3단계는 고시원을 떠나 집에가서 한 2일 정도 푹 쉬고 오기로 정하고 저의 몸 상태를 스스로 체크하여 여기에 맞춰 휴식을 취했습니다.

 

 

 

끝으로 저와 비슷하게 1차시험을 1번이나 2번 떨어지고 고민하고 있거나 현재 공부방식 등에 대하여 고민하고 있을 많은 수험생분들께 제가 감히 한마디 드린다면

 

 

첫 번째 1차시험을 소홀히 하지 말라는 것과

 

 

두 번째 2차과목 중 실무가 우리 시험합격에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므로 1차를 낙방 후 공부기간동안에는 2차과목 중 실무는 몇 번이고 수업을 들으며 공부해야 한다는 것

 

 

세 번째로 자기 진도 정해놓고 밀리지 않고 하루에 10시간 정도만 공부하면 누구나 길어도 4년내에는 반드시 합격할 수 있다고 보니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라는 부탁을 드립니다

 

 

 

 

거꾸로 매달아도 건교부 시계는 간다

 

 

 

이 강 수

(제12회 시험합격, 남, 26세, 서울시립대학교 도시공학과 4학년)

 

 

 

 

Ⅰ. Prologue

 

 

하루의 일상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잠자리에 들 때, 어두운 방에서 전화기 플립을 열면 그 배경불빛과 어우러져 나의 눈에 들어오는 문구, “되고자 하는가...” ....

 

 

 

내가 수험기간에 본 합격수기는 30편도 넘을 것 같다. 하지만 막상 나의 이야기를 쓰자니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아무래도 결정을 할 수가 없어 내가 보아왔던 수기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문구를 인용하여 나의 글을 시작했다. 이제 어느덧 합격자 통지를 받은 지도 몇 달이 지났고, 이제는 수험생시절에 가졌던 고민들과는 또다른 일거리들과 고민들로 여전히 분주한 삶을 살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까지의 수험기간은 절대로 쉽게 잊혀지지 않을 추억 이상의 기억으로 남아있기에, 그 기억을 수험생 여러분들과 공유하고자, 특히 동차합격생으로서 더 기뻤던 마음을 동차수험생으로서 더 힘드실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고자 나는 수기를 쓴다.

 

 

 

 

 

 

 

Ⅱ. 왜 이 시험 공부를...

 

 

무슨 일이든 그 일에 대한 발단 내지는 동기(이유!)가 있기 마련이고, 그것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내가 감정평가사 공부를 시작한 동기 자체에 대해서는 그다지 구구절절한 사연이나, 드라마틱한 사건도 있지 않아 따로 목차를 잡기가 민망하다. 그래도 글의 논리상 이 자리에 무슨 말이라도 써야 하기에 쓴다. 나 역시 합격생 중에는 어린 축에 속하고, 나와 같은 경우는 대개가 군 제대 후 대학 졸업 전에 무언가 해야겠기에, 그 무언가를 찾다가 주변사람들을 통해 감정평가사에 합격하면 좋다기에 시작했다. 나 역시 이러한 보편적인 케이스에 한 치의 오차도 없다.

 

 

 

 

97년 말일(IMF 직후)에 제대하여, 자유를 만끽할 여유도 없이 복학하여 한 학기동안 굳은 머리를 좀 풀고, 98년 7월 4일(공교롭게도 9회 1차 시험일)에 공부를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그날 며칠 전까지만 해도 변리사공부를 생각 중이었고, 그건 내가 복무했던 부대의 중대장님의 영향이었다. 그 분은 입대 전 이미 변리사로 활동하셨고, 또 내게도 적극 권하셨기에 그런 맘을 가지고 제대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학교의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우선 주변에는 감정평가사를 공부하는 선배들이 몇명 있어, 수험가에서 꽤 이름을 날리고 있었으며, 친구들도 내게 이 시험을 적극 권유했다. 왜냐하면 변리사는 우리 전공과 관련을 시킬 것들도 별로 없고, 공부했던 선배도 없었고, 합격 후에도 별로 비전이 없을 거라는 이유에서였고, 감정평가사라면 굉장히 수월한 것처럼 얘기들을 해서 나는 선뜻 감정평가사를 시작하게 된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감정평가사를 우습게 보고 시작한 건 나의 오판이었지만, 아무튼 ‘감정평가사를 선택한 건 잘 한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Ⅲ. 제2의 군생활

 

 

그렇게 나의 기나긴(더 오래 공부하신 분들도 많겠지만, 내게 만 3년은 정말 피말리게 길었던 시간으로 기억된다. 난 제2의 군생활로 간주한다) 수험생활은 평온하고 여유롭게 시작했다.

 

 

 

 

 

수험가에서 만 2년 이상 있으면 모두가 道人이 된다. 나도 2년차까진 몰랐는데 3년차로 넘어가니 하루하루가 깨달음의 연속이요, 得道의 순간순간이다. 특히 지금은 학원에서 실무팀장으로서 누군가의 앞에 서는 입장이 되어보니 도인인 척이라도 해야 된다. 어쨌든 이번 목차에서 적고 싶은 글의 요지는 꾸준히(보통 2년 이상) 수험생활을 해나가려면 체력저하나 경제적인 어려움도 큰 문제일 수 있으나 가장 큰 문제(수험생 공공의 적)는 자신감의 저하라는 것. 즉, 불신의 벽, 불확실성 ... 이런 것들이 최대의 적이다. (특히 동차생들에겐...) 이런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서 가져야 할 마음가짐에 대한 생각을 적고자 하는 것이다.

 

 

 

 

우선 믿음을 가져야 한다. 두 가지만 믿으면 된다. 첫째는 세상에 대한 믿음이다. 세상은 공평하다. 뿌린 만큼 거둔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노력한 자에게 노력한 만큼의 대가는 주어지는 법, 권선징악 등등 내가 2년차 때 불합격 처분을 받고 다시는 공부하지 않으리라 마음먹었던 보름 정도의 기간동안 가장 힘들었던 이유다. 난 할 만큼 했는데.. 난 정말 똑똑하고 시험도 잘 봤는데... 근데 떨어진 건 억울하다. 세상을 믿을 수가 없다. 말도 안 된다. 모든 불합격의 원인을 세상 탓으로, 운으로 돌렸다. 하지만 세상은 공평하다. 합격한 이들은 모두 나보다 더 잘 하고, 열심히 하고 시험도 잘 본 사람들이었으리라.

 

 

 

 

둘째로 믿을 건 나 자신이다. 세상이 공평하다면, 나만 열심히 하면 합격이다. 자신감을 갖자. 사실 모든 인간의 능력은 다 똑같다고 한다. 왜냐면 세상은 공평하니까. 그렇다면 1,000명 중 100명은 어떻게 가려낼 것인가. 그것은 100% 누가 더 열심히 했는가가 기준이다. 여기서 열심히란, 막연히 누가 잠을 덜 자고 책상 앞에 오래 앉아 있었나로 측정되는 것은 절대 아닐 것이다. 그야말로 누가 정성껏 노력을 더 많이 했는가일 것이다. 즉 같은 시간을 공부해도 누가 집중력 있게 효율적인 방법으로 했느냐에 따라 시간 때우기와는 비교가 안 될 것이다. 이러한 질적, 양적인 것들을 포괄한 개념으로서 “열심히”라는 표현이다. 자신감을 갖고 열심히 하자. 열심히 해도 자신감이 생긴다. 하지만 자신감을 갖고 열심히 하는 게 더 중요하다. 잘 생각해 보시길 바란다.

 

 

 

 

그리고, “ 4 : 4 : 2 전법 ”. 수험생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으리라(특히 객관식 시험). 시험출제의 원칙이라고도 한다. 40%는 공부 좀 했으면 누구나 맞춘다. 그리고 20%는 아무리 열심히 공부했어도 못 맞춘다. 그렇다면 60점을 넘기 위해선? 중간의 40%에서 승부를 걸어야 하리라. 이 두 이론을 접목시키면 수험생활을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윤곽이 드러날 것이다.

 

 

 

 

어쨌든 여자분들께는 뭐라 설명드릴 길이 없지만, 군대를 한 번 갔다 오신 남자분들이라면, 그 군생활의 고통스럽던 시간을 되새기며(다시 생각해 보면 아련한 추억으로만 남아있겠지만..) 다시 한 번 군생활을 한다는 생각으로 수험기간을 보내신다면, 거꾸로 매달아도 건교부 시계는 흘러가 합격의 기쁨을 맛보실수 있으리라 믿는다.

 

 

 

 

 

 

Ⅳ.수험생활

 

1. 0년차(1998.7~ )

 

 

2학년 여름방학. 정말 뿌듯한 두 달을 보냈다. 처음 가보는 학교 도서관이 어색하기도 했지만, 원래 어딜 가나 적응능력이 빠른 나로선 곧 학교 도서관만큼 편한 곳이 따로 없을 정도였다. 노량진에 있는 학원에서 부관법과 민법을 수강했고, 신설동에 있는 학원(지금은 없어짐)에서 회계원리와 경제학을 수강했다. 거의 매일 학원을 나갔고, 유난히 비가 많이 왔던 여름이었건만, 고등학교 졸업이후 학원을 다니는 것 자체에서부터 공부를 한다는 것, 공부내용 등등 모든 것이 새로웠고, 그래서 재밌었고 보람찼다.

 

 

 

 

하지만 9월 개강 이후로는 2차 과목으로 3인 공저를 붙잡아 봤지만, 바쁜 학교생활 속에서 2차 공부는커녕 여름에 배웠던 회계원리나 경제학도 다 잊어버리는 어이없는 시기로 기억된다. 아무튼 나의 0년차는 그래도 공부에 대한 흥미를 느끼고 나름대로 1차 시험 기본강의(회계학 제외)는 한 번 들을 수 있었던 것으로 큰 의의를 갖는 시기였다.

 

 

 

 

■도서목록 : 이 때 보았던 책들은 민법(곽윤직/조병욱/신종석tape), 민법전, 회계원리(기억안남), 경제학(3인공저), 관계법규(조병욱), 2차 책(최신감정평가론-3인공저), 실무강의(이영오-반쯤 들음)

 

 

 

 

 

2. 1년차(1999년)~1차시험(10회) & 2차 준비

 

다시 겨울방학이 찾아오고, 다행히 작년에 시험 봤던 형들 4명이 모두 합격을 했고, 졸지에 우리 과에서는 감정평가사 시험의 붐이 일기 시작했다. 지난여름에 시작한 나를 필두로 선배와 후배들이 우후죽순 시험에 뛰어들어 그 동안 혼자 다녀야 했던 학원을 같이 갈 사람들이 많아져서 좋았다. 그래도 나는 좀 경험이 있어서 노량진 J강사의 회계학만 듣고 다른 날은 학교도서관에서 나름대로 여유를 갖고 2차(실무)과목도 공부하며 2개월을 보냈다. 그리고 또 개강. 만만치 않았다. 1차를 우습게 봤는데 학교수업 따라가며 따로 학원 다니기도 버거워서 3~4월의 문제풀이반을 하나도 수강하지 않았더니 5월말이 되도록 모의고사 점수가 겨우 50점을 턱걸이하는 수준이었다. 막판에는 학교수업 중 가장 중요한 과목이었던 도시설계(4학점)를 포기했던 기억이 난다. 교수님께 찾아가 마지막 발표를 앞두고, 감정평가사 시험 때문에 우리는 포기하겠다고 말씀드리고(우리설계팀 4명 중 3명이 수험생이었다!) 며칠 더 공부했던 것이 대단한 효과를 본 듯 하다. 3명 중 1명은 술 마시고 시험에 불참했지만, 시험 본 두 명(나 포함)은 합격했고, 특히 나는 평균 60.00으로 합격했다. 천우신조였다.

 

 

 

 

 

 

■도서목록 : 이 때까지 봤던 1차 책들은(위에서 추가된 것만) 민법(노종천/권용우 문제집), 경제(주한광 문제집/정병렬 문제집/박지훈 서브), 회계(김영덕/김상운/이효익), 관계법규(법전)

 

 

 

 

 

당시는 지금과 달리 가답안이 나오지 않아 7월말까지 무작정 기다려야 했고, 시험도 좀 어려웠던 해라 1차 합격을 확신할 수 없어 발표 때까지 술로 연명하다가 8월초부터 본격적으로 2차 공부에 돌입했다. 학교에서 선배들이 주최했던 무료특강을 한 달 정도 들었고, 하루빨리 더위가 가시기를 기다리며 지냈던 것으로 기억된다. 아참, 그러는 도중 한 번의 소풍이 있었다. 10회 2차 시험에 반드시 가서 끝까지 앉아있으라는 선배의 명령으로 그렇게 했지만, 왜 그랬어야 했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난 원래 지구력이 강한 편이라 굳이 그런 연습 따위는 필요 없는데... 아무튼 그래도 1년차로서 2차 시험응시는 생각보다는 진지하게 임하는 게 좋을 듯 하다. 최소한 2차 시험장의 분위기는 1차 시험장하고는 사뭇 다르니까. 답안지는 어떻게 생겼고, 종이의 질은 어떻고, 어떤 펜이 잘 써지고, 시험감독은 어떠한지 등등에 대해 최대한 많은 것을 보고 기억해 둠이 다음해 진짜 2차 시험응시 때 많은 도움이 되리라고 본다.

 

 

 

 

9월이면, 대개의 2차 수험생활의 본격적인 출발점이다. 특히 9월부터 12월까지는 학원강의는 거의 다 듣고 기본서도 여러 권 독파해야 하는 매우 중요한 시기다. 그래서 당시 4개월간 내가 들었던 학원강의들을 늘어놓아 보자면...

 

 

 

 

■도서목록 : 실무(이정훈/신병기, 보상특강/신근섭, 실무특강/정영철/신종웅)-정영철과 신종웅 수업은 반 정도씩만 들었음. 이론(은민수/전영주/신근섭 이론특강), 법규(김동건/서정욱), 행정법특강(유지태)... 참 많이 들었다. 어떨 땐 한 달간 7개를 동시에 들었던 적도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위에 적은 모든 수업을 100% 출석한 건 아님을 실토한다. 아무튼 이때 아니면 학원수업을 들을 시간이 별로 없다. 해가 바뀌면 스터디에 끌려 시험일까지 쭉 끌려가기 때문이다(3~4년차 이상이라면 다를 수도 있겠지만).

 

 

 

 

 

3. 2년차(2000년)~2차시험(11회) & 낙방

 

 

2년차의 시작과 끝은 모두 학원 스터디이다. 나도 수험생시절 들었고, 지금은 스터디 팀장을 하고 있지만, 과연 스터디의 필요성에 대해 결론을 내리자면 확실히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우리 시험은 최근 정보 확산이 많이 되었기는 하나 그래도 당분간은 학원차원에서의 스터디가 어느 정도 지속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된다. 적어도 학원은 아니라 하더라도 조직적으로 몇 명 이상이 함께 정보를 공유하고 문제풀이 훈련을 함께 해야 함은 실력향상(단기간에)에 너무나도 중요한 과정이라고 생각된다. 나는 당시 관례(?)대로 노량진 N(지금은 H)학원에서 1기와 2기를 수강했고, 3기는 따로 하지 않았다(그게 그해 실패의 큰 원인이었던 것 같다).

 

 

 

1기는 숙제를 내주면, 해당 범위에 대한 기본서 등을 월․화요일에 읽고 수․목요일에는 숙제를 정리하고(서브작성), 금요일에는 그 부분을 암기해서 토요일에는 학원에서 시험을 보고, 일요일에는 토요일 날 받은 자료 정리하고, 사우나 한 번 하고, 거의 이러한 일상의 반복이었지만, 워낙에 빡빡한 일정인지라 시간 가는 것이 너무나도 빨랐다. 특히 나는 함께 1차를 합격한 과 동기 녀석과 함께 동거를 하기 시작한 시기였고, 그래서 토요일 밤엔 여지없이 자취방에서 혹은 그 앞 닭발집에서 맥주나 소주 한 잔 걸치는 게 굉장한 낙이었고 스트레스 해소의 유일한 길이기도 했다.

 

 

 

 

아무튼 시간은 빨리 흘러 어느덧 2기가 됐고, 2기에는 매주차별 시험범위가 없거나(실무) 매우 넓어 공부하기가 매우 힘들었다. 문제는 하나같이 생소하기만 해서 그런지 수험생들이 가장 많이 포기하거나 좌절하는 시기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별 거 아닌데.. 3기가 되면 다시 1기 수준이랑 별 차이가 없어지던데... 2기는 항상 응용력 향상을 빌미로 오버하는 경향이 있는 기간인 것 같다.

 

 

 

 

3기를 신청하지 않은 이유는 1기와 2기에서 너무 쉴 새 없이 끌려만 온 것 같다는 생각에 나름대로 시간을 갖고 정리하고자 하는 마음에서였지만, 그게 화근이었다. 다들 학원 가서 매주 시험을 보는데 나 혼자만 긴장이 풀어져 버리게 된 거였다. 그래서 8월 20일 시험일에 내 답안이 형편없게 제출되고야 만 게 아닌가 싶다. 아무리 아는 게 많고 말을 잘 해도 어차피 시험엔 기준이 있고, 우리 시험은 주어진 시간 안에 100점의 분량을 최대한 맞고, 보기 좋게 채워서 제출하면 그게 곧 지나간 모든 수험기간을 대변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해의 나의 실수는 잘 모르는 문제에 대해 아예 언급도 하지 않아 버렸다는 데 있었던 것 같다.

 

 

 

특히 이론에서 합격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뭐니뭐니 해도 실전답안 그 자체다. 감정평가사 합격을 위해서 면접시험이 있는 것도, 체력검사가 있는 것도 아니다. 유일한 당락의 척도는 답안지뿐이다. 그래서 첫 부분에서 언급했듯이 어느 정도의 사기(?)가 필요하다는 얘기는 바로 이 부분에 적합한 얘기다. 아는 것이 100이라도 120을 아는 것처럼 답안을 작성한다면, 그 사람의 실력은 100이 아니라 120인 것이다. 최소한 자기가 아는 만큼은 100% 답안에 반영할 수 있어야 억울하지 않은 것이다. 물론 열심히 공부한 실력자들을 전제로 한 얘기다.

 

 

 

 

 

■도서목록 : 이 때까지 보았던 책들에 대해 열거하자면(스터디 외엔 어떠한 학원강의도 듣지 않았음),

①실무(3인공저/안정근/정영철/신체계/68회/감정원/단대기출/부고시3년분/학원팀장문제 등)

② 이론(방경식/안정근 평가이론 및 부동산학/전영주/허장식/김세중서브/기타서브)

③ 행정법(김동희/유지태), 법규(임형욱/유해웅/박평준/주종천/서정욱/김동건서브/기타서브)

 

 

 

 

그리고 불합격처분을 받을 때까지, 왠지 붙을 것 같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에 어깨 쫙 펴고 학교생활(3학년 2학기)에 복학해서 열심히 다녔고, 기말고사가 끝난 직후(12월 14일)에 함께 공부했던 후배로부터 불합격 소식을 왕십리 국철 안에서 들었다. 이론점수의 저조로 인한 평균 미달이 원인이었다. 그리고 약간의 방황 후 12월 29일에 다시는 절대로 하지 않으리라던 감정평가사 재수를 결심했다.

 

4. 3년차(2001년)~12회시험 동차 & 합격

 

 

 

동차는 정말 만만치 않았다. 처음에는 졸업설계도 하고, 토익점수까지 어느 정도 올리고, 동차합격까지 동시에 해볼까 하는 정말 어처구니 없는 꿈도 가져봤었지만, 이내 학교는 휴학을 했고, 접수했던 토익시험은 포기했고, 회계학 수강을 필두로 2001년 1월을 시작했다. 학원 스터디 선발고사 타이밍을 놓쳐 뒤늦게나마 낙하산을 타고 다시 노량진 H학원 스터디 1기에 들어갔다. 함께 공부했던 이들이 모두 나의 팀장들이 되어 내 앞에 선 모습을 본다는 게 몹시 자존심 상했지만, 세상은 공평하기 때문에 그들은 나보다 훨씬 더 노력해서 작년에 합격을 했고, 그래서 나는 그들에게서 배울 게 많다고 생각을 하고, 단 한 번도 스터디에 지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렇게 1~2월이 지났다. 3월이 되니 슬슬 1차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회계학은 기본강의를 들었으니 앞으로는 매일 문제를 풀면 될 것 같은데, 다른 과목들은 애당초 시간계획을 어떻게 짜야 할지가 너무 막막했던 것이다. 올해의 동차생들은 특히 영어가 추가되어 더욱 난감하겠지만. 아무튼 당시 7과목을 동시에 한다는 것(이름하여 사법고시생)이 정말 어려웠다. 그래서 우선 실무는 매일 200점을 풀기로 하고(내겐 다행히 든든한 개별 스터디 조직이 있었다!) 이론법규는 스터디 가기 전날 오후부터 저녁까지 잠깐만 보기로 했다. 그리고 경제학 테이프(정병렬)과 회계학 문제집(김상운)을 주로 풀며 3월을 보냈다.

 

 

 

 

아차, 나의 수험생활에 있어 또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2월 중순에 드디어 2년 남짓의 학교 도서관 수험생활을 떠나 봉천동으로, 그리고 한 달 후 신림동으로 거처를 옮겨가며 맹모삼천의 경험을 하게 되었다. 나름대로 장단점이 있지만, 학교는 돈이 적게 들고 친숙한 환경이 좋다면, 봉천동은(노량진보다야 쾌적하지만) 좀 열악하지만 감정평가사 위주의 뜨거운 학습열기가 있는 곳이고, 신림동은 일단 돈이 많이 들지만 그 이상으로 환경이 참 좋은 곳이다. 여기서의 환경은 의식주 및 음주가무를 비롯해 첨단산업(통신 및 PC방, 비디오방) 환경을 포괄하는 개념임은 주지의 사실일 것이다.

 

 

 

 

아무튼 그렇게 스터디 1기가 끝나고 2기에 돌입하기 전 약간의 갈등을 했지만, 다행히 2기 장학생으로 선발돼 2기에도 당연히 참여했다. 물론 중간 중간에 1차와 관련된 특강 같은 수업 때문에 2기는 반 가까이 빠졌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최소한 2기까지 모두 들어도 크게 1차가 위험할 것 같지 않다. 그렇게 2기가 끝나니 어느덧 6월, 이제 1차가 한 달 남았다. 이 때부터는 1차 공부에 전념했다. 실무조차 풀지 않았는데 이거 역시 지금 생각해 보면 실무만큼은 좀더 풀었어도 괜찮을 뻔했다. 아무튼 4월부터 시작한 민법(나도연 강의/조병욱 책), 5월부터 시작한 부관법(공민달 수업/조병욱 책)으로 법 과목의 점수가 생각 같지 않았으나 6월 중순이 되니 평균점수가 70점을 넘나들게 되어 안심을 하고 7월 1일 시험장에 들어갔다. 시험은 생각보다 어려웠지만, 생각은 생각일 뿐 당일 오후 늦게 나온 H학원 가답안으로 맞춰본 결과 75점 정도는 되는 것 같았다. 신림동으로 돌아가 2차만 공부하던 개별 스터디 팀원들에게 모처럼 만에 한 턱 쐈다.

 

 

 

 

1차 시험 본 뒤 만 이틀 후엔 본격적인 2차 시험준비에 돌입했다. 그 전부터 함께 공부했던 2차만 하던 대여섯 명이 있는 개별 스터디 팀에 합류했다. 그리하여 우선 실무부터 시작하여 2주 정도만에 지난 2기 때 수준의 감각을 회복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나머지 6주간은 우리 시험장소인 서울대에 가서 실전경험을 쌓기로 하고, 6주차에 해당하는 과목별 예상문제를 팀원들과의 합의 하에 만들었고, 매주 일요일 시험시간에 맞춰 서울대의 한 강의실에서 우리가 뽑은 문제로 시험을 봤다. 나로선 2기 이후로 제대로 못했던 쓰는 연습에 굉장한 도움이 되었던 경험이었다. 시험이 임박한 마지막 주엔 온 신림동 바닥이 들썩였다. 매일 하루에도 몇 번씩 바뀌는 시험정보로 결국엔 하나도 모르는 게 낫다고 생각될 정도로 정신적, 시간적인 낭비만 초래한 불필요한 정보들 뿐 이었다고 판단된다.

 

 

 

아무튼 시험 전날엔 우황청심환을 먹고 밤 11시 정도부터 아침 6시까지 푹 자고 상쾌한 기분으로 서울대로 갔다. 시험장에 갔더니 역시나 우리 시험장은 탁구라켓(작고 기울기가 큰 책상겸 의자)이었다. 다행히 우리 시험장 복도에 평평한 책상이 몇 개 있었고, 다른 건물에서 수험생 몇 명이 그걸 들고 나가는 모습을 보고 나는 가볍게 내 책상을 바꿨다. 그리고 전통대로 1교시 시작 전에 실무문제를 25점 풀었다(강력한 예상문제였던 DCF). 그리고 1교시 시험이 끝났다. 절망적이었다. 점심 같이 먹기로 한 형들에게 차마 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혼자 연못가에서 드링크제를 한 병 마시고 2교시 그리고 3교시를 최선을 다해 봤다. 시험이 다 끝나고 술자리에서 안 사실이지만, 실무 1번 문제에 시간을 너무 많이 허비하고 정확히 풀지도 못해 그 이후 문제는 그야말로 손 가는 대로 휘갈겨 겨우 다 풀고 난 후의 내 좌절감은 시험 본 다른 사람들(거의 모든)의 공통된 감정이었고, 오히려 나는 그들보다 잘 풀었다는 사실도 깨달을 수 있었다.

 

 

 

 

어찌 됐건 8월 26일로 시험은 끝나고 9월에 난 어느덧 세 번째 복학을 했고(4학년 1학기) 그 학기가 끝날 무렵(역시 마지막 기말고사 본 날 오후 늦게) 작년에 합격한 후배로부터 합격소식을 들었다. 참고로 합격하면 발표 며칠 전부터 전화가 폭주하지만, 불합격이라면 자신이 직접 확인하기 전엔 발표 날 이후에도 아무도 그 사실을 알려주지 않는다.

 

 

 

 

■도서목록 : 3년 동차를 공부하면서 추가로 본 책은 별로 없다. 실무(핵심/ 「월간」감정평가사문제/팀장문제), 이론(팀장서브), 법규(임호정논문집/팀장서브). 오히려 동차를 시작하면서 초반(설날 전후)에 전년도 내 서브를 워드로 정리한 3과목 각각 한 권씩의 손바닥 크기의 서브가 굉장히 큰 도움이 됐다. 들고 다니면서 수시로 암기했다. 7과목을 동시에 가방에 담을 수가 없다.

 

 

 

 

 

 

Ⅴ. 수험기간 중 공부 이외의 생활

가장 중요한 건 체력의 한계 극복에 관한 문제이리라. 나는 좀 큰 키에 마른 체구로 좀 약해 보인다고들 한다. 하지만, 정신력이 체력을 극복하는 더 큰 힘이라 생각한다. 항상 긴장을 늦추지 않는다면 최소한 환절기 감기 따윈 지나칠 수 있고, 과음을 않는 게 가장 중요하다. 그리고 꾸준히 간단한 Push-up이나 아령 같은 건 매일 기상 후나 취침 전에 꼭 했고 규칙적인 생활을 유지하려 노력했다(12시 반 취침 7시기상). 일요일에도 반나절 정도 공부하고, 반나절 정도는 정기적으로 영화관람(신림동은 이게 좋다=비디오방이 싸다)하고, 가끔 친구들을 만났다(신림동으로 면회 온다). 스트레스 풀기엔 술보다는 영화관람을 권하고 싶다. 적은 비용과 시간으로 뒤끝 없이 좋은 영화 한 편 보고 나면 일주일간 공부하는 데 원동력이 된다. 경제적 능력이 된다면(안 되더라도) 가급적 몸에 좋은 것도 주기적으로 먹어 주는 게 남는 거다. 나는 생전 처음으로 시험 한 달 전 같이 공부하던 누나랑 보약을 반 재 나눠먹은 적이 있다. 물론 그 효과는 시험이 끝나고 나타났지만...

 

 

 

결론적으로 항상 자신감을 유지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약간의 운동을 하고, 좋은 영화를 정기적으로 보거나 가벼운 등산도 괜찮겠다. 어쨌든 수험기간에는 시간이나 체력이 많이 소비되는 활동(축구나 여행, 과음 등)은 자제해야 한다.

 

 

 

그리고 계획적인 삶이 습관화되어야 한다. 같은 시간이 주어지더라도 계획을 짜서 생활한 사람과 그냥 산 사람은 결과적으로 분명히 차이가 있을 게다. 하루는 3등분(오전 오후 저녁을 각각 4시간씩) + α(이동시간/식사시간/자기 전 등) 해서 생활했고, 그러면 하루 공부시간은 평균 13시간 정도였던 것 같고, 주 단위, 월 단위, 연 단위 계획을 각각 유기적으로 세우고 수정하기를 반복했다.

 

 

 

 

 

 

Ⅵ. Epilogue

나는 영화를 좋아하고 드라마를 좋아한다. 3년차 동차를 준비하던 시절 고시원에서 자기 전에 매일 나는 합격수기를 썼다(마음속으로). 그 때의 기분대로라면 좀더 드라마틱하게 쓰고 싶었지만, 그것보다는 좀더 현실적인 동차생들의 길잡이가 되어주고자 많이 자제했다. 어느 정도 도움이 될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이제 다시 수험생으로 돌아가라면, 차라리 군대를 다시 가겠노라고 얘기하고 싶다. 내가 이 글 초반에 수험생활을 제2의 군생활로 간주한다고 말한 바 있지만, 둘은 분명히 다른 점이 있다. 그것은 불확실성이라는 것이다. 군대야 시간만 지나가면 제대하는 건 확실하지만, 수험생활은 시간이 얼마나 지나도 합격한다는 보장이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확실성을 확실성으로 바꿀 수 있는 방법은 이미 얘기한 바 있다. 즉 세상은 공평하다는 믿음과 자신에 대한 믿음, 그리고 피나는 노력과 최후 시험장을 나오는 순간까지 최선을 다하면 반드시 합격한다.

 

 

 

내가 지금껏 살면서 가장 기뻤던 순간을 이야기하라면 군대 제대하던 날이었다. 하지만, 감정평가사 시험 합격(제2의 제대)은 그보다 몇 배 더 기쁘다. 이것 또한 군생활과 수험생활의 큰 차이점 중 하나다. 모두들 이러한 기쁨을 꼭 맛보시길 기원하며 글을 마친다.




Ⅰ. 들어가며

결과를 기다리는 4개월 여의 기간은 기나긴 악몽이었다. 숱한 밤을 뜬 눈으로 지새웠고 식욕을 잃어 허기진 몸을 한 잔의 맥주로 추스른 날도 많았다. 결과에 관계없이 더 이상 감평공부를 계속하지 않으리라 마음먹었기에 더욱 그러했다.

 

 

합격자 발표를 이틀 앞둔 날 저녁에 함께 공부했던 사람들과 이심전심으로 생맥주 몇 잔하고 노래도 부르며 초조한 시간을 달랬다. 조금 일찍 결과를 알아볼 수 있음을 전해 들었으나 합격에 대한 자신이 없었던 나는 절망을 앞당겨 맛보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아침이 되자 불합격도 괜찮으니 한시바삐 기다림의 고통에서 해방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처에 전화를 해서 어떤 결과라도 괜찮으니 최대한 빨리 전해 듣고 싶다는 마음을 전해 놓고 물 한 모금 삼키지 못한 채 드러누워 있었다. 기다림의 시간은 어찌 그리 길게만 느껴지던지....

 

 

드디어 전화벨이 울린다. 평소에 나와 농담 한 마디 주고받은 적도 없는 분이 “한정아 씨! 옆에 있으면 꼬~옥 안아주고 싶네요.” 그런다. 옳다, 이렇게 위로를 하시는구나. 눈앞이 깜깜했다. 그런데 합격이라는 얘기가 들려온다. 만세!! 드디어 해냈다.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졌다. 시어머님께서는 며느리의 합격 소식에 일주일 동안 태극기를 게양하셨단다.

 

 

 

Ⅱ. 응시동기

고등학교 시절 우여곡절 끝에 공인회계사의 꿈을 간직하게 되었다. 회계학과 여학생 1호가 되어 홍일점인 나는 갖은 애환을 겪으며 가슴엔 남못지 않은 야망을 품고 나름대로 고민하며 대학시절을 보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졸업 무렵 여러 가지 악재가 겹치면서 꿈을 접고 결혼이라는 수단을 택하여 주저앉고 말았다.

 

 

건강이 좋지 못하여 첫아이를 낳아 기르고 살림 꾸려나가는 것조차 힘겨워 결혼 후 5년 간 하루의 절반은 누워지냈다. 갖은 노력 끝에 건강이 조금 회복되자 외로움 타는 아들에게 동생을 선사했다. 그렇게 둘째 아이 낳아 기르느라 또 5년이 지났다.

 

 

서른 다섯 살 무렵 조금 여유가 생기자 타고난 끼를 묻어두지 못해 밖으로 나돌기 시작했다. 수영, 주부연극반, 독서토론회, 성당의 레지오 봉사활동 등으로 일주일을 빡빡하게 채우고도 허전한 마음이 달래지지 않았다. 방황 끝에 얻은 결론이 공부였다. 회계학이 들어간다는 이유로 주택관리사 시험에 도전을 했고 순조로운 합격에 자신감을 얻었다. 그리고 1차 시험 과목이 낯설지 않다는 이유로 감정평가사 시험을 준비하게 되었다.


 

 


Ⅲ. 도전

1. 무모한 도전 (1998년~1999년)

남편 퇴근 후 하루 4, 5시간 동네 공공도서관에서 7개월 정도 공부하여 1차 시험에 합격했다. 혼자 판단으로 선택한 공부였고, 오로지 혼자서 공부했기에 내가 접한 정보라곤 ‘부동산고시(現 [월간]감정평가사)’를 통한 것이 전부였다. 경제학, 민법, 회계학은 낯선 과목이 아니었기에 지금은 잘 기억도 나지 않는 단순한 책을 선택하여 반복하여 보았고, 부동산관계법규는 공민달 평가사의 책을 보았다. 실전연습은 ‘부동산고시(現[월간]감정평가사)’의 모의고사 문제를 모아서 했다.

 

 

1차만 통과해놓고 본격적인 공부의 시작과 끝이 어디쯤인지 짐작도 못한 채 그간에 소홀했던 가정주부 역할로 바빴다. 추석명절을 전후하여 시골집 맏며느리 노릇 하느라 11월에 들어서야 처음으로 2차과목 기본강의를 들었다. 그것도 세 과목을 한꺼번에 수강하기가 벅차 법규와 이론 두 과목만 수강하고 실무는 기본강의도 듣지 앉은 채 1월부터 시작하는 N학원 스터디반에 들어갔다.

 

 

실전연습으로 진행되는 스터디반에서 이론과 법규는 책을 펴놓고 베꼈고 실무는 손도 댈 수가 없었다. 힘겹게 1기를 마치고 도중하차하여 혼자서 공부를 했다. 시험장에서 마지막 순간까지 자리를 지켜내는 것으로 만족하고 다음을 기약했다. 나름대로는 쉽지 않은 도전이었지만 본궤도에 올라보지도 못한 무모한 도전이었다.


 

 

2. 본격적인 도전(2000년)

연습은 끝이 났다. 본격적인 도전이 시작되었다. 그때가 서른아홉살이었다. S학원 스터디반에 들어가 동차합격을 목표로 공부에 박차를 가했다. 마흔이 되기 전에 공부를 끝내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으로 1차시험을 한 달 반 앞둔 시기까지 2차 공부만 했다.

 

 

하루하루 시간과의 전쟁이었다. 시댁과 친정을 멀리 떠나와 외롭게 시작한 서울생활이라 남편의 역할분담을 제외하면 육아와 가사에 남의 도움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별 생각 없이 보내면 하루 한두 시간 공부하기도 힘든 상황이었다. 남편과 두 아들 아침 먹여 보내고 가볍게 집안 정리 마친 후 도서관으로 향했다. 오전 세 시간을 공부하고 점심 식사시간에 맞추어 집으로 돌아오면 장보기, 청소, 빨래 그리고 저녁 준비까지 눈코 뜰 새가 없다. 부족한 공부시간을 보충하기 위하여 일하는 동안에도 귀는 항상 강의 테이프에 고정되어 있었다.

 

 

한쪽엔 세탁기가 돌아가고, 한쪽엔 청소기가, 다른 한쪽엔 압력솥이 칙칙거리고, 또 한쪽엔 집이 떠나갈 듯이 볼륨을 높여 놓은 카세트가 돌아갔으니 가히 전쟁이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혼자서 치르는 시간 확보를 위한 전쟁 중에 가족들이 예고 없는 이른 귀가라도 할라치면 내 싸늘한 눈초리를 감수해야 했다.  남들보다 두어 시간 일찍 저녁을 먹는 것으로 하루의 전쟁을 끝내고 퇴근하는 남편과 교대하여 도서관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힘들여 얻어낸 저녁 공부 시간이 4시간이었으니 하루 7, 8시간 공부가 고작이었다. 하지만 책상에 앉아있는 시간만큼은 혼신의 힘을 다해 공부했다.

 

 

그러다 보니 남모르는 고충이 하나 있었다. 일주일에 하루 함께 모여 공부하는 학원 스터디반에서 최대한 많은 정보와 자료를 얻어야 했지만 내가 팀원들에게 받은 만큼 돌려줄 것이 없다는 것이었다. 하루 7, 8시간 공부시간은 오로지 나만을 위하여 나에게 가장 필요한 공부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팀원들에게 항상 당당할 수가 없었다.

 

 

스터디팀의 분위기에 고무되어 5월말 경까지 2차 공부만 하다가 문득 1차 공부 쪽으로 눈을 돌렸다가 상황이 만만치 않음을 깨닫게 되었다.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판단이 들었다. 다급한 마음에 2차 공부를 완전히 접을 수밖에 없었고 한 달 반 가까운 1차 시험 준비기간은 반쯤 넋이 나간 상태로 보냈다. 길을 걸을 때도, 밥을 먹을 때도, 잠을 잘 때도 자투리 시간에는 이명현상에 시달릴 정도로 강의 테이프를 들었다. 이웃을 만나 시간이 쪼개질까 걱정되어 아파트 주변의 산길을 이용하여 도서관을 오가다가 순찰을 도는 경찰로부터 위험하다고 경고를 받았지만 귀에 들어올 리 만무했다.

 

 

시험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날, 부족한 공부량을 인정하고 통한의 눈물을 삼키며 이왕 마지막이 될 공부라면 부끄럽지 않게 끝을 맺자는 생각이 들었다. 여름철임에도 불구하고 미역국을 곰솥으로 한솥 끓이는 것으로 가족들을 위한 일주일간의 반찬 준비를 끝냈다. 밥과 미역국과 김치가 일주일간 움직임 없는 식단이었다. 회를 거듭하여 데우는 미역국은 건더기가 녹아 없어져 버렸다. 내 뇌리를 떠났다가 시험 치기 전날 밤에야 눈에 들어온 일주일간 방치해버린 음식물쓰레기에는 파리의 애벌레가 한가득 들어앉아 있었다. 형언할 수 없는 서러움에 울컥 쏟는 울음을 간신히 삼켰다. 시험치는 동안 소름끼치는 애벌레들의 움직임을 생각하며 기필코 합격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전체적으로 공부량이 부족했기에 시험장을 향하는 차안에서도 마무리 공부는 계속되었고 시험을 치루기 직전까지 암기를 다 끝내지 못한 부동산관계법규 책을 빠른 속도로 넘기며 5분만에 한 권을 독파했다. 그리고 그 기억이 채 사라지기 전에 문제를 풀었더니 부족한 공부량에 비하여 80점대의 높은 점수를 받았다. 마지막 5분간의 공부를 포기했다면 훨씬 낮은 점수를 받았을 것이며 합격 또한 장담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때의 경험으로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자세를 무척 높이 평가한다.

 

 

그 해는 1차 시험 합격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2차 공부를 충분히 마무리할 정도의 기력을 되찾지 못한 채 시험을 치르고 말았다. 허전한 마음을 달래기 위하여 시험 후 한 달 정도의 공부기간으로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딴 것이 그나마 조그만 위안이 될 수 있었다.


 

 

3. 마지막 도전(2001년)

마흔을 앞둔 가을에 정신적인 방황을 최소화하고자 15년 동안 살던 좁은 아파트에서 지금의 아파트로 이사하느라 두어 달을 허비하고 말았다. 대부분의 살림살이를 새로 장만해야 했지만 공부하느라 세상을 따라잡지 못해 촌스러워진 감각을 한꺼번에 극복하기가 무척 힘들었다. 합격을 기대하기는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왠지 모를 미련과 이사 전후의 대소사들로 다잡아 공부를 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합격자 발표가 나고 학원마다 스터디반을 모집할 무렵부터 마음이 급해지기 시작했다.

 

 

학원 스터디 일정과 보조를 맞추면서 3월까지는 동네 공공도서관에서 혼자 공부하다가 스터디 2기에 잠시 합류를 했다. 나머지 기간은 ‘부동산고시’에 실린 자료와 학원홈페이지에 실린 스터디 자료들을 충분히 입수하여 정보에 뒤쳐지지 않도록 최대한 신경을 쓰면서 혼자서 마무리를 했다.

 

 

주로 혼자서 공부를 하다보니 외로움이 큰 복병이었다. 이사 후 새로운 이웃을 사귈 시간도 없었고 가족과는 대화를 아낀 지 오래였다. 충분한 마음의 준비 없이 마흔이란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고서 그 서글픈 듯 야릇한 느낌을 혼자서 감당하기가 무척 힘들었다. 그러한 나에게 유일한 대화와 휴식의 공간이 있었으니 인터넷상의 초등학교 동아리였다. 동아리 친구들의 끊임없는 위로와 격려가 있었기에 힘든 시간을 극복해낼 수 있었다.

 

 

시험을 한 달 정도 앞두고 주위에서 잠시라도 집을 떠나 마무리할 것을 권하였지만 가족들의 생활과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는 생활에 길들여져 변화를 주기가 불안했다. 다행스럽게도 교사인 남편의 여름방학 기간이었다. 남편과는 역할 분담에 대하여 달리 의논을 한 적은 없었다. 단지 나의 공부가 본궤도에 들어서면서 내가 팽개칠 수밖에 없는 부분을 남편이 받아서 맡아주는 정도로 묵시적인 약속이 되어 있었다.

 

 

마지막 한 달은 절박한 심정으로 100%를 넘어 120%를 팽개쳤고 남편은 기꺼이 받아 주었다. 20%는 챙겨 먹이지 않으면 굶어죽고 말 것 같은 걱정을 끼친 부분이다. 아침과 저녁은 가만히 앉아 남편이 챙겨주는 밥을 받아먹었으나 그것만으로는 체력유지가 힘들 것 같아 점심은 도서관에서 가까운 식당을 하나 정해두고 김치 한 조각까지 남기지 않고 씹어 삼켰다.

 

 

주어진 시간동안 닥치는 대로 공부를 했다. 항상 부족했던 시간 때문에 서브노트는 시도도 할 수 없었다. 법규와 이론은 전 내용을 망라하여 목차만 과목당 두세 권의 노트에 정리하여 틈만 나면 빠른 속도로 되풀이 읽으며 전체적인 감각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였다. 마지막 일주일은 다급하고 초조한 심정에 집 문밖을 나서지도 못하고 하루종일 서서 집안을 돌면서 마지막 암기를 했고 다리가 아프면 앉아서 실무를 풀었다.

 

 

시험장에서는 100분씩 3과목을 치르는 동안 숨 한 번 크게 쉬지 못할 정도의 긴장감 속에서 내가 준비한 모든 것을 털어 넣었고, 가장 중요한 것은 마지막 만년필을 놓는 순간까지 한 번도 포기하는 마음을 갖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Ⅳ. 마치며

인생을 건 한 판 승부였다. 승부의 세계는 냉혹하고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것이기에 승리는 더욱 값진 것이다. 처음엔 좀 더 나은 인생을 꿈꾸며 삼십대를 희생했다고 생각했다. 합격으로 내 불쌍한 삼십대에 한 점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게 되어 다행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아낌없이 불태운 열정과 합격에의 절절한 염원으로 가득 채운 삼십대야말로 내 인생에 있어 진정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시기였다는 생각이 든다. 승부의 세계에서 승리란 모든 것을 아름답게 만들 수 있는 마이더스의 손인가 보다.

 

 

과정을 되돌아보면 후회와 아쉬움이 많지만 그 열매는 한없이 달콤하다. 이 사후 1년이 되도록 이웃과 담을 쌓고 부스스하고 물기 마르지 않은 머리카락에 헐렁한 옷차림으로 귀에는 이어폰을 꽂고 혼자서 웅얼거리며 같은 시간 같은 거리를 지나가는 싱싱하지도 예쁘지도 않은 여자가 바로 내 모습이었다. 지금은 어설프지만 한껏 커리어우먼 티를 내며 바쁘게 종종거리며 마주치는 사람마다 웃음 띤 얼굴로 부지런히 인사를 나누며 살고 있다.

 

 

합격수기를 써달라는 부탁을 받고, 내가 과연 수험생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의 글을 써낼 수 있을지 고민을 했다. 수험기간 동안 수없이 계획을 세웠지만 한 번도 지키지 못했다. 세 과목을 한꺼번에 책상에 늘어놓고 순간순간 가장 불안하게 여겨지는 과목을 찾아가며 무계획적이고 무질서하게 공부를 했다. 시행착오의 연속이요 혼돈의 연속이었다. 그런 내가 합격수기란 이름의 글을 쓰다니 부끄럽기 짝이 없다.

 

 

합격하고서 얼굴도 모르는 대학 후배로부터 공부를 시작해야 할지 말아야 할 지, 그리고 시작하게 되면 어떻게 공부를 해야 할지를 묻는 메일을 받았다. 아직 시작하지 않았다면 일단은 말리고 싶다고 했다. 어떻게 공부하느냐는 물음에 대해서는 남들만큼 체계적이고 효율적인 공부를 못했기 때문에 좋은 조언을 주기 어렵다고 했다. 단지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이왕 시작한 공부라면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모든 간절함을 담아서 마무리하라고 얘기해 주었다.



Ⅴ. 덧붙이며

마무리하려다 보니 여느 합격수기에 비하여 구체적인 수험정보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180여 명의 합격동기생들 중 굳이 나에게 이런 기회가 돌아온 것은 조금은 남달랐던 수험생활을 소개해 보라는 의미로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누구나 갖추고 있는 평범한 자료와 정보였기에 굳이 소개하지 않고 단지, 남편과 자식 딸린 마흔 먹은 아줌마가 주부 역할 하면서도 이룬 꿈이니 여러분도 반드시 이루어낼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습니다.

 

 

오늘은 독일과의 월드컵 4강전이 치러졌던 날! 아쉬움이 남는 결과지만 진정 최선을 다한 우리 선수들의 모습은 너무도 아름다웠습니다. ‘붉은 악마’의 카드 섹션 구호가 “꿈은 이루어진다” 랍니다. 여러분의 꿈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란 간절한 마음으로 끝까지 최선을 다하길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탄탄한 실력과 강인한 정신력으로 나에게 끊임없는 격려와 도움을 주신 기달 선배님과 수식 씨의 좋은 결과 있기를 두 분과 같은 마음으로 기다리겠습니다. 마지막까지 지치지 말고 최선을 다해 주시기 바랍니다.



Ⅰ . 들어가며

내가 가야 할 길을 안다는 것만큼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없는 것 같다. 난 감정평가사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1년 반 동안 공부를 했고, 무사히 그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었다. 물론 나 나름대로 힘들었던 순간들도 많았고, 포기하고 싶은 순간들도 많았다. 하지만 그러한 순간에 항상 나를 믿어 주시던 부모님과 나의 투정을 받아 주었던 친구들이 있었기에 그 순간들을 무사히 넘겼던 것 같다.

 

 

솔직히 내가 이 합격수기를 써야 할 자격이 있는가 라는 자문에 ‘그렇다’라고 대답할 자신은 없다.  盡人事待天命이라고, 시험 역시 내가 할 일을 다 한 후에 나머지는 운이 작용하는 것 같다. 난 여전히 내가 운 좋게 합격했다는 생각을 하기에 감히 수험생들 앞에서 어떠한 조언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이 글을 쓰기 전에 여러 사람들의 합격수기를 읽어보았는데, 대부분 공부방법들을 써 놓았던 것 같다. 그 분들의 방법들이 모두 옳을 수도 있고, 모두 틀릴 수도 있다. 그건 개개인의 조건이나 환경에 따라서 공부하는 방법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내 생각엔 이래저래 고민하기보다는 일단 부딪혀서 시행착오를 겪어가며 나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방법을 찾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여기서 내가 공부했던 방법에 대해서 말하기보다는 내가 겪어온 시행착오들을 다른 이들은 겪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내가 겪은 수험생활에 대해서 말하려고 한다. 

 

 

개인적으로 난 수학적인 것과 눈에 딱 보이는 것을 좋아하기에 공부할 때도 그러한 방법을 이용했다. 일단 하루 종일 공부하는 것에 적응하기 전에는 하루에 10시간이라는 공부시간을 정해 놓고 시간을 재어 가며 10시간이라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나가서 쉬고 싶고, 친구들과 어울리고 싶은 유혹들을 뿌리치고 묵묵히 공부했다. 그리고 어느 정도 공부하는 관성이 생겨 시간을 재지 않고도 그 정도 공부할 만큼 되었을 때부터는 하루의 진도를 정해 놓고 그 분량을 공부했다. 그런 후에 고시원으로 향할 때는 뿌듯함을 느끼곤 했다. 물론 하루 하루의 계획도 있지만 일주일, 한 달의 계획도 설정하는 것이 공부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과도한 일정보다는 일단 여유 있게 목표를 잡고 서서히 해 나가는 것이 좋은 방법인 거 같다. 그렇게 꾸준히 하다보면 공부에 탄력이 생기고, 그런 후에 학습량을 늘려도 늦지 않을 것이다.


 

 


Ⅱ. 2000년 감정평가사 1차 시험

1차 시험의 과목(민법, 부동산관계법규, 경제원론, 회계학)을 보니 무척이나 낯선 과목들이었다. 일단은 학원을 다니면서 공부하는 것이 단시간 내에 실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어 동기들의 조언을 얻어 노량진의 모 학원을 다니기로 결정했다. 1월, 2월 두 달 과정이라 그리 부담되지 않는다는 생각도 들었다.

 

 

사람들이 참 많았다. 내가 들었던 그 어떤 수업보다도 많은 사람들이 나와 같은 수업을 들었다. 수업은 하루에 4~5시간 정도 했는데, 사람이 많아서 실내 공기도 안 좋고 의자도 불편해서 졸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원체 잠도 많던 내가 공부한답시고 잠을 줄이다 보니 하루에 1시간 동안은 매번 잤던 기억이 난다. 그래도 경제원론과 회계학 시간만큼은 졸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 과목들은 공대생인 나에겐 신천지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수업시간에 놓치면 정말 복습하기가 힘들었다.

 

 

학원을 다니면서 수업 첫 오리엔테이션 시간에 강사님이 했던 말-예습은 열심히 해도 잘 모르니, 복습만큼은 철저히 하라-처럼 복습 위주로 공부를 했다. 복습은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생각되는 암기과목보다는 경제원론, 회계학을 중심으로 저녁 수업을 받기 전에 공부를 했다. 공부 장소를 딱 정해서 공부하지 않고 동네 독서실, 인근 대학 도서관을 전전하며 공부해서인지 꾸준히 공부하는 것이 어려웠다. 솔직히 그 땐 공부하기가 싫었다.

 

 

그러면서 어느덧 두 달 과정이 다 지나고 3월 새 학기가 시작되었다. 난 1차 공부를 할 땐 학교를 다니면서 공부를 했다. 물론 둘 중 하나는 포기해야 할 것 같아서 학교공부를 열심히 안 했지만 말이다. 그래도 동료들의 도움으로 무사히 한 학기를 보낼 수 있었다. 동료들에게 참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3월이 되어 다시 경제원론, 회계학을 처음부터 보기 시작했는데 이게 웬걸, 처음 보는 것처럼 생소하게 느껴져 얼마나 당황스러웠는지 모른다. 앞으로 시험은 4개월 남짓 남았을 뿐인데.... 이래선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맘을 굳게 먹고 집을 나와 고시원에 들어가면서 핸드폰도 해지했다. 사실 학교에서 집까지 30~40분 정도 밖에 걸리지 않지만 그 시간조차도 아껴야 한다는 생각도 들고, 집에 있으면 아무래도 꾸준히 공부하는 데 한계가 있는 것 같아 몇 달만 참고 고시원에서 승부를 보자는 맘을 먹었다.

 

 

고시원 첫날밤은 왜그리 서럽던지.... 왜 편한 내 집을 놔두고 이 비좁은 고시원에서 잠을 자야 하나 라는 생각도 들고, 내가 다시 군대에 왔나 라는 생각도 들고, 하여튼 이런 저런 생각으로 그 날 밤은 깊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한 생각 끝에 내가 내린 결론은 처음엔 몇 평 안되는 비좁은 방에서 시작하지만 두고 보자 앞으로 열 배, 백 배 되는 집에서 살도록 이 악물고 공부하자는 것이었다.

 

 

3, 4월에는 학교수업을 들으면서도 나머지 시간들을 잘 활용해 열심히 공부했다. 우선 경제원론, 회계학이 시급하기에 두 과목을 집중적으로 했다. 회계학은 학원교재와 이효익 교수님의 문제집을 가지고 공부했고, 경제원론 역시 학원교재와 정병렬 교수님의 문제집을 중심으로 공부했다. 학원을 다니면서 복습했던 것이 도움이 되어 어느 순간부터인가 너무 하기 싫었던 두 과목에 흥미를 느끼게 되었다. 공부를 하면서 느낀 거지만 일단 흥미를 느끼게 되면 자연스럽게 점수도 올라가는 것 같다. 그러면서 문제를 풀면 틀린 답보다 맞는 답이 더 많고 자신감도 생겼다.

 

 

5월이 되면서 이제 민법과 부동산관계법규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부족하여 문제집보다는 학원 다닐 때 공부했던 조병욱 교수님의 책을 가지고 공부했다. 그런데 두 과목도 만만한 게 아니었다. 민법은 재미가 있어선지 점수가 서서히 오르기 시작했는데, 남들이 전략과목이라고 하는 부동산관계법규는 전혀 나아지질 않았다. 그래도 5월 중순경에 본 모의고사에서 합격권에 들었다.

 

 

6월이 되어 날도 더워지고 학교에 여러 가지 행사가 있다 보니 나의 마음도 술렁이기 시작했다. 그와 맞물려 같이 학교 도서관에서 공부하던 선배들, 동기들의 힘겨워 하는 모습을 보니 일년 후의 나의 모습이 생각났다. 나도 앞으로 일년을 더 저렇게 보내야 하는구나 생각하니 두려웠다. 난 그렇게 해서 긴 슬럼프에 빠져들었다. 그렇게 한 달 여를 슬럼프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나는, 시험 전날 그래도 시험은 합격해야 좋은 거 아니냐는 생각이 들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에 믿는 종교도 없으면서 기도를 했다. 2차 시험에 합격시켜 주실 거면 내일 시험 잘 보게 해 주시고, 그렇지 않으실 거면 떨어뜨려 주세요 라고....

 

 

참 이기적인 나의 기도였지만 운 좋게 합격하게 되었다. 회계학이 의외로 높은 점수를 얻었고 과락을 걱정했던 경제원론에서도 어느 정도의 점수가 나왔다. 



 

Ⅲ. 2000년 감정평가사 2차 시험

합격 소식을 듣고도 ‘아까우니까 2차 공부를 해야겠다’는 맘만 들 뿐, 1차 공부기간 마지막 슬럼프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했기에 공부하기가 너무 싫었다. 학교를 휴학하고 선배들의 조언에 따라 9, 10월에 노량진의 학원에서 2차 종합반 강의를 들었다. 실무는 재미가 있었지만 법규와 이론은 너무 재미가 없고 졸리기만 했다.

 

 

그래서 10월에는 실무 강의만 듣고 나머지 과목은 그냥 혼자 하기로 했다. 11, 12월 달에는 친구를 따라 학교 선배인 재진 형, 정훈 형의 강의와 법규 수업을 들으러 서울대역 근처의 학원을 다녔다. 학원을 다니면서도 내 마음속에서는 공부를 하고자 하는 의욕이 생기지 않았다. 마음이 없으니 당연히 머리도 따라가지 않았다. 그렇게 4개월을 보내고 2001년 1월부터 노량진의 학원에서 스터디를 하게 되었다.

 

 

스터디를 한 것이 나에게는 하나의 계기가 되었다. 나와 같은 배를 탄 여러 사람들을 만나서 그들의 공부하는 방법도 보고, 그들의 실력도 보면서 장난이 아니구나, 나도 열심히 공부해야겠구나 라는 결심을 했다. 그래서 다시 학교 앞 고시원에 들어가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스터디 반에서 모의고사를 치르는 것은 나에겐 매우 심한 벌이었다. 정말 쓸 말도 없고 채점 후의 나의 답안지를 받아 보는 것도 곤욕이었다. 그래도 실무만 잡자 라는 생각에, 시중에 나와 있는 실무문제집과 지난 스터디 자료 등을 하나하나 풀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내 실무 점수는 점점 오르기 시작했다. 스터디 1기 말부터 오르던 나의 점수는 2기에 접어들면서 진정으로 원하던 일등도 한 번 해보고 어느 정도 수준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실무에 자신이 생긴 그 다음부터는 암기과목에 대한 두려움이 생기기 시작했다. 원래 암기과목을 싫어하기도 했을 뿐더러 시간도 부족한데다가 그동안 열심히 공부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 때부터 실무 공부의 비중을 대폭 줄이고 법규를 60%, 이론을 30% 정도 공부하기 시작했다. 실무는 공부하면서 재미도 있고 점수도 많이 오르던데, 두 과목은 왜 그리 하기 싫던지.... 시간이 촉박해 두꺼운 책을 공부하기보다는 선배들이 물려준 스터디 자료와 스터디 시간에 나눠준 유인물을 중심으로 공부하고 이해가 가지 않은 부분만 책을 통해 공부했다. 하지만 2기 막바지에 가서도 두 과목에 대한 자신도, 점수도 오르지 않았다. 그리고 6월 스터디 3기에 접어들었다.

 

 

날씨는 더워지고 왜 그렇게 암기과목은 외워지지 않던지, 1차 시험 마지막의 그런 심한 슬럼프는 아니지만 약간의 슬럼프에 빠져들었다. 체력의 한계로 몸은 힘들고, 덩달아 머리회전속도도 뚝 떨어졌다. 힘들어서 그런가 싶어 하루 이틀 쉬어봐도 상태는 그다지 좋아지지 않았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이전의 슬럼프가 정신적인 거라면, 이번엔 체력적인 슬럼프이기에 힘들어도 책상에 앉아서 꾸역꾸역 공부를 했다는 것이다. 3기 모의고사에서 나의 문제는 여실히 드러났다.

 

 

실무는 그럭저럭 점수가 나왔지만 이론과 법규는 내가 잘 아는 부분이 아니면 과락의 점수가 나오기 일쑤였다. 마음은 조급해져서 실무는 거의 제쳐 두고 이론, 법규 두 과목만 공부했다. 그래도 3기 마지막까지 점수는 많이 오르지 않았다. 스터디 3기가 끝남으로써 모든 스터디 과정이 끝났지만 자신이 생기지 않았다.

 

 

드디어 8월말 시험날이 되었고, 솔직히 난 그 날 너무 기분이 좋았다.  이제 끝이구나 라는 생각이 드니 맘이 편했다. 물론 합격할 자신이 있어서가 아니라, 이제 한동안 공부 안하고 놀아도 되는구나 라는 어찌 보면 어리석은 생각이 들어서 말이다. 12회 시험에서는 특히 실무가 어려웠다. 근 2~3개월 동안 암기과목을 위주로 공부하고 실무는 거의 손을 놨기 때문에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10점 이상을 풀지 못했고, 그나마 푼 문제들도 정답이라는 자신이 없었다. 실무 시험이 끝나고 그냥 집으로 가고 싶었지만 그 동안의 시간들이 너무 아까워 그냥 시험을 계속 보기로 했다. 실무에 비해 상대적으로 나머지 두 과목은 한 두 문제를 제외하고는 매우 평이하게 나왔다.

 

 

그리고 몇 달 후 동기로부터 합격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실감이 나지 않아 한동안 멍한 느낌이었다가 일순 가슴이 벅차 올랐다. 지금 다시 그 순간을 생각해 봐도 가슴이 뭉클해진다.



Ⅳ . 마무리

시험이 끝나고 난 후 난 이런 생각을 했다. 물론 합격한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겠지만, 만약 떨어지더라도 지난 1년 반의 경험은 내가 앞으로 인생을 살아가는 데 많은 도움이 되리라고 말이다. 이 글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나 역시 평범한 인간이고, 많은 난관을 겪으면서 수험생활을 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내가 옳은 방법으로 공부하고 있는 것일까, 내가 합격할 수 있을까 라는 고민을 하고 있는 수험생들께 감히 한 마디 하자면, 자신을 믿고 꾸준히 정진한다면 반드시 좋은 결과가 온다는 것이다. 지금 당장은 힘들더라도 말이다.

 

 

끝으로 내가 공부하는 동안 나를 끝까지 믿어주셨던 부모님, 경일 형, 성호, 정규, 영신 형, 우현, 건호, 성아, 민희, 경탁 형, 강수 형, 재진 형, 정훈 형, 진식 형, 정미, 창희, 요한 형, 보성, 범석, 재무, 재진, 성식, 현석, 대영 형, 용훈, 병우, 지호, 동형, 스터디 팀원들, 그리고 나를 믿고 기다려준 여자친구에게 정말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Ⅰ. 들어가며

나는 97년 대학3학년이 되는 해에 안정된 직장을 구하기 위해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기로 맘을 먹고 휴학을 한 후 노량진 J학원에서 공무원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다. 7, 9급을 가리지 않았다. 그래서 1년 후 98년에 가장 처음 있는 법원직 공무원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던 97년 여름 같은 과 동기로부터 감정평가사 시험에 대해 얘기를 듣게 되었다. 그땐 뭔가에 씌웠는지 감정평가사라는 시험에 상당한 매력을 느꼈고 이 시험을 반드시 합격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반년이 넘도록 준비해온 공무원 시험을 그냥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일단 98년 시험은 보고 감정평가사 시험준비를 시작하려고 그 해 겨울까지는 공무원 시험을 계속 공부를 했으나 감정평가사 시험이 만만찮은 시험이라는 얘길 계속 듣게 되었고, 감정평가사에 대해 알고 나서는 공무원에 대하여 그다지 끌리지가 않았다. 급기야 1년 동안 준비해온 공무원 시험을 그만 포기하게 되었고, 정확히 98년 1월 1일부터 4년 간의 수도생활이 시작하게 되었다.

 

 

누구나 수험생활은 힘들고 뼈아픈 경험이다. 사실 이것 이외에는 별로 할 말도 없는 것이 수험생활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시간에 쫓기는 수험생들께서 잠시나마 여유를 갖고 이 글을 보게 될 때 뭔가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맘으로 몇 자 올린다.

 

 

Ⅱ. 수험생활

1. 9회 1차 시험 불합격

98년 1월 3일 노량진 N학원에서 드디어 감정평가사 시험을 준비하게 되었다. 난 전공이 법학이고, 또 법원직 공무원 준비 때문에 민법만큼은 자신 있었고, 부동산 관계법규도 별 문제될 게 없었다. 그러나 나로선 회계학과 경제학은 처음 접하는 거라 무척이나 생소했고, 특히 회계학이 자신이 없었다. 그래도 6개월 동안 열심히 하면 되겠지 하는 막연한 생각을 했다. 나처럼 처음 준비하는 분들은 1차 시험의 경우는 학원 수업만 잘 따라가면서 복습과 예습(?)만 충실히 한다면 별문제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말처럼 그렇게 쉬운 게 아니다.

 

 

2차도 마찬가지지만 1차의 경우도 전략과목이 있어야 된다. 나는 민법과 관계법규가 전략과목이었다. 물론 회계학과 경제학도 50점 이상은 되어야 한다. 단지 과락만 면할 생각을 하는 것은 무척이나 위험한 발상이다. 과락만 면할 생각을 한다면 과락이 될 가능성이 크다. 난 모의고사를 보면 민법과 관계법규는 상당한 점수가 나왔지만 회계학이 항상 35점에서 40점으로 왔다 갔다 했는데 이점수가 마지막 모의고사 때까지 변함이 없었고, 실제시험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쉽게 점수가 오르지 않았다. 결국 9회 1차 시험에서 평균은 넘는데 회계학이 과락으로 불합격을 하게 되었다.

 

 


2. 10회 1차 시험 합격

나로선 감정평가사 시험을 반드시 합격하기로 다짐했기에 불합격으로 인하여 낙심할 시간이 없었다. 10회 시험은 동차를 목표로 하고 바로 2차 수업을 S학원에서 듣기 시작했다. 2차 과목은 1차와는 비교도 안될 만큼 나에게는 생소하고 어려웠다.

 

 

1차는 경험이 있었던 터라 자신이 있었다. 그래서 99년까지는 2차를 중심으로 공부를 하였다. 학원 study는 하질 않았다. 3월이 되자 1차 시험에 한 번 낙방한 경험이 있었기에 1차가 상당히 부담되어 2차에 집중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3월부터는 1차를 중심으로 공부하기 시작했다. 4, 5월이 되니 2차에는 손이 가질 않았다. 1차가 되지 않으면 2차도 없다는 생각에 1차에만 치중하게 되었다. 10회 1차 시험은 여유 있게 합격했고, 2차는 역시 공부가 부족했기에 여지없이 떨어지고 말았다.

 

 

 3. 11회 2차 시험 불합격

10회 2차 시험을 치르고 난 후 난 불합격을 직감했고 바로 9월부터 2차 공부를 시작했다. 남들보단 하루라도 빨리 시작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2차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난 나만의 sub-note를 만들기 시작했다. 12월까지는 2차 관련 모든 수업을 들었다. 행정법은 물론 실무, 이론, 법규 그러나 사실상 느낌이 와 닿는 수업은 하나도 없었다. 2000년 1월부터 학원 study를 하면서 이젠 나 혼자만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조금씩 두꺼워지는 sub-note에 나의 실력 또한 늘어갔고 자신감도 생기기 시작했다. 그러나 주의할 것은 sub-note 작성에 너무 시간을 뺏기면 안 된다는 것이다. 즉 차츰 수정을 해나갈 생각으로 작성을 해야지 처음부터 완벽하게 작성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6, 7월이 되니까 실무의 웬만한 문제는 다 풀 수 있었고 법규, 이론도 웬만한 문제는 다 써낼 수가 있었다. 그러나 11회 2차 시험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12월 합격자발표 때 합격자와 불합격자의 차이는 하늘과 땅이다. 너무도 괴로웠다. 부모님께는 면목이 없었다.

패인은 그것이다. 한쪽으로 치우치는 공부, 즉 이론에서 우리는 흔히들 신이론, 구이론으로 나눈다. 난 6월이 되면서 신이론(안정근 이론)으로 너무 치우친 것이다. 또 하나의 패인은 자기만의 중심을 갖고 공부를 하지 않았다. 즉, 시험이 다가올수록 수험생들은 귀가 얇아진다는 것이다. 정보의 중요성은 말하지 않아도 잘 알 것이다. 그러나 그 정보를 받아들일 때 자기 중심은 흔들리지 말아야 된다는 것이다.

 

 

 


4. 12회 1차, 2차시험 합격

11회 2차를 떨어지고 12회는 동차를 해야 된다는 것이 너무 부담이었다. 그래도 1차 먼저 합격하고 2차를 하기는 더욱 싫었다. 너무 지쳤고 지겨웠다. 이를 악물었다. 11회 합격생 중에서 동차생이 25여명,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실무는 11회 시험을 치르고 난 후 혹시나 하는 생각에 실무 개별 study는 계속해왔다. 2001년 1월, 2월은 1차에서 회계학과 경제학수업을 들었다. 물론 2차 학원 study는 계속했다. study 1기 때는 2차 중심으로 했다. 물론 2차 경험이 있었기에 충분히 따라갈 수가 있었다 그러나 2기study가 시작되고 5월이 되면서 1차에 대한 부담이 커졌다. 그래서 5월부터는 1차에 비중을 두기 시작했다. 5월말 1차 모의고사가 평균 60점을 넘지 못했다.

 

 

그러나 지난 3년도 그랬듯이 난 떨어진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6월 한 달은 2차를 잠시 접고 1차만 집중적으로 학습하였다. 6월 말 모의고사에서는 평균 60점을 간신히 넘기게 되었다.

 

 

1차 시험은 무난히 합격을 하였고 이제는 2차가 문제였다. 한 달을 2차 과목을 손떼고 있다가 다시 보려고 하니 너무 막막하였다. 다시 한번 이를 악물었다. ‘이번에 끝내야한다’ 라고 실무는 200점씩 무조건 오전12시 이전에 끝내고 이후에는 이론과 법규를 무조건 외웠다. 다행히 12회 2차 시험이 1주일 늦추어졌다. 1차 시험 후 주어진 시간은 50여일, 이 50일에 내 인생이 걸렸다고 생각했다.

난 12회 감정평가사 시험을 합격했다.



 

Ⅲ. 학습방법

1. 1차 학습방법

(1) 민법

일단 1차는 학원의 수업을 착실히 따라가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나름대로 계획이 있을 것이다. 민법을 처음 접하는 분들이라면 기본서를 2~3번 정독을 해야 할 것이다. 또한 법을 공부할 때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법조문의 중요성을 무시하게 되는데 일단은 법조문의 암기가 다 되어있어야 한다. 법조문만 파악하고 있으면 민법 60점 이상은 충분히 받을 수 있다. 또한 민법에서 99년도부터 판례를 물어보는 문제가 다수 출제되는 것을 다들 알고 있을 것이다. 따라서 판례에 대한 공부와 정확한 이해가 필요하다. 그리고 반드시 사시용 문제집을 하나 선택해서 계속 풀어 나가야 한다.

 

 

(2) 관계법규

부동산 관계법규는 너무나 방대한 내용이라서 반드시 학원 강의를 들어야 한다. 관계법규 또한 99년 이후로는 법 내용뿐만 아니라 시행령, 시행규칙의 내용까지, 그리고 판례문제까지 출제되는 경향이다. 따라서 꼼꼼하게 학습하지 않으면 점수가 안나오는 과목이다. 이 또한 반드시 문제집을 병행해야 한다.

 

 

(3) 회계학

회계학은 대부분의 수험생이 부담을 느끼는 과목이다. 우리가 학습해야 할 회계학은 크게 재무회계(특수회계포함), 원가회계이다. 99년도 이전에는 원가회계가 쉽게 점수를 얻는 과목이라고 했지만, 지금은 원가회계도 만만찮은 부분이다. 상당한 학습을 요한다. 재무회계에 대해 말을 하자면 회계학에 부담을 느끼는 분들이라면 재무회계를 전부 다 할 수는 없다. 본인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부분만 확실히 학습하는 것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회계학을 다 풀 수 있다고 해도 시간 배분상 다 풀 수가 없기 때문이다.

 

 

(4) 경제학

경제학은 감정평가사 시험의 경제학이 가장 수준이 높다. 따라서 만만찮은 과목이다. 경제학은 미시, 거시, 국제경제학으로 나누어지는데 미시의 경우는 철저한 이해가 필요하다. 단순히 암기하려고 하면 그 결과는 뻔한 것이다. 철저한 이해를 바탕으로 반복적인 암기가 필요하다. 거시 또한 충분한 이해가 필요하다. 국민소득결정론, 화폐공급․수요, IS/LM, AD/AS 곡선, 실업과 인플레이션, 학파별 비교 등 가장 어렵고도 출제비중이 높은 부분이다.

 

 

(5) 영어

13회 시험부터는 영어가 포함되는데 수험생들에게는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세무사시험에서 영어가 추가되었을 때 7급 공무원 이상 고시수준 이하의 수준으로 출제되었다고 한다. 우리 시험에는 어떻게 출제될지는 확실히는 알 수 없지만 만만의 준비가 필요할 것이다.


 

 

2. 2차 학습방법

(1) 실무

실무는 크게 보상실무와 일반실무, 그리고 실무이론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보상실무는 먼저 보상실무 관련 조문을(토보침, 공특칙 등) 철저히 암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일반실무는 유형별로 기초적인 유형부터 차근차근 풀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실무는 100점을 100분 내에 풀 수 있을 실력이 될 때에는 하루에 200점씩 푸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처음에는 힘들지만 실력이 쌓이면 오전 내에 충분히 가능하다. 그리고 실무는 오답note를 작성하는 것이 좋다. 안 그러면 틀리는 것을 또 틀리는 실수를 범하게 된다. 문제를 풀 때도 바로 푸는 것이 아니라, 처음 10분 내지 15분 정도 초안을 잡는 연습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실무는 대부분의 수험생들이 어려워 하는 과목이다. 따라서 많은 시간과 열정을 투자해야 만이 실력이 쌓이게 된다.

 

 

(2) 이론

이론은 대개 신이론(안정근 이론)과 구이론으로 나누는데 각각 따로 sub- note를 작성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어느 것에 치중해서는 안 된다. 이론은 내용이 정립되어 있지도 않고, 너무도 방대하기 때문에 어떻게 공부해야 할지 감을 못 잡을 수도 있다. 이론은 본인한테 잘 맞는 sub나 기본서를 정해서 하나만 외운다는 맘으로 공부해야 된다. 사실 시사적인 부분을 제외하고 책 한 권만 전부 외워버리면 충분히 합격수준이 될 수 있다.

 

 

(3) 법규

법규는 행정법과 토지수용법, 공특법, 지공법으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먼저 행정법기초가 충분히 있어야 한다. 특히 행정행위와 행정소송, 손해전보 등은 반드시 정리가 되어 있어야 한다. 행정법은 시험 당일까지 항상 병행해서 공부하여야 한다. 그리고 토지수용법 등은 관련조문을 반듯이 암기를 해야한다. 민법도 그랬듯이 법조문의 중요성은 보상법규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법규도 이론과 마찬가지로 sub-note 작성을 권유하고 싶다. 물론 나도 sub를 작성했었다. 그래야만이 시험이 다가올수록 자신감이 생긴다.



Ⅳ. 글을 마치며

나에게도 이런 날이 오는구나… 공부를 하면서 힘들고 지칠 때는 부동산고시에 실린 합격수기를 자주 보곤 했다. 나에게도 과연 저런 날이 올 수 있을까..?

 

돌아보면 짧고도 긴 세월이다. 합격을 하고 나서 수험생활 3년 6개월을 뒤돌아보니 좋은 추억으로 떠올려진다. 합격을 하지 않으면 과연 지난 세월이 좋은 추억으로 남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모 인사가 이런 말을 했다.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 아픈 시련이 있는 만큼 여러분의 합격은 더욱더 빛날 것이다.

 

끝으로 합격의 날까지 물심양면으로 뒷바라지를 해주신 부모님께 감사 드리며, 같이 고생한 동료들, 부디 이번에 합격의 영광이 함께 하길 기원하며 얼마 안 남은 기간 파이팅 해주시길….


 

Ⅰ. 들어서며

2001. 12. 14

 

“경묵아... 너 합격한거 같다.”

 

합격자 명단이 대한매일신문에 공고되기 전날, 오후 늦게 야 친구에게서 이런 전화를 받았다. 난 거짓말하지 말라고 받아쳤다. 이 때쯤이면 유난히도 더웠던 2001년 8월 26일, 서울대에서 고생했던 응시생 모두들 자신의 당락 여부를 알만도 할 시점이었다. 하지만, 난 어이없게도 이렇게 친구에게서야 합격 소식을 처음으로 전해듣게 되다니.

 

 

합격이란 것이 주는 기쁨과 환희에 비해, 이 순간은 정말이지 드라마틱한 구석이라곤 하나도 없었던 것 같다. 그 때, 난 대학 생활의 마지막 기말고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모두들 거짓말이라고 하겠지만, 난 정말 발표일자를 망각한 채 가을을 보냈다. 이미 감정평가사 시험은 물 건너 간 일이라고 생각해서, 기업체에 취직, 인턴사원으로 근무까지 하고 있던 터였다.

 

 

그만큼 합격에 대해 자신이 없었다. 다음날, 난 출근길에 생전 처음으로 길거리 가판대에서 신문을 사 보았고, 그제서야 합격이라는 것이 실감이 났다. 그 날 부로 난 짧은 시간이나마 정들었던 회사와 이별을 고해야만 했고, 지금은...... 내가 자격이 있는 수험생이었는지 의심스럽긴 하지만, 이렇게 합격수기라는 것을 쓰고 있다.

 

 

거의 매달 ‘월간 감정평가사(구 부동산고시)’를 읽어왔지만, 솔직히 난 합격수기를 그다지 즐겨 읽지는 않았다. 학원에서 만나 동문수학하던 이들 중 대다수가 ‘부동산고시’를 받아들면 가장 먼저 합격수기란을 펼치는 것을 보고는 의아해 했을 정도다.

 

 

합격수기는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감동을 일으켜 학습의욕을 고취시키는 효과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는 자신의 수험생활에 대하여 기탄과 왜곡없이 밝힘으로써, 글을 읽는 수험생들이 자신의 공부 패턴과 비교, 가장 적합한 학습 방식을 찾아가도록 하는 역할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 특히, 대학생 신분으로 감정평가사를 준비하는 분들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 지금, 졸업 전에 합격한 나의 경험은 대학생들에게 특히 도움되는 간접경험이길 바란다.


 

 


Ⅱ. 수험생활의 시작

군에서 제대한 후 1년이란 황금같은 시간을 날려 버렸다. 복학해서 대학 3, 4년 동안 무엇을 공부하고, 졸업 후에는 무슨 일을 할 지를 탐색할 시간이 필요했지만, 이 기간의 성과라고는 “노는 것에 지쳐 공부할 마음이 절로 생긴 것” 외에는 없었다. 99년 3월 1일, 3학년으로 복학하기 위해 집인 부산을 떠나 서울로 올라왔다. 그리고, 몇 년 동안 얼굴 보기 힘들었던 과 동기 친구들을 만났다. 1, 2학년 때 같이 당구장, 술집, 무도회장을 밥먹듯이 드나들었던 친구들. 학교 시험을 보면 누가 제일 빨리 답안지를 내고 퇴실하는 가로 내기하던 이 철없던 친구들이 모두 근엄한 고시생으로 변신해 있었다. 충격과 함께 고민이 물밀듯 밀려왔다.

 

 

우리 과 학생들이 고시를 한다고 하면 가장 먼저 공인회계사 시험을 떠올린다. 내 친구들도 제대하고 나서 그 쪽으로 진로를 결정하고, 진작부터 패거리(?)를 구성하여 학교 도서관에서 수험 생활을 본격 시작했던 터였다. “왜 고시를 시작했습니까?” “친구들이 다 고시해서요...” 라고 대답한다면 누구라도 다 비웃을 것이다. 하지만, 복학하고 나니 고시생으로 돌변해 있는 친구들을 보고, 나는 미래에 대해 보다 구체적인 생각을 할 수가 있었다. 부모님께서는 내게 직접적으로 말씀하진 않으셨지만, 집안의 장남인 내가 빨리 학교를 졸업하고 기업체에 입사해서 경제적으로 자립하기를 바라고 계셨다. 하지만, 이미 IMF 외환위기를 계기로, 취업이라는 것조차도 쉬운 일이 아닌 세상이 되어 버렸다. 해외에 나가 영어를 공부한 경험도 없고, 그 흔한 TOEIC 시험 한 번 쳐 본 일이 없는 나로서는, 취업에 대한 대비를 하느니, 차라리 시험을 준비하는 것이 오히려 비용이 더 작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유는 또 있었다.

 

 

 

사람의 성향을 단순히 이분법적인 사고로 바라보는 것은 약간 어폐가 있긴 하지만, 난 어릴 적부터 ‘LEADER’적 기질보다는 ’STAFF‘적인 기질이 다분하다고 생각해 왔다. ’STAFF‘으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전문가의 길로 들어설 수 있는 자격증이 필요했다.

 

 

그러면, 왜 하필 공인회계사가 아닌 감정평가사였는가? 이것도 친구들의 영향이 컸다. 친구들 중에 감정평가사를 준비하는 이가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란 뜻이다. 감정평가사에 관하여 내게 조언해 준 사람도 없었고, 수험대책과 학습방법, 업계 전망에 대해서 설명해 준 사람도 없었다. 그저 주위의 친구들과는 다른 일을 하고 싶었다. 단지 고등학교 다닐 때 한국지리 과목을 열렬히 좋아했었다는 정도? 이렇게 엉뚱하다면 엉뚱한 계기로 감정평가사가 되기 위한 첫 발을 내딛었건만, 혼자서 이를 준비해야 한다는 것은 2001년 8월 26일의 2차 시험장에서까지 나에게 가장 큰 약점으로 작용했다.


 

 


Ⅲ. 2000. 1. 1~7. 2  1차 시험 준비

우리 집 근처인 해운대에는, 새천년의 시작이라며 올해 첫 일출을 보겠다고 수많은 사람들이 전날 밤부터 몰려들었고, 덕분에 해운대 일대의 교통은 하루종일 완전 불통이 되었다. 결국 이날 난 서울에 올라오는 기차를 놓쳐 버렸고, 새천년 첫날부터 단단히 액땜했다고 위로를 삼았다. 며칠 전, 감정평가사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4학년 진학을 않고 이번 학기를 휴학하겠다는 말씀을 어렵게 부모님께 드렸다.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당신들께선 날 믿으신다며, 너무도 순순히 허락해 주셨다. 난 최선을 다 하겠지만, 만약 내년 2차 시험에 떨어진다면 미련 없이 공부의 길을 접고 취직하겠다고 약속을 드렸다. 이 때 부모님께 드렸던 약속은 항상 내게 ‘기회는 한번 뿐이다’라는 자극과 위기의식을 불어넣어 주었다. 부모님께 말씀 드린 다음날 아버지께선 근처 시립도서관에서 감정평가사가 ‘대체 뭐 하는 직업’인지를 꼼꼼히 찾아보셨다고 한다.

 

 

서울에 올라와 제일 먼저 한 일은 동계 계절학기 수업을 듣는 일이었다. 군대가기 전인 1, 2학년 때엔 ‘노는 것이 미덕이다’라는 선배들의 말에 속아(?) 학점관리를 통 못했던 탓이다. 일단 결심을 한 이상, 감정평가사 시험준비가 내게 가장 중요한 일이었음은 자명한 것이었으나, “붙을 때까지” 몇 년이고 공부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으므로, 장래 취업을 대비해서 어느 정도의 학점관리는 필요했다. 학교 제 2캠퍼스가 있는 원주에서 계절학기 수업을 이수하고, 1월말에는 작년에 룸메이트였던 과 친구와 새로운 하숙집을 물색했다. 나는 고시생, 친구는 졸업을 앞둔 취업준비생으로서의 새로운 마음가짐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새로 옮긴 하숙집은 내게는 글자 그대로 ‘재앙’이었다.

 

 

새 하숙집은 학교 근처인 신촌에 있었다. 그런데, 개인주의적 성향이 대세인 요즘 하숙집과는 달리, 이틀이 멀다 하고 술 마시고 고스톱을 치는, ‘우리가 남이가?’ 분위기의 하숙집이었다. 룸메이트인 친구는 1년이나 나와 같이 아무 문제 없이 생활했고, 고시생이 된 나의 생활을 충분히 이해해 줄 수 있는 그런 친구였다. 하지만, 이 하숙집에 고시생이 들어온 것은 내가 처음이라는 주인 아주머니 말씀을 듣고는 어이가 없어질 수밖에 없었다. 첫날 하숙집 선배가 내게 했던 말은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는다. “너 고시한다며?” “예. 감정평가사 준비하는데요.” “어, 그래?...... 혹시 너네 집 보석상 하니?”

 

 

앞서 말한대로, 도서관에서 같이 공부한 친구들은 모두 ‘예비’ 공인회계사였다. 이 친구들은 작년 군 제대 후 이미 공부를 시작했던 놈들인 만큼 도서관에서 하루종일 책상에 앉아있는 것도 어느 정도 연습이 되어 있었고, 올해 1차 합격을 내심 노리고 있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술 좋아하는 친구는 한 명도 없었다. 덕분에 공부 시작한 이후로는 친구 생일 등 특별한 날이 아닌 한, 한 달에 한 번 술자리가 있을까 말까 했다. 대신, 나와 친구들은 게임을 정말 좋아했다. 하지만, 모두들 심한 중독 증세는 보이지 않았고, 그저 이틀에 한 번 꼴로 저녁 식사 후 바람 좀 쐰답시고 1~2시간 정도 PC방이나 오락실에 머무르는 정도였다.

 

 

고시 공부는 의외로 돈을 많이 잡아먹는다. 부모님께서 생활비를 전적으로 대 주시는 만큼, 책과 테이프 값까지 부모님께 손을 벌린다는 것은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휴학 중에 가능하면서도 그리 시간을 많이 잡아먹지 않는 아르바이트를 찾았다. 그래서, 매일 점심, 저녁 식사 후 45분 정도 일하면 되는 학교 구내서점 청소 아르바이트를 했고, 월 20시간 정도 자기가 편한 시간을 선택해 근무할 수 있는 도서관 사무보조 아르바이트도 했다. 아르바이트 장소가 서점, 도서관이었던 만큼 이동시간이 필요없었고, 또한 수험서적을 자주 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이 두 가지 아르바이트는 다음 해 봄까지 계속하였으며, 책값과 학원 수강료 등에 톡톡히 일익을 담당했다. 일산에서 과외 아르바이트를 잠깐 하기도 했지만, 이 일은 이동시간이 부담되어 곧 그만 두었다.

 

 

고시생의 주적(主適) 중 하나는 여자 문제다. 앞에서 자세히 설명한 그 하숙집에서 같이 생활하는 여학생을 좋아하게 된 것이었다. 난 내 나름대로는 이성적인 인간이라고 생각하고 살아왔었다. 하지만, 시험이 100일도 안 남은 마당에 좋아하는 여자를 만나고, 시험공부를 포기할 생각까지 했었던 걸 생각하면, 그 때만큼은 내가 그 친구를 정말 좋아하긴 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 친구랑 잘 되었다면, 아마 난 1차 시험을 포기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던 덕분에 난 다음날 책상에 ‘不合格卽死’(지금 생각하면 좀 유치하지만)라는 문구를 써 붙이고는, 1차 시험 전날까지 하루도 안 빼고 4시간만 자는 초강수를 두었다. 제일 열심히 공부했던 시기이다. 회계사 공부하는 친구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나를 가리켜 ‘독한 놈’이라고 불렀다.


 

 


Ⅳ. 1차 시험 공부방식과 교재

1월 마지막 주부터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했다. 하숙집 분위기가 그랬던 만큼 최대한 일찍 일어나 하숙집을 빠져나와 학교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고, 최대한 늦게 하숙집에 들어가는 방법을 썼다. 잠은 규칙적으로 6시간 정도 잤고, 하숙집에 일단 귀가한 후에는 책 냄새도 맡지 않았다. 대신 1차 시험일까지 4개월 여 밖에 남지 않았던 만큼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시간엔 철저하게 ‘기계’가 되기로 했다. 나는 본래 잠이 많은 편이라서, 식사 후에는 꼭 잠깐씩 엎드려 낮잠을 청했지만, 결국에는 낮잠 깨는 시간까지 기계적으로 되어 버렸다.

 

 

5월 중순까지는 1차 과목을 테이프 강의 위주로 공부하고, 5월 말부터는 보던 책들을 복습하면서 문제 풀이를 위주로 한다는 계획을 세워 놓았다. 학원 강의와 테이프 강의는 나름대로 장단점이 있다. 하지만, 내 처지에서는 학원 강의를 들을 수는 없었다. 일단, 1차 공부를 너무 늦게 시작한 것이 가장 큰 이유였고, 공부하는 곳이 신촌이었던 만큼 노량진이나 신림동의 학원을 오가는 것이 너무 비효율적이라고 생각되었다. 수업료에 대한 경제적인 부담도 없지는 않았다.

 

 

따라서, 각 과목별로 나한테 맞다고 생각되는 수험서적 1권, 그리고 강의 테이프 1질만을 준비하고 나서, 최소한 5월 중순까지는 이것만 집중적으로 심도있게 공부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테이프 강의는 여러 번 들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원칙적으로 테이프는 한 번만 청취하고, 대신 수험서에 포함돼 있는 객관식 문제들을 반복적으로 풀어 실전 감각을 익히려고 노력했다. 즉, 텍스트의 완벽한 이해에 집착하기보다는 객관식 문제의 답을 끄집어낼 수 있는 훈련에 치중했다는 표현이 적합할 것 같다.

 

 

과목별로 공부하면서 중점을 두었던 사항, 그리고 수험서 선택에 대해 간단히 적어 보겠다. ① 민법 : 감정평가사 시험이 거의 사법고시 수준에까지 도달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에 기본서(EX. 곽윤직, 김준호 교수)는 보지 않았다. 대신 조병욱(한교) 강의 테이프와 수험서에 많이 의존했다. ② 경제학 : 전공과 어느 정도 관련이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큰 부담은 없었다. 김대식 교수 3인공저를 최대한 빨리 1회독 한 후, 정병렬(하나) 테이프와 수험서를 공부했다. ③ 부관법 : 생소한 과목이었기에 가장 큰 부담이었고 끝까지 나를 괴롭혔던 과목이다. 민법 공부를 하면서 조병욱 선생님의 강의 스타일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되었다고 판단, 부관법도 조병욱 테이프와 교재를 선택했다. ④ 회계학 : 일반 수험생들이 가장 어렵게 생각하는 과목이었지만, 내게는 상대적으로 전략과목이었다. CPA 공부하는 친구들의 도움도 많이 받을 수가 있었다. 회계원리와 중급회계는 송상엽(웅지), 원가회계는 오경수(하나) 교재와 테이프를 공부했다.

 

 

계획했던 대로 5월 중순에 전과목 테이프와 교재 1회독을 마무리했다. 한 과목에 약 2~3주 정도 소요된 것이다. 말이 1회독이지, 정말 책을 열심히, 그리고 꼼꼼히 봤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달랑 수험서 1권과 테이프 1질을 완벽하게 마스터했다는 것만으로는 무언가 부족함이 있었다. ‘백업’ 차원에서 다른 책들도 공부하여 리스크를 줄여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민법은 김성룡 교수의 사법고시 1차용 문제집을 골라 다양한 문제를 풀어봤다. 경제학은 정병렬 교재 말고도, 홍박사, 이재민, 박지훈 등 회계사 수험생들이 보는 책을 도서관에서 대출하여 객관식 문제만 풀어 보면서 실력을 점검했다. 회계학 역시 친구들한테 자문을 구해, 강경보 객관식 문제집을 풀면서, 틈틈히 김영덕 고급회계와 새로 개정된 기업회계기준도 중요한 부분을 체크했다. 이렇게 과목별로 복습을 하고 객관식 문제를 부지런히 반복적으로 푸는 단계에까지 왔지만, 문제는 부관법이었다. 때마침 지공법 등이 개정되었기 때문에 마땅히 ‘백업’으로 삼을 만한 교재나 문제집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대안으로 조병욱 선생님이 강의하는 부관법 문제풀이반 (주 10회 + 특강 2회) 수업을 등록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단과학원을 다녀본 이후로 학원이란 곳은 6년만에 처음이었다. 테이프 강의만을 듣겠다던 애초의 소신은 깨졌지만, 이 강의 덕분에 법 개정에 따른 막연한 두려움을 많이 제거할 수 있었다.

 

 

5월 중순을 시작으로 6월 말까지 총 4회의 모의고사를 봤다. 순전히 시간 안배를 연습하기 위함이었다. 60점을 넘긴 것은 2번 뿐이었고, 첫 시험에서는 부관법 과락이 나왔다. 그래도, 내 나름대로 계산한 민법 25분 + 경제학 40분 + 부관법 30분 + 회계학 55분 + 마킹 10분의 연습을 충분히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시험장에서 큰 두려움은 없었다. 6월 27일부터 30일까지는 하루에 1과목을 최종적으로 복습했고, 시험 전날인 7월 1일에는 전 과목을 훑어본다는 생각으로 공부에 임했지만 욕심이 과했는지 일찍 잠자리에 들지는 못했다. 7월 2일은 정말 더웠다. 하지만, 강의실의 위치가 햇볕이 들지 않는 곳이었던 게 정말 다행이었다. 민법 1번부터 회계학 40번까지 순서를 바꾸지 않고 차례대로 풀어나갔는데, 생각보다 민법 과목에 시간을 덜 뺏겨 시종일관 5분 정도 여유가 있다는 기분을 유지하면서 문제를 풀 수 있었다. 그 덕분에 긴장도 덜 되었던 것 같다.

 

 


Ⅴ. 2000. 7. 3 ~ 2000. 12. 31. 시행착오의 연속

3일 후인 7월 5일에는 공인회계사 2차 시험이 있었다. 작년 1차 합격생은 없었기 때문인지 모두들 부담없이 다녀온 것 같았다. 내게나 친구들에게나 7월은 오랜만에 누리는 휴식 그 자체였다. 난 채점이고 뭐고, 좋아하던 소설책을 원 없이 읽으며 1차 합격자 발표를 기다렸다. 결과는 다행히도 합격이었다. 하지만, 기분은 과히 좋지 않았다. 응시자 중 25%에 달하는 1500명이 합격을 했기 때문이다. 올 해 선발예정인원인 130명을 적용할 경우, 내년 2차 시험에는 내년의 동차생들을 고려하지 않아도 경쟁률이 11.5 : 1이라는 계산이 나왔다. 이러니 누구라도 걱정이 되지 않겠는가.

 

 

발표가 나고서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책 구입도 아니요, 2차 시험 준비도 아니었다. 가장 중대한 과제는 바로 거처를 옮기는 일이었다. 지금까지는 어떻게 견뎌왔지만, 매일같이 노느라 밤 새는 분위기의 하숙집에서 앞으로 1년의 또 다른 수험생활을 시작할 순 없었다. 그래서 생각해낸 대안은 학교 기숙사였고, 2차 시험을 친 다음 주에 입사를 했다. 8월 20일에 있었던 2차 시험은 누구 말마따나 ‘소풍’이었다. 1차 합격자 발표일까지 2차 과목을 공부한 역사가 없었기에 당연한 결과였다. 7월 말이 되어서야 인터넷으로 관련 정보를 찾아보고 교재를 구입하고자 이리저리 동분서주했지만, 혼자 공부하는 처지의 서러움을 또 한 번 느꼈을 뿐이었다. 일본식 / 미국식 이론의 개념조차 없었던 내가 한 달 동안 고작 공부한 것이라고는 이정훈 실무 서브, 안정근 이론 책, 서정욱 법규 책을 글자 그대로 ‘훑어본’ 것 밖에 없었다. 시험 당일날 2차 답안지가 어떻게 생겼는지를 처음 알았을 정도로 대책이 없었다. 실무는 황당하게도 1번 문제를 풀고 나니 20분 밖에 남지 않았고, 이론은 세 장 정도밖에 답안지를 채우지 못했으며, 법규는 중간에 퇴실해 버렸다. 그리고, 100분 동안 10장의 답안지를 채운다는 게 장난이 아니라는 사실도 그 날에야 깨닫게 되었다.

 

 

1차에 합격함으로써 내게 주어진 두 발의 ‘총알’ 중 한 발은 이미 허공으로 날아가 버렸다. 지금부터라도 새로 옮긴 기숙사에서 각오를 다지고, 2차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은 생각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게 또 쉽지가 않았다. 9월부터 4학년 1학기로 복학을 한 것이었다. 1, 2학년 때 엉망이 되어버린 학점을 복구하는 것, 그리고 2차 과목 공부.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으려고 한 것 자체가 무리였을까. 학점은 어느 정도 나왔지만, 내가 4개월 동안 한 것이라고는 김동희 교수 행정법을 1회독 한 것 뿐이었다. 전공 수업에 유난히 신경을 많이 기울인 것도 착오였지만, 법규 공부를 위해서는 행정법 관련이론을 숙지해야 한다는 말만 주워 듣고는, 쉽게 이해되지 않는 행정법에 필요 이상으로 집착하고 그 성과도 지지부진했던 것이 원인이었다. 설상가상으로, 크리스마스가 다 되어 끝난 기말고사 이후에야 감정평가사 학원에 전화를 해 봤지만, 이미 1기 스터디는 모집이 완료된 상태였다. 정말 막막했다. “감정평가사 시험을 같이 공부하는 사람이 주위에 한 명만 있었어도...” 하는 아쉬움은 끝이 없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나는 1기 스터디의 중요성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Ⅵ. 2001. 1. 1 ~ 2001. 8. 26. 2차시험 준비

어김없이 새해가 밝았다. 1기 스터디 등록을 않은 것은 못내 찜찜했지만, 2기 스터디 개강 때까지 내 나름대로의 공부 방식을 찾고자 노력한다면 잘 될 것이라는 희망도 가졌다. 1차 시험을 공부할 때처럼 잠은 6시간 정도로 제한하고, 매일 도서관에 출근하려 했지만, 유난히 올 겨울은 눈이 많이 내리는지라 그것도 쉽지는 않았다. 역시 학원 강의는 피하되, 실무는 이정훈, 정하용, 이론은 은민수, 김재진, 법규는 서정욱, 전준경 강의 테이프 및 서브노트, 자체교재를 차근차근 공부했고, 감정평가론 3인 공저와 안정근 실무 문제도 틈틈히 풀어 보았다. 그리고, 부동산학개론도 도서관에서 대출해 읽었다. 공부를 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역시, 감정평가사 시험 특성상 수험생의 입장에서 과목별로 명확한 시험범위를 결정지을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CPA를 공부하는 친구들은 학교 서점에서 수험서들을 훑어보며 어떤 책이 더 나은지를 비교하기도 하고, 서로 상의해 돈을 모아 책을 구입한 뒤 이를 돌려보기도 했다. 하지만, 난 그게 안 되니 답답하기만 했다. 똑같은 ‘감정평가이론’임에도 강사마다 다루는 문제와 범위가 다르고, 법규의 경우 대체 행정법을 어느 정도 공부해야 되는지 답이 나오질 않았으며, 실무는 일본식 문제와 미국식 문제가 머리 속에서 뒤엉켜 혼란스럽기만 했다. 감정평가사 시험이 회계사 시험이나 사시, 행시보다 체계가 부족한 면도 없지 않지만, 1기 스터디에 참가하지 않았던 게 보다 큰 원인이었다. 이런 와중에 2월 25일, CPA 1차 시험이 있었고, 작년에 고배를 마셨던 친구들과 후배들이 와신상담하여 시험을 치루었다.

 

 

 

어느덧 3월말이 되고, 난 두 군데의 학원 스터디 선발고사에 응시해서 내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점검해 보았다.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작년 2차 시험 이후에도 답안지를 작성하는 연습을 하지 않은 탓에, 아는 문제가 나와도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내 글씨가 악필은 아니었기 때문에, 채점시 약간은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해 왔지만,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은 보기 좋은 글씨체가 아니라 글씨를 빨리 쓰는 능력이라는 것을 절감했다. 어쨌든 두 학원 중 신촌에서 보다 가까운 노량진에 위치한 고시학원에 등록했고, 특히 시간과의 싸움이라 할 만한 실무 문제풀이를 연습하기 위해서 신체계 감정평가실무(홍병각․유영조 저)를 새로 샀다. 그리고 약간 늦긴 했지만, 과목당 2~3권의 서브노트나 교재를 갖고 있다는 사실이 부담되어 이론과 법규 서브노트 단권화를 시도했다.

 

 

4월부터 2기 스터디가 시작되었다. 설마 했는데 역시나 내가 막내였다. “1기 스터디는 안 했는데요”라는 내 대답에 팀원들은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했다. 2기 스터디에서 매주 치룬 모의고사는 내게 자극을 넘어서 충격 그 자체였다. 생전 처음 보는 이론, 법규 문제들이 내 눈 앞에 펼쳐지는 것은 물론이었고, 실무는 2번 문제를 풀 때쯤 되면 100분이 이미 지나가 있었다. 자연스럽게 답안지를 제출조차 못 하는 횟수가 많아졌고, 결석도 잦아졌다. 또한, 1주일에 하루라고는 하지만, 신촌에서 노량진까지 이동하는 것은 내게 적지 않은 부담이었기 때문에 스터디 다음 날이면 어김없이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늦잠을 잤다. 혼자 도서관에서 공부하던 때에는 이런 일이 거의 없었다. 이렇게 2기 스터디에 뒤늦게 합류하면서 느는 것은 한숨 뿐이었지만, 중요한 것은 팀장들이 나누어 주는 자료, 그리고 팀원들 간에 오고가는 대화 속에 들어있는 유용한 정보들이었다.

 

 

시험이 100일 정도 남았을 때엔, 여전히 스터디 빼 먹기를 밥 먹듯이 했지만, 더 이상 의미없는 단권화를 포기하고 팀원들이 추천한 배태성, 이홍규, 주남중 팀장 1기 스터디 서브노트를 구해 이것들을 교과서라고 생각하고는 공부해 나갔다. 단, 실무는 다른 과목보다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고 판단, 김정환 4인 공저(정해 감정평가실무), 이정훈 2인 공저(핵심 감정평가실무)를 택해서 실제 답안지에 문제를 푸는 연습을 따로 하였다. 과목별로 학습에 할애한 시간 비중은 실무 : 이론 : 법규 = 3 : 1 : 1 정도였다.

 

 

6월부터는 S학원의 3기 스터디에 참여했다. 학원, 팀장마다 제시하는 자료에 약간씩의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에, 다른 학원에서 스터디를 해 보고 싶었다. 솔직히, 3기 들어서도 모의고사 성적은 그리 오르지 않았고, 답안지를 제출 않는 경우도 꽤 있었다. 하지만, 답안의 내용은 둘째 치더라도 이론, 법규 답안을 100분 안에 10장을 채울 수 있는 상태에까지 도달하게 됐다. 실무는 모의고사 문제지를 처음 받아들었을 때, 어떻게 풀어야 할 지가 머릿속에서 곧바로 떠오르는 문제도 꽤 있었다. 하지만, 2차 시험일이 두 달 채 안 남았음에도, 생전 처음 보는 문제들이 종종 나오고, 특히 손도 댈 수 없는 법규 사례문제가 출제될 때면 당혹감과 위기의식이 많이 들었다. 따라서, 매주 모의고사에서 좋은 성적을 내는 것보다는, 귀가해서 기존에 가지고 있던 자료, 서브노트에다 그 날 받아온 스터디 자료의 참신한 내용을 보완하는 데에 노력을 기울였다. 또한, 2기와 3기 서브노트까지 몽땅 복사해 두었다. 이렇게 해서, 마지막까지 내가 가지고 있는 서브노트는 거의 20권 가까이에 달했다.

 

 

한참 발등에 불이 떨어진 7월은 내게 큰 고비였다. 7월 4일에 있었던 공인회계사 2차 시험을 마지막으로, 같이 동고동락하던 친구들이 모두 도서관을 떠난 것이었다. 서로 다른 시험을 준비해 왔다고는 하나, 도서관에 혼자 남겨진 심란함은 생각보다 컸다. 또 하나의 악재는, 여름으로 접어들면서 체력이 눈에 띄게 약해진 것이었다. 평소 체력에는 자신이 있었기에, 운동은 생각해 본 적조차 없었고, 한약은 물론, 그 흔한 영양제나 비타민제 하나 복용하지 않았던 것이 올 여름에야 누적되어 몸으로 나타난 것이었다. 1분이 아쉬운 7월인데도, 오히려 하루 수면시간이 8~9시간으로 늘어났고, 더위를 먹은 듯한 무기력증까지 생겼다. 이 때가 수험 기간 중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제일 힘든 시기였던 것 같다. 어쨌든 3기 스터디를 마감하고 나서는 과목당 6~7권씩이나 되는 각종 서브노트의 모의고사 문제를 반복해서 풀어보았고, 제일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다고 판단되는 서브노트를 한 권씩만 선정해서 나머지 서브노트의 내용을 보완하며, 동시에 이를 암기하려고 노력했다. 과목별로 할당한 시간은 1 : 1 : 1이었다. 일주일 전부터는 최대한 시간을 아끼면서도 서브노트, 모의고사 문제를 보다 많이 풀어보기 위해, 답안의 세부적인 작성보다는 목차, 중요 키워드만 직접 써 보면서 외우는 식으로 공부했다.

 

 

결국 학습의 절대량에 만족하지 못한 채 8월 25일을 맞이했고, 새벽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였다. 약 3시간 정도밖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지만, 2차 시험 고사장의 책상은 정말 심하다 싶을 정도로 작다. 새벽부터 몇몇 아저씨들이 인근 건물에서 큰 책상을 들고 와 책상을 바꾸기도 했지만 나는 차라리 그 시간에 예습을 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점심시간, 쉬는 시간에도 한 문제라도 더 목차를 외우려고 노력했다. 솔직히 서울대를 빠져 나오는 발걸음은 너무나 무거웠다. 이론, 법규는 최선을 다해 답을 썼다고 생각했지만, 실무는 1번 문제에서 헤매느라 20분 정도 시간이 모자랐기 때문이었다. 지금도 그 때를 생각하면 그저 아찔할 따름이다.

 

 


아래의 순서는 제가 책을 구입, 학습했던 순서와 동일합니다.

 

1. 실무

① 서적 : 부동산평가실무 (안정근), 최신감정평가론 (백영준 3인공저), 신체계감정평가실무(유영조․홍병각공저), 정해감정평가실무 (김정환 4인공저), 핵심감정평가실무 (이정훈․신병기 공저)

② 강의 서브 : 이정훈 서브, 정하용 서브


2. 이론

① 서적 : 부동산평가이론 (안정근), 부동산학개론 (이내영)

② 강의 서브 : 김재진 서브, 은민수 서브


3. 법규

① 서적 : 감정평가및보상법규 (서정욱), 행정법Ⅰ(김동희), 5단계완성 감정평가및보상법규강의 (전준경), 최신보상법규쟁점 (전준경), 행정법요론 (류지태), 행정법연습 (이재화)

② 강의 서브 : 서정욱 서브 (행정법)


 

 


Ⅶ. 글을 마치며

아직도 내가 합격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 지금, 2년 넘게 써 온 일기장을 뒤적여 그 동안의 수험생활을 돌이켜 보니 기분이 묘하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수험생의 입장에서 볼 때 나의 수험생활은 본받아야 할 모델이 아니라, 경계해야 할 모델인 숱한 시행착오의 연속이었다는 것이다. 석 달 반 동안 학원에서 2, 3기 스터디를 했지만 단 하루, 아니 단 한 과목도 모의고사 상위 30% 안에 내 이름을 랭크시키지 못 했다. 더듬더듬 하면서 공부의 맥을 겨우 짚어낸 것은 너무도 늦은 시점이었지만, 이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나만의 학습방식을 유지한 것이 비결이었다면 비결이었던 것 같다. 스터디에 참가하면서 자신의 공부 방식에 회의를 갖거나, 능력 부족에 좌절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한 좌절과 회의가 발전적인 사고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그걸로 수험생활은 끝이다. 충분히 역전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필수적이다.

 

 

마지막으로 수험생 여러분께 당부 드리고 싶은 점을 몇 자 적어 본다.

 

 

첫째, 1차 시험 대비는 문제를 많이 풀어 보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여느 객관식 시험이 가지고 있는 한계는, 아무리 중요한 이론이라고 해도 그것을 객관식 문제화할 수 없다면 수험생 입장에서는 공부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1차 시험 공부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효율성이다. 책을 파는 것도 중요하지만, 수험서의 객관식 문제를 계속적으로 풀어보는 것은 효율적인 공부방법이다. 단, 감정평가사 1차 시험의 난이도를 만만하게 보는 것은 금물이기 때문에 민법은 사법고시, 경제학과 회계학은 CPA 수준 정도 되는 문제들을 접해 봐야 한다. 또한, 실제 시험장에서의 과목별 시간 안배를 연습하기 위해 학원 모의고사도 몇 번 정도는 풀어봐야 한다.

 

 


둘째, 계획을 세워 공부해야 한다. 타임 스케쥴을 작성하지 않은 채 고시 공부를 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매일마다의 목표 학습량을 정하고 이를 철저히 지키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공부는, “하루에 몇 시간을 자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루에 얼마나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나의 경우엔 수험 초기, 하루에 테이프 두 개를 청취하는 것을 일일 목표로 설정했다. 6일을 미친 듯이 공부하고 일주일에 하루 망가지는 것보다는, 크게 부담스럽지 않은 매일매일의 목표를 세우고, 이를 달성하면서 꾸준히 공부하는 것이 내게는 더 효과적이었다.

 

 


셋째, 정보의 중요성을 가볍게 보면 안 된다. 앞에서도 누누히 강조하였지만, 혼자 힘으로 독야청청 공부하는 것은 잘 닦인 포장도로를 포기하고, 가시밭길을 맨발로 걷는 것과 다를 게 없다. 하지만, 혼자 힘으로 합격에 골인하는 것이 절대로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단, 반드시 학원 스터디를 통해 자신의 현재 위치를 재확인하고, 팀장 및 팀원들로부터 수험서적과 서브노트에 관한 정보를 획득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넷째, 시험 공부는 학문 연구가 아니다. 시험이 6개월 이상 남았을 때에는 어느 과목이든 이론을 차근차근 공부하는 것이 중요하며, 저명한 교수의 저작일지라도 그 내용 자체에 의문 혹은 반론을 제기할 수가 있다. 하지만, 시험이 얼마 안 남은 시점에서까지 자신만의 학설(?)을 만드는 것은 무의미하다. 수험생의 입장에서 어느 정도의 타협은 필요한 것이며, 좀처럼 이해되지 않는 내용이라도 그것이 중요한 내용이라면 억지로 이해하려 하기보다는 암기해 버리는 것이 보다 효율적일 수도 있다는 뜻이다.

 

 


다섯째, 답안 작성의 SKILL도 필수적이다. 2차 논술 답안을 작성하는 요령은, 실무는 CPA, 이론 및 법규는 사시나 행시와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차이점이 있다면, 감정평가사 시험이 다른 시험보다 시간이 많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때문에, 글씨를 잘 쓰는 것보다는 빨리 쓰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목차 작성의 중요성은 이미 수험생 여러분도 잘 알고 계실 것으로 생각되며, 100분 내에 열 장의 답안지를 채울 수 있는 연습을 꾸준히 해 주어야 한다. 개인적으로 펜은 SAKURA GELLY ROLL (made in JAPAN)을 사용했고, 계산기는 CASIO scientific FX-570W를 사용했는데, 솔직히 말하면 이런 펜과 계산기를 사용하는 사람은 나 외에 한 명도 보지 못 했다.

 

 


여섯째, 체력관리도 중요하다. 1, 2차 시험일자가 모두 여름에 잡혀 있기 때문에 이에 따른 대비가 필요하다. 앞서 말한대로 나는 이를 간과했기 때문에 7, 8월에 정말 고생을 많이 했다. 만약 지금 다시 수험 생활을 한다면, 그런 오류는 절대로 범하지 않을 것이다.

 

 


일곱째, 개인 서브노트 작성은 필수조건이 아니다. 가장 이상적인 모델은, 전년도 말까지 단권화된, 그리고 개인취향에 맞는 서브노트를 만들되 그 이후에 입수하는 자료들 중 생소한 내용은 제작 완료된 서브노트에 그 내용을 보완하는 것이다. 하지만, 서브노트 단권화를 할 만한 시간이 없다면 학원 스터디, 혹은 강사의 서브노트를 자기 것이라고 여기는 것도 좋은 차선책일 수 있다. 선택한 서브노트를 중심으로 공부하되, 다른 자료와 서브노트의 내용을 옮겨 적으면서 보완하면 되는 것이다.

 

 


공부는 혼자 하는 것이라지만, 주위 많은 분들의 도움이 있었다. 먼저, 미덥지 않은 아들을 위해 1년여의 시간을 허락해 주신 부모님께 감사를 드려야 할 것 같다. 고생스런 수험생활을 함께 보내면서 분투한 끝에 드디어 회계사가 된 친구들 재황, 경식, 원섭, 상호, 정근, 상훈, 재욱에게 고맙고, 수고했단 말을 전하고 싶다. 승진 兄, 상민, 혁준, 장준, 현준, 소영, 소연이도 올해 좋은 소식 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리고, 스터디 시절에 조언을 아끼지 않으신 김경출, 최창섭, 송순미 팀장 (이젠 자신있게 ‘선배’라고 부를 수 있는) 님들께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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