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들어가며
결과를 기다리는 4개월 여의 기간은 기나긴 악몽이었다. 숱한 밤을 뜬 눈으로 지새웠고 식욕을 잃어 허기진 몸을 한 잔의 맥주로 추스른 날도 많았다. 결과에 관계없이 더 이상 감평공부를 계속하지 않으리라 마음먹었기에 더욱 그러했다.
합격자 발표를 이틀 앞둔 날 저녁에 함께 공부했던 사람들과 이심전심으로 생맥주 몇 잔하고 노래도 부르며 초조한 시간을 달랬다. 조금 일찍 결과를 알아볼 수 있음을 전해 들었으나 합격에 대한 자신이 없었던 나는 절망을 앞당겨 맛보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아침이 되자 불합격도 괜찮으니 한시바삐 기다림의 고통에서 해방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처에 전화를 해서 어떤 결과라도 괜찮으니 최대한 빨리 전해 듣고 싶다는 마음을 전해 놓고 물 한 모금 삼키지 못한 채 드러누워 있었다. 기다림의 시간은 어찌 그리 길게만 느껴지던지....
드디어 전화벨이 울린다. 평소에 나와 농담 한 마디 주고받은 적도 없는 분이 “한정아 씨! 옆에 있으면 꼬~옥 안아주고 싶네요.” 그런다. 옳다, 이렇게 위로를 하시는구나. 눈앞이 깜깜했다. 그런데 합격이라는 얘기가 들려온다. 만세!! 드디어 해냈다.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졌다. 시어머님께서는 며느리의 합격 소식에 일주일 동안 태극기를 게양하셨단다.
Ⅱ. 응시동기
고등학교 시절 우여곡절 끝에 공인회계사의 꿈을 간직하게 되었다. 회계학과 여학생 1호가 되어 홍일점인 나는 갖은 애환을 겪으며 가슴엔 남못지 않은 야망을 품고 나름대로 고민하며 대학시절을 보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졸업 무렵 여러 가지 악재가 겹치면서 꿈을 접고 결혼이라는 수단을 택하여 주저앉고 말았다.
건강이 좋지 못하여 첫아이를 낳아 기르고 살림 꾸려나가는 것조차 힘겨워 결혼 후 5년 간 하루의 절반은 누워지냈다. 갖은 노력 끝에 건강이 조금 회복되자 외로움 타는 아들에게 동생을 선사했다. 그렇게 둘째 아이 낳아 기르느라 또 5년이 지났다.
서른 다섯 살 무렵 조금 여유가 생기자 타고난 끼를 묻어두지 못해 밖으로 나돌기 시작했다. 수영, 주부연극반, 독서토론회, 성당의 레지오 봉사활동 등으로 일주일을 빡빡하게 채우고도 허전한 마음이 달래지지 않았다. 방황 끝에 얻은 결론이 공부였다. 회계학이 들어간다는 이유로 주택관리사 시험에 도전을 했고 순조로운 합격에 자신감을 얻었다. 그리고 1차 시험 과목이 낯설지 않다는 이유로 감정평가사 시험을 준비하게 되었다.
Ⅲ. 도전
1. 무모한 도전 (1998년~1999년)
남편 퇴근 후 하루 4, 5시간 동네 공공도서관에서 7개월 정도 공부하여 1차 시험에 합격했다. 혼자 판단으로 선택한 공부였고, 오로지 혼자서 공부했기에 내가 접한 정보라곤 ‘부동산고시(現 [월간]감정평가사)’를 통한 것이 전부였다. 경제학, 민법, 회계학은 낯선 과목이 아니었기에 지금은 잘 기억도 나지 않는 단순한 책을 선택하여 반복하여 보았고, 부동산관계법규는 공민달 평가사의 책을 보았다. 실전연습은 ‘부동산고시(現[월간]감정평가사)’의 모의고사 문제를 모아서 했다.
1차만 통과해놓고 본격적인 공부의 시작과 끝이 어디쯤인지 짐작도 못한 채 그간에 소홀했던 가정주부 역할로 바빴다. 추석명절을 전후하여 시골집 맏며느리 노릇 하느라 11월에 들어서야 처음으로 2차과목 기본강의를 들었다. 그것도 세 과목을 한꺼번에 수강하기가 벅차 법규와 이론 두 과목만 수강하고 실무는 기본강의도 듣지 앉은 채 1월부터 시작하는 N학원 스터디반에 들어갔다.
실전연습으로 진행되는 스터디반에서 이론과 법규는 책을 펴놓고 베꼈고 실무는 손도 댈 수가 없었다. 힘겹게 1기를 마치고 도중하차하여 혼자서 공부를 했다. 시험장에서 마지막 순간까지 자리를 지켜내는 것으로 만족하고 다음을 기약했다. 나름대로는 쉽지 않은 도전이었지만 본궤도에 올라보지도 못한 무모한 도전이었다.
2. 본격적인 도전(2000년)
연습은 끝이 났다. 본격적인 도전이 시작되었다. 그때가 서른아홉살이었다. S학원 스터디반에 들어가 동차합격을 목표로 공부에 박차를 가했다. 마흔이 되기 전에 공부를 끝내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으로 1차시험을 한 달 반 앞둔 시기까지 2차 공부만 했다.
하루하루 시간과의 전쟁이었다. 시댁과 친정을 멀리 떠나와 외롭게 시작한 서울생활이라 남편의 역할분담을 제외하면 육아와 가사에 남의 도움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별 생각 없이 보내면 하루 한두 시간 공부하기도 힘든 상황이었다. 남편과 두 아들 아침 먹여 보내고 가볍게 집안 정리 마친 후 도서관으로 향했다. 오전 세 시간을 공부하고 점심 식사시간에 맞추어 집으로 돌아오면 장보기, 청소, 빨래 그리고 저녁 준비까지 눈코 뜰 새가 없다. 부족한 공부시간을 보충하기 위하여 일하는 동안에도 귀는 항상 강의 테이프에 고정되어 있었다.
한쪽엔 세탁기가 돌아가고, 한쪽엔 청소기가, 다른 한쪽엔 압력솥이 칙칙거리고, 또 한쪽엔 집이 떠나갈 듯이 볼륨을 높여 놓은 카세트가 돌아갔으니 가히 전쟁이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혼자서 치르는 시간 확보를 위한 전쟁 중에 가족들이 예고 없는 이른 귀가라도 할라치면 내 싸늘한 눈초리를 감수해야 했다. 남들보다 두어 시간 일찍 저녁을 먹는 것으로 하루의 전쟁을 끝내고 퇴근하는 남편과 교대하여 도서관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힘들여 얻어낸 저녁 공부 시간이 4시간이었으니 하루 7, 8시간 공부가 고작이었다. 하지만 책상에 앉아있는 시간만큼은 혼신의 힘을 다해 공부했다.
그러다 보니 남모르는 고충이 하나 있었다. 일주일에 하루 함께 모여 공부하는 학원 스터디반에서 최대한 많은 정보와 자료를 얻어야 했지만 내가 팀원들에게 받은 만큼 돌려줄 것이 없다는 것이었다. 하루 7, 8시간 공부시간은 오로지 나만을 위하여 나에게 가장 필요한 공부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팀원들에게 항상 당당할 수가 없었다.
스터디팀의 분위기에 고무되어 5월말 경까지 2차 공부만 하다가 문득 1차 공부 쪽으로 눈을 돌렸다가 상황이 만만치 않음을 깨닫게 되었다.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판단이 들었다. 다급한 마음에 2차 공부를 완전히 접을 수밖에 없었고 한 달 반 가까운 1차 시험 준비기간은 반쯤 넋이 나간 상태로 보냈다. 길을 걸을 때도, 밥을 먹을 때도, 잠을 잘 때도 자투리 시간에는 이명현상에 시달릴 정도로 강의 테이프를 들었다. 이웃을 만나 시간이 쪼개질까 걱정되어 아파트 주변의 산길을 이용하여 도서관을 오가다가 순찰을 도는 경찰로부터 위험하다고 경고를 받았지만 귀에 들어올 리 만무했다.
시험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날, 부족한 공부량을 인정하고 통한의 눈물을 삼키며 이왕 마지막이 될 공부라면 부끄럽지 않게 끝을 맺자는 생각이 들었다. 여름철임에도 불구하고 미역국을 곰솥으로 한솥 끓이는 것으로 가족들을 위한 일주일간의 반찬 준비를 끝냈다. 밥과 미역국과 김치가 일주일간 움직임 없는 식단이었다. 회를 거듭하여 데우는 미역국은 건더기가 녹아 없어져 버렸다. 내 뇌리를 떠났다가 시험 치기 전날 밤에야 눈에 들어온 일주일간 방치해버린 음식물쓰레기에는 파리의 애벌레가 한가득 들어앉아 있었다. 형언할 수 없는 서러움에 울컥 쏟는 울음을 간신히 삼켰다. 시험치는 동안 소름끼치는 애벌레들의 움직임을 생각하며 기필코 합격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전체적으로 공부량이 부족했기에 시험장을 향하는 차안에서도 마무리 공부는 계속되었고 시험을 치루기 직전까지 암기를 다 끝내지 못한 부동산관계법규 책을 빠른 속도로 넘기며 5분만에 한 권을 독파했다. 그리고 그 기억이 채 사라지기 전에 문제를 풀었더니 부족한 공부량에 비하여 80점대의 높은 점수를 받았다. 마지막 5분간의 공부를 포기했다면 훨씬 낮은 점수를 받았을 것이며 합격 또한 장담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때의 경험으로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자세를 무척 높이 평가한다.
그 해는 1차 시험 합격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2차 공부를 충분히 마무리할 정도의 기력을 되찾지 못한 채 시험을 치르고 말았다. 허전한 마음을 달래기 위하여 시험 후 한 달 정도의 공부기간으로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딴 것이 그나마 조그만 위안이 될 수 있었다.
3. 마지막 도전(2001년)
마흔을 앞둔 가을에 정신적인 방황을 최소화하고자 15년 동안 살던 좁은 아파트에서 지금의 아파트로 이사하느라 두어 달을 허비하고 말았다. 대부분의 살림살이를 새로 장만해야 했지만 공부하느라 세상을 따라잡지 못해 촌스러워진 감각을 한꺼번에 극복하기가 무척 힘들었다. 합격을 기대하기는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왠지 모를 미련과 이사 전후의 대소사들로 다잡아 공부를 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합격자 발표가 나고 학원마다 스터디반을 모집할 무렵부터 마음이 급해지기 시작했다.
학원 스터디 일정과 보조를 맞추면서 3월까지는 동네 공공도서관에서 혼자 공부하다가 스터디 2기에 잠시 합류를 했다. 나머지 기간은 ‘부동산고시’에 실린 자료와 학원홈페이지에 실린 스터디 자료들을 충분히 입수하여 정보에 뒤쳐지지 않도록 최대한 신경을 쓰면서 혼자서 마무리를 했다.
주로 혼자서 공부를 하다보니 외로움이 큰 복병이었다. 이사 후 새로운 이웃을 사귈 시간도 없었고 가족과는 대화를 아낀 지 오래였다. 충분한 마음의 준비 없이 마흔이란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고서 그 서글픈 듯 야릇한 느낌을 혼자서 감당하기가 무척 힘들었다. 그러한 나에게 유일한 대화와 휴식의 공간이 있었으니 인터넷상의 초등학교 동아리였다. 동아리 친구들의 끊임없는 위로와 격려가 있었기에 힘든 시간을 극복해낼 수 있었다.
시험을 한 달 정도 앞두고 주위에서 잠시라도 집을 떠나 마무리할 것을 권하였지만 가족들의 생활과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는 생활에 길들여져 변화를 주기가 불안했다. 다행스럽게도 교사인 남편의 여름방학 기간이었다. 남편과는 역할 분담에 대하여 달리 의논을 한 적은 없었다. 단지 나의 공부가 본궤도에 들어서면서 내가 팽개칠 수밖에 없는 부분을 남편이 받아서 맡아주는 정도로 묵시적인 약속이 되어 있었다.
마지막 한 달은 절박한 심정으로 100%를 넘어 120%를 팽개쳤고 남편은 기꺼이 받아 주었다. 20%는 챙겨 먹이지 않으면 굶어죽고 말 것 같은 걱정을 끼친 부분이다. 아침과 저녁은 가만히 앉아 남편이 챙겨주는 밥을 받아먹었으나 그것만으로는 체력유지가 힘들 것 같아 점심은 도서관에서 가까운 식당을 하나 정해두고 김치 한 조각까지 남기지 않고 씹어 삼켰다.
주어진 시간동안 닥치는 대로 공부를 했다. 항상 부족했던 시간 때문에 서브노트는 시도도 할 수 없었다. 법규와 이론은 전 내용을 망라하여 목차만 과목당 두세 권의 노트에 정리하여 틈만 나면 빠른 속도로 되풀이 읽으며 전체적인 감각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였다. 마지막 일주일은 다급하고 초조한 심정에 집 문밖을 나서지도 못하고 하루종일 서서 집안을 돌면서 마지막 암기를 했고 다리가 아프면 앉아서 실무를 풀었다.
시험장에서는 100분씩 3과목을 치르는 동안 숨 한 번 크게 쉬지 못할 정도의 긴장감 속에서 내가 준비한 모든 것을 털어 넣었고, 가장 중요한 것은 마지막 만년필을 놓는 순간까지 한 번도 포기하는 마음을 갖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Ⅳ. 마치며
인생을 건 한 판 승부였다. 승부의 세계는 냉혹하고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것이기에 승리는 더욱 값진 것이다. 처음엔 좀 더 나은 인생을 꿈꾸며 삼십대를 희생했다고 생각했다. 합격으로 내 불쌍한 삼십대에 한 점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게 되어 다행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아낌없이 불태운 열정과 합격에의 절절한 염원으로 가득 채운 삼십대야말로 내 인생에 있어 진정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시기였다는 생각이 든다. 승부의 세계에서 승리란 모든 것을 아름답게 만들 수 있는 마이더스의 손인가 보다.
과정을 되돌아보면 후회와 아쉬움이 많지만 그 열매는 한없이 달콤하다. 이 사후 1년이 되도록 이웃과 담을 쌓고 부스스하고 물기 마르지 않은 머리카락에 헐렁한 옷차림으로 귀에는 이어폰을 꽂고 혼자서 웅얼거리며 같은 시간 같은 거리를 지나가는 싱싱하지도 예쁘지도 않은 여자가 바로 내 모습이었다. 지금은 어설프지만 한껏 커리어우먼 티를 내며 바쁘게 종종거리며 마주치는 사람마다 웃음 띤 얼굴로 부지런히 인사를 나누며 살고 있다.
합격수기를 써달라는 부탁을 받고, 내가 과연 수험생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의 글을 써낼 수 있을지 고민을 했다. 수험기간 동안 수없이 계획을 세웠지만 한 번도 지키지 못했다. 세 과목을 한꺼번에 책상에 늘어놓고 순간순간 가장 불안하게 여겨지는 과목을 찾아가며 무계획적이고 무질서하게 공부를 했다. 시행착오의 연속이요 혼돈의 연속이었다. 그런 내가 합격수기란 이름의 글을 쓰다니 부끄럽기 짝이 없다.
합격하고서 얼굴도 모르는 대학 후배로부터 공부를 시작해야 할지 말아야 할 지, 그리고 시작하게 되면 어떻게 공부를 해야 할지를 묻는 메일을 받았다. 아직 시작하지 않았다면 일단은 말리고 싶다고 했다. 어떻게 공부하느냐는 물음에 대해서는 남들만큼 체계적이고 효율적인 공부를 못했기 때문에 좋은 조언을 주기 어렵다고 했다. 단지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이왕 시작한 공부라면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모든 간절함을 담아서 마무리하라고 얘기해 주었다.
Ⅴ. 덧붙이며
마무리하려다 보니 여느 합격수기에 비하여 구체적인 수험정보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180여 명의 합격동기생들 중 굳이 나에게 이런 기회가 돌아온 것은 조금은 남달랐던 수험생활을 소개해 보라는 의미로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누구나 갖추고 있는 평범한 자료와 정보였기에 굳이 소개하지 않고 단지, 남편과 자식 딸린 마흔 먹은 아줌마가 주부 역할 하면서도 이룬 꿈이니 여러분도 반드시 이루어낼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습니다.
오늘은 독일과의 월드컵 4강전이 치러졌던 날! 아쉬움이 남는 결과지만 진정 최선을 다한 우리 선수들의 모습은 너무도 아름다웠습니다. ‘붉은 악마’의 카드 섹션 구호가 “꿈은 이루어진다” 랍니다. 여러분의 꿈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란 간절한 마음으로 끝까지 최선을 다하길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탄탄한 실력과 강인한 정신력으로 나에게 끊임없는 격려와 도움을 주신 기달 선배님과 수식 씨의 좋은 결과 있기를 두 분과 같은 마음으로 기다리겠습니다. 마지막까지 지치지 말고 최선을 다해 주시기 바랍니다.
'감정평가사 합격수기 모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12기 박시우 감정평가사 합격수기 (0) | 2012.12.31 |
---|---|
12기 이강수 감정평가사 합격수기 (0) | 2012.12.31 |
12기 안유현 감정평가사 합격수기 (0) | 2012.12.31 |
12기 김홍일 감정평가사 합격수기 (0) | 2012.12.31 |
12기 임경묵 감정평가사 합격수기 (0) | 2012.12.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