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한 일

 

 

낮에 자는 사람과

 

밤에 자는 사람은

 

언제 만날까

 

 

사람들이 만나는 시간은 신비해

 

낮에도 자고 밤에도 자는 사람에게도 약속은 생기지

 

 

12시

 

13시

 

 

내 그림자도 시간에 대해 말하지

 

나는 지금 길어지고 있어

 

어디까지?  나는 지금 걸어가고 있어

 

 

낮에 자는 사람과

 

밤에 자는 사람이

 

만나는 시간 가까이

 

 

 

더 가깝게

 

사람들이 앞만 보고 걸어다녀

 

뒤통수는 까맣고 까매

 

누구일까

 

 

꽃나무

 

 

 

꽃이 지고

 

누운 꽃은 말이 없고

 

 

 

딱 한 마리 맷새가

 

몸을 튕겨가는 딱 그만한 천지

 

 

하늘 겹겹 분분하다

 

낮눈처럼 그렇게

 

 

 

꽃이 눕고

 

누운 꽃이

 

 

일생에 단 한번

 

자기의 밑을 올려다본다

잠자리, 천수관음에게 손을 주다 우는

 

 

비 그친 후 세상은 쓰러진 것들의 냄새 가득해요

 

간밤 바람 소리 솎으며 내 날개를 빗기던 이 누구?

 

큰 파도 닥칠까 봐 뜬눈으로 내 옆을 지킨 언덕 있었죠

 

날이 밝자 언덕은 우렁 각시처럼 사라졌죠, 아니죠

 

쓰러졌죠

 

 

쓰러진 것들의 냄새 가득해요 비 그친 후 세상은

 

하루의 반성은 덧없고 속죄의 포즈 세련되지만

 

찰기가 사라졌어요 그러니 안녕, 나는 반성하지 않고 갈 거에요

 

뾰족한 것들 위에서 악착같이 손 내밀래요

 

접붙이듯 날개를 납작 내려놓을래요

 

 

수 세기의 겨울이 쌓여 이룬 가을 봄 여름이에요

 

비 그친 후 쓰러진 것들의 냄새 가득한

 

 

 

사랑이여 쓰러진 것들이 쓰러진 것들을 위해 울어요

 

이 빛으로 감옥을 짤래요 쓰러진 당신 위에 은빛

 

감옥을 덮을래요

 

 

나는 울어줄 손이 없으니

 

당신의 감옥으로 이감 가듯 온몸의 감옥을 접붙일래요

몸의 기억

 

몸의 기억은 생각을 앞선다

 

나는 생각보다 먼저 자판 두드려

 

말을 만들고 말을 구부려 생각을

 

들여다본다 말이 탱탱해지고 말이

 

벌어지고 말이 말속을 파고들어

 

비명을 지른다  말의 변형으로 시작되는

 

몸의 기억은 욕망으로 얼룩진다

 

말들이 서로를 강간하며

 

길들여지는 몸의 기억으로

 

나의 욕망은 평생 피 흘린다

 

쉽게 길들여지는 슬픈 내 몸

 

광활한 어둠이어서 새들 깃들이고

 

진흙 소 뚜벅뚜벅 걸어 들어온다

 

나를 길들인 것들, 쉽게 나를 걸어나갈 때

 

생각은 언제나 자판 너머 저만치 오고

 

몸이 먼저 부르는 몸은

 

절망의 노래로 온다

 

 

라디오 데이즈

 

보급소 소장이 욕을 했다. 병신 새끼, 미칠 듯이 더

 

운 여름 옆집 난쟁이 아저씨가 나의 개를 잡아먹었고

 

나는 그 집 딸의 주근깨를 증오했다 계절마다 배불리

 

웃고 다니는 국화 엄마의 부풀어오른 배를 너무 꼬챙이로 찔러보고 싶었다

 

 

 

푸른 면도날과 붉은 꽃을 상상하다가 잠이 들고 매

 

일 아침 엄마는 울면서 깨어났다 밤마다 이불이 축축

 

하지? 옆집 주근깨가 누런 이를 드러내며 비죽 웃었

 

다 일요일 저녁에는 은빛 자전거를 닦고 연탄재 옆에

 

쭈그리고 오줌을 눴다 몹시 땀이 났다

 

 

 

우리는 달려간다 이상한 나라로 니나가 잡혀 있는

 

사차원 세계는 언제나 방과 후였다 방과 이전과 방과

 

후 세계는 나에게 두 가지뿐이었다 영어 선생은 추한

 

여자였다 긴 화상 자국이 블라우스 아래 숨겨져 있을

 

것 같았다

 

 

붉은 꽃을 보여준 건 주근깨였다 엄마는 어느 날  아

 

침인가부터 울면서 깨어나지 않았다.  냇물아 흘러 흘러

 

어디로 가니 따위 노래는 이제 아무도 부르지 않는다

 

은빛 바퀴느 어디론가 굴러갔다 나는 초록색 철대문집

 

아이였다

日沒

 

 

방금 새가 떠난 자리를 보면 새가 더 분명하다

 

새가 떠난 자리에 들어앉아 새의 꿈을 꾼다

 

손바닥만 한 새가 하늘을 가릴 수 있다는 사실에 새삼 탄복하며

 

새처럼 웅크려 점점 멀어지는 그림자를 내려다본다

 

새의 그림자에 가려진 세상을 거대한 알 같다

 

해질녘,

 

무언가가 떠난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는다는 것

 

사라진 새의 가슴에서 투하된 당신의 꿈이 세상에 못 미쳐

 

자멸할 수 밖에 없다는 것

 

세상이 전쟁으로 충만한 이유이다

 

 

번개를 깨물고

 

 

번개가 문지방을 기어 넘어온다

 

추락한 형이상학의 마지막 형상을 판독하는 밤

 

갑자기 이가 가렵다

 

몸 밖으로 뛰쳐나가려는 늙은 神의 마지막 꼬리에

 

혀를 베인다

 

사랑의 법칙을 試연하던 밤의 공장이 빠르게 밝아온다

 

아이를 배지 못한 미래가 문턱에서

 

생면부지의 음악들을 흘려놓으며 저 홀로 범람한다

 

입을 열면 문득 새 생명이 과거의 얼굴을 들고 튀어나올 것 같다

 

나는 아마도 최후의 지구를 최초로 임신한 사내가 된다

 

깨진 번개가 방바닥에 드러눕는다

 

이 사소한 우주의 기별을 만지기 위해

 

나는 오래도록 굶은 것이다

 

헐 대로 헌 위장이 사뭇 따뜻해진다

 

잘못 나온 새끼를 도로 삼키는 육식동물의 염결성과

 

근성을 회복하자

 

천둥도 없이 실수로 떨어진 번개가

 

내 육체의 회롱 상실된 기억을 주사한다

 

깡마른 구름의 이마를 꿰뚫고 내려온

 

번개는 만 년 전의 나를 기억한다

 

이 차고 뜨거운 손안에서 수천 번 엄마를 바꿨던 적이 있다

 

하늘에서 번쩍 갈라진 번개의 크기는

 

원근법과 아무 상관없다

 

내가 본 그대로의 모습과 크기로

 

지구의 틈이 벌어진다

 

또 이가 가렵다

 

최초거나 최후거나

 

나는 분명 처음과 끝을 한 번의 포효로 발설하는 인류의 조상을 임신한 것이다

 

번개가 빠져나간 항문

 

내 턱이 지구의 문지방에서 깊게 출혈 중이다

 

 

추모합니다

 

 

 

나는 읽는다 너는 가고

 

 

 

 

내가 남긴 책갈피에서

 

머리카락이

 

아침 국그릇에 떨어졌다

 

 

 

호수처럼 국물이

 

출렁 하더니

 

 

 

곧 잠잠해졌다

나팔꽃

 

 

 

나팔꽃은 시름시름 앓다가도

 

동이 트면 훌훌 털어버린다

 

 

 

 

후회란 원래 그런 족속이다

 

 

 

 

괜히 피었다 싶다가도

 

피기 전으로 돌아가려 하다가도

 

 

 

어느 순간,

 

언제 그랬냐 싶게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잊어버릴 수 있는 것이다.

 

 

 

나팔꽃은

 

뻥 뚫린 목구멍으로

 

자기 몫인 햇살을 받아 삼킨다.

민들레

 

 

 

민들레꽃 진 자리

 

환한 행성 하나가

 

앉아있는 것이 보인다

 

가벼운 꽃씨들이

 

햇빛 에너지를

 

충전하고 있는 것이 보인다

 

 

 

정거장도

 

아닌 곳에

 

머물러 있는 행성 하나

 

 

 

마음의 끝에는

 

돌아오지 않을

 

행성 하나 있어

 

 

 

 

뿔뿔이 흩어질

 

꽃씨들의

 

어려 터진 마음이 있어

 

 

 

 

민들레는 높이

 

안테나를 세우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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