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개를 깨물고

 

 

번개가 문지방을 기어 넘어온다

 

추락한 형이상학의 마지막 형상을 판독하는 밤

 

갑자기 이가 가렵다

 

몸 밖으로 뛰쳐나가려는 늙은 神의 마지막 꼬리에

 

혀를 베인다

 

사랑의 법칙을 試연하던 밤의 공장이 빠르게 밝아온다

 

아이를 배지 못한 미래가 문턱에서

 

생면부지의 음악들을 흘려놓으며 저 홀로 범람한다

 

입을 열면 문득 새 생명이 과거의 얼굴을 들고 튀어나올 것 같다

 

나는 아마도 최후의 지구를 최초로 임신한 사내가 된다

 

깨진 번개가 방바닥에 드러눕는다

 

이 사소한 우주의 기별을 만지기 위해

 

나는 오래도록 굶은 것이다

 

헐 대로 헌 위장이 사뭇 따뜻해진다

 

잘못 나온 새끼를 도로 삼키는 육식동물의 염결성과

 

근성을 회복하자

 

천둥도 없이 실수로 떨어진 번개가

 

내 육체의 회롱 상실된 기억을 주사한다

 

깡마른 구름의 이마를 꿰뚫고 내려온

 

번개는 만 년 전의 나를 기억한다

 

이 차고 뜨거운 손안에서 수천 번 엄마를 바꿨던 적이 있다

 

하늘에서 번쩍 갈라진 번개의 크기는

 

원근법과 아무 상관없다

 

내가 본 그대로의 모습과 크기로

 

지구의 틈이 벌어진다

 

또 이가 가렵다

 

최초거나 최후거나

 

나는 분명 처음과 끝을 한 번의 포효로 발설하는 인류의 조상을 임신한 것이다

 

번개가 빠져나간 항문

 

내 턱이 지구의 문지방에서 깊게 출혈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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