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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관적인 시선의 힘은 사물이나 풍경에 내재되어 있는 생명을 일깨운다. 풍경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그것에 귀 귀울이면 존재가 심화되는 것을 느낀다.

 

 

시선을 내부로 파고들수록, 사물들은 몸을 더 쉽게 열어준다.

 

 

우리가 알고 있는 삶이란 무엇일까. 어느 순간 문득 느껴지는 미열이거나 서글픔 같은 것, 혹은 거품 같은 것은 아닌가. 천지를 나눈 사이에 빈 허공이 있고 그 쪼개어진 시원의 틈에 인간이 겨우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무수한 죽음이 삶을 키우는 것이리라.

 

 

아름다움은 인간의 세상을 능가한다. 그런 이미지가 살아 펄떡이는 시를 만나면 아직도 가슴이 뛴다. 새로운 이미지는 한 세계를 창조하는 것과 같은 힘을 가지고 있다. 오직 새로운 시적 이미지들만이 순간을 거머쥘 수 있게 해준다. 새로운 이미지와 새로운 언어를 향한 갈망은 계속 시인의 살과 잠과 영혼을 앗아갈 것이다.

 

 

우리에게 자연이란 무엇일까. 우리가 자연에서 배우는 것은 '변화'일 것이다. 만물이 모두 실체가 없고 상주가 없고 공적하여 손에 잡히는 것이 없이 흘러간다는 것. 변하지 않는 것이 없다는 것. 이것을 늘 깨닫게 해준다. 변화를 자신의 존재방식으로 받아들이는 삶은 진정 자유로울 것이다.

 

 

 

2.

 

내가 이 세상에 살아 있다는 것

 

오늘 하루 이 시간속에 놓여있다는 것은

 

저 바위가 서 있는 것과 나무의자가 놓여있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3.

 

언 못에 싸락눈이 덮인다

 

못에 숨구멍이 나있다.

 

.....................

 

얼음을 지치는 아이들이 어쩌다 숨구멍으로

 

빨려 들어가는 일이 있다

 

그럴 때 숨구멍은

 

가장 큰 숨을 쉰다

 

 

4.

 

폭풍이 지나가고 있다

 

바람을 못 이기고 쓰러져 누운 나무를

 

사이에 우두커니 서 있다

 

나무들이 증명하는 바람의 행로

 

심지가 곧은 것들은

 

저렇게 生을 다해 단 한 번

 

꺾어지는 것

 

 

...............

 

삶의 미망에서 깨어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팔만의 장경과 일천칠백의 선의 공안이

 

필요한 것은 아니니라

 

 

 

5.

 

비애는 길들여지지 않는다

 

 

6.

 

냉장고는 악착같이 같은 색이다

 

門을 열면

 

드러날 부패를 감추기 위해

 

 

 

 

7.

 

장미라는 이름의 고통

 

장미는 몸을 마르게 한다

 

몸의 물기를 다 앗아간다

 

장미는 눈을 분화구처럼 푹 꺼지게 한다

 

몸은 장미에게 학대받는 짐승이다

 

장미는 몸을 지지는 전기고문기술자다

 

 

나는 네가 고통을 , 아니 장미를 견뎌낼 수 없기를 바란다

 

 

8.

 

겨울 논

 

눈 온 뒤 겨울 논바닥 내려다보면

 

印花紋이다

 

빽빽한 문양을 찍고 백토를 채워 넣은,

 

흰 눈이 덮인

 

논은 커다란 분청사기

 

들은 도자기 가득한 가마터

 

저 촘촘한 무늬

 

사이로

 

꼬불꼬불 몇 사람이 印畵된다

 

먼 길 가는 검은 날개를 가진 새들이

 

허공에 인화되어 박힌다

 

귀얄문처럼 바람이 휘익

 

들을 쓸고 지나간다

 

 

9.

 

손이 천 개인 천수관음보다 몇 배 더 많은 발을 가진

 

해파리들은

 

아무래도 번뇌가 많은 종족이다

 

 

10.

 

고대 서구인들이 인간을 네 가지 체액에 따라 분류한 데서 유래한 멜랑콜리 melancho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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