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돌은 박혀있고 드러나 있고 밟혔다. 둥글고 매끄럽고 검고 반짝거렸다. 그대로 적었다. 돌은 아무때나 차였다. 발부리가 내내 아팠다. 그대로 적었다. 돌은 모나고 뾰족하고 뭉툭하고 우묵하고 이끼 덮였고 금 가고 쪼개졌다. 그대로 적었다. 돌은 세워도 눕혀도 묻어도 찔렀다. 깊이 묻은 돌이 그중 깊이 찔렀다. 그대로 적었다. 돌은 팔매질하고 되돌아온 돌에 맞았다. 또 팔매질하고 되맞았다. 되풀이해서 팔매질하고 되풀이해서 되맞았다.  돌이 닳았다. 그대로 적었다. 돌이 뛰어서 물위를 건너갔다. 건가가는 저편이 보이지 않았다. 그대로 적었다. 돌은 길게 오래 날았다. 한밤에도 눈을 뜨면 돌이 나는 소리가 들렸다. 그대로 적었다. 돌이 고인 물의 중심에 떨어졌다.

 

겹겹이 이는 파문을 헤라리다가 그만, 손가락들이 뒤섞여버렸다. 그대로 적었다.돌 몇개가 발바닥에 박혔다. 빼내고, 길바닥에 내민 돌 여럿 있는 것 보았다. 그대로 적었다. 돌은 숙고굽고 기울었다. 이윽고 꿇어?ㅆ다. 이마가 땅에 닿았다. 그대로 적었다.

 

돌이었다.

 

밝지도 어둡지도 않았따.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았다. 착하지도 죄를 짓지도 않았다.

 

돌이었다.

 

잠깐 있지도 내내 있지도, 여기에 있지도 저기에 있지도, 모이지도 나눠지도 않았다.

 

돌이었다.

 

 

2.

 

발자국

 

제, 발, 바, 닥, 밖, 으, 로, 는, 한, 걸, 음, 도, 내, 딛, 지, 못, 했, 다.

 

 

3.

 

내가 물으면서 툭, 물음표 ? 끝에다 매달아서 내던졌던 구두점 . 하나.  낱개로 떨어져서 나뒹굴더니 까맣고 단단한 한 점 . 이 되었더니 마침내 또렷하게 마침표 .  로 찍혔다. 그렇게 닿은 사람이 있다.

 

 

4.

 

지평선

 

삽시간이었다

 

한 사람이 긴 팔은 내려 덥석 내 발목을 움켜줘더니 거꾸로 치켜들고는 털털 털었다

 

부러진 뼈 토막들이여 해묵은 살점과 주름살들이며 울컥 되넘어오는 욕지기까지를 깡그리 내쏟았다

 

센 털 몇 올과 차고 작은 눈물 한 방울도 마저 털고 나서는

 

그나마 남은 가죽을 맨바닥에 펼쳐 깔더니 쿵 !

 

키높은 탑신을 들어다 눌러놓았다

 

그렇게 판판해지고 이렇게 깔려 있는데

 

뿐인가

 

하늘이 살몸을 포개고는 한없이 깊숙하게 눌러대는 지경이다

(탑 뿌리에 잘못 걸렸던 하늘의 가랑이를 그 사람이 시침 떼고 함께 눌러둔 것)

 

잔뜩 힘쓰며 깔려 죽는 노릇이지만

 

이건,

 

죽을 만큼 황홀한 莊嚴이 아닌가

 

사지에서 구름이 피고 이마맡에서 별이 뜬다

 

 

5.

 

진달래

 

해의, 光球 온도는 6000도씨 안팎, 사람에게 닿으면 36도씨 안팎이 된다

 

이빨들이 맞부딪치는 한기가 됐다가 손바닥으로 덮으면 따뜻해지는 관계다

 

 

지표면에 닿은 햇살은 0도씨 안팎이 된다

 

얼거나 녹거나 진창이 됐다가 마르면 발등이 따뜻해지는 관계다

 

 

어제부터 날씨가 풀리는가 했더니 땅과 사람이 골고루 따뜻하다 따뜻한 것들의 관계가 한눈에 들어오는,

 

저기에는 반드시 진달래가 피어 있다

 

 

 

6.

 

만월

 

달빛 부서진 날 조각이라 했다. 비늘 조각 같은 것이 윗니 사이에 끼었다. 이쑤시개로 쑤시고 혀끝으로 밀어내서 뱉었다

 

윗니 사이에 가늘고 까만 틈새기가 생겼다

 

틈새기로 내다보니 윗니의 바깥은 별빛 반짝이는 밤하늘이었는데, 밤하늘이 내다보이는 틈새기로는 반드시 달이 뜬다. 는 것이 第一義라 했다

 

 

달이 뜨고, 윗니 틈새기로 달빛 비치고

 

그렇게만 끝나지는 않을 거라 했다. 그렇게 끝나지 않았다

 

위아래 치열에서 틈새기 여럿이 더 드러나고, 틈새기마다 달빛 비치고

 

위턱뼈와 아래턱뼈 사이에서, 광대뼈와 낯가죽 사이에서, 목덜미와 등허리 사이에서, 갈빗대와 맨가슴 사이에서, 굳은살과 무른 무릎 사이에서, 발바닥과 뒤꿈치 사이에서,

 

또는 알몸뚱이와 두근거림 사이에서,

 

더하여,

 

내 몸에 묻혀 있던 온갖 틈새기들이 차례로 드러나면서 낱낱이 달빛 비치고는,

 

 

이윽고.....

 

 

 

7.

 

발길질

 

......................

 

친구와 신은 젊어서 죽는다 그들은 너무 일찍 죽어버린다, 라고

 

나는 혼잣말을 했다. 머물며 기다리며 서성대며 밟히는 돌부리들을 걷어찼다.

 

겨울에는 왜 눈이 내리는지 왜 내가 걷어찬 돌부리들은 내 정강이를 때리며 떨어지는지

 

눈이 그쳤고, 겨울이 갔고, 다시는 눈이 내리지 않았지만

 

머물머 기다리며 서성대며 나를 때리고 떨어지는 돌부리들을 되밟으며

 

지금도 나는

 

돌부리를 걷어차는 짓을 그만두지 못한다. 내 정강이가 푸르다.

 

 

8.

 

질서와 평화의 말은 늘 단순하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 같은 선사의 말은 지극히 작은 정보를 담고 있다.

 

 

그러나 이 작은 정보는 거기에 이르기 위해 디딤돌로 삼았던 복잡하고 무질서한 정보들을 제 뒤에 아득하게 거느릴 때만 의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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