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는 정신으로 가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

 

 

풀밭

 

 

고래같이 생긴 여객기 한 대

 

천천히 하늘에 길을 냅니다

 

 

 

저 하늘 끝이

 

시퍼런 물의 표면이란 생각이 듭니다

 

 

 

 

물고기도 아닌 우리가 어떻게

 

물속에 앉아 있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물속에 가라앉은

 

무수한 섬

 

 

 

어떻게 생겨났는지.

 

언제 떠올라 사라지는지.

 

 

저 은빛 고래 뱃속에도

 

수백 개의 옯겨가는 섬이 있겠지요.

 

 

 

 

 

瀑布

- 곧은 소리는 곧은 소리를 부른다*

 

 

1

 

 

폭포는 아무 데나 있지 않다

 

폭포는 아무 데도 있지 않다

 

폭포는 고매한 절벽을 선호한 때문에

 

폭포는 그토록 急落을 사랑한 때문에

 

아무 데나 있지 않다

 

 

웃으며 웃으며

 

수수만년을 웃으며 망설임이라곤 없다

 

폭포는 한번 또 웃고

 

회고라고는 없다

 

오늘도 어제도 그 전전날도

 

회고라고는 없다 내일도 모레도 그 다음다음도

 

여전히 회고라고는 없이 회고이다 또 회고이고

 

혁명이고 회고이다 하여

 

승천이고 회고이다

 

 

 

 

2

 

 

혁명이 없으니 추락을 낳았지

 

또렷한 정신이 없으니 급박한 낙하를 낳았지

 

사랑이지 사랑이지

 

마지막

 

사랑을 낳았지

 

 

 

 

3

 

 

나는 폭포를 사랑하고

 

폭포보다는

 

폭포를 사랑한 이유를 더 사랑하고

 

그보다는 다시

 

폭포를, 폭포를 더더욱 사랑하고

 

절벽을 사랑하고

 

절벽 위의 절벽을 사랑하고

 

사랑의 낙차를

 

더 더 사랑하고

 

 

 

4

 

 

폭포에

 

폭포에

 

무지개를 보았니?

 

보았니?

 

오, 무지개를 단

 

한없는 추락을 보았니?

 

 

 

 

폭포는 아무 데나 있지 않다.

 

 

* 김수영의 시 <폭포>에서 

窓을 내면 敵이 나타난다

 

 

 

 

國有 河川 부지 위의

 

나의 방

 

半地下의 눅눅한 방에서 옮겨갈

 

쾌적한 정신의 거처

 

 

 

수리를 한다고 칸막이를 뜯어내고 南向으로 창을 내

 

고자 인부를 불러 벽을 자르고 벽을 자루에 담으며 왜

 

여기 창이 없었을까 생각한다 그때 한 육십으로 진입

 

할 듯한 여자가 나타났다

 

 

 

"왜 이쪽으로 창을 내느냐, 내 집 마당에서 보이지

 

않느냐?' 얼토당토 않은 소리가 나타나 아직 문짝도

 

달지 않은 벽구멍을 나무란다 "다시 막아요" 존말 할

 

때" 평생 한군데에만 투표했을 듯싶은 그 무서움, 구

 

청에 전화를 걸고 규정을 묻고 당신 집과는 아무런 관

 

계도 관련도 없다 하여도 막무가내다 나의 南向이, 쾌

 

적한 정신이 내려다보이는 모양이다

 

 

 

먼지가 가라앉고 나자

 

바닥에 햇빛이 낭자하고

 

햇빛이 내 발등을 핥는다

 

 

여자가 가고 同時에 적이 나타났다

 

왜 나의 적은 이토록 매번 작은가?

 

붙잡을 수 없이 작고 작은가?

 

同時에 또 하나의 적이 나타난다

 

 

 

싸우지 않을 수 없을 때

 

싸움은 거룩한 것인가?

 

작고 작은 싸움, 좁쌀만 한 싸움

 

싸우지 않을 수 없을 때

 

나의 정직은 서글프다

 

좁쌀만 한 정직

 

싸우지 않을 수 없을 때

 

개는 짖고

 

싸우지 않을 수 없을 때 원하던

 

確哲大吾는 까무라친다

 

싸우고 싶지 않아도

 

싸우지 않을 수 없을 때

 

깨우침은 오고 만다

 

 

 

창을 내면 적이 나타난다

 

창 앞에서 싸움은 꽃처럼 핀다

 

꽃처럼 꽃처럼

 

꽃처럼

방을 깨다

 

 

 

날이 맑다

 

어떤 맑음은

 

비참을 낳는다

 

 

 

나의 비참은

 

방을 깨놓고 그 참담을 바라보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광경이, 무엇인가에 비유되려 한다고 생각하는

 

순간 몰려온 것이다

 

너무 많은 얼굴과 너무 많은 청춘과 너무 많은 정치와 너무 많은 거리가 폭우처럼 쏟아져 들어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밝게 밝게 나의 모습이, 속물근성이,

 

흙탕물이 맑은 골짜기를 쏟아져 나오듯

 

 

 

그러고도

 

나의 비참은 또 다른 지하 방을 수리하기 위해 벽을

 

부수고 썩은 바닥을 깨쳐 들추고 터진 하수도와 막창처럼 드러난 보일러 비닐 엑셀 선의 광경과 유래를 알

 

수 없는 얼룩들과 악취들이 아니고

 

해머를 잠시 놓고 앉은 아득한 순간 찾아왔던 것이다

 

그 참담이 한꺼번에 고요히 낡은 깨달음의 話頭가

 

되려 한다는 , 사랑도, 꿈도, 섹스도, 온갖 소문과 모함과 죽음, 저주까지도 너무 쉽게, 무엇보다 나의 거창한

 

無知까지도 너무 쉽게 깨달음이 되려 한다는 것이다 나의 비참은,

 

 

 

나의 두 다리는 아프고

 

어깨는 무너진다

 

 

 

방바닥을 깨고 모든

 

堅固를 깨야 한다는 예술 수업의 이론이 이미 낡았다는

 

시간의 황홀을 맛보는

 

비참이 있었다

 

 

아직도 먼 봄, 이미 아프다

 

나의 방은 그 봄을 닮았다

 

나의 비참은 그토록 황홀하다

 

停子 2

 

 

 

이리 온,

 

이리 온,

 

 

나는 원래 정치를 해야 했지만

 

구름을 보고 있다

 

 

이리 온,

 

 

五帶山 月精寺 길 걸어나오면서 왜 미합중국을 생각했을까 저만큼, 저 전나무 숲만큼 깊고 아름답고 컴컴하고 두렵고 부들부들 떨리고 눈감아버리고 단 한번의 도약으로 넘어버리고 싶은 나라, 진리의 나라 그래서 直觀할 수밖에는 없는 나라라는 생각을 나는 왜 하필 一行에서 떨어져 나와 혼자 월정사 숲길을 걸어나오면서 곱씹어야 했을까 그곳이 무슨 요세미터라도 되었단 말인가?

 

 

 

세상의 지고지선이 정치에 있다는 깨달음은

 

가장 늦게 들어맞는 서글픔

 

 

정치가 파멸을 낳고 또 정치를 낳듯

 

이미 맛본 서글픔 뒤에 다시 오는 서글픔

 

 

 

사람의 일생은 大略 몇 개의 댓돌을 가졌는가?

 

그 위에 지붕을 올림에 부족함이 없도록

 

 

 

이리 온,

 

이리 온,

 

 

 

작약꽃, 뒤

 

흰 바위들도 이리로 온,  

나아가는 맛

 

 

 

노무현이 된다고 생각할 수 없었을 때, 현실을 좀 아는 사람치고

 

김대중이 된다고 생각할 수 없었을 때도 자주 국밥집에 앉아 있곤 했다

 

노태우가 되면 안된다고 생각할 때도, 김영삼이 되면 안된다고 생각할 때도 그랬다

 

국밥에 코를 박고 허연 기름 국물에 머리카락을 적시며

 

좀 나아가는 맛이 있어야 한다고 친구는 말한다  나는 손가락으로

 

탁자 위로 미끄러진 비곗덩이를 얼른 입에 집어넣고 손가락을 빨고 설컹설컹 씹으며

 

그래 나아가는 맛, 국밥의 이 나아가는 맛,

 

나아가는 맛, 정치적 용어로는 進步, 나아가는 맛, 기껏

 

콜라나 피자로밖에 할 수 없는 이 진보, 다른 말로는, 나아가는 맛,

 

한없이 나아가도 한없이 모자랄 것 같은

 

이 나아가는 맛,

 

삼선시장 순댓국밥집의 길거리로 낸

 

주방의 진보,

 

쓰레기통의 악취를 덮어놓는 신문지의 진보,

 

돼지 대가리의 코를 베고 귀때기를 베고 혀를 잘라서 국밥에 넣듯이

 

나아가는 맛,

 

시 치고는 참으로 진부한

 

이 나아가는 맛,

 

 

 

버들가지가 지난 겨울의 구태를 벗고서서 시언하게 휜다

 

저렇게 나아가는 맛

石榴나무 곁을 지날 때는

 

 

 

지난 봄에는 石榴나무나 한 그루

 

심어 기르자고, 봄을 이겼다

 

내년이나 보리라 한 꽃이 문득 잎사귀 사이를 스며

 

나오고는 해서

 

그 앞에 함부로 앉기 미안하였다

 

꽃 아래는 모두 낭자한 빛으로 흘러 어디 담아둘 수

 

없는 것이 아깝기도 했음을,

 

그 욕심이, 내 숨결에도 지장을 좀 주었을 듯

 

 

그 중 다섯이 열매가 되었는데

 

열매는 내 드나드는 쪽으로 가시 달린 가지들을 조

 

금씩 휘어 내리는 게 아닌가

 

그래 어느 날부터인가 석류나무 곁을 지날 때는

 

옷깃을 여미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는데

 

오늘 아침에는 그중 하나가 깨어진 채 매달려 있는

 

것이었다

 

 

...........안팎을 다해서 저렇게 깨어진 뒤라야 완성이라는 것이, 위안인, 아침이었다

 

그 곁을 지나며 옷깃을 여미는 자세였다는 사실은

 

다행한 일이었으니

 

스스로 깨어지는 거룩을 생각해보는 아침이었다

 

 

눈 그치고 별 나오니

- 山居

 

 

 

눈 쏟아져

 

마당가로 꼬부라져 오는 모퉁이 길에

 

새어나간 불빛은 발목 내놓고 무작정 섰는데

 

어떤 젊은 유배를 맞이할 듯

 

눈보라 위에는 허물어진 房도 한 간 실려서

 

잉잉대는데

 

차마 우지는 못하고

 

빈 자루처럼 나는 쏟아졌다오

 

 

 

새벽녘 문 열고 이마 가실 때

 

눈 그치고 별 나오니

 

도라지 꽃밭처럼 이쁜 하늘은

 

귀밑머리 반짝이는 이쁜 새벽은

 

통증의 저승처럼 찬란했다오

 

미소는, 어디로 가시려는가

 

저 새로 난 꽃과 잎들 사이

 

그것들과 나 사이

 

 

 

미소는,

 

어디로 가시려는가

 

무슨 길을 걸어서

 

새파란

 

새파란

 

새파란 미소는,

 

어디만큼 가시려는가

 

나는 따라갈 수 없는가

 

새벽 다섯 시의 감포 바다

 

열 시의 등꽃 그늘

 

정오의 우물

 

두세 시의 소나기

 

미소는,

 

무덤가도 지나서 저

 

화엄사 저녁 종 지나

 

미소는,

 

저토록 새파란 수레 위를 앉아서

 

 

 

나와 그녀 사이 또는

 

나와 나 사이

 

미소는,

 

돌을 만나면 돌에 스며서

 

과꽃을 만나면 과꽃의 일과로

 

계절을 만나면 계절을 쪼개서

 

어디로 가시려는가

 

미소는,

승부차기 앞에 선 골키퍼를 생각해본다. 그가 최선을 다해서 지킬 수 있는 것은 제로이다. 최선을 다할때 제로를 지킨다

 

제로를 지킨다는 의미에서 시인도 골대 앞에 서 있는 존재다. 그는 패배 바로 위에 있고 승리 바로 아래에서 꼼짝할 수 없다.

 

그는 그 자리를 끝끝내 지켜내지 않으면 안된다.

 

 

 

시인은 누구의 편일수 없다. 시인은 존재 자체를 편들며 존재자체를 꿈꾼다. 그 제로의 공간은 알고 보면 무시무시한 공간이다.

 

타협할 대상도 없이 날아오는 공을, 부조리를, 어리석음의 파편을, 평화를 부수고 승리하려는 도발을, 시인은 온몸을 던져서 날렵하게

 

아슬아슬하게 , 끝까지 막아낸다. 눈과 귀와 손은 사랑을 대하듯 섬세하고 표범같은 자세로 볼을 기다린다.

 

그렇지 않으면 제로를 지킬 수 없다. 제로가 사라질때 억압이 오고 피바람이 분다

 

무리는 볼을 넣으려고 달려온다. 시인은 오직 혼자다. 사랑이 그렇듯이, 강한자는 혼자다. 그가 평화(제로)를 지킨다.

 

자기 자신과 더불어 모든 존재들의 골문을 시인은 지킨다.

 

지금, 세계는 심판이 사라진지 오래다. 반칙을 알려줄 심판이 없다. 그래도 지켜야 한다. 오늘도 나는 신발 끈을 조이고 골대 앞으로 가는 자의 그림자를 오래 바라본다. 오늘도 제로를 지킬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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