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아가는 맛
노무현이 된다고 생각할 수 없었을 때, 현실을 좀 아는 사람치고
김대중이 된다고 생각할 수 없었을 때도 자주 국밥집에 앉아 있곤 했다
노태우가 되면 안된다고 생각할 때도, 김영삼이 되면 안된다고 생각할 때도 그랬다
국밥에 코를 박고 허연 기름 국물에 머리카락을 적시며
좀 나아가는 맛이 있어야 한다고 친구는 말한다 나는 손가락으로
탁자 위로 미끄러진 비곗덩이를 얼른 입에 집어넣고 손가락을 빨고 설컹설컹 씹으며
그래 나아가는 맛, 국밥의 이 나아가는 맛,
나아가는 맛, 정치적 용어로는 進步, 나아가는 맛, 기껏
콜라나 피자로밖에 할 수 없는 이 진보, 다른 말로는, 나아가는 맛,
한없이 나아가도 한없이 모자랄 것 같은
이 나아가는 맛,
삼선시장 순댓국밥집의 길거리로 낸
주방의 진보,
쓰레기통의 악취를 덮어놓는 신문지의 진보,
돼지 대가리의 코를 베고 귀때기를 베고 혀를 잘라서 국밥에 넣듯이
나아가는 맛,
시 치고는 참으로 진부한
이 나아가는 맛,
버들가지가 지난 겨울의 구태를 벗고서서 시언하게 휜다
저렇게 나아가는 맛
'목숨을 건 독서 8'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미소는,어디로 가시려는가/ 장석남/문학과지성사/2005 (7) (0) | 2011.03.17 |
---|---|
미소는,어디로 가시려는가/ 장석남/문학과지성사/2005 (6) (0) | 2011.03.17 |
미소는,어디로 가시려는가/ 장석남/문학과지성사/2005 (4) (0) | 2011.03.17 |
미소는,어디로 가시려는가/ 장석남/문학과지성사/2005 (3) (0) | 2011.03.17 |
미소는,어디로 가시려는가/ 장석남/문학과지성사/2005 (2) (0) | 2011.03.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