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부차기 앞에 선 골키퍼를 생각해본다. 그가 최선을 다해서 지킬 수 있는 것은 제로이다. 최선을 다할때 제로를 지킨다

 

제로를 지킨다는 의미에서 시인도 골대 앞에 서 있는 존재다. 그는 패배 바로 위에 있고 승리 바로 아래에서 꼼짝할 수 없다.

 

그는 그 자리를 끝끝내 지켜내지 않으면 안된다.

 

 

 

시인은 누구의 편일수 없다. 시인은 존재 자체를 편들며 존재자체를 꿈꾼다. 그 제로의 공간은 알고 보면 무시무시한 공간이다.

 

타협할 대상도 없이 날아오는 공을, 부조리를, 어리석음의 파편을, 평화를 부수고 승리하려는 도발을, 시인은 온몸을 던져서 날렵하게

 

아슬아슬하게 , 끝까지 막아낸다. 눈과 귀와 손은 사랑을 대하듯 섬세하고 표범같은 자세로 볼을 기다린다.

 

그렇지 않으면 제로를 지킬 수 없다. 제로가 사라질때 억압이 오고 피바람이 분다

 

무리는 볼을 넣으려고 달려온다. 시인은 오직 혼자다. 사랑이 그렇듯이, 강한자는 혼자다. 그가 평화(제로)를 지킨다.

 

자기 자신과 더불어 모든 존재들의 골문을 시인은 지킨다.

 

지금, 세계는 심판이 사라진지 오래다. 반칙을 알려줄 심판이 없다. 그래도 지켜야 한다. 오늘도 나는 신발 끈을 조이고 골대 앞으로 가는 자의 그림자를 오래 바라본다. 오늘도 제로를 지킬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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