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감정평가실무 기출문제를 돌아보면, 1번 문제는 단순한 배점 그 이상의 의미를 갖으며 수험계의 이정표(里程標)로 자리매김 해왔습니다.

 

 

근래만 보더라도, 22회(쇠퇴기 숙박시설 평가), 23회(오피스 수익가치 평가 및 타당성분석), 24회(골프장 3방식 평가 및 타당성분석), 25회(정비구역내 국공유지 처분) 문제들은 시험 직후 수험계에 숱한 논란과 파란을 일으키며, 지금도 두고두고 회자될 만큼 상징성이 강한 문제들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26회 출제위원의 고심(苦心) 또한 마찬가지였을거라 생각합니다.

 

 

1년에 한번 뿐인 국가자격고시 출제위원으로서의 영예는 차치하더라도, 최근 평가업계의 이슈 및 트렌드, 그리고 현업 평가실무에서 맞딱뜨리는 선배평가사들의 고민을, 출제위원은 상징성이 강한 1번급으로 문제화하고자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올해 26회 실무의 1번 문제는 헤도닉가격모형을 활용한 통계분석 결과를 전면으로 내세워 출제됩니다...

 

감정평가업계의 객관성과 신뢰성이 강하게 의심받는 작금의 시점에서, 계량분석 결과를 전면으로 내세우며 가치형성요인 비교를 묻고 있는 올해 26회 문제는 과거 여느때의 1번급 기출문제와 비교해도 손색없을 만큼 시사성이 강한 문제라고 생각됩니다.

 

 

19회 2번(숙박시설로서의 토지 투자가치)으로 단순회귀분석이 기출된 이후로, 개인적으로 우리 시험에서 다중회귀분석이 출제될 일은 없을거라고 생각했습니다만,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응시생의 편의를 고려한 수험적합적(?)인 출제위원은 이미 분석이 끝난 결과치만을 제시하며, 수험생에게는 이에 대한 채택 및 활용여부만을 묻고 있습니다.

 

어쩌면 평가업계에 있어 통계적 기법은 감정평가사의 전문적인 판단을 '위협'하는 무서운 도구일 수도 있습니다.

 

 

통계만으로는 계량화 될 수 없는 정성적 가치형성요인이 엄연히 존재하는 현실에서, 계량분석 결과는 실증적이고 객관화된 수치로서 달관법(?)에 익숙해진 기존의 감정평가의 위상을 크게 흔드는 도전자가 될거라는 조심스런 예측도 가능합니다.

 

 

과연 통계적기법을 활용한 계량적평가가 기존의 감정평가와 병존 또는 이를 대체할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은 오래전부터 논의되어 왔고, 이는 19회 및 22회 이론과목에서도 기출된 바 있습니다.

 

 

"특성가격모형(Hedonic Price Model)과 반복매매모형(Repeat Sale Model)의 원리와 각각의 장·단점을 설명하시오.(19회 2번)"  (=>  陰陽和平之人 註 민태욱 교수님 출제)

 

"상권분석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허프(Huff)모형의 원리와 실무적용상의 장·단점을 설명하시오.(19회 5번)"  (=>  陰陽和平之人 註 조주현 교수님 출제)

 

"계량적 방법인 특성가격함수모형(Hedonic Pricing Model)에 대해 설명하고, 감정평가사의 주관적 평가와 비교하여 그 장·단점을 논하시오.(22회 2번)"

 

 

하지만 이로부터 수년이 지난 지금, 감정평가의 객관성과 신뢰성에 대한 도전이 그 여느때보다 거세지는 현 시점에서, 통계적 기법을 활용한 감정평가는 '위협'보다는 '기회'로 보는 시각이 많아지는 추세입니다.

 

 

최근 '빅테이터(Big-data)를 활용한 감정평가' 세미나가 협회를 중심으로 개최되고, 젊은 평가사들을 중심으로 통계분석에 대한 관심과 배움이 늘고 있습니다. 그리고 과거 논문 등으로만 소개되던 통계/시뮬레이션 분석기법들은 최근 대형법인을 중심으로 평가서에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는 추세입니다.

 

실제로 제가 평가법인에 입사했던 첫 날(=>  陰陽和平之人 註 : 제일감정평가법인 본사) ,  처음으로 맡아서 수행했던 업무는 재개발사업의 종후자산(아파트) 가치추계를 위한 층별효용비 산정으로, 공교롭게도 올해 1번 문제와 동일한 케이스였습니다. 인근지역내 수천세대에 달하는 아파트 실거래가 및 분양가 자료를 수집하여, 엑셀의 피벗테이블 및 필터 기능을 이용하여 층별/평형별 단가를 구하고, 이를 지수화하는 작업이었습니다.

 

 

작업이 끝나고 분석결과를 제출했더니 담당 이사님께서 하셨던 말씀은, 

"덕분에 평가서의 설득력이 풍부해졌네요"

 

 

 

감정평가서의 설득력...

 

 

평가서를 작성하면서 대내적으로는 심사부서를 설득해야 하고, 대외적으로는 의뢰인 또는 이해관계인을 설득해야 하는건 감정평가사로서의 숙명입니다. 실제 업무를 하다보면 평가액은 평가자 나름의 판단을 거쳐 마음속에 이미 결정되었는데, 이를 지지해줄 근거 데이터가 부족하여 설득에 어려움을 겪게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평가자의 마음이 아닌, 평가서 내(內) 문언만으로의 설득을 통해, 가치추계의 합리성을 이해시켜야 하는 입장에서는 통계분석 결과만큼 입아프지 않고 명확하고 일관된 방법 또한 없을 것입니다. 참고로 우리 감칙 제13조 제1항은 "감정평가서를 의뢰인과 이해관계자가 이해할 수 있도록 명확하고 일관성 있게 작성하여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위와 같은 맥락에서, 올해 26회 1번 문제는 감정평가의 객관성 확보를 통해 평가서의 설득력을 높여야 하는 평가업계의 현주소를 대변하는 시사성 높은 문제였다고 생각합니다.

 

"상기의 지역분석은 탐문조사, 평가사례 및 거래사례 등을 이용하여 분석한 것으로 보다 상세한 해당지역의 가치형성요인을 분석하기 위해 기준시점으로부터 6개월 이내 자료를 이용하여 계량분석을 실시함."  - 문1 <자료2> 지역분석 자료 中

 

 

문제지 상으로 제시된 층별효용, 접근성 등 가치형성요인에 대한 계량분석결과는 유의수준 1~5% 으로, 수험생 입장에서 이를 함부로 기각하기는 어렵습니다.. 논문 작성을 목적으로 몇번의 통계분석 경험이 있지만, 유의수준 5% 이내는 분석자 입장에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정도의 무서운 수치입니다..

 

통계적기법이 평가업계에 '위협'인지 '기회'인지에 대한 질문에 쉽게 답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본 문제상 적시된 계량분석의 실시 취지와  2 페이지 반에 걸친 그 분석결과들을 감안할 때, 출제위원의 의도는 전자보다는 후자에 무게를 두고 있다고 판단됩니다.

 

 

층별효용비 산정이나 비교표준지 선정 등에 있어서, 평가자의 보는 주관에 따라 판단은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평가서의 객관성과 설득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적극적으로 통계분석 결과를 활용해야 하는 문제였다고 생각합니다.

 

생각해보면, 문제지상 대부분의 수치 자료는 통계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토지 비준표상의 도로접면/형상 격차율 역시 헤도닉가격모형(HPM)을 통해 도출되는 통계자료이며, 지가변동률과 오피스 자본수익률 역시 한국감정원에서 발표하는 통계자료입니다..^^

 

 

141030_(보도자료)_한국감정원_ 국토연구원과 「부동산가격 공시제도 선진화방안」 세미나 개최.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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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외 분석 자격증 소개


* http://cafe.daum.net/statsas/KqTP/335


국내에도 통계 분석 관련 자격증이 새롭게 등장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자격증 도전에 관심있는 분들 참고하시기를 바랍니다.

 


통계 진로에 대한 추가 정보는 통계분석연구회(http://cafe.daum.net/statsas) 통계진로게시판을 참고해주시기를 바랍니다.

 



* 데이터 분석 전문가/준전문가 자격증(데이터베이스 진흥원)
http://www.dbguide.net/da.db?cmd=snb_adp_4


* 경영 빅데이터 분석사(한국경제)
http://www.bigtest.or.kr/

 


* CRM 자격증(CRM협회)
http://kcrma.org/
- CRM 전문가
- 마케팅통계전문가
- 데이터마이닝 전문가
- 고객DB분석가

 


* SAS 국제자격 인증 시험(SAS Korea)
http://www.sas.com/offices/asiapacific/korea/training/certification.html

 


* 통계 분석과 BI(Business Intelligence) 관련 인증 자격증 
http://www.statwith.pe.kr/STAT_FUT/STAT_LICENSE/STAT_LICENSE.htm

 


* '제 값 하는' 빅 데이터 자격증 11종 
http://www.ciokorea.com/t/2996/빅%20데이터/21859

 


- 인폼즈(INFORMS) - CAP(Certified Analytics Professional)

 

- 콜럼비아대 - 데이터 과학 전문성 인증시험

 

- 인소프(INSOFE) - 빅 데이터 애널리틱스, 최적화, 그리고 엔지니어링 자격증

 

- 스탠포드대 - 대용량 데이터 세트 마이닝 자격증 

 

- 델라웨어대 - 애널리틱스 자격증: 빅 데이터 최적화

 

- EMC - EMC 데이터 과학자 협회 자격증

 

- 클라우데라 - 클라우데라 데이터 과학 전문가 자격증

 

- 레볼루션 애널리틱스 - 레볼루션 R 엔터프라이즈 프로페셔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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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청_통계기본원칙___해외사례.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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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Statistics() 또는 Statistik()의 어원은 국가(state)를 의미하는 라틴어의 status이다. Statistics는 국가의 기술(記述)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Statistik 이란 용어를 처음 학문의 명칭으로 사용한 것은 독일 Gottingen대학의 Achenwall, Gottfried(1719-1772)이다. 그러나 그 이전에 Conring, Hermann (1606-1681)1660년에 국가의 학문인 국상학 Staateskunde라는 명칭의 강의를 하였다. 그는 Aristoteles(B.C. 384-322)4원인설을 따라 실질인(판도(版圖), 인구), 형식인(政體, 행정), 유력인(재정, 군비), 목적인(국가목적)의 형태로 국가에 관한 기술을 처음으로 체계화하였다.

 

 

 

통계학은 영국의 정치산술(政治算術), 독일의 국상학(國狀學), 프랑스의 확률론에서 뿌리를 찾을 수 있다. 각기 흘러온 이 3개의 지류가 "통계학"이라는 큰 강에 합류하는 모습을 간단히 보기로 한다. 원래 Statistics() 또는 Statistik()의 어원은 국가(state)를 의미하는 라틴어의 status이다. Statistics는 국가의 기술(記述)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독일의 국상학

 

 

 

Statistik 이란 용어를 처음 학문의 명칭으로 사용한 것은 독일 Gottingen대학의 Achenwall, Gottfried(1719-1772)이다. 그러나 그 이전에 Conring, Hermann (1606-1681)1660년에 국가의 학문인 국상학 Staateskunde라는 명칭의 강의를 하였다. 그는 Aristoteles(B.C. 384-322)4원인설을 따라 실질인(판도(版圖), 인구), 형식인(政體, 행정), 유력인(재정, 군비), 목적인(국가목적)의 형태로 국가에 관한 기술을 처음으로 체계화하였다.

 

 

 

 

 

국상학을 Statistik 이라 부르고 국가에 관한 중요한 사실을 기술하는 학문으로 정의한 사람은 Achenwall , 그는 1748년 통계학 강의를 개강하였다. 그러나 당시의 통계학은 국상학의 다른 이름에 지나지 않았고 기술은 수량이 아니라 서술적이었고 수학적 사실은 거의 다루지 않았다.

 

 

 

 

국가에 관한 통계자료의 정비, 증대와 함께 국가에 관한 수량적 기술이 통계학을 의미하게 되고 총인구의 추계, 다른 제국과 면적, 인구, 군대, 재정 등의 수량적 비교 등 영국의 정치산술학파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일파가 독일 국내에 태두하였다. 표식통계학파라 불리 우는 사람들이다. 창시자는 덴마크인 Anchersen G.P.(1700-1765)이다. 계량가능한 사실을 표식으로서 배열하므로 각국의 인구, 종교, 재정, 군대, 행정조직, 화폐등을 비교하고자 한점이 특색이다.

 

 

 

 

표식통계학파의 세력은 18세기말엽까지 독일국내에 꽤 침투하였다. 대표적 학자로 Crome, A. F. W.(1753-1833)가 있다. 그러나 1804년 표식통계학파와 Gottingen학파라 불리 우는 Achenwall Schlozer,A. L.(1735-1809)의 후계자들 사이에 격렬하고 신랄한 논쟁이 일어났다. Gottingen학파는 표식통계학파를 평하여 그들은 "형식도 방법도 갖고 있지 않고", 그들이 제시하는 것은 "형식에 얽매인 노예로 기술적 사실이라는 살"을 붙이지 않은 "통계의 형핵(形骸) " 에 지나지 않고, "국민정신, 자유에의 사랑, 천재등의 기술에 아무런 감각도 갖고 있지 않다"고 통렬히 비난하고, Gottingen학파의 통계학이야말로 "가장 숭고한 과학의 하나"라고 자랑하였다.

 

 

 

 

 

그러나 Gottingen학파의 선언도 결국 현실인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것으로 끝나고, Gottingen학파의 몰락은 논쟁에서가 아니라 현실에 뒤쳐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독일 역사학파의 창시자의 한 사람인 Knies(1812-1898)1850년 통계학이란 명칭은 정치산술학파와 Quetelet, Lambert Adolphe Jacques (1796-1874)의 영향을 받은 계량학파에 돌려야만 하고, AchenwallSchlozer파의 학과에는 국상학 또는 이것과 유사한 호칭을 주어야 한다고 단정한 것은 자심들의 학문체계에 통계학이란 명칭을 이용하려한 Gottingen학파에의 장송곡이었다. 독일에서는 19세기 중엽이후 Quetelet파 통계학이 융성하게 된다. 결국, 독일 국상학은 statistik 이란 명칭만을 남기고 내용적으로는 영국 정치산술학파에 압도되어 Ahenwall의 통계학(국상학)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갖는다. 독일 국상학을 삼켜 버린 영국의 정치산술학파란 어떤 학파인가?

 

 

 

 

영국의 정치산술

 

 

 

정치산술의 요람은 런던, 명칭은 Petty, William(1623-1687)에 기인한다. 그러나 Petty이전에 주목할 만한 업적으로 Graunt, John(1620-1674)"사망표에 관한 자연적 및 정치적 제 고찰"(1662)이 있다. 자료의 제약상 충분히 관찰을 하지 않을 수밖에 없었지만 그때까지 전혀 시도해보지 않았던 인구의 추정, 출생, 사망에 관한 통계적분석, 통계적 규칙성의 발견이라는 새로운 문제를 다루었다.

 

 

 

 

Graunt의 영향은 프랑스, 네델란드등의 유럽제국에도 파급되었지만 영국본토에 있어서는 Graunt의 영향보다는 오히려 Petty의 영향이 크다. Petty"정치산술"이 출판된 것은 그가 죽은 후 명예혁명의 약 2년후인 1690년이지만 집필된 것은 1671-1676년경이라 추정된다. "정치산술"은 당시 영국을 뒤덮고 있었던 비관적 국운, 네델란드, 프랑스에 추월당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을 논박하고, 영국은 네델란드,프랑스를 능가하여 세계무역을 장악할 수 있다는 것을 객관적으로 논증하고자 한 책이다. 정신을 고무시키고, 애국심에 호소하고, 정렬을 끓어 오르게 하므로써 문제의 해결을 시도한 책이 아니다. "정치산술"의 방법은 (1) 형이상학적, 사변적 논의를 전면적으로 배제하여 [(Number), 중량(Weight) 또는 척도(Measure)]라는 수량적 표현을 이용하고, (2) [자연에서 실현 할 수 있는 기초를 갖는 요인만을 고찰"하여 [개개인의 변덕, 의견, 취향, 격정]과 같은 주관적요소에 좌우되는 요인은 고찰하지 않는 다는 점이 특색이다. 더구나 소박한 귀납론이 아니라 [노동가치의 이론을 근거로 하는 산술]이었으므로 Petty는 막-스에 의하여 [근대 경제학의 건설자, 가장 천재적이고 독창적인 경제학자의 한 사람]이라 칭찬받았다. 물론 Petty의 수량적 관찰을 가능하게 한 시대적 배경으로 모든 것에 화폐적 표현을 주는 상품생산의 사회로 영국이 옮겨 가고 있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Graunt, Petty로 시작하는 정치산술은 영국은 물론이고, 유럽 여러 나라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Graunt로 시작하는 인구통계분석은 영국의 천문학자 Halley, E,(1656-1742)에 의하여 높은 수준에 달하고, 도박적 사업이라 일컬어지던 생명보험도 Halley의 생명표를 기준으로 보험료가 산정되도록 되었다. 수학자 라이프니치(1646-1716)도 정치산술에 흥미를 갖고 "정치산술의 여러 문제"를 저술하고, 인구통계를 다루는 중앙통계기구의 설치를 요망하였다.

 

 

 

 

 

 

 

 

 

18세기 초기의 정치산술에 공헌한 사람은 프랑스의 Vauban(1633-1707), 영국의 Gregory King(1648-1712) Devenant(1656-1714)이다. Vauban"왕국충분의 일세론"(1707)이란 저서에서 프랑스의 면적, 인구를 추정한다. 그러나 이 책은 프랑스 국민의 우민(憂悶)을 노골적으로 서술하여 하층계급의 부담경감, 과세의 평등을 주장하였기 때문에 불태워 졌고, Vauban은 왕의 역정을 샀다는 유명한 이야기가 남아있다.

 

 

 

 

 

 

 

 

Devenant"세입론"(1698)에서 정치산술을 "정치에 관한 여러 사항을 ......숫자에 의하여 논의하고 연구하는 기술"이라 정의한다.

 

 

 

 

 

 

King"영국 국세에 관한 자연 및 정치적 관찰과 그 결론"(1699)이란 저서에서 인구추계, 연령별 인구분포의 추계를 발전시켰다. 토지면적, 지가, 각종 생산물, 조세공과의 상승정도도 산정하였다.

 

 

 

 

 

 

 

 

 

새로운 발상은 없고 통계적 관찰도 비교적 부족했던 18세기 초기의 침체를 거쳐 정치산술은 18세기 중엽 인구통계의 정비, 사망표의 정밀화등 인구통계분야에 있어서 진보하였다. 인구문제가 정치학의 가장 중요한 대상이라 생각되었던 18세기 학문의 집대성은 Sussmilch(1707-1767)"신의 질서"(1741, 1761 증보판)이다. 그는 대량 관찰에 의하여 인구현상에서 보이는 통계적 규칙성을 실제로 입증하였다.

 

 

 

 

 

 

 

 

 

Graunt, Petty를 창시자로 하는 영국의 정치산술학파는 수 많은 분석가와 업적을 세상에 내놓아 독일 국상학을 끌어넣는 기세를 보였지만 Petty의 후계자들은 수량적 측면을 너무 강조하여 질적 및 이론적 측면을 잊어 버린 것이다. Sussmilch가 사망한 1767년에는 산업혁명의 진전, 자본제적 생산양식의 발전과 함께 정치산술은 인구통계학과 경제학으로 분화되어 가게 된다. Adam Smith"국부론"1776, 통계학에서 Quetelet시대를 창출한 Quetelet의 저서 "인간에 관하여"1835년에 출판된다. 이 저작 이후 정치산술이란 명칭은 사라지고 정치산술학파의 체계는 통계학이란 이름으로 불리게 된다.

 

 

 

 

 

 

확률론과 통계학

 

 

 

정치산술학파의 통계적 분석과 확률론과의 연결은 18세기초기 까지는 전무하였다. 확률론은 초기에는 오직 우연게임의 해법에 일관하여, 정치산술학파에 직접 영향을 주지는 않았다 하여도 과언은 아니다.

 

 

 

 

Jakob Bernoulli(1654-1705)"추론법"(1713)4판에서 확률론이 시민적, 도덕적,경제적인 것에도 응용되어 처음으로 확률론과 통계학과의 관련을 볼 수 있다.

 

 

 

 

De Moivre"우연론"(1718)에는 다음 제목으로 중요한 내용이 포함되어있다. [ 2항식 (a+b)n을 급수전개하여 항의 합을 근사하는 방법. 이 방법으로부터 실험이 주는 동의(同意)의 정도를 추정하는 몇 가지 실용적인 규칙이 유도되는 것"

 

 

 

 

2항분포의 극한으로서 정규분포를 유도한 De Moivre는 이 결과를 남녀의 출생성비와 같은 실제문제에의 적용가능성에 관하여 충분한 인식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는 그의 저서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 일정한 법칙을 가정하고, 이 법칙에 따라 모든 사건이 발생하는 경우, 실험 또는 관찰의 회수를 증가시킴에 따라 사건 발생비율이 가정한 법칙에 끊임없이 접근한다는 것을 증명하지만, 마찬가지로 이번에는 역으로 만약 무수한 관찰로부터 사건의 비율이 일정 양에 수렴하는 것을 발견한 경우에는 이 비율이 사건발생을 규정하는 일정법칙을 나타낸다고 결론 내릴 수 있다."

 

 

 

 

 

여기서 대량관찰에서 얻어진 Sissmilch의 통계적 규칙성의 이론적 기초가 확률론에 의하여 보여진 것이다. 이와 같이 Jakob Bernoulli De Moivre에 의하여 확률론은 우연게임의 해법에서 탈피하여 응용범위를 넓히고, 통계학과의 연결을 깊이하게 되었지만, 확률론과 정치산술 사이의 교류는 없었다. 정치산술과 확률론이 의식적으로 연결된 것은 Laplace(1749-1827)"확률의 해석이론"(1812)이 효시이다. 그는 인구동태의 통계적 규칙성이나 천체관측에 있어서의 오차문제(예를 들면 유성의 궤도계산을 할 때 오차를 갖는 관측치로부터 어떻게 하면 "참 값"을 끌어낼까)에 확률론을 적용하였다. 통계적 연구에 대한 확률론의 응용이다.

 

 

 

 

 

Jakob BernoulliDe Moivre, Laplace를 거쳐 확률론을 기초로 한 근대통계학이 성립된 것은 Quetelet을 중심으로 하는 1830년부터 20년간, "통계만능시대"라 불리 우던 시기이다.

 

 

 

 

이렇게 하여 각기 흘러온 통계학의 3개의 부류는 독일의 국상학이 정치산술에 합류되어 통계학이 되고, 19세기 중엽에 드디어 프랑스 확률론과 합류하여 확률론을 기초로 둔 근대 통계학이란 큰 강으로 흐르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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