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득권처럼 여겨지던 법령에 의해 보호되던 평가업무는 점차 비중이 감소하고, 부동산시장을 둘러싼 전방/후방 산업 모두 침체에서 벗어날 기미는 보이지 않습니다. 4천명에 육박하는 현직 평가사들의 신규진입자에 대한 경계어린 시선도 기우(杞憂)는 아닌거 같습니다.
이제 평가업계의 문을 두드리는 젊은 수습평가사의 고민은 커져만 갑니다.
수험계보다 생존경쟁이 치열할 평가업계에서, 향후 30년,40년을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잔말 말고 수습평가사로서 주어진 업무나 열심히 하라고요?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지만 수년을 기다려 감정평가사가 되기를 희망했다면, 수십년을 보내게 될 감정평가사로서의 삶을 예측하고 계획할 권리도 있습니다.
'부동산시장 패러다임'이라는 수험시절의 거창한 표현이 아니더라도, 이미 수험계 밖에는 '빅데이터' , '정부 3.0', '부동산종합공부' 등의 구체적인 정보화 바람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데이터가 보다 중요해질수록, 데이터가 보다 많아질수록, 이러한 데이터를 수집하고 수치화하여 이를 분석하고 합리적 의사결정을 이끌어내는 통계적 능력은 향후 30년,40년을 이끌어갈 젊은 감정평가사에게 중요한 덕목(?)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한국부동산연구원 원장(조춘순)은 「감정평가사를 위한 통계학 입문(2013)」 서문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전통적인 감정평가 3방식 접근법은 실무에서 널리 활용되고 있지만 아쉽게도 시장자료에 근거한 실증분석이나 계량적 평가방식은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또한 선진국에서는 평가 및 매매사례에 관한 정보를 쉽게 접근할 수 있어 계량적 평가기법을 통한 감정평가가 일반화되어 있으나, 우리는 현재 정보화 사회가 요구하는 패러다임에 맞출 수 있는 선진 평가기법에 대한 관심과 이를 뒷받침하는 감정평가 정보구축이 부족한 실정이다.
최근 들어 정부와 감정평가업계는 감정평가의 공정성과 신뢰성 제고를 위하여 감정평가정보체계를 구축하고 입체적 부동산 정보 및 통계의 선진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제는 감정평가사도 방대한 자료를 평가에 활용할 수 있도록 통계적 지식을 갖추고 우리나라 실정에 맞는 계량적 평가기법을 연구하여 전문성과 독립성을 다져갈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미국 Appraisal Institute에서는 가치평가에 도움을 주는 수학 및 통계학 등과 같은 기초학문 책자를 발간하고 있으며, 실무에 계량적 평가방법을 다방면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감정평가의, 감정평가에 의한, 감정평가를 위한' 통계학 연구 및 교육이 필요하다." (이하 생략) |
아래는 이용훈 평가사님께서 법률저널에 기고하신 '빅데이터 시대와 감정평가'라는 제목의 글입니다.^^
빅 데이터 시대와 감정평가(이용훈 감정평가사, 법률저널 2013.10.18)
자료가 불충분해 결론을 못 내리는 것보다 결론은 정해졌지만 이를 지지해 줄 데이터를 구할 수 없을 때가 실로 난감한 상황이다. 핵심적인 데이터가 보이지 않는다면 앞은 더 캄캄하다. 토지를 거래사례비교법으로 평가한다 치면, 이 핵심적인 데이터는 인근 지가 수준에 부합하는 적합한 ‘거래사례’라 말할 수 있다. 인근 지가 수준은 방매물건(팔려고 내 놓은 매도 희망가, 구입의사를 내비친 매수 희망가)을 통해 확인해 볼 수 있다. 또 경매로 나온 물건이 낙찰된 사례는 몇몇 유료 사이트를 통해 입수 가능하다. 확실한 건 거래될 수 있는 가격이 낙찰금액을 최하한선으로 볼 때 매수희망가와 매도희망가 사이 어디쯤인가 위치할 것이라는 점이다. 그러니 이 범위에 들어오는 적절한 거래사례만 있으면 이미 평가자의 맘에 정해진 결론을 도출할 마지막 퍼즐이 맞춰지는 셈이다.
한 철강회사가 인수하는 태국 현지 철강회사의 실사 및 감정평가를 진행한 적이 있다. 현지 평가법인과 공조하게 되었는데, 각국마다 평가기준이 달라 태국이라는 나라는 어떤 식으로 감정평가를 수행하는지 내심 호기심 반 기대 반 이었다. 현지 평가사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던 중 최근 몇 년 간 큰 평수의 공장부지는 거의 매매가 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았다. 의아했던 건 태연히 그런 말을 하는 평가사의 표정이었다. 거래사례비교법으로 평가하려면 비교가능성이 높은 대형 평수 공장부지 매매사례를 포착해야 할 텐데 거래도 없었다면서 무슨 수로 평가하려고 저리 태평일까 내심 걱정됐다. 평가 과정을 가만히 살펴보니 그들은 매매가 완료된 사례가 없으면 팔려고 내놓은 매물가격을 유추해 거래 예정가격을 추정하는 것이었다. 평가자가 구하는 가치가 ‘거래가 있을 경우 성립될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인정되는 가액’이라면 1년째 방매중인 사례가격은 거래가 성사되려면 조금 더 하향해야 되고, 2~3년 째 매물상태라면 매도희망가를 더 낮춰서 거래 예정가격을 정하는 식이다.
가끔 참고할 만한 거래사례를 검색하다가 문득 방매사례를 활용하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해 본 적이 있다. 어떤 시점에서 매물의 양이 얼마나 되는지, 방매기간에 따라 매물로 내놓은 매도 희망가가 어떻게 바뀌는지 전국적인 차원의 데이터가 축적되었다면 굳이 최근에 거래가 완료된 사례가 아니더라도, 계약 체결된 사례와 과거 계약이 이루어질 당시 방매 동향과의 연관성을 밝힌다면, 현재 방매 동향을 통해 거래가능가격을 유추해 볼 여지가 없을까 하는 고민이다. 그런데 이미 이런 고민은 여러 분야에서 현실화되었고 현실화 될 예정이다.
IT를 본적지로 삼고 있는 ‘빅 데이터’라는 용어는 기존의 분석도구나 관리체계를 활용해서는 감당해 낼 수 없을 정도의 막대한 양의 정보를 뜻하는 말이다. 트위터에서 매일 1억 개 이상의 트윗이 이뤄지고 유튜브에서는 40억 회 가까운 검색이 날마다 이뤄진다고 알려져 있는데, 트윗의 내용과 검색 동영상이 어떤 것인지와 참여자의 신상 정보를 연결시킬 수 있다면 우린 무얼 기대할 수 있을까. 최소한 현 시점 시장에서의 선호도, 구매력을 지닌 자들의 관심사 정도는 밝혀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부동산을 비롯한 자산 가치를 평가하는 감정평가 영역에도 분명 빅 데이터가 끼치는 영향이 있을 것이다.
10월 17일부터 19일까지 일본 나고야에서 개최되는 제1회 한·일·중 감정평가협력회의는 이런 대용량 정보 활용의 추세와 부합하는 주제를 선정한 듯하다. 모든 협력회의가 그렇듯이 같은 업을 영위하는 자들이 상호 간 친선을 도모하고 정보를 교환해 업계 발전을 도모하자는 취지의 모임이지만 여기서 다뤄지는 주제는 눈여겨 볼만하다. 본 회의에서 제1주제로 ‘인구와 부동산 시장가치’, 제2주제로 ‘지속가능한 경제에 있어 부동산 가격의 동향’이 발표된다. ‘지속가능’이란 테마 역시 현 시대 경제, 산업분야의 화두라 이를 부동산 가격 동향과 연결시킨 점은 시의적절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인구의 변화에 부동산 시장가치가 어떻게 연동되는지를 분석하는 제 1주제는 철저히 빅 데이터의 조합이라고 말할 수 있다. 감정평가업계가 이런 빅 데이터를 활용하고 분석하려는 연구에까지 이르렀다면 이제 현 시점의 자산 가치 추계뿐만 아니라 향후 가치의 변동과 예측을 시도해 볼 수 있는 장(場)이 마련된 게 아닐까 조심스레 전망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