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이 고일 정도로 감동받고, 소름 끼칠 정도로 감탄했다!”




그저 입시를 위해 문학 참고서로 시를 배워 온 당신. 껍데기는 가라고 사람만이 희망이라고 아무리 외쳐 봐야, 내 몸 뉘일 방 한 칸 없고, 열정을 불사르겠다는데도 부르는 곳은 없으며, 부장님은 퇴근 무렵 보고서를 내던지고, 오늘밤에도 월급은 통장을 스치운다. 그래도 우리 마음만은 가난하지 말자고, 〈죽은 시인의 사회〉 속 키팅 교수를 꿈꾸며 메마른 심장의 상징 공대생들과 함께 시를 읽기 시작한 사람이 있다.




한양대학교 국어교육학과 정재찬 교수는 때로는 지나간 유행가를 흥얼거리고, 때로는 누군가의 추억이 된 영화를 보고, 때로는 어떤 말보다 가슴을 후비는 욕 한 마디를 시 구절에 덧붙이면서 우리 시대를 풍미한 최고의 현대시들을 학생들과 함께 읽었다. 그렇게 낡은 교과서 속 시 지문은 공대생마저 눈물짓게 할 가슴을 적시는 불후의 명시로 되살아났다. 한 번쯤 그렁그렁 가슴에 고인 그리움이 왈칵 쏟아지는 그 순간, 시는 찾아오고, 청춘은 다시 시작된다. 기쁜 우리 젊은 날 좌절한 그대여, 지금은 바로 진짜 시를 만날 시간이다.




이제 감히, 대학 입시 때문에 지금도 억지로 시를 공부하고 있는 학생이든, 시를 향유하는 자리에서 소외된 노동하는 청년이든, 심야 라디오에 귀 기울이며 시를 읊곤 하던 한때의 문학소녀든, 시라면 짐짓 모르쇠요 겉으로는 내 나이가 어떠냐 하면서도 속으로는 눈물 훔치는 중년의 어버이든, 아니 시라고는 당최 가까이 해 본 적 없는 그 누구든, 시를 잊은 이 땅의 모든 그대와 함께 나누고파 이렇게 책으로 펴냅니다.
-〈머리말〉 중에서





1. 공대생을 위한 현대시 명강의
- 한양대학교 국어교육학과 정재찬 교수의 오감만족 현대시 강의

대학교의 한 강의실, 학생들은 무언가에 홀린 듯한 표정으로 눈물짓다가, 탄식하다가, 깔깔깔 웃는다. 그리고 강의의 끝을 알리자 모두가 약속이라도 한 듯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이는 영화 속의 한 장면이 아니다. 바로 대학의 시 강의에서 벌어진 장면이다. 보통의 중·고등학교 학생들은 마치 ‘종교적 제의’와 같은 문학 시간을 거치며 문학에 완전히 흥미를 잃는다. 교사는 마치 제사장처럼 경전을 대하듯이 주석을 덧붙이며 시를 읽고, 학생들은 그 주석을 열심히 받아 적고 암송하면서 시의 낭만과 아름다움과 진실 들에서 점점 더 멀어져 간다. 그렇게 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시가 무어고 소설이 무언지 까맣게 잊고 먹고사는 데 급급해질 뿐이다. 아니, 어쩌면 우리는 제대로 시를 읽은 적이 없을지도 모른다. 



 
한양대학교 국어교육학과의 정재찬 교수는 이러한 우리 문학 교실에 대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교양 강좌 ‘문화혼융의 시 읽기’를 개설했다. 이 수업에는 주로 문과대학생보다는 공대, 의대, 법대, 경영대 등 시와는 거리를 두고 지내온 학생들이 대부분. 무엇이든 공식이나 수치로 답하길 즐겨 하는 ‘메마른 심장의 상징’ 공대생들에게 시를 읽히는 과정은 마치 초등학생에게 미적분을 가르치는 것처럼 어려웠다. 《시를 잊은 그대에게》는 이러한 공대생들마저 눈물짓게 한 정재찬 교수의 시 읽기 명강의를 엮어 낸 책이다.




《시를 잊은 그대에게》는 한양대학교의 문·이과 통합 교육의 일환인 ‘융복합 교양 강좌’ 중 이공계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시 읽기 강좌, 정재찬 교수의 ‘문화 혼융의 시 읽기’ 강의의 내용을 바탕으로 집필한 ‘시 에세이’다. 각종 스펙 쌓기와 취업에만 몰두하느라 마음마저 가난해져 버린 학생들에게 시 읽는 즐거움을 오롯이 돌려주고자 했던 정재찬 교수의 ‘문화 혼융의 시 읽기’ 강의는 매 강의마다 학생들의 박수갈채를 받으며 한양대 최고의 교양강의로 선정되었다. 어떤 특별함 때문이었을까? 



 
사실 이 책에서 다룬 46편의 시는 우리에게 매우 친숙한 작품들이다. 중·고등학교 문학 교과서에서 한 번 쯤 보았던 한국의 근·현대시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눈은 살아 있다”의 ‘눈’은 오로지 ‘순수’의 상징이라고 읽고, 김소월의 시는 무조건 식민지 지식인의 정한이라고 해석해온 그런 시들 말이다. 신경림의 〈갈대〉, 윤동주의 〈별 헤는 밤〉, 김춘수 〈꽃〉 등 교과서에서 클리세Clich?처럼 읽히던, 그러나 지금까지도 한국 최고로 손꼽히는 시들을 동시대인의 삶 속에 생생하게 되살리기 위해 강연에는 각종 영화와 소설, 유행가와 가곡, 그림과 사진 등 다양한 문화콘텐츠들이 동원되었다. 소리와 영상뿐 아니라, 후각과 촉각을 모두 동원한 특별한 시 읽기였다.




이 책은 평론의 언어를 그대로 답습하여 문학으로부터 독자를 소외시키고 마는 우리 문학교육의 엄숙주의를 날카롭게 비판하며, 마치 축제를 즐기듯 문학을 향유하는 방법을 일러 주고자 한다. 문학작품을 많이 아는 것보다 진짜 좋아하는 시 한 작품이 있어야 스스로 작품을 찾아 읽고 즐길 수 있다는 믿음에서다. “문학교육이 잘 살아서 문학 역시 더 잘 사는 관계로 만들고 싶었다(인터뷰 중)”는 정재찬 교수는 몇 차례의 강의를 통해 학생들이 다양한 장르의 콘텐츠를 활용하여 자신의 일상을 시와 함께 읽고 쓰는 힘을 기를 수 있는 교수법을 실험했고,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학업과 취업 준비에 지쳤던 학생들은 20년 전 혹은 50년 전의 시가 마치 자신의 속마음을 비추는 듯 공감했고, 직접 글을 쓰며 스스로 치유되고 있음을 느낀다고 고백했다. 진실로 처음 ‘시’를 만난 것이다. 이처럼 2012년부터 공대생들이 기립박수로 화답한 명강의 ‘문화혼융의 시 읽기’의 생생한 현장을 유려한 문체로 담아낸 이 책은 장르의 경계를 넘나들며 인문적 지평을 확장해나간다. 나가는 정재찬 교수의 에세이를 따라가다 보면, ‘공대생’처럼 시를 잊고 살았던 사람들 모두 다시 시의 즐거움을 되찾게 될 것이다.



“한 편의 공연 예술을 보는 듯한 강의였습니다. 황홀했고, 또 정말 가슴 설?습니다.”
“매 수업마다 눈물이 고일 정도로 감동받았고, 소름 끼칠 정도로 감탄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항상 즐거웠습니다.”
“초·증·고와 대학을 통틀어서 들은 모든 수업 중에서 제일 감명 깊고 인상적인 수업이었습니다. 독특하고 신선한 교수법을 통해 멀게만 느껴지는 시를 재미있고 유익한 수업으로 이끌어 낸 것에 놀랐습니다.”
“정말 정말 의미 있는 강의였습니다. 종강이 아닌데도 저절로 박수가 나오는 강의, 처음이었습니다. 어렵다고만 생각했던 시가 가깝게 느껴집니다. 영화, 음악과 함께 시를 감상하고 시인의 삶에서 시를 비추어 보는 모든 과정이 흥미로웠습니다. 진짜 낭만이 무엇인지 사랑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셔서 감사합니다.”
-한양대학교 학생들의 강의 평가 중에서



2. ‘불후의 명시’, 모두의 가슴을 적시다
-전 세대를 아우르는 문화적 기억으로서의 시

사람들은 삶과 사랑을 논하는 짧은 글과 사진 한 장에 여전히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듯한 진한 감동을 느낀다. 페이스북, 트위터 등 각종 SNS를 통해 퍼져나가는 짧은 글들을 낯모를 사람들과 공유하며 가슴에 공명하는 무언가를 느끼는 것이다. 그러나 정통 문학 장르인 ‘시’에 대해서는 여전히 거리감을 확인한다. 입시 위주의 문학교육을 받은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그렇지 않을까? 바로 시 해석에 ‘정답’이 존재한다는 생각에 지레 겁을 먹기 때문이다. 《시를 잊은 그대에게》는 그렇게 사람들의 가슴 속에서 멀어진, 문학 교과서 속 근현대시들을 엄선하여 공식과도 같은 뻔한 시 읽기에 가슴 떨리는 파문을 일으킨다. 당대를 가장 치열하게 담았고 가장 뜨거운 순간에 쓰였으나 교과서 속에서 빛을 잃게 되었던 ‘불후의 명시’들을 다시 읽으며 생명력을 불어 넣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특별한 시 읽기 방식을 보여 준다. 황동규 시인의 〈즐거운 편지〉를 읽을 때는 가수 신승훈의 〈보이지 않는 사랑〉을 애달프게 불러 보기도 하고, 신경림 시인의 〈가난한 사랑노래〉의 어느 한 구절을 읽을 때는 욕 한마디를 덧붙여 읽기도 한다. ‘청각의 시각화’라느니 ‘공감각적 심상’이라느니 그런 교과서 같은 설명 대신 오래된 광고 한 장면을 찾아보는 것이, 일제강점기 시인들의 절연한 심사를 이해하기 위해 시를 강렬한 록음악으로 바꿔 불러 보는 것이 바로 시가 전하는 목소리를 더 솔직하고 진실 되게 이해하는 것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정작 이 시가 실린 교과서의 교사용 지도서를 볼 때, 그리고 거기 실린 해설이 지금까지도 이 시를 다루는 거의 모든 참고서의 주류를 지배하고 있음을 목도하게 될 때마다 나는 얼굴이 화끈거린다. 그에 따르면 이 시의 주제는 ‘따뜻한 인간애’ 혹은 ‘인간적 진실의 따뜻함과 아름다움’이라는 것이다. (중략) 진실로 이 시의 주제가 따뜻한 인간애라면 이 시는 사뭇 부드럽고 따스한 어조로 낭송을 해야 할 터, 나는 도저히 이 시를 그렇게 읽을 방도가 없다. 특히 점층적 고조에 이른 마지막 연에서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왜 모르겠는가”라는 대목은 울부짖듯이 읽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강의 시간에 실제로 이 시 구절 뒤에 욕설 하나를 슬쩍 붙여서 읽어 보이기도 한다. 아무리 보아도 이 시의 초점은 가난한 노동자의 따스한 마음에 가 닿는 것이 아니라 그로 하여금 단지 가난하다는 이유로 모든 것을 포기하게 만든 이 현실을 향한 것으로 보아야 옳기 때문이다.
-25쪽~26쪽 〈가난한 갈대의 사랑노래〉 중에서




눈의 가치를 새삼 발견한 때의 저 시인의 동공처럼 이제 이 시를 읽는 우리의 동공도 이렇게 확대되어야 할 것이다. 이렇게 읽어 보라. “눈은 살아 있다! 떨어진 눈은 살아 있다!! 마당 위에 떨어진 눈은 살아 있다!!!” (중략) 이 대목에서 우리는 이 시의 내포 청자가 곧 ‘젊은 시인’이었음에 주목해야 마땅하다. 로커처럼 젊은 시인은 젊은 시인다워야 한다. 젊은 시인이 늙은 시인처럼 가곡을 노래하고 발라드를 흥얼거릴 수는 없는 처지이다. (중략) 진정한 의미의 자유를 위해서는, 진정한 문학을 위해서는, 시인은, 젊은 시인은, 기성 문화에 저항한 로커들처럼, 근대화에 반기를 든 히피들처럼, 침을 뱉는 용기와 행위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291~295쪽 〈깨끗한 기침, 순수한 가래〉 중에서




그러니 소월의 한을 집단적 전통이나 식민지 민중의 심정과 기계적으로 결부 짓곤 하는 습관적인 해석과 이젠 결별하자. 그의 한은 사무치게 개인적이다. 그것은 또한 관념이 아니다. 시에 담긴 그의 처절한 삶, 그 한의 질과 농도에 유념해 귀를 기울여 보라. ‘아버지’는 아버지이되, ‘부모’가 될 수 없었던 이를 아버지로 두었던 소월의 상처를 아프게 바라봐 주고, 시를 통해 흘러나오는 그의 신음을 공감하며 들어 주어야 하는 것이 우리가 시인에게 먼저 베풀어야 할 도리가 아닐까?
-201쪽 〈아버지의 이름으로〉 중에서



‘불후의 명곡’이 과거의 노래를 지금 시대의 감각으로 고쳐 부르면서 전 세대가 하나의 음악으로 소통하도록 만들었듯, 《시를 잊은 그대에게》 역시 시 해석도 ‘버전 업’하여 함께 향유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시에 담긴 그리움, 애달픔, 설렘, 분노 등의 보편적 정서는 서로 다른 세대와 계층으로 하여금 추억을 부르고 치유하게 하여 결국 하나의 ‘문화적 기억’으로 소통하게 만든다. 강의와 책에서 시를 이해시키기 위해 인용하여 사용한 대중가요나 광고, 영화들은 과거의 문화적 유산에 가깝지만, 정재찬 교수는 오히려 시에 담긴 공통감각과 보편적 정서를 통해 세대를 넘어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음을 확인했다. 20대 초반의 학생들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강의를 경청했고, 40~50대 수강생들은 지난 세월을 회상하며 한결같은 박수를 보냈다.



이 책은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 속 키팅 교수가 그러했듯 독자들에게 울고 웃고 울분을 토로하기도 하며 시와 아름다움과 낭만과 사랑을 이야기한다. 마치 시인과도 같이 가슴을 찌르는 듯 날카롭고 풍부한 그의 뛰어난 글 솜씨는 강연과는 또 다른 마력을 지니고 있다. 정재찬 교수는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이 시를 가지고 대화하는 것이 유행하는 노래나 드라마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느끼게 되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교조적으로 시 구절마다 주석을 붙여 읽는 대신 마치 이 책이 시를 읽는 방식대로 ‘발산적으로’ 시를 읽기를 권하고 있는 것이다. 독창적인 해석과 풍부한 인문학적 지평을 바탕으로 오직 시만이 줄 수 있는 깊은 떨림과 울림을 독자들과 함께 공유하는 이 책은, 언젠가 시 구절에 뜬금없이 눈물지었던 그러나 감정의 사치라며 애써 시 읽기의 즐거움 외면했던 그 누구라도 다시금 시집을 손에 쥐도록 만들어 줄 것이다.




유혹하는 글쓰기

황진구 부장판사(서울중앙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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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체요강(The Elements of Style)'이나 '유혹하는 글쓰기(On Writing)'는 문장론이나 창작론에 관한 대표적인 책이다. '고종석의 문장'이나 '소설가의 일' 같은 우리나라 책들도 있다. 이런 책들에서 제시하는 글쓰기 방법은 법률문장에도 대체로 유용하다. 예를 들면, 수동태는 한사코 피하라는 것, 명사와 동사 위주로 쓰라는 것, 부사를 쓰지 말라는 것, 불필요한 단어를 생략하라는 것, 한국어의 경우 가짜 동사를 쓰지 말라는 것("신청을 했다"보다 "신청했다"가 낫다. '했다'가 아니라 '신청'이 진짜 동사다) 등등이다. 그리고 좋은 글을 쓰는 방법은 많이 읽고 많이 쓰라는 것이다.



실용적인 글을 쓰는 법률가는 소설가처럼 아름답게 쓰지는 못하더라도 정확한 글, 이해할 수 있는 글을 써야 한다. 생각나는 몇 가지만 얘기해 보겠다.



① 간결하게 쓰는 것이 좋다. 논리가 약할수록 글이 길어진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향해 직선으로 가라.

② 이야기를 만들지 마라. 서사를 완성하기 위해 창작을 하면 진실에서 멀어지고 신뢰성이 떨어진다. 특히 재판서의 경우는 그렇다.

③ 중요한 것을 먼저 써라. 논거들 중에는 핵심이 있다. 그것이 설득력을 가질 때 공감이 이루어진다.

④ 법률문서는 글을 통한 대화인 경우가 많다. 동문서답을 아름답게 쓰는 것보다 투박하더라도 물어본 것에 대답해 주는 것이 더 필요하다.

⑤ 섬세하게 써라. 사실관계에만 해당하는 말이 아니다. '볼 수 없다'와 '보기 어렵다'는 어감이 다르다. 가려서 써야 한다.

⑥ 쉽게 쓰는 것이 좋다. 법률용어 같은 전문용어는 존재가치가 있고 언제나 순화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일부러 어려운 말을 만들어 쓸 필요는 없다.


얘기하자면 끝도 없지만, 요컨대 "이야기를 복잡하게 하지 않으려면 '진실'을 말하는 것이 가장 좋다."(오에 겐자부로, 아름다운 애너벨 리 싸늘하게 죽다) 법률문장도 사실과 생각하는 바를 숨김없이 정확하고 간결하게 쓰는 것이 좋겠다.



 

 

 

 

 

 

들어가는 글

제1부 띄어쓰기
단어는 전부 뗀다, 조사만 빼고! | 조사 아닌 척해도 조사하면 다 나올 너 | 단어인 듯 단어 아닌 너 (1) - 어미 | 단어인 듯 단어 아닌 너 (2) - 접사 | 과감하게 띄면 그만, 의존명사 | 조사냐 어미냐 접사냐 의존명사냐 - 네 정체를 밝혀라! | 그저 사전만 믿고 가는 합성어의 띄어쓰기 | 그렇다고 사전을 덜컥 믿으면 안 되는 띄어쓰기 | 띄어쓰기의 마지막 난관, 보조용언

제2부 맞춤법
기본형을 잘못 알고 있는 동사와 형용사 | 구분해서 써야 할 동사와 형용사 | 활용에 유의해야 할 동사와 형용사 | 주의해서 써야 할 어미와 조사 | 주의해서 써야 할 관형사와 부사 | 주의해서 써야 할 명사 | 알아 두면 좋을 복수 표준어

제3부 외래어 표기법과 문장부호
외래어 표기의 기본 원칙들 | 외래어 표기를 위한 알짜배기 팁들 | 고유명사 표기, 이것들은 알아 두자! | 언어별 핵심 체크! | 문장부호, 별거 아니라고 보기에는 꽤나 소중한

부록
보조용언의 종류 | 한 단어라 붙여 써야 하는 합성어들 | 틀리기 쉬운 외래어 표기 | 주의해야 할 외국 인명 표기 | 주의해야 할 외국 지명 표기

난이도와 중요도에 따른 내용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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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 편집자가 전하는 맞춤법 노하우,
책 쓰기 시작한 바로 ‘당신’을 위한 최소한의 맞춤법


맛춤법을 잘못쓴 문장을 읽는건 여간 고역스러운 게 안이다. 당장, 지금 이 문장만 하더라도 맞춤법과 띄어쓰기만으로 글에 대한 신뢰도가 어느 정도까지 떨어질 수 있는지를…… 우리는 직접 확인할 수 있다. 『책 쓰자면 맞춤법』은 제목처럼 꼭 책을 쓰려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SNS, 보고서, 연애편지, 업무레터, 문자 등 거의 매일 글을 쓰는 전 국민에게 ‘맞춤법’은 생각보다 일상적으로 필요함을 알리는 책이다. 「여대생 90%, 맞춤법 틀리는 이성에 호감 약해져」(연합뉴스, 2013년 10월 7일자)와 같은 기사까지 굳이 참조하지 않더라도, 첫 문장에서 확인한 바와 같이 내용은 형식에 의해 저해될 수 있다. 프로 편집자가 전하는 맞춤법 노하우, 바로 『책 쓰자면 맞춤법』이 필요한 이유다.

“나는 네가 지난밤에 애인에게 무얼 잘못했는지 알고 있다”

누군가는 귀찮다는 이유로 띄어쓰기를 거부하고, 누군가는 이게 더 예뻐 보이지 않느냐는 이유로 당당히 틀린 맞춤법의 한글을 고집하지만, 그러나 한글맞춤법을 틀리는 이성에게 호감이 떨어진다는 조사결과는 그런 고집 부리는 이들의 마음을 사정없이 할퀴고 지나간다. 꼭 그래서는 아니지만 이 책의 저자는 “썸남썸녀에게 ‘아프지 말고 빨리낳아ㅠㅠ’라는 순수한 호의의 문자를 보내고 ‘낳긴 뭘 낳아! 너나 낳아’라는 시퍼렇게 날선 답장을 받아보신 여러분이라도 충분히 읽고 이해하실 수 있도록”이라며 책 쓰기 전(前)단계로서의 맞춤법뿐만 아니라 우리의 기초적인 생활 맞춤법 역시 놓치지 않는다. 논리와 글 구성이 훌륭하여 감탄을 자아내던 중 그의 글에서 “어의없다” 같은 걸 어이없게 찾아내면 문득 필자에 대한 신뢰감 역시 소폭 낮아지는 우리의 마음 역시 어찌할 수 없는지라, 이 책은 바로 그러한 사소해 보이지만 틀리기 쉽고, 그래서 더더욱 틀리면 아니되는 맞춤법 규정을 담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유를 모르겠는데 불과 하룻밤 사이에 여자친구의 문자가 쌀쌀맞아졌다면 지난밤에 보낸 문자 한번 확인(하고 맞춤법 체크도) 해보길 권하는 바다.
맞춤법이 생각보다 중요한 이유는 연애생활 외에서도 많이 찾아볼 수 있는데, 이 책의 저자는 편집자로서의 경험을 들어 이렇게 밝히고 있다.

편집자로서의 경험을 덧붙이자면, 맞춤법을 정확하게 지킨 글은 저자에게 감탄케 하고, (할 일이 줄어든다는 점에서) 감사하게 하며, 나아가 ‘이 저자의 맞춤법과 띄어쓰기는 엄정한 사고를 거친 산물이니 더더욱 주의해야겠구나’ 하는 마음까지도 들게 합니다. 물론 그렇지 않은 글을 허투루 대한다는 말은 절대, 절대 아닙니다만, 맞춤법을 잘 지킨 글에는 ‘빨간 펜’을 대는 데 좀 더 신중해지는 게 인지상정이요, 업계의 공공연한 비밀입니다. 오탈자를 만났을 때에도 보통의 경우라면 별 생각 없이 ‘잘못 쓰셨구나’ 하고 고칠 확률이 크지만, 맞춤법을 꼼꼼히 지키는 저자의 글이라면 ‘이건 실수가 맞을까? 내가 모르는 단어가 따로 있는 건 아닐까? 이렇게 쓰신 숨은 의도가 있는 건 아닐까?’ 한 번 더 생각해 보게 되지요. (본문 8쪽)

자신의 글을 씻기고 변변하게 단장해서 내보이는 것, 그리하여 그 글을 읽는 이로 하여금 허투루 보지 않게 하는 것은 글쓴이의 몫이고, 또한 능력이다. 기왕이면 다홍치마,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등등의 속담을 동원하는 건 좀 멀리 나간 감이 있지만, 그럼에도 맞춤법 맞는 글이 그렇지 않은 글보다 품격을 갖추게 되는 것은 저자의 말마따나 ‘인지상정’인 것이다.

문법을 다시 생각해 보기를 권함

영어를 일찌감치 포기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모두 하는 말이 ○○형식이 무슨 말인지 모르겠고, 품사가 도대체 뭔지 모르겠다는 것. 암기와 응용은커녕 아예 처음부터 뭐가 뭔지 모르겠다는… 영원한 영어초급자들의 변을 듣는다. 문법(文法)이라는 것은 애초에 그 文(과 언어)의 세계에 진입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가이드 내지는 매뉴얼 역할을 해주는 것인데 사람들은 이상하게도 가이드의 손을 잡지 않는다.

 


그러나 모든 일이 그렇듯, 원리를 알고 나면 응용과 활용이 자유로워진다. 품사의 정체와 그 기능과 몇 가지 원칙을 알고 나면 추론하여 적용을 할 수 있게 된다(“단어는 전부 뗀다, 조사만 빼고!” “조사는 몇 개가 되든 붙여 쓴다” “의존명사는 별도의 단어이니 띄어 쓴다”……). 예를 들어, “학교에서만이라도”라는 말을 다 붙이기는 좀 긴 느낌이 들어 적당한 데서 띄어 써 볼까 궁리하는 사람들에게, ‘조사는 몇 개가 되든 붙여 쓴다’는 원칙을 보여 주며 띄어 쓰지 않아도 괜찮다고 안심을 시켜 주는 일은 그 이후 그의 언어사용에 얼마나 많은 자유를 주는 일인가, 하는 말이다.

 


맞춤법을 틀리는 것에 거리낌이 없는 한국어 사용자들은 문법을 그저 제약으로, 답답한 것으로 파악하기도 하지만 언어에 있어서의 규범과 규칙은 제한으로 작용하기보다는 우리를 자유롭게 해주고, 우리의 언어사용에 근거가 되어 주기도 한다. 저자의 지적과 같이, 잘못된 맞춤법이라도 ‘어떻게 써도 그만이지!’라며 거친 인식과 언어사용을 고집하기보다는 바른 말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 말이 쓰일 수 없거나 쓰여서는 안 되는 근거를 가지고 언어를 쓴다면, 그 인식은 곧 글의 치밀함 내지는 사고의 섬세함과 통하는 지점이 있을 것이라는 말. 바른 언어사용이 미치는 부분이 생각보다 광범하다는 것을 새삼 인식하게 되는 순간이다.

실제 언어생활을 반영하려 하되, 그것이 규범 안에서 정리될 수 있도록 애쓴 타협의 결과물이 바로 맞춤법 규정입니다. 원래 규칙이라는 건 통용을 위해 보수적인 습성을 띨 수밖에 없는 데다가 수천만 명이 사용하는 방대한 어휘에 일관적이고 일괄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모두가 만족할 만한 규칙을 만드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니 조금은 너그러워지셔도 좋을 것 같아요. (본문 12~13쪽)

지난 6월에는 부사 ‘너무’가 긍정적인 서술에서도 사용가능한 것으로 국어규정이 바뀐 바 있다. 너무에 대해 너무 오래 전 규정을 들이대기에는 너무 늦은 게 아니냐는 의견 역시 너무 많았던바, 이 발표가 있은 후 “너무를 쓸 수 있어 너무 좋다”는 환호성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음을 기억한다. 언어는 살아 있다. 사라지고 진화하고 변형되고 생성된다. 그에 따라 문법도 역시 변화한다. 문법, 그거 너무 고루하다고, 답답하다고 말하기 전에 언어 자체에 대해, 특정 규칙과 제한이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다시 한번 곰곰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맞춤법규정을 무의미한 것으로 치부하는 것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단어들을 표준어로 인정하자는 주장과 다를 게 없고, 그렇다면 내가 ‘서울시 체육회’를 ‘서울 시체 육회’로 쓰는 것을 ‘어떻해’ 이렇게 쓸 수 있지라고 반문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규정과 제한은 우리의 최소한의 커뮤니케이션을 가능케 하며, 정밀한 사고의 초석이 된다.


그렇다. 이 책은 당신을 자유롭게 할 그 책이 맞다. 고작 맞춤법에 가져다붙이기에 ‘자유’는 조금 거창한 말이 아니냐는 의문은 ‘언어’에 대한 심도 깊은 고민 이후로 남겨두자.

 


당신의 무릅 아니 무릎을 치게 만들 놀라운 찾아보기와 유머

맞춤법과 관련해서 우리 모두 암묵적으로 공유하고 있는 것 중 하나는, 틀리면 부끄러운 맞춤법이 분명 있다는 것이다.

· 무릅쓰다/무릎쓰다 · 건들이다/건드리다 · 고담준론/고준담론
· 둘러쌓이다/둘러싸이다 · 결제/결재 · 생각건데/생각건대

원래 알고 있는데 잘못 쓴 경우이거나 몰라서 잘못 쓴 경우 모두 조금 부끄러운 상황이 연출될 수 있다는 점에서 특별히 마련한 부록과 찾아보기. 저자는 이 부록을 탈고 시 최종 체크용이나 색인으로, 혹은 또 하나의 목차로 활용할 것을 권한다. 장장 57쪽에 이르는 이 책의 부록은 또 하나의 본문이라고 생각해도 될 정도인데, ‘난이도 및 중요도를 기준으로 분류한 찾아보기’에서는 10년여의 편집자 생활에서 나온 저자만의 실제적인 노하우를 실감할 수 있다.

 


이렇게 맞춤법 책 사상 전무후무한 찾아보기 외에도, 이 책의 특이점은 문법 매뉴얼에서 기대하지 않았던 서사와 스토리텔링이다. 맞춤법 책을 읽고 있을 뿐인데 왜 웃음이 나는지 모르겠다며 의아해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 책을 제대로 읽은 게 맞다. 당신이 웃는 사이에 어느새 맞춤법을 익히게 하겠다는 다소 비밀스러운 의도로, 그리고 글쓰기를 시작하는 사람들에게는 안내서가 되기를 바라는 공식적인 의도로 이 책은 기획·집필되었으며, 모르긴 몰라도 이 책 한 권이면 어지간한 우리말에 대한 궁금증은 해소될 것이다.

 


직업적 이유에서건 그 외의 이유에서건 글쓰기에 관심, 혹은 관련이 있는 거의 모든 사람들을 위한 이 책은 글쓰기 초보부터 숙련된 필자까지 모두를 대상으로 하고 있으며, 중·고등학교 시절 국어에 대한 안 좋은 기억이 있는 사람들에게까지 실제적인 도움이 되기를 희망하며, 저자는 다음과 같이 당부한다.


이 책은 글쓰기에 관심이 있는, 혹은 직업이나 기타 이유로 관심이 ‘있어야만 하는’ 분들을 1차 대상으로 하여 쓰였습니다. 작가 지망생, 파워블로거 등의 인터넷 콘텐츠 생산자, 레포트를 자주 써야 하는 학생들, 기업이나 기관의 SNS나 홍보 담당자, 나아가 초보 기자나 초보 편집자 등이 이 범주에 속할 수 있겠네요. 여기서 ‘에이 뭐야, 나 같은 초보한텐 어렵겠잖아’라고 생각하실지 모를 여러분이 이 책을 여기서 덮는다면 그것만큼 안타까움을 금할 길 없는 것도 없을 것 같아 부랴부랴 덧붙이자면, 그렇다고 이 책이 다른 맞춤법 책보다 특별히 더 어려운 내용을 다루고 있는 건 또 아니란 말씀! 글 쓰는 데 실제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그리고 쉽게 활용할 수 있도록 구성에 신경을 썼기 때문에 저렇게 말씀드리는 겁니다. 띄어쓰기에 대해 많이들 궁금해하시지만 이에 대해 상세하게 정리된 맞춤법 책이 없다는 생각에서 띄어쓰기에 꽤 많은 분량을 할애한 것도 그렇고, 책을 다 읽은 뒤에는 곁에 두고 사전처럼 사용할 수 있도록 부록을 구성한 것도 그렇고요. 그러니 난이도에 관해서라면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물론 맞춤법 자체가 엄청 쉬울 수는 없는 노릇이라 술술 읽힐 거라는 장담까지는 차마 못 드리겠습니다만 편한 마음으로 읽으셔도 괜찮을 거예요. (본문 10쪽)

책속으로

ㆍ 알다시피 우리가 하루 이틀 인연이냐.
ㆍ 우린 원래 처음 만나자마자 통했잖아!
ㆍ 마음도 넓디넓은 친구야! 오늘 술은 내가 사도 괜찮지?
ㆍ 그럼, 나야 좋고말고!
ㆍ 네 지갑이 열릴라치면 화낼 테니 각오해! (ㄹ라치면)
ㆍ 알겠어. 오늘 밤에는 일찍 들어가게 둘쏘냐! (ㄹ쏘냐)

역시 화해에는 술이 빠질 수 없구나 하는 교훈(?)과 함께 설명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이 어미들 역시 띄어 써놓고 그냥 넘어가기 십상인 놈들이에요. 특히 ‘알다시피’는 ‘알다 시피/알다싶이/알다 싶이’로 쓰지 않도록 철자와 띄어쓰기 모두 주의해 주세요. ‘하자마자’도 ‘하자 마자’라고 띄어 쓰는 경우가 많은데, ‘자마자’ 전체가 어미랍니다. 또 ‘ㄹ라치면’ 같은 경우는 ‘치다’를 따로 생각해서 ‘할라 치면’으로 써오셨을 확률이 크지만, 어미라는 거 아신 이상 그러시면 안 돼요. 또 그러실라치면 미워할 겁니다.
(41~42쪽)

신입 편집자 시절, 교정을 보면서 가장 어이가 없었던 부분은 이를테면 이런 것이었습니다. ‘곰곰이’가 맞는지 ‘곰곰히’가 맞는지 아리송해 규정을 뒤져 보니 「한글 맞춤법」 51항에 이런 설명이 나오더군요. “부사의 끝음절이 분명히 ‘이’로만 나는 것은 ‘이’로 적고, ‘히’로만 나거나 ‘이’나 ‘히’로 나는 것은 ‘히’로 적는다.” 아하, 그렇구나. 참 친절하기도 하지. 그럼 이 단어 발음이 곰곰‘이’인지 곰곰‘히’인지만 알면 되겠네. 이게 발음이 어떻게 되더……라가 아니라 이게 말이야 소야? ‘곰곰이’라고 쓰여 있으면 ‘곰곰이’라고 읽고 ‘곰곰히’라고 쓰여 있으면 ‘곰곰히’라고 읽는 거 아닌가? 어떻게 쓰는 게 맞는지를 정해 주는 게 맞춤법이고, 우리는 옳은 맞춤법에 따라 쓰인 글자를 읽는 거 아냐? 근데 발음되는 대로 맞춤법을 정한다고?! 이 거대한 순환의 고리 앞에 인간이란 얼
마나 초라하고 나약한 존재더냐 하면서 깊은 회의에 빠진 것……까진 아니고, 그야말로 ‘어쩌라고’ 소리가 절로 나왔지요.


없어졌던 어이를 겨우 다시 찾아올 수 있었던 것은 「한글 맞춤법」 1항, 그러니까 “표준어를 소리대로 적는다”라는 것의 의미를 이해하고 난 이후에야입니다. ‘쓰여 있는 글자를 읽는다’라는사 고방식으로는 제가 느낀 어이없음도 당연하겠지요.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태초에 글자가 있었던 게 아니라 말이 먼저 있었고, 글자는 말을 표기하기 위해 발명된 도구 아니겠습니까? 입에서 나오는 말을 정확히 기록하는 게 글자의 할 일이었을 테고요. 그러니 굳이 순서를 따지자면 ‘쓰여 있는 글자를 읽는다’보다는 ‘입 밖으로 나오는 말을 글자로 옮긴다’가 먼저일 겁니다. 그렇기에 “표준어를 소리대로 적는다”라는 선언은 원칙적으로 흠잡을 데가 없습니다. 발음이 ‘이’냐 ‘히’냐에 따라 옳은 표기를 결정한다는 51항 역시 그런 의미에서라면 이해가 되네요.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 항이 마음에 든다는 말은 절대 아니지만요.
(132~133쪽)

[김지영 기자의 문학뜨락]말이 줄어드는가… ‘시집 불패’ 시대

김지영기자

입력 2015-11-11 03:00:00 수정 2015-11-11 03:00:00

 

 

 

 

황인찬 씨의 두 번째 시집 ‘희지의 세계’는 출간 두 달 만인 이달 초 5000부를 찍었다. 2012년 나온 첫 시집 ‘구관조 씻기기’가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하고 7000부가 나가면서 그의 신작에 대한 기대가 커졌다. 이 뜨거운 관심은 황 씨의 시집뿐일까. 문학의 죽음이 운위되는 21세기에도 시집들의 수요는 놀랍게도 꾸준하다.

 
지난해 이문재 시인이 낸 시집 ‘지금 여기가 맨 앞’은 지금까지 1만 부, 이제니 시인의 두 번째 시집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를 모르고’는 7000부가 나갔다. 이들처럼 중견 시인, 시단에 안착한 시인만 수요가 있는 게 아니다. 올 초 나온 송승언 씨의 ‘철과 오크’는 출간 한 달도 안 돼서, 9월 출간된 임승유 씨의 ‘아이를 낳았지 나 갖고는 부족할까 봐’는 두 달 만에 증쇄에 들어갔다. 두 시인에게 모두 첫 시집이다. 시집을 내는 주요 문학출판사에 따르면 신인들의 첫 시집을 비롯한 대부분의 시집들이 6개월에서 1년 내에 초판을 소진하고 증쇄에 들어간다. 소설 초판이 소화되기 힘들다는 시대에 말이다.

 
때마침 TV 프로그램 ‘비밀독서단’에서 소개한 시집들이 대박을 치면서 시집에 대한 대중적 관심도 뜨거워진 분위기다. 3년 전 출간된 박준 씨의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가 9월 방송에서 소개된 이후 3만5000부가 나갔고 지난주 소개된 심보선 씨의 ‘슬픔이 없는 15초’는 일주일 만에 7000부를 찍었다. 그렇다고 ‘방송 탔다’기엔 이 시집들의 구력은 본래 만만치 않았다. 박준 씨의 시집은 방송 전까지 1만5000부, 7년 전 나온 심보선 씨의 시집은 해마다 7000∼8000부씩 나갔다. 적잖은 양이 지속적으로 판매됐다는 얘기다.

 
왜 시집일까. 소설(1만2000∼1만3000원)에 비해 상대적으로 싼 가격 경쟁력(8000원)도 있다지만 시집 분량을 생각하면 적절한 가격이라는 의견도 적지 않다. 평론가 이광호 서울예대 교수는 소설에 대한 과잉 투자와 기대가 정리되는 최근의 분위기를 지적한다. “다양한 문화상품과 경쟁하는 상황에서 과거와 달리 ‘소설’이라는 이유로 압도적으로 팔리지는 않게 됐다”면서 “소설에 대한 시장의 거품이 걷히고 시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지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시인이자 편집자인 김민정 씨에 따르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시대의 글쓰기도 한몫했다. “SNS에서 글을 빨리 인용하고 전달하는 데는 시의 문장력이 갖고 있는 힘이 크다”는 것이다. 

 
황인찬 씨는 ‘너는 이제 거의 시인처럼 보인다’에서 ‘너는 멀리 나는 새들의 이름을 외우지 않는다 (…) 너는 저기 굴러다니는 작은 사물들이야말로 진정 아름다운 것이라 말하지 않는다’고 노래한다. 물론 시인에 대한 역설적 표현이다. 멀리 나는 새들의 이름을 외우고, 작은 것들을 아름다운 것이라 부르는 사람들, 시를 쓰고 싶고 시인이 되고 싶어 하며 시를 향유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온·오프라인을 망라하고 여전히 한국에 많다. ‘시집 불패’ 신화를 끌어가는 이들이기도 하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9월이 오면/안도현

 

 

그대

 

9월이 오면

 

9월의 강가에 나가

 

강물이 여물어 가는 소리를 듣는지요

 

뒤따르는 강물이

 

앞서가는 강물에게

 

가만히 등을 토닥이며 밀어주면

 

앞서가는 강물이 알았다는 듯

 

한번 더 몸을 뒤척이며

 

물결로 출렁

 

걸음을 옮기는 것을

 

그때 강둑 위로

 

지아비가 끌고 지어미가 미는 손수레가

 

저무는 인간의 마음을 향해

 

가는 것을

 

그대

 

9월의 강가에서 생각하는지요

 

강물이 저희끼리만

 

속삭이며 바다로 가는 것이 아니라

 

젖은 손이 닿는 곳마다

 

골고루 숨결을 나누어 주는 것을

 

그리하여 들꽃들이 피어나

 

가을이 아름다워지고

 

우리 사랑도

 

강물처럼 익어가는 것을

 

그대

 

사랑이란

 

어찌 우리 둘만의 사랑이겠는지요

 

그대가 바라보는 강물이

 

9월 들판을 금빛으로 만들고 가듯이

 

사람이 사는 마을에서

 

사람과 더불어 몸을 부비며

 

우리도

 

모르는 남에게 남겨줄

 

그 무엇이 되어야 하는 것을

 

9월이 오면

 

9월의 강가에 나가

 

우리가 따뜻한 피로 흐르는

 

강물이 되어

 

세상을 적셔야 하는 것을

 

 


두근 두근 내 인생

저자
김애란 지음
출판사
창비 | 2011-06-20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차세대 한국문단의 희망, 김애란 첫 장편2002년, 약관의 나이...
가격비교

 

 

한아름은 열일곱 살의 '남자아이'입니다. 김애란의 장편소설 『두근두근 내 인생』의 주인공이다.

 

'남학생'이라고 소개하지 못한 것은 아름이는 희귀한 질병으로 인해 정상적인 학교 생활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조로증을 앓고 있어, 십대의 나이지만 팔십 세의 몸을 가졌기 때문이다.

 

아름이는 <이웃에게 희망을>이라는 TV 프로그램에 나가게 되어 방송작가와 대화를 나눈 내용이다.

 

 

 

"또래 아이들이 가장 부러울 때는 언제야?" 

"많죠. 정말 많은데... 음, 가장 최근에는 티브이에서 무슨 가요 프로그램을 봤을 때예요."

"가요 프로그램이면 아이돌 말이니?"

"아니요. 비슷한 건데, 가수가 될 사람을 뽑는 경연대회 같은 거 였어요."

"그래?"

"네, 근데 그 오디션에 제 또래 애들이 오십만명 넘게 응시했대요. 뭔가 되고 싶어하는 애들이 그렇게 많다는데 좀 놀랐어요."

"부러웠구나. 꿈을 이룬 아이들이."

"아니요. 그 반대예요."

"반대라니?"

"제 눈에 자꾸 걸렸던 건 거기서 떨어진 친구들이었어요. 결과를 알고 시험장 문을 열고 나오는데, 대부분 울음을 터뜨리며 부모 품에 안기더라구요. 진짜 어린애들처럼, 세상의 상처를 다 받은 것 같은 얼굴로요. 근데 그 순간 그애들이 무지무지 부러운 거예요. 그애들의 실패가."

"왜 그런 생각을 했니?"

"그 애들, 앞으로도 그러고 살겠죠? 거절당하고, 실망하고, 수치를 느끼고. 그러면서 또 이것저것을 해 보고."

"아마 그렇겠지?"

" 그 느낌이 정말 궁금했어요. 어, 그러니까... 저는... 뭔가 실패할 기회조차 없었거든요."

"......."

"실패해보고 싶었어요. 실망하고, 그러고, 나도 그렇게 크게 울어보고 싶었어요."

 

 

 

 

 

 

프롤로그

귤 이름이 뭐라구요?
수영장과 해양경찰
오일장과 사투리 라이프
맛집은 없다
R 체류기
제주도에 사니까 좋아요?
왜 제주에 왔느냐고 물으신다면
기록은 기억을 지배한다
만복이
잘 지내나요
피시앤칩스
아홉 달치의 제주
벚꽃 말고 매화
어쨌거나 록 스피릿
돌하르방과 돌하루방
궁극의 해물라면
아끈다랑쉬, 아끈다랑쉬, 아끈다랑쉬
누구를 위하여 시계는 돌아가는가
존댓말과 곶자왈
벌써 일 년
내 차례의 아픔
안녕, 소리야
소리가 남겨준 것들
집을 비운 사이
4·3 평화공원
나는 정녕 해녀가 될 수 없는가
최연소 방문자의 시련
최고의 해변
제주 FAQ
친절 인플레
도시샌님
집주인이 수상하다
고양이 매력남의 비밀
R의 재림
집은 살아 있다
이게 다 제주에 사는 덕분이다
이 부박한 세상에서 우리를 지켜내는 일
수많은 문 앞에서
이웃의 거리
작별이란 웬 말인가

소리, 풋코와 함께한 제주에서의 사계절

 

 

 

“(개가 많이 아파서 병원에 데려갔더니 큰 병원에 가보래서 둘러업고 서울에 오던 수하물로 싣기 위해 케이지째 개의 무게를 달고, 추가요금을 지불하고, 그걸 들고 뒤뚱거리며 멀어지는 항공사 직원을 보다가 문득 깨달았다. 웬만한 고난은 반드시 담담하게 다루어져야 할 것 같다. 그건 내게만 일어나는 사건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닥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저 이번엔 내 차례가 된 것뿐이다. 게다가 내 손에 있을 땐 아픔이었던 것이 다른 사람에게 넘겨진 순간 킬로그램당 이천원짜리 수하물이 되기도 한다. 그런 걸로 호들갑을 떨면 자신의 고통을 특수화하는 짓, 전문용어로 '징징거림'이 된다. 이런 사정을 고려해 짐짓 담담한 태도를 취해야 한다는 게 아니라. 맥락이 이렇다 보니 저절로 담담해 진다는 의미이다.  

 

 

 

 

 

프롤로그 시간의 우물 10

1부 인연으로 쌓아 올린 집 한 채
달빛과 은행나무 24 | 나무 집을 논하다 52 | 고요한 황홀 57 | 섬세한 아름다움 66
인연으로 쌓아 올린 집 한 채 71 | 함양당에 오면 87

 


2부 가을의 빛
은행잎 지다 96 | 담장 아래 꽃과 나비 99 | 석간수(石間水) 흘러오다 101 | 소나무와 옛 기와 105 국화 107 | 가을의 빛 109 | 땅 위의 물개 111 | 청산을 나는 새 113 | 섬돌 위의 고무신 115
나무 십이지 117 | 블랙커피와 레드와인 118 | 카라얀과 한영애와 임방울 123 | 은행나무 131
황화(黃華) 132 | 행단시사(杏亶詩社) 135 | 작고 길쭉하고 은밀한 방 137
초록 나무와 새의 대문 139 | 옛 장인의 마음 141 | 이런 자물쇠 143 | 저녁이 온다 145
협력해서 선(善)을 이루는 집 147 | 기도의 방 149 | 불타는 석양의 빛 153

 


집 밖 나들이
시골 교회 155 | 퇴촌장 163 | 더 클래식 167

 


3부 눈 온 날 오후
절절 끓는 황토방 175 | 백설애애(白雪靄靄) 179 | 고드름을 문 봉황 181 | 흰 눈 속의 학 183
다담(茶談) 185 | 상선약수(上善若水) 187 | 문향(文香) 그윽 188 | 대청마루 191
눈 온 날 오후 193 | 낮닭 울음소리, 수련 잎에 얹히다 195 | 풍경 소리 197
눈 속의 석인(石人) 199 | 그늘 반 근 201 | 기다림 205 | 아아, 어둠이 내린다 207 | 달빛 209
멀리서 개 짖는 소리 210 | 소쩍새 소리 211 | 빛의 밤 215 | 새벽이 온다 217 | 다시 봄 219

 

 

http://www.hanjak.or.kr/

 

 

 

 

 

 


뉴스의 시대

저자
알랭 드 보통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2014-07-30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이제 뉴스를 보는 우리의 눈은 달라질 것이다!일상의 철학자, 알...
가격비교

 

 

종교만큼 막강한 뉴스, 어떻게 하면 제대로 읽을까?

 

《 교육에 대해 별의별 소리를 떠들어대면서도, 현대사회는 자신의 구성원들을 가르치고 있는 가장 영향력 있는 수단을 검토하는 데 참으로 무심하다. 교실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건 간에, 보다 더 강력하고 지속적인 교육은 방송화면과 전파를 통해 이뤄진다.―‘뉴스의 시대’(알랭 드 보통·문학동네·2014년) 》

오늘 당신은 몇 건의 뉴스를 보았는가. 오늘날 현대인들은 신문으로, 방송으로, 인터넷으로 하루에도 셀 수 없을 만큼 여러 번 뉴스를 검색하고 때론 ‘낚시질’을 당하기도 하면서 뉴스 속에 파묻혀 산다. 저자 알랭 드 보통은 “‘인류의 절반이 매일 뉴스에 넋이 나가 있다’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언론을 통해 결코 접할 수 없는 헤드라인”이라는 말로 표현했다. 철학자 헤겔은 “뉴스가 종교를 대체할 때 사회는 근대화된다”고 말했다. 현대사회에서 종교만큼이나 강력한 힘을 가진 뉴스를, 우리는 어떻게 읽어야 할까.

이 책은 ‘뉴스 사용설명서’다. 셰익스피어를 읽는 법은 가르치지만, 그보다 더 우리의 현실감각에 영향을 미치는 뉴스를 읽는 방법은 가르치지 않는다고 지적하며 뉴스를 어떻게 읽어야 할지를 이야기한다. 뉴스를 만드는 기자로서는 반가운 시도다.

보통은 정치, 국제, 경제, 유명인, 재난, 소비자 뉴스의 6개 분야로 나눠 뉴스의 문제점을 해부했다. 통계는 넘쳐나지만 ‘어려운 것’이 되어버린 경제뉴스, 단편적으로 정치권의 다툼만 늘어놓는 정치뉴스, 독자들의 관심을 유발하지 못하는 해외뉴스에 대해 지적할 때는 기자도 숙연해졌다. 편향에 대해 좀 더 관대해져야 한다고도 말한다. 그는 “순수한 의미에서 편향은 사건을 평가하는 방법을 뜻할 뿐”이라며 “편향된 시각이 생산한 더 믿을 만하고 유익한 뉴스에 올라타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제안했다.

결론은 너무 뻔해서 다소 싱겁다. 보통은 우리가 내면으로부터의 뉴스에 더욱 귀 기울여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가 내면을 들여다보기를 간절히 피하고자 하는 그때가 바로 불편하지만 의미 있는 생각들을 배양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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