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회) : 차진석 [경희대 법대]

 

(46회) : 홍진영 [서울대 법대] → 現 서울남부지법 판사                    [판사]

 

(47회) : 최은경 [서울대 영문] → 現 서울중앙지법 판사                    [판사] 

 

(48회) : 박정은 [서울대 법대] → 現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변호사]

 

(49회) : 김기용 [서울대 경제] → 現 서울중앙지검 검사                    [검사]

 

(50회) : 이승일 [서울대 경영] ※ CPA합격후 회계법인 근무경력

 

(51회) : 전재현 [서울대 법대]

 

(52회) : 장민하 [서울대 법대]

기본에 충실하면서도 남다른 
워렌 버핏의 한 마디 한 마디를 
마음에 새겨 보시면 좋을 듯 합니다. 
항상하시는 모든일 잘 되시길 기원하며, 건강과 행복이 함께하시길 기원합니다.

 

 

 

워런 버핏 (Warren Buffet) 어록

세계에서 두 번째 부자이며 310억불(약 31조원)을 자선사업에 기부한 
워런 버핏을 CNBC 방송이 한 시간 인터뷰 했습니다.

다음은 대단히 관심이 가는 그분의 몇 가지 생활태도 및 어록입니다. 

 

 

그는 11살 때 주식을 샀는데 지금와서 그때 너무 늦게 시작했다고 후회합니다. 
그 당시는 주식이 무척쌌습니다. 
"자식들에게 투자를 하라고 권하세요."

 

 

 

그는 14살 때 신문 배달해서 모은 돈으로 조그마한 땅을 구입했습니다. 
누구나 얼마 안 되는 저축으로도 많은 것을 살 수 있었습니다. 
"자식들에게 어떤 사업이라도 사업을 시작하라고 권하세요."

 

 

 

그는 50년 전에 결혼 했는데, 결혼 후에 구입한 Omaha시의 중심가에 있는 
방 세 개짜리 조그마한 집에서 아직까지 살고 있습니다.
그의 주택에는 담장이나 울타리가 없습니다. 
그는 그 집에 필요한것은 모두 있다고 했습니다. 
"그대가 '꼭 필요한 것' 이상으로 구입하지 말고,  
 자식들에게도 그렇게 하고, 유념하라고 가르치세요."

 

 

 

그는 어디를 가나 스스로 차를 운전하며, 
그의 곁에 운전기사나 비서들을 두지 않습니다. "나는 나일 뿐이다."

그는 세계에서 가장 큰 항공임대회사를 소유하고 있지만, 
자가용 비행기로 여행을 절대 안 합니다. 

 

 

"항상 어떻게 하면 모든 것을 경제적으로 이룰 수 있을까 생각합니다."

버핏이 소유한 버크셔 해더웨이는 63개의 자회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사장들에게 일년에 딱 한번 편지를 보내 그 해의 목표를 지시 합니다. 
그는 절대 주기적으로 회의를 주제하지 않으며 사장들을 소집하지도 않습니다. "사람을 적재적소에 배치하면 됩니다."

 

 

 

그는 예하 사장들에게 단 두 가지 원칙을 지시합니다.  

 

첫 번째 규칙: 당신이 담당하는 투자자들에게 어떤 손해도 입히지 말라.

 

두 번째 규칙: 위 첫 번째 규칙을 잊지 말라.
"목적을 설정하고 투자자들이 확실하게 그 목적에 초점을 맞추게 하십시요."

 

 

그는 상류사회의 집단들과 사교적으로 어울리지 않습니다. 

 

집에 퇴근해서 보내는 시간은 

 

스스로 팝콘을 튀기거나 TV 보는 것이 고작입니다. 

 

"과시하지 말고, 자신의 분수를 지키고, 즐겁게 하고 싶은 일을 하세요."

워런 퍼빗 회장은 핸드폰을 갖고 다니지 않는 것은 물론 

 

 

그의 책상에 컴퓨터도 없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부자인 빌 게이츠가 5년 전에 그를 처음 만났었습니다. 
빌 게이츠 회장은 버핏과의 회의를 30분 정도로 계획했습니다. 

 

그러나 빌 게이츠가 버핏을 만났을 때, 그 회의는 10시간이나 길어졌으며, 
빌 게이츠 회장은 워런버핏 회장의 신봉자가 되었습니다.   

 

 

다음은 워런 버핏 회장이 젊은 사람들에게 충고하는 말입니다. 

 

신용카드(은행 빚)를 멀리하고 스스로에게 투자하고 다음을 기억하세요:

 

A. 돈이 사람을 만들지 않으며, 돈을 만드는 것은 사람이다.  

B. 당신 분수에 맞게 가능한 단순한 생활을 해라. 

C. 다른 사람 말에 따르지 말고, 듣기만 하고, 내가 옳다고 판단하는 것을 해라. 

D. 값비싼 명품만 찾지 말고, 그대가 편안한 것을 입어라. 

 

E. 필요 없는 곳에 돈을 낭비말고, 꼭 필요한 사람들에게 가려서 쓰라.  

F. 가장 행복한 사람은 모든 것을 최고로 좋은 것만 갖는 것이 아니다. .
   그들이 노력하여 얻은 것을 순수하게 감사히 생각하는 사람이다. 

 

 

1. 임대차 계약서를  가지고 관할구청에 가서 출판사 등록을 한다.

 

 

2. 출판사 등록증을 가지고 관할 세무소 가서 사업자 등록을 한다.

 

 

3. 사업자 등록이 나오면 국립중앙도서관을 방문하던지 아님 인터넷으로  출판사 고유 ISBN 번호를 얻는다.

 

 

4.  관련 책을 출간 후  책과 사업자 등록증, 통장 사본 등을 가지고 서점을 계약한다.

황농문 교수 강연록

 

 

몰입이라는 것은 내가 표준과학연구원에서 연구를 하면서 경험한 것이다. 90~97년까지 몰입을 통해 연구를 했다. 내가 몰입을 하게 된 동기는 어떻게 하면 최선의 삶을 살 수 있느냐는 것을 추구하다 경험한 것이다. 어떻게 하면 은퇴할 때 후회하지 않은 삶을 살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인생의 마지막에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가, 그러려면 최선의 삶을 살아야 되겠다고 생각하였다.

 

 

연구원이었기에 연구원으로서 최선은 무엇인가를 고민하였다. 내가 얼마나 고민을 했는지 되돌아보면 내가 개인적으로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지만 항상 그랬던 것은 만약 하나님이 존재하면 제발 어느 날 나한테 나타나서 “너는 이렇게 살아라. 이것이 최상의 삶이고 최선이다”라고 말해주길 간절히 바랬다.

 

 

나는 은퇴할 때도 인생의 마지막 날에 후회하지 않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을 했다. 내가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열심히 했다. 그런데 결국은 최선이 무엇인지 모르겠더라. 어떻게 하는 것이 최선인지를 몰랐다. 열심히도 해봤고, 잠도 안자고 오랜 기간 동안 잠을 줄이면서도 해봤지만 이것은 최선이 아니었다.

 

 

최선의 삶이 무엇일까? 이것만 알면 가시밭길이라도 가겠다는 각오로 부단히 최선의 삶을 추구하다 그 과정에서 결론만 말씀드리면 내가 연구원에서 보내는 시간을 계산해봤다. 사람을 만나는 시간, 연구 과제를 위해 준비하는 시간, 실험 장치를 만드는 시간, 실험을 하는 시간, 실험 데이터를 고민하는 시간 등 여러 가지 시간이 있는데, 그 시간 중에 내게 가장 생산적인 활동이 무엇인가를 보니 어떤 실험 데이터나, 해결되지 않는 문제를 곰곰이 생각하는 시간이 가장 생산적이라는 것을 알았다.

 

 

물론 그런 결론을 얻게 된 것은 내 주변의 여러 석학들의 충고와 멘토링과 그분들의 연구자세들에서 종합적으로 얻은 결과였다. 가장 시간을 잘 활용하는 것은 해결되지 않는 문제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하는 시간이라는 것이었으며, 그것이 최선이라면 그렇게만 보내면 후회하는 삶이 되지 않겠느냐는 결론을 지었다.

 

 

그래서 어떤 해결되지 않는 문제, 중요하고 어려운 문제들만 생각했다. 의식이 있는 그 한 문제만 고민했을 때, 결심을 하고 실천을 하면서 며칠이 지나자 완전히 그 문제만 생각하는 상태가 되었다. 내 의식이 100% 그 문제만 생각하는 상태가 되니 굉장히 놀라운 속도로 많은 아이디어를 얻었다. 나는 굉장히 스트레스가 많을 것이라 예측했는데 이 상태로 일주일 정도 있으면 기분이 좋고 마치 천국에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 상태에 있을 때 능력을 100% 발휘하였다. 그야말로 후회 없는 삶이었다.

 

 

그 결론에 대해서는 변함이 없다. 적어도 연구원이라는 직업에는 완벽한 최선의 삶이라는 것이 존재하고, 그 삶은 그런 상태로 들어가기는 힘들지만 일단 그런 상태에 들어가면 완벽한 삶을 살 수 있고, 한 치의 후회가 없다. 그리고 자신의 잠재력을 100%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을 경험하고 이야기를 하다 보니 강연요청도 있고, 책 출판 요청도 있어 강연도 자주 하게 되었고, 도서를 출판 하게 되었다.

 

 

오늘 말씀드리는 것은 몰입에 관한 것이다. 몰입이라는 것은 여러분들이 말은 많이 들었겠지만 개념이 명확하지 않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 아프리카 초원에서 사자가 얼룩말을 쫒고 있다. 그러면 쫒기는 얼룩말도 몰입을 하고 쫒는 사자도 몰입을 한다. 얼룩말이 도망가는 것에 몰입하지 않으면 잡혀 먹고, 사자도 몰입하여 쫒아가지 않으면 얼룩말을 놓쳐서 굶어 죽게 된다. 몰입이라는 것은 생존을 위하여 모든 동물들이 가지고 있는 기능이다. 그래서 몰입을 할 수 없다는 것은 말이 안 되고, 누구나 가지고 있는 기능이라고 생각한다.

 

 

몰입상태의 특징이 있다. 생존이 걸린 상태에서 몰입을 한다. 그 상태에서 삶이 최고로 고조가 되기 때문에 우리는 저런 몰입상태를 스스로 원하고 즐거움을 맛보게 된다. 그래서 일부로 몰입을 하려고 롤러코스터를 타고, 번지점프를 하는 것이다. 그런 놀이를 할 때 모든 것을 잊고 그 상태에만 몰입을 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몰입은 상당히 다양한 경험을 하는데 흔한 경우는 스포츠를 할 때이다. 내가 테니스를 치며 시합할 때 다른 생각 안 하고 오로지 시합에만 몰입한다.

 

 

물론 여러분이 좋아하는 골프를 칠 때도 마찬가지다. 완전히 집중을 해서 그 상태에서는 모든 것을 잊고 몰입하게 된다. 또 그렇게 혼신을 다하여 집중을 하고 수행을 하여 자기가 목적한 바를 이루면 우리는 희열을 느낀다. 그 상태에서의 희열은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음을 경험한다.

 

 

역사적으로 이런 몰입의 순기능을 사업, 경영에 적용하고, 또 과학에 적용하여 큰 성공을 이룬 분들이 있다. 그런 분들을 잠깐 소개하면, 혼다를 창업한 혼다 소이치로 회장이다. 이 분의 자서전을 보면 ‘좋아하는 것에 미쳐라’라고 하였다. 미친다는 것을 품위 있게 표현한 것이 몰입이다. 몰입한다는 것은 어떤 것에 미쳐 하는 것이다. 이 분은 엔진을 생각하면 머릿속에서 엔진이 돌아가 멈추지 않아 잠을 잘 수 없었다고 한다. 이것은 몰입의 특징이다. 계속 그것만 생각하면 그것만 돌아가고, 또 흥분이 되어 잠이 오지 않는다.

 

 

세계적인 투자가 워렌 버핏, 조지 소로스의 경우를 보면 워렌 버핏이 설립한 버크셔 회사의 직원이 한 말이 있다. “버핏은 하루 24시간 버크셔에 대해 생각한다” 몰입적인 사고를 하는 것이다. 조지 소로스는 “내가 산 주식이 급등하는 꿈을 자주 꾼 적이 있는데 내가 깨어났을 때 그게 꿈인지 아닌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이것 역시 몰입의 특징이다. 그러니 연애에 빠진 연인들이 자나 깨나 연인만 생각하면 만나도 실제적으로 만난 것인지 상상하는 건지 구별이 안 된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몰입이다.

 

 

 

이런 몰입적인 사고를 활용하여 과학적인 업적을 낸 분들도 있다. 뉴턴과 아인슈타인이다. 뉴턴에게 어떻게 만유인력을 발견했냐고 물었을 때 그는 ‘내내 그 생각만 했으니까’라고 대답하였다. 아인슈타인은 ‘나는 몇 달이고, 몇 년이고 생각하고 생각한다. 그러다보면 99번은 틀리고 100번째가 되어야 맞는 답을 얻어 낸다’고 답하였다. 하나같이 큰 업적을 이룬 배경에는 몰입이 있었다. 그래서 위대한 과학자들의 공통점이 모두 뛰어난 지적재능이 있기 때문에 업적을 낸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나는 그들이 몰입을 했기 때문이라고 다른 관점에서 본다. 이들이 한결 같은 체험을 했기 때문에 몰입적인 사고를 했다고 본다.

 

 

몰입적 사고를 통해서 내 분야에서 수십 년 동안 해결되지 않는 문제를 몇 달간 몰입한 끝에 해결하였다. 이것을 경험하고 나서 많은 것을 느꼈다. 내가 정말 완전히 미쳐서 몇 개월, 어떤 문제는 몇 년도 지속적으로 해서 해결하였다. 정말 놀라운 문제들을 해결한 적이 있다. 내 연구 분야의 수십 년간 해결하지 못한 문제는 석학들도 해결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분들의 능력과는 견줄 수 없을 만큼 미치지 못하지만 내가 몰입을 하니 몇 달 만에 해결된 것이다.

 

 

옛날에 위대한 과학자들이 혹시 몰입하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내가 이런 분들의 자서전, 위인전을 몰입의 관점에서 다시 읽기 시작했다. 찾아보니 어떤 책은 피상적으로 썼는데, 이 분들을 연구하는 분들이 자세히 기록한 책들을 보면 한결같이 몰입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도 굉장히 놀랐다. 왜냐하면 몰입을 하면 나 같은 사람도 우리 분야에서 수십 년간 해결 못한 일을 하더라는 것이다. 몰입하지 못했으면 나는 평생을 해도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몰입을 하니 몇 개월 만에 해결이 되더라는 것이다.

 

 

내가 이런 사실을 어떻게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을까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마침 작년에 SBS 몰입 스페셜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인터뷰를 하게 됐다. 내가 SBS에 제안을 했다. 성적이 상위권인 중3학생 열명을 뽑아서 뉴턴이 해결한 미분문제를 시켜보기로 했다. 뉴턴은 미분문제를 해결하여 가속도라는 개념을 얻어 F=MA라는 법칙을 발견하고, 만유인력을 발견했었다. 한달정도 시켜봤으면 하는데, 학생들이 학교 수업 때문에 금요일 오후부터 시작해서 일요일 오후까지 2박 3일간 그 문제만 생각하게 했더니 학생 10명중에 2명이 그 문제를 해결했다. 이처럼 우리가 너무 바쁘게만 살아가고 있는데, 어쨌든 해결되지 않는 문제는 어차피 해결되지 않는다고 문제를 덮어놓고 지나간다.

 

 

하지만 그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지금 답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는 것이 아니다. 모든 창조적인 결과는 지금 답이 안 보인다. 하지만 지금 답이 안 보인다고 해서 평생 노력해도 답이 없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해결하려고 노력하면, 어느 정도 실패를 감수하여 난이도에 따라 하루 동안 시도해서 안 될 때도 있고, 한 달 동안 시도해도 안 될 때도 있지만 그 답이 보이지 않는 영역을 대부분 포기하고 있다. 그 영역을 위해 노력하면 된다. 그것을 추구하여 몰입하면 놀라운 잠재능력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가 뉴턴과 아인슈타인의 머리는 가질 수 없지만 이분들이 사랑했던 몰입적인 사고는 노력하면 따라 할 수 있다. 마라톤도 쉽지 않지만 체계적으로 노력하면 할 수 있다. 나는 마라톤보다 몰입이 쉽다고 생각한다. 체계적인 노력을 통해서 몰입적인 사고를 따라 할 수 있고, 이렇게 따라만 해도 엄청난 위력이 발휘된다.

 

 

너무나 천재적인 뉴턴이나 아인슈타인을 예로 들어 나와는 관계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분들보다는 유명하지 않지만 노벨상 정도는 어떻게 연구를 했는지 소개해드리겠다. 98년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은 루이스 이그내로 교수는 2006년에 방한했었다. 이분이 조선일보와 인터뷰에서 한 이야기다. “과학은 9시 출근, 4시 퇴근하는 일이 아니다. 일주일 내내, 24시간 내내 '왜, 어떻게'가 머리를 떠나지 않고 해답을 얻었을 때 보상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열정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노벨상을 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에 대한 답이 이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한 분을 더 소개하겠다. 한스 베테는 1957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하였다. 그는 그를 유명하게 만든 물리학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던 요인이 무엇이냐고 묻자, “두 가지가 요구된다. 하나는 머리, 두 번째는 분명 아무런 결과도 나오지 않을 수 있는 문제에 매달려 기꺼이 오랜 시간을 생각하면서 보내는 것”이라고 답했다.

 

 

한분을 더 소개하겠다. 라이너스 폴링은 노벨화학상과 노벨평화상으로 2회 노벨상을 수상하였다. 라이너스 폴링의 60회 생일축하 파티에서 한 학생이 그에게 어떻게 하면 좋은 아이디어를 생각해낼 수 있는지를 물었다. 그는 대답했다. "많은 생각을 하고 그 중에서 나쁜 걸 버리게“ 생각을 한다고 해서 정답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많은 생각을 하면 많은 아이디어가 나오지만 나쁜 것을 버리고 좋은 것만 취합하라는 것이다. 아인슈타인도 99번은 실패하고 100번째가 되어서야 좋은 아이디어가 나온다고 하였다. 이것이 성공으로 이끌고 창조의 세계로 이끄는 것이다.

 

 

이제 나의 몰입을 소개하겠다. 내가 몰입을 경험하게 된 것은 ‘다이아몬드가 어떻게 생성되었는가?’하는 물음에서 시작되었다. 옛날에는 다이아몬드를 압력이 아주 높은 상태에서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압력이 낮은 상태에서 다이아몬드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이 발표되어 전 세계적으로 이 연구를 하게 되었다. 수천 명이 이 연구를 하는데, 아무도 그것이 왜 저압에서는 흑연이 다이아몬드보다 안정적인데 흑연이 안생기고 왜 다이아몬드가 만들어질 수 있느냐? 그 이유에 대해서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가장 어려운 문제였다. 그 분야에서 모든 석학들이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었다. 그런데 이 문제를 내가 해결하게 되었다. 나는 평생에 걸려서 해결하지도 못한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 정도로 나의 능력에 비해 어려운 문제였었다. 하지만 나의 무기인 ‘의식이 있는 한 이 문제를 생각하겠다’는 결심을 하고 실천을 한 것이다.

 

 

몰입시도를 하면서 내 경험을 말씀드리겠다. 몰입은 반복이다.

 

 

처음에는 반복된다는 사실을 몰랐는데, 3일 정도 되어야 몰입상태가 되고, 몰입상태에서 1~2주일 연구를 하다 빠져나와서 일상의 일을 하다가 다시 들어가려면 이런 3일의 과정을 거친다. 증상은 문제가 쉬우면 집중이 된다. 문제가 너무 어려우면 자꾸 잡념이 생긴다. 그것을 생각하려고 해도 진전이 없고 다른 상념이 떠오른다. 아무 진전이 없고 극도로 지루해진다. 여러분들도 사업을 하시기 때문에 해결되지 않는 문제에 대해 연속해서 10시간 이상을 생각해본 분도 계실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해결이 안 되고, 진전이 없으면 극도로 지루하다. 그 지루한 정도가 ‘내 평생 이렇게 지루하긴 처음이다’라고 할 정도로 지루하다. 이것을 견뎌 내야 한다. 저녁이 되면 아무 성과 없이 발버둥만 치다가 하루가 간다. 그 귀중한 시간이 아무 성과 없이 그야말로 아무런 아이디어도 없고 진전도 없이 잡념만 들어오고 하루가 가는 것이다.

 

 

둘째 날이 되면 첫날보다는 좀 낫다. 몰입도 라는 것이 0~100%까지 존재한다. 100분간 생각했는데 100분 중 70분 동안 그 문제를 생각했다면 몰입도는 70%가 된다. 산만할 때는 생각하려고 해도 잘 안 되는데, 이때는 몰입도가 0%이다. 이 과정은 몰입도 100%가 되어가는 과정이다. 첫날 하루 종일 생각만 하면 몰입도가 저녁때가 되면 30~40%가 된다. 둘째 날이 되면 첫날보다 쉬워져서 몰입도가 올라간다. 잡념이 덜 생긴다. 아이디어가 떠오르지만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문제가 쉬울 때는 풀리기도 한다. 또 생각을 하다가 졸음이 온다. 그래서 오래 생각을 하려면 생각하는 방법이 달라져야 한다.

 

 

나는 오랜 시간 생각하다보니 자연적으로 터득이 되었다. 문제가 어려울 경우 조급하게 마음먹을수록 손해를 본다. 이것은 스트레스만 만들게 된다. 그래서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는 법을 터득해야 한다. 나는 이것을 슬로우 씽킹(Slow Thinking)이라고 했다. 생각하는 것과 걷는 것을 비유하면 조급하게 생각하는 것은 뛰어가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다가는 한 시간만 생각해도 머리가 굉장히 하프고, 스트레스가 쌓인다. 조깅도 빠른 것이다. 천천히 산책을 하는 속도, 마음에 산책을 하는 정도로 천천히 생각하는 것이다. 우리는 저 문제를 한시간만에 풀어야겠다. 하루 만에 풀어야겠다고 하면 조급해지고 안 된다. 그것이 아니라 평생 동안 이것 하나 하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해야 한다. 한마디로 시간은 얼마든지 있다는 생각으로 시간에 대한 제한을 두지 않는 것이 좋다. 노력은 하지만 마음은 이렇게 해야 한다.

 

 

그렇게 편안한 의자에 앉아서 온몸의 힘을 빼 마치 명상을 하듯이 차분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그 문제만 집중하는 것이다. 나는 이렇게 습관이 되어 지금도 어떤 문제를 생각할 때 항상 자리에 편안하게 앉아서 온 몸의 힘을 빼고 그 문제만 집중한다. 그러면 훨씬 더 아이디어가 잘 나온다. 골프할 때 힘을 빼라고 하는데 원리가 같다는 생각을 했다. 힘을 주고 골프를 하면 조금하게 생각하는 것과 상황이 같다. 그렇게 힘을 주며 골프를 하면 맞지도 않고 금세 힘이 든다. 몸이 긴장상태에서 무엇을 생각한다는 것은 굉장히 비효울적이다. 온몸에 힘을 빼면 집중이 된다. 집중이 되고 오랜 시간을 지치지 않고 생각하고, 생각할 수 있는 재미도 좋다. 그래서 명상하듯이 하며 그 문제의 핵심만 집중하면 훨씬 해결이 잘 되고 아이디어가 잘 나온다,

 

 

그런데 그렇게 하다보면 문제해결이 안되니 잠이 안 오는 특징이 있다. 밤에 잠을 충분히 잦는데도 졸립다. 몰입시도에서 졸리면 생각이 잘 하고 있는 것으로 굉장히 좋은 증상이다. 선잠 때는 아이디어가 잘 나온다. 선잠을 앉아서 자야 되고, 누워서 자면 잠이 들고, 근육이 늘어나 컨디션이 나빠진다. 내가 해보니 내 등높이를 45도로 누이면 근육이 늘어진다. 선잠 1~20분자면 컨디션이 나빠진다. 그러니 30도 정도까지만 눕히고 그런 의자에 머리까지 기대어 선잠을 자면 집중도가 높아지고 컨디션이 좋아진다. 내가 조사를 해보니 선잠 때 아이디어가 잘 나온다는 것은 굉장히 잘 알려져 있다. 창의적인 생각은 선잠을 활용하였고, 생각을 하다 졸음이 오면 첫 날도 마찬가지지만 졸음이 오면 환영할 일이다. 두 번째 날도 별다른 진전 없이 지나간다. 놀랍게도 항상 이렇다. 그러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 이때 귀중한 시간이 흘러지지만 아주 중요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은 항상 이렇게 아주 사막을 건너는 것처럼 힘들다. 이 과정이 내가 7년 동안 몰입을 하면서 좀 나아질까 했는데 똑 같다. 이 과정이 초보자들은 3일이 아니라 일주일정도 걸린다. 잡답도 안하고 오로지 이것만 하기 때문이다.

 

 

사자한테 쫒길 때 되는 몰입은 수동적인 몰입이다. 업무에 쫒기고, 시험에 쫓겨서 하는 몰입이 아니라 자기가 스스로 몰입도를 올리는 것이다. 이 두 가지가 어떻게 다르냐면 사자한테 쫒길 때 생기는 몰입은 위험상황이 없어지면 몰입이 유지가 안 된다. 시험에 의한 몰입도 마찬가지다. 위기상황에 의해서 생긴 몰입은 오래 가지 않고 순간적이다. 이렇게 자발적으로 만든 몰입은 한없이 유지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이렇게 고생하면서 갈 만한 것이 이 상태에서 몰입에 들어가면 자기가 원하는 만큼을 유지할 수 있다. 한 달이고, 1년이고, 주위의 여건만 허락하면 평생도 유될 것이다.

 

 

셋째 날이 되면, 빠르면 아침, 늦으면 오후에 잡념이 완전히 사라진다. 그 전에도 몰입도가 올라가는 것을 안다. 3일째 오전이 되면 대부분 몰입도가 80~90%가 된다. 잡념이 점점 사라지면서 가속이 붙어 완전히 사라지고 이때부터 노력을 하지 않아도 쉽게 집중이 된다. 이때부터 아이디어가 샘솟듯이 나오고 기분이 좋아지면 완전한 몰입상태에 도달한다. 그리고 자기의식에 다른 생각이 없이 오로지 그 문제만 차지하고 있다. 이런 상태가 되면 주의할 점이 있다. 어떤 문제를 자나 깨나 오랜 기간 동안 생각하면 어떤 일이 생기냐면 잠이 안 온다. 여기 계신 분들도 많은 경험을 하였을 것이다. 여기 계신분도 사업과 관련하여 자나 깨나 생각을 하다 밤늦게 아이디어가 오면 잠이 안 온다. 잠이 안 오는 것이 계속 되면 정신적인 신경쇠약도 걸릴 수 있고, 더 나쁘면 정신분열증도 걸릴 수 있다.

 

 

처음에 이 몰입을 모르고 혼자 경험하다 잠이 오지 않는 상태에서 빠져나오지 못했었다. 겨우 빠져오게 되면서 그 방법을 알게 되었다. 매일 땀을 흘리는 운동을 하면 하루에 한 시간정도, 나는 테니스를 쳤는데 이렇게 운동을 하면 괜찮다. 일과가 끝나면 한시간정도 운동은 반드시 해야 한다. 7년 동안 하니 나도 놀라울 정도로 머리를 이렇게 써도 될 수 있구나 하는 정도로 쓰고 있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부터 걸어가면서, 운전을 하거나 밥을 먹거나, 그 생각만 하는 것이다. 주유소에서도 기름을 넣는 순간도 생각을 한다. 항상 그 생각만 하는 것이다. 이렇게 머리를 써도 망가지지 않는 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운동을 한 시간 해주면 아무 부작용이 없다. 한없이 간다. 부작용은 커녕 정신적으로 건강해지고, 육체적으로 건강해지면서 체질이 바뀐다. 산에 올라가는 건 힘들어도 내려오는 것은 한 순간이듯이 몰입도가 올라간 상태에서 TV를 보고나 잡담을 하면 몰입도가 내려간다. 3일 동안 고생해서 몰입해서 올라가 좋기 때문에 그 상태를 계속 유지해야 되는데 TV보고 잡답하면 내려가기 때문에 이것은 하지 말아야 한다. 나도 몇 번 경험해보니 다시 고생해서 올라가야 하기 때문에 TV보기 등은 안하게 된다. 그 상태를 최대한 유지하려고 하다가 할 수 없이 빠져나와야할 상황이 되면 빠져나와서 일처리하고 다시 몰입상태로 들어가면 된다.

 

 

 

몰입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이 상태가 되면 문제에 대한 생각과 함께 잠이 들고 그 생각과 함께 잠이 깬다. 나는 테니스치고 샤워하고 가족들과 저녁을 먹고 가족과 30분~1시간 정도 가족과 시간을 보내고 낮에 생각하던 것을 생각하다 졸리면 그냥 잔다. 이것이 8시 30분이나 9시 정도이다. 그러면 12시나 1시정도에 항상 깬다. 그 생각과 함께 깬다. 주로 그 문제에 대한 아이디어와 함께 깨어 메모한다. 그렇게 1시간~2시간 정도가 굉장히 흥분된 시간이며 이 시간이 하루 중에 하이라이트다.

 

 

그 생각이 낮에 10시간 했었던 아이디어보다 많다. 그리고 생각하다 잠이 들다가 다시 6시경에 의식이 돌아가며 그 생각과 함께 돌아온다. 잠잘 때는 그 의식이 없어서 모르지만 내 느낌은 자는 동안에도 계속 그 생각을 한 것 같다. 그것을 생각하다 잠이 들었고, 깰 때 그 의식과 함께 깨어나기 때문에 계속 잠든 상태에서도 한 것이 아닌가 한다. 나중에 말씀드리겠지만 그 문제 해결은 결국 잠든 사이에 된다고 생각한다. 몰입이라는 것은 잠든 상태에서 우리 뇌가 바뀐다. 최면을 걸면 모든 것을 기억해내듯이 기억력도 좋아지고 활성화가 되며 아이디어를 낸다는 것은 그 검색을 하는 것이다. 내가 문제를 해결하는데 필요한 그 정보를 내가 가진 장기기억에서 검색을 하는 것으로 낮에는 그 검색이 잘 안되다가 밤에는 머리가 슈퍼맨처럼 되어 검색이 잘 된다.

 

 

 

이것이 보통 기억이 안 난다. 나중에 내가 다시 말씀드리겠지만 잠을 잘 때는 기억이 필요한 신경전달물질이 적어서 기억을 못하지만 나중에 떠오르게 된다. 증상은 위험한 아이디어들이 떠오르기 시작하고, 문제에 관련된 모든 것들이 떠있게 된다. 의식이 그 문제로만 점이되어 있기 때문에 내가 풀려고 하는 문제와 관련된 그 오만가지가 머리에 떠 있다. 바둑 프로기사분들이 바둑을 둘 때 바둑판 전체가 머리에 떠있다는 상태와 같다. 그 풀려고 하는 오만가지 생각이 머릿속에 떠 있으면서 서로 연결이 되어 아이디어가 나오게 되는 것이다.

 

 

그 상태에서 내 문제와 관련된 논문을 읽거나 관련된 전문가를 만나 상담을 하거나 전화통화, 방문을 하거나, 관련된 학회를 가면 문제해결능력이 상승된다. 문제와 관련된 정보를 입력하면 내게 떠 있는 생각들과 합쳐져 또 새로운 아이디어가 막 쏟아진다.

 

 

다른 문제에 관한 현명하고 지혜로운 답이 보이기도 한다. 나는 A라는 문제를 풀려고 노력하는 과정 속에 옛날에 고민하던 B라는 문제, C라는 문제, D라는 문제들이 풀린다. 또 놀라운 것은 내가 평소에 의문을 가졌던 거의 모든 문제에 대한 아주 기가 막힌 답이 얻어진다.

 

 

연구와 관련 없이도 고민하고 생각하는 문제들이 많은데 예를 들어 가족간의 문제, 인생이란 무엇인가 하는 의문들이 있는데 이것에 대한 아주 현명한 답이 떠오른다. 인생이 무엇인가 하는 의문은 정답이 없지만 나의 수준에 비해서 굉장히 지혜롭고 현명한 답이 나온다. 그래서 이 몰입상태에서는 인생의 깊이도 굉장히 깊어지고 성숙해진다.

 

 

삶의 의미가 무엇이라는 것도 굉장히 깊은 생각들이 떠오른다. 그래서 모든 면에서 발전함을 느낀다. 한마디로 기적과 같은 깨달음이 매일매일 일어나는 것이다. 그것은 내가 하는 분야 말고도 다른 문제의 깨달음이 얻어진다. 이런 아이디어들이 대부분 우연히 떠올랐다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창의성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위대한 발견들이 우연히 한순간에 영감을 뛰어난다고 하여 이것을 영어로 세렌디피티(Serendipity)라고 한다. 나도 이상태만 되면 우연히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이 유가 무엇인지를 추적하다가 내가 알게 된 것이다. 그 아이디어는 자는 동안에 떠오른다. 몰입을 하면 자는 동안 슈퍼맨의 뇌를 사용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잠이 들 때는 뇌가 슈퍼맨이 되어 장기기억이 활성화가 되는데, 우리가 몰입을 하지 않고 생각을 안 하고 자면 그 슈퍼맨의 뇌를 활용하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는 매일 선잠이나 깊은 잠이 들었을 때 그 뇌가 슈퍼맨이 되는데 잠이 들면 의식이 없기 때문에 그 슈퍼맨의 뇌를 활용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데 몰입을 하면 생각하다 잠이 들고, 자면서 생각하고, 의식이 돌아오면서 잠에서 깨어나기 때문에 그 슈퍼맨의 뇌를 활용하여 수많은 아이디어들이 떠오른다. 떠오르는데 우리가 잠잘 때 기억력이 작기 때문에 기억을 못하는 것이다. 기억을 못하다가 낮에 그것이 떠오르게 되는데 이것을 나는 우연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사실 그것만 자나 깨나 생각했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이다.

 

 

이를 나타내는 이야기를 몇 가지하겠다. 알버트 아인슈탄인이 이런 이야기를 했다. "나는 결코 이성적인 사고과정 중에 커다란 발견을 이룬 적이 없다." 상대성 원리를 얻은 것도 어느 날 한 순간에 얻은 아이디어였다는 것이다. 또 교세라를 창업한 이나모리 가즈오 회장은 일본에서 경영의 신으로 추앙받고 있는 사람이다. 이분의 카르마 경영이라는 책에 "나는 인류에게 새로운 지평을 열어준 분야별 연구자들을 많이 만났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들 모두가 창조적인 아이디어가 떠오른 것은 신의 계시라도 받은 것처럼 한 순간에 이루어졌다고 얘기하는 것이 아닌가. 그 창조의 순간은 잠깐 쉬는 시간에, 때로는 꿈속에서 '우연히'찾아 오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나는 이것이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은 사람에게 우연히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나 깨나 생각한 사람에게 찾아온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사람에게는 필연적으로 나타난 것이다라고 내가 경헙해 보았기 때문에 말할 수 있다. 그 몰입상태에서는 고생을 하면서 들어가는데 그 고생이 아깝다는 생각이 한번도 없다. 항상 귀중한 아이디어들이 떠오른다. 그래서 몰입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잠잘 때 활성화된 그런 뇌를 활용하는 것이다.

 

 

현재 뇌과학에서 잠이 든 상태에서 경험을 하고 수면 중에 학습을 한다고 알려져 있다. 경험한 것을 밤에 잘 때 중요한 것은 장기적으로 보내고, 중요하지 않은 것은 패기 처분한다는 것이다. 낮에 정보가 얼마나 많이 들어오냐면 눈을 뜨고 시각적으로 들어오는 정보도 엄청나다. 눈으로 비디오 리코딩을 하면 HD 레졸루션으로 녹화가 되고, 청각으로 녹음이 되고, 후각으로도 기록이 되며 이 많은 정보를 전부 기억을 하면 우리 뇌는 포화가 되어버린다. 대부분은 쓸모없는 기억할 수 없는 정보이다. 그래서 밤에 해마가 정리를 한다고 한다.

 

 

해마가 무엇을 기준으로 중요하고 중요하지 않는 것을 가려내느냐가 뇌과학에서 밝혀졌다. 주로 쥐를 통한 실험으로 밝혀졌다. 두 가지 있는데, 하나는 그 정보가 들어왔을 때 자극의 세기가 커 소스라치게 놀라웠거나 아주 재밌었거나 굉장히 흥분했을 때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장기기억으로 보내고, 또 그 정보가 반복해서 들어오면 해마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한다. 그래서 반복학습이 이제 효과가 있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몰입을 한다는 것은 내가 A라는 문제를 풀기위해 반복해서 생각하는 것이다. 해결하기 위해 생각을 하고, 또 하며 반복의 반복을 계속하다보니 이것이 얼마나 중요하다고 생각하겠는가?

 

 

해마는 반복하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이것이 몇 날 며칠이고 그 생각만 하니 해마는 우리 신체에서 도대체 이 문제가 얼마나 중요하기에 자나 깨나 이 문제만 생각하느냐? 이것 해결 못하면 이 사람 죽나보다라고 받아들이는 것 같다. 몰입이라는 것은 생존이 걸린 상태에서 발동되는 비상사태이기 때문에 이 과정은 비상사태를 선포하는 것이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이상적인 상태는 모든 것을 잊고 의식이 이것으로만 채워지게 만드는 것이고 이것만 생각하는 상태가 몰입이다. 나는 몰입이 생리학적으로 이러한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죽으라고 반복적으로 생각하면 반복적으로 발버둥치면 그 상태에 들어가게 되며 이는 우리 몸의 기능 한 기능이라는 것이다.

 

 

 

수면 중에 활성화된 장기기억이 그 상태에서도 생각을 하니 문제 해결을 하고, 수명상태에서는 기억기능이 약화되어 기억을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새벽에 일어나면 아이디어가 많이 나오는 이유이다. 여러분들도 어떤 문제해결을 위해 고민을 했으면 새벽에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것을 많이 경험하였을 것이다. 대신 기억기능이 약화되어있기 때문에 새벽에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잘 기록할 필요가 있다.

 

 

일어났을 때 기록을 반드시 해야 된다. 기억기능이약화가 되어 우리가 렘수면이라고 해서 눈동자가 왔다 갔다 하는 수면이 있다. 렘수면에서는 항상 꿈을 꾸고 깨어날 때만 기억한다고 한다. 우리가 잠이 들었을 때는 기억기능이 약하다. 대신 장기기억을 인출하는 기능은 슈퍼맨이 되어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내가 서양속담에 "Sleep on the problem." 이 있는데 이것은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있으면 자면서 생각하라는 것이다. 얼마나 잠자면서 생각하는 것이 문제해결이 잘 되면 속담으로 나올 정도이겠는가. 그래서 이런 현상은 아주 일반적인 현상인 것이다. 내가 몰입상태에서 세렌디피티 해석은 잠이 든 사이에 얻어진 아이디어가 기억이 나지 않다가 낮에 우연히 떠오르게 된다는 것이다.

 

 

몰입된 상태의 감정은 즐거움, 쾌감, 흥분이 얻어진다. 이 상태가 일주일정도 이상이 되면 이 감정이 증폭이 되어 천국에 사는 기분을 느낀다. 새벽에 고요한 행복감이 가슴 깊은 곳에서 밀려옴을 느끼게 된다. 내가 새벽에 일어나면 가족들은 자고 있다. 세상은 조용하다. 그러면 이 넓은 우주에 그 문제와 그것을 생각하는 나, 오로지 이 두 가지만 존재함을 느낀다. 그러면서 이것이 인간이 할 수 있는 최대의 집주이라는 생각이 든다. 굉장히 깊은 행복감을 느낀다. 내가 정말로 나의 잠재력을 100%발휘하고 있다,

 

 

이보다 더 잘 할 수가 없고, 그 와중에 아이디어가 나오는 경험을 하게 된다. 마치 문제와의 열애를 하는 것 같다. 흥분이 되어 그 문제와 관련된 단어만 생각해도 흥분이 된다. 몸이 달아오르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충만하고 삶다운 삶을 경험하며 이렇게 재밌는 것을 하면서 월급 받아도 되나 하는 생각도 들고, 내가 이제까지 헛살았다. 내가 하루를 살더라도 이렇게 살다가 죽어야한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몰입상태를 경험하기 전에는 삶이라는 것이 억지로 힘들지만 살아가야 되는 줄 알았는데, 이 몰입을 경험한 되로 그냥 보통 삶은 죽지 못해 사는 삶 이었다.

 

 

그래서 하루를 살아도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 내 삶에 100% 반영이 됨을 느낀다.

마치 그렇게 행복하면서도 나는 그 문제를 풀려고 나의 모든 세포가 문제를 풀려고 발버둥치는 것 같다. 그래서 마치 문제와 목숨을 건 전투를 하는 것 같다. 그러니 문제를 푸는 데는 극도로 진지한데, 나는 굉장히 평온하고 행복함을 느끼며 이런 상태가 가능함을 실감하게 되었다.

 

 

또한 몰입된 상태의 감정은 종교적 감정이 생긴다. 내가 푼 문제가 마치 내가 생각하고 있는 문제가 나의 아이를 잉태한 것 같다. 그래서 신성하게 느껴지고, 고괴하게 느껴지고, 상대적으로 나는 미천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것만큼은 세상에 알려야겠다고 생각하였다. 내가 종교가 없기 때문에 내가 생각하는 문제가 종교가 되었다.

 

 

내가 이런 종교적 감정을 느껴서 사람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다. 그래서 나는 종교가 이렇게 생긴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하고 다녔다. 몰입이 종교적 상태라는 것을 증명하는 뇌촬영 결과가 있다.

 

 

이 상태가 되면 가치관이 변한다. 사람은 자기가 하는 것에 대해 굉장한 행복함을 느끼면 이제까지 많은 나에 대한 생활이 현재의 생활에서 행복을 취하는 것으로 최적화가 되어있다. 대인관계부터 시작해서 나의 모든 생활이 그런데 이것은 최상의 선택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인 것이다. 그런데 이런 몰입상태를 체엄하고 나면 달라진다. 왜냐하면 내가 최상의 기쁨을 얻으면서도 내 능력이 100%발휘가 되는 것이다. 이것보다 좋은 건 없는 것이다. 내가 행복하기도 하고, 내 능력이 100% 발휘되어 결과가 나오는 것이다. 내가 평생을 해도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를 해결하며 기쁘니 이거보다 좋은 게 없다. 옆에 천국이 있다고 해도 관심이 없게 된다.

 

 

그러면서 가치관이 바뀐다. 어떻게 바뀌냐면 내가 하는 일이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되니 비로소 내 자신을 완전히 던진다. 그렇게 하는 것과 가치관이 변하기전에는 내 능력의 10~20%만 던진다. 엉덩이는 뒤로 빼고 고개만 가 있는 상태지만 몰입이 되면 완전히 내 몸 전체를 던지게 된다. 그렇게 하면서 내 능력이 100% 발휘가 되고 재미가 있게 된다. 원리가 이런 거였다.

 

 

이창호는 바둑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바둑에 자기 인생을 던진 것이다. 골프를 치는 박세리나 타이거우즈는 골프가 세상에서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자기 인생을 던지는 것이다. 나의 경우는 내가 하는 연구가 가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를 던지는 것이다. 이렇게 내가하는 일이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믿음이 없으면 자기 인생을 던져 최선을 다하기가 어렵다.

 

 

내가 이런 몰입상태로 유지한 것은 내가 몇 개월 동안 한 문제만 풀려고 계속 유지했다. 보통 때는 1~2주일만 몰입했다가 다시 일상생활로 돌아와서 일을 하고 다시 몰입상태에 들어가고 한다. 그런데 연속적으로 오랫동안 한 것이 몇 개월 동안 유지한 적이 있다.

 

그 상태가 되면 일상에 기억은 하나도 없게 된다. 내 머릿속에는 온통 내가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만 채워져 있다. 그러면 내가 세상을 사는 이유가 그 문제를 푸는 것이다. 세상에 관심이 하나도 없어진다. 내가 어느 정도냐면 그 당시 성수대교가 무너지고 삼풍백화점이 무너져도 우리 가족은 그럴 정도로 세상을 모르고 있었다. 주어진 문제를 풀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문제를 푸는 것이 삶의 이야가 되고, 문제를 풀겠다는 호기심과 가치관이 극대화가 된다. 이상태가 되면 인생아 아주 단순해진다. 이 문제를 생각하는 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되고, 문제를 생각하지 못할 때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 된다.

 

 

내가 경험한 인간이 할 수 있는 두뇌 활용의 극대화라는 것이 있다. 이 우주에 그 문제와 나만 존재하는 인간이 할 수 있는 최대의 집중상태이고, 그 다음단계는 문제가 나인지 내가 문제인지 문제와의 일체감을 느낀다. 이런 상태를 종교적 상태라고 한다. 삼매라는 사전적 정의가 일체라고 한다. 그 다음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호기심과 가치관이 극대화 되고,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욕망과 열정이 최대화가 되고, 극도의 직접정신이 종교적 감정과 이런 가치관이 합해져 내 일생에서 가장 생산적이며 행복한 삶을 체험하였다.

 

 

내가 종교적 감정이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무엇을 근거로 한어인가? 내가 종교적 감정을 느꼈다. 내가 작년에 SBS 몰입 스페셜에서 내가 몰입된 상태에서 내 뇌를 찍어보자고 하여 가천의과대학에서 뇌를 찍었다. 그때 100%몰입상태는 아니었고60~70%상태에 찍으니 오른쪽 전두엽이 활성화가 되고, 두정엽이 비활성화가 되었다. 이런 상태가 종교적 상태라고 알려져 있다. 이런 뇌 영상을 통해 종교를 연구하는 뉴러 씨알러지라는 신경신학이라는 학문이 있다. 그 학문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오른쪽 전두엽이 활성화가 되고, 두정엽이 비활성화 되면 이것은 종교적 상태라고 정의하고 있다.

 

 

얼마 전에 조선일보의 이인식의 멋진 과학이라는 칼럼이 있다. 여기에 소개가 되어있다. 이러한 발상으로 괄목할 만한 연구 성과를 거둔 대표적 인물은 펜실베이니아대의 신경과학자인 앤드루 뉴버그이다. 그는 뇌 영상 기술을 사용하여 명상에 빠진 티베트 불교신자와 기도에 몰두하는 가톨릭의 프란체스코회수녀가 아주 강렬한 종교적 체험의 순간에 도달할 때 뇌의 상태를 촬영하였다. 2001년 4월 펴낸 '신은 왜 우리 곁을 떠나지 않는가'(Why God Won't Go Away)에서 뉴버그는 명상이다 기도의 결정에 이르렀을 때 머리 꼭대기 아래에 자리한 두정엽 일부에서 기능이 현저히 저하되고 이마 바로 뒤에 있는 전두엽 오른쪽에서 활동이 증가되었다고 밝혔다.

 

 

 

나도 당연한 것이 종교적 감정을 느끼는 것도 느끼는 것이지만 온몸에 힘을 몰입 하다보면 명상을 하는 것 같다. 물론 나는 명상을 해본적은 없다. 그 상태에서는 종교적 감정이 느껴지면서 심오한 아이디어가 나온다. 이때 나오는 아이디어를 영감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 영감과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나는 경험을 했었다. 놀라운 것은 아인슈타인이 이 부분을 언급 한 적이 있어 잠시 소개를 하겠다.

 

 

아인슈타인은 종교적 감정에서의 연구 활동과 창조성에 대해서 언급한 내용을 보면, "나는 뛰어난 과학적 견해는 모두 깊은 종교적 감정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또한 나는 이것이야말로 우리 시대에서 유일하게 창조적인 종교활동이라고 믿는다.", "과학자는 보편적인 인과법칙이라는 생각 하에 행동한다. 그의 종교적 감정은 조화로운 자연의 법칙에 대한 황홀한 경이감으로 표현되는데, 의심할 여지없이 그것은 모든 시대의 뛰어난 종교가들이 지녔던 종교적 감정과 아주 유사한 것이다." 하나 더 소개하면 "이 <무한한 종교적> 감정은 그것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사람에게 알려주기란 매우 어렵다

 

내 견해로는 이 감정을 일깨우고 이것을 이해하는 사람들 속에서 계속 이 감정이 유지되게 하는 것이 학문과 예술의 가장 중요한 기능이다."나도 이 글을 보고 놀랐다. 나는 강연을 하면 많은 CEO분들이 새벽에 일어나 명상을 하는 분들도 있고, 기도를 하는 분들로부터 그 시간에 많은 아이디어가 떠오른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내가 이런 경험을 하고 나서 왜 가만히 있어도 그것을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은지 내 자신이 너무 궁금해졌다. 이 전에는 행복이라는 것이 물질적인 것이 주어지거나 내가 칭찬을 받을 때 행복하다고 생각했는데 가만히 앉아서 문제만 생각하는데도 지극히 행복하다는 생각에 이 원리가 궁금했다. 그래서 뇌과학책을 봤더니 이 몰입상태의 특징은 고도로 집중된 상태이고, 쾌감이 얻어지고, 문제를 해결하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긴다. 이 상태가 문제해결하려는 사람을 놓지 않게 되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게 되는 것이다.

 

 

무엇을 근거로 하는지 모르겠지만 이 상태만 되면 자신감이 생긴다. 문제는 턱 없이 어려운데도 말이다. 내가 독안에 든 쥐를 잡겠다는 의지가 이 몰입상태에서는 자신감이 생겨 일년이 걸린다고 해도 이 문제를 놓지 못하는 것이다. 이 확신이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

이런 자신감과 열정이 생기고, 의욕이 생기고, 그 상태에서 창조성이 굉장히 높아진다.

 

 

뇌과학을 읽어보면 도파민이라는 물질이 있고 이것에 대한 설명이다. 뇌를 각성시켜 집중과 주의를 유도하고, 쾌감을 일으키며 삶의 의욕을 쏟게 하고 창의성을 내는 신경전달물질이라고 하였다. 이것을 보고 나는 너무나 똑같아서 내가 이 몰입상태에서 도파민이라는 물질이 나오는 것이구나, 과잉 분비된다고 확신을 하게 되었다.

 

 

그때 이 쾌감이 보통 때의 쾌감과 무엇이 다르냐면 한번 업(up)이 되면 한번 다운(down)이 된다. 내가 몰입하기 전에 가장 행복감을 느꼈을 때가 대학에 합격했을 때이고, 두 번째가 KAIST에 합격했을 때였다. 그리고 6개월은 즐거웠지만 6개월은 우울하면서 반복이 되었다. 하지만 이 몰입상태는 업다운(up-down)이 없다. 그냥 그 상태에서 끝까지 간다. 이것은 마이너스 피드백이 없어서인 것 같다.

 

 

이런 도파민이 나오는 것은 스냅스라는 신경과 신경을 연결하는곳에서 나온다. 그런데 스냅스와 자아를 쓴 조지프루드의 책을 번역한 서울대 강봉균 교수가 신경세포 연결방식이 스냅스를 만드는데 이 스냅스가 어떻게 자아를 결정하는가? 이것이 바로 우리 자체라는 것이다. 우리 자신은 스냅스 연결이라고 하는데 뇌세포 사이의 정보교환은 스냅스 사이에 일어나는 생화학적 반응에 의해서이고 우리의 사고 감정활동기억과 상상은 스냅스에서 일어나는 반응의 결과라고 하였다. 스냅스는 장기기억을 의미한다. 컴퓨터 같은 역할과 흥분을 만난다. 이렇게 생각하면 된다.

 

 

내가 몰입도를 올리면 스냅스가 많아져 흥분도 되고 활성화가 된다. 내가 야구를 하는데 몰입을 했다면 그 야구에 관련된 훈련을 받으면 스탭스가 형성된 것이다. 그 순간에 이 스냅스가 활성화가 안된다. 하지만 몰입도를 올리면 그 스냅스가 다 불러 모여져 활성화가 된다. 그러면 컴퓨터수가 늘어나는 것이다. 몰입도가 낮은 상태에서는 공이 오면 100개의 컴퓨터로 계산하다보니 공이 지나가버린 것이다. 내가 준비도 하기 전에 공이 지나간 것이다. 몰입도를 올리면 컴퓨터가 천개, 만개가 되어 공이 오는 속도, 각도 등이 모두 측정이 되어 나는 공이 상대적으로 늦게 오는 것으로 느껴지고, 축구공처럼 커 보이는 것이다. 시냅스가 많아지면 연산능력이 뛰어나 그에 대문 문제해결능력과 기량이 올라가고, 그렇게 몰입하면 많은 시냅스가 활성화되어 있기 때문에 그 스냅스 안에 도파민 등이 나와 많아지면서 흥분이 되어 쾌감을 느끼게 된다.

 

 

여러분들도 굉장히 몰입했을 때 재미가 있다. 영화를 봐도 시간가는 줄 모르고 했을 때, 골프를 할 때도 완전히 몰입했을 때가 재밌다. 이것에 관련된 스냅스가 활성화 되어 이것이 감정으로 나타내기도 한다. 이처럼 도파민은 집중력을 가지고도 있다. 집중력장애라는 ADHD(Attention Deficit/Hyperactivity Disorder) 라는 병이 있다. 이것은 도파민 부족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도파민 자체가 집중을 유도하기 때문에 도파민이 많이 생겨 집중을 시켜 자동적으로 몰입상태가 되어 집중력이 유지된다.

 

 

이런 것을 우리가 알면 우리가 일반화를 할 수 있다. 꼭 100%몰입도가 아니더라도 관련된 문제해결에 하려고 하는 장기기억 능력을 의식적으로 불러오면 관련된 스냅스가 활용되어 몰입도를 올리면 그 문제해결에 대한 수행능력을 올리고 일에 대한 흥분과 열정을 나타낸다. 열정이 많은 사람을 보면 생각이 많은 사람이다. 그 문제 해결 뿐만 아니라 아이디어를 잘 내는 사람에게는 열정이 있다. 이것이 바로 의도적인 사고가 이것을 만든다는 것이다.

 

 

기업에서 몰입적용 예는 셀러리맨의 천국인 미라이 공업의 회사 슬로건을 보면 '항상 생각한다'이다. 미라이공업은 1만 8천종 아이디어 상품이 있고 늘 사원들에게 아이디어를 쪽지로 모으고, 상사 욕, 월급 불만을 제외하면 어떤 내용이라도 일반 500엔을 지급하면서 생각하라고 훈련을 시키는 것이다. 계속 생각을 하면 아이디어가 나오고 열정이 생기는 것이다.

 

 

IBM의 경우도 전 세계 지사에 눈에 보이는 곳에 생각하라고 슬로건을 붙여놓았다. 생각하는 것을 좀더 구체화하기 위하여 생각할 재료를 읽어라, 생각할 재료를 들어라, 막연한 생각을 수정하고 정리하기 위해 토론하라, 상대방이나 대상의 상황을 관찰하라. 일고 듣고 토론하고 관찰한 내용을 생각하라고 하였다.

 

 

빌게이츠도 마찬가지로 1년에 두 번을 'THINK WEEK'라고 하여 외딴 별장에서 내내 나아갈 방향과 어떤 사업을 벌이고 접을 것인가를 일주일 내내 생각해서 결정한다고 한다. 빌게이츠뿐만 아니라 마이크로소프트의 전 임원들이 일년에 2번씩 실시하고, 중요한 문제를 임원들이 공유하고, 해당문제를 가지고 그중 문제하나를 택해 Think Week를 가고, 각자의 리포트를 제출하여 발표하면 사람들의 코멘트를 통하여 점수를 매겨 점수가 높으면 사업화를 하고 점수가 낮으면 사업화를 하지 않는다고 한다.

 

 

작년에 IBM한국 보고서에 보이지 않는 자산이 더 중요하다고 하였다. 지적재산, 인적자원 등 무형자산이 중요해지면서 미 국가경제위원회에서 편찬한 1982년에 미국의 무형재산이 38%였는데, 10년 후에는 62%가 되고, 그리고 10년이 흐른 2002년에는 무형재산이 82%를 차지하였다. 우리나라는 무형재산의 가치가 국내성장기업은 33.6%이고, 초인류기업들인 GM은 무형자산이 93.3%, 마이크로소프트는 87.5%, IBM이 84.4%, 인텔이 73.8%, 삼성전자가 63.8%, LG전자가 58.2%라고 한다. 그래서 명학하게 우리나라가 어디로 가야하는지가 보이는 것이다. 결국 우리가 믿을 것은 인재밖에 없는 것이다. 앞으로 우리가 두뇌에 의존해야 한다는 것이다. 워크하드(Work Hard)가 하니라 씽크하드(Think Hard)를 해서 두뇌에 의존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론을 말씀드리면 인간의 능력으로 도달할 수 있는 최고 수준의 극대화를 의도적으로 구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서양의 프로패셔널리즘과 동양의 명상적 방법이 조화를 이루어 행복하면서도 높은 경쟁력을 갖는 생산 활동을 할 수 있다. 몰입적 사고는 적절한 훈련에 의해 누구나 가능하며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자신의 지적능력을 얼마나 발휘하면서 살아가는지를 점검해야 한다. 이것은 여러분들이 지난 일주일이 여러분의 두뇌가동률을 보면 과연 100%를 유지했느냐? 아니면 거의 0% 했느냐를 항상 점검해야 한다. 이것을 의식하지 않으면 의외로 자기 두뇌를 가동하지 않고 살게 된다. 자기의 가장 가치 있는 것이고 이것을 개발해야 성공하는 것이다. 그러니 항상 두뇌가동률을 항상 의식해야 한다. 바쁜 일상에서도 내가 말하는 강한 몰입은 힘들지라도 약한 몰입은 가능하다.

 

 

내가 제안하는 것은 몰입 룸을 만들어 운영하는 것이다. 일부 회사에서 하고 있다. 부산에 있는 삼성전기가 몰입 룸을 만들어 하고 있는데 효과가 좋아 몰입 룸을 늘인다고 들었다. 일부 벤처회사에서도 하고 있다. 몰입룸, 씽킹룸(Thingking Room)이라고 하여 그 방에는 어떤 문제가 해결이 되지 않으면 담당자가 거기에서 생각만 하는 것이다.

 

 

씽크위크(Think Week)를 임원이상은 실시하면 좋다. 창조휴가라고 하여 씽크위크(Think Week)를 하는 업체가 국내에도 있다. 그다음 씽크위크앤드(Think Weekend)라고 하여 개인의 입장에서 나는 몰입을 하고 싶은데 회사에서 몰입할 기회를 안주고, 주중에서는 해결해야할 문제를 해결해야 되니 주말에 개인시간이 생기면 가족에게 양해를 구해 씽크위크앤드(Think Weekend)를 하고 있다.

 

 

그리고 몰입 전임자이다. 회사의 문제들을 주고 주로 아이디어를 잘 내고 해결을 잘 하는 직원에게 일년에 한 달 이상을 몰입룸, 씽킹룸에서 생각만 하는 것이다. 나는 앞으로 미래의 경쟁력 있는 회사는 이런 회사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강연자/한국과학기술원(KAIST) 금속공학 석사. 한국과학기술원(KAIST) 금속공학 박사. 미국 국립기술표준원(NIST) 객원연구원. 일본금속재료연구소(NRIM) 객원연구원. 쓴 책으로는 “몰입 , 인생을 바꾸는 자기 혁명”이 있다.

'힉스' 발견 소동… 神의 입자는 정말 있을까

한국일보 | 입력 2011.05.08 21:03 | 수정 2011.05.08 22:19

 


 

스위스 CERN서 "찾은 것 같다" 내부 문건 유출

물리학계 관심 속 "확신하기엔 광자 방출량 적어"

 

태초에 '신(神)의 입자'가 있었다. 그는 우주와 함께 태어난 모든 입자에게 명했다. "입자들이여, 질량을 가져라"라고. 16개 입자들에게 각각 질량을 부여하고 난 신의 입자는 신비롭게도 홀연히 사라졌다. 입자들은 신의 입자가 내린 명에 따라 각자의 질량을 받아 들고 물질을 만들기 시작했다. 인간을 비롯해 지금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물질은 이렇게 생겨났다.

↑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의 거대강입자충돌기(LHC) 내부. 긴 원통형 관 속에서 양성자가 빛처럼 빠른 속도로 움직인다. CERN 제공

 

 

 

 

최근 신의 입자가 다시 돌아왔다는 소문이 돌았다. 정말 그때 그 입자인지 아닌지는 아직 확실치 않다. 한편에선 조심스럽게 다른 소문도 돈다. 신의 입자가 어쩌면 인간의 상상이 만들어낸 허구일지도 모른다는.

 

스위스서 날아든 소문


신의 입자가 나타났다는 소문의 진원지는 스위스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에 있는 거대강입자충돌기(LHC) 안이다. 지난달 LHC로 실험하는 과학자들이 "힉스(higgs)를 찾은 것 같다"고 추측한 내부 문건이 외부로 유출되면서 인터넷을 통해 '힉스 발견'으로 부풀려졌다. 그들이 말한 힉스가 바로 신의 입자다.

 


세상의 입자는 두 부류로 나뉜다. 한 부류는 페르미온. 서로 친하지 않아 떨어져 있으려고 한다. 다른 부류는 보존이다. 자기들끼리 뭉쳐 있으려고 한다. 페르미온은 주로 물질을 구성하는 역할을, 보존은 우주의 여러 힘을 전달하는 역할을 맡는다. 이들 입자가 각자 역할을 수행하려면 질량이 있어야 한다. 1964년 영국 물리학자 피터 힉스가 그 질량을 부여한 존재를 힉스라고 제안했다. 물리학자들은 이 시나리오를 '표준이론'이라고 부른다. 결국 힉스는 표준이론의 근간이자 질량의 근원이다. 힉스가 없으면 우주의 질량은 0이다.

 


표준이론에서 페르미온은 12개, 보존은 4개다. 지금까지 모두 발견됐다. 이제 힉스만 남았다. 힉스의 존재만 확인되면 표준이론은 완벽한 이론으로 완성될 수 있다는 얘기다. 물리학자들이 힉스 찾기에 애를 태우고 있는 이유다.

 


LHC는 인간들이 힉스를 찾기 위해 건설한 지름 8km, 둘레 27km에 달하는 대형 실험설비다. 이 설비는 양성자 2개를 강력한 자기력과 전기력으로 빛의 속도 가까이 가속시켜 엄청난 힘으로 서로 충돌하게 한다. 그러면 우주 초기의 대폭발(빅뱅) 당시와 비슷한 상태가 재현된다. 그때처럼 힉스가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는 소리다.

 


힉스는 다른 입자들에게 질량을 부여하는 임무를 마치고 스스로 붕괴하면서 빛 알갱이인 광자(光子)를 방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 LHC에선 광자가 특히 많이 검출됐다고 한다. 힉스가 나타나 방출했을 걸로 추측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사실 광자를 방출하는 입자는 힉스 말고도 더 있다. 힉스가 과연 얼마나 많은 광자를 방출하는지도 아직 모른다. 김수봉 서울대 물리학부 교수는 "힉스가 정말 나왔는지 확신하기엔 데이터 양이 너무 적다"며 "LHC 실험을 3~7년은 더 반복해야 판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완벽한 이론을 향해

 


표준이론을 연구하는 물리학자들에게 힉스는 반드시 있어야 하는 입자다. 그것도 단 하나만 있어야 한다. 유인권 부산대 물리학과 교수는 "LHC나 ILC에서도 힉스가 나오지 않는다면 수십 년간 세워온 표준이론 자체가 뿌리째 흔들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물리학자들은 LHC로도 모자라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새로운 설비인 국제선형충돌기(ILC)까지 구상하고 있다. LHC는 원형인데 비해 ILC는 직선형으로 지어질 것으로 보인다. LHC보다 훨씬 높은 에너지로 전자와 양성자를 충돌시키기 위해서다. 에너지가 클수록 힉스 발견 가능성도 커지리란 예측이다. 아쉽게도 예산 문제로 건설이 아직 확정되진 않았다.

 


많은 과학 발전은 기존 이론의 한계를 극복하거나 아예 뒤집는 데서 시작됐다. 뉴턴의 고전역학과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처럼 말이다. 고전역학은 느리게 움직이는 물체의 운동을 기술하는 데는 잘 들어맞았다. 하지만 속도가 빨라질수록 한계가 명확했다. 이를 해결한 게 상대성이론이다. 덕분에 빛만큼 빠른 물체의 움직임도 설명이 가능해졌다.

 


물리학자들은 이미 표준이론 이후를 상상하고 있다. 힉스가 아예 없거나 둘 이상일 가능성이 제기됐다. 힉스가 여러 개인 시나리오를 물리학자들은 '초대칭이론'이라고 부른다. 표준이론에서 16개였던 입자가 초대칭이론에선 2배로 는다. 페르미온과 보존의 역할 경계도 불분명해진다. 어쩌면 힉스가 세상의 모든 입자 위에 군림했다는 태초의 시나리오도 수정이 불가피해질지 모를 일이다.

표준이론의 힉스는 전기를 띠지 않는다. 그러나 초대칭이론에서 힉스가 2개 이상이면 음이나 양의 전하를 갖게 된다. 김수봉 교수는 "LHC에서 만약 중성이 아니라 전하를 띤 힉스가 나온다면 역시 표준이론을 수정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직까지는 표준이론이 우세하다. 대다수 물리학자들이 신의 입자의 존재를 求쨈? 하지만 한편에선 LHC나 IHC에서 모두 힉스가 발견되지 않길 은근히 기대하는 학자들도 있다. 힉스가 있다면 표준이론은 완성되겠지만 최종 목표를 이룬 입자물리학자들은 더 이상 할 일이 없어지게 된다. 반대로 힉스가 없으면 표준이론을 뛰어넘으려는 새로운 이론들 간 치열한 선두다툼이 전개될 게다. 그 편이 더 흥미진진할 거란 기대다.

[인터뷰] 이동걸 前 금융연구원장 "강만수 중용, 한탕하고 탈출하자?"

기사입력 2011-03-23 오전 9:27:45


돈 앞에서 체면 따지는 사람은 없다. 이자를 0.1%라도 더 쳐주는 은행에 돈을 맡기려는 마음은, 누구나 똑같다. 그리고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이런 마음을 비난하지 않는다. 그게 세상의 원리라고, 지극히 자연스러운 마음이라고 인정한다. 이처럼 벌거벗은 욕망들이 알알이 모이고 부딪혀 거품 일으키며 흐르는 바다가 바로 '금융'이다. 아무런 가식 없는, 실용의 세계다.

 

 

'금융'과 '선비'의 조합이 영 어색해 보이는 것은 그래서다. 벌거벗은 욕망을 그대로 인정하는 선비라니, 그렇지 않은가. 하지만 가만히 따져보면, 욕망이 날카롭게 부딪히는 곳일수록 '선비'처럼 올곧은 심판이 필요하다는 걸 깨닫게 된다. 큰 돈이 오가는 거래일수록 규칙이 엄해야 하는 법. 그렇지 않으면, 타짜들이 날뛰고, 결국 판 자체가 깨진다.

 

무턱대고 '실용'만 쫓는 논리가, '실용' 그 자체를 위해서도 해로운 이유다. 한마디로, 금융에도 선비가 필요하다. 그리고 여기, 선비 같은 금융인이 있다.

 

 

"연구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한갓 쓸데없는 사치품 정도로 생각하는 왜곡된 '실용' 정신, 그러한 거대한 공권력 앞에서 이제는 제가 더 이상 여러분에게 도움이 되기보다는 짐이 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에 금융연구원을 떠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연구원을 정부의 Think Tank(두뇌)가 아니라 Mouth Tank(입) 정도로 생각하는 현 정부에게 연구의 자율성과 독립성은 한갓 사치품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동걸 한림대 재무금융학과 교수가 2009년 1월에 쓴 글이다. 당시 이 교수는 한국금융연구원 원장이었고, 임기를 1년6개월 남긴 상태에서 갑작스레 사표를 냈다. 이 글은 당시 이 교수가 금융연구원 직원들에게 보낸 편지 가운데 일부다. 금산분리 완화, 자본시장통합법 시행 등 현 정부의 금융정책에 대해 반대 입장을 분명하게 밝혀왔던 그는 정부로부터 다양한 압력을 받았고, 결국 자기 발로 자리를 떠났다. 그리고 한참 동안 야인 생활을 했다.

 

 

당시 그를 보며, 많은 이들이 '선비'를 떠올렸다.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직언을 하는 모습이 딱 '선비'라는 게다. 그런데 그에겐 이런 일이 이게 처음이 아니다.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4년 8월에도 그는 금융감독위원회(현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자리를 스스로 박차고 나왔었다. 역시 자신의 소신 때문이다. 실용만 쫓는 이들에겐 '물 좋은 자리'를 제 발로 걷어차는 그의 모습이 그저 어리석게만 비칠 게다. 하지만, 이런 불합리한 행동이 우리 경제를 조금 더 합리적으로 돌아가게끔 해 왔다.

 

 

묘한 것은 두 차례의 갑작스런 사퇴가 모두 삼성 문제와 관련이 있다는 점이다. 금융연구원장에서 물러나는 계기가 됐던 '금산분리 완화' 문제는 삼성 지배구조 문제와 긴밀히 맞물려 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1%대의 지분으로 삼성그룹을 지배할 수 있는 것은, '삼성에버랜드 → 삼성생명 → 삼성전자 → 삼성카드 → 삼성에버랜드'로 이어지는 순환출자구조 때문이다. 그런데 금산분리 관련 규정은 이런 순환 고리를 끊는 역할을 한다.

 

 

2004년 금융감독위원회 부위원장 자리를 떠난 것도 삼성 문제 때문이다. 당시 금감위는 생명보험사 상장 기준에 대한 논의를 하고 있었는데, 당시 부위원장이던 이 교수는 생명보험사 상장 이익에서 보험 계약자 몫을 보장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생명보험사가 '상호회사(고객에게 소유권과 이익이 분배되는 회사)'라는 속성을 갖고 있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입장은 당시 금감위 안에서 소수파가 아니었다. 오히려 다수파였다. 금감위 안에서는 계약자 대 주주 몫이 7 대 1 또는 8 대 1까지 거론됐었다.

 

 

그런데 이 교수는 당시 삼성생명의 변칙적인 회계처리 사실을 밝혀냈다. 삼성생명이 수년간 보험감독 규정을 어기고 거액의 투자유가증권 평가이익을 주주 몫으로 계상한 사실을 파악해 공개한 것이다. 보험계약자에게 돌아가야 할 이익이 이건희 회장 등 고(故) 이병철 삼성 창업주의 후손 몇몇에게 돌아갔다는 것.

그런데 여기서 반전이 생겼다. 이 교수가 삼성생명의 변칙적인 회계처리를 공론화하자, 주변 관료들 대부분이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이 교수는 "그 순간, 모든 사람이 내 적이 됐다"고 말했다. 결국, 그는 자리를 떠났다. 생명보험사 상장 차익에서 보험 계약자의 몫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 쪽으로 결정됐다. '7 대 1 또는 8 대 1'이 아니라 '0대 10'이 된 것이다.

 

 

이를 놓고, 이 교수는 "노무현 정부의 최대 실패작"이라고 평가했다. 1990년대 말까지 생명보험사 상품은 모두 배당보험이었는데, 배당보험은 생명보험사가 손해를 보면 보험 계약자가 배당을 덜 받게끔 돼 있다. 보험 계약자가 회사의 손실을 메워주는 구조다. 일종의 '상호회사' 방식이다. 그런데 막상 상장이익이 생길 것 같으니 '회사는 주주의 것'이라는 논리를 내세우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게 이 교수의 입장이다.

 

 

이런 입장과 정반대 편에 서서, 생명보험사 상장차익을 모두 주주에게 돌리는 쪽으로 방향을 튼 것은 윤증현 당시 금감위원장이었다. 이명박 정부에서 기획재정부 장관을 맡고 있는, 바로 그 윤증현이다. 윤 장관 덕분에, 이건희 회장은 약 4조6000억 원의 상장차익을 얻게 됐다.

 

 

윤 장관은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에서 계속 고위직을 맡았고, 이 교수는 두 정부에서 모두 중도 사퇴 이력을 남겼다.

윤 장관과 이 교수의 이런 대조적인 이력은, 적어도 재벌 문제만큼은 노무현 정부와 현 정부가 별 차이가 없다는 점을 보여준다.

 

 

지난 14일, 이 교수를 만났다. 서울시 종로구 옥인동 <프레시안> 편집국에서 만난 그는, 금융 현안에 대해 거침없는 의견을 쏟아냈다. 또 과거 금감위 부위원장 시절의 경험도 솔직하게 털어놨다. 이날 나눈 이야기를 정리했다. <편집자>

 

 

"측근부터 시작된 MB레임덕…'한탕'하고 탈출하려는 이들만 많다"

 
▲ 이동걸 한림대 교수ⓒ프레시안(김윤나영)

 

 

프레시안: 이명박 대통령과 소망교회에서 인연을 맺었던 강만수 씨가 산은금융지주 회장에 임명됐다. 현 정부 들어 이런 일이 잦았다. 이보다 앞서 이 대통령의 고려대 경영학과 동문인 어윤대 씨가 KB금융지주 회장이 된 일도 있다. 현 정부의 정책 기조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취하다 자리에서 물러난 입장에선 할 말이 많을 듯 하다.

 

 

이동걸: 강만수 씨가 산은금융지주 회장에 내정됐다는 보도를 보고 '레임덕이 측근부터 시작되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대통령 주변 사람들 사이에서 '대통령 임기 끝나기 전에 한탕 하고 탈출하자'라는 심리가 번지는 게 아닌가 싶었다.

 

그러면서 점점 불길해졌다. 그렇다면, 과연 현 정부는 경제정책을 제대로 통제할 수 있을 것인가. 측근부터 탈출할 궁리만 하고 있는데 말이다.

 

 

더구나 강만수 씨는 금융 전문가가 아니다. 세제 전문가일 뿐이다. 오로지 충성심을 기준으로 해당 분야에 전문성이 없는 인사를 임명하는 일이 현 정부에서 반복되고 있다. 예컨대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도 통화정책 전문가는 아니다. 그는 노동정책 전문가에 가깝다.

 

 

물론 어느 정부나 다 이런 면이 있다. 내가 김대중 정부에서 1년, 노무현 정부에서 1년 반 동안 대통령을 지켜봤다. 결국 인사는 충성심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은 그게 너무 심하다.

 

"산은 민영화, 결국 낙하산 자리 여럿 만들겠다는 것 아닌가"

 

 

프레시안: 산업은행과 관련해서는 쟁점이 많다. 대표적인 게 '민영화' 논란이다.

 

 

이동걸: 산은 민영화, 나는 도무지 이해 못하겠다. 만약 정부가 정책금융의 필요성을 부인한다면 산은 전체를 민영화하면 된다. 그런데 정책금융의 필요성은 인정하지 않는가. 그러니까 정책금융공사를 새로 만든 것 아닌가.

 

 

정부는 경쟁력 있는 종합금융사 하나 더 만들겠다고 한다. 만약 정부가 종합금융그룹을 제대로 만들 자신이 있다면, 굳이 민간에 넘기지 말고 자기들이 계속 끌고 가면 된다. 왜 민영화를 하겠다는 건가. 정부의 방침은, 도무지 앞뒤가 맞지 않는다. 결국 낙하산 자리 여러 개 만들겠다는 것 아닌가.

 

 

정부가 억지로 종합금융그룹을 만들려 하니, 무리가 따를 수밖에 없다. 우선, 산은은 자생력이 없다. 지금까지는 산업금융채권(산금채)로 자금조달을 했지만, 민영화 이후엔 산금채 발행을 못한다. 그럼 어떻게 자금을 조달할 건가.

 

은행이 자금을 구하는 통로는 전국에 깔려 있는 지점망이다. 그런데 산은은 지점망이 없다. 그래서 자생력이 없다는 게다. 그러니까 우체국금융이나 우리은행, 기업은행 등을 집어삼킬 궁리만 한다. 그러나 첫 단추부터 잘못 꿰어졌다. 자생력 없는 기관을 민영화한다는 발상 자체가 이미 모순이다. 이게 만약 성공한다면, 결국 정부가 특혜를 줬기 때문일 게다. 이런 민영화가 무슨 의미가 있겠나.

 

 
▲ 이동걸 한림대 교수ⓒ프레시안(김윤나영)

 

"메가뱅크 있어야 원전 수주?…60~70년대 발상일 뿐"

 

프레시안: 이른바 '메가뱅크(Mega Bank. 초대형 은행)'도 쟁점이다. 이번에 산은금융지주 회장이 된 강만수 씨가 대표적인 메가뱅크 예찬론자다.

 

 

이동걸: 메가뱅크는 한마디로 1960~70년대식 발상이다. 과거에는 국내 은행들의 규모가 너무 작아서 '어느 정도 커야 규모의 경제가 실현되고, 포트폴리오도 제대로 구성할 수 있다'라는 식의 주장이 먹혔다. 그러나 지금은 국내 은행들이 충분히 크다. 우리, 국민, 신한, 하나가 200조 원(약 1800억 달러)이 넘는 규모다. 이 정도면 미국에서도 7, 8위권이다.

 

미국에서도 1조 달러가 넘는 곳은 제이피모건(JP), 씨티, 웰스파고 등 네 곳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다 3000억~2000억 달러 수준이다. 규모가 작기 때문에 국제경쟁력 없다는 얘기는 말이 안 되다.

 

경제 규모도 고려해야 한다. 미국은 국내총생산(GDP)이 한국의 10배가 넘는다. 한국에서 250조 원 은행이면, 미국에선 2500조 원 은행과 같은 역할을 하는 셈이다. 그런데 미국에도 2500조 원이 넘는 은행은 없다. 어떤 기준으로 보건, 규모가 작아서 경쟁력이 없다는 논리는 성립하기 힘들다.

 

'메가뱅크' 주장이 나와서는 안 되는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대형 은행이 얼마나 위험에 취약한지는 2008년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확인된 사실이다. 중요한 것은 규모가 아니라 내실이다. 위험 관리를 제대로 하고 진짜 실력을 키우는 게 중요하다.

 

대통령 측근인 강만수 씨가 산은금융지주 회장으로 가는 것도 문제지만, 그가 가진 힘을 이용해 메가뱅크를 무리하게 추진할까봐 더 걱정스럽다.

 

이명박 정부가 하는 일을 보면, 모든 게 굉장히 과감하다. 지금까지 제대로 해놓은 게 없기 때문인지,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내야한다는 조바심이 대단해 보인다. 산은 민영화도 그래서 하는 것 아니겠나. 정두언 한나라당 의원이 최근 인터뷰에서 이 대통령에게 '성공한 대통령에 대한 집착을 버려라'고 했던데 그 말이 맞다고 본다.

 

프레시안: 이명박 정부는 지난해 아랍에미리트(UAE) 원전 수주를 계기로 메가뱅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당시 이 대통령은 원전 수주와 관련된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자 그 해법으로 국내은행간 인수합병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동걸: 세계적으로 자산순위 50위 안에 들어가는 은행이라고 해서 혼자서 국제자금 조달을 하는 곳은 없다. 신디케이트(공동판매회사)로 하거나 채권을 발행해서 투자자 모은 후 들어간다.

 

원전 수주 등 대형 사업에 필요한 자금 수주는 은행의 규모 문제가 아니다. 국제금융의 바닥에서 인맥과 노하우를 쌓는 게 필요하다. 그게 없는 상태에서 덩치만 키우자는 주장은 전혀 현실성이 없다.

 

 

"리먼브라더스, 만약 인수했다면 결국 빈 책상만 남겼을 것"

 

프레시안: 정부 당국자들 역시 국제 금융계에서 인맥과 노하우를 쌓을 필요는 인식하고 있다. 리먼브라더스가 파산하면서 중단됐지만, 현 정부 초기 산업은행이 리먼브라더스를 인수하려 할 때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왔었다. 리먼브라더스와 같은 대형 투자은행을 인수하면, 한국 금융계에 부족한 인맥과 노하우를 짧은 시간 안에 흡수할 수 있다는 게다.

 

 

이동걸: 그래서 내가 그런 소리하는 사람들을 금융 비전문가라고 하는 것이다. 여기서 가정을 해보자. 리먼브라더스가 망하지 않았다면, 그리고 그걸 우리가 인수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리먼브라더스가 갖고 있는 인맥과 노하우가 우리의 것이 됐을까. 그래서 우리는 단숨에 국제금융계의 중요한 플레이어가 됐을까. 절대로 그럴 리 없다.

 

투자은행(Investment bank)의 인재들은 엄청나게 빨리 턴오버(Turnover, 인사교체) 된다. 우리가 리먼브라더스를 인수한 뒤에, 세계경제가 조금만 살아나는 기미가 보였다면, 리먼브라더스의 인재들은 다른 곳으로 다 스카우트 돼 갔을 게다. 그러면 거액에 인수한 리먼브라더스에는 책상과 전화기만 남는다.

 

투자은행이라는 게 원래 그렇다. 거기서 일하는 이들은 이력서에 얼마나 직장을 여러 번 옮겼는지를 적는 게 자랑거리다. 실력 있는 사람은 한 곳에 일 년 반 이상 머물지 않는다. 이런 인재들을 끌고 갈 리더십이 있어야만, 투자은행을 경영할 수 있다.

내가 농담 삼아 하는 말이 있다. "은행(Commercial bank)은 장치산업"이라는 말이다. 은행은 지점이라는 네트워크가 있어야만, 운영이 된다. 그런데 그 지점이라는 건 제3자가 은행을 인수하더라도 철수시키기 어렵다. 영업 기반이 그대로 유지되고, 따라서 사람들도 그 기반을 따라 움직인다. 은행(Commercial bank)이 투자은행(Investment bank)과 달리 스카우트가 적은 이유다. 씨티은행을 인수한다면 그곳의 지점망과 인재 대부분이 유지될 것이다. 하지만 투자은행은 다르다. 투자은행은 전부 팀 단위로 움직인다. 그 팀이 가진 네트워크에 따라 업무가 돌아간다. 이런 팀들을 제대로 이끌 능력이 없다면, 투자은행 인수는 헛일이다. 그리고 지금 수준에서 한국이 투자은행을 인수해서 세계 금융의 중심부로 진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 명백한 증거가 일본이다. 일본이 돈이 없어서 투자은행을 못하나. 아니다. 아무리 돈을 쏟아 부어도 안 되는 것이다. 20~30년을 투자하고도 미국계 유대인이 중심인 국제 금융의 '이너서클'에 들어가지 못한다. 그런데 우리가 갑자기 회사 하나 인수한다고 되겠나. 그렇게 생각한 것 자체가 이 정부가 아마추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만약, 국내 금융을 굳이 해외로 진출시키고 싶다면, 우선 은행을 인수하는 게 낫다. 그 다음이 보험이다. 그 뒤에나 고려해 볼만한 게 투자은행이다. 그나마 KB금융은 카자흐스탄 은행 인수했다가도 손들고 나오지 않았나. 국내 금융계의 실력이 그렇다. 그런데 투자은행 인수라니, 말도 안 된다. 


 

"'론스타 문제', 공적자금 투입 못한 게 원죄다"

 

프레시안: 금융이 제대로 성장하려면, 결국 감독당국의 역할이 중요하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한국은 약점이 많다. 특히 '론스타' 문제는 한국의 금융감독체계가 가진 문제점을 적나라게 보여준다.

 

이동걸: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인수하도록 인가한 사람이 바로 나다. 그래서 나는 론스타 문제에 대해선 대단히 복잡한 감정이 있다.

외환은행 문제에는 원죄가 있다. 바로 공적자금 투입을 못한 게 원죄다. 2003년에 공적자금 2조 원만 있었어도 외환은행과 LG카드를 사서 정상화 시킨 후 정부가 큰 돈을 벌었을 것이다. 그런데 투입할 공적자금이 없었다.

 

당시 실무진한테서 '외환은행을 론스타에 매각하는 양해각서(MOU)를 작성한다'는 보고를 받았을 때 내가 한 첫 마디가 '이건 이정재 금감위원장이 정책적 판단을 할 수밖에 없겠구나'였다. 두 번째로 한 말은 '산업은행이나 기업은행이 인수하는 방법을 검토해보라'였다.

 

둘 중 하나, 특히 산은은 외환과 결합하면 완벽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그런데 당시 실무진의 검토의견이 '적어도 정부가 5000억 원 이상은 재정확충을 해줘야 하는데, 조달방법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포기했다. 다른 방법이 없어서 할 수 없이 론스타에 줬다.

 

왜 굳이 사모펀드에 넘겼느냐고 비판하겠지. 당시 생각은 이랬다. 장기적으로 보면 우리나라의 메이저 은행을 외국은행이 너무 많이 장악하는 게 큰 문제가 되리라고 봤다. 안 그래도 스탠다드차티드(SC), 씨티(Citibank) 이런 은행들이 속속 들어왔지 않은가. 그러니 '차라리 돈 왕창 벌고 나가더라도 펀드에 넘겼다가 국내에서 되사는 게 낫겠다'라고 판단했다. 우리의 능력이 부족해서 남이 돈 버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물론, 이건 이차적인 이야기다. 가장 좋은 대안은 공적자금을 투입해서 국가에 이득이 되게끔 하는 것이다. 이게 두고두고 아쉽다. 하지만 공적자금을 못 쓴 데는 이유가 있다. 시간을 조금 거슬러 올라가보자.

 

 

"외환은행 문제, 한나라당도 책임 있다"

 

 

2002년 말에 한나라당이 워낙 거세게 공격해서 진념 당시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공적자금을 종료했다. 상환기금을 만들고 완전히 문을 닫았다. 당시 공적자금 상환 방안을 만든 게 나다. 금융연구원 사상 최대 규모의 작업이었다. 박사만 9명이 투입됐고, 회계법인 여러 곳이 동원됐다.

 

당시 재경부에서 공적자금 상환대책을 만들어 달라며 연구원에 왔었다. 당시 연구원 측은 '공적자금을 완전히 닫으면 안 된다. 돈이 더 필요하다. 외환은행, 현대투자증권 등 몇 곳에 넣을 돈 2~3조 원이 더 필요하다'고 했다. 나는 내 일도 아닌데 재경부 쫓아다니고 기획예산처 찾아다니고 했다. 그런데 돌아오는 대답이 한결같았다. 정치적으로 안 된다는 거다. 야당과 공적자금을 닫기로 합의해서 어쩔 수 없다고.

 

그래서 내가 2003년 1월에 노무현 정권 인수위에 들어가서 하나 '빵' 터뜨렸다. 당시 <경향신문>이 1면 톱에 쓴 "공적자금 8조 원 필요해"라는 기사가 그렇게 나왔다. 그걸 보고 노 당선자가 '필요합니까'라고 물었다. 그래서 내가 '있어야 될 것 같습니다'라고 했다.

하지만 결국 못했다. 정치적 부담이 너무 컸던 게다. 그 뒤, 2003년 4월에도 같은 이야기를 했다. 이정재 당시 금감위원장에게 찾아가서 이렇게 말했다.

 

"제가 기자실에 가서 폭탄 하나 터뜨리겠습니다. 공적자금 8조 원이 필요하다고 얘기하고 사표 쓰겠습니다. 그러면 4조 원은 안 만들어주겠습니까."

 

공적자금 4조 원만 조달하면 김대중 정부 때 해결 못한 외환은행 문제, 새로 터진 카드문제 싹 다 처리할 수 있었다. 공적자금이 들어가는 게 최선이었다.

 

그런데 결국 못했다. 온 사방이 적이었다. 당장 한국은행이 "통화정책의 근간이 무너진다"며 결사반대했다. 그랬던 사람들이 이명박 정부 들어서는 공적자금을 비정상적으로 빌려주는 걸 보니 굉장히 씁쓸했다. 2003년에 공적자금이 있었으면, 지금 이런 문제가 안 생겼을 텐데.

 

그래서 나는 외환은행 문제에 대해서 한나라당도 자유롭진 않다고 본다. 자신들을 마치 책임 없는 양 행세하는데, 무책임하다. 1997년 외환위기를 깨끗이 마무리 짓지 못한 상태에서 억지로 (공적자금 투입을) 닫아버려서 할 수 없이 생긴 부분이 있는데 말이다.

 

론스타와 관련해서, 주가조작 등 그 이후에 터진 사건들은 잘 모른다. 다만 내 의견을 말하라면 적격성 심사는 해야 한다고 본다. 하

지만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도 안다. 일단 금융감독당국이 인가해줬는데, 나중에 '안 된다'고 하기가 굉장히 어렵다.

 

외환은행 문제는 조금 '쿨하게' 봤으면 좋겠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지만 말이다. 그 동안 론스타가 잘못한 걸 바로잡는 건 옳다. 그런데 그들이 돈을 많이 벌었으니 배 아프다? 이건 아니다. 우리가 아쉽지만 깨끗이 잊어버리는 수밖에 없다. 금융이라는 게 원래 그렇다. 약자는 손해 보고 강자가 돈 벌게 돼 있다.

 

법적으로 봐도, 론스타 관계자들을 감옥에 넣는 것은 무리라고 본다. 이런 상황에서 시간만 끌면, 결국 론스타에게만 좋은 일이다. 그들이 3년 전에 나갔다면, 3조 원만 벌어서 나갔을 텐데, 시간 끌어서 5조 원을 벌게 됐다.

 

돈은 아깝지만, 국내은행이 빨리 인수하는 것 외에는 해결 방안이 없다고 본다. 물론, 내가 이 사건 관련자이므로 어느 정도 '편향'이 있다는 것, 분명히 인정한다. 그러나 결국 우리가 실력이 없어서 외환은행을 론스타에 준 것이라는 생각도 분명하다.

 

안타깝기는 LG카드도 마찬가지다. 금감위 부위원장 시절, 이 문제 처리할 때 '개혁적 학자라더니 결국 관치하느냐'라는 욕을 참 많이도 들었다. LG카드 역시 자금만 투입하면, 회생 가능한 회사였다. 하지만 당시에는 이런 종합적인 판단을 실현할 수 있는 여건이 안 됐다. 굉장히 아쉽다.

 

 

"'저축은행 부실, 지옥에 가서라도 물어내게 한다'더니, 그 약속 어디로…"


프레시안: 저축은행 부실이 심각하다. 결국 사실상의 공적자금이 투입될 예정이다.

 

이동걸: 그 동안 저축은행들이 한 일이 후순위채(발행기관이 파산했을 경우 가장 마지막에 투자금을 상환받을 권리를 가진 채권. BIS 자기자본비율 산정시 자본 계정으로 계상되기 때문에 재무제표를 왜곡시킨다)를 높은 금리로 발행해서 돈을 끌어온 후 더 높은 금리로 빌려주는 짓이었다. 부실이 오래 전부터 생겼는데 오래 끌다가 더 커진 것이다. 정부가 건설경기를 부양하려고 저축은행에 문제가 없다고 선전하다 이렇게 됐다. 구조조정은 지연한다고 좋은 게 아닌데 말이다.

 

정부가 대응책으로 은행권 공동계정을 만든다고 했는데 이는 반대한다. 저축은행의 부담을 다른 은행에까지 전가시키는 것으로, 은행 예금자가 저축은행을 도와주는 꼴이다.

 

 

저축은행에 사실상의 공적자금이 투입되게 됐으니 공적자금 상환대책도 미리 만들 때가 됐다. 예금보험료만으로는 안 된다. IMF 구제금융 사태 당시에도 같은 이유로 공적자금을 남겨둬야 한다고 했다. 그랬더니 당시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이 '저축은행 부실은 지옥 끝까지 쫓아가서라도 물어내게끔 하겠다'고 호언장담했다. 그런데 정권이 바뀌고나니, 언제 그랬냐는 듯 한다. 이래서야 되겠나.

 

 

지난해 말 저축은행 부실지원액이 7조 원이다. 이 중 다른 금융권에서 전용한 게 벌써 3조5000억 원이나 된다. 이번에 공동계정을 만들어 저축은행 문제를 푼다는 것은, 이걸 상환할 생각 없이 더 가져다 쓰겠다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덮고 가면 안 된다. 공적자금을 제대로 투입하고, 이를 투명하게 감시해야 한다.

 

 

"미국 재무 장관 전화에 '예스, 서'라고만 한 강만수, 안타깝다"

 

 

프레시안: 기준금리가 2년 3개월 만에 3%로 올랐다. 한은 금통위의 결정을 어떻게 보나?

 

이동걸: 너무 늦게 올렸다. 2009년 여름부터, 늦어도 가을에는 기준금리를 올려야 한다고 말해 왔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당시 우리는 위기의 진원지가 아니었다. 잘 했느니 못 했느니 말이 많지만 그래도 김대중, 노무현 정부 10년 동안 공적자금을 투입한 덕분에 금융기관 건전성이 상당히 좋아졌다. 우리 기업체도 부실하지 않았다. 이게 미처 나빠지기 전에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았다.

 

뜯어보면 우리가 받은 충격은 글로벌 경기침체 영향뿐이었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버티기가 쉬웠다. 유동성을 늘리고 재정자금을 투입해서 경기를 부양했다.

 

문제는 국내 문제가 아니었다. 외국의 문제로 달러가 빠져나가면서 문제가 생겼다. 금융연구원장을 지낼 때는 강만수 당시 기획재정부 장관과 얘기할 위치가 아니었지만, 주변에 내가 한 얘기가 딱 하나 있었다. '우리나라가 글로벌 금융위기에 대응해서 할 일은 딱 한 가지뿐이다. 달러와 통화스왑하면 된다'는 거였다.

 

우리나라가 국제 기축통화라면 외환문제 자체가 생기지 않는다. 그런데 달러가 빠져나가서 생기는 문제는 기축통화가 아니라서 겪는 어려움이었다. 그러니 위기 때 원화를 일시적으로 달러처럼 쓰면 문제가 해결된다. 우리의 외환보유고, 외환유동성에 문제가 안 생긴다.

 

그런데 강만수 장관이 어떻게 했나. 2008년 페니메이(Fannie Mae, 미국의 국책 모기지 업체, 이게 무너진 뒤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사태가 터졌다)가 망했을 때, 헨리 폴슨 미국 재무부 장관이 세계 각국 경제 장관에게 전화를 걸었다. 미국 국채(T-Bond)를 팔지 말아달라는 전화였다. 강 장관도 받았다. 그런데 그가 곧장 한 말이 '예스, 서(Yes, Sir)'였다고 한다.

 

 

잘못된 대응이다. 당시 우리가 보유한 외환보유고가 2000억 달러가 넘었다. 이 가운데 반만 풀어도 국제금융시장이 뒤집어진다. 이런 힘을 배경으로 미국에 당장 통화스왑을 하자고 했어야 했다. 당시 미국으로선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페니메이가 망하자마자 그렇게 했으면, 2009년부터 한국은 문제가 생길 게 없었다.

 

그런데 당시 한국은 기회를 놓치고 한참 기간을 끈 뒤에야 간신히 통화스왑을 했다. 그것도 구걸하다시피해서 말이다. 그때는 이미 미국이 유럽과 무제한적인 스왑을 체결한 상태였다. 한국을 비롯한 4개국만 맨 마지막에, 고작 400억 달러 수준으로 스왑을 맺었다. 때를 놓치는 바람에 외환위기가 길어졌다.

 

"때를 놓친 출구전략"…"한은 금통위원 3분의 1, 야당이 뽑자"

 

그걸로 끝이었나. 아니다. 그 후 유동성을 엄청나게 늘리느라 재정건전성이 악화됐다. 출구전략을 마련해야 할 때가 됐는데도, 알아보지 못했다. 결국 시기를 놓쳤다.

 

2009년 3분기가 경기 바닥이었다. 경기상승기에 선행해서, 기준금리를 끌어올렸어야 한다. 경제학의 기초공식(MV=PQ)만 봐도 알 수 있다. 당시는 정부의 유동성 공급으로 통화량(M)이 늘어나는데도 경기가 나빠 화폐 유통속도(V)가 떨어지니까 경기가 나쁜 상황이었다. 총통화량(MV)는 크게 늘어나지 않았다. 그런데 경제가 좋아지면 V가 굉장히 빨리 늘어난다. 그럼, 바로 인플레이션이 된다. (가격(P)이 오른다는 뜻)

 

한마디로, 너무 풀린 유동성이 폭탄이었다. 그런데 이 문제를 미리 차단하지 못한 탓에,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 수준에서 7% 수준으로 튀어 올랐다. 이렇게 과열되는 게 경제운용을 잘 한 건가? 빵점이다. 진작에 통화량만 제대로 흡수했어도 경기과열도 없었고 물가대란도 없었고, 당연히 경기운용이 훨씬 쉬웠다.

 

 

그렇다면 한국은행이 왜 때를 놓쳤을까. 실력이 없어서? 아니라고 본다. 청와대의 눈치를 보느라 못한 거다. 통화금융당국이 정치적으로 변할 때, 독립성을 잃을 때 생기는 폐해를 우리가 지금 생생히 지켜보고 있다.

 

한국은행을 개혁해야 한다고 본다. 그 사람들이 청와대 지시대로 움직이느라 금리 낮춰야 할 때 오히려 올려버리고, 올려야 할 때 낮추는 황당한 짓을 하도록 해선 안 된다. 한은 직원이면 대단한 엘리트 아닌가. 그들의 자존심을 생각해서라도 개혁할 때가 됐다. 그리고 지금 벌어진 일에 대한 책임은 김중수 총재가 져야 한다.

 



프레시안: 한은 개혁이라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한다는 건가

이동걸: 물론, 제도적 개혁이라는 게 정답은 없다. 다만 지금의 금융감독기구가 정부 눈치만 보고, 할 일은 안 하고 있으니, 금융감독기구를 한은 밑에 넣자는 게 내 생각이다. 금융 부문에 대한 모든 감독권한을 한은에 집중시키고, 한은을 집중적으로 감독하자는 것이다. 한은이 지금도 사실상 유동성을 조절하면서 은행뿐 아니라 비은행 부문까지 제어하고 있지 않은가. 안될 것도 없다고 본다.

 

 

이렇게 통화금융 및 감독 권한을 한은에 주고, 금통위원의 3분의 1은 야당이 임명하도록 해야 한다. 그래서 야당 몫 금통위원도 있어야 한다. 헌법재판소 재판관도 일부를 야당이 지명하지 않는가. 그리고 이들 금통위원들이 국회에 정기적으로 보고를 하도록 하는 게 좋다. 어차피 한은이 정치적으로 논란을 낳고 있으니 정치적으로 해결해서 집중 감시하는 게 옳다. 

 

 


"마지막 보루는 결국 재정 건전성…감세 후유증이 두렵다"

 

 

프레시안: 기준금리와 맞물린 문제가 가계부채다. 지금처럼 늘어난 가계부채는, 설령 현 정부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터질 수밖에 없다.

 

이동걸: 가계부채가 아직 국가 경제를 위협할 수준은 아니라고 본다. 잠재적으로 상당수 부실이 생길 수 있고, 이로 인해 소형금융기관의 부실화가 이어질 가능성은 있다. 그러나 한국경제가 저축은행 한두 곳이 넘어간다고 망할 수준은 아니다. 가계부채 문제를 단기적으로 개선하기 힘들지만 적어도 지금보다 더 나빠지지는 않게끔 하는 조치는 필요하다.

 

그리고 문제가 더 커지기 전에 단계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가계부채 자체만으로는 치명적이지 않지만, 이게 재정건전성 문제와 겹치면 상당히 위험할 수 있다.

 

언제나 마지막 보루는 재정 건전성이다. 1998년, 김태동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과 함께 일할 때다. 당시는 IMF 구제금융 사태 직후라서 일주일에 한두 번씩은 외국 투자자들이 청와대로 왔다. 당시 그들에게 투자유치를 할 때마다 우리가 한 얘기가 '우리나라의 재정 건전성을 보시오. 공적자금 집어넣어서라도 당신들이 손해 안 보도록 하겠습니다'였다. 그 말 한마디면 다들 '오케이' 했다. 재정 건전성이란 게 이렇게 중요하다.

 

극단적인 예를 들어보자. 만약 지금, 재정 건전성이 아주 좋다면 가계부채 문제가 심각하게 터져도 해결이 가능하다. 공적자금을 넣거나, 세금을 투입하면 된다. 그런데 지금 사정이 점차 안 좋아지고 있다. 외환위기 당시는 기업부실이 문제였고, 이게 해결되고 나니 가계부채로 전이됐다. 여기에 다음 정부는 과잉 부채 문제까지 짊어지게 된 형국이다.

 

기준금리를 제때 올리지 않아서 가계부채가 너무 늘어난 것, 또 현 정부의 부자 감세 정책으로로 재정 건전성이 나빠진 것 등이 서로 결합하면, 분명히 위험해진다.

 

'젊은 대기업'이 계속 생기는 미국 vs '젊은 기업'은 클 수 없는 한국

 

 

프레시안: 현 정부가 고집한 '저금리' 기조와 짝을 이루는 게 '고환율' 기조다. 이런 기조가 물가에 부담을 준다는 지적이 많다. 또 외환시장 관계자들은 정부가 고환율을 유지위해 시장개입을 이어가고 있다고 말한다.

 

이동걸: 미국 내부 문제로 달러가 빠져나가면서 환율이 오르는 건 불가피하다. 그런데 중장기적으로 보면, 한국이 계속 엄청난 무역 흑자를 내면서 외환보유고가 늘어나는 상태인데도 고환율이 유지된다는 것은 너무 인위적이다. 이 상태를 계속 유지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정말 고환율로 수출 경쟁력이 유지 되나. 이것도 따져봐야 한다. 나는 아니라고 본다. 정부의 고환율 정책으로 대기업만 배불리고, 중소기업과 서민은 피해를 입는 것은 결코 정상이 아니다. 대기업은 이제 스스로 경쟁력을 높일 때가 됐다. 어차피 지금도 정부의 연구개발 지원은 대부분 대기업이 혜택을 누리게끔 돼 있지 않은가. 여기에 가격 경쟁력까지 정부가 챙겨줄 필요는 없다. <포춘>이 선정한 500대 기업 목록을 보면, 창업주 당대에 이 리스트에 들어온 미국 기업이 월마트, 마이크로소프트 등 5~60곳이 넘는다. 이게 미국의 경쟁력이다. 반면, 한국은 새로 창업한 기업이 아무리 실력이 있어도 어느 수준 이상은 크질 못한다. 전부 재벌이 쌓아놓은 기득권의 벽을 넘을 수 없다.

 

또 원화 평가절상을 해야 해외투자에도 좋다. 이 부분까지 염두에 두면 무작정 고환율을 고집하는 게 옳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예전에는 '아' 했던 정부가 이제 와서 '어' 한다. 이게 '법치국가'인가?"

 

프레시안: 공직에 있을 때 금산분리 완화, 생명보험사 상장 등 삼성과 관련된 쟁점에 많이 개입했다. 그러다가 결국 임기를 못 채우고 자리를 떠났다.

 

이동걸 : 금산분리 원칙이 왜 중요한지에 대해선 워낙 말을 많이 했다. 이젠 딱 한마디만 하고 싶다. 재벌이 금융기관을 거느리면, 시장경제가 왜곡된다. 평가받는 쪽이 재벌이다. 반대로 평가하는 쪽이 금융기관이다. '평가받는 쪽'이 '평가하는 쪽'을 인수하는 게 선수가 심판을 매수하는 것과 뭐가 다른가. 이렇게 되면, 중소기업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국가경쟁력을 위해서도 몹시 해롭다.

 

노무현 정부 시절, 금감위 부위원장 직을 사퇴한 것은 구체적으로 삼성생명의 변칙적인 회계처리 때문이었다. 삼성생명이 보험감독 규정을 어기고 투자유가증권 평가이익을 주주몫으로 계상한 사실을 밝혀냈다. 이 문제를 제기하자, 주변 사람 대부분이 내 적이 됐다. 그래서 결국 자리를 떠났다.

 

삼성생명 상장 문제를 놓고도 대립이 있었다. 나는 생명보험사 상장 기준 문제가 노무현 정부의 최대 실패작이라고 본다. 이는 결국 생명보험사가 상호회사냐 주식회사냐의 문제다. 그런데 한국은 생명보험사를 주식회사로 시작했음에도 김영삼 정부 때까지 사실상 상호회사처럼 운용해 왔다. 김영삼 정부는 보험 계약자가 부담을 지는 대신 그들의 몫도 인정받는다고 이야기했었다. 생명보험사가 상장하면, 계약자에게 상장차익을 돌려줘야 한다는 주장은 그래서 나왔다. 계약자들이 실제로 부담을 짊어졌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생명보험사는 주식회사이므로 상장차익은 오로지 주주에게만 나눠져야 한다고 한다.

 

 

이런 논리대로라면, 마치 상호회사처럼 보험 계약자가 부담을 짊어져야 한다던 김영삼 정부나, 주식회사이므로 보험 계약자에게 돌아갈 상장 차익은 없다던 노무현 정부 가운데 하나는 국민에게 사기를 친 셈이 된다. 정부의 말을 그대로 믿었던 보험 계약자들만 억울하게 됐다.

 

 

이런 역사를 경제부처에서 오래 일했던 관료들은 아주 잘 알고 있다. 이헌재 전 장관이 생명보험사 상장차익을 계약자에게 돌려줘야 한다고 말했던 것은 이런 역사를 알기 때문이었다. 윤증현 장관이라고 해서 김영삼 정부 시절 보험 계약자들에게 했던 약속을 모를 리가 없다. 하지만 윤 장관은 과거 일은 전혀 모른다는 듯, 상장차익에서 보험계약자 몫을 싹 무시했다. 그리고 그 결과,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을 포함한 삼성생명 주주들은 횡재를 했고 보험계약자들은 눈물을 흘렸다. 나는 지금도 궁금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왜 윤증현 장관을 당시 금융감독위원장에 임명했는지, 그리고 윤 장관은 대체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말이다.

 

법치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설령 정권이 바뀌더라도 정책에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국민이 법과 제도를 신뢰할 리가 없다.

 

그런데 삼성생명 상장 문제나 저축은행 공동계정 문제를 보면, 예전에는 '아' 했던 정부가 이제 와서 '어'하는 형국이다. 이게 과연 법치국가인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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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북한

 

3대세습 완성하기 위해

 

1) 경제문제 해결이 시급 (사회주의 시스템 붕괴, 배급체제 붕괴)

 

2) 미국과의 대화 채널 확보

 

 

경제문제 해결을 위한 유일한 길은 중국 활용

 

창천- 지린- 투먼- 한울- 나진, 선봉

 

중국도 경제규모 확대에 따라 해상로를 확보해야 하는데 이에 가장 적합한 곳은 나진, 선봉

 

두 나라의 이해관계가 맞물려 급속도로 진행

 

북한입장에서는 중국의 도움이 절실하나, 중국에의 경제예속도 우려되는 사항임

(실제, 백두산 일부가 중국영토화)

 

 

2. 중국해군 증강 (항공모함 증설)

 

경제, 무역확보에 따른 해상로 확보 (우리나라의 서해도 포함)

 

대만과의 관계

 

중국의 해군력 상승에 따라

 

러시아, 중국, 북한의 한축

 

한국, 미국, 일본의 한축 의 신 냉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음.

 

2012년 미국 대선, 한국 대선, 중국 시진핑으로의 권력이양 등이 예정되어 있음

 

2011년 이에 대하여 필히 대비해야 함.

 

 

‘펜은 칼보다 강하다’…한국현대사 증언한 ‘사상의 은사’

경향신문 | 한윤정 기자 | 입력 2010.12.05 10:24 | 수정 2010.12.05 10:29 | 누가 봤을까? 50대 남성, 서울

 

 

"글을 쓰는 나의 유일한 목적은 진실을 추구하는 오직 그것에서 시작하고 그것에서 그친다. 우리에게

 

는 현실의 가려진 허위를 벗기는 이성의 빛과 공기가 필요하다. 진실은 한 사람의 소유물일 수가 없

 

고 이웃과 나누어야 하는 생명인 까닭에, 그것을 알리기 위해서는 글을 써야 했다. 쓴다는 것은 우상

 

에 도전하는 이성의 행위이다. 그것은 언제나 어디서나 고통을 무릅써야 했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

 

도 그렇고 앞으로도 영원히 그러하리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그 괴로움 없이는 인간의 해방과 행복,

 

사회의 진보와 영광은 있을 수 없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는 금언을 고 리영희 선생만큼 온몸으로 실천한 이가 또 있을까.

 

그는 분단과 전쟁, 냉전, 독재로 점철된 한국 현대사를 관통하면서 자신이 목격하고 고민한 역사의 진실을 밝히고, 동시대인의 무지와 비이성을 깨우쳤다. 개인으로 살되 공동체의 운명을 자신의 것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라는 가르침은 수많은 청년, 대학생을 민주화 운동에 뛰어들게 만들었다. 스스로 택한 지식인의 삶을 위해 아홉 번의 연행, 다섯 번의 투옥, 언론사와 대학에서 네 번의 해직과 복직, 1012일의 옥고를 치른 그를 놓고 프랑스 르 몽드지는 '사상의 은사'로 지칭했다.

리영희가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첫 저서 < 전환시대의 논리 > (1974)를 내놓으면서 부터였다. 이 책은 중국에 대한 시각 조정, 한·일 안보관계의 전망, 베트남 전쟁 등 시사적 주제를 단편적으로 다룬 책이면서도 현대사와 국제정치 현실을 보는 시각에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불러일으킨 명저로 꼽힌다.

속편 격인 < 우상과 이성 > (1977)에 가면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에서 비롯된 우상의 개념과 그런 허상에 도전하고 진실을 밝히기 위해 노력하는 실천적 지식인 리영희의 면모가 확립된다.

사회민주주의를 지향하는 그의 비판적 지성은 이미 어렸을 때 형성된다.

평안북도 삭주의 유복한 집안 출신인 그는 외삼촌 최인모가 1920년대에 일본유학을 다녀와서 소작인들에게 땅을 나눠준 사건을 앎과 삶을 일치시키는 표본으로 삼았다. 월남한 뒤 가세가 기울고 주경야독으로 한국해양대를 거쳐 미 노스웨스턴대에서 공부한 그는 6.25가 터지자 7년간 통역장교로 복무한다.

1957년 합동통신을 시작으로 언론사에 투신한 뒤 외지에 5.16을 반대하는 글을 쓰는가 하면, 유엔의 남북 동시 초청을 기사화해 반공법 위반으로 구속되기도 했다. 1972년 한양대 교수로 부임하지만, 편역서 < 8억인과의 대화 > (1977)가 중국 공산당을 미화했다는 이유로 체포돼 복역한다. 1989년에는 한겨레신문의 방북취재를 기획했다는 이유로 다시 국가보안법에 의해 복역한다.

고인은 박정희, 전두환 군사독재 시절에 많은 고난을 겪었으나 그의 행보는 반독재 투쟁에 머물지 않는다.

일찍이 외신부 기자로 일하면서 얻은 다방면의 폭넓은 지식을 바탕으로 세계 정세를 꿰뚫어보고 냉전과 분단체제의 본질, 남한 보수세력의 파시즘적 성격, 미래 사회의 전망을 제시했다. 그는 소련과 동유럽의 사회주의 붕괴 직후에 펴낸 저서 <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 (1994)에서 좌우의 정치권력이 진실을 은폐, 날조, 왜곡하는 것에 대항해 균형잡힌 이데올로기를 견지할 것을 촉구한다.

주로 사회비평이나 소논문의 형식으로 쓰인 그의 저서들은 실증적 자료를 바탕으로 북한문제, 통일문제, 한·미관계, 한·일관계, 베트남전쟁, 중국사회주의 등을 파고 든다. 특히 베트남전쟁을 경제논리가 작용하는 '더러운 전쟁'으로 규정하거나, 한·중 관계가 수교에 이르지 못한 것은 물론, 일방적인 폄하에 머물던 당시 인민의 지지기반 위에 세워진 중국사회주의를 평가한 글들은 그의 혜안을 돋보이게 한다.

그러나 일부 보수세력은 아직까지도 리영희를 가리켜 중국공산당을 찬양한 공산주의자, 북한식으로 '리(李)'라는 성을 고수하는 친북주의자라고 부르는 '레드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글을 쓰는 나의 유일한 목적은 진실을 추구하는 오직 그것에서 시작하고 그것에서 그친다"는 말처럼 그는 문민정부와 국민의 정부 시절에도 과거 민주화운동의 동료들처럼 공직을 맡거나 전면에 나서는 대신, 권력과의 비판적 거리를 유지하면서 집필 작업을 이어갔다.

그러다가 2000년 말 뇌출혈로 쓰러져 오른쪽 팔과 다리에 마비가 온 뒤로 10년에 걸쳐 투병생활을 해왔다. 3년 전부터는 간경화로 인해 자주 병원신세를 졌다. 그럼에도 현실 정치에 대한 발언은 간간이 이어졌다. 노무현 정부 시절에는 이라크전 파병에 반대의 목소리를 높였고, 이명박 정부에 대해서는 인권의 퇴보를 강력히 비판했다.

그는 생전의 한 인터뷰에서 "공적인 부분에서는 반성해야 할 만한 자기부정을 시도해본 일이 없다. 그러나 가정생활에서는 아내와 가족에게 너무 많은 고생을 시켰다"고 말했다. 또 삶의 신조로 검소한 생활(simple life)과 높은 이념적 사고(high thinking)을 들었다. 세속적 자기방기를 거부하고 검소하게 생활할 때에만 사유의 도덕적·논리적 수준을 높여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특별한 태도와 사유방식에 대한 평가도 이어졌다.

문학평론가 임헌영씨는 건강악화로 글을 쓰지 못하는 리영희의 구술을 받아 원고지 2700장 분량의 < 대화 > (2005)를 완성했다. 이듬해에는 < 전환시대의 논리 > 를 시작으로 아직 책으로 묶이지 않은 원고까지 망라한 < 21세기 아침의 사색 > 에 이르는 12권짜리 '리영희 저작집'이 한길사에서 출간됐다.

 

 

올초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 등이 집필한 < 리영희 프리즘 > 에 이어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의 < 리영희 평전 > 역시 출간을 앞두고 있다.

< 리영희 프리즘 > 의 집필에 참여한 고병권 박사(수유+너머R 연구원)는 "리영희는 지식과 정보를 전달하는 교육자이기 이전에 각성을 전달하는 교육자"라며 "리영희로 인해 비로소 매너리즘으로 견해를 갖는 것과 다른 어떤 사건이 벌어진 것"이라고 평가했다.

생전의 고인은 1982년 미 문화원 방화사건을 일으킨 문부식·김은숙 재판의 증인으로 나섰다. 이유는 그들이 리영희의 책을 읽었기 때문에 반미의식의 원천이라는 것이었다. 리영희의 유산은 그런 것이다.

< 한윤정 기자 yjhan@kyunghyang.com >

서울대 논술 '개인의 삶과 사회'비교

 

 "우리시대에는 개인과 개인, 개인과 사회간의 다양한 관심이 발생하며, 이에따라 여러관계들이 형성된다"면서 "관심의 유형과 표출 방식은 개인과 개인, 개인과 사회간의 관계뿐만 아니라 개인의 삶과 사회 전반에 미친다"고 서두에 제시했다.

메인 주제문인 '가' 지문에서 공자의 삼인행필유아사(三人行 必有我師)의 내용을 담은 '사회적인 존재의 인간'이라는 내용을 담았다. 또 메인 주제문 '가'를 토대로 나머지 3개의 주제문의 문제점을 파악하라는 식으로 다소 까다롭게 출제됐다.

서울대가 수험생에게 문제점을 지적하라고 제시한 나머지 '나'~'라'의 3개 제시문은 동서양의 여러 지역의 사례를 담았다.

' 나' 지문은 히틀러에 대항하지 않은 젊은이는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끌려가도 억울할 필요가 없다는 내용이고,

 

'다'지문의 경우 당원은 태어나서 죽을때까지 사상경찰의 감시를 받게 살게된다는 내용이다.

 

'라' 지문은 염상섭의 삼대의 한 대목으로서 노친과 갈등을 빚는 한 젊은이 등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 가 ' 지문  

인간을 일러 사회적 존재라 하는데, 이는 인간이 관계적 존재라는 뜻이다. '나'라는 존재는 다른 존재와 아무 연관도 없이 단독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남과 관계를 맺으면서 살아가는 과정에서 다른 차원의 존재로 바뀐다. 예컨대, 나보다 우월한 사람을 만나면 나는 상대방으로부터 감화와 교훈을 얻게 되거나, 존재의 연약함을 보호받게 된다. 나보다 약한 사람을 만나면 그를 물질적·정신적으로 도와주어야 하는 시혜적 존재가 된다. 그러나 나와 동등한 사람을 만나면 경쟁을 하거나 협조를 하면서 일을 해내는 가운데 인간의 보편성을 이해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된다. 공자가 '삼인행 필유아사(三人行 必有我師)'라고 설파한 데는 이처럼 인간관계 가운데 나의 존재가 변화를 겪을 수 있다는 뜻이 담겨 있다.

'나'라는 주체는 대상이 되는 다른 인간의 영향을 받으며, 사회적 관계에 편입된다.
그런데 직·간접적인 관계를 맺지 않는 다른 사람은 나와 밀착된 의미연관을 가지기 어려우며, 사회적 관계의 형성도 제한된다. 이처럼 연관이 없는 인간은 인간이되 사물로 존재하는 '그것'으로서의 인간이다. 따라서 남과 대면하면서 존재의 향상을 가져오지 못하는 인간관계는 왜곡된 것이다.

인간은, 다른 인간은 물론 사물과도 관계를 맺게 된다. 조각가는 대리석을 다루어 조각 작품을 만든다. 농부는 곡식을 심고 채소를 기른다. 이러한 과정에서 조각가나 농부는 대상으로부터 약간의 감흥과 즐거움을 얻을 수는 있지만, 자신의 존재가 근본적인 변화를 겪지는 않는다. 주체로서 인간이 만나는 다른 인간이 돌, 나무, 쇳덩이 같은 것들처럼 서로 간에 아무런 영향을 주고받지 못할 때, 타인은 사물화되어 존재론적 의미영역에서 멀어진다. 인간이 이처럼 사물화되는 경향은 현대의 특징이기도 하지만, 이는 우리가 극복해야만 하는 과제이기도 하다.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서 나타나는 사물화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일차적으로 대상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켜야 한다. 이러한 관심은 윤리성을 띤다. 윤리적 관심이라야 존재의 의미를 향상시키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도된 관심은 인간관계는 물론 인간의 존재의미를 훼손할 수도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이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해야 한다.

 


' 나 '
제 2차 세계대전 때의 일이다. 유대인들이 기차에 실려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짐짝처럼 끌려가고 있었다. 죽음을 예감한 한 젊은이가 자신을 이런 처지까지 오게 한 운명에 항의하듯 외쳤다.

"내가 왜 이런 일을 당해야 합니까? 나는 독일에 해가 될 만한 아무런 일도 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꼬박꼬박 세금을 냈고, 법을 지켰으며, 시민으로서의 의무를 다하였습니다. 그런데 도대체 내가 왜 이런 일을 당해야 합니까?"

그의 울부짖음에 기차 안은 조용해졌고, 모두들 그 젊은이의 분노와 절망에 동감하는 듯하였다. 그때 한 노인이 말하였다.

"바로 자네가 아무런 일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가 죽는 걸세. 젊은이, 히틀러가 그토록 많은 죄를 저지르는 동안 자네는 아무런 일도 하지 않았네. 바로 그래서 자네가 오늘 여기에 있게 된 것이라네."

 


' 다 '
오늘날의 특징을 이루는 신념, 습관, 취미, 감정, 정신 자세 등은 사실상 당의 신비함을 유지하기 위해, 그리고 오늘날의 사회에 대한 참된 본질을 알지 못하도록 하기위해 계획되고 있다. 현실적으로 반란이나 이를 위한 사전 운동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노동자들을 두려워할 필요는 전혀 없다. 그냥 그대로 내버려두는 게 상책이다. 그렇게 하면 그들은 세대에서 세대로, 세기에서 세기로 끊임없이 그 상태를 유지한 채 반란을 일으킬 충동은 물론, 세상이 달라져야 한다는 것을 의식할 힘도 없이 일하며 자식을 키우다가 죽을 것이다. 산업 기술의 발달로 한 단계 더 높은 교육을 받을 수 있을때에야 그들은 비로소 위험한 존재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이제는 군사적, 상업적 경쟁이 중요하지 않기 때문에 대중 교육의 수준이 실질적으로 저하되고 있다. 대중이 어떤 견해를 갖든 그것은 관심 밖의 일이다. 어차피 그들한테는 지성 같은 것이 없기때문에 지적 자유를 허용해도 상관없다.

그러나 당원인 경우에는 아무리 사소한 문제에 관한 견해일지라도 그것이 당의 뜻에 위배된다면 결코 용납될 수 없다. 당원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사상경찰의 감시를 받으며 살게 된다. 혼자 있을 때라도 그는 혼자 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없다. 잠을자든 깨어 있든, 일하든 쉬고 있든, 목욕탕에 있든 침대에 있든 그는 아무런 예고도 없이, 그리고 감시받고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감시를 받고 있다.

 

그가 하는 행동은 무엇이든 관심의 대상이 된다. 친구나 친척 관계, 아내와 자식에 대한 태도, 혼자 있을 때의 얼굴 표정, 잠잘 때의 잠꼬대, 몸짓의 특징 등 무엇이든 세밀하게 관찰된다.

또 어떤 실제적인 비행뿐만 아니라 지극히 사소한 괴벽, 습관의 변화, 내적 갈등의 징조라고 할 수 있는 신경질적인 태도까지 낱낱이 탐지된다. 그에게는 어떤 경우든 선택의 자유가 없다. 그렇다고 그가 법이나 뚜렷하게 규정된 어떤 행동 법칙에 의해 규제를 받는 것도 아니다.

오세아니아에는 법이 없다. 발각되면 틀림없이 사형감이 될 사상이나 행위도 공식적으로는 금지된 것이 아니며, 끝없는 숙청, 체포, 고문, 투옥, 증발 따위도 실제로 범한 죄에 대한 처벌로서 가해지는 게 아니라 단순히 언젠가 죄를 범할지도 모르는 사람을 제거하기 위한 조치이다. 당원은 올바른 사상뿐만 아니라 올바른 본능도 갖도록 강요당한다. 그러나 당사자에게 어떤 신념과 태도를 요구하는지에 대해서는 대부분 명백하게 설명되어 있지 않다.

 

' 라 '

부친의 어기는 좀 낮추어졌다. "대동보소만 하더라도 족보 한 질에 오십 원씩으로 매었다 하니, 그 오십 원씩을 꼭꼭 수봉하면 무엇 하자고 삼사천 원이 가외로 들겠습니까?"

"삼사천 원은 누가 삼사천 원 썼다던?" '중략'

"그야 얼마를 쓰셨던지요, 그런 돈은 좀 유리하게 쓰셨으면 좋겠다는 말씀입니다."

'재하자 유구무언의 시대는 지났다 하더라도 노친 앞이라 말은 공손했으나 속은 달았다.

"어떻게 유리하게 쓰란 말이냐? 너같이 오륙천 원씩 학교에 디밀고 제 손으로 가르친 의 딸자식 유인하는 것이 유리하게 쓰는 방법이냐?"

아까부터 상훈이의 말이 화롯가에 앉아서 폭발탄을 만지작거리는 것 같아서 위태위태하더라니 겨우 간정되려던 영감의 감정에 또 불을 붙여 놓고 말았다. 상훈이는 어이가없어서 얼굴이 벌게진다. '중략'

그러나 상훈이 내외끼리 몇 번 싸움질이 있은 외에는 노 영감님도 이때껏 눈감아 버린 것이요, 경애가 들어 있는 북미창정 그 집에 대하여도 부친이 채근한 일은 없는 것이라서 지금 조인광좌중(稠人廣座中)에서 아들에게 대하여 학교에 돈 쓰고 제 손으로 가르친 남의 딸 유인하였다는 말을 터놓고 하는 것을 들으니 아무리 부친이 홧김에 한말이라 하여도 듣기에 괴란쩍고 부자간이라도 너무 야속하였다.

"아버님께서는 너무 심한 말씀을 하십니다마는, 어쨌든 세상에 좀 할 일이 많습니까?

교육 사업, 도서관 사업, 그 외 지금 조선어 자전 편찬하는 데……."

상훈이는 조심도 하려니와 기를 눅이어서 차근차근히 이왕지사 말이 나왔으니 할 말은 다 하겠다는 듯이 말을 이어나가려니까 또 벼락이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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