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후나를 생각하며.......

 

김 경 탁

(제11회 합격, 26세, 남,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4학년)

 

 

 

 

Ⅰ. 회상

 

 

벌써 반년이란 시간이 지났지만, 지금도 지난 12월 합격소식을 들었을 때를 잊을 수 없다. 12월 14일, 그때는 기말고사기간이라 정신이 없었지만 나를 긴장하게 만드는 것은 기말시험에 어떤 문제가 나올까가 아니었다. 발표는 내일이지만 합격을 하면 발표일 하루 전에 연락이 온다는 이야기가 있어서 시간이 갈수록 초조해만 갔다. 그렇게 안절부절하면서 기말고사를 보러 강의실로 들어갔다. 시험을 보던 중 누군가에게서 전화가 왔다. 시험이고 뭐고 밖으로 나가 전화를 받으니, 같이 공부했던 형이 합격했다는 소식을 전해 주었다. 기쁨도 잠시 소식을 전해준 형과 1년 반 동안 동고동락하던 친구의 불합격 소식은 마음 한구석을 씁쓸하게 하였고, 기쁨과 안타까움이 뒤섞인 채, 그렇게 12월 14일은 지나갔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니 비록 기쁨을 함께 나누지 못했지만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고 함께 고생했던 지난 시간들은, 앞으로 내가 살아가면서 힘이 될 수 있는 추억으로 아름답게 회상될 것이다.

 

Ⅱ. 선택

’98년 3월에 제대를 하면서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막연한 자신감과 미래에 대한 불안함 속에서(‘98년 초는 IMF로 모든 사람들에게 너무나도 추운 겨울이었다.) 방황하였다. 졸업 후 취업, 대학원진학, 각종시험 등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어떠한 선택이 현명한 것인지 대해 고민하였다. 모든 일에는 장ㆍ단점이 있고, 많은 것을 얻기까지는 그만큼의 위험을 감수하여야 하기 때문에 섣불리 결정하기가 어려웠지만, 아직 젊다는 생각에 새로운 무언가에 도전해야겠다는 마음을 굳혔다. 여러 가지를 저울질 해본 결과 감정평가사가 가장 낫다는 판단이 들었다. 그 이유는 전공인 도시공학과 감정평가가 다루는 대상이 토지 등으로 3차원의 공간과 경제적 가치라는 접근의 차이는 있지만 유사하다는 것이었다. 또 다른 이유로는 그 당시 학교에 이미 합격한 선배들이 있어서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점과 감정평가 공부를 시작하려고 준비하는 함께 할 동료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Ⅲ. 도전

1. 1차시험(1999년 1월 ~ 1999년 7월)

많은 고민 끝에 시험을 준비해야겠다는 결심이 섰을 때가 ’99년 1월이었다. 주변에 이미 합격한 선배들과 공부를 하고 있던 친구들이 있어서, 시험과목에 대한 전반적인 정보 및 수험방법은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었다. 그러나 1차 과목들 모두가 생소하였고, 선택하기까지의 과정이 길어서(?) 이미 학원강의가 시작한 상태였다. 서둘러 노량진의 N학원에서 1차 종합반 강의를 신청하였고, 이렇게 나의 수험생활은 시작되었다.

방학인 1월과 2월에는 1주일에 6일, 하루에 8시간의 강의로 인하여 주로 학원강의를 듣고, 집에 와서 당일에 배웠던 내용위주로 복습을 하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부족하였다. 때문에 과목별 기본서를 따로 볼 수가 없었고, 학원교재 중심으로 공부하였다.

어느덧 3월이 되어 새학기가 시작되었다. 2개월 동안의 충실했던 학원생활에도 불구하고 회계학과 경제학은 그저 막막하다는 생각만 들었다. 휴학을 할까 생각했지만, 2차 시험을 위해 남겨두어야겠다는 나름대로의 위험한 수험계획으로 인하여 1차 공부는 학교생활과 병행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1차 과목 중에서 가장 걱정이 되는 회계학은 H학원에서 문제풀이반을 접수하여 보충하였고, 수업은 전공필수인 도시설계를 제외하고는 시험과 관계되는 과목인 물권법, 미시ㆍ거시경제학, 도시관계법규를 3일에 몰아서 수강하여 학교수업에 대한 부담을 최소화하려고 노력하였다.

처음 학교생활과의 병행에 대한 걱정과는 달리 교수님의 강의에서 배우는 것은 학원수업과는 또 다른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기회였다. 이때 민법의 경우 곽윤직 민법총칙, 경제학은 김대식외 2인 공저를 교재로 하여 전반적인 체계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학원교재와 더불어 부족한 회계학과 경제학은 이효익 문제집과 정병렬 문제집을 장만하여 많은 문제를 풀어보려고 노력하였다. 5월에는 학원에서 실시하는 모의고사를 4번 정도 보았고, 매번 합격점에 미달하는 성적이 나를 우울하게 만들었지만, 그래도 조금씩 오르는 것으로 위안할 수 밖에 없었다. 더욱 더 마음을 가다듬고, 기말고사도 무시하고, 그동안 보았던 책들을 반복하여 공부하며 7월 4일이 되기만을 기다렸다.

드디어 1차 관문인 7월 4일 아침, 전날 밤에 숙면하여 컨디션이 좋았다. 이 느낌 그대로 서울대까지 가져가기 위해서 장거리임에도 불구하고 택시를 타고 갔다. 칙칙한 시험장에 들어가 마음을 가다듬고 160분 동안 정신없이 문제를 풀었다. 시간배분에 신경을 써서 문제는 모두 풀었지만 합격을 확신할 수 없었다.

2. 2차시험(1999년 7월 ~ 2000년 8월)

1차 시험 후 당락에 상관없이 2차 시험공부를 시작하였다. 마음도 편하지 못했고 방황도 하고 싶었지만, 일단 공부를 시작한 만큼 단번에 끝내야 한다고 마음을 굳게 다잡았다. 학교에서 제9회 시험에 합격하신 선배들이 준비한 2차 특강을 5주간 수강하고 2차 시험을 보았다. 내년 시험을 대비하는 편안한 마음으로(깜빡하여 계산기도 가져가지 않았다.) 3교시 내내 답안지의 재질, 책상의 상태, 감독관의 행동, 점심에 학원에서 나누어주는 점심도시락의 맛, 먹을 물은 있는지 등등 이런저런 시험장 분위기만 살피다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9월부터 본격적으로 2차 준비에 들어갔다. 기본강의는 과목별로 평판이 좋은 강의를 여러 학원에서 나누어 수강하였다. 물론 학원별로 개설되어있는 2차 종합반 강의를 들으면 비용이나 시간계획에 있어서 유리한 면도 있지만, 기본강의를 충실하게 들을 수 있는 기간이 9월부터 12월 사이의 4개월에 불과하므로 이 기간 동안 될 수 있으면 많은 기본강의를 수강하는 것이 2차를 처음 시작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효과적이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 전략적으로 선별하여 수강하는 방법도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이렇게 기본강의를 수강하면서 과목별 기본서를 정독하였다. 실무는 3인 공저의 실무형 이론을 읽은 후 종합문제를 반복하여 풀었다.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나서 시중에 있는 문제집과 감정원 연수교재, 안정근 실무를 일주일에 범위를 정하여 풀고 나서 같이 공부하던 친구들과 몰랐던 부분을 이야기하고 오답노트를 만들어 어디에 있는 문제인지, 유형은 어떤 것이고, 함정은 무엇인지에 대하여 정리하였다. 실무의 경우 어느 정도 많은 문제를 풀고 나면 문제집별로 동일한 문제가 많이 중복되는 것을 알 수 있는데, 같은 문제도 풀이가 달라서 짜증이 나므로 그동안 보았던 것을 짧은 시간에 검색할 수 있도록 정리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론과 법규는 정독과 속독을 반복하며 전체적인 체계를 이해하려 노력하였다. 기본서로 이론은 안정근 교수님의 현대부동산학개론과 이론서 및 전영주 이론서를 보았고, 법규는 김동희 교수님의 행정법과 류해웅 보상법규를 보았다.

그렇게 한해가 지나고 2000년 새해는 노량진에서 스터디를 하는 것으로 시작하였다. 매주 토요일마다 10시간 정도의 빡빡한 일정을 보내고, 주중에는 팀장들이 내준 과제를(200점 이상의 분량이다.) 하다보면 일주일이 순식간에 지나가 버렸다. 9월~12월 사이에 공부가 부족했음을 한탄하며 나름대로의 계획들은 스터디를 따라가기 위한 몸부림으로 모두 무산되었다. 참고로 이때부터 대부분의 수험생들이 스터디 자료와 과제를 기초로 하여 과목별 서브노트를 만들기 시작한다. 공부를 시작한 많은 사람들이 서브노트 작성에 대하여 물어보는데, 시험에 임박해서 두꺼운 기본서와 많은 복사물들을 가지고 다니면서 공부할 수 없으므로 자료를 빠짐없이 그리고 중복되지 않게 반드시 정리하여야 한다. 나는 악필이어서(스스로도 내가 쓴 글씨로 정리한 내용을 보면 스트레스를 받았다.) 서브작성은 바인더를 사서 복사하고 오려붙이고 하여 짜집기 노트를 만들었다.

그렇게 스터디 1기가 끝나갔다. 3년차 이상 고수들과의 실력차, 예상외로 더디게 늘어만가는 실력으로 마음이 심란하였다. 어느덧 화창한 봄날이 되었지만 마음은 아직 겨울이었다. 4월~5월의 2기 과정 때에는 별도로 실무는 학교에서 같이 공부하는 친구들과 개별적으로 스터디를 만들어서 매일 오전 9시부터 100점 분량의 문제를 풀어서 돌려보며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고, 이론과 법규는 기본서 하나를 정해 거기에 요약하고 첨가하는 방법과 각종 스터디 자료와 논문들을 정리하여 서브노트를 보충하였다.

마지막 정리는 6월부터 시작하였다. 스터디 3기는 모의고사 형식이어서 일주일간 정리하고 주말에 모의고사를 보며 성적을 체크하는 방식으로 마무리를 하였다. 성적은 그리 만족스럽지 못하였지만 마땅한 방법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무는 2기 때와 같이 꾸준하게 매일아침 친구들과 100점을 풀며 실제시험에 대한 감각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였고, 이론과 법규는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라도 암기하여 들어갔다.

그리고 운명의 8월 20일, 시험치는 사람들 모두가 그랬겠지만, 나도 사실 많이 떨렸다. 우울하게 아침부터 비가 내렸고, 시험장에 들어가니 불행하게도 오래된 작은 책상에 내 수험번호가 붙어있었다. 이미 해결할 수 없는 일에 대해서는 받아들이고 남은 시간동안 마지막 준비를 하였다. 1교시... 2교시... 3교시... 이렇게 시험은 끝났다. 모든 정신을 집중하여 풀었는데 이상하게도 끝나고 나니 문제가 뭐였는지 생각이 나질 않았다. 그래도 당장 시험의 굴레에서 벗어났다는 사실로 기분이 홀가분해졌다.

 

 

Ⅳ. 그밖에는

부동산의 개별성 이상으로 사람은 저마다 다른 개성을 갖는다고 생각됩니다. 따라서 모든 이에게 꼭 맞는 방법은 없겠지만, 제가 수험생활을 하면서 느낀 것을 적어봅니다.

1. 수험기간

시험준비에 모든 시간을 투자하는 경우 약 1년6개월 정도가 걸리지 않나 생각됩니다. 다른 시험준비를 했던 사람은 이보다 기간이 줄어들기도 하겠지요. 그러나 시험에 빨리 합격하기 위해 조바심을 내어 빡빡한 수험계획을 세운다면 오히려 수험기간이 길어질 수 있습니다. 시험은 1년에 한번뿐이니까요. 현재 자기의 수준과 공부할 수 있는 여건을 고려하여 결정하는 것이 좋습니다.

2. 시간계획

일일계획이 아닌 일주일단위로 계획을 세워 공부하였습니다. 기분에 따라서 실무가 잘 풀리는 날은 실무를 더 많이 보았고, 이론이나 법규가 잘 이해되는 날은 그 과목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방식으로 융통성 있게 계획을 세웠습니다. 투자하여야하는 시간은 다르지만 3과목 각각 100점으로 동일하므로 일주일동안 보아야할 범위를 정하여 한쪽으로 치우치는 것에 주의하였습니다. 일요일에는 재충전의 날로 정하여 지친 머리를 쉬려하였으나, 거의 미리 정해놓은 범위를 달성하지 못하여 마음 편하게 쉬었던 때는 그리 많지는 않았나 생각됩니다.

3. 컨디션조절

1년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닙니다. 단조로운 수험생활이 반복되다 보면 슬럼프가 찾아오기도 하고, 공부에 대한 지나친 욕심으로 몸을 혹사시키면 건강을 잃기도 합니다. 이것이 자주 반복되거나 장기화될 경우 합격과는 거리가 멀어집니다. 시간이 따로내기는 어렵지만 사이시간에는 운동, 산책, 사우나 등으로 건강과 슬럼프를 극복하였습니다. 제가 고시원이 아닌 학교에서 공부를 하기로 마음먹은 것도 학교에는 이런 운동과 산책하기 좋은 조용하고 쾌적한 환경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4. 자신감

시험에 도전하는 모든 사람들이 합격을 목표로 매진하겠지만, 시간이 지나다보면 시험을 선택한 것에 대한 후회, 주위의 고수들과의 실력차이 등으로 자신감을 잃어버릴 수 있다. 한번 잃어버린 자신감을 회복하기란 상당히 어렵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이런 종류의 자격증 시험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와 같다고 생각됩니다. 오랜 기간 많은 양을 공부했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잃어버리기 마련이므로, 시험 때에는 열심히 공부한 2년차 실력과는 종이 한장 차이라고 생각하시고 최선을 다하세요.

 

Ⅴ. 마치며

처음 도시공학과를 선택하고 대학에 들어오면서 생각했던 10년 후 나의 모습과는 조금은 다르게 삶이 변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다시 10년 후 나의 모습을 생각하며 합격수기를 마치려고 합니다.

수험기간 내내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시험을 볼 수 있었던 것은 많은 분들의 관심과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선 언제나 저를 믿고 마음 편하게 공부를 할 수 있도록 학원비와 용돈을 보내주신 부모님께 감사 드립니다. 이 글을 보시지는 않겠지만 아버지 어머니 이제부터 효도하겠습니다.

그리고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고 많은 조언을 해주었던 선배님과 팀장님, 같이 고생했던 친구들과 팀원들 모두가 제게는 소중한 사람들이고, 모두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이제 얼마후면 다가올 2차 시험을 보게 되는 모든 사람들이 건강하게 시험을 끝마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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