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운의 꿈”

 

이 무 연

 

(제11회 시험합격, 男, 28, 단국대 정책학과 卒)

 

 

 

 

 

 

 

Ⅰ. 들어가며

 

 

합격한지 어언 1년이 다 되어 가는데 합격수기를 쓰자니 좀 서먹했다. 수험생에게 피와 살이 되는 이야기를 많이 써야 되는데 글재주도 없고 합격의 지름길이 될 만한 비법도 알지 못해서 별로 쓸 말이 없었다. 그냥 내가 지내온 이야기를 중심으로 합격이후 주위의 수험생들에게 했던 얘기를 하고자 한다. 이 글을 읽는 수험생들에게는 미안한 맘이 앞서는 게 사실이지만 다 읽고 나면 그래도 남는 교훈이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꾸밈없이 진실만을 적은 글이기 때문이다.

 

 

 

 

 

 

 

Ⅱ. 수험생활

 

 

’96년 2월 제대 후 복학하면서 청운의 꿈을 갖고 행정고시를 준비하려던 차에 같은 방을 쓰는 형이 영어과목도 없는 무슨 자격증시험에 1차를 합격한 상태였는데 그게 일반직장에 가는 것보단 훨씬 좋다는 말을 들었다(그 형은 그 후로 고생을 더하다가 9회에 당당히 합격했다). 나는 어차피 전공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기에 당연히 그 공부를 하기로 결정했다. 경제학과 회계학이 1차 시험에 당락을 좌우한다는 말을 듣고 이듬해에 동차합격을 목표로 삼아 그 두 과목을 잡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리고 그 해 7월초 1차 시험은 그저 시험장 분위기나 익히려고 갔었는데 신분증을 안 가져가서 5분만에 밖으로 나오게 됐다(아니 쫒겨났다).

 

 

 

기분은 무척 상했지만 이것도 알고 보면 경험이며 앞으로 좋은 일이 있기 위한 액땜을 했다고 믿고 계속 공부를 했다. 그 해 11월쯤 동기와 선후배들 대부분이 취직을 위한 영어공부에 혈안이었고 주위에 같이 공부할 사람도 없던 나는 나 자신이 점점 의심스러워졌고 영어도 안 해놓았는데 떨어진다면 갈 곳도 없다는 생각에 차츰 불안해하기 시작했다. 결국 많은 고민 끝에 1차 과목을 살려 공무원 7급 세무직 시험을 준비하기로 하고 다음해에 휴학을 결심했다.

 

 

 

휴학한 후 독서실에서 참 열심히도 공부했었는데 막상 시험을 보고 나니 한 두 문제 차이로 합격이 결정되는 공무원시험의 특성상 계속 공부를 해도 노력만큼의 결과를 기대하기 힘들 것 같았다. 다시 영어와 상식을 중심으로 공사시험을 준비했는데, 그 해 하반기는 IMF로 인해 어떤 공기업도 신입사원을 채용하지 않았다. 결국 별 소득 없이 회계, 경제학만 열심히 반복하다가 다시 복학한 것이다. 이제 4학년이었고 나는 아직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서점에서 평가사 수험서를 뒤적거리며 고민하다가 지난 날 중도에 포기했던 나의 나약함을 뼈저리게 후회하며 굳은 각오로 다시 평가사 시험을 준비하였다. 한 번 뒤로 물러났던 개구리가 더 멀리 뛸 수 있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다시 시작하면서 정말 열심히 했지만 어느새 나도 모르는 허점이 숨어있었다. 그것은 ’96년부터 이미 이 시험을 알았으며 회계학과 경제학은 많이 공부해왔다고 스스로 자만하면서 학원에서의 수업은 2차 기본강의를 위주로 들었지만 1차는 학원수업을 기피했던 것이다. 그러나 혼자서 하는 공부는 책을 읽고 이해하며 논점을 짚어내는 능력을 단련시켜 줄지는 몰라도 전체 내용을 고루 알지 못하게 되며 아는 부분만 반복하게 된다. 그래서 모의고사 점수가 늘 그 수준에 머무르기 쉽다. ’99년 동차를 목표로 했으나 1차 모의고사 점수가 잘 안나와 7월초까지 곤욕을 치뤘다. 아는 것과 시험장에서 답을 찾아내는 능력은 조금 다르다는 걸 강조하고 싶다. 아무튼 그 해 1차는 가까스로 합격하고 2차 시험을 겨우 봤는데(4월부터 손도 대지 못한 상태였다.) 결과를 보고는 이론, 법규는 나름대로 자신감이 붙었지만 실무가 정말 당락의 결정요인이라는 것을 체험한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실무 과락, 이론 47, 법규 44 )

 

 

 

2차 수험공부는 학원 스터디를 통해 많은 사람들과 교류하며 해나갔다. 훌륭한 팀장들과 많은 실력자들을 만났던 것이 내가 더욱 분발할 수 있는 환경이 되어준 것 같았다. 학원에서의 성적은 중간정도였고, 그렇게 진도에 맞춰 3기까지 낙오 없이 이어나갔다. 나는 한번 읽고 빠르게 정리를 잘하는 편은 아니었고 많은 시간을 들여 반복하면서 내 것으로 만드는 스타일이었다. 시험이 끝난 후 잘 봤다는 느낌은 별로 없었고(언제나 자신에게 냉정했기 때문일까?) 12월 합격자 발표일 새벽에 시장에서 일을 끝내고 나오다가 계단에 앉아서 신문을 보고서야 합격했음을 알게 되었다. 새벽의 시장길을 마구 뛰어가면서 그러고 싶지 않았는데도 정말 눈물이 주르르 흘러 앞을 가렸다.(실무66, 이론51, 법규58)

 

 

 

 

 

 

 

Ⅲ. 공부 방법

 

 

1. 계획을 통한 자신의 통제

 

한 달을 전체로 잡고 과목별로 이번 달의 목표를 세우고 다이어리에 매일 체크해 나갔다. 조금은 무리인 듯한 목표를 세워두면 나 자신이 한달 동안 열심히 하더라도 늘 부족한 느낌이 들어 자만에 빠지는 걸 방지할 수 있었다. 달력의 하루를 3등분하여 오전, 오후, 저녁으로 나누고 내 양심의 기준에 따라 ○, △, ×로 그 날의 공부에 대한 평가를 표시했다. 분량이 아닌 집중도를 기준으로…. 그것은 내가 아닌 타인은 평가할 수 없는 것이다. 책상에 오래 앉아 있었어도 딴 생각만 하고 있었다면 나는 나에게 결코 좋은 점수를 줄 수 없다. 그런 냉정한 판단을 매일 하면서 자신을 지킬 수 있는 것이다.

 

 

 

특별히 쉬는 날은 정하지 않았고 일요일도 다른 약속이 없으면 도서관에 갔다. 하루동안 순수하게 공부하는 시간만 8시간 이상씩 유지하려고 노력하였으나 1주일 내내 그것을 지킨 적은 한번도 없었다. 공부하다가 스트레스가 쌓이면 한증막에서 땀을 빼고 충분한 수면을 취했다.

 

 

 

특히 시험에서는 막바지 정리가 중요한데 나는 1차와 2차 시험 2~3달 전부터는 낮에는 도서관에서 여러 사람과 함께 공부하고 밥도 같이 먹었지만 저녁은 집에 와서 먹고 근처 독서실에 다녔다. 그렇게 하면 2~3시간은 더 챙길 수 있을 것이다.

 

 

 

2. 과목별 공부방법

 

 

이 시험에서는 1차는 정평있는 기본서와 문제집을 기초로 많은 문제를 풀어보고, 2차는 시중에 나온 많은 책을 거의 다보고 시험장에 들어가는게 일반적인 것 같다.(사실 내용은 비슷한 게 많다.) 하지만 많은 책을 보면서 그걸 다 소화하는 사람은 드물다. 시간이 지나면서 또 다시 잊어버리게 된다. 기초를 튼튼히 해줄 책 한 권을 반복적으로 완벽히 소화하면 그 다음부터 살을 붙이는 건 더 빠르고 쉬워진다. 매달 나오는 고시잡지의 문제들을 시간을 정해서 실전처럼 풀어보는 것도 중간점검을 위해 꼭 필요하다.

 

 

 

 

 

▶ 1차

 

 

(1) 경제학

유일하게 책만 보고 철저히 독학으로 공부한 과목이다. 3인공저로 기초를 잡고 정병열저 「경제학연습」등으로 문제를 접하면서 유형에 적응하였다. 혼자서 100을 이룰 수 있는 사람은 학원에 다녔을 때 100이상의 높은 효율을 얻으리라고 본다. 나처럼 무작정 책을 파면서 공부하는 것은 경쟁자에게 뒤지는 일이고 위험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난이도를 조절하려고 하면 무척 어려워지는 과목이므로 철저히 준비해 두어야 한다.

 

 

(2) 회계학

 

 

’96년 처음 접하면서 2급 상업부기 책부터 보았다. 처음 기초는 논리적이며 재미도 있지만 깊이 들어갈수록 분량도 많고 감당하기 어려워지는 과목이다. 학원을 이용해서 효율을 높이고 분명히 시간 잡아먹고 틀리라고 내는 문제도 있기 때문에 이런 것은 비용과 효용을 따져보아 적당히 skip 할 줄도 알아야 한다. 송상엽저「회계원리」와「중급회계」를 보고 회계사 시험용 객관식 문제풀이로 숙달시켰다.「원가회계」는 김영주저를 권장하고 싶다.

 

 

 

(3) 민법 및 관계법규

 

 

민법은 조병욱님의 테잎으로 관계법규는 학원강의를 들었다. 관계법규를 얕잡아 보고 늦게 시작했던게 1차 시험에서 크게 힘들었던 주원인이었다. 민법은 필히 법조문을 가지고 익숙할 만큼 자주 접해야 하며 두 과목 모두 고득점을 목표로 해야 하므로 단기간 내에 이루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미리미리 회계학, 경제학 못지 않은 공부시간의 안배를 충분히 해야 할 것이다.

 

 

 

 

 

▶ 2차

 

 

(1) 이론과 법규

 

 

종국에는 이해가 되던 안되던 암기해야 할 과목들이지만 우선은 뼈대를 잡고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할 과목들이다. 이론은 특히 모든 목차의 내용을 ‘가격’과 연결 지어보면 그 의미를 되새겨 볼 수 있고 결국 ‘가격’이라는 고리로 모두 이어짐을 알게 된다. 법규는 특히 학원 스터디에서 박병우 팀장님에게 많은 도움을 받은 과목인데, 행정법을 자주 탐독하면서 더 나은 답안을 작성하려고 애썼다. 법규에서 행정법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리고 최근의 판례동향이나 쟁점 등을 고시잡지를 통해 틈틈이 체크하는 것도 필요하다.

 

 

 

이론이나 법규는 논문도 봐야 하고 그 양이 방대하다. 공부한다는 것은 특히 수험공부는 자신이 보았던 내용을 시험당일 전까지 얼마나 짧은 시간 안에 훑어볼 수 있으며 요약정리 할 수 있는지를 겨루는 것과도 같다. 두번 세번 보면서 계속 시간을 줄이려면 논점에 대한 정리를 잘 하는 것이 중요하다(이것이 사실은 나에겐 가장 어려운 부분이었다).

 

 

 

(2) 실무

 

 

 

공부를 처음 시작하면서 실무란 과목이 너무 궁금해서 책을 뒤적이다가 가감승제 밖에 없는 계산식을 보고는 정말 단순한 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법규와 이론의 틀을 바탕으로 숙달된 문제 해결능력을 지면에 표현하는 작업이었다. 매일 풀지 않으면 머리와 손가락이 굳어 버린다. 실무가 평소에 좋은 점은 하루 공부량이 어느새 8시간 이상이 되게 해주는데 큰 도움을 주어 법규와 이론의 지루함을 너그러이 달래주는 데에 있다. 매일 아침 도서관에 가서 공부 시작하기 전에 30점 정도를 풀고 커피 한잔 마시는 버릇을 들이는 것도 괜찮다.

 

 

 

다른 사람들처럼 나 역시 오답노트를 만들어서 활용하였다. 그 안의 내용들은 내가 자주 틀리는 것들이었는데 빨리 보기에도 좋고 기억에도 오래 남는다. 문제유형별로 답안의 목차를 만들고 어떤 자료가 제시되면 어떤 방식으로 풀 것인지를 정형화했다.

 

 

평소에 실무를 시간 안에 빨리 푼다고 해서 자신이 실무를 잘한다고 쉽게 믿어 버리지 말기를 바란다. 학원가에서 풀어보는 문제들은 100점 중에서 30점 이상은 조금 익숙한 문제들인 경우가 많다. 실제 시험장에서는 훨씬 낯선 문제가 출제된다. 보상지침이나 감정평가규칙들의 내용들을 답안지에 피력하도록 노력하고 암기화로 얻어진 실무성적에는 절대 안주하지 말길 바란다.

 

 

 

우선은 3인공저로 체계를 잡고 안정근 실무를 병행하면서 매일 하다보면 자연스레 시중의 문제집과 학원가의 문제들을 거의 풀어보게 될것이다. 특히 실무를 하면서 중요치 않은 사소한 부분에 대해선 크게 고민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 2차 수험교재 (대표적인 것들만 소개합니다.)

 

▪이론 : 전영주저, 허장식저, 서동기저, 일본감정평가기준, 안정근 이론‧ 부동산학, 김근수 재무관리(경영학Ⅱ)

 

▪법규 : 김동희저「행정법」, 류지태저 「감평행정법」, 임호정저, 유해웅저「신수용보상법론」, 이재화저 「행정법사례연습」

 

▪실무 : 백일현외 3인공저, 안정근 실무, 단대기출문제집, 6‧8‧10회 동기회, 이상주저, 홍병각저

 

 

 

 

 

 

 

 

 

Ⅳ. 내가 생각한 나의 합격 이유

나는 핸드폰이 원래 없었다. 유지 할 능력도 없지만 없어도 불편한 것은 내가 아닌 친한 친구들 몇몇 이었다. 요즘에 핸드폰 없이 생활하는 것이 정상적이라고는 볼 수 없지만 그런 것 때문에 혹시 공부에 방해가 되지는 않는지 생각해볼 필요도 있다.

 

 

 

또, 2차 시험 전날 걱정된 맘으로 뒤척이다가 평소보다 일찍 11시쯤 잠을 청했다. 겨우 잠들었는데 새벽 3시 반쯤 창문 아래에서 어떤 취객이 시끄럽게 떠드는 바람에 잠이 깼다. 다시 잠을 자려고 해도 안되고 마음은 계속 불안해져갔다. 지난 1년 간의 노력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날이 밝아올 때까지 공부를 할까하다가 해봤자 얼마나 하겠느냐는 생각에 약간 취기가 들 정도로 포도주를 마시고 그냥 자버렸다. 다음날 시험장에서 많은 수험생들이 전날 밤잠을 설쳤다고들 했다. 1교시 실무를 맑은 정신에 서두르지 않고 아는 문제부터 풀기 시작했고 충분히 남는 시간에 1번의 당락을 좌우했다는 실농보상을 천천히 풀어나갔다. 어려워서 잘 안될 것 같은 문제도 다른 거 다해놓고 차분히 들여다보면 나름대로의 논리를 내세워 풀릴 때가 많다. 열 번 시험 봐서 열 번을 모두 합격할 수 있는 수험생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시험 전날에는 충분한 수면으로 정신을 맑게 하는 것이 훨씬 이롭다.

 

 

 

 

마지막으로 앞서 말했듯이 평가사 시험을 준비한답시고 주위사람들에게 떠들고 다니다가 끝까지 가보지도 않고 중도에 포기했던 일이 너무나 후회스러워서 그런 감정을 두 번 다시는 겪고 싶지 않았다. 다시 시작했을 때는 합격을 목표로 하지 않았다. 그저 내가 최선을 다할 수 있었던 사람이라면 어떤 결과든지 승복하고 다른 길을 간다해도 이젠 미련없이 열심히 그 일에 전념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뿐이었다. 그런 마음가짐이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게 해주었고 수험기간 내내 나를 지탱해 주는 역할을 했다고 믿는다.

 

 

 

 

 

 

 

Ⅴ. 글을 마치며...

 

시험은, 특히 2차 논술시험까지 있어서 적어도 평균 2~3년을 공부해야만 결실의 기회가 한번 찾아오는 시험은 잠시동안의 인생을 걸고 하는 도박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다만, 카지노의 도박들과 다른 점이라면 자신이 노력을 하면 얼마든지 승률을 조금씩 높여 나갈 수 있는 도박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노력해도 사람의 힘으로는 100퍼센트의 확률을 달성해놓기란 불가능하다. 그러한 단순한 진리를 수험생활을 하면서 느꼈다.

 

 

 

그 기간동안에 묵묵히 뒷바라지 해주신 나의 부모님께 진심으로 감사하고 걱정해준 형, 형수님 모두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합니다. 그 밖에 수험생으로서 내가 알고 지낸 모든 사람들과 도서관에서 매일 마주치던(서로가 말한 적은 없어도) 낯익은 수많은 각종 수험생들 모두가 뜻한 바를 꼭 이루시고 앞날에 행운이 따르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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