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격수기

 

이제 또 다른 출발점에 서서

 

한 찬 우

(제10회 시험합격)

 

 

 

 

 

내 나이 45세, 지루하고 기나긴 도서관 인생의 마침표를 찍는 순간, 기쁨보다는 오히려 일종의 허무감을 느꼈다. 그 동안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그 동안 마음고생이 많았던 아내, 실직한 가장을 보는 사춘기 자식들의 마음고생, 이러한 고통들은 오늘의 합격을 준비하기 위하여 있었나 보다.

 

 

 

보상법규 61점, 감평이론 62.5점, 평가실무 49점, 평균 57.5, 13등의 성적이었다. 평가실무 5번 약술형 2문제를 보지 못한 실수가 없었더라면 더 좋은 성적을 올릴 수 있었을 텐데 하는 분에 넘치는 욕심도 생겼다.

 

 

 

 

Ⅰ. 첫 번째 결단

 

 

73년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순간, 이미 나는 5인 가족의 실질적인 가장이 되어 있었다. 목표하던 대학에는 낙방을 하고 4년간 장학금이 보장되어 있던 대학은 있었으나 입학금이 마련되지 못하여 대학생활과 나의 장래 꿈은 접어둔 채 생활전선으로 나가지 아니하면 안되었다. 지금은 9급인 5급행정직 시험을 보고 소공세무서를 시작으로 세무공무원 생활을 시작하였다. 친구들은 축제니 미팅이니 하는 이야기를 하며 젊음을 누리고 있는 데, 나는 세금고지서를 돌리러 서울 봉천동 산동네를 헤메고 있었다.

 

 

 

군대를 제대하고 복직하였을 때, 아버님은 이미 돌아가시고 누님도 결혼을 하여 부양가족은 3인만이 남았다.

 

 

“그래. 내가 살고 싶은 인생은 이런 것이 아니야. 이제는 내 장래를 위하여 살고싶어.”

 

 

 

‘78년 6월 어느날, 나는 사표를 쓰고 말았다. 그리고는 스레트 몇 장과 시멘트 블럭을 사 뒷마당 구석에 2평 정도의 창고를 짓고 대학입시 공부를 시작하였다.

 

 

 

1. 대학생활

 

 

‘79학번 신입생이었으나 복학생 대접을 받으며 6년 후배들과 함께 나의 대학생활은 시작되었다. 1학년 2학기부터 공인회계사 시험공부를 하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동생도 생활을 돕긴 하였으나 식구의 생계유지는 나의 책무였으므로 공부에만 전념할 수 없었다. 대학 3학년은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열심히 공부한 시절, 하루에 볼펜1자루를 소비하며 정말 열심히 공부하였다. 4학년 때 경영지도사 시험 합격증은 확보하였으나 공인회계사 시험은 계속 낙방하였다. 취업하지 않고 1년만 더 공부하고 싶었으나 이미 결혼도 한 가장에게는 사치에 불과하였다.

 

 

 

공부를 더하고 싶었으나 중도에 그만두는 아쉬움은 꿈으로 변하여 10여년 동안 밤마다 나를 괴롭혔다. 그때 공인회계사 수험생들이 흔히 응시하던 공인감정사 1차시험에라도 응시하였더라면 감정평가사 수험기간을 조금 단축하였을 텐데.

 

 

 

Ⅱ. 두 번째 전환점

 

 

대학졸업후 사회생활은 은행원으로 출발하였다. 경영지도사 자격증을 활용할 수 있는 중소기업은행 입사시험에 응시하였다. 관례상 신입행원은 본점발령을 바로 내지 않으므로 몇 개월만 지점에 근무하면 본점 기업지도부로 발령내 주겠다는 인사부서의 약속을 받고 광화문지점 계산계에서 은행원생활을 시작하였다. 당시에는 전산으로 일일마감을 하는 시절이 아니고 주판과 수기로 결산하던 시절이었다. 계산계는 다른 출납계원의 업무가 마감된 이후에 업무가 시작되므로 보통 10시 이후에나 퇴근을 할 수 있었다. 낮시간 동안에는 헌 돈을 골라내어 본점에서 새 돈을 바꿔오거나 인근 다른 은행에서 동전을 바꿔오는 것이 나의 일이었다. 늦은 나이에 출발하게 된 은행원생활도 나의 생활이 아닌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래 다시 한 번 사표를 쓰자.”

 

신입행원 수습도 끝나기 전에 또 한번의 사표를 쓰고 친구가 가져다 준 한국토지개발공사(현재 한국토지공사)입사시험에 응시하였다.

 

 

 

 

1. 감정평가사 수험기간

 

 

한국토지공사에 입사한 이후에도 공인회계사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몇 년간 응시를 하였다. 그러나 시험제도가 변경되어 시험과목이 늘어나고 1․2차 과목이 조정되어 새롭게 공부를 하여야 하는 까닭으로 몇 년의 세월만 소비하고 말았다. 그러나 그때 한 회계학 공부는 감정평가사 공부로 전환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여 주었으며 시험공부 부담을 줄여주게 되었다.

 

 

 

공인감정사와 토지평가사제도가 감정평가사로 통합되며 제1회 시험이 공고되었다. 그 동안 공부하던 공인회계사 시험에 대한 미련은 버리고 회사업무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는 감정평가사에 도전하기로 하였다. 제1회에는 준비도 없이 응시하였고 제3회 시험부터 계속 응시하게 되었다. 그러나 직장생활과 병행한 시험공부이니 그 공부량이 오죽하겠는가? 그래도 2년마다의 1차시험은 그럭저럭 합격하게 되어 열심히 하지도 포기하지도 못하며, 여름휴가철에는 식구들과 제대로 휴가를 즐기지도 못하는 어정쩡한 세월이 계속되었다.

 

 

 

Ⅲ. 마지막 선택

 

 

IMF관리체제는 철밥통이라 하는 공직사회에도 여지없이 적용되어 정부투자기관인 한국토지공사에도 구조조정의 바람이 몰아닥쳤다. 회사에게 할당된 인원만큼의 자발적인 퇴직이 없을 경우 강제로 퇴직하여야 할 순서를 정하고 희망퇴직을 받았다.

 

 

“그래, 이것이 오히려 나에게는 인생을 전환시킬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주는 것이다. 남아서 비굴하게 연명하느니 차라리 사직하고 마지막 승부수를 던져보자”

 

 

9회 때의 1차시험 합격이 힘이 되어 주었다. 불안한 미래에 대한 가족들의 염려를 뒤로하고 희망퇴직 지원 첫날 미련없이 사표를 썼다.

 

 

 

1. 제10회 수험생활

 

 

‘99년 1월은 사직의 후유증으로 보냈다. 그 동안 학원수강없이 혼자 공부하였으나 공부에 자극을 주기 위하여 3월부터 모학원의 study group에 지원하였다. 그러나 그 동안의 공부량이 study group내 다른 사람들에 비하여 형편없이 적은 것을 깨닫고 내 스스로의 schedule대로 공부하기로 하고, 5개월 과정중 3개월만 학원에 다니고 인근 시립도서관에서 하루 10시간 정도 공부하였다. 40대 중반의 나이는 체력적으로도 부담이 되어 집에 돌아올 때는 녹초가 되어 있었다.

 

 

 

 

Ⅳ. 수험생들에게

 

 

그 동안의 수험생활에서 체험한 몇 가지 점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수험생들에게 다소 도움이 되었으면 다행이라 하겠다.

 

 

 

1. 체력관리 중요성

 

 

감정평가사 시험은 비록 과목수는 적은 편이나 회계학, 법학, 경제학, 경영학 등 성격이 다른 공부를 하여야 하는 까닭에 수험기간이 많이 소요되는 시험이다. 특히 한 여름철에 시험을 보므로 체력이 결정적인 요소로 작용할 때가 있다. 본인은 체력관리에 문제가 생기면 딸국질이 나고, 딸국질이 한 번 시작되면 멈추지 못하는 특이한 체질이다. 7회 시험때 체력관리를 소홀히 하여 2차 시험보는 그 주일의 목요일, 금요일에 날밤새며 딸국질을 하고 침과 한약으로 토요일 낮에 딸국질은 멈춰졌으나 토요일 밤도 꼬박 새우는 통에 시험장에서는 거짓말같이 환각상태로 보낸 적이 있다. 올림픽축구 예선전에서 잘하면 무엇하나? 체력관리 소홀로 부상당하여 본선에서는 벤치만 지키는 신세가 된다면 아무 쓸모 없는 것이다. 하루 최소 1시간 정도는 반드시 체력관리를 위하여 투자하였으면 한다.

 

 

 

 

 

 

2. 수면제 복용문제

성격상 예민한 수험생들에게는 시험전 수면제 복용도 권하고 싶다. 수험생은 긴장탓에 시험 전날 평소의 수면상태를 유지하지 못하는 것이 상례이다. 그러나 보통정도의 긴장 이상으로 예민하여 지는 수험생에게는 수면제 복용을 권하고 싶다. 물론 동내 약국에서 매약을 하는 것은 금지하고 신경정신과 병원에서 수험에 지장을 주지 않는 약으로 처방을 받아 편안한 수면을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본인도 예민한 성격탓에 시험전날 잠을 못 이루는 경우가 많아 9회와 10회 2차 시험때는 인근 병원의 처방을 받아 수면제를 복용하고 시험을 보았다. 오전 중에는 약간 약기운이 남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으나 평가실무를 차분하게 풀 수 있었던 것이 오히려 약 덕분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든다.

 

 

 

3. 문제 잘 보기

 

 

시험문제를 받자마자 바로 문제옆에 메모를 남기는 습관을 들이도록 한다. 본인은 이번 평가실무에서 5번 약술형 문제를 보지 못하여 백지로 내는 결정적인 실수를 하였다. 4번까지 풀고 나니 5-6분 정도의 시간이 나서 답안지를 검토하며 시간을 보냈으나 5번 약술형 5점짜리 2문제를 보지 못하고 백지로 내는 결정적인 실수를 범하고 말았다. 평가실무에 평가이론에서 출제되어야 할 약술형 문제가 출제된 것을 점심시간에 동료들의 말을 듣고 알았다.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 과락넘기기가 과제인 평가실무에서 그런 어처구니 없는 엄청난 실수를 할 줄이야. 그러나 내 스스로 채점한 결과 과락은 넘기겠다는 생각이 들어 오후의 평가이론과 보상법규에는 담담하게 임할 수는 있었다.

 

 

 

10월이 되자 평가실무 1차 채점결과 과락을 넘긴 사람이 몇 명밖에 안 된다는 소문이 떠돌았다. 백지로 낸 실무 5번 문제의 악몽으로 한달 정도 밤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였다. 문제검토시 문제 옆에 메모를 남기는 습관을 들였으면 문제를 보지 못하는 엄청난 실수를 하지 아니하였을 것을…. 이런 실수가 이해되지 않는 분도 있겠으나 시험당일의 긴장상태에서는 가능한 일인 만큼 문제를 받고 문제를 읽자마자 문제 옆에 답안의 목차 등 어떠한 형태로든 메모를 남기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시험당일에는 자기능력 이상으로 실력을 발휘할 수 없다. 평소의 습관은 이런 면에서 중요하다.

 

 

 

 

Ⅴ. 공부방법론

 

 

1차과목 중에서 회계학은 가장 시간이 많이 소요되고 당락을 결정짓는 핵심과목이다. 문제집은 감정평가사 수험용으로 단권화되어 있는 것을 선택하고 연결합병회계등 감정평가사 업무와 관련성이 적은 부분은 과감하게 생략하는 것도 전략이 되겠다.

 

 

1차시험에 임하는 요령 한가지는 한 과목을 전부 푼 다음 다른 과목으로 넘어가는 방법보다는 각 과목 중 자신 있는 문제를 우선 풀어 과목별로 숫자를 헤아린 다음 그 숫자가 적은 과목부터 시간배정을 하여 남은 문제를 푸는 것이 과락과목을 없애고 과목별로 고르게 득점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본다. 한 과목의 문제를 전부 해결하고 다음과목으로 넘어가는 방법은 과목별 시간배정에 실패할 수 있어 과락과목을 낳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평가실무는 시험전날까지 하루도 거르지 말고 일정시간 할애하여 공부하는 것이 좋다. 6월이 넘으면 암기과목의 부담으로 평가실무를 소홀히 할 수 있으나 이것은 과락에 이르는 첩경인 것이다. 평가실무는 문제푸는 감각을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다른 과목에 만점을 받아도 과락이 있으면 소용없는 것이 아닌가?

 

 

안타깝게도 수험동료 중 다른 과목에서는 우수한 성적을 받았으나 평가실무 과락으로 불합격하는 경우를 여러 명 보았다. 평가실무에는 자신이 있어 시간배정을 소홀히 한 탓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번 10회시험 평가실무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으나 불합격한 수험생은 특히 유념하여 자만하지 말고 11회 시험에서는 반드시 시험전날까지 하루도 거르지 말고 일정시간 할애하여 공부하도록 한다.

 

평가이론은 수험생 모두가 염려하듯이 좋은 책이 없으므로 시중의 기본서를 단권화하되 나름대로 체계를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평가방법 중 수익방식 부분에 가서는 특히 그 용어조차 책마다 다르므로 자기 나름대로 체계를 세워 공부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보상법규는 행정법의 기초하에 공부하여야만 한다. 행정법에 대한 기술없이 단지 보상법규의 문리적 해석만으로는 좋은 점수를 받기 어렵다. 평가이론과 보상법규 공부시 서브노트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보상법규는 문제별로 서브노트하되 문제별 서론부분은 완벽하게 정리하여 놓는 것이 좋다. 시험장에서 서론부분을 생각하다 보면 5-6분은 그냥 지나가므로 최소한 문제별 서론부분은 미리 정리하여 두는 것이 시간절약 및 논리전개의 일관성 유지에 좋다고 생각한다. 서브노트없이 2차시험을 보는 것은 총들지 않고 전쟁에 나가는 것과 같다고 확신한다.

 

 

 

Ⅵ. 수기를 마치면서

특히 건강에 유의하며 자기의 모든 힘을 쏟아 전력투구하기를 바란다.

11회 시험을 준비하는 모든 수험생들의 건투를 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