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종교라는 이름의 한 지붕 아래 <표층종교> 와 <심층종교>가 공존하고 있다는 것, 표층종교가 판을 치는 사회에서는 어쩔 수 없이 그런 표층종교가 불러올 수 있는 부작용이 클 수 밖에 없지만 그 표층종교가 심층종교로 심화되면 그런 부작용이 사라지고 그 대신 종교가 인간과 사회에 줄 수 있는 아름다운 열매들이 맺힐 수 있다는 것이다.

 

 

2.

 

표층종교가 주로 무조건적인 <믿음>을 강조하는데 반해, 심층종교는 <깨달음>을 중요시 한다는 것이다. 표층종교는 잘 믿기만 하면 지금의 내가 이 세상에서도 잘되고 죽어서도 어디 좋은 데로 가게 된다고 믿지만, 심층종교는 지금의 내가 아니라 내 속에 있는 참나를 발견하고, 그 참나가 결국은 내 속에 있는 신(神)적 요소라는 사실을 깨달으라고 가르친다.

 

 

3.

 

이처럼 깨달음을 통해서 내 속에 신적요소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에 눈뜨라고 말하는 심층종교에 접하게 되면 무엇보다 나 스스로가 의연하고 늠름한 자유인의 삶을 살 수 있고, 또 내 이웃도 함께 신적요소를 지니고 있다는 일체감에서 그들을 하늘 모시듯 하는 사랑과 자비의 마음을 가지게 된다. 이것이 종교가 줄 수 있는 참된 은복이 아니겠는가?

 

우연은 새로움의 참되고 유일한 원천이다. 

처음 독서의 마음을 먹고 책을 읽기 시작했을때는 책의 내용을 기억하기에 급급했다.

 

 

하지만 지금은 책을 읽되 읽은 것을 굳이 기억하려 애쓰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을 잊으려 애쓴다.

 

 

나는 읽은 것들을 저장하는 단순한 ‘정보입력장치’가 되고 싶지는 않다. 이는 인터넷이 발달하기 전 이야기이고 이제는 단순한 정보입력장치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책을 읽는 바로 현재 바로 그 순간을 느끼고 이를 더 나은 사유를 위한 기초가 되면 그것으로 족하다.

 

 

책을 읽는 순간 나와 또 다른 세계사이의 소통이 되는 것이며 그 순간 그것을 시발점(trigger)으로 하여 폭발하듯이 아이디어가 창궐하는 순간을  향유한다.


 

나는 책을 읽는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나는 읽은 것들에 기대어 천천히 사유하고 음미하며 명상한다.

 

 

책을 읽으면서 내 인식이 점점 명징(明徵)해짐을 느끼며,  내부에서 무언가가 계속 솟구쳐 오르는 힘을 느낀다.

 

 

나는 이 세상의 모든 책들을 마스터하고 싶다는 불가능한 꿈을 10년째 꾸고 있다.  지금 당장 눈앞에 있는 고통을 감내해가면서 까지 이를 이루기 위해 매달려 살았다.

 

 

지금은 현재 잿빛의 삶을 살고 있지만, 고통과 허무와 좌절의 막(幕)을 찢고 나아가 솟구치고 싶다.

 

 

이 책을 처음 만났을때 나는 이를 이해할 능력이 0이었다. 2003년 한번 슥 읽어보고 나중에 기회가 되면 다시한번 도전해 봐야 겠다

 

 

고 생각하고 이의 이해를 위하여  알랭 바디우, 로널드 보그, 마이클 하트, 폴 패튼, 알베르치 괄란디, 클레어 콜브룩, 존 라이크만 들

 

 

의 책을 먼저 읽었고 그 다음 <천 개의 고원> 텍스트를 같이 옆에 두고 이해해보려고 애를 썼다.

 

(그 때 감정평가 공부는 뒷전이었다)

 

 

그때 내가 존경하는 혹은 두려워하는 이진경님의 <노마디즘 Nomadism> 이 나왔고 이때 정말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유목이란 주체 외부의 존재인 길을 내부화 하는 방식이다.

 

들뢰즈는 이렇게 말한다. 

 

 

움직여라

 

제자리에서라도 움직여라.

 

끊임없이 움직여라.

 

움직이면서 다양한 탈주선을 준비하라.

 

지각의 촉수들을 뻗어 나아가되 몸은 이동하지 않는 여행을 하라.

 

지층화의 예속을 끊고 나아가는 탈주체화의 운동을 하라.

 

우연과 우발성에서 전환과 도약의 계기들을 포획하라. 점에서 선으로. 흐름에서 흐름으로 나아가라. 

 

 

내가 <천개의 고원>의 책을 어려워했던 것은 쓰여있는 텍스트 자체를 이해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즉, 나무의 관점에서 접근했다는 애기이다.

 

 

리좀(Rhizome)은 탈중심화와 비위계질서를 본질로 하는 다양체다. 리좀(Rhizome)은 나무나 뿌리와 같은 것으로 표상되는 사유의 재현모델을 따르는 기존의 담론과 제도들에 구현된 규범적 질서를 해체하고 생성으로 나아가도록 자극한다.

 

 

가족, 사회, 국가라는 영토에 귀속시키거나 환원할 수 없는 하나의 삶이 있다.

 

 

하지만 그것들로 환원할 수 없는 하나의 삶은 이미 가족, 사회, 국가에 의해 포획되어 지층을 이루고 있다.

 

 

생성은 포획된 이것들이 지층을 벗어나 새로운 탈주선들을 만듦으로써 시작된다. 탈영토화의 운동이 그것이다. 

 

 

리좀(Rhizome)은 나무가 가진 위계적 질서의 독재를 깨뜨린다. 리좀(Rhizome)은 무질서이며 혼돈(chaos)이다.

 

 

리좀(Rhizome)은 중앙집중화, 위계적 질서, 조직화된 기억들을 거부한다. 

 

 

 

리좀(Rhizome)은 욕망과 무의식을 억압하는 규범적 사유체계를 거부하고, 일자적 권력을 해체하며, 모든 종류의 생성을 포획하고 포획된 그것으로 제 몸을 만든다. 

 

 

뿌리(Root) 말고 리좀(Rhizome)을 만들어라. 속도가 점을 선으로 변형시킬 것이다

 

 

리좀과 나무의 이항대립은 탈영토화 와 재영토화 

 

사본과 지도

 

무리와 군중

 

소수와 다수

 

유목주의와 정주주의

 

전쟁기계와 국제장치

 

등과 같은 천 개의 고원의 가장 중요한 중추적인 개념들로 변주되고 확장된다.

 

 

이것들은 다시 다양한 변이들을 만들어낸다. 이것들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안과 밖이 하나로 순환하며 이어진다. 

 

 

천개의 고원은 읽으면 읽을수록 중심도 줄기도 토대로 갖지 않은 리좀개념이 보여주는 놀라운 발상에 감탄하곤 한다.

 

 

진정으로 내가 생각했던 삶의 모습이 바로 리좀(Rhizome)의 그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들뢰즈의 노마디즘 (Nomadism)은 벽암록의 공안(公安)과도 같다.

 

 

노자의 도덕경이나 최치원이 말한 접화군생 (接化群生)의 정신과도 일맥상통한다.

 

 

나는 계속 이 책을 통해 사유의 방법론을 배우고자 한다.  

 

 

그리하여 끊임없이 법고(法古)를 탈영토화 함으로써 창신(創新)에 이를 것이다.

 

 

내가 들뢰즈에게 배운 것은 바로 옛 것을 익히고 배우되 그것을 지층화 하지 않고 새로운 탈주선을 만들어 횡단하기 이다.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아주 간단하지만 멋진 사례를 한가지 보내드립니다.

생활에 큰 도움되시길 기원합니다.


1.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는 말로 유명한 백장 선사가 있습니다.

스님의 이름은 원래 회해인데 백장산에서 오래 살았기 때문에

산의 이름을 따서 백장 스님이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한 스님이 백장 선사에게 묻습니다.

"어떤 것이 기특한 일입니까?"


2.

경전이나 어록에 나오는 법문을 남의 일로,

과거 어느 선사의 일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지금의 내 삶에 그것을 비춰 보아야 합니다.

나 자신에게 던지는 물음으로 여겨야 합니다.

이때 백장 선사의 답은 간단명료합니다.

"독좌대웅봉(獨坐大雄峰), 홀로 우뚝 대웅붕에 앉는다."


3.

백장선사가 머물던 산 이름은 백장산 또는 대웅산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래서 '홀로 우뚝 대웅봉에 앉는다'고 한 것입니다.

단순하면서도 분명합니다.

이것이 안거의 소식입니다.

'홀로 우뚝 대웅봉에 앉는다.'

수행하는 사람은 어디에 거처하든 홀로 우뚝 자기 자리에 앉을 수 있어야 합니다.

길상봉에 앉든지 종로봉에 앉든지 혹은 반야봉에

앉을 수 있어야 합니다.


4.

직장 생활을 하든 집안일을 하든

바로 그 현장에서 홀로 우뚝 앉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정신으로 살고 그런 정신으로 일한다면 늘 깨어 있게 됩니다.

'홀로 우뚝 대웅봉에 앉는다.'

선방에서 정진을 하든, 절의 후원에서 일을 거들던,

사무실에서 사무를 보든, 달리는 차 안이나 지하철에 있든

언제 어디서나 홀로 우뚝 자신의 존재 속에 앉을 수 있다면

그 삶은 잘못되지 않습니다.

-출처: 법정, <일기일회>, 문학의 숲, pp.65-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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