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가전부터 사무용품까지 다 파는 ‘동산경매’

압류 현장에서 입찰…호가(呼價) 방식으로 진행
골프회원권·유가증권·귀금속은 법원에서 매각

126호 2015년 04월 01일

경매는 복수의 사람이 경쟁을 벌여 가격을 결정하는 가장 원초적인 판매방식이다. 기본 구조상으로는 최초 시작가보다 값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경쟁이 전혀 없는 물건은 반대로 싸게 살 수 있다는 이점을 갖고 있다. 특히 부동산경매는 매수자를 결정짓지 못할 경우 법원이 강제적으로 가격을 20~30% 낮춘다. 입찰자를 찾지 못해 경매가 2~3번만 연기돼도 입찰가는 시작 대비 50% 수준으로 떨어질 수 있다. 경매라고 하면 으레 ‘부동산’을 떠올리기 십상이다. 그러나 법원은 원활한 채권회수를 위해 채무자가 보유한 실물자산, 즉 동산도 강제로 매각하고 있다. 이른바 ‘동산경매’로 불리는 실물자산 구입요령에 대해 살펴봤다.


(상) 지난 2003년 10월2일 서울 연희동 전두환 전(前) 대통령 사저에서 진행된 동산경매 장면.
(하) 전두환 전 대통령 사저에서 진행된 동산경매에 나온 물건들.

에너지업종 중소기업을 운영하고 있는 A씨는 지난해 3월에 열린 김찬경 전(前) 미래저축은행 회장(구속) 소장품 경매에 참석했다. 김 전 회장은 수천억원대 부실대출을 지시하고 회사 돈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지난 2012년 구속, 기소됐다. 서울 서초동 중앙지법 집행관실에서 열린 이날 경매에는 김 전 회장이 소유했던 고가의 귀금속, 명품시계, 골드바, 10억원 상당의 달러 등이 나왔다. 달러와 골드바는 모 금융회사가 입찰에 참여해 낙찰 받았다. A씨는 “귀금속과 고가 시계는 채무자가 임의대로 빼돌릴 수 있기 때문에 통상 관할법원 집행관 사무실에서 열린다”고 말했다. 그는 이날 경매에서 김 전 회장이 소유한 스위스 명품시계를 시세의 70% 수준에 매입했다. 그는 “김 전 회장이 평소 명품시계를 수집하는 취미가 있다고는 들었는데 실제로 경매에 나온 것을 보니, 이름만 대면 알만한 명품시계는 거의 다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  

주인 못찾아 입찰 연기되면 가격 20% 하락
동산(動産)이란 말 그대로 움직이는 재산이다. 땅, 건물 등 부동산과 정반대 개념이다. 즉, 동산경매란 경매라는 경쟁입찰방식으로 실물자산을 매각하는 절차를 말한다. 실물자산이 경매로 나오는 과정은 일반 부동산경매와 비슷하다. 은행 등 금융회사나 개인이 빌려준 돈을 돌려받지 못하면 채권회수를 위해 법원에 경매를 신청한다. 이때 법원은 채권자인 금융기관의 경매 신청이 적법하다고 판단할 경우, 동산에 대한 공개매각을 결정한다.

예를 들어 A씨는 지금 B씨에게 빌려준 돈을 받아내야 할 처지에 있다고 치자. 현재 B씨는 빌린 돈을 갚을 상황이 못 된다. 이럴 경우 A씨는 B의 전 재산에 가압류를 신청할 수 있다. 가압류란 소송 전 B가 A 몰래 돈 되는 물건을 빼돌리는 것을 막기 위한 법률적 행위로, 만약 법원으로부터 가압류 신청이 받아들여지면 B의 모든 실물자산에는 ‘파란딱지’라고 불리는 가압류통지서가 붙는다. 이후 법원이 A가 신청한 소송에서 채권자의 손을 들어주면 B의 재산에 걸린 가압류 통지서는 드라마나 영화에 볼 수 있는 ‘빨간딱지’라는 압류통지서로 돌변한다.

동산경매에 나오는 물건은 말 그대로 돈 되는 것들이다. 가구, 오디오, 세탁기, TV, 컴퓨터부터 사무용품 등 모든 제품이 나온다. 업무용은 사무용품 일체가 여기에 해당된다. 만약 양식장, 어시장 등이 경매 신청되면 물고기도 동산으로 간주된다. 경우에 따라서는 입던 옷도 매각절차가 진행된다. 3월18일 서울 역삼동 S빌라에서 진행된 동산경매에는 원피스, 블라우스 등 의류 17점이 매각 절차를 밟았다. 감정 평가된 금액은 총 1200만원으로, 3회 유찰돼 감정가는 614만4000원부터 시작됐다. 3월23일에는 서울 서초구 방배동에서 시가 266만원짜리 사우나 도크가 입찰에 나왔다. 유명 그림과 조각상 등도 동산경매에 자주 등장하는 물건이다. 골프장 회원권과 유가증권 등도 나온다.

부동산경매와 마찬가지로 동산경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가격(낙찰가)이다. 개시 결정이 떨어지면 법원이 지정한 감정기관은 해당 물품가를 책정하는데, 이것이 바로 감정가다. 감정평가 작업이 완료되면 법원은 공고를 통해 경매 일자를 확정짓는데, 경매 신청으로부터 첫 입찰까지 걸리는 시간은 보통 2~3개월이다. 일반 부동산경매가 5~6개월 소요되는 것에 비하면 상당히 빠르다. 

최초 경매는 감정가에서부터 시작하며, 해당 입찰일에 적당한 매수자를 찾지 못하면, 부동산경매와 마찬가지로 값이 20%씩 떨어진다. 동산경매로 나오는 물건은 중고품이 대부분인데다 감정가도 시세의 70~80% 수준이어서 일반 중고시장에서 구입하는 것보다 훨씬 싸다.

처리방식은 일괄매각이 기본이다. 해당 물품을 하나씩 매각하다 보면 채권회수가 원활하지 않을뿐더러 걸리는 시간도 만만치 않다. 이 때문에 모든 물건을 하나로 묶어 일괄 처리하는 것이 원칙이다. 따라서 동산경매는 부동산경매와 달리 현장에서 입찰이 열린다. 다만 귀중품과 유가증권, 골프장 회원권은 법원 내 집행관 사무실에서 입찰을 진행한다. 또 경우에 따라서는 부동산경매가 열리는 법정에서 매각절차를 밟기도 한다. 3월17일 서울 중앙지법 별관 경매법정에서 진행된 동산경매에는 채무자인 함양리조트가 보유한 스카이뷰컨트리클럽 회원권이 매물로 나왔다.


- 동산경매는 매각방식이 일반 부동산경매와 비슷하다.

대법원, 온라인으로 동산 정보 제공
동산경매는 특별한 입찰자격을 두고 있지 않다. 도장과 주민등록증만 갖고 있으면 누구나 입찰 참여가 가능하다. 대법원은 해당 물건의 경매날짜가 확정되면 법원 내 집행관 사무실과 대법원 법원경매 정보사이트(www.courtauction.go.kr)에 물건을 2주 전에 공고한다.

하지만 부동산경매와 다른 점도 분명히 있다. 부동산경매가 서류로 입찰가를 적어내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는 것과 달리, 현장에서 열리는 동산경매는 일반 미술경매에서 볼 수 있는 호가제(呼價制)를 적용하고 있다. 가격 흥정을 붙이는 가장 원초적인 방식이다. 이런 이유로 동산경매는 일부 브로커들의 온상이 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역마다 전문 브로커가 있어 개인 투자자들의 입찰을 방해하고 있는가 하면, 실제로 구매할 의사가 없는 상황임에도 가격만 높여 실구매자에게 손해를 입히는 일이 종종 발생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동산경매 전문가는 “만약 맘에 드는 물건이 있다면 현장에서 동산경매 브로커에게 ‘입찰에 참여하지 말아달라’며 뒷돈을 주는 것이 일종의 관행이 됐다”고 말했다. 법무법인 참진의 황지현 경매실장은 “원활한 채권회수와 공정경쟁이라는 제도 도입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라도 동산경매 역시 부동산경매와 같은 서류입찰방식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동산경매로 물건을 구입하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경매업계에서는 대체로 채무자의 부탁을 받은 제3자가 물건을 싸게 낙찰 받아 이를 다시 채무자에게 돌려주는 경우가 가장 많다고 말한다. 지난 2003년 10월에 있은 전두환 전(前) 대통령 소유 동산경매가 좋은 예다. 당시 전 전 대통령 관련 동산경매에는 냉장고, 텔레비전, 병풍, 동양화 등 1억2000여만원어치가 한꺼번에 입찰에 부쳐져 모두 골동품 애호가인 김모씨 품으로 돌아갔다. 생활용품뿐만 아니라 기르던 진돗개까지 매각 물품에 포함됐다. 하지만 이후 낙찰자 김씨는 진돗개를 전 전 대통령에게 돌려줬다. 지금도 이러한 광경은 일반 동산경매 현장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모습이다. 강은현 EH경매연구소장은 “가령 사무실을 처음 내는데 각종 사무기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개인고객이 있다면 인근 지역에서 나오는 동산경매 물건을 구입하는 것도 좋다”고 말했다. 황지현 실장은 “서울 강남권의 고가아파트에서 열리는 동산경매 입찰에서는 고급 오디오 등 생활용품을 시세보다 비교적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현장 브로커들 가격담합 주의해야
동산경매는 철저히 실수요 개념으로 접근해야 한다. 부동산처럼 구입 후 시세차익을 노리는 것은 쉽지 않다. 오래된 유명 오디오나 명품은 감정기관이 책정한 감정가가 낮아 예상 외 수익을 올릴 수 있지만 이 같은 물건을 찾기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경매가 열리는 현장을 수시로 방문해야 하며 관련 품목에 대한 안목이 마니아 수준에 도달해야 한다.

서울 압구정동에서 무역업을 하는 김정산씨는 지난해 폐업처리된 모 중소가전업체의 공기청정기와 비데 500여대를 동산경매 방식으로 매입했다. 500여대를 낙찰 받는 데 들어간 돈은 3000여만원이었다. 김씨는 이 물건을 몽골에 내다팔아 수천만원의 수익을 냈다. 김씨는 “경기 불황으로 대규모 의류 할인세일 행사가 종종 열리는데 여기서 판매되는 물건 중 상당수가 동산경매를 통해 나온 것들”이라고 설명했다. 동산경매는 현장에서 전액 현금을 내야 소유권이 이전된다. 경매 법정에서 진행되는 물건도 마찬가지로 현장에서 현금을 내야 소유권을 넘겨받는다.

 

[동산경매 절차]

사건번호 옆 매각장소 반드시 숙지

대법원 홈페이지를 방문하면 첫 화면 중간에 ‘빠른 물건 검색’이라는 코너가 나온다. 부동산과 동산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여기서 동산을 클릭하고 해당 지방법원을 선택하면 된다. 만약 자신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지역의 지방법원을 모른다면 바로 아래 시도, 시군구, 읍면동 별로 지역을 선택해 검색하면 된다. 대법원이 제공하는 물건 정보는 법원 경매와 형식이 비슷하다.

우선 사건번호는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사건번호는 주민등록번호와 같다. 사건번호 옆에는 매각장소와 목록내역이 나와 있다. 부동산경매가 법원에서 입찰이 열리는 것과 달리 동산경매는 현장에서 매각절차가 진행된다. 매각장소 아래에는 어떤 동산 물건이 나오는지 나와 있다. 물건 목록을 바로 클릭하면 관련 정보를 쉽게 제공 받을 수 있다.

 

[자동차 경매]

중고차 시세 70% 수준에서 매각돼

자동차는 물건 특성만 놓고 보면 동산경매에 가깝지만 법원은 현재 부동산경매와 한꺼번에 처리하고 있다. 이 때문에 경매방식이나 특성 등은 부동산경매와 유사하다. 자동차는 포클레인, 굴삭기 등 중장비와 함께 분류되고 있다. 현재 대법원은 자동차 경매와 관련된 정보를 일반 부동산 경매 정보와 비슷한 형태로 일반에 공개하고 있다. 

경매로 자동차를 구입하는 사례는 조금씩 늘고 있다. 경매정보 제공업체 지지옥션에 따르면, 지난 2월 말 전국에서 경매로 나온 자동차는 686대였으며 이 가운데 306대가 주인을 찾았다. 낙찰률은 44.5%, 평균경쟁률은 4.9대 1을 기록했다. 감정가에서 낙찰가가 차지한 비율인 낙찰가율은 76.4%였다. 대략 감정가의 70% 선에서 매각됐다는 소리다. 경기침체를 보여주듯 지난해 같은 기간 462대가 경매로 나온 것과 비교하면 다소 늘어났다. 지난 2월25일 경기도 수원지법 경매11계에서 열린 2012년식 쉐보레(1998cc) 입찰에는 총 31명이 참가해 감정가(2100만원)의 71%인 1485만1000원에 최종 낙찰됐다. 이 차의 주행거리는 1만4572㎞였다.

자동차 경매는 입찰에 부쳐지기 전까지 전 소유주가 실제로 타던 차가 나오기 때문에 차체 결함이 비교적 덜하며 감정기관이 평가한 금액 역시 일반 중고차 시세에 비해 저렴하다. 대법원 사이트를 방문하면 현재 차량상태, 주행거리 등을 알 수 있다. 만약 사고 여부 등을 알고 싶다면 민간 경매정보업체가 제공하는 정보를 적극 활용하는 것이 좋다. 지지옥션(www.ggi.co.kr)은 등록 회원들에게 자동차 경매 정보 내 보험개발원과 연계돼 차량사고 이력을 제공한다. 이 코너에서는 해당 차량의 사고 유무와 소유자 변경 여부 등이 자세하게 소개돼 있다. 도로교통, 침수, 도난 사고 등을 당했는지 직접 알아보고 싶다면 보험개발원 사이트(www.kidi.or.kr)를 방문해 조회해 볼 수 있다. 

자동차 경매는 일반적으로 2회 이상 유찰되는 경우가 거의 없다. 1회 유찰 후 보통 감정가의 70% 선에서 주인이 가려진다. 연식이 좋은 차라면 첫 입찰에서 바로 낙찰된다. 하지만 자동차 경매는 시동을 켜거나 엔진 상태를 입찰 전 확인할 수 없는 것이 단점이다. 해당 보관소를 방문해 외관으로만 확인이 가능하다. 이 때문에 만약 자신이 낙찰 받은 차량이 감정평가서와 다른 상태임을 확인했다면 법원에 즉시 불허가나 낙찰대금 감가(減價)를 신청해야 한다.

송창섭 기자 / 사진 : 조선일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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