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격수기

 

…12월엔 합격의 기쁨을 누리세요!!

 

이 호 현

(중앙대학교 경제학과 4년)

 

 

 

 

 

이 글은 합격이라는 기쁨 뒤에 숨겨진 저의 노력을 보여드리는 것이기도 하지만, 제 이야기를 쓴다는 것 자체는 꽤나 쑥스러운 일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그것도 1년이나 지난 지금에 와서는요. 저의 얘기가 재미없는 글이 되겠지만 잠시나마 머리를 식히면서 감상해 주시기 바랍니다.

 

 

 

 

97년 말, 대학 3학년이 거의 끝나갈 무렵, 나는 그 다음 해에 떠날 어학연수 준비에 한창이었다. 준비만 하다가 환률이 두 배로 뛰는 바람에 비행기도 못 타보게 되었다. 1월부터는 학교에서 하는 토플강의를 수강했고, 외국에 가려던 계획을 접은 만큼 국내에서 더 열심히 해야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침‧저녁으로 도서관 자리를 잡고 영어공부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학교에는 친하게 지내는 선배들이 많았는데, 그들 대부분이 회계사와 행정고시, 노무사, 변리사 등을 준비하는 사람들이었다. 나는 평소에 공부와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던 터라 이런 선배들과 가깝게 지내면서도 고시나 자격증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점점 공부하는 것에 대한 흥미를 갖기 시작했다. 아마도 그건 연수를 포기하면서 받았던 자극 내지는 내 진로에 대한 위기의식에서 표출된 것이었으리라.

 

 

 

그 때가 98년 1월 중순경인데, 이때 이후로는 모든 일이 미리 계획이나 했던 것처럼 순식간에 이뤄졌다. 한 3일 정도를 선배들과 고민하고 학원가에서 상담한 후 “감정평가사”가 되기로 결정하였다. 그 땐 감정평가사가 뭔지도 잘 몰랐다. 돈 많이 벌고, 외근도 적당히 있는 것 같아서 내 적성에 맞을 것 같았다. 생각해 보면 이렇게 시작하는 게 정말 우스운 일이지만, 우습게 시작했어도 공부만은 우습게 하지 않았다.

 

 

 

어쨌든, 부모님은 항상 공부하기를 바라셨기 때문에 적극 찬성하셨고, 여자친구는 같이 듣던 토플강의를 그만 두겠다는 데도 의외로 반기는 분위기였다. 대강의 계획을 세워보니 2월엔 회계원리를 독파하고, 민법을 기초부터 시작한 후에 3‧4월 기본강의를 수강하면 될 것 같았다. 처음 한동안은 회계원리에 주력했는데, 10일 정도 후에 1회독을 했던 것 같다. 그 다음 10일 동안은 2회독을 더 하고, 서브를 만들었다. 민법은 진도가 많이 나가지는 못했지만, 꼼꼼하게 책을 본 터라 기본을 다지는 시기가 되었던 것 같다.

 

 

 

사실 2월 한달 동안은 3월 기본강의를 위한 준비기간이었기 때문에, 회계원리를 확실히 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할 만 했다. 그 즈음에 나는 집을 나와 학교 앞 고시원에서 생활을 시작하였다. 집에서 학교까지는 6정거장밖에 되지 않았고, 집 앞에는 매일 밤 만나던 여자친구가 살고 있었는데… 공부하는 시간을 최대로 늘리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처음 가보는 고시원, 옆방에서 나는 책장 넘기는 소리까지 들리고 의자를 책상 위에 올려야만 누울 수 있는 작은 방… 첫 날은 밤새 뒤척이다가 새벽에나 잠이 들었는데 시계소리에 화들짝 놀라 깼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 고시원에서 오랫동안 생활한 선배가 나의 첫 고시원 생활을 많이 도와주었는데, 빨래하는 것, 밤에 라면을 먹는 것, 심지어 전문가의 손길로 내 방 꾸미기까지… 어쨌든 이 때부터의 수험기간 동안은 거의 집을 떠나서 생활했다.

 

 

 

98년 3월부터 6월까지는 계속해서 학원수강을 하였다. 1차의 경우, 민법과 관계법규는 처음 1회독이 어려울 뿐, 적당한 암기와 이해만 되어 있으면 별다른 어려움이 없다. 관건은 경제와 회계인데, 이 두 가지 과목은 이해하기도 어렵고 공부해야 하는 양도 많기 때문에 결코 만만하지가 않다. 나의 경우 경제학과이므로 경제학은 언급할 필요가 없고, 회계학은, 독학한 회계원리, 재무‧원가회계 학원강의 교재(3~6월분), 학원 및 부동산고시 모의고사만 보았다. 객관식 시험준비에서 이해와 암기, 문제적용이 필요하다면, 각각 한 권의 책만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물론, 시간적 여유가 없었던 사정이 있었지만 책 한 권만 확실하게 해도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게 나의 생각이었다. 그리고, 이런 나의 생각을 끝까지 믿었다.

 

 

 

1차의 경우, 어차피 회계학은 전략과목이 아닌 이상 처음부터 책의 분량을 최소화하려는 계획은 시험이 가까워 올수록 공부량에 대한 부담을 줄여준다.

 

 

 

 

1차 시험은 무난히 합격을 했지만 개인적인 일들 때문에 많은 방황을 했다. 8월부터 행정법 강의를 듣고, 9월부터는 실무‧이론‧법규의 이론강의를 수강하였지만, 학원을 나갔던 건 책을 완전히 놓을 수는 없다는 부담감 때문이었다. 2차의 경우 너무도 생소한 내용들이기 때문에 아무런 도움 없이, 마음도 잡히지 않는 상태에선 책을 잡을 수가 없었다. 이 시기에 놀았던 것이 수험기간 내내 발목을 잡았다. 그러던 중 2차를 준비하는 2년차 선배를 만났고, 그 선배의 소개로 실력 좋은 2년차 동갑내기 친구를 만나게 된다. 지방에서 올라온 그 친구는 나에게 신선한 자극이 되었고, 정말 많은 도움을 주었다. 나는 실무를 좋아하면서도 답안을 어떻게 작성하는지 몰랐고, 이론은 그냥 별생각 없이 책만 읽을 뿐 전혀 외우지도 않았던 상태였는데, 그 친구를 만나면서 이런 문제부터 각종 정보, 공부의 방향 등을 설정할 수 있었다. 또, 둘이서 실무를 풀기도 했는데, 한 문제를 풀면 그 친군 내가 마저 문제를 풀 때까지 20분 여를 기다리기도 했다. 이론은 범위를 나눠서 문제와 답을 작성해주기로 했는데, 나는 항상 내 분량을 다 해오지 못했고… 결국 그 친구의 답안을 받아가는 정도였다.

 

 

 

이렇게 도움을 받으면서 2차를 새롭게 시작했고, 1월이 되서는 노량진 모학원의 같은 스터디 반에 들어가게 된다. 처음에는 정말 적응하기가 어려웠다. 나와 비슷한 수준의 분들도 계셨지만, 스터디에 들어오기 전에 그렇게 많은 걸 알고 올 줄은 몰랐다. 나는 지난해 버린 아까운 시간들을 후회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다행스럽게 실력 좋은 팀장들은 만났고, 좋은 형님들과 누나를 만나게 되었다. 첫 날부터 팀장들은 별도의 소그룹 스터디를 추천했고, 그것이 그들의 합격비결인 것처럼 들렸기 때문에 우린 곧바로 그룹을 결성했다. 대학을 졸업한 형님들의 경우, 공부할 장소가 마땅치 않다. 그러다 보니 노량진에서도 가깝고 팀원 중 3명이 있는 우리 학교가 스터디의 장소가 되었고, 같이 공부하게된 형님들이 모두 흑석동에 살림을 차렸다. 경남, 재필, 현철, 창현, 홍석형과 승후누나, 순미 그리고 나… 이런 대가족을 이끌고 공부를 한다는 것은 뒤돌아보면 상당한 모험이었을 런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땐 그게 최선이었고 다들 2년 차였기 때문에 공부하려는 의지는 대단했던 것 같다.

 

 

 

 

스터디 1기 동안, 평일 오전에는 실무문제를 2팀으로 나누어 풀었고, 기타 시간에는 그 주일의 과제물을 준비하였다. 여러 명이 모여 공부하였기 때문에 혼자 하는 것 보다 자료도 풍부했고, 조언을 구하기도 쉬웠으며… 숙제를 베끼기도 쉬웠던 것 같다. 나의 경우, 한 주일 동안 스터디 숙제를 학습하고, 답안 작성을 하기도 힘이 들었고, 그러다 보니 시간은 벌써 3월이 되어있었다. 보통 3월이 되면 수험생들이 나태해지고, 한번쯤 슬럼프에 빠지기 쉬운 때이다. 나는 이때, 시험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여러 가지 고민을 하던 중이었다. 나의 공부방향이 맞는 것인가? 지금까지도 보지 못한 게 너무 많은데 어떻게 하면 시간을 절약할 수 있을까? 이런 고민들을 안고서 스터디 1기를 마무리하였고,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2기를 하지 않기로 결정하였다. 사실 시간이 없다 기보다는 2기를 소화해 낼 자신이 없었던 것인데, 실력이 모자란 상태에서 스터디를 참여하지 않는 것은 학습적 측면에서도 모험이었지만, 개인적으로는 상당한 불안요소가 된다. 2기를 참여하지 않았지만 매주 스터디 문제는 개인적으로 시험형식으로 풀어보려고 노력했고, 어떤 논의가 있었는가에 대해서 물어보는 것으로써 대신하였다. 학교는 가장 편안한 장소였지만 나에게는 여러 가지 유혹이 있었기 때문에 신림동으로 장소를 옮겼다. 이사를 하면서 마음가짐도 새로워 졌는지 신림동에서의 4‧5월은 내 실력을 두 단계 정도는 업그레이드하는 기회가 되었다. 5‧6월의 3기 과정도 각종 학원의 자료들을 취합해서 개별 스터디를 하는 과정을 반복하였고, 승후누나와의 꾸준한 1:1 스터디는 각 과목의 감을 잃지 않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어느 정도의 시기가 되면 서브노트를 만들기 시작한다. 보통 서브노트에 정통한 수험생들은 처음 작성한 서브노트를 3번 정도의 탈고를 거쳐 시험 직전까지 볼 수 있는 결정체로 승화(?)한다는 것 같다. 나는 그런 말을 들으면 그냥 존경 어린 눈빛으로 쳐다볼 뿐이었다. 나는 서브노트를 작성하기가 너무 어려웠다. 처음부터 너무 완벽한 서브를 만들려고만 했기 때문이다. 매번 서브노트를 만들 때에는 완벽하지 않아도 돼… 나중에 고치면 되는 거지 뭐…이런 생각을 하지만, 결국에는 빈약한 서브노트에 실망하고 그만두곤 했었다. 결국, 얻은 결론은 서브 없이 공부하자였다.

 

 

 

어느 덧, 2차 시험 날이 거의 다 되었다.

 

 

 

시험 전날에는 점심을 먹고 나니 공부가 되지 않았다. 과목별로 짜집기해 놓은 책 한 권씩을 가방에 넣고 집으로 향했는데, 집에 가는 바람에 부담만 늘고 보려던 책도 못보고… 예상보다도 늦게 잠이 들었다. 시험 당일, 한여름임이 분명한데 서울대에서는 그리 더웠던 기억이 없다. 법규를 만족하게 쓰지 못했기 때문에 집에 오는 길이 찜찜했고, 불편한 책‧걸상 때문에 허리가 몹시 아팠다. 시험은 그렇게 끝났다.

 

 

 

지난 수험생활을 얘기하다 보니, 그 때의 힘들었던 일들이 추억으로 다가옵니다. 수험생 여러분들도 합격하시어 자신의 노력에 대한 대가를 꼭 지불 받고, 지금의 날들을 좋은 추억으로 만드시길 바랍니다. 이제, 제가 평소 생각하던 바를 간략하게 소개하겠습니다.

 

 

 

 

 

- 스터디의 목적을 항상 환기시켜라!

스터디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절대 찬성합니다. 물론, 도움이 되는 것이어야 하겠지요. 스터디가 시험준비에 필요악이 될 수는 있지만, 절대악이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학원 스터디의 경우는 준비된 자들의 잔치입니다. 1월이 되기전 일정 수준 이상의 공부가 되어 있어야 스터디의 효과를 배가할 수 있습니다. 개별 스터디는 팀 구성원에 신경을 쓰십시오. 서로에게 도움이 되고, 긍정적인 자극을 줄 수 있는 사람들과 하세요. 실력 차이가 너무 나거나, 필요 없는 논의가 주가 되는 경우, 놀자판이 되는 경우, 스터디가 절대악이 됩니다.

 

 

 

 

- 노는 것에 대한 부담을 버리자!

몸과 마음이 지칠 땐 당연히 쉬어야 합니다. 나름대로의 놀이문화가 있을 겁니다. 열심히 공부하시고, 자신에 대한 보상은 더 확실히 하십시오. 놀기 위한 전제조건은 절대 시간의 확보와 놀 땐 확실히 노는 것입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쉬는 게 오버할 수도 있을 겁니다. 이 때도 절대 스트레스 받지 마세요.

 

 

 

 

- 자신의 페이스를 장기 우상향 곡선으로 설정하라!

가장 중요한 부분인 것 같습니다. 시험은 다일 컨디션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입니다. 페이스 조절이란 게 맘대로 되는 일은 아니겠지만, 단기적으로는 어려울 지 몰라도 장기곡선을 조절하는 것은 가능하리라 생각됩니다.

 

 

 

 

- 뼈대가 있어야 살이 붙는다!

어느 과목이나 기본이 되어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2차 시험은 논술형이기 때문에 자신만의 틀이 형성되지 않으면 실력이 늘 수도 없고, 답안을 메꾼다 해도 점수와는 멀어집니다.

 

 

 

 

- 모든 문제를 다 푼다!

 

 

1차 시험이야 아는 것만 풀고 60점 이상만 맞으면 되지만, 2차는 다릅니다. 모든 문제에 손을 대야 한다는 것이 제 지론입니다. 아는 문제에 완벽한 답안을 작성해도 만점을 주지는 않고, 상대평가니까요. 100점을 다 풀고도 시간이 남을 수 있을 만큼 실력을 쌓으세요. 결코, 100을 다 맞기 위해서 모든 문제를 다 풀라는 말은 아닙니다. 문제 다 풀고 검토하고, 답안지를 채울 수 있는 데까지 채워야 점수를 줘도 줄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 시험에 전략적으로 대처하라!

 

 

저는 제가 만든 서브노트는 없었다고 했습니다. 다만, 각종 자료를 취합‧정리한 짜집기(?)가 있었습니다. 어떤 서브노트에도 뒤지지 않는 짜집기이긴 하지만, 덕택에 노력과 시간을 상당부분 덜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과목별로 전략을 세우시고 목표점수 만큼만 공부하십시오. 저의 경우는 2차 세 과목 중 특별히 잘하는 과목이 없었던 만큼, 세 과목 모두 합격자 커트라인 이상만 하면 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합격자 커트라인이 50점대 초반이니까, 세 과목을 각각 50점만 넘으면 합격이라고 생각하세요… 부담이 훨씬 덜 하실 겁니다. 저는 작년 2차 시험에서 이론, 법규는 50점대 중반, 실무는 기대 이상의 점수를 받았습니다. 거의 제 생각대로 된 셈이죠.

 

 

 

이 합격수기는 저의 얘기입니다. 한 청년의 짧은 인생의 한 토막을 보셨다고 생각해 주시고, 저의 수험생활에 대한 방법론도 선택적으로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누가 그랬듯이 사람에겐 부동산보다도 더한 개별성이 있기 마련이니까요. 제가 이 자리에 있기까지는 부모님을 비롯한 가족들의 전폭적인 지지와 저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고, 저는 이 분들에게 평생 감사함을 전하려 합니다. 그리고 공부하는 동안 언제나 저에게 신선한 자극이 되었던 순미와 승후누나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함께 공부했던 형님들의 합격소식이 올 겨울엔 들리기 바라며, 종대형님과 지환, 주영의 합격을 기원합니다. 다시금 97년의 외환위기와 같은 상황이 재현되지나 않을까 걱정입니다. 힘든 상황에서도 의지를 굽히지 마시고 모든 수험생 여러분들에게 기쁜 일만 있기를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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