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첼로를 연주하는 한 남자가 있습니다. 그는 어렵사리 오케스트라에 들어갔지만 재정적인 이유로 오케스트라가 곧 해체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아내 몰래 1억 8천만원을 대출받아 산 첼로를 팔면서, 그는 서운함보다는 일종의 해방감을 느낍니다. 자신의 손이 귀한 첼로를 다룰 만큼 고귀한 손이기를 바랬지만 그에겐 재능이 없었습니다. 첼리스트는 어렸을 적 아버지로부터 강요된, 힘겹게 붙들고 있던 ‘삶을 지치게 하는 꿈’이었습니다.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합니다.
그리고 여기 시체를 닦는 한 남자가 있습니다. 유족들 앞에서 행여 맨 살이 드러나 보일까 조심스레 덮고 가리며 수의를 갈아 입히고, 마치 살아 생전의 모습으로 잠시 잠든 듯 하게 화장을 해 주는 그의 모습에서 숙연함이 느껴집니다. 5분이나 늦게 왔다며 ‘시체로 돈이나 버는 주제’로 모욕했던 유족들조차도, 망자의 모습을 흐트러뜨리지 않으려 애쓰는 그의 극진한 모습에 감복하여 고개를 숙여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아내 조차도 “불결하다”고 만지는 것 조차 싫어하던 그의 손은, 1억 8천만원의 첼로를 만질 때 보다 더 고와 보입니다.
영화 “굿’바이(Good &Bye)”는 무반주 첼로곡 ‘여행자(A wayfarer)’와 함께 잔잔하지만 힘있게 흘러갑니다. 주인공 다이고가 염습을 하는 시간, 죽음과 삶이 교차하는 그 순간 속에서 우리가 잠시 이곳에 머물러 있는 여행자임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죽은 사람의 차디찬 살을 만지고 돌아온 그가 미친 듯이 아내의 살을 파고들던 장면에서 살아 있음이, 다른 이와 함께 살을 부빌 수 있음이 얼마나 고마운 것인지 느끼게 됩니다.
첼로를 팔고 우연히 납관사(納棺師)의 길로 접어든 그가 끊임없이 자신에게 묻는 질문이 인상적입니다. 수 많은 주검을 앞에 두고서야 그는 스스로에게 솔직할 수 있었습니다.
“내가 이 일을 평생 할 수 있을까?”
“나는 우주에 절대적인 존재가 있든 없든, 사람으로써 당연히 지켜나가야 할 중요한 가치가 있다면 아무런 보상이 없더라도 그것을 따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세에 대한 믿음만으로 현실과 치열하게 만나지 않는 것은 나에게 맞지 않는다. 또 영원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살아있는 동안에 쾌락에 탐닉하는 것도 너무나 허무한 노릇이다. 다만 언젠가는 같이 없어질 동시대 사람들과 좀더 의미 있고 건강한 가치를 지켜가면서 살아가다가 '별 너머의 먼지'로 돌아가는 것이 인간의 삶이라 생각한다" – 안철수, “영혼이 있는 승부”
죽음이라는 눈으로 일을 돌아봅니다. 결국 허무하게 돌아갈 운명이라면 무언가 의미 있는 일을 하다 사라지고 싶습니다. 자신에 대한 믿음이 부족하고, 보상이 없고, 세상이 천대하여도 finding the joy in our life, 쾌락이 아닌 나와 너, 더불어 우리 인생의 기쁨을 주는 그 일을 발견하여 평생 하며 살아가고 싶습니다. Good &Bye, 영화의 제목처럼 삶이라는 유한성 속에서 후련히 잘 살다가 홀연히 작별하고 싶습니다.
* ‘후련히 살다 홀연히 사라지리라’는 변화경영연구소 정선이 연구원의 표현을 빌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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