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인 이야기>의 저자로 유명한 시오노 나나미는 “왜 고대 로마에 관심을 가졌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고 합니다. 그녀는 “르네상스를 썼기 때문”이라고 답합니다. 이 대답은 자연스럽게 “왜 르네상스에 관심을 가졌느냐?”는 두 번째 질문으로 이어집니다. 이에 대해 그녀는 <르네상스를 만든 사람들>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중세를 지배해온 기독교적 가치관의 붕괴를 목격한 르네상스인과 근대를 지배해온 서구적 가치관의 붕괴를 목격하고 있는 나. 르네상스인이 새로운 가치관을 창출하기 위해 우선 돌아간 곳이 고대 로마니까, 나도 그곳으로 돌아가 고대 로마가 무엇이었는가를 냉철하게 아는 것이 선결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지금은 로마에 대해 쓰고 있다. 이런 까닭으로, 내가 로마인에게 관심을 가진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선택이다.”

 

 

나나미는 “보고 싶고, 알고 싶고, 이해하고 싶다는 욕망의 분출, 바로 그것이 나중에 후세인들이 르네상스라고 부르게 된 정신운동의 본질”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르네상스의 원천은 ‘만족할 줄 모르는 탐구심’입니다. 밤하늘의 별처럼 빛나는 르네상스 시대의 비범한 인물들은 이 정신에 충실했던 사람들이고, 이들의 정신과 기술에서 탄생한 것이 르네상스 역사에 아로새겨진 작품들입니다.

 

 

나는 르네상스(Renaissance)를 중세의 어두운 겨울밤이 길러낸 ‘정신운동’으로 이해합니다. 동시에 방황하고 끊어졌던 사람들의 마음이 새로운 물길을 발견하여 흐른 시기가 르네상스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르네상스의 탄생 배경과 만개 과정을 13~15세기라는 특정 시대, 그리고 이탈리아와 유럽이라는 지역으로 한정하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르네상스 정신도 그 시대를 빛낸 인물들의 독특한 그 무엇이라고 보지 않습니다.

 

 

인간은 자기 안의 비범한 무언가를 살려낼 수 있는 정신적 씨앗와 탐구를 통해 뭔가를 만들어낼 수 있는 창조적 불씨를 가지고 있다고 믿습니다. 이 씨앗을 발견하는 방법과 불길을 살려내는 과정을 르네상스 시대와 인물들에게서 배울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이것이 내가 르네상스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이고, 앞으로 공부하고 싶은 이유입니다.

 

 

 

야곱 부르크하르트는 ‘르네상스란 곧 인간의 발견’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 주장을 개인에게 적용한다면 한 사람의 삶에서 진정한 자기를 발견하는 과정을 르네상스로 이해해도 무리가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중세의 가치관이 무너지는 사태에 직면했기 때문에 새로운 가치관을 창출해내야 했던 르네상스 시대에는 정치인도 경제인도 모두 창작자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는 시오노 나나미의 말이 옳다면, 개인의 르네상스도 어둡고 힘겨운 시절에 그 씨앗을 잉태할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이런 믿음으로 르네상스적 삶을 꿈꿀 수 있는 자유, 삶의 르네상스를 준비하겠다는 각오를 다집니다.

 

 

“레오나르도나 미켈란젤로나 티치아노의 작품 앞에 섰을 때는 이런 르네상스의 천재들을 해설한 연구서 따위는 읽을 필요가 없습니다. 안내원의 설명도 흘려들으면 됩니다. 그보다는 당신 자신이 ‘젊은 천재’가 된 셈치고 ‘거침없이’ 그들과 마주하는 겁니다. 자기도 천재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천재한테 가까이 다가갈 수 없습니다.

 

 

 

단테나 보카치오나 마키아밸리처럼 글을 표현 수단으로 선택한 사람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집니다. (...) 레오나르도나 마키아밸리나 미켈란젤로의 친구라도 된 것처럼 허심탄회하게 작품을 대하고, 그리하여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편견에 사로잡힘 없이 생각하고, 그렇게 얻은 생각을 자신의 말로 표현해보면 어떨까요. 이것만 실행하면 당신도 르네상스 정신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홍승완 님의 글을 인용하였으며 다시 재독후감을 쓸 예정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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