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거래가 활용 객관평가 가능” “담보액 고무줄 평가 우려”

은행서 사실상 자체 감정평가 논란
 

은행서 사실상 자체 감정평가 논란
 

‘담보물평가 정비안’ 토지·주택 대부분 은행서 평가토록
부동산업계 “객관·공정성 문제” 은행쪽 “전문인력 전담”

 

 

 

 

 

‘주택 구입을 위해 은행에 대출을 신청했는데 담보 평가액이 턱없이 낮게 나온다면?’

정부가 부동산 담보대출 때 필요한 담보물 가치평가 업무를 사실상 은행의 손에 전면적으로 넘기려하는 데 대해 감정평가업계가 반발하면서 논란을 낳고 있다. 은행이 담보물 가치평가를 스스로 할 수 있는 재량권을 대폭 늘려주게 되면 경기상황이나 영업전략에 따라 실제보다 높거나 낮게 평가해 대출을 과도하게 확대하거나 축소시킬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30일 금융당국과 감정평가업계의 말을 종합하면, 금융위원회는 최근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부각됐던 은행산업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한 ‘은행업감독규정’ 개정안을 마련하면서 담보물건 평가제도 정비에 나섰다. 은행의 담보물 자체평가 기준을 분명히 해 객관성과 공정성을 높이겠다는 게 취지다.

금융위의 담보물 평가제도 정비안을 보면, 은행이 대출 신청인(차주)의 의뢰로 담보물을 최초로 평가할 때 △객관적인 시세자료가 있는 경우 △예상 감정가액이 20억원 이하인 경우 △대출 신청금액이 예상 감정가액의 30% 이하인 경우 △차주가 해당 담보물을 매입하거나 준공할 목적으로 대출을 신청하는 경우 가운데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때는 은행이 자체적으로 평가할 수 있도록 재량권을 대폭 허용했다. 반드시 외부 감정평가법인에 평가를 의뢰해야 하는 것은 차주가 요청하는 경우로 못박았고, 이 때도 은행이 차주의 서면동의를 얻으면 자체평가를 할 수 있도록 했다.

이같은 방안은 그동안 감정평가기관이 맡던 담보물 평가를 은행에 넘기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담보대출 대상 부동산의 대부분은 자체평가를 허용하도록 한 네 가지 조항 가운데 하나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해 은행 담보물 감정평가 건수의 90%는 20억원 이하 부동산이 차지했다. 또 개정안이 객관적인 시세 자료의 유형으로 정한 국토해양부 공시지가와 주택공시가격, 국민은행 부동산시세 등을 적용하면 웬만한 토지와 주택은 모두 자체평가 대상이 되는 게 현실이다. 한국감정평가협회 박병우 정책연구 이사는“지난해 금융감독원이 담보물건 평가제도 정비에 나서 협회가 의견을 전달할 당시에는 은행 자체평가를 적정한 선에서 규제하려는 뜻도 있었는데 최근 금감위가 내놓은 개선안은 방향이 확 바뀌어 당혹스럽다”고 말했다.

은행권이 담보물 자체평가를 확대하려는 배경에는 수수료 문제가 자리잡고 있다. 대법원 판결에 따른 은행업 표준약관 개정에 따라 지난해 7월부터 그동안 대출 소비자가 부담하던 근저당권 설정비용을 은행이 떠안게 됐기 때문이다. 지난해 14개 시중은행이 담보물 평가 수수료로 감정평가사(법인)에게 지급한 수수료는 1483억원에 이른다. 이에 대해 은행연합회 관계자는 “해마다 공시되는 토지와 주택가격, 국토해양부 실거래가격 등을 활용해 충분히 객관적인 담보물 평가가 가능해졌다”면서 “자체평가라 해도 전담부서에 소속된 전문인력이 맡게 된다”고 말했다.

부동산업계는 독립성을 갖춘 외부기관을 제쳐두고 은행이 스스로 부동산 담보물 을 평가하면 객관성·공정성이 떨어질 우려가 있다고 본다. 특히 요즘과 같은 부동산 불황기에 부실채권 위험을 예방하기 위한 은행이 평가액을 실제보다 낮추는 쪽으로 치우칠 경우 금융소비자의 재산권이 침해될 수 있다는 염려도 제기된다. 시가 5억원짜리 담보 주택을 은행이 3억원으로 평가하고, 여기에 다시 60%의 주택담보대출비율(LTV)를 적용하면 실제 차주가 받을 수 있는 대출금액은 1억8000만원으로 뚝 떨어지게 된다. 금융위 개정안에서는 차주가 원한다면 외부 감정평가기관에 담보물 평가를 의뢰하도록 했지만, 대출을 받아야 하는 약자의 지위에 있는 차주가 은행이 자체감정 동의를 요구하는 경우 이를 거부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학계에서는 금융기관 건전성 측면에서 이 문제를 봐야 한다고 본다. 지난 2008년 금융위기를 촉발한 미국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의 원인 중 하나는 감정평가사에 대한 금융기관의 과도한 영향력 행사였고 이후 독립된 담보평가의 중요성이 부각됐다는 것이다. 민태욱 한성대 교수(부동산대학원장)은 “은행 한곳당 연간 100억원대의 비용을 아끼기 위해 담보물 평가시스템을 건드리는 것은 은행 스스로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이는 대출기관과 감정평가사간 절대적인 독립성을 유지하도록 하는 금융선진화 추세를 거스르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종훈 기자 cjh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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