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지식 활용하고 싶은데… 일반인은 볼 수 없는 학술논문

엄주엽 기자 | 2017-06-15 11:07
 

 

 

 

 

그래픽 = 김연아 기자 yuna@

 

 

- 학술논문 ‘오픈 액세스’ 현주소

논문 열람할 때마다 비용 지불
편당 최대 9000원 상당한 부담

“지식은 전유물 아닌 공동재산”
‘논문 공개 운동’ 시작 됐지만

유료 학술지와 이해관계 충돌
“세금 지원 논문 보는데 유료?”

국내선 정부가 무료열람 유도
일각 학술주권 빼앗길까 우려


국문학을 전공하는 대학원생 김모 씨는 지난해 한국어 학술논문의 이용이 어려워져 곤란을 겪었다. 국내 학술 데이터베이스(DB)를 운영하는 한 민간기업에서 대학도서관 및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하는 연간 구독료를 인상하면서 일부 대학이 구독을 끊거나 선택적으로 구독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보통 논문 한 편을 쓰기 위해 논문 30여 편 정도를 읽어야 하는데, 논문 한 편당 6000∼9000원을 지불해야 하니 적지 않은 부담이다.

“꼭 치료받고 싶어요. 논문을 어디에서 찾아볼 수 있나요?…” 어떤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가 해당 질환의 최근 연구성과 뉴스를 보고, 의학 관련 포털 게시판에 올린 글이다. 전문의와 상의하는 게 올바른 방식이지만, 오랜 치료를 받고도 호전되지 않아 스스로 질환에 대한 최신 정보를 찾는 환자의 안타까움이 읽힌다. 하지만 “일반인은 소속학회 논문을 볼 수 없습니다”라는 응답이 달렸다.

한국 사회의 담론을 주도하는 200여 종의 책을 낸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얼마 전 펴낸 ‘소통의 무기’(개마고원)의 머리말에서 ‘논문 읽기’를 제안하고 책의 각 장 말미에 관련된 국내학자들의 논문 리스트를 실었다. 그는 전자 DB를 통해 볼 수 있는 논문이 책보다 접근성이 좋고, 생각보다 쉽고 재미있는 논문이 많은 만큼 전공 학자만 본다는 선입견을 버릴 것을 주문했다. 의미 있는 제안이지만 누구나 논문을 쉽게 볼 수 있는 건 아니다.

 

 

 

 


◇“학술논문은 공개돼야 한다”…오픈 액세스 운동

일반인이 의학 논문을 찾는 경우까지는 드물어도, 직업상 전문성을 높이거나 평생학습 차원에서 관심 분야의 학술논문을 보려면 적지 않은 비용을 내야 한다. 최신 학술논문을 수시로 접해야 하는 학생·연구자들로서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2015년 한 해 국내 4년제 대학 전임교원이 국내외 학술지 등에 발표한 논문 수는 7만1000여 편이 넘는다. 대다수 논문은 관련 연구자 10여 명 정도만 읽고 사실상 사장된다는 말을 학계에서 한다.

 

 

 



국제적인 ‘학술논문 무료공개’, 즉 오픈액세스(Open Access·OA) 운동이 시작된 배경도 기본적으로 이와 같다. 20세기 후반 인터넷의 전면화에 맞물려 지식정보가 산업화하면서 거대 글로벌 상업출판사들이 국제적인 학술지들을 장악했다. 이들은 저작권을 독점적으로 보유하고 온라인 데이터베이스를 기반으로 하는 학술자료 서비스 비용을 매년 크게 높였다. 학자들은 학술정보를 생산하지만 가장 많이 소비하는 집단이어서 학문 발전에도 장애가 됐다. 지식을 인류 공동의 재산으로 규정한 ‘2002년 부다페스트 선언’으로 시작된 국제 OA 운동은 이에 대한 대책이었다.

 

 


OA 운동은 명분상 큰 흐름을 탔지만, 국제적으로 여전히 논쟁 중이다. 올 초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인 빌 게이츠가 설립한 세계 최대 민간재단인 ‘빌&멜린다 게이츠 재단’은 재단 지원을 받아 생산된 학술논문을 모두 무료로 공개하도록 했다. 이에 대해 대표적 유료 학술지인 ‘네이처’는 “그렇다면 게이츠 재단의 논문은 싣지 않겠다”고 반발해 갈등을 빚고 있다. OA 운동과 기존 ‘국제학술지 권력’의 충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다. 여전히 학자들은 소속기관이나 국가에서 논문평가의 잣대로 활용하는 과학기술논문인용색인(SCI)급 국제학술지를 선호하기 때문에 글로벌 출판사에 저작권을 넘겨준다. 대표적인 인용색인 ‘Web of Science’의 등재저널 중 순수 OA 저널은 지난해 기준 13%에 불과하다. OA 국제운동은 각국이 분담금을 내고 학술지 전체를 OA 저널로 전환하는 ‘OA 2020’을 2020년까지 성사시킨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국내 오픈 액세스… 어디까지 와 있나

2015년 기준으로 학술정보서비스의 국내 시장은 약 2000억 원 규모로, 이 중 90% 이상을 톰슨로이터 같은 해외 거대기업이 차지한다. 국내 대학들의 실제 큰 부담은 해외학술지 구독료의 상승이다. 국립대학만 보았을 때 해외 연속간행물 및 전자저널 구독료는 2009년 356억 원에서 2014년 536억 원으로 뛰었다.

국내 학자들이 논문을 낼 때 상당수는 공공기금이나 대학으로부터 지원을 받는다. 지난 10년간 해외학술지에 실린 국내 학술논문의 70%, SCI급 학술지의 경우 60%가 국내의 공적 지원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지만, 이를 국내에서 보려면 돈을 내야 한다. 세금이 지원된 논문을 국민이 유료로 본다면 이중지불인 셈이다.

국내 학술지로 오면 좀 복잡하다. 국제 학술정보 시장은 거대 상업출판사들이 독점적 저작권을 갖고 학술지의 디지털화부터 판매까지 담당한다. 하지만 규모가 작은 국내에 이런 출판사는 없다. 우리는 학회 중심으로 논문이 등재되고 출판까지 한다. 학회가 영세하다 보니, 논문 데이터베이스 플랫폼을 갖춘 DB 사업자가 학회들의 논문을 모아 단순 유통만 한다. 저작권 문제도 누구에게 속하는지 명확하지 않다. 학술생태계 자체가 외국과 한국이 다르니 OA 운동도 차이가 난다.

국내 OA 운동은 2012년 한국연구재단이 한국학술지인용색인(KCI)을 통해 일부 학술논문을 무료로 제공하면서 시작됐다. 그 이외에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과총), 국립중앙도서관 등 공공기관이 OA 운동을 선도하고 있다. 국내 학술논문이 해외에서 더 많이 읽히고 인용되도록 온라인 접근성을 강화하기 위해 무료공개돼야 한다는 논리다. 예컨대 한국연구재단은 ‘온라인 접근성’을 평가 항목에 넣어 학술지 지원에 가산점을 주는 방식으로 OA를 유도한다. 하지만 일부 학자들은 정부의 학술지원이 학자의 논문 저작권을 좌우할 수 없다는 이유로, 민간 학술서비스 업체들은 정부의 과도한 개입이 외국에 학술주권을 넘겨줄 우려가 있다며 반대하고 있다.

김규환 전주대 문헌정보학과 교수는 “국제적인 OA 운동의 흐름이 있지만 지금까지 형성된 한국의 학술생태계를 무시할 순 없다”며 “학회와 연구자, 민간과 공공기관이 ‘윈-윈’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는 방향으로 OA 운동이 진전돼야 한다”고 말했다. 일반인까지 자유롭게 학술논문을 보기 위해서는 아직 적지 않은 공감대 형성을 위한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엄주엽 선임기자 ejyeob@munhwa.com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