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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 교수, 공부의 틀 '문사철' 깨야 자신과 사회 변화시킨다

박현욱기자 입력 2015.06.09 20:55 수정 2015.06.09 20:55 댓글 0

'마지막 강의, 담론' 강연"문학·역사·철학은 작은 그릇.. 논리적이지만 세상 담지는 못해완고한 사고 깨는 것이 곧 공부""변방에서도 자격지심 버리고 변화의 길 떠나는 자 흥할 것"

 

 

"문학·역사·철학을 일컫는 이른바 문사철(文史哲)에 갇힌 공부에서 이제 벗어나야 합니다. 나 자신과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 인식의 틀을 깨는 공부가 필요합니다."

 

 

신영복(74·사진) 성공회대 석좌교수는 최근 경기 수원 장안구 경기교육청에서 열린 '마지막 강의, 담론' 강연에서 보다 유연한 사고가 변화와 창조를 이끈다며 평생 공부를 위한 방법론을 소개했다. '담론'은 26년 동안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를 지낸 그가 지난해 말 대학 강단을 떠나면서 그간의 강의 내용을 정리한 저서다.

 

 

 

그는 '문사철'을 작은 그릇에 비유했다. 문사철이 논리적이지만 서술자의 주관적 기준과 추상화로 세상을 온당하게 담지 못한다는 것. 역사가가 서술한 역사만 사실이 되고 철학자는 언어와 개념으로 사고를 가둬놓기 때문이다. 신 교수는 "우리는 문사철에만 과도하게 갇혀 있다"며 "완고한 사고의 틀을 '망치로 깨는 것'이 곧 공부"라고 강조했다.

 

 

 

복잡한 문제에서 근본적 원인이 무엇인가를 짚어내는 추상력과 작은 문제를 보면서 현상 전체를 읽어내는 상상력을 조화롭게 키우는 것이 신 교수가 주장하는 공부의 목표다. 그는 "생각의 틀을 유연하게 만들어 세계의 변화를 읽고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드는 일이 진정한 공부"라고 말했다.

 

 

신 교수는 한국 현대사를 몸소 부대낀 지성으로 꼽힌다. 육군사관학교에서 경제학 강사를 맡았던 지난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무려 20년을 복역한 후 1988년 특별가석방으로 출소했다. 그 이듬해부터 성공회대 강단에 섰다.

 

 

영어(囹圄)의 몸으로 겪었던 경험과 성찰이 간간이 소개됐다. "항상 교도소 아침 기상 한 시간 전 수감자들을 비집고 일어나 차디찬 벽에 기대어 앉아 '찬 벽 명상'을 했지요. 머리가 맑아지면서 과거 만났던 수많은 사람들에 대한 기억과 사색이 머릿속에서 줄지어 섭니다. 여기서 '나는 혼자가 아닌 관계'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공부를 '머리에서 출발해 가슴까지, 발까지의 여행'이라고 규정했다. 패권·지배와 배타적인 자기 존재 강화가 후기 근대사회를 관통하는 논리라면 현재와 미래는 존중과 공존의 논리이며 이 같은 흐름을 체감하고 배워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는 "목수 출신 수감자가 집을 그리는데 주춧돌부터 먼저 그리는 것을 보고 놀란 적이 있다"며 "평소 일하는 순서대로 그린 것일 뿐인데 지붕부터 그리는 보통 사람들에게는 달리 보였던 것"이라고 말했다.

 

 

신 교수는 유럽의 관용 사상 '톨레랑스'가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게 동화돼오기를 은근히 기다리는 또 다른 패권논리라고 지적했다. 미래에는 상대의 차이를 인정하고 장점을 배우기 위해 변화하는 유목주의(노마디즘)으로 가야 한다는 주장이다.

 

 

조화롭게 함께 사는 방법을 큰 열매를 따 먹지 않고 놓아둔다는 석과불식(碩果不食)에도 비유했다. 그는 "가지 끝에 마지막으로 남은 열매는 절망을 희망으로 바꿀 존재이기 때문에 그 씨를 먹어서는 안 된다는 지혜"라며 "나무의 완성은 낙락장송이 아니라 숲"이라고 덧붙였다.

자부심을 갖는 것도 공부다.

 

 

그는 "몽골제국과 미국의 탄생 등의 역사에서 보듯 변방이 곧 창조 공간"이라며 "중심에 있지 못한다는 자격지심을 버리고 변화의 길을 떠나는 자가 흥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큰 고통도 작은 기쁨으로 이겨낼 수 있다"며 "평생 공부를 하면서 작은 기쁨을 느끼는 데 인색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박현욱기자 hwpark@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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