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에 서점 낸 최인아 전 제일기획 부사장 "광고도 책도 생각을 파는 일"

140명이 추천한 1500권 주제별로 비치…강의·토론·교육 접목해 책방의 기능 확장

  • 김슬기 기자
  • 입력 : 2016.08.28 17: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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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스가 빼곡한 서울 강남 한복판에 독특한 서점이 문을 열었다. 선정릉이 창밖으로 보이는 붉은 벽돌 건물 4층에 자리 잡은 '최인아 책방'이다. 주인장은 '광고계의 살아 있는 전설' 최인아 전 제일기획 부사장(55)이다.

4층에 들어선 것도 놀랍지만, 책방에 들어서면 한 번 더 놀라게 된다. 복층의 공간을 단층으로 튼 높은 천장 아래 샹들리에가 걸렸고, 그랜드피아노도 놓였다. 고풍스러운 저택의 서가에 들어선 것 같다. '그녀는 프로다. 프로는 아름답다' 등의 명카피를 만든 그에게도 요즘 같은 시대에 서점을 여는 건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이다. 최 대표는 "29년 광고쟁이 시절을 버티게 해준 책의 힘을 믿기에 서점을 여는 무모한 도전에 나설 수 있었다"고 말했다. 책방의 개성은 결국 어떤 책을 파느냐에 달렸다. 그는 사람들이 고민이나 도전과 마주할 때 책을 찾게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서가의 3분의 1은 지인 140명에게 추천을 받은 책만으로 채웠다. '마흔이 되고 고민이 많아졌다면' '괜찮은 삶에 대한 고민이 있다면' 등의 12가지 주제별 서가가 독자들을 맞는 것이다. 그러느라 5000여 권 책을 준비하는 데만 한 달 반의 시간이 걸렸다. 광고업계 동료 정치헌과 함께 운영하는 이 서점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다. "최인아, 정치헌의 선후배, 친구들이 추천합니다."

주제별 서가에 꽂힌 책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신영복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아툴 가완디의 '어떻게 죽을 것인가' 등 장르나 분야를 가리지 않는다. 서점을 찾은 이들은 "새 책이나 베스트셀러는 없나요"라고 묻기도 한다. 그럼에도 '최인아 책방'은 취향과 개성을 파는 게 목표다. "일주일 손님을 맞아보니 반응이 좋고 재미있어 합니다. 추천을 받은 책 1500권에 카드를 일일이 넣어뒀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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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서울 강남 한복판에 위치한 '최인아 책방'.
알랭 드 보통의 '인생학교' 서울 분교에서 그는 '혼자 있는 시간을 잘 보내는 법'을 주제로 강의를 하고 있다. 그래서 같은 주제로 책도 직접 골랐다. 소로의 '월든', 노명우의 '혼자 산다는 것에 대하여', '와일드' 등이 자신이 직접 추천한 책이다. 시작부터 서점으로 돈을 벌겠다는 포부는 없었다. 두 번째 커리어를 시작하면서 명분도 있고 재미도 있는 일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광고는 물건을 팔고 트렌드를 파는 일이 아니라 생각을 파는 일이었고, 제 직업은 늘 생각하는 일이었다"며 "생각의 힘으로 제품을 알리는 해법을 찾는 게 광고였으니, 책방도 동일한 일이다. 그동안 기획력 창의력을 광고에만 썼는데, 책방에서 여러 시도를 해볼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책을 파는 데서 그치지 않고 강의 교육 토론 등으로 책방의 기능을 확장해보는 게 장기적인 목표다. "인근 주민들이 '반갑다'를 넘어서 '고맙다'는 말까지 해줬어요. 고마운 분들을 실망시키지 않고, 오래 버티는 게 목표입니다." '최인아 책방'은 오전 11시부터 밤 10시까지 문을 연다.

[김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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