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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유토피아의 귀환
2. 모든 국민에게 현금을 무상으로 지급해야 하는 이유
3. 빈곤의 종말
4. 닉슨 대통령에 얽힌 별난 이야기와 기본소득 법안
5. 새 시대를 위한 새 수치
6. 주당 15시간 노동
7. 어째서 은행가에게는 대가를 치르게 하지 않는가?
8. 기계에 맞서는 경주
9. 풍요의 땅 너머
10. 아이디어는 어떻게 세상을 바꾸는가?

에필로그
감사의 글
미주
찾아보기

 

 

 

 

<출판사 서평>

 

 

주 15시간 노동, 보편적 기본소득, 국경 없는 세계… 이것은 판타지가 아니다!
새롭게 떠오르는 유럽의 젊은 사상가가 설계한 지금 실현가능한 미래지도.
워싱턴포스트ㆍ가디언ㆍ선데이타임스 특집 기사, BBC 특별 방송.
스티븐 핑커, 지그문트 바우만 등 석학들의 극찬.
네덜란드 네티즌들의 열광적 지지를 받고 출간된 화제작.
영문판 자비 출판 즉시 아마존 베스트셀러. 전 세계 17개국 출간 확정.

1
과거 사람들이 그토록 꿈꾸던 모든 것은 이미 실현되었다.
그러나 당신이 여전히 행복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유토피아가 맞다. 적어도 이상향을 꿈꾸던 전통적인 철학자들에게는 말이다. 200년 전에는 94%의 인구가 극빈자였고, 1980년대에는 44%, 현재는 10%만이 극빈자로 구분된다. 중세 이탈리아의 도시국가에서는 군주마저도 가난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디에서건 배고팠고, 그래서 굶어 죽었으며, 열악한 위생과 안전에 대한 불확실과 질병의 공포 속에서 비참하게 살았다. 하지만 수많은 발명과 발견이 이루어진 산업혁명과 함께 1800년대에 이탈리아의 경제 규모는 중세보다 15배 커졌고, 전 세계적으로는 250배나 성장했다.

 


네덜란드의 역사가이자 저널리스트, 2013년 베스트 논픽션상 수상, 유럽 언론인상 2회 노미네이트, 새롭게 떠오르는 서른 살의 젊은 사상가 뤼트허르 브레흐만이 설계한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긍정적인 미래지도를 담은《리얼리스트를 위한 유토피아 플랜(원제: Utopia for Realists)》이 출간되었다. 어째서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부유해졌는데도 점점 더 열심히 일해야 하는지, 어째서 빈곤을 완전히 퇴치하고도 남을 만큼 풍족한데도 수백만 명이 여전히 빈곤에 허덕이는지, 과거 사람들이 그토록 꿈꾸던 모든 것이 풍요로운 세상에 살고 있지만 전혀 행복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지를 역사학과 진화심리학, 경제학과 사회심리학, 문학 등의 경계를 넘나들며 파헤친 문제작이다. 미국, 영국, 스웨덴, 프랑스, 일본 등 17개국에 판권이 계약되었으며, 파리, 몬트리올, 뉴욕, 더블린, 런던 등에서 강연을 이어가고 있는 이 놀라운 프로젝트는 스티븐 핑커(“케케묵은 좌우파의 상투적 주장에 지쳤다면 이 책이 펼치는 위대한 논쟁을 즐겨보라”), 지그문트 바우만(“현대 사회를 치유하는 데 기여하고 싶은 사람들의 필독서”) 등 석학들의 극찬을 받았다. 토마스 피케티 이후, 현대의 사회적 구조와 앞으로 펼쳐질 미래를 방대한 연구를 통해 밝혀냈으며, 시대적 비판을 참신하고 독창적으로 보여주는 저서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20세기 초 헨리 포드가 생산성 극대화를 위해 실시한 일련의 실험, 캐나다의 한 도시에서 가난을 완전히 근절시킨 일, 수백만 명의 미국인들을 위해 기본소득을 도입하려 했던 리처드 닉슨 이야기 등 생생한 사례를 접목해 기본소득과 근무시간 축소, 빈곤 퇴치에 관한 유토피아적 사고를 피력하고, 인간에게서 일자리를 빼앗아가는 로봇을 둘러싼 논쟁에 대한 강력한 해법을 제시한다. 노예제도의 종말에서부터 민주주의의 시작까지, 모든 이정표는 한때 유토피아적 판타지로 여겨졌다. 그러나 보편적 기본소득과 주당 15시간 노동, 국경 없는 세계 같은 새로운 관념들은 우리의 삶에서 현실이 될 수 있다. “유토피아가 없다면 우리는 길을 잃고 어디로 가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한다. 현재가 엉망이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이기 때문이다. 영국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은… 이렇게 주장했다. ‘우리가 원해야 하는 것은 완성된 유토피아가 아니라, 상상과 희망이 살아 있고 꿈틀거리는 세상이다.’”(33쪽)

2
근로시간을 줄이면 사람들은 게을러질까?

대공황이 한창 기승을 부리던 1930년 여름, 영국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재앙의 벼랑 끝에 서 있던 도시 마드리드에서 과감하게도 직관에 거스르는 예측을 발표했다. 2030년이면 인류가 최대 과제, 즉 무한한 여가 시간을 보내야 하는 문제에 직면하리라 선언한 것이다. 그러면서 정치인들이 “파멸을 초래하는 실수”(예를 들어 경제 위기가 진행되는 동안 긴축 재정을 펼치는 등)를 저지르지 않는다면 한 세기 안에 서구의 생활수준은 최소한 1930년대의 네 배로 높아지리라 예측하고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2030년이면 우리는 주당 15시간만 일하게 될 것이다.”

 

 


워싱턴포스트ㆍ가디언ㆍ선데이타임스 특집 기사, BBC 특별 방송 등 전 세계 언론이 집중 조명한 이 책에서 뤼트허르 브레흐만은 왜 인간의 노동 시간은 늘어만 가는데 부의 증가 속도는 1980년대 이전보다 못한 것인지, 왜 연봉과 GDP 기준에 그렇게 심하게 집착해야 하는지에 대해 의문을 가지라고 조언하고,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청사진을 보여준다. 저자가 청사진으로 제시하는 유토피아는, 인간으로서 인간답게 존중받을 수 있는 최소한의 의식주, 합리적인 임금, 자신의 인생을 위한 진정한 기회의 발견 정도의 소박한 것들이다. 또한 기계와 스마트폰 앱, 알고리즘이나 트렌드세터들에 의해 역사가 결정되는 것이 절대 아니라고 역설한다.

 

 


인간은 상당한 양의 여가를 누리지 않으면 살 수 없다. 근로시간이 줄어들면 가족, 공동체 생활, 레크리에이션처럼 자신에게 중요한 다른 활동을 할 여유가 생긴다. 주당 근로시간이 짧은 국가에 자원봉사자와 사회자본이 많은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그렇다고 저자가 주당 근로시간을 20시간이나 30시간으로 갑자기 줄이자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근로시간 단축을 정치적 이상으로 복귀시켜야 함을 지적하고, 교육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더욱 유연한 정년 제도를 발달시키고, 남성의 육아휴직과 보육을 뒷받침하는 방향으로 주당 근로시간을 단계적으로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생동감 넘치는 일화들과 성공 스토리를 통해 철저하게 검증해낸다.

 


3
일정한 금액을 보장받으면 사람들은 일을 하지 않을까?

그리 멀지 않은 과거만 해도 민주주의는 훌륭한 유토피아처럼 보였다. 철학자 플라톤부터 정치가 에드먼드 버크까지, 수많은 위대한 지성인들이 민주주의는 헛되고(대중은 너무 어리석어 민주주의를 제대로 다룰 수 없다), 위험하고(대다수의 규칙이 불을 가지고 노는 것과 비슷하다), 사악하다고(공공 이익은 일부 교활한 대중의 이익 때문에 이내 부패한다) 경고했다. 이러한 주장을 기본소득에 반대하는 주장에 견주어보면, 기본소득은 정부가 지불할 수 없으므로 헛되고, 수혜자들이 일을 그만둘 것이므로 위험하고, 결국 소수가 다수를 부양하려고 더욱 열심히 일해야 하므로 사악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잠시 저자의 생각을 살펴보자.


헛될까? 경제학자 맷 브뤼니흐는 불과 1,750억 달러면 미국에서 가난을 근절할 수 있다고 계산했다. 이 금액은 미국이 소비하는 군사비의 약 4분의 1이다. 하버드대학교가 실시한 연구에서는 미국이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벌인 전쟁에 자그마치 4~6조 달러를 썼다고 추산했다.(53쪽)

 


위험할까? 기본소득이 부여하는 특권 중 하나는 빈곤층을 복지의 덫에서 해방시켜 스스로 발전하고 성장할 수 있는 진정한 기회를 잡아 유급 직업을 구하도록 격려할 수 있는 것이다. 기본소득은 조건 없이 받을 뿐 아니라 유급 직업을 구하더라도 빼앗기거나 줄어들지 않으므로 빈곤층의 경제 상황은 향상된다.(54쪽)

 


사악할까? 통제와 굴욕이라는 사악한 괴물에게 빈곤층을 던지는 것은 오히려 복지제도이다. 관리들은 페이스북을 사용해 공공부조 수혜자를 주시하면서 지원금을 현명하게 쓰는지 감시한다.(55쪽)

 


기본소득 개념에 급작스럽게 호응이 쏟아진 계기는 2016년 6월 5일 스위스에 실시된 국민투표였다. 물론 상당히 많은 사람이 반대해서 제안은 부결되었다. 하지만 1959년만 해도 여성에게 투표권을 주자는 유토피아적 제안에 반대한 남성이 훨씬 많았으나 1971년 다시 투표를 실시했을 때는 대부분의 남성이 찬성표를 던졌다. 기본소득 운동을 촉발시켜 미스터 기본소득이라 불리는 저자는 “스위스 국민투표는 기본소득에 관한 토론의 결말이 아니라 시작”(268쪽)이라고 강조한다.

 


이 밖에도 뤼트허르 브레흐만은 부의 불평등을 해소하고 빈곤에 허덕이는 사람들을 구제하는 방법으로 국경 없는 세상을 제안한다. 100년 전만 해도 세계는 개방되어 있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스파이를 들어오지 못하게 막고, 전쟁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사람은 국내에 가둘 목적으로 국경이 봉쇄된 사실을 언급하며 국경을 개방했을 때 발생하는 어마어마한 효과를 설득력 있게 전달한다. 평이하지만 강하고 날카롭게 특유의 비판의식을 드러내고, 적재적소의 풍자와 유머, 시와 문학적 표현을 써가며 우리가 바라는 세상을 현실에서 만들 수 있는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펼쳐 보이는 이 책은 좌우의 분열을 넘어 상상과 희망이 살아 있고 꿈틀거리는 세상으로 우리를 이끌어주는 최고의 안내서다.

 

 

 

책속으로

아일랜드 작가 오스카 와일드에 따르면, 인간은 풍요의 땅에 도달하자마자 다시 한 번 머나먼 수평선에 시선을 고정하고 닻을 끌어 올려 항해를 떠나야 한다. 와일드는 “진보는 유토피아를 깨달아가는 과정이다”라고 썼다. 하지만 저 멀리 수평선은 텅 비었고 풍요의 땅은 안개에 싸여 있다. 우리는 이 풍요롭고 안전하고 건강한 장소에 의미를 부여해야 하는 역사적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데도 오히려 유토피아를 매장시켰다. 여태껏 누려온 것보다 나은 세계를 상상할 수 없으므로 지금까지 꾸어온 꿈을 대체할 새 꿈이 없다. 실제로 부유한 국가의 국민은 대부분 자녀 세대가 부모 세대보다 잘 살지 못하리라 확신한다.(23쪽)

 

 


세상은 악순환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과거 어느 때보다 많은 청년이 정신과 진료를 받고, 경력 초기에 몸과 마음이 탈진하고, 항우울제를 상용한다. 사회는 실업과 불만, 우울증 같은 집단적 문제가 일어나는 것은 개인 탓이라고 거듭 비난한다. 성공이 선택이라면 실패도 선택이다. 일자리를 잃었는가? 더욱 열심히 일했어야 했다. 몸이 아픈가? 건강한 생활방식을 실천하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불행한가? 약을 복용하라.(30쪽)

 


하지만 오해하지 말기를 바란다. 자본주의가 풍요의 땅으로 들어가는 문을 연 것은 확실하지만 자본주의만으로는 풍요의 땅을 유지할 수 없다. 진보는 경제 번영과 동의어로 여겨지지만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는 삶의 질을 높이는 다른 방법들을 찾아야 하는 난제가 있다. 서구의 청년은 무정치적 테크노크라시 시대에서 대부분 성년을 맞이하고 있지만 다시 정치로 돌아가 새 유토피아아를 찾아야 한다.(31쪽)

 

 


이제 유토피아적 사고로 돌아갈 때다. 우리에게는 새 북극성이 필요하고, 지도에 없는 머나먼 대륙인 유토피아를 포함한 새 세계지도가 필요하다. 그렇다고 해서 유토피아 광신자들이 신권정치나 5년 계획 등을 도구처럼 휘두르며 억지로 떠맡기는 엄격한 청사진이 있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그들은 열렬한 꿈에 우리를 종속시킬 뿐이다. 유토피아utopia는 “좋은 장소”와 “없는 장소”를 동시에 가리킨다. 이제 상상력을 자극하는 대안적 관점이 필요하다. 이 관점은 복수이므로 서로 충돌하는 유토피아 개념들은 결국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생명선이다.(32쪽)

 

 


이상이 실현되는 과정을 지켜보면 나는 늘 가슴이 설렌다. 프로이센 정치인 오토 폰 비스마르크Otto von Bismarck는 “정치는 가능성의 예술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워싱턴과 웨스트민스터 등에서 나오는 뉴스를 추적해보면 확실히 그런 것 같다. 하지만 이보다 훨씬 중요한 형태의 정치가 존재한다. 이것은 대정치Politics로서 규칙이 아니라 혁명에 관한 정치이다. 가능성의 예술이 아니라 불가능한 것을 불가피하게 만드는 예술에 관한 정치이다.(25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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