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문대 포기하고 이름도 낯선 '한국전통문화대학' 입학한 이유
고3이던 2010년 대학입시에서 서울의 명문 사립대 경영학과에 들어갈 수 있었다. 부모님도 학교 선생님 대다수도 그러길 바랐다. ‘왜 탄탄대로를 거부하고 가시밭길을 가려 하느냐’는 듯한 안타까움을 내비치면서. 생소한 지방대학을 가겠다고 우기니 그럴 법도 했다. 그런 반응을 예상했고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세상이 돌아가는 대로만 무난히 따라가면 되는 길을 걷고 싶지 않았다. 내가 정말 가고 싶은, 힘들어도 꼭 가야 하는 길을 찾아 발걸음을 뗐다. 서울대 대학원(도시설계학)에 재학 중인 이결(26)씨 얘기다. 우리나라가 문화강국으로 도약하는 데 기단석(건축물이나 비석의 기초가 되는 돌)이 되고 싶다는 그를 지난달 22일 만났다.
◆숭례문 방화 사건 보며 진로 변경
이씨의 중학교 시절 꿈은 외교관이었다. 당시는 일제강점기 등 우리나라가 약소국이었을 때 밀반출된 문화재를 둘러싼 사회적 이슈가 뜨거웠다. “‘지금은 우리 국력이 약해서 그렇지 너희(강대국)가 빼앗아간 우리 문화유산들 다 가져오면 충분히 너희보다 잘 보존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그런 문화재를 찾아오는 외교관이 되고 싶었어요.”
하지만 고교생이 된 2008년 2월 국보 1호 숭례문이 불에 타는 장면을 보고 그런 믿음이 와르르 무너졌다. ‘나라 밖에 있는 문화재를 찾아오면 뭐하나, 안에 있는 문화재도 보존하지 못하는 판에’라는 생각과 함께 진로를 틀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문화재 보존 분야로 나가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당장 고교생 신분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뭔지 알아보다 ‘궁궐산책’이란 문화재 답사 동호회에 들어가 지역 문화재 관리 실태 등도 살펴보고, 고교 졸업 이후에는 문화재청이 후원하는 ‘궁궐 길라잡이’가 돼 일요일마다 덕수궁을 찾는 시민과 외국인 관광객을 상대로 궁궐 해설을 했습니다.”
어려서부터 건강을 괴롭히던 기관지염을 고치려고 초등 4∼6학년 동안 체류했던 뉴질랜드에서의 경험도 이씨의 ‘문화재 사랑’에 영향을 미쳤다. “한국인이 적은 지역이어서 그런지 아이들이 저를 중국인이나 일본인으로 대하고 한국 자체를 모르는 분위기였어요.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고 나라별로 명절 보내는 방법을 알아보는 학교 행사 때 한복도 입고 몇 명 안 되는 한국 애들 모아 공연을 하면서 우리 문화를 알리기도 했어요.”
◆주위의 우려와 편견에 정면으로 맞서다
교사인 부모는 공부도 잘하고 바르게 커주는 딸에 대한 기대가 컸다. 여느 학부모처럼 딸이 소위 ‘좋은 대학’을 나와 번듯하고 안정된 직장에 들어가거나 교사가 되길 원했다. 그런데 딸이 유명 사립대 합격증을 포기하고 느닷없이 이름도 낯선 한국전통문화대학에 가겠다니 어안이 벙벙했다. 이 대학은 우리 문화유산을 과학적·체계적으로 보존하고 전통문화를 계승·발전시킬 전문인력을 양성하려고 문화재청이 2000년 충남 부여에 설립한 4년제 국립 특수대학이다.
“완강히 반대하셨어요. 문화재 분야가 일은 힘든데 대우는 그저 그렇다는 생각으로 자식이 고생하지 않았으면 한 거지요. 심지어 고교 역사 선생님까지 극구 만류하실 정도였으니까. 선생님은 ‘네가 얼마나 문화재를 각별하게 생각하는지 알지만 그쪽은 정부에서도 홀대하고 처우가 열악한 분야다’며 말리셨습니다.”
별수 없이 난생 처음 외박까지 감행하며 부모님 몰래 부여에 내려가 시험을 쳤는데 덜컥 합격했다. 그러자 부모의 회유가 시작됐다. 교육대학이나 사범대학 어디를 가든 간섭하지 않고 전폭 지원하겠다는 식으로. 이에 이씨는 “저랑 한번 가서 학교를 둘러보고 교수님들도 만나 본 뒤 판단하시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다. “함께 다녀오신 뒤 ‘정말로 가고 싶으면 해봐라. 너의 인생이니까 너 스스로 감당할 일’이라고 하셨어요. 두분 입장에선 자포자기 심정으로 한 말일텐데 저에겐 엄청난 지지로 들렸습니다.”
다른 선생님들은 반대할 때 “너는 굉장히 진취적이니 길을 잘못 들어도 어떻게든 잘 빠져나올 것이다. 주변의 말에 휘둘리기보다 너 자신을 믿고 가라”던 담임의 응원도 큰 힘이 됐다.
◆꿈을 향해 가는 다양한 가능성 열어놓길
고교생 때도 국내외 어려운 이웃을 돕는 봉사활동을 열심히 했던 그는 대학 가서도 바쁜 나날을 보냈다. 학과 공부 외에도 문화재 홍보·관리 활동, 탈북 청소년 멘토링, 국제행사 외국인 통역 자원봉사 등에 적극 참여했다. 문화재관리 전공자가 도시설계를 공부하러 대학원에 진학한 이유가 궁금했다.
“예전에는 ‘꼭 문화재청장이 돼야겠다’는 막연하고 허황된 꿈을 꿨어요. 지금은 문화재 관리가 결국 제도의 문제임을 깨닫고 이를 보완하려면 뭘 해야 하고 어떤 공부가 필요한지 배워가고 있습니다. 문화유산은 하나의 개체가 아니라 주변 도시 조직과 긴밀하게 연관된 만큼 제대로 보존하면서 지역사회와 공존하는 모델을 설계하고 싶어요.” 이씨는 우리나라가 ‘문화강국’이 되는 날까지 눈에 띄지 않지만 돌담 가장 아래에서 땅이 아무리 물러져도 지탱해 주는 기단석 역할을 하길 원한다.
역사와 문화에 관심이 많은 청소년에게 해주고픈 당부를 부탁했다. “꿈이 생겨도 실현해 가는 길은 다양한 것 같아요. 그러니 벌써부터 ‘꼭 이 길로만 갈 거야’라고 고집하기보다 여러 가능성을 열어두면 좋겠어요. 그러려면 자기가 하기 싫은 공부도 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꿈을 향해 선택할 수 있는 길이 좁아지니까요. 또 틈틈이 역사·문화와 관련된 현장을 자주 가보길 권합니다. 독서만으론 불가능한 경험을 하는 유익함이 많거든요.”
이강은 기자 kel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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