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1년 38살의 나이에, 생일날이기도 한 2월의 마지막 날에, 미셀 드 몽테뉴는 법원의 공적 업무에 넌더리

 

가 나서 고향의 품으로 은퇴했다. 이제 그는 이곳에서 자신에게 허락한 절반이상 남은 삶을 조용히 모든 근

 

심을 털어내고 살아가리라. 운명이 허락한다면 이 안식처, 조상이 남긴 이 즐거운 은거지에서 삶을 마치리

 

라. 자유와 평온과 여유로움에 이 은거지를 바치리라.

 

 

이 구절은 자신이 은거한 중세의 성탑 안에 미쉘 드 몽테뉴가 은퇴를 자축하며 써 둔 글이다.

 

 

 

그는 법학을 공부했습니다. 그래서 보르도 고등법원에서 참사관으로 13년간 근무하게 되었지요. 그러나 그는 법과 정치에 신물이 났고. 원래 그것을 좋아 하지도 않았습니다.

 

 

 

우연한 슬픈 사건이 그를 행동하게 했습니다. 절친한 친구 보에티가 32살의 나이에 장질환으로 갑자기 죽어 버린 것입니다. 친구의 죽음은 몽테뉴를 더욱 우울하게 했습니다. 그는 결국 38살에 사표를 내고 옛집으로 은둔했습니다.

 

 

 

거기서 그는 자신에 대한 탐구자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스스로의 말을 빌리면, 몽테뉴는 덤벙대고 수다스럽고 지극히 사교적이고 외향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집중하지 못하고 지루한 것을 견디지 못했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친구 보에티의 요절이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했을 것입니다.

 

 

이를 계기로 그는 갑자기 철학자가 되었으며 평생을 자신 내면의 탐구에 열을 올리게 됩니다.

 

 

한 번도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최초의 책을 쓰고 싶었던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아무 것도 쓸 것이 없었다. 나는 공허한 존재였다. 그래서 나는 나 자신을 주제로 글을 쓰기로 결정했다.... 나는 다른 문제들 보다 나 자신을 연구했다. 이것이 내 형이상학이고 내 물리학이다"

 

 

 

결국 그동안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라는 과제는 몽테뉴에게는 '너의 자서전을 써라' 라는 말로 이해되었고 그 결과 탄생한 것이 바로 '수상록'입니다. 수상록의 원제목인 essai는 프랑스어로 '시도(試圖)'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그는 이 수상록을 통해 자신을 찾아가는 시도를 한 셈이죠. 수상록이 무려 1200 쪽에 달하는 이유도 자신에 대한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계속 수정하고 보완해 갔기 때문입니다. 그는 그 속에서 이렇게 말한다.

 

 

"지금 우리가 진실이라고 믿는 것은 정말로 진실된 것이 아니다.

다른 사람들이 믿고 인정하도록 만든 것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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