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러니하지만,
고시의 탈을 벗어버리니까
일상 생활속에서의 소소한 행복이 살짝 보이는 것 같다.
 
내가 행복하다고 혹은 행복해 질 거라고 믿고
했던 사법고시인데... ^^;
 
그만큼 부담감이 컸던걸까.
 
주변 사람들은 내게 참 많은 말들을 한다.
 
친구들은 "넌 아직 젊어, 그러니까 좀 더 해봐." 라고 하고,
선배들도 몇몇 사람들은 계속 해보라고 권한다.
 
물론, 개중에는 "그래, 빨리 손털고 나온나."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좀 더 해보라는 분들은 내게 뼈아픈 말을 던지기도 한다.
 
너는 포기하는 놈이라고, 패배자라고.
비겁한 놈이라고.
 
 
 
 
맞다.
 
나는 비겁한놈이고, 꿈을 포기한 놈이고, 꿈에 패배한 놈이 맞다.
어떠한 변명을 하고 포장을 해도, 그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좀 더 솔직해 지고 싶었다.
 
언제까지 가식적으로 "하하" 웃으면서, "잘 될거야."라는
자기 최면을 걸어가며 힘든 이 길을 가야할 지 감이 안왔다.
 
그리고, 이런 말을 하면 장수생 수험생들에게는 참 부끄러운
말이지만, 시험기간이 길어지니까 지치기도 했다.
 
어쩌면 내가 지친게 가장 큰 이유일 것도 같다.
 
한 친구는 나한테 그랬다.
"너는 남이 다 사시 포기해도 포기 안할 줄 알았다." 라고.
 
한때는 나도 열의에 넘쳐서, 내가 바라는 미래를 위해서
열심히 달려들었다.
 
그런데, 그게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희석됐다.
 
시험기간이 길어지면서, 내가 꿈꾸던 목표,
자아실현이니 정의사회구현이니, 합격해서 잘먹고 잘살자느니
하는 꿈들이 사라지고, 그 빈 자리엔 맹목적인 시험합격 이라는
목표만이 남아버렸다.
 
목적과 수단이 전도된 것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나는 내가 여태 쌓아왔던
가치관과 세계관, 신념과 희망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고, 혼란스러워졌다.
 
내가 과연 이 길을 걷는 것이 행복한 것일까 라는
의문을 진지하게 갖게 됐다.
 
그리고, 집안 상황도 여의치가 않았다.
 
나는 군 미필이니, 군대문제도 있었고, 군대문제 같은 것들은
미래의 불확실성, 깜깜한 앞길에 대한 불안감이 되어 나를
옥죄어 왔다.
 
나는 분명히 효도하고 싶은 마음도 일면 가지고
시험에 응했는데, 불합격하자 불효자가 된 억울한 느낌을
엄청나게 받았다.
 
부모님이 보내주신 비싼 학원비며
뒷바라지 해주시는 학비들 하며, 내가 휴학으로 날려버린
1년하고도 반의 기간들이 그냥 허공에 붕 떠버렸다.
 
그러자 부모님 얼굴 뵐 낯이 없었다.
 
내가 합격자 발표 직후, 아버지께 전화를 드렸다.
아버지께 "불합입니다."라고 한마디를 했다.
 
아버지는 내가 시험에 떨어졌다고해서
왜 떨어졌냐고 고함을 친 것도, 이유를 물어본 것도 아니었다.
 
그냥 사법시험에 임했던 3년간 수고했다고만 하셨다.
그래서 나는 더더욱 죄송했다.
 
나중에, 직접 아버지를 만나서 이야기를 하다가
"결국 떨어졌습니다. 효도하고 싶었는데, 불효해서 죄송합니다."
라고 말하자,
 
아버지께서 우셨다.
 
아버지께서, 어릴때부터 그렇게 아들을 엄하게 혹독하게
키우신 그 강하고 굳건하던 아버지 당신께서 우셨다.
 
한 평생 울음따윈 안보이실 것 같던 그 강해보이시던 아버지가
눈시울을 붉히며 우셨다.
 
그렇게 우시면서도 그 울음을 아들에게 보이기 싫으셨는지
끝끝내 울음을 참아내시는 그 모습이 더 슬펐다.
 
내가 시험에 떨어져서 슬프거나 화가나서 우신게 아니다.
 
그저, 내가 나 스스로 '불효자'라고 말해서
그래서 아버지께서 슬프셨던 거다.
 
아버지, 어머니, 형 모두 나를 믿었고,
믿는 것 그 것 하나만으로도 끝이었다.
 
모사재인 성사재천이라고, 일은 사람이 하고
결과는 하늘에 맡긴다고 했다.
 
그저 나는 고시에만 충실하고 그 결과는 하늘에 맡긴다는게
부모님과 형의 생각이었다.
 
부모님과 형은, 나에게 열심히 하는 것만 바랬을 뿐,
필연적인 '합격'이라는 결과는 요구하지 않으셨던거다.
 
그런데 내가 아버지께 '불효해서 죄송합니다.'라고 말했으니
말하는 나도 속이 쓰리고 눈이 시큰해지는데
아버지 당신의 심정이 오죽하셨을까.
 
아버지가 그랬다.
 
부모는, 자식들이 꿈을 이루어 가는 것을
지켜보고, 뒷바라지 해주는 것으로 행복을 느끼는 거라고.
 
부모는 그런거라고.
그러니까 더 당당해지라고, 약해지지 말라고.
 
사법시험이든, 아니든, 그 어떤길을 가든
대부분의 부모는 항상 응원한다고 하셨다.
 
나는 여태까지, 부모님들이 내게 사법시험'만'을
강요하는 줄 알았다.
 
오로지 사법시험, 그 것 외에는 모두 가치없는 일이라
여기시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던 거다.
 
자식의 꿈이 바로 부모의 꿈이다.
부모님 당신들은 스스로의 꿈과 편안함을 버리셨다.
 
입고 싶으신 것, 드시고 싶은 것, 보고 싶으신 것
그 모든 걸 인내해가며, 오로지 자식들 하나만을 보고 사는 분이다.
 
아버지, 어머니 연세가 많다고 해서
멋진 옷 안 입고 싶으실까?
 
아버지, 어머니 연세가 많다고 해서
맛있는 것 안 드시고 싶으실까?
 
아버지, 어머니 연세가 많다고 해서
영화나 연극 같은 것들 안 보고 싶으실까?
 
부모님들은, 그런 것들을 하려해도 자식들이
눈에 밟혀서, 자식 생각이 나서 하지 못하신다.
 
부모님, 당신들의 꿈과 행복은 내버려두신채
그 모든 꿈과 행복을 오롯이 아들과 딸들에게
전이시키시는 거다.
 
그래서 아버지는 내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
 
"그러니까, 부모에게 불효한다는 생각을 갖지 마라.
죄스럽다는 생각을 하지마라. 그런 생각을 할 수록
네 자신은 나약해지고 부모는 더더욱 참담해진다."
 
그리고 아버지가 그러셨다.
 
"사법시험이 응답하지 않으면, 또 다른 길이 네게
응답하도록 해라. 부산이 응답하지 않으면,
대한민국이 응답하게 하고, 이 대한민국이 응답하지 않으면
세계가 응답하게 해라.
 
모든 길은 열려있다. 세계 인구 70억명 중에 네가 온전히
설 수 있는 자리는 사법시험 말고도 필연적으로 있다.
 
그러니까, 네가 사법시험을 계속 해나가기 싫다면,
부모를 생각해서 억지로 끌고 나아가지 말고 미련없이
발길을 돌려라.
 
새로운 꿈을 찾아라. 항상 부모는 어떤 꿈이든지
자식이 가진 꿈을, 그 꿈이 이루어 지는 것을 보고 뒷바라지
해주는 것이 최고의 행복이다.
 
그러니까 네가 진정 원하는 것을 해라."
 
그 말을 듣는데, 나도 눈물이 났다.
 
이를 악물고, 혀를 깨물어가며 눈물을 삼켰다.
 
주책없이, 음식점에서 식사하다가 운다고
남들이 수군거릴까봐 참은게 아니다.
 
아버지 앞에서 이렇게 나약한 아들의 모습을 보이기 싫었다.
 
 
 
 
그리고, 나는 그 대화 이후, 확고하게 생각을 정했다.
더 이상은 이 시험에 연연하지 않기로.
 
그리고 새로운 꿈을 찾아 나서기로.
 
물론, 나는 아직도 대학교 법학 강의를 들으러 가면
가슴이 뛴다.
 
두근거리고, 웬지 재미있을 것 같다.
이렇게 가슴이 뛸 때면, "아, 사법시험을 계속 하고 싶다."는
생각이 나도 모르게 들어 화들짝 놀라곤 한다.
 
이렇게, 내 가슴은 아직 뛰지만, 더 이상 잡고 있기에는 버거웁다.
그래서 나는 이 버거운 짐을 내려놓는다.
 
이기적이고 나약할지 몰라도,
마음 외적으로건, 마음 내적으로건
더 이상 힘들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새로운 꿈을 찾고,
또 나는 그 길을 향해 천천히 걸어가겠지.
 
나는, 사법시험을 포기한 이후로-
 
이제는 강박증에 시달리지 않고,
이제는 신림동 원룸에서 외로움에 미쳐 말도 통하지 않는
벽과 대화하지 않아도 되고,
이제는 마음에 굴레를 씌운 것 마냥 무겁디 무거운
지원림저나 형법요론, 정회철저를 보지 않아도 된다.
 
이것들이 가져다 주는 의미가 참, 미묘하다.
 
 
 
 
비록, 나는 사법시험을 버리고 떠나지만
내 주변에는 아직도 사법시험에 계속해서 도전하는 사람들이 많다.
 
내가 이 바닥을 떠난다고 해서, 그네들이 못되길 바라지는 않는다.
 
그네들이 잘 됐으면 좋겠다.
 
그네들은, 나처럼 도중에 굴종하지 말고
달고 단 성공의 열매를 맛봤으면 좋겠다.
 
그 사람들이, 합격하고나서 상쾌하게 웃는 모습을
진심으로 보고 싶다.
 
왜냐면, 나도 한때 같은 꿈을 꿨던 사람이니까.
내가 꾸던 그 꿈을 이룬 사람들의 미소를 보고싶은 것, 그 뿐이다.
 
 
과욕일 수도 있지만, 이 글을 보는 사람들 중,
자기 스스로의 자유의지로 사법시험에 도전하는 사람 모두가
사법시험이라는 고비를 넘어서서 합격의 열매를 맛보았으면 한다.
 
그러면 그네들이 짊어진, '부모님에 대한 마음'이라는
무거운 짐도 한결 가벼워 지지 않을까.
 
나처럼 낙오하지 말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쓰다보니 참 긴 글이 되어버렸다.
 
문득, 사법시험 도중 시험이 고되다며 자살한 내 친구가 생각난다.
그 녀석도, 이렇게 무거운 짐을 혼자 짊어지고 끙끙 앓아가다가
앞이 암담해져서 자살해버린게 아닐까.
 
차라리, 나처럼 다소 비겁하게라도 손을 털었다면
적어도 죽지는 않았을텐데 하는 씁쓸함이 밀려온다.
 
그리고, 나는 왜 그 친구처럼 꿈 하나만을 보고 달리지 못하고
이것 저것 좌우 살펴가며 재는 녀석인건지 하는 나에 대한
자조도 일면 밀려온다.
 
 
지금 밖에는 비가 내린다.
 
오늘은, 비를 맞고 싶다.
오늘은, 내리는 비 속에서 걸으며
남들이 모르게끔 울고 싶어지는 날이다.
 
 
 
한 바탕 시원하게 울고싶다.
울고 또 울어서, 그 눈물로서 내가 본 나 스스로의
오점을, 더러운 오물들을 깨끗이 씻어 내리고 싶다.
 
 
 
내가, 나를 진심으로 용서하는 그 날이 오길.
 
그리고, 나와 이 글을 보는 모든 친구들이 자신이 원하는
진정한 행복을 찾게 되길.
 
 
 
 
 
2011년, 5월 1일 일요일 아침에 부산의 어느 한 피시방에서.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