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 기억하라, 너는 눈부시게 아름답다

 


PART 1 그대 눈동자 속이 아니면 답은 어디에도 없다

인생시계 : 그대의 인생은 몇 시인가? |

 

 

그대의 열망을 따라가라 |

 

 

너라는 꽃이 피는 계절 |

 

 

네 눈동자 속이 아니면, 답은 어디에도 없다 |

 

 

때로 우연에 기댈 때도 있었다 |

 

 

그대 그리고 고시 : 안정에 성급히 삶을 걸지 마라 |

 

 

아직 재테크 시작하지 마라 | 걸음을 멈추고 돌아보라 |

 

 

부러워하지 않으면, 그게 지는 거다 |

 

 

슬럼프

 

 

 

 

PART 2 바닥은 생각보다 깊지 않다

 

시련은 나의 힘 |

 

 

바닥은 생각보다 깊지 않다 |

 

 

그 한 사람이 그대의 커다란 바다다 |

 

 

사랑 따윈 필요 없어 2.0 |

 

 

내 안의 혁명 : 프리다 칼로 이야기 |

 

 

내 인생의 오답노트 |

 

 

누구나 지금이 자기 인생에서 가장 늙은 때다 |

 

 

죽도록 힘든 네 오늘도, 누군가에게는 염원이다 |

 

 

치열한 꿈꾸기 |

 

 

이별, 그 후

 

 

PART 3 기적이란 천천히 이루어지는 것이다

 

작심삼일 당연하다, 삶의 방식이란 결심이 아니라 연습이니까 |

 

 

혼자 놀지 마라 |

 

 

그대의 선생을 찾아가라 |

 

 

비린 듯 산뜻한 잉크 냄새로 아침을 맞으라 |

 

 

글은 힘이 세다 |

 

 

네 이웃의 지식을 다양하게 탐하라 |

 

 

29,220피스의 퍼즐 |

 

 

너무 바빠서 시간이 없다는 핑계에 대하여 |

 

 

‘카르페 디엠’ 사용법 |

 

 

그대 생활의 라임은 무엇인가? |

 

 

기적이란 천천히 이루어지는 것이다 |

 

 

재수를 시작한 너에게

 

 

 

PART 4 ‘내일’이 이끄는 삶, ‘내 일’이 이끄는 삶

 

네가 내린 결정으로 삶을 인도하라 |

 

 

‘내일’이 이끄는 삶, ‘내 일’이 이끄는 삶 |

 

 

찌질이 ‘알파’들 |

 

 

대학은 그대에게 결승선인가, 출발선인가? |

 

 

스펙이 아닌, 그대만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라 |

 

 

20대, 돈보다 중요한 것 |

 

 

우리에게 대학이란 무엇인가? |

 

 

일단 기차에 올라타라 |

 

 

교정을 나서는 그대에게 |

 

 

인생의 정점을 생각하다

 

에필로그 | 사랑하는 나의 아들아

 

 

 

 

 

 

하지만 막상 읽어보니 작가는 책을 쓸 때부터 미리 그런 나의 속내를 꿰뚫어보기라도 했다는 듯이 프롤로그를 통해서 단순한 자기 계발서나, 대책 없이 뜬구름 잡는 소리들을 지양하겠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두 가지 모두 나에게 있어서도 그다지 달갑지 않은 것들이다. 그런 종류의 글들은 대개가 허무맹랑하고 가증스러운 발상을 통하여 가뜩이나 힘겨운 세상을 살아가는 청춘들의 피를 빨아먹고자 한다는 인상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마음가짐으로 시작하는 작가의 프롤로그는 참 반가웠고, 또 한편으로는 과거에 나의 허무맹랑한 편견에 대해서 부끄럽기도 했다.

 

 

작가가 프롤로그에서 위와 같이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말을 완전히 믿지는 않았다. 아마도 작가의 약속이 깨지는 것을 통해서 일종의 면죄부라도 얻고자 하는 심리였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물론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작가는 꽤나 성공적으로 그 약속을 지켜냈다. 이 책은 앞서 말했던 것처럼 자기 계발서와 뜬구름 잡는 위로의 경계를, 그리고 합리성과 비합리성의 그 아슬아슬한 경계를 위태위태하지만 그래도 성공적으로 걸어 나갔다는 인상이 책을 다 읽었을 때는 제법 확고하게 쥐어졌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제목을 가지고 있는 이 책은 오늘날의 우리 사회와 그 사회를 살아가는 청춘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란 어떠한가. 사회과학계열 수업이나 책에서 숱하게 듣고 봐왔던 것처럼 우리들의 생활은 점점 편리하고 윤택해져가고 있다. 과학문명과 산업이 눈부시게 발달한 결과이다.

 

 

하지만 좀 더 구체적으로 들여다보자면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청춘들이 마주하고 있는 현실은 그다지 윤택하지는 않은 것 같다. 12년의 교육과정을 거쳐서 대학이라는 학문의 전당에 입성했지만 작가가 말하고 있는 바대로 현실은 그다지 나아진 것이 없다. 대학 등록금은 엄청나게 비싼데, 더 이상 청춘들에게 삶의 목표를 부여하거나 가능성을 비춰줄 존재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제는 성인이라는 딱지를 달고 사회라는 무한 경쟁의 체제를 눈앞에 두고 있는 우리들 청춘들은 고생 끝일 것만 같았던 대학생활에서 고생의 제 2막을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바로 취업난이 문제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 문제들과 시련이 상존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것들은 ‘취업난’이라는 저 세 글자 앞에서는 모두 다 하나 같이 부차적인 문제들로 전락하고 만다. 일자리에 대한 사회적 수요가 줄어드는 상황은 우리 청춘들에게 끊임없이 경쟁을 요구하고 있다. 결국 누군가는 낙오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눈앞에 들이대고 받아들이도록 강요하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현실 그 자체이다. 아무리 현실을 조금이라도 더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자 노력하려고 해봐도 허사다. 긍정적인 마인드로 극복해내기에 우리들에게 현실은 너무나도 냉혹하다.

 

 

책에서도 몇 번씩이나 반복적으로 지적하고 있듯이 그러한 현실에서 청춘들이 내릴 수 있는 선택이란 결국 스펙 쌓기에 다름 아니다. 지성과 명예와 학문의 전당이라고 하는 대학에서 우리는 꿈을 키우고, 자신의 가치관을 확고히 하며, 이상에 접근하기보다는 당장의 일자리를 위해서 영어 점수를 올리고, 각종 자격증을 따고, 서류전형이나 면접에서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 각종 봉사활동이나 경험들을 쌓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살아간다. 무엇보다 대학 등록금이 천정부지로 뛰고 있는 상황에서 그러한 행위들은 더욱 더 당위성을 얻는다. 부모님이 피땀 흘려서 번 돈으로 대학을 다니고 있는 상황에서 취업을 외면한 채 태평하게 꿈 타령을 해댈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기성세대가 청춘들에게 우호적인 것은 아니다. 분명히 세대와 세대는 다분히 연속적으로 이어져 왔음에도 불구하고, 대학과 사회 사이에 존재한다고 하는 보이지 않는 경계에 의해서 청춘과 기성세대는 흑과 백처럼 명확하게 갈라서서 서로를 음해하고 있다. 청춘들은 기성세대를 좋은 시절 다 보내버린 부류하고 폄하하는 동시에 사회적 안정을 차지한 그들을 부러워하고, 기성세대는 청춘들이 가진 젊음과 자유와 가능성을 부러워하는 동시에 그들이 가지지 못한 경험과 업무능력을 가지고 그들을 무시한다.

 

 

 

대한민국 특유의 주입식 교육을 받고 자란 탓에 자립심이 유난히 부족한 우리 청춘들에게 그와 같은 현실은 더할 나위 없이 가혹한 것이다. 명확히 구분되지 않고 헐거운 조직의 테두리와 유동성 넘치는 인간관계는 우리들로 하여금 집 밖에서는 더 이상 돈독하고 끈적끈적한 제대로 된 인간관계를 맺을 수 있는 희망은 없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 그리고 이제는 한 술 더 떠서 선배라고 할 수 있는 기성세대들은 그들을 무시하고 그들의 능력에 대해서 불평만을 해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개인적으로 아주 인상적인 사건이 하나 있었다. 바로 지난 겨울에 있었던 홍익대학교 청소 노동자 파업 사건이다. 모르는 사람이 없겠지만 이 사건은 홍익 대학교에서 근로하던 청소 노동자들이 불합리한 고용 환경에 대해서 항의하고, 또 학교 재단 측은 그러한 그들의 개선 요구를 받아들여 주지 않음에 따라 상당히 장기화되는 양상을 보였다. 그런데 더욱 더 문제가 되었던 것은 그 사건의 중간에 껴있는 홍익대학교 학생들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이었다. 물론 학교나 청소노동자 둘 중 하나의 편을 들고 대립하는 주장들도 많았지만, 그렇지 않은 시선들은 어째서 학생들은 청소 노동자들의 편을 들지 않고 그저 제 밥그릇 걱정 때문에 공부에만 매진하느냐 하는 것이었다. 학생들에 대한 그러한 비판은 총 학생회 측이 교내에서의 시위를 반대하는 입장을 표명함으로써 기름을 끼얹은 격으로 발전했다.

 

 

 

그런 상황 속에서 등장한 것이 영화배우 김여진 씨였다. 이전까지는 내게 별 관심 없는 배우로만 여겨져 왔던 이 배우는 청소 노동자들을 지지하는 한편 학생들에게 독특한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그녀의 생각은 그녀가 자신의 블로그에 남겼던 글에 잘 묘사되어 있는데, 내용을 요약하자면 결국 학생들도 사회의 희생양이라는 것이었다. 학생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보호하고자 표명했던 입장에 대해서 비난의 의견이 쏟아지는 것에 대하여 내심 불만을 가지고 있던 나는 그녀의 글을 읽으면서 바로 이것이 오늘날의 청춘들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시선이라는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아닌 게 아니라 바로 그러한 생각을 우리는 그토록 원해왔던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도 어쩌면 상황이 이렇지만 않았더라면 그녀들을 편을 들었을지도 모른다고, 그리고 아무리 그녀들의 권리가 중요하다고 하지만 그렇게 따지만 공부를 하는 학생들의 권리 역시도 존중 받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오랜만에 아니 어쩌면 처음으로 청춘들에게 “기성세대로서 미안하다.”라고 말해준 김여진 씨에게 눈물 적신 글로 “고맙습니다.”라고 말하고 싶었다.

 

 

 

지금 우리 청춘들이 겪고 있는 아픔을 그렇게나마 이해해줘서 정말로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무작정 지난 80년대의 민주화운동을 주도하던 대학생들의 모습만을 생각하고 지금의 우리들에게 그와 동일한 것을 기대하는 기성세대들 앞에서 그렇게 말해준 것이라서 더욱 더 그랬다. 그리고 나는 지금 김난도 교수가 쓴 이 책을 읽으면서 그에게도 같은 말을 하고 싶다.

 

 

 

3.작가의 마음: 아프니까 청춘이다.

 

 

앞서 말했지만 내가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이 책을 읽다보면 정말 작가가 우리 청춘 한 명 한 명을 자식으로, 제자로, 후배로 생각하면서 진심을 담아낸 것이라는 것을 느낄 수가 있다. 특히나 자신의 경험을 더듬고 자기가 보고 들은 것을 총집합하여 그러한 노하우들을 구체적으로 청춘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의지가 엿보일 떄 그렇다. 또한 그러한 노하우들은 작가가 직접 경험했던 경험담을 종종 겻들여 말하고 있는 참으로 맛있게 읽히는 매력마저 지녔다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러한 노하우들이 너무 구체적이기 때문에 그것들을 하나로 요약해서 뽑아내기가 여의치 않은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름대로 이 책을 하나의 문장으로 요약한다면 “현실을 직시하되 꿈을 가져라. 그리고 청춘은 원래 아픈 것이다.”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짐작했겠지만 앞서 적은 ‘현실을 직시하되 꿈을 가져라.’라는 문장은 쿠바의 혁명가 에르네스토 체 게바라의 명언을 인용한 것이다. 정확히 말해서 그는 “리얼리스트가 되라. 그러나 불가능한 꿈을 가져라.”라고 말했다. 앞서 초장에서 말했던 것처럼 작가는 우리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담으면서 합리와 비합리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걸어가고 있다. 그것은 우리가 처해 있는 현실에 따라 필연적으로 도출되는 결과물이다.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사회라는 것이 그리 녹록치 않은 것이니만큼 우리는 우리의 미래를 설계하고 실행해 나가는데 있어서 그러한 현실사회를 외면할 수는 없는 것이다. 아니 오히려 우리는 반드시 그러한 현실사회에 적합한 계획과 목표를 세워야만 하고 또 방법을 찾아나가야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지나치게 현실적으로만 되어서는 안 된다. 인간인 이상, 그리고 청춘인 이상 우리는 결코 꿈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때문에 작가는 끊임없이 열정, 혁명, 꿈, 모험, 사랑, 돈에 집착하지 말 것 등의 비합리를 우리들에게 요구한다. 작가가 책을 쓴 방법처럼 우리 역시도 우리의 인생을 설계하고 실행해 나감에 있어서 합리성과 비합리성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나마 성공적으로 걸어나가기를 그는 바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비합리성에 있어서 작가가 책의 전체에 걸쳐서 끊임없이 강조하고 있는 것은 ‘자기 성찰’이다. 본문에서는 나태 속의 분주함이라든지, 혹은 거울을 살피기라든지의 용어로 대변되고 있는 것이지만 좀 더 명확하게 표현하자면 그것은 ‘자기성찰’이라는 단어로 축약될 수 있을 것 같다. 작가는 책을 쓰면서 알게 모르게 다양한 서양 철학자들을 인용하고 있다. 주로 소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들을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 진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경우에는 인간관계의 중요성을 언급할 때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주장한 바로 그 명언을 인용하고 있다. 그리고 소크라테스가 인용되는 부분이 바로 이 자기 성찰의 부분이다. 사실 이 점에 대해서는 확실치 않지만 아마도 맞을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자기성찰’, 즉 자기 자신에게 진정으로 이롭고, 또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항상 살펴야 한다는 것은 다름 아닌 소크라테스가 말한 “너 자신을 알라”라는 명언의 함의와 일맥상통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작가는 ‘자기성찰’의 중요성을 정말 무서울 정도로 강조하고 있다. 아닌 게 아니라 우리의 삶에 있어서 자기성찰이 가지는 중요성은 상당히 크기 때문이다. 그것은 우리 자신에 대해 알게 해줌으로써 우리가 무엇을 원하며 또 무엇을 해야 하는 지를 우리가 깨닫게 해준다.

 

 

 

마지막으로 작가는 ‘아프니까 청춘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해서 상당히 의미심장하게 우리들에게 다가온다. 아마 본인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독자가 이 책을 집어 들면서 대체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이 무슨 뜻일까라고 궁금해 했으리라 생각한다. 설명하자면 그것은 청춘에 대한 작가 나름의 정의다. 말 그대로 청춘이라는 것은 원래 아픈 거라는 의미다. 그리고 그러니까 너희 청춘의 시절에 경험하게 되는 다양한 시련이나 아픔들을 낯설거나 이상하게 생각하여 괜히 불안해하지는 말라는 마음을 작가는 전달하고 있다. 나아가 실제 생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실수나 실패도 청춘에게는 당연한 것이다. 우리가 고등학생 때 생각했던 것처럼 대학이라는 것은 ‘고생 끝 행복 시작’의 상징물이 아니다. 사실 그것은 고생 끝이 아니라 새로운 고생의 시작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처럼 새롭게 시작하는 영혼들이기 때문에 경험이 없는 것이고, 해보지 않은 것이니 실수나 실패를 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작가는 말한다. 그리고 나아가 그렇게 청춘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용서 받을 수 있는 거라고 말하고 있다.

 

 

 

 

 

작가가 조심하라고 당부했던 짓을 하게 됐다. 바로 조급해 하는 것이다. 두 번의 고배와 갈수록 심각해지는 사회의 불확실성은 애초에 내가 이상과 목표로 설정해놨던 교직이라는 것을 앞에 두고 나를 초조하게 만들었다. .

 

 

그와 관련하여 인상 깊은 것은 부지런히 살아야 한다는 것, 그리고 일확천금을 노리지 말라는 것, 기적은 하루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매일 매일에 걸쳐서 아주 천천히 조금씩 일어난다는 작가의 메시지였다.

 

 

이 책 전체를 통틀어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네가 내린 결정으로 삶을 인도하라.’라는 제목이 붙은 챕터였다. 그 챕터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스스로를 성인으로 인지하고 독립하려는 욕구는 있으나 부모로부터는 여전히 생활 전반에 걸쳐 직접적인 간섭을 받는 대학생을 ‘어른 아이’라 명명한다.” 오늘날에는 이러한 현상이 많이 일어난다. 자식을 키우는데 지나친 애정을 쏟다보니 자식이 커서 성인이 된 이후에도 자신의 진로와 꿈에 대해서 자신의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부모와 그에 끌려가는 청춘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말이다. 이러한 상황은 과거 우리들의 부모세대들이 살았던 현실을 생각한다면 필연적인 결과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현실이 필연적인 것이며, 부모님은 우리 청춘들에게 무척이나 감사하고 소중한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인생은 다름 아닌 우리들이 인생이기 때문에 우리는 반드시 부모님을 넘어서야 한다. 아픔이 있겠지만, 바로 그곳에 우리들의 진짜 인생이 있기 때문이다.

 

 

어머니를 보여드리고 싶을 정도로 감명이 전해지는 챕터였다. 박민규 작가가 쓴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이라는 책에서 이와 비슷한 감동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그 책이나 이 책이나 중요하게 쥐고 있는 키워드는 바로 지금의 이 삶은 다름 아닌 나의 삶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때문에 타인이 뭐라고 하는 것은 중요한 게 아니다.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내가 정말 그러한 삶을 원하고 또 살아낼 용의가 있고 능력이 있는가 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우리들은 행복해 질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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