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소송 잇따른 패소에도 요지부동 “법이 뭐라든 개발 안 돼” 서울시·구청의 몽니

    • 강승태 기자
    • 입력 : 2019.10.21 09:56:41   수정 :2019.10.21 14:5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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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시와 주요 자치구가 토지 소유주나 조합이 행정소송을 제기해 승소했음에도 불구하고 개발 사업 허가를 내주지 않고 있어 논란이다. 가뜩이나 서울은 주택을 지을 부지가 부족한 곳임에도, 서울시를 포함해 일선 지자체들이 주민 의견을 듣지 않고 특별한 사유 없이 사업을 무산시켜 반발을 사고 있다.


    서울 종로구 평창동 일대에서는 한 개인 토지 소유주와 종로구청이 개발행위 허가를 두고 법정 다툼을 벌이고 있다.

    ▶서울 평창동에 무슨 일이

    ▷토지 소유주와 종로구청 법정 다툼

    최근 서울 종로구청은 한 토지 소유주와 평창동 일대 주택 개발 허가를 둘러싸고 법정 다툼을 벌이고 있다.

    사연은 이렇다. 토지 소유자인 이 모 씨는 지난 2015년 평창동 425-4번지 등 일대 임야 약 2만2000㎡를 공매를 통해 구입했다. 이 씨는 이 땅에 고급 주택가를 짓는다는 계획을 세웠다.

    처음에는 작업이 순탄하게 진행되는 듯 보였다. 이 씨가 처음 주택 개발 허가를 받은 것은 2016년 7월. 종로구청은 외부 전문가가 포함된 도시계획위원회 심의를 거쳐 개발행위를 허가했다. 하지만 돌연 종로구청은 ‘녹지 보존’을 이유로 개발행위 허가 직권취소 처분을 내렸다. 논란이 되는 부분은 해당 부지가 개발 가능한 지역인지에 대한 판단이다. 현재 이 지역은 용도지역상 1종 전용주거지역, 자연경관지구에 해당된다. 겉으로만 보면 주택을 짓는 데 큰 문제가 없어 보인다.

    핵심을 짚기 위해서는 멀리 1971년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종로구청이 개발 허가를 취소한 이유 역시 1971년 내세웠던 개발 인허가 기준을 문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이 부지는 과거 당시 사업시행자였던 한신부동산이 1970년대 평창동 일대 주택 조성 사업을 진행하려 했던 땅이다. 건설부(현재 국토교통부)는 한신부동산의 건축허가 승인 요청에 대해 “실시계획인가 조건상 허가 기준을 통과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반려했다.

    종로구청이 주목하는 것은 이 부분이다. 과거 건설부 판단을 근거로 이 지역을 ‘자연 보존이 필요해 개발이 안 되는 지역’으로 분류했다. 2016년 7월 내렸던 허가 결정에 대해서도 종로구청 측은 “1971년 내려진 결정을 충분히 검토하고 허가를 내렸어야 했다”며 “이전에 허가를 내준 결정은 ‘하자 있는’ 행정처분”이란 입장이다. 이종욱 종로구청 도시개발과 팀장은 “북악터널 측 간선도로변은 오래전부터 원형 보존을 위해 개발을 막았다. 토지 소유자가 원하는 것처럼 단독주택이 들어서면 녹지축이 단절될 수 있다”고 말했다.

    종로구청 주장에 대해 이 씨는 여러 이유를 들어 반박한다. 먼저 종로구청이 앞세운 ‘녹지 보존’이란 명분이 합리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그 근거로 몇 년 전 종로구청이 내렸던 ‘건축허가’ 결정을 든다.

    종로구청은 지난 2015년 서울시 조례에 따라 절대적으로 보존해야 하는 ‘비오톱 1등급’이 포함된 평창동 토지에 대해 2건의 건축허가를 내린 바 있다. 비오톱이란 특정 식물이나 동물이 하나의 생활공동체를 이뤄 살고 있는 생물 서식지로 5개 등급으로 구분돼 관리된다. 이 중 1등급은 서울시 도시계획조례 24조에 따라 일체 개발행위를 금지하는 땅이다. 그럼에도 종로구청은 비오톱 1등급이 포함된 평창동 산복도로 위쪽 지역에 대해서는 건축허가를 내줬다.

    ‘녹지 보존을 위해 개발행위를 막았다’고 강조하면서 정작 일대 임야를 폐기물 처리장으로 활용했다는 점도 논란이다. 종로구청은 이 씨가 보유한 토지 일부(약 3300㎡)를 10년 넘게 폐기물 적환장(매립장에 가기 전에 쓰레기를 임시로 모아두는 곳)으로 운영했다.

    게다가 종로구청은 해당 부지가 사유지임에도 불구하고 이전까지 별도 임차료를 지급하지 않았다. 행정청이 폐기물 적환장으로 사용했던 이력이 있는 토지에 대해 ‘환경 보존’을 운운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것이 이 씨 측 논리다.

    갈등이 확산되면서 이 씨는 2017년 7월 서울행정법원에 ‘종로구청의 개발행위 허가 취소 처분을 취소해달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지난해 11월 재판부는 1심 판결에서 “인근 지역에 다른 신축 건물이 많으며 (해당 지역은) 국립공원 보전과 무관한 지역”이라며 원고(이 씨) 측 손을 들어줬다. 1심에서 패소한 종로구청은 올해 3월 약 4억원의 사용료를 이 씨에게 지급하고 적환장을 철거했다.

    하지만 개발행위 허가 문제에 대해서는 재판부 판결을 수긍하지 않고 항소심을 제기했다. 올해 9월 열린 항소심에서도 재판부는 “종로구청 주장을 납득하기 어렵다”며 항소를 기각했다. 항고심에서도 고개를 숙인 종로구청은 10월 초 다시 한 번 상고심을 제기했다.

    ▶대법원 판결 난 사직2구역

    ▷‘알박기’로 사업 지지부진

    서울에서 지자체가 개발을 둘러싸고 다툼을 벌이는 곳은 이곳뿐이 아니다. 주요 정비사업 지역에서도 법정다툼 끝에 패소했지만 다양한 방법으로 개발행위를 막고 있다. 대표적인 곳은 ‘사직2구역’이다.

    2년 전 서울시가 사직2구역을 정비구역에서 직권해제하면서 갈등이 시작됐다. 통상적으로 정비구역 해제는 토지 등 소유자 신청과 동의를 거쳐야 하지만 서울시는 일방적으로 결정했다. 역사·문화적 가치를 보전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조합은 서울시를 상대로 직권해제 무효 소송을 제기했고 올해 4월 대법원 판결에서 조합이 최종 승소했다.

    그러자 서울시는 구역 한복판에 있는 ‘캠벨 선교사 주택(서울시 소유)’을 우수건축자산으로 등록하면서 사업 추진을 막고 있다. 현재 선교사 주택 부지는 사직2구역의 14%를 차지한다. 우수건축자산으로 등록되면 구역 내 존치가 가능하다. 즉, 조합 입장에서는 개발이 사실상 불가능해진다는 얘기다.

    조합 측은 “서울시가 ‘알박기’로 사업 진행을 방해하고 있다”며 “2013년 사업시행인가 변경을 신청하면서 선교사 주택을 다른 장소에 짓기로 합의했다”고 강조한다. 반면 서울시 측은 “선교사 주택 이축 계획을 담은 사업시행인가 변경인가안은 반려됐기 때문에 시와 협의된 내용은 없다”고 반박했다.

    성북3구역 역시 사정은 비슷하다. 서울시는 2017년 9월 성북3구역을 정비구역에서 직권해제했다. 성북3구역 조합은 서울시와 성북구를 상대로 ‘정비구역 해제고시 무효 소송’을 제기했고 올해 7월 1심에서 법원은 조합 손을 들어줬다.

    성북3구역(6만7976㎡)은 성북구 성북동 3-38 일대로 2008년 8월 정비구역으로 지정됐다. 2009년 조합이 설립된 후 2011년 5월 사업시행인가까지 받았다. 이 구역은 제2종 일반주거지역으로 노후화된 저층 단독·다가구주택이 밀집해 있다. 재개발을 통해 최고 11층 높이 53개 동 총 819가구(분양 679가구·임대 140가구) 아파트로 탈바꿈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재개발 추진에 반대하는 일부 주민에 의해 사업이 꼬이기 시작했다. 급기야 2016년 서울시가 ‘뉴타운 출구전략’을 추진하면서 사업 추진은 사실상 중단됐다. 서울시는 2016년 3월부터 2017년 12월까지 정비구역 내 토지 등 소유자 3분의 1 이상이 요청하고 주민투표에서 사업 찬성률이 과반을 넘지 못하면 시장이 직권해제할 수 있는 한시적 조례를 만들었다.

    도시정비법에 따르면 정비구역 해제는 토지 등 소유자의 과반이 요청하고 주민투표에서 반대표가 50% 이상 나와야 가능하다. 서울시의 한시적 조례는 구역 해제 기준을 크게 완화한 조치였다. 2017년 1월 토지 등 소유자 593명 가운데 206명이 구역해제신청서를 접수했고, 주민투표에서 사업 찬성률이 절반을 넘지 못했다는 이유로 시는 정비구역 직권해제를 결정했다.

    서울시는 정당한 행정 절차라 주장했지만 사법부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서울시의 2017년 10월 10일자 성북3구역 정비구역 해제고시와 같은 해 11월 9일자 성북구청의 성북3구역 조합설립인가 취소 처분을 모두 취소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성북3구역 재개발 사업이 무산된 이유를 서울시와 성북구의 납득하기 힘든 행정 절차 지연으로 인한 결과로 봤다. 행정기관의 고의 지연 과실을 인정한 셈이다.

    [강승태 기자 kangst@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030호 (2019.10.23~2019.10.29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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