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유수라는 말이 실감 난다. 잠시 잊었던 기억너머의 세상으로 눈을 돌리니, 내 철없는 기대와는 달리 여전히 시끄러운 탁류가 흐르고 있다. 지친 문명일 것이다. 나는 물이 흘러가는 이치를 법리라고 말한다. 그리고 전체 우주의 4.6%에 해당하는 눈에 비치는 현실세계를 지배하는 최고의 법칙은 바로 이 물의 법칙인 법리라고 믿고 있다.

 

최근 행정법상 중요하고도 의미있는 판결들이 많이 나왔다. 예컨대 위헌결정 전에 이미 형성된 법률관계에 기한 후속처분이라도 그것이 새로운 위헌적 법률관계를 생성·확대하는 경우라면 이를 허용할 수 없다고 보아 과세처분 근거규정이 위헌이면 그 후 내려진 압류처분도 무효라고 한 대법원 2012.2.12. 선고 201010907 전원합의체 판결, 사인의 공법행위로서의 신고와 그에 대한 행정청의 수리 또는 수리거부행위와 관련된 일련의 판결들인 대법원 2010.11.18. 선고 2008167 전원합의체 판결, 대법원 2011.1.20. 선고 201014954 전원합의체 판결, 대법원 2011.7.28. 선고 200511784 판결들, 그리고 공무위탁의 법리와 공무원의 직무상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법체계와 관련한 대법원 2010.1.28.선고 200782950,82967 판결, 근래의 판결 중 행정법관련 최악의 판결로 기록될만한 대법원 2011.9.8. 선고 201134521 판결 등은 아직도 행정법이 뭐고 공법이 뭔지 올바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작금의 우리 행정법학에 있어서 한번쯤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했던 문제들과 관련된 판결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우리 대한민국의 행정법을 법학으로서 지위라도 가지게 하는 것은 지난 60년 넘게 정립되어 온 판례의 법리였다고 할 수 있는데, 오늘날은 그러한 판례의 법리마저 스스로 왜곡되고 있는 실정이어서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안타깝기 그지없다. 위 판례들에 대해서라도 평석을 쓰기로 한 것은 오로지 국민노릇은 해야 한다는 소명의식에서 비롯된 것임을 밝혀둔다.

 

그밖에도 소득금액변동통지와 징수처분 간에 하자승계를 부정한 대법원 2012.1.26. 선고 200914439 판결, 법원 이외의 공공기관이 진행 중인 재판에 관련된 정보에 해당한다는 사유로 정보공개를 거부할 수 있는 정보의 범위에 대한 대법원 2011.11.24. 선고 200919021 판결, 무효와 취소의 구별기준에 대하여 보다 구체적인 기준을 제시한 대법원 2011.7.28. 선고 20112842 판결, 건축불허가처분취소사건에서 종전 처분 후 발생한 새로운 사유를 내세워 다시 거부처분을 하는 것이 처분 등을 취소하는 확정판결의 기속력에 위배되는지 여부에 대한 대법원 2011.10.27. 선고 201114401 판결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대법원 2011.10.27. 선고 201114401 판결은 2가지 점에서 기존 판례의 내용 또는 그 법리를 보완했다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은 바로 행정법정론(이하 이 책이라 한다)에서 정립하여 보여주고 있는 처분사유추가변경의 법리와 관계된 항고소송에서의 판결의 효력(기판력과 기속력)의 법리에 따라 기존 판례를 보완함으로써 보다 정치한 판례 법리를 형성해 가고 있다는 점이다.

 

 

 

, 그 하나는 최근까지만 하더라도 대법원 2004.1.15. 선고 200230 판결과 같이 새로이 건축허가제한을 한 것은 종전 거부처분취소소송의 변론종결일인 이후임이 분명하므로 새 거부처분사유는 변론종결일 이후에 발생한 사실이라 할 것이고, 따라서 새 거부처분은 행정소송법 제30조 제2항에 규정된 유효한 재처분에 해당한다 할 것이다.”고 판시함으로써 기속력에 반하지 않는 새 거부처분사유인가 여부를 마치 변론종결일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하는 것처럼 표현하여 작금의 행정법학계에 그릇된 영향을 미치거나 그에 부화뇌동하게 만들었었다. 그러나 이번 판결에서는 종전 처분 후이지만 종전 소송의 사실심 변론종결 이전에 발생한 개발제한지역 지정의 새로운 사실을 이유로 한 거부처분이 위 취소 확정판결의 기속력에 반하지 않는다.”고 판시함으로써, 이 책이 보여준 기속력의 법리에 따라 판례의 법리를 보다 명확하게 하여 보여주었다는 점이고, 또 다른 하나는 위 판결이 추가 또는 변경된 사유가 처분 당시에 그 사유를 명기하지 않았을 뿐 이미 존재하고 있었고 당사자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여 당초의 처분사유와 동일성이 있는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고 판시하고 있는 내용인데, 이 역시 이 책이 새롭게 논증하여 정립한 처분사유추가변경의 법리와 항고소송에서 기판력의 객관적 범위 2분론 및 항고소송 인용판결의 효력의 법리에 입각한 것이라고 판단되는바(이에 대해 자세한 것은 행정법정론, 578~592쪽을 참조하라), 이번 판례에 등장하는 최초의 내용이어서 나로서는 작은 기쁨과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아무튼, 행정소송과 관련하여 우리 판례는 그간에 정립해온 그 법리가 그 어떤 다른 소송판례에 비하여 결코 모자람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더욱 정확하고 완벽한 법리를 형성하기 위해 끊임없이 보완해가고 있는 모습에 힘찬 박수를 보낸다. 우리 행정법 학계에서도 이 책이 정립하여 보여주는 수학보다 정치한 행정법리를 깨닫는 자가 많아져서 하루 빨리 우리 행정법이 법학 중의 법학으로서의 본래 지위를 회복할 수 있기를 간망한다.

 

마지막으로 한마디 덧붙이자면, 이글은 판례평석이니만큼 대상판결에 대한 평가에 있어서 그 비판이 주를 이룰 것이다. 물론 비판의 여지가 없을 만큼 훌륭한 판시내용에 대해서는 그 아름다운 법리를 해설하는데 치중할 것이다. 특히 대상판결에 대한 학설들의 반응에 대하여도 분발을 촉구하는 의미에서 거친 비판이 행해질 수 있을 것이다. 어리석지만 현명한 국민의 소리로 귀담아 들어달라.

 

 

 

20123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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