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과정 감정인 둘러싼 '잡음' 여전
감정인 선정·감정 결과 등 놓고 당사자 분쟁 잇따라
재판 결과에 중대한 영향… 재판부, 교통정리도 어려워
부실감정·불성실한 태도에 재판공정까지 의심 받기도
서울중앙지법, 재작년 1478명 중 512명 '부적합' 판정


최근 재판 과정에서 감정인을 둘러싼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사건이 복잡하고 다양해지면서 정확한 판결을 위해서는 감정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지만 워낙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어 감정인 선정부터 감정 결과의 수용까지 분쟁이 잇따르고 있다. 특히 일부 감정인들의 부실 감정이나 불성실한 태도로 인해 재판의 공정성까지 의심 받는 경우도 있어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3일 법원행정처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에서 2012년 한 해 동안 감정인으로 활동한 1478명 가운데 이듬해 감정인 명단에서 배제된 사람이 512명이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감정인 등재신청을 하지 않을 경우 배제되기도 하지만 이들 중 상당수는 '부적합' 판정을 받고 제외된 것으로 알려졌다.

교체 사유로는 ‘부실한 감정’이나 ‘불성실한 재판 참여 태도’가 대부분이다. 일부는 일방 당사자와의 유착관계로 인한 ‘불공정성’ 또는 ‘당사자들과의 불화’가 문제가 됐다.

당사자들이 감정 결과를 믿을 수 없다며 재판에 불복하는 일도 흔하다. 이들은 “감정이 불공정하거나 불합리하다”고 항소하며 재감정을 요구한다. 재감정에는 수개월이 필요하고, 비용도 수천만원에서 1억원이 넘게 들기도 하지만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이때는 감정인 선정과 관련한 다툼이 더 첨예해진다. 감정인 선정 문제만 놓고 당사자들끼리 의견을 좁히지 못해 재판이 몇개월씩 지체되기도 한다. 실제로 서울중앙지법 항소부에 계류중인 한 민사사건은 원·피고 양측 당사자들이 감정인 선정을 놓고 다툼을 벌이느라 6개월이 넘도록 심리를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

재판부가 나서서 교통정리를 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감정인의 감정 평가 결과는 재판의 향배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소이기 때문에 섣불리 개입했다가는 재판의 공정성을 의심받기 쉽기 때문이다.

최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모 건설사와 아파트 입주민 간의 하자보수 청구소송에서 건설사 측을 대리한 A변호사는 “입주민에게 유리하도록 편파적인 감정을 하기로 유명한 감정인을 같은 재판부에서 연속적으로 선정한 배경이 의심스럽다”고 발언해 재판부를 난처하게 만들었다.

재판부는 “아파트 하자담보 사건 같은 경우에는 한 건설사가 여러 건의 소송을 당하는 사례가 많기 때문에 한 번 해당 사건을 맡아봤던 감정인이 사건 파악도 더 쉽게 할 수 있어 같은 감정인을 선정할 때도 있다”고 해명했지만, A변호사는 “공정성에 문제가 있다”며 계속 반발했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감정 결과가 당사자 양측 모두의 마음에 드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어느 한쪽은 감정이 편파적이라는 생각을 할 수 밖에 없다”며 “당사자 입장에서는 자신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유리한 결과를 끌어내기 위해 끊임없이 문제제기를 한다”고 말했다.

서울의 한 판사는 “감정인의 결정이 재판에 미치는 영향이 커지면서 재판의 실질적인 주도권이 법관에서 감정인으로 넘어가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며 “법원이 공정하고 정확한 감정 결과를 유도할 방법이 없다면 올바른 판결도 내릴 수 없기 때문에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홍세미 기자 sayme@law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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