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직원 실수에 '속앓이' 하는 변호사들
항소기간·서류 등 못 챙겨 의뢰인에 거액 배상
법률적으로 사용자 책임… 하소연 할 곳도 없어
"사건처리 시스템 구축 때 지원제도 있었으면"




몇 년 전 사법연수원 선·후배 동기 4~5명과 의기 투합해 서울 서초동 법조타운에 작은 법무법인을 만들어 사무실을 연 A변호사는 최근 사무직원의 실수로 큰 속앓이를 했다. 싹싹하고 꼼꼼한 데다 실력까지 갖춰 개업 초기부터 믿고 일을 맡겼던 직원 B씨가 실수로 항소기간을 챙기지 않아 의뢰인에게 거액의 배상금을 물어줘야 했기 때문이다.

사연은 이렇다. 주말을 가족과 편안하게 보낸 A변호사는 월요일 출근길에 B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수임한 민사사건의 항소기간이 전주 금요일이어서 항소장을 제때 제출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전화기 저편에서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A변호사는 ‘아차’ 싶었지만 일은 이미 벌어져 있었다. A변호사가 항소장 등 필요한 서류를 챙겨주고 법원에 내라고 당부했지만 B씨가 깜빡한 것이다. A변호사는 의뢰인에게 곧바로 사죄하고 자신의 돈으로 5000만원 이상을 물어줬다. 진정이나 소송을 당하면 소문이 날 테고 그러면 사무실 운영에 큰 타격을 받기 때문에 서둘러 진화한 것이다. A변호사는 ‘소가가 수억원에 달했으면 어떻게 됐을까’하는 생각에 ‘그나마 다행’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렸지만 쓰린 속은 어쩔 수 없었다.

C변호사는 사정이 나은 편이다. 민간 보험회사가 운영하는 변호사배상책임보험에 가입해 보험회사가 배상금의 대부분을 내줬기 때문이다. A변호사처럼 사무직원의 실수로 제척기간을 챙기지 못해 의뢰인에게 1억원을 물어줘야 했는데 보험회사에서 9000여만원을 배상해줬다. 본인 부담금 등으로 1000여만원이 들긴 했지만, 1년 보험료로 낸 100여만원으로 배상금의 대부분을 해결할 수 있었다는 안도감에 C변호사는 놀란 가슴을 진정시켰다.

최근 변호사 대량 배출로 각종 형태의 변호사 사무실이 늘어나면서 사무직원의 실수로 변호사가 곤경에 처하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다.

대형 로펌이나 어느 정도 규모를 갖춘 로펌은 대부분 내부적으로 업무 전산망으로 사건처리시스템을 구축해 놓고, 팀별로 파트너급 변호사는 물론 휘하 변호사에, 직원들까지 이중 삼중으로 체크해 사고 발생의 위험성을 줄인다.

하지만 소형 로펌이나 별산제 로펌, 개인 법률사무소 등은 비용 등의 문제로 시스템을 갖추기가 힘들어 항소나 상고 기간 같은 형식적 요건과 관련된 일들을 오롯이 사무직원에게 의존하거나 엑셀프로그램을 이용해 임기응변식으로 대처하는 경우가 많아 상대적으로 사고 발생의 위험이 높은 것이 현실이다. 변호사가 잘 관리하는 방법 외에는 뾰족한 대책도 없다.

소형 로펌에 근무하는 한 변호사는 “대형 로펌에 비해 사건 수임 건수가 적기 때문에 사건처리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은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경우가 많다”며 “어려운 형편에도 사무직원을 채용해 월급을 주는 이유가 항소나 상고 기간을 챙기고 제때 법원에 서류를 제출하라는 것인데 이마저도 가끔 실수를 하니 난감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별산제 로펌에 근무하는 다른 변호사는 “사건을 수임한 변호사가 직접 저지른 실수는 아니지만 이행보조자에 해당하는 사무직원의 실수도 법률적으로는 원칙적으로 변호사가 사용자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에 사실상 면책 받을 방법도 없다”며 “수임 사건에서 사고가 생길 경우를 대비해 미리 보험 등에 가입하는 것이 좋겠지만, 한달에 2~3건 수임하기도 힘든데다 월 300만원이 넘는 사무실 운영비 분담금 등을 고려하면 선뜻 가입할 생각이 나지 않는다”고 한숨을 쉬었다. 그는 “사고가 나지 않도록, 특히 소가가 큰 사건은 더 주의깊게 챙기는 수 밖에 없다”고 했다.

또 다른 변호사는 “사고 발생 위험을 줄이기 위해 사건처리시스템을 구축할 때 일정 정도의 지원을 해주거나, 아니면 변호사단체에서 경험이 적은 청년변호사들이 개업할 때 이와 같은 시스템을 구비할 수 있도록 지원해 주면 좋겠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대법원은 변호사 사무실 직원의 실수로 제때 항소하지 못해 의뢰인의 패소가 확정된 경우에는 변호사가 의뢰인이 입은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2005다38799)을 내린 적이 있다.
김재홍 기자 nov@law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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