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는 동네 ‘젠트리피케이션’, 막을 수 있을까?

성동구, 전국 지자체 최초로 관련 조례 제정
강현선기자   |   등록일 : 2015-10-01 16:38:26   최종수정 : 2015-10-02 08:5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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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thefbomb.org]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은 신사 계급을 뜻하는 Gentry에서 파생된 말로, 본래는 저소득 노동자들이 살던 낙후된 지역에 중산층들이 유입되면서 지역이 다시 활성화되는 현상을 뜻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외부인의 유입으로 활성화된 지역의 오른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하고 본래 거주하던 원주민이 밖으로 밀려나는 부정적인 용어로 더 많이 쓰이고 있다.

 

도시 환경이 변하면서 중·상류층이 도심의 주거지로 유입되고 이로 인해 주거비용이 상승하면서 비싼 월세 등을 감당할 수 없는 원주민들이 다른 곳으로 밀려나는 현상이다. 젠트리피케이션은 1964년 영국의 사회학자 루스 글래스(R. Glass)가 노동자들의 거주지에 중산층이 이주해오면서 지역 전체의 구성과 성격이 변하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처음 사용한 용어이다.

 

젠트리피케이션은 우선 임대료가 저렴한 도심에 독특한 분위기의 갤러리나 공방, 소규모 카페 등의 공간이 생기면서 시작된다. 이후 이들 상점이 입소문을 타고 유명해지면서 유동인구가 늘어나고, 이에 대규모 프랜차이즈점들도 입점하기 시작하면서 임대료가 치솟게 된다. 그 결과 소규모 가게와 주민들이 치솟는 집값이나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동네를 떠나게 되고, 동네는 대규모 상업지구로 변화된다. 예컨대 2000년 이후 서울의 경우 종로구 서촌을 비롯해 홍대 인근 망원동·상수동, 경리단길, 삼청동, 신사동 가로수길 등에서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최근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해 많은 논의가 진행되고 있으며 이를 바라보는 상반된 시각이 공존하고 있다.

 

▲지역경제 활성화, 도시 균형발전에 도움= 먼저 젠트리피케이션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을 살펴보면, 젠트리피케이션으로 기존에 개성 있는 문화 공간들은 사라졌지만 이로 인해 대규모 상업 시설이 위치하면서 지역경제가 활성화되고, 도시 균형발전에 도움을 주고 있다는 점이다. 지역경제 활성화에 따라 지역주민들의 평균 소득이 향상되고 지역에 대한 소속감 및 그 주변의 부동산의 가치도 높아진다. 결과적으로 젠트리피케이션은 새로운 흐름으로 재정적 순환구조를 만들어 잠재 거주자들에게 경제적 기회를 창출해주는 역할을 수행한다고 할 수 있다.

 

브루킹스 연구소의 스튜어트 버틀러(Stuart Butler)는 “젠트리피케이션이 문제를 가져올 수 있음에도 궁극적으로는 원래 그 지역에 살고 있던 사람들에게 여러 혜택을 줄 수 있다”며 “부유한 중산층 및 전문직 종사자들이 도심 지역으로 모여들 때 이들은 지역 정부가 더 잘 운영되도록 목소리를 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주택가격이 상승하더라도 세금으로 거둬들이는 지역 정부의 수입도 늘어나기 때문에 공공 서비스의 향상을 도모할 수 있고, 이들이 도심에 살며 소비와 문화활동을 하는 것이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지역 생태계 파괴, 옛 터를 버린 원주민들= 반면에 젠트리피케이션은 기존 지역의 생태계를 파괴시킨다는 시각도 있다. 문화로 일궈낸 문화지역의 활성화가 임대료와 같은 거대 자본으로 인해 사라져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임차인이 부당하게 피해를 입는 사례들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고, 기존의 특색 있던 가게들은 모두 문을 닫고 대기업의 프랜차이즈가 그 자리를 독식하고 있다. 다양한 문화가 발전할 수 있는 공간은 사라지고 획일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성동구, 본격 도시재생 앞두고 ‘젠트리피케이션 조례’ 제정 

 

최근 젠트리케이션에 맞서는 다양한 사례에 주목한다. 우선 한창 도시재생사업을 진행 중인 성동구가 지방자치단체로서는 처음으로 젠트리피케이션 해결 방안에 나서 호평을 얻고 있다. 성동구는 젠트리피케이션 방지를 위해 주민협의체를 구성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조례를 선포했다. 정식 명칭은 ‘지역공동체 상호협력 및 지속가능 발전구역 지정에 관한 조례’로, 이는 지난 24일부터 전국 최초로 시행되었다.

 

성동구가 이 조례를 제정하게 된 것은 성수동의 젠트리피케이션 현상 때문이다. 준공업지역이었던 성수동은 2012년부터 젊은 예술가와 비영리단체, 사회적 기업이 하나 둘 둥지를 틀면서 소위 ‘뜨는 동네’가 됐다. 성수역 인근의 빈 공장과 창고에서는 전시회와 패션쇼가 열렸고 서울숲길의 낡은 주택들은 개성 강한 식당과 카페, 예술가들의 작업실과 갤러리 등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성수동이 인기를 끌면서 임대료와 집값이 상승했고, 성수동의 변신을 주도했던 사람들은 이를 견디지 못하고 성수동을 떠나게 된 것이다.

 


[성동구 조례 적용 지역/자료=기획재정부]

 

이 조례는 관할구역에 지속가능 발전구역을 지정한 뒤 도심 재생사업을 통해 지역상권 발전을 유도하고, 상권이 발전함에 따라 대형 프랜차이즈 등이 입점해 소상공인들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주민들이 협의체를 구성해 외부에서 들어오는 입점업체를 선별할 수 있게 하는 내용이다.

 

주민협의체는 이 조례를 주도적으로 실행하는 일종의 주민자치 조직으로 주민자치위원, 임대인·임차인·거주자가 포함되고, 사회적경제기업가·문화예술인 등 지역활동가도 참여하게 된다. 이들은 임차권 보호 및 지원에 관한 사항, 신규 업소 입점 조정 사항, 지속가능 발전구역 추진사업 사항 등을 협의하게 된다.

 

따라서 지역공동체 생태계 및 지역상권에 중대한 피해를 입히거나 입힐 우려가 있다고 인정되는 업소일 경우 주민협의체의 사업 개시 동의를 받아야 하며, 성동구는 동의를 얻지 못한 입점업소일 경우 입점지역·시기·규모 등 조정을 권고할 수 있다.

 

정원오 성동구청장은 “상생을 위한 상호협력 분위기가 전국 각지로 확산될 수 있는 하나의 전환점이 되기를 희망한다”며 “조례가 공포됨에 따라 주민협의체 구성, 상호협력위원회 설치 및 임대료 권리금 안정화를 위한 자율적 상생협약, 영세 소상공인을 위한 공공 임대점포 확보 등 사업을 추진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물론 제도적 뒷받침은 있되 강제성은 없어 규제면에서 실효성이 있을지를 놓고 의문을 던지는 시선도 적지 않다. 그럼에도 이곳을 유명한 동네로 만들어준 예술가, 마을공동체, 사회적 기업 등 도시재생 주체들과 함께 하기 위해 공공이 나섰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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