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평가사 모든 자산의 가치를 평가하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비싼 땅은 명동에 있는 한 화장품 전문점이 있는 곳이다. 1㎡당 7,700만원, 3.3㎡기준으로 보면 2억 5,410만원이다. 그렇다면 가장 싼 땅은 어디일까? 전남 진도군 조도면에 있는 임야로 1㎡당 83원, 3.3㎡당 273.9원이다.


이와 같은 땅값은 누가 매길까? 이런 일을 하는 사람들이 감정평가사다. 감정평가사는 정확한 땅 가격을 산출하기 위해 현장을 방문해 건물을 살펴보고, 때로 동네 이장과 면장에게도 묻고, 부동산 중개업자의 말도 참고한다. 현장에 가기 전 기존 자료를 가지고 대충 기초 정보를 파악하지만 그래도 최종 확인은 현장이다. 땅뿐 아니다. 선박, 기계설비, 골프장, 폐폭탄, 자동차 심지어 광업권과 어업권도 평가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비싼 땅은 서울 중구 명동8길에 있는 상업용지로 화장품 매장이 들어서 있다. 감정평가사는 공시지가 등 국내 땅의 가격을 평가한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감정평가사란?

감정평가사는 자산의 가치를 평가하는 사람이다. 자산에는 토지, 건물 등의 부동산과 건설기계, 선박과 같은 동산들, 그리고 특허권, 상표권 등 무형의 자산까지 모두 포함된다.




1970년대 초 기업들의 자금수요가 많아 은행권에서 대출을 많이 받았는데 이때 기업이 가진 자산의 담보평가를 전담할 필요가 생겼다. 이에 따라 공인감정사가 도입됐다. 또 경부고속도로, 산업단지 등 한창 사회기반시설 건설이 많았는데 이때 기존 주민들에게 보상해주기 위한 보상가액 평가가 필요했다. 토지평가사는 이때 도입됐다. 두 제도가 합쳐진 것은 1989년이다.




토지평가의 기준으로 공시지가를 조사·평가해 공시하고 감정평가제도를 효율화하기 위해 이원화 되어 있던 감정평가자격을 지금의 감정평가사로 일원화했다. 감정평가사가 여러 자산의 가치를 평가하면 은행에서는 대출을 내줄 때 담보가액으로 활용한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는 주민들에게 토지 보상을 해주는 기준으로 쓴다. 법원에서는 경매를 할 때 자산가치의 평가액 기준이 된다.




감정평가는 ‘부동산가격공시 및 감정평가에 관한 법률’(현재 : 감정평가 및 감정평가사에 관한 법률 및 부동산 가격공시에 관한 법률 로 이원화) 로 규정돼 있다. 법에 따르면 ‘감정평가란 토지 등의 경제적 가치를 판정하여 화폐액으로 표시하는 것’이다.



 나는 왜 감정평가사가 됐나? 



이홍규 감정평가사(41)는 93학번으로 일명 IMF세대다. 1996년 군 제대 후 취업준비를 하다 외환위기가 발생해 취업에 대해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그는 “함께 취업준비를 하던 실력 있는 선배들이 잇달아 취업에 실패하자 큰 충격을 받았다”며 “그래서 일반적인 취업준비가 아닌 다른 길을 찾았고 그러던 중 감정평가사라는 직업을 알게 되어 바로 시험준비에 뛰어들었다”고 말했다.



이홍규 감정평가사는 원래는 공기업에 취업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금융위기로 대부분의 공기업이 취업공고조차 내지 않았다. 취업하고 싶은 곳에 원서조차 낼 수 없는 상황에서 하염없이 책을 붙잡고 있을 수도 없었다. 이 감정평가사는 지방대 출신에 인문학을 전공했다. 취업문이 매우 좁아진 상황에서 학력과 전공은 상대적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이 다분했다. 공평하게 시험을 치면 되는 전문자격사 시험은 그래서 더더욱 매력적이었다. 점수에는 학벌이나 지역, 전공의 차별이 없으니까.



일하면서 기억에 남는 일은? 

 

감정평가는 자산의 가치를 평가하는 직업이기 때문에 숫자와 관련이 많다. 회계나 세무 분야처럼 정확한 결과치를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지만 다양한 사례를 분석하고 참고하는 과정에서 숫자와의 씨름이 많은 직업이다. 또 다양한 자산을 감정평가대상으로 삼다 보니 생소한 분야에 대하여 감정평가를 수행하는 경우도 가끔 발생한다. 이런 경우에는 새로운 분야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와 다양한 가치형성요인들을 짧은 시간 내에 파악해야 한다. 때문에 퇴근이 늦어지거나, 휴일에도 출근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감정평가사는 세상에 평가할 수 있는 것이면 무엇이든 평가한다. 이홍규 감정평가사는 일생에 한번 만져보기도 힘든 색다른 물품을 감정할 때가 제일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그는 “한 공군부대에서 전투기용 폐폭탄을 평가하기도 했고, 사용기간이 지나 우리나라에서는 더 이상 철로를 달릴 수 없는 디젤기관차를 평가한 적도 있다”며 “보상평가를 하면서 광업권이나 어업권 평가도 해봤다”고 말했다.



대규모 공익사업의 보상평가를 수행한 뒤 해당 사업이 원활히 진행돼 택지가 형성되고 산업단지가 조성되는 모습을 보면 뿌듯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반대로 사업이 지연되거나 취소되는 경우에는 많이 안타깝다. 이홍규 감정평가사는 “2000년대 초에 모 골프장을 감정평가 하면서 그때만 하더라도 새로운 감정평가방법이라 할 수 있는 ‘기업가치평가방법’을 적용했다”며 “이 일은 이후 다양한 감정평가를 수행하는데 있어 개인적으로 많은 자신감을 심어줬다”고 말했다.



감정평가사는 산업단지 개발, 도로건설, 신도시 개발 때 토지보상의 기준 안을 마련한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어렵거나 힘든 점은?

감정평가는 많은 경우가 분쟁해결의 일선에 서 있다. 대표적으로 보상평가가 그렇다. 보상금을 지급하는 국가 등은 예산의 낭비를 줄여야 하고, 보상금을 받는 개인은 더 많은 보상을 받기를 원한다. 그러다 보니 양측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경우가 많다.



감정평가사는 이렇게 대립하는 양 측 사이에서 중립적이고 독립적인 위치에서 공정하게 감정평가를 수행해야 한다. 그 중립적이고 독립적인 위치를 고수한다는 것이 매우 어렵고 힘들다. 최선을 다해 감정평가를 하더라도 감사보다는 질책과 비난을 받는 경우가 많다. 양자 모두에게 오해와 비난을 받기도 한다. 의뢰자와 관계없이 중립적이고 독립적인 입장에서 감정평가를 수행하다 보니 발생하는 일이다. 가끔 이러한 일들이 언론에 보도되기도 하는데 언론도 이해당사자의 의견을 많이 반영하다 보니 감정평가에 대한 오해가 커지는 경우도 있다. 이런 일들이 감정평가사에게는 가장 힘들고 어려운 일들이다.



감정평가사 수입은 얼마나? 

 

감정평가업계는 크게 세 종류다. 대형법인과 중소형법인 그리고 개인사무소다. 대형법인의 경우 파트너평가사와 경력소속평가사 그리고 신입소속평가사로 구성되어 있다. 업체마다 다르긴 하지만 대개 파트너평가사는 연봉이 1억원 내외다. 경력소속평가사의 경우는 연봉이 5,000~6,000만원 내외, 신입소속평가사의 경우는 연봉이 3,000~4,000만원 수준이다.



대형법인에 비해 중소법인과 개인사무실은 수입이 조금 더 낮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업무수주능력과 업무처리능력 등에 따라서는 평균 이상의 수입이 있는 곳도 많다. 국토교통부의 자료를 보면 감정평가사 1인 기준 평가수수료 신고액, 즉 매출액이 2013년 기준 1억 7,500만원이다. 이밖에 감정평가사 자격증을 보유하면 한국감정원과 LH공사 등 공기업에 취업을 할 수도 있다.



2014년도 제25회 감정평가사 제1차 시험 채점통계. <한국감정평가협회 홈페이지>



감정평가사 되기 위해서는 무슨 공부를 해야 하나?

감정평가사는 다양한 자산을 평가하는 직업이다 보니 관련 있는 학과가 많다. 물론 대학을 졸업하지 않더라도 감정평가사가 되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감정평가사는 다른 전문자격사 시험과 마찬가지로 학력의 제한을 두고 있지 않다.



감정평가사시험 1차 과목은 민법, 경제원론, 부동산관계법규, 회계학, 영어(2016년부터는 부동산학원론 추가) 등이다. 2차 과목은 감정평가실무, 감정평가이론, 감정평가 및 보상법규 등이 있다. 때문에 이런 시험과목과 관련된 학과가 보다 유리하기는 하다. 따라서 부동산학이나 법학, 경제학, 회계학 등의 인문계열 전공학과나 도시공학, 건축공학 및 토목공학 등의 자연계열전공학과가 관련성이 높다.



하지만 감정평가사 1차 시험은 법과목과 경제 및 회계 관련 과목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2차 시험에서도 법과목과 경제학적 사고를 요하는 과목이 포함돼 있어 단순히 어느 학과를 전공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보기는 어려운 시험이다.



한편 정부는 감정평가사가 시장에서 과잉공급이라고 판단하여, 2014년 180명을 뽑던 감정평가사 합격자를 2017년까지 150명으로 줄이기로 했다.



앞으로의 전망은?

감정평가사는 담보가액과 보상가액 등과 같이 자산가액의 기준을 정하기 위해 도입된 자격제도다. 개발도상국이었던 과거에는 감정평가사가 사회적으로 많은 역할을 해온 것이 사실이다. 또 우리나라의 경제발전과 함께 감정평가시장도 커왔다. 하지만 최근에는 개인이나 기업의 자산가액 뿐만 아니라 신용정보가 대출의 중요한 기준이 되고 있고, 한국의 사회기반시설도 어느 정도 갖춰지면서 과거와 같은 감정평가사의 기본 역할은 축소될 수밖에 없다.



아파트와 같은 부동산의 거래가격정보는 정부뿐만 아니라 민간업체를 통해서도 시장에 이미 제공되고 있어 이런 자산은 감정평가의 필요성까지도 일부 사라지고 있다. 때문에 과거 주요 감정평가대상이었던 부동산에 대한 감정평가는 정체내지 축소될 가능성이 높다.



반면 특허권이나 상표권 등과 같은 무형자산이나 환경과 관련된 문제에 대한 감정평가는 갈수록 그 수요가 많아지고 있다. 부동산과 같은 유형자산과 달리 무형자산은 다른 자격자와의 경쟁문제나 협업문제가 대두되고 있어 앞으로는 감정평가사가 얼마나 그 분야에서 전문성을 잘 갖추고 있는가 여부가 매우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대일감정원 이홍규 감정평가사가 사무실에서 토지관련 서류를 찾아보고 있다. 이홍규 감정평가사는 “감정평사는 다른 자격자에 비해 책임의식과 윤리의식이 보다 중요한 직업”이라고 말했다. <대일감정원 제공>



감정평가사는 어떤 사람이 하면 좋나?

자격증 하나만으로 평생고용과 소득이 보장되던 시대는 끝났다. 과거에는 자격자를 통하지 않고는 할 수 없었던 많은 일들이 지금은 누구나 조금만 노력하면 쉽게 해결할 수 있는 정보화시대다. 하지만 이런 변화가 자격자가 더 이상 필요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사회가 발전할 수록 경제활동은 더욱 복잡 다양해져서 전문화된 서비스는 오히려 그 수요가 더 확대될 수 있다. 이홍규 감정평가사는 “자격취득 후 당장 큰 소득을 기대하기보다 장기적으로 전문성을 갖춰 나만의 특화된 강점을 갖겠다는 자세가 중요하다”며 “또 감정평가사는 다른 자격자에 비해 책임의식과 윤리의식이 보다 중요한 직업이라는 것을 기억하고 도전하시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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