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에서 일하던 ‘데이터 덕후(마니아라는 뜻의 은어)’들이 모여 부동산 감정평가 시장을 타깃으로 창업에 뛰어들었다. 이들은 아파트에만 제공됐던 시세 정보를 국내 처음으로 빌라까지 확장했다. 부동산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그동안 객관적인 시세 평가에서 벗어났던 단독∙다세대 주택의 시세 평가 시스템을 개발한 스타트업 ‘빅밸류’의 얘기다.


2015년 설립된 빅밸류(옛 회사명 케이앤컴퍼니)는 자체 개발한 빅데이터 기술로 정부 개방 공간정보를 수집하고, 인공지능 기술을 개발해, 2017년 2월 국내 최초의 빌라 시세 조회 플랫폼 ‘로빅’을 상용화했다. 빅밸류를 이끄는 김진경(43∙왼쪽) 대표와 구름(40) 연구소장 겸 이사를 최근 서울 중구 본사 집무실에서 만났다.

김 대표와 구 소장을 비롯한 창업 멤버 4명은 모두 증권사 출신으로, 부동산업에 ICT기술을 결합한 프롭테크 시장에 뛰어들었다. 부동산 전문 변호사이기도 한 김 대표는 증권사 IB본부에서 부동산 투자 실무 경력을 쌓았다. 구 소장 역시 한때 김 대표와 직장 동료였다.

구 소장은 "2015년 3월 정부 3.0 공공 데이터가 개방되는 것을 보고 다니던 회사를 나와 함께 창업했다"며 "창업 멤버 모두 데이터에 큰 가치가 있다고 믿는 ‘데이터 덕후’였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빅데이터와 인공지능 기술이 차츰 전문직을 대체해 가는 것을 보고 부동산 자산관리와 부동산 정보 분야에서도 이러한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미 2016년부터 미국 주택금융공사 프레디맥(Freddie Mac), 미국 연방저당권협회 페니메이(Fannie Mae)에서는 대출 감정을 할 때 민간평가사를 쓰지 않고 대출 감정 평가 자동화 시스템을 쓰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이제는 부동산 시장의 흐름과 사정이 지역마다 각각 다르다"며 "빅데이터 분석 기술을 활용하면 각 지역 부동산에 대해 보다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빅밸류는 아직 사업 초기 단계지만 시장 진입 1년 만에 금융권과 부동산 업계에서 큰 관심을 받고 있다. 부산은행, 신한은행, 하나은행 등 시중 은행과 어니스트펀드, 뱅크샐러드 등 핀테크 기업에 부동산 빅데이터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상용화한지 1년 만인 지난 해 누적 30억원의 투자도 유치했다.

◇3일 걸리던 작업 0.01초 만에…부동산 시세 사각지대 겨냥

"짧으면 3시간, 길게는 3일까지 걸리던 부동산 시세 평가 작업도 이젠 0.01초면 끝나지요."

빅밸류는 연립과 다세대 주택의 가치를 평가하고 시세를 매기는 서비스를 국내 최초로 시장에 내놨다. 작년 1월 서울, 경기, 인천, 부산에 있는 빌라 등 도시형 주택 248만 가구에 대한 부동산 정보와 시세 판매 서비스를 상용화했다. 올해에는 서울과 경기 지역 나홀로아파트 56만 가구와 단독주택 377만 가구, 27만개 공장과 122만개 집합상가 등으로 서비스를 확대할 계획이다.

그동안 국내에서는 아파트 시세 정보만 다루고 있지만, 소형 주택이나 그 외 부동산에 대한 시세정보는 수집하거나 제공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은행에서 담보평가를 하기 위해서는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했다. 빅밸류는 이런 부동산 정보 시장의 사각지대를 파고 든 것이다.

구 소장은 "우리나라에선 아파트 시세에 관한 정보만 오랫동안 쌓다 보니 국내 부동산 정책이나 방향에 관한 의사 결정도 대형 아파트나 서울 중심으로 진행되는 경향이 짙다"며 "이 때문에 100가구 미만 소형 단지는 시세를 정확하게 모르는 상태에서 거래가 이뤄지고, 부동산 정책과 금융 서비스 등에서도 현실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 등 역차별이 생겼다"고 했다.

구 소장은 국내에 시세 파악이 되지 않은 부동산 거래는 연간 220조원에 달한다고 보고 있다.


빅밸류가 출시한 웹기반 심사 평가용 자동시세 솔루션. /빅밸류 제공

이를 해결하기 위해 빅밸류는 빅데이터를 수집하고, 기계학습·딥러닝 기술을 적용한 AI알고리즘을 개발해 시세 정보를 자동화하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구 소장은 "길게는 3일씩 걸렸던 시세 평가 작업을 이제는 클릭 한번으로 0.01초만에 볼 수 있다"며 "연구·개발에만 2년 이상 투자했고 정확성 평가를 통해 정확성도 인정받았다"고 밝혔다.

이들은 방대한 부동산 빅데이터를 비교·분석하는 서비스를 통해 매매 계약에서의 정보 비대칭 문제를 개선하고, 부동산 금융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봤다.

김 대표는 "빅밸류의 인공지능 플랫폼이 제공하는 시세 정보를 통해 매매 정보 균형을 가져올 수 있을 뿐 아니라 이를 통해 보다 투명하게 부동산 거래를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부동산 자산 관리 플랫폼을 목표로

사업 시기도 맞아 떨어졌다. 금융당국이 규제 장벽을 낮춰 빅데이터·인공지능으로 부동산을 감정 평가할 수 있는 길을 열기 시작한 것이다. 작년 8월 14일 금융위원회는 금융 혁신의 일환으로 그동안 금지해왔던 ‘금융사 본질적 업무의 외부 위탁’을 허용하는 것을 골자로 한 1차 지정대리인 제도를 처음 시행했다. 이 때 빅밸류가 지정대리인 자격을 얻었다.

쉽게 말하면, 시중 은행들이 그동안 자체 감정 또는 공시와 한국감정원의 시세 정보를 활용하거나 감정평가사에게 맡겨야 했던 담보 평가 업무를 빅데이터·인공지능 기술로 할 경우 빅밸류에 업무를 맡겨도 된다는 허가를 내준 셈이다.

빅밸류의 궁극적인 목표는 ‘부동산 자산관리 플랫폼’으로 발전하는 것이다. 현재는 일반 소비자를 대상으로 하는 B2C모델이 아닌 금융기관과 핀테크 기업 등을 상대로 하는 B2B 사업모델을 추구하고 있다.

김 대표는 "올해는 모든 주택과 비주거 부동산 데이터까지 확장해 시세 정보 알고리즘을 개발하고 서비스를 상용화하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이어 그는 "장기적으로는 전체 부동산 자산관리 종합 플랫폼 사업으로 확장하고자 한다"며 "이를 위해 시세 예측 시스템, 부동산 인덱스 정보를 연구·개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금융 설계에서 가장 중요한 게 변동성 분석인데, 앞으로는 부동산 시세 흐름을 분석할 수 있게 되면 지금보다 더 안정적인 금리와 더 좋은 혜택으로 금융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허지윤 기자 jjyy@chosunbiz.com]




서울시 "빌라도 시세 정보 제공하겠다"


2019.03.14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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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제도

 

     

민긴기업과 데이터 공유



일부선 "정확한 시세 힘들 것"



서울시가 민간이 보유한 정보를 활용해 빌라(다세대·연립주택)의 정확한 시세를 파악해 제공한다. 아파트에 비해 거래량이 적어 시세 확인에 어려움을 겪는 실수요자의 불편을 개선하고 시장 가격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서다.

 

14일 서울시에 따르면 시는 스마트시티 조성의 일환으로 소형 공동주택 매매 정보를 제공하는 시스템 구축을 추진 중이다. 민간기업과 손잡고 다양한 종류의 데이터를 종합해 소형 공동주택 매매시세를 내놓는다.

 

빌라는 개별성이 강해 시세 측정이 어렵다. 한 동에 10가구 남짓으로 비교 대상이 적고 빌라마다 연식, 상태 등이 다르기 때문이다. 실수요자는 대부분 공인중개사가 제시하는 가격 정보에 의지했다. 민간 정보업체도 빌라 가격 동향을 구체적으로 파악하지 않는다. 국가기관인 한국감정원도 지역별 가격 통계만 산출한다. 서울시는 앞으로 은행이 보유한 담보 대출 데이터를 기반으로 감정평가법인을 통해 검증할 계획이다. 기존 실거래가도 참고해 시세를 파악한다.


    

부르는 게 값으로 불리는 빌라 분양가의 안정에 도움이 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했다. 예를 들어 신축 빌라는 사업주가 결정하는 분양금액이 곧 시세다. 서민 집값 부담으로 이어진 이유다.

 

 

일부에선 준공 연도·입지·평면 등 변수가 많아 특정 빌라의 시세를 제시하는 게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빌라 시세 파악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꾸준하게 제기돼 왔지만 아파트와 같이 획일적인 값을 구하기 어려워 누구도 나서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최진석 기자 iskr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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