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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에 밀려 퇴역한 전차·자주포…‘귀하신 몸’
기사 게시 일시 : 2013-01-05 03:55
군수품 불용물자 어떻게 처리하나?
한때 늠름한 위용과 더불어 튼튼한 국방을 상징하는 무기체계로서의 역할을 해 왔지만 이젠 세월에 밀려 퇴역해 있는 전차·자주포들이 지금 특별한 대우를 받고 있다. 비록 퇴역한 신세(?)지만 국제 원자재 공급 부족으로 철강재 값이 하루가 다르게 치솟자 갑자기 귀하신 몸이 된 것.
2005년에 비해 2.5배나 높은 가격이 형성된 데다 여기저기서 구매 요청이 들어오면서 관계자들은 요즈음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육군군수사령부 보급처 일반물자과 재산처리계획관 제인규(50) 사무관. 심하게 표현하면 그의 하루 일과는 물가 변동에 따른 감정평가를 새롭게 하고, 이를 바탕으로 계약을 체결하는 것이 전부일 정도다. 제사무관은 “고철 가격이 지난 한 해 동안 36%가 올랐는데, 올해 들어서는 벌써 100%나 급등했다”며 최근의 가파른 상승 추세를 들려 줬다. 이 때문에 제사무관은 “평소 여러 일간지 경제면을 보면서 관심 분야를 체크해 둔다”면서 “계약을 맺기 전에 시중동향, 물가정보, 예상 경제 흐름 등을 꼼꼼히 확인한다”고 말했다.
이렇게 귀하신 몸이 된 전차는 60년대부터 K계열 궤도장비가 나오기 전까지 우리의 산하를 지켜 온 M계열 전차. 그리고 비슷한 시기의 자주포들이다. 새옹지마란 말이 정확한 표현은 아니겠지만 우리 군의 전력화 계획에 따라 최신형 무기체계에 자리를 내준 이들이지만 재활용 측면에서 요즈음 새롭게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이들과 같이 불용판정을 받아 폐자재로 분류되는 무기체계들은 어떤 게 있고, 또 어떻게 처리될까?
육군군수사에 따르면 항공기·장갑차를 비롯해 트럭과 승용차 등 차량에서부터 폐유, 구형 방한복, 전투화, 수리부속류에 이르기까지 불용품의 항목만 무려 1099개에 달한다. 일반적으로 이들의 운명(?)은 매각 또는 물물교환으로 정해진다.
먼저 매각. 특히 한 대에 무려 40톤이 넘는 전차는 매각장비 중에서 가장 인기가 높다. 순수한 쇳덩어리로 고철 가격만 따져도 1000만 원이 훌쩍 넘는다. 일정 수준의 방호력을 가져야 하는 특성상 전차나 장갑차·자주포의 장갑 부분은 최상의 품질을 자랑한다.
올해 매각할 전차나 장갑차는 2000여 톤. 금액만도 11억2000만 원에 이른다. 그렇다고 이들 장비를 통째로 팔 수는 없다. 군사 용도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해체하는 비군사화 작업을 거쳐 나온 쇳덩어리만 매각대상이 된다.
차량은 사정이 조금 다르다. 전투차량은 비군사화 작업을 거치고, 상용차량은 민간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원형 그대로 매각하는 것.
육군의 경우 지난 한 해 동안 승용차·버스·트럭 등 85종 5564대를 매각했다. 여기서 발생한 수익금은 27억6000만 원. 이 수익금이 현금으로 들어오지는 않는다. 병영에서 부족한 25인승 중형버스 56대로 대신 납품받는다. 또 각종 장비 운영 중 발생한 폐유 3320여 톤(1만6609여 드럼)은 12억1000만 원어치의 윤활유로, 폐식용유 2470여 톤은 4.9억 원 가량의 세제와 고무장갑·취사복 등 취사장에서 필요한 소모품으로 물물교환돼 들어온다.
이와는 다른 운명을 지닌 불용품도 있다. 전쟁기념관이나 지자체 등에 전시용으로, 또는 대학 등에 교육용으로 기증되는 것이다.
지난 4월 29일 충남 계룡시 계룡대 초입에 설치된 F-4E 전투기(팬텀)가 그 좋은 사례. 해군도 2007년 3월 퇴역한 해군 상륙함 수영함을 경남 고성군에 인도한 것을 비롯해 강원 강릉시에 전북함을, 충주시에 참수리-219 등을 지원한 바 있다. M47전차 등 M계열의 전차와 장갑차, 박격포, 구난전차도 안보교육의 일환으로 대여되고 있다.
불용품 가운데 일부는 고국을 떠나 해외에서 새 둥지를 틀기도 한다. 얼마 전에는 구형 방한복과 방한모 17만 장이 몽골 등 개발도상국에 수출됐다. M1·CAR 소총 등 구형화기도 미국으로 되팔려 나갔다.
이뿐만이 아니다. 장병들이 신다가 반납한 전투화 562톤도 정글 지역이 많은 동남아시아에 수출해 외화를 획득하고 있다. 전투화를 수출하지 않고 소각할 경우 환경업체에 톤당 15만 원의 비용이 들어가 연간 1억 원의 예산을 사용했다. 수출로 예산도 절감하고 일정 수입을 벌어들여 일석이조의 효과를 얻는다. 물론 이들 물품은 계약 시 특정국가와 시중에 유통되지 못하도록 특수조건이 전제돼 있다.
다른 군도 마찬가지다. 공군은 지난 17일 2004년 퇴역한 T-37훈련기의 엔진과 수리부속을 전량 파키스탄으로 수출하기로 최종 계약서를 체결했다. 이로 인해 얻는 수익만도 13억 원이다. 고철로 매각했을 경우와 비교해 약 850배 이상의 이득을 본 셈이다.
육군군수사 보급처 일반물자과장 류승훈(52·기행3기) 대령은 “올해 군수사가 폐자재 처리로 예상되는 수입은 58억8000만 원”이라며 “부대별로 저장공간이 부족한데 조기에 처리해 줌으로써 저장·관리상의 부담을 덜어 주고, 폐유나 폐식용유 등을 수거해 환경보호에도 이바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불용품(不用品)’은 이제 달러를 벌어들이는 ‘불(弗)용품’이 되고 있다. 수명이 종료되거나 도태된 장비나 물자들이 다시 장병들의 복지·병영환경 개선사업의 한 부분을 담당하고 있다.
▲ '군수품 불용 결정·처리 규정'
불용품은 2007년 9월 개정된 국방부 훈령 832호 '군수품 불용결정 및 처리에 관한 규정'에 근거해 처리된다. 불용품은 육·해·공군 각 군에서 연간 및 중기 장비도태 계획을 수립 선정하고 합참의 승인을 얻어 결정된다.
처리는 크게 매각(국내외)과 물물교환, 기증(대여)의 세 가지. 전투장비나 차량들은 시기별로 적정 가격을 산정해 국방부의 승인을 받아 매각된다.
폐유·폐식용유·폐탄피 등의 물자류는 필요한 물품으로 대납되는데 육본과 국방부의 승인을 얻어 업체와 계약되면 각 군지사를 통해 사용부대로 물자가 납품된다.
다만 불용장비인 경우 군 표준 및 상용차량으로, 폐식용유는 취사용 비품 또는 취사용 소모품으로 인수할 수 있다.
이주형 기자 < jataka@dema.mil.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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