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지하상가 권리금, 법으론 보호받기 어렵다는데..

채종원 입력 2017.06.25. 17:30 댓글 2

2015년 상가임대차거래법 "국·공유재산 속한 상가는 권리금 보호대상 아니다"
1998년 서울시 조례에선 "승인땐 타인에 양도 가능" 법적분쟁 여지 여전
입주상가 상인 거센 반발에 정치권, 임대차법 개정 등 권리금 보호 움직임도
민간상가 권리금 보호기간 '최대 5년 vs 5년 이상' 놓고 최근 하급심 판결 엇갈려

◆ 레이더뉴스 / 市 "임차권거래 금지" 조례개정 추진…뜨거운 논란 ◆

서울 지하상가 중 상권이 크고 권리금이 비싼 곳 중 하나인 강남역 일대 지하상가. 상인들은 "권리금으로 전 재산을 내고 들어왔는데 하루아침에 서울시 조례 개정으로 권리금을 받지 못하게 됐다"며 울분을 터트리고 있다. [매경DB]
서울시가 최근 지하도상가의 임차권 양도·양수를 금지해 사실상 권리금을 폐지하는 조례 개정안을 입법예고하면서 현재 이곳에서 장사하는 상인들의 권리금이 보호 대상인지 논란이 되고 있다. 25일 법조계에 따르면 현재 전국 법원에서 권리금 관련 소송이 총 2000건 넘게 진행 중이며, 이 가운데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소유한 건물 내 입점한 상인들의 권리금이 보호 대상인지에 대한 소송은 아직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보호 기간'이 권리금 소송의 주요 쟁점인 가운데 조례 개정 후 서울 지하상가 상인들이 소송을 제기한다면 새 쟁점이 될 수 있다.

◆ 지자체 소유 상가는 2015년 법에서 권리금 보호 제외

현행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은 2015년 5월 13일 개정됐다. 개정된 법률의 핵심은 10조 3항부터 8항까지 신설된 권리금 법제화다. 눈여겨볼 점은 '권리금 적용 제외' 조항(10조 5항)이다. 즉 상가건물에 입점해 장사하는 상인들의 권리금을 모두 인정하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이 조항에 따르면 입점한 상가건물이 '유통산업발전법'상 대형 마트·백화점·복합쇼핑몰 등이거나 '국유재산법'과 '공유재산 및 물품관리법'상 국·공유재산이면 상인들의 권리금은 보호받지 못한다.

즉, 현행 임대차보호법상 서울시가 관리하는 지하상가는 애초에 권리금 보호 대상이 아니다. 1996년 기부채납 형태로 서울시 소유가 된 지하상가에서 장사하고 싶다면 공유재산 및 물품관리법에 의거 경쟁 입찰에 참여해야 한다. 다만 1998년 제정된 현행 서울시 조례에 따르면 지하상가 관리 주체인 서울시설관리공단의 승인을 받으면 계약 기간 내에 다른 사람에게 점포를 넘길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유동인구가 많은 강남·명동·잠실·을지로 지역 등의 지하상가에서는 임차인 간에 권리금이 오가고 있다. 이에 서울시는 상위법령과의 충돌 해소, 불법 권리금 근절 등을 목적으로 상인들 간의 양수·양도를 금지하는 내용으로 조례를 개정하겠다는 것이다. 새로운 조례안이 서울시의회를 통과하면 현재 상인들은 계약 기간 종료 시 해당 점포를 반환해야 하고, 새 점포 주인은 무조건 경쟁 입찰로 선정한다. 현재 권리금을 주고 들어온 상인은 사실상 이를 회수하기 어렵게 된다.

◆ 상인들 승소 가능성은 불투명

지하상가 상인들이 향후 법적으로 대응하면 권리금을 회수할 수 있는지도 관심을 끈다. 앞서 언급한 대로 국·공유재산 내 상인들의 권리금도 보호해줘야 하는지가 쟁점이 될 수 있다.

가장 쉽게 생각해볼 수 있는 방법은 상인들이 서울시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하는 것이다. 하지만 법조계에서는 상인들의 승소 가능성을 높게 보지 않는다. 일단 법에 이미 권리금 보호 제외 대상을 명확하게 두고 있어 이를 반박할 만한 법리를 제시하는 게 쉽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다.

설령 임대차보호법이 개정된 지 2년여에 불과해 권리금 관련 내용을 사전에 알지 못했다는 주장을 펼쳐도 재판부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재경지역 한 부장판사는 "법률의 부지(법적으로 문제되는 걸 몰랐다) 여부는 애초에 판단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서울시가 조례를 개정하면 해당 조례의 무효를 주장하는 행정소송을 제기하는 방법도 있다. 다만 행정자치부가 법령 위반이라는 유권해석을 내려 서울시가 조례를 개정한 것이라 상인들이 이기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대안으로 거론되는 게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하는 것이다. 민사담당 판사는 "서울시의 조치가 헌법 제23조 1항이 규정한 '재산권 보장'에 위배되는지를 다퉈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헌재가 위헌 여부를 결정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려 실효성은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 현행 임대차보호법 개정 가능성

지하상가 상인들의 권리금 문제는 국회에서 임대차보호법이 개정되면 논란은 가라앉을 수 있다. 현재 국회에는 권리금 적용 제외 대상을 규정한 10조 5항을 개정하는 내용의 임대차보호법개정안이 4건 올라와 있다. 백재현 더불어민주당·곽상도 자유한국당·노회찬 정의당 의원이 발의한 법안은 3000㎡가 넘는 전통시장 내 상인들의 권리금을 보호해주자는 안이다. 정성호 민주당 의원의 법안은 10조 5항 자체를 삭제하는 내용이다.

향후 국회에서 10조 5항을 개정하는 논의가 이뤄져 본회의 통과까지 갈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 정성호 의원안에 대해 오봉근 국회 입법조사관은 검토보고서를 통해 "일반경쟁(경쟁 입찰)을 통해 점포 계약자를 선정하도록 규정한 국유재산법과 공유재산 및 물품관리법과 상충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며 "기존 국·공유재산 관리체계에 직접적인 영향을 줘 혼란이 발생할 우려도 있다"고 지적했다.

◆ 엇갈리는 권리금 보호 기간

국·공유재산과 달리 민간 소유의 상가건물에 입점한 상인들에게는 권리금 회수 보장 기한을 몇 년으로 볼 것인지가 관심사다. 매일경제가 판결검색 시스템을 통해 '권리금' '보장' '회수' '기한' '5년' 등의 키워드를 순차적으로 더해 검색해 본 결과, 현재 권리금 회수 보장 기한과 관련된 1·2심이 총 96건 진행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다만 아직 대법원 판례가 없어 하급심에서 판결이 엇갈리고 있다.

현행 임대차보호법에는 개인 소유 건물 입점 시 임차인의 권리금 회수 보장 기한을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지 않다. 이 때문에 권리금 회수 보장 기한을 계약갱신청구 기간과 동일한 5년으로 볼 것인지가 주요 판단 대상이다. 현재까지 하급심 판결 중 대부분이 임차기한 5년까지만 권리금을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달 대전지법 민사1부(부장판사 이영화)는 20년간 같은 점포에서 떡집을 운영해온 A씨가 건물 주인 B씨 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 항소심에서 A씨의 권리금을 인정해 줬다. 법조계에 따르면 항소심에서 임차기간 5년 이상을 보장해준 첫 판결이다. 현재 이 사건은 대법원에 상소장이 제출됐다.

이와 관련해 노회찬 의원은 임차인의 계약갱신요구권 행사기간을 10년으로 확대하고, 기간에 관계없이 임차인의 권리금 회수 기회를 보장하는 내용의 임대차보호법개정안을 발의했다.

[채종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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