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평가, 이대론 안 된다!
 
유준상 기자 기사입력 2016/10/14 [12:03]

▲ 감정평가는 조합원들이 자신의 자산 가치를 평가 받고 이를 근거로 비례율과 분담금, 환급금 등이 산출되기 때문에 가장 민감하게 받아들여지는 과정이다. <사진=본보 DB>     © KNS서울뉴스



[유준상 기자] 감정평가는 정비사업의 ‘뜨거운 감자’다. 순탄한 진행을 보이던 사업장들도 감정평가 단계에 들어서면 정비사업조합(이하 조합)-조합원 혹은 조합원-감정평가업자 간 갈등을 빚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에 본보는 감정평가로 인한 갈등의 본질이 무엇인지 알아보고, 개선책을 심층적으로 고찰해 봤다.
 
‘돈’과 직결되다 보니… 다수 현장서 평가 금액 놓고 ‘설전’
청주 탑동2구역, 인천 십정2구역, 의정부 중앙생활권2구역, 부산 구포3구역 등 곳곳서 불만 폭주
 
 

정비사업의 감정평가는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이하 도시정비법)」 제48조제5항1호에 의거해 선정된 2명 이상의 감정평가업자(▲재개발ㆍ도시환경정비는 시장ㆍ군수가 모두 선정 ▲재건축ㆍ가로주택정비는 시장ㆍ군수, 조합이 각각 1인 이상씩 선정)가 해당 사업지의 토지 및 건축물의 종전자산과 종후자산에 대한 평가를 진행해 그 평균값으로 감정평가를 산출하는 제도다. 
 

특히 재산 가치 증식을 주된 목표로 하는 정비사업의 특성상 이 단계에서 조합원들은 자신의 자산 가치를 평가 받고 이를 근거로 비례율과 분담금, 환급금 등이 산출되기 때문에 가장 민감하게 받아들여지는 단계이기도 하다. 막힘없이 잘나가던 다수 현장들이 감정평가 단계만 들어서면 ‘갈등’을 빚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실제로 올 하반기 들어서만 다수 사업지에서 감정평가와 관련한 갈등이 포착됐다. 충북 청주시 재개발의 선봉장인 탑동2구역이 대표적이다. 이곳은 사업 진행과 별개로 일부 주민들이 감정평가 결과에 반대해 진통을 겪고 있다. 최근 감정평가 금액이 나온 후 이들은 청주시청 앞에 모여 “현재 낮은 감정가론 조그만 전세를 얻어 이주도 하지 못할 형편이다. 사업 초기와 지금의 조건에 괴리가 있다”며 재개발 조합 해산과 사업 철회 등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러한 일은 다른 구역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지난 6월 시공자 선정에 성공한 뒤 사업에 탄력이 붙고 있는 인천 십정2구역(주거환경개선)도 그중 하나다. 이곳 주민들은 최근 감정평가 결과 종전자산 평가 금액이 터무니없이 낮게 평가된 데 반발하고 있는 형국이다. 십정2구역 한 토지등소유자는 “당초 3.3㎡당 최소 600만 원에서 700만 원 상당의 보상 금액을 예상했는데 감정평가 결과 3.3㎡당 300만~600만 원 수준에서 평가돼 괴리감이 크다. 10여 년 전 공시지가 수준에서 평가됐다”고 하소연했다. 
 


경기 의정부시 중앙생활권2구역(재개발)에서 새어 나오는 불만도 앞선 두 곳과 별반 다르지 않다. 유관 업계 등에 따르면 이곳 60대 이상 고령층 주민들은 종전자산은 너무 낮고, 종후자산은 너무 높게 평가돼 추가부담금이 우려된다며 “재개발이 필요 없다. 현 주거지에서 그대로 살도록 해 달라”며 의정부시장과의 면담을 요구하며 저항하고 있다. 
 


부산 구포3구역(재개발)도 감정평가로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의 행보가 분주해지고 있다는 전언이다. 업계에 따르면 이곳 비대위는 최근 조합 사무실 앞에서 ‘조합 해산 및 재개발 반대를 위한 규탄 집회’를 개최했다. 이들은 “재건축과 달리 재개발은 구청에서 감정평가업자를 일방적으로 선정해 조합원들의 자산 가치에 세심한 이해도가 부족하다”, “새집에 들어가기 위한 추가부담금이 너무 높다”는 등의 주장을 하며 다른 조합원들을 설득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감정평가 전반에 대한 ‘이해 부족’ㆍ내 평가액만 올리려는 ‘이기심’ 등서 갈등 생겨
해묵은 논쟁거리 ‘평가 시점’ㆍ‘한남더힐’서 드러난 감정평가사의 ‘고무줄 평가’ 등도 문제
 
 



그렇다면 이 같은 갈등을 부르는 본질적인 원인은 무엇일까? 감정평가 전문가들은 감정평가 단계에 들어서 빚어지는 갈등의 다수는 감정평가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들은 종전자산의 총 평가액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올려야 권리가액이 높아진다는 인식이 가장 대표적인 ‘선입관’으로 꼽으며, 이 또한 정비사업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발생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즉 개인의 종전자산 평가액이 곧 권리가액으로 인정되는 것이 아니라 비례율(총수익에서 총사업비를 제외한 개발 이익을 종전자산 총평가액으로 나눈 비율)을 곱해 권리가액이 산출되기 때문에 분모인 종전자산 평가액을 늘려 봤자 그만큼 비례율이 낮아져 결국 권리가액은 같아지는 결과를 초래한다. 
 



▲ 감정평가 갈등의 대다수는 종전자산의 총 평가액 상승을 바라는 욕심 때문이다. 하지만 분모인 종전자산 평가액을 늘려 봤자 그만큼 비례율이 낮아져 결국 권리가액은 같아지는 결과가 도출된다. <사진=본보 DB, 편집=박진아 기자>     © KNS서울뉴스

또 한 가지 요소를 ‘이기심’ 때문이라는 지적이 높다. 전체가 아닌 자기 지분의 종전 자산 감정평가액을 올려 자신의 권리가액만을 증가시키는 조합원들이 있어서다. 
 


하나감정평가법인에서 재개발ㆍ재건축 사업본부 부본부장을 맡고 있는 오학우 감정평가사는 “종전평가 금액은 제로섬(zero-sumㆍ어떤 시스템이나 사회 전체의 이익이 일정해 한쪽이 득을 보면 반드시 다른 한쪽이 손해를 보는 상태)이다. 종전자산 총평가액은 그 특성상 일정 범위에서 더 이상 움직일 수 없는 한계가 있지만 일부 조합원의 종전자산 금액이 상승된다면 그 비율만큼 전체 조합원들의 출자 비율은 상대적으로 감소하게 된다. 이는 감정평가 원리가 악용된 사례”라고 설명했다. 
 


오 평가사는 이어 “또 일부 조합원들은 정비사업 진행 중에 부동산을 매입한 경우 자신의 매입비용보다 낮게 평가받는다면 이를 손실로 인식하기 때문에 평가에 반대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감정평가사의 평가 결과에 대한 ‘신뢰’가 낮다는 문제도 있다. 여기에는 평가 진행이 아무리 객관적인 방법과 절차에 의해 이뤄진다 하더라도 감정평가사의 주관적 개입을 완벽하게 배제할 수 없는 현실이 자리하고 있다. 감정평가업계에 따르면 현재 감정평가는 국토교통부에서 배부한 표준지(대상 토지를 평가할 때, 평가의 기준으로 삼는 필지)가 이용되는데 지역별 표준지를 지정, 이를 기준 삼아 인근 토지를 평가하는 방법이 쓰인다. 경사, 접근성, 토지 모양 등을 고려해 주변에 플러스 혹은 마이너스 요인을 반영해 산정되는데 그 과정에서 감정평가사의 주관적 의견이 필연적으로 개입될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갖고 있어 토지등소유자의 불만이 가중되고 있다. 
 


현행법상 감정평가의 평가 시점을 최초 사업시행인가일을 기준으로 삼고 있는 점도 꾸준 논쟁거리다. 도시정비법 제48조제1항제4호는 ‘분양 대상자별 종전의 토지 또는 건축물의 명세는 사업시행인가의 고시가 있은 날을 기준으로 한 가격으로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사업시행인가 이후 시간이 오래 지나도 사업계획 변경과 부동산 경기 변화 등이 반영되지 않아 다수 구역이 사업시행 변경인가 이후로 법제를 개설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법원과 법제처가 평가 시점이 ‘최초 사업시행인가일’이냐 ‘사업시행 변경인가일’이냐

를 두고 상이한 판단을 내놓아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법제처는 2014년 7월 도시정비법 제48조제1항

제4호가 명시한 ‘사업시행인가의 고시가 있은 날’이 불분명해 감정평가의 기준일은 사업시행 변경인

가의 고시가 있은 날로 볼 수 있다고 유권해석 했다. 반면 대법원은 지난해 10월 ‘사업시행인가의 고

시가 있은 날(종전자산평가의 기준일)’을 ‘최초 사업시행인가 고시가 있은 날’로 판단하며 법제처와

대척점에 섰다. 
 


감정평가사와 평가 대상 조합원 간 ‘부정 청탁’이 이뤄져 공정한 평가가 이뤄지지 않을 수 있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3.3㎡당 8000만 원을 웃도는 고급 아파트인 용산구 ‘한남더힐’에서 벌어졌던 ‘고무줄 평가’가 대표적인 예다. 이곳에서는 2013년 분양전환을 앞두고 임차인(입주자)-임대인(사업자) 간 감정평가액이 크게 달라 논란의 중심에 선바 있다. 양측의 격차는 1조4000억 원에 달했다(임차인 측 1조1699억 원/임대인 측 2조5512억 원). 논란이 커지자 정부가 개입했고, 양측의 평가가 모두 적절하지 못했다는 결론이 나왔다. 아울러 평가 과정에서 임차인 측이 ‘한남더힐’을 싸게 분양 받을 목적으로 감정평가사와 짜고 감정평가액이 낮게 나오도록 한 정황이 포착돼 행정ㆍ형사처분으로 이어졌다. 결국 ‘한남더힐’ 사태는 감정평가액을 낮추려는 자와 높이려는 자 사이의 싸움에서 ‘심판’ 역할을 해야 할 감정평가사가 의뢰인으로부터 금품 등을 받고 의뢰인 입맛에 맞는 평가를 실시한 대표적인 사례로 남게 됐고, 이는 감정평가의 신뢰성을 좀먹는 결과를 초래했다. 
 


‘각론’ 차원에서 해결책 찾아야… ‘욕심’은 줄이고 ‘학습’은 늘리자!
업계 “여전히 갈 길 멀어… 법제 정비 위해 민관이 함께 노력해야”
 
 


감정평가 단계에서 일어나는 이 같은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을 마련하는 데 있어 감정평가 전문가들은 ‘총론’이 아니라 ‘각론’ 차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하고 있다. 
 


우선 각 조합의 개별 주체인 조합원이 ‘욕심’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한국주택문화연구원 노우창 기획1실장은 “감정평가 단계서 갈등을 빚는 상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실 오래전 토지나 건축물 모두 평가 금액 이하로 매입한 원주민들이 대다수다. 눈앞에 평생에 한 번 올까 말까 할 ‘재산 가치 증식’의 기회가 놓여 있는 상황에서 주거환경 개선보다는 ‘돈 욕심’이 앞서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실제로 이들이 원하는 대로 종전자산 평가 금액이 나올 경우 현금청산 비중이 늘어나는 게 이를 방증하고 있다. 지나친 욕심은 정비사업의 ‘독’이다”라고 진단했다. 
 


감정평가 전반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한 교육 시스템 마련 등 제도적 손질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상당하다. 한 도시재정비업계 전문가는 “우리나라는 평생에 걸쳐 모은 재산을 부동산에 투자하는 경향이 많은데 정비사업은 이 부동산을 갖고 재산 증식을 이루는 투자의 성격이 짙다. 그런데 이러한 중차대한 사업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사업 주체인 조합원들조차 교육을 받을 기회는 찾아보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잘 몰라서’ 일어난 감정평가 관련 갈등이 사업 지체로 이어져 사업성을 떨어뜨리는 결과로 이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정부 차원에서 관할 지자체별 체계적인 교육 시스템을 마련해 구축하도록 재정ㆍ인력ㆍ인프라 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욕심’은 줄이되 ‘학습’을 늘려 갈등 요인을 없애자는 얘기인데, 이를 위해서는 법제 차원에서도 뒷받침이 필요하다는 것으로 요약되는 대목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이미 변화가 시작됐다. 지난달(9월) ‘감정평가 선진화 3법’이 시행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감정평가의 객관ㆍ공정성 강화 ▲공시가격 적정성ㆍ효율성 개선 ▲한국감정원 기능 조정 등이 담겼다. 


 
이와 관련해 오학우 감정평가사는 “감정평가 선진화 3법은 ‘감정평가의 내실을 다지고 공신력을 강화하는 방안’과 ‘한국감정평가사협회와 한국감정원과의 업무 조정’ 등 크게 두 가지 내용을 골자로 한다. 이 중 국민들이 감정평가의 서비스 수요 주체로서 기대할 수 있는 내용으로는 「감정평가 및 감정평가사에 관한 법률」 제3조 단서 조항에 감정평가의 기준으로 현재와 같이 표준지 공시지가의 적용을 원칙으로 하되 다만 적정한 실거래가 있는 경우 이를 기준으로 평가할 수 있다는 점과 부실 감정평가에 대한 징계 처분이 한층 강화된다는 점 등이다”라고 설명했다. 
 


또한 「한국감정원법」 제12조의 업무 조항 중 시행령에 위임된 내용 가운데 정비사업과 관련된 부분은 타당성 검증을 위탁 받거나 의뢰 또는 요청 받는 경우로 한하는 것으로 조정된 것에 대해 감정평가업계는 ‘감정평가법인과 한국감정원 간의 역할을 명확히 구분해 일선 사업장들이 겪을 수 있는 혼란을 방지할 것으로 기대한다’는 게 감정평가업계의 전반적인 평가로 파악됐다. 
 


다만 업계는 감정평가가 정비사업에 있어 ‘동맥경화’의 원인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여전히 갈 길이 멀다고 입을 모은다. 무엇보다 ‘감정평가사와 평가 대상자인 조합원 간 부정 청탁의 연결 고리 차단’, ‘종전자산평가의 기준이 되는 사업시행인가일의 명시화’, ‘감정평가 교육을 위한 제도적ㆍ재정적 지원’ 등에 정부가 좀 더 깊이 고민하고 이를 반영해 조속히 법제화해야 한다는 점에서 민관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이들은 한목소리로 주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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