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의 바른 독해…‘역사적 맥락’ 안에서 읽기

정치사상사의 고전들을 훑어보다 보면 때로 저자가 왜 이런 얘기를 하고 있을까 의문스러운 경우가 있다.

 

 

예컨대 존 로크는 자신의 <통치론> 1편에서 누가 아담의 후계자인지를 묻고 있는데, 전통적인 정치사상사가들에게 이는 자연 상태에 대한 논의로 시작되는 2편에 비해 무언가 적절성이 떨어지는 부분으로 보였다. 그래서 그들은 아예‘별로 중요하지 않게 보이는’ 1편을 제외하고 2편만 떼 내어‘제2통치론’만으로 로크의 정치사상을 재구성했다.

 

 

 

홉스도 마찬가지다. 그의 명저 <리바이어던> 뒷부분은 마법과 천사와 사탄의 권능들에 대한 논의로 채워져 있다. 이 역시 국가를 일종의‘운동하는 물체’로 본 ‘유물론자’ 홉스에게는 어울리지 않는(그래서 이해되지 않는) 대목이었다. 통상적으로 학자들이 그 부분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케임브리지의 정치사상사가 퀜틴 스키너의 <역사를 읽는 방법>(돌베개·2012)에 실린 글들은 바로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하고 있다.

 

 

과거의 사상가들이 생산해낸‘고전들’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스키너의 답은, 아주 단순하게 말하자면, 그것을 역사적 콘텍스트 속에서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종래의 전통적인 독해방식에서 중요시된 것은 한 고전 텍스트가 ‘어떤 구체적인 역사적 상황’에서 생산되었는가가 아니라 그것이 과연 어떤 ‘인류의 지혜’를 담고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요컨대 고전 텍스트란 특정 시간 속에서 특정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씌어졌다기보다는 본질적으로 시간을 넘어서는‘영속적인 문제’에 대한‘영속적인 대답’을 구하기 위해 집필된 것으로 보는 것이다. 피터 라슬릿의 존 로크 연구에서 촉발된 이른바 케임브리지 ‘담론사 운동’은 바로 이러한 전통적 방식에 도전하여 고전 텍스트를 역사의 일부로 보려는 시도이다. 존 던, 존 포칵, 퀜틴 스키너 등이 1세대를 대표하는 학자들이다.

 

 



이들이 쓴 텍스트 독해방법에 대한 글들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이 포칵의‘정치사상사: 방법론 탐구’(1962)와 스키너의 ‘관념사에서의 의미와 이해’(1969)이다. 후자는 <역사를 읽는 방법> 4장에 수정, 게재되어 있다.

 

 

이 글들의 가장 기본적인 전제는 사상사를 사상 혹은 철학 그 자체와 구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상사는 엄연히 역사의 일부이므로,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역사학의 기본 규칙인 사실에 기초한 실증성과 시간의 차이를 인정하는 시대착오성의 개념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즉, 어떤 사상(들)을 담고 있는 텍스트는 그것이 쓰인 시점에서의 의미탐구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에‘고전’이라는 것을 썼던 사상가는, 흔히 생각되는 것과는 달리, 결코 체계적인 철학자가 아니었다. 그들은 종종 어떤 구체적인 정치 문제를 염두에 두고 글을 썼을 뿐, 영속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고전 텍스트는 역사화 되어야 하며, 그런 관점에서 그것을 읽어야 적절한 이해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런 공통적 문제의식 하에서도, 포칵이 어떤 텍스트가 어느 정도의‘추상화’ 단계에 있는가를 분석하여 그것이 기초한‘언어’(로크의
자유주의적 언어, 해링턴의 공화주의적 언어 등)를 식별해내고자 했다면, 스키너는 텍스트를 생산한 저자의 ‘의도’를 복원하는 데 특히 초점을 맞추었다. 이를 위해 그가 기대고 있는 언어이론은 후기 비트겐슈타인의 언어놀이이론과 존 오스틴의 화행론이다. 이에 따르면, 한 저자가 어떤 글(발화)을 쓰고 있을 때, 그는 동시에 어떤 행위(발화수반력)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스키너는 바로 이 행위가 글로 치면 곧 저자의 의도에 해당된다고 보았다.


스키너가 뜻하는‘의도’(intention)는 ‘동기’(motive)와 구별되는 것으로, 단순하게 말하자면 책의 내용이 의미하는 것을 말한다. 예컨대, 마키아벨리는 왜 <군주론>을 그런 식으로 썼을까? 메디치가에 잘 보여 관직을 얻으려고? 당시의
이탈리아 사회가 그런 식의 권모술수로 점철되어 있기 때문에? 전자는 저술동기에 해당하며, 후자는 단지 당시의 사람 모두가 처했던 삶의 조건일 뿐 구체적 의도와는 거리가 멀다. 스키너는 그 답을 르네상스 휴머니즘의 계승과 전복이라는 지점에서 찾았다. 사실 이 책은 <역사를 읽는 방법>이라기보다는 <정치사상 텍스트를 읽는 방법>에 관한 것이며, 그 답은‘역사적으로’ 읽는 것이다. 어려운 글이지만 관심 있는 독자의 일독을 권한다. 
 


곽차섭 | 부산대 교수·사학과
입력 : 2013-03-01 19:07:47수정 : 2013-03-01 21: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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