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집중]선박가격 급락... "배 사야할 때 배 팔고 있다"

【서울=뉴시스】정의진 기자 = 지난 3월 이스라엘 최대선사 짐라인(ZIM LINE)은 삼성중공업에 발주했던 1만2600TEU급 컨테이너선 5척에 대한 발주계약을 전격 해지했다.

왜 그랬을까.

당장은 계약금, 선수금 등 계약 해지에 따른 손실이 크지만 계약을 지속해서 추가로 지불해야 할 비용만으로도 연비가 더욱 향상된 새로운 선박을 발주할 수 있다. 심지어 최근 선박가격이 떨어져 오히려 돈을 남길 수도 있다.

 

 

글로벌 해운시황 분석기관 알파라이너(Alphaliner)에 따르면 라파 다니엘리 짐라인 최고경영자(CEO)는 "2007년 당시 척 당 1억7000만 달러(약 1930억6900만원), 총 15억3000만 달러(약 1조7376억원)에 삼성중공업과 계약을 체결했지만, 현재 해당 선박의 선가는 1억 달러 수준으로 무려 7000만 달러 가까이 떨어졌다"고 밝혔다.

선급금을 날리더라도 재발주를 하는 것이 이익이라는 분석이다. 짐라인은 당시 선급금으로 3000만 달러(약 399억원) 가량을 삼성중공업에 건넨 것으로 알려졌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공급과잉으로 손실을 보느니, 발주를 취소하는게 낫다는 판단일 것"이라며 "선가도 많이 떨어진 상황이라 기회를 봐서 더 싼 값에 배를 살 수 있다"고 말했다.

배 값이 걷잡을 수 없이 추락하고 있다. 해운업이 호황을 누리던 2007년과 비교할 때 절반 수준도 안된다. 한국선주협회에 따르면 2007년 2만5931달러(1TEU)였던 컨테이너선의 가격은 지난해 1만1639달러로 떨어졌고, 벌크선도 같은 기간 896달러(1DWT)에서 461달러까지 내려갔다.

2007년 이후 꾸준히 하락세를 걸어온 배 값이 10여년 만에 최저점을 찍은 셈. 배를 사기에 좋은 시기라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막상 배를 구입하는 해운사는 보기 드물다. 업계 관계자는 "짐라인과 같이 발주를 취소해 보다 싼 선박을 구입하려는 사례만 종종 눈에 띈다"고 전했다.

한 해운업계 관계자는 "현재로선 배를 구입한다고 해도 필요가 없다"며 "이미 선박은 흘러넘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한진해운은 최근 그리스 선주 다이애나시핑에 4000TEU급 컨테이너선 한진말타호를 '매각 후 임대' 방식으로 팔았다. 현대상선도 29만9000DWT급 초대형 원유운반선(VLCC)을 매각할 계획이다. STX팬오션 역시 조만간 LNG선박을 매각하기로 했다.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침체 터널에 빠진 해운업황의 미래를 확신할 수 없다는 점이 주 요인"이라며 "글로벌 경기 침체의 직격탄으로 해상물동량이 언제 회복될 것인지 좀처럼 가늠하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해상물동량을 가늠할 대표적인 지표인 벌크선운임지수(BDI)는 올들어서도 여전히 700포인트대에 머물고 있다. 한창 때인 2007년(7074)과 비교하면 10분의1 수준에 불과하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해운업계가 저운임 기조에서 벗어나려면 선박의 수급 균형을 맞추는 일부터 선행돼야 한다"고 지적, 배값이 아무리 싸져도 당분간 선박 신규발주는 증가하기 힘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jeenjung@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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