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러니의 일상

내가 알기에는 철학에 입문하는 사람들 중에는 문학 작품을 열심히 탐독하다가 철학을 공부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사람이 꽤 많다. (…) 예를 들어 어떤 청년이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을 읽고 진실된 삶의 방식이란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되었다고 하자. (…) 라스콜리니코프의 살인은 정당화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여러 가지 철학적인 문제를 던져준다. 사회적 정의가 무엇인지, 인간이 지켜야 하는 도덕률은 어떤 것인지, 양심이란 무엇인지 등등의 문제를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런 철학적인 문제를 고민하게 된 청년이 철학적인 해답을 얻기 위해 윤리학 입문서를 읽게 되었다고 해보자. 이 청년이 철학 책에서 얻게 되는 해답은 대체로 두 가지다. 벤담이나 밀 같은 공리주의자들이 말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은 선이다”라는 명제와 칸트 같은 의무론적 철학자가 말하는 “네 의지의 준칙이 항상 보편적 입법의 원리로서 타당하도록 행위하라”는 정언명법이 그것이다. 이런 명제들은 비판적인 사고를 전개해 나가기 위한 기준을 제시해 주기는 한다. 그런데 여기에는 라스콜리니코프가 겪고 있는 인생의 고민, 창녀인 소냐가 짊어지고 있는 삶의 문제와 고통 등등은 모두 사라진 채 도덕적으로 선한 행위란 무엇인가에 대한 차가운 정의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 그래서 철학 책에서 삶의 냄새를 맡기 전에 대부분 질려버리고 마는 것이다.
 - 문학과 철학의 경계(8쪽 ~ 9쪽) 인용

 

...............

 

 

 

이 글들은 2007년 6월 8일 췌장암으로 돌아가신 리처드 로티(Richard Rorty) 교수의 철학을 문학 작품과 일상을 통해 내 나름대로 해설한 것에 불과하다. 프래그머티스트인 로티는 참과 거짓, 현상과 본질, 이성과 감성, 주관과 객관, 절대와 상대, 보편과 특수 등과 같은 개념 틀을 깨뜨리려고 했다. 로티의 철학함의 태도는, 본질적이며 영원불변한 진리를 추구하는 데서 비롯되는 철학자들의 지적인 강박으로부터 벗어나려는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 문학과 철학의 경계(12쪽)에서 인용 

 


 

1. 욕망과 환상

슬라보예 지젝《삐딱하게 보기》,
이해경 《그녀는 조용히 살고 있다》

그 난해한 철학적 내용에도 불구하고 한국에 여러 권의 책이 이미 번역되어 있는 슬라보예 지젝의 주요 저서 ‘삐딱하게 보기’의 앞부분을 우연히 읽게 되었다. 역시 너무 어려워서 내용을 이해하기는 곤란했다. 이런 책이 그래도 꽤 팔렸다는 것은 아마도 스티븐 호킹의 난해한 책 ‘시간의 역사’가 한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는 것과 비슷한 현상일 것으로 짐작이 된다. 아니면 내가 한국의 평균독자들의 글 읽는 수준을 따라잡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 18쪽 - 19쪽에서 인용

 

2. 동감
막스 셸러 《우주에서 인간의 지위》와《동감의 본질과 형태들》, 한수영 《공허의 1/4》

 

3. 인간의 유한성
토마스 쿤 《과학혁명의 구조>,
이청준 《벌레 이야기》

4. 삶은 계속된다
로버트 브랜덤 《Making it Explicit》, 대니얼 클로즈《고스트 월드》, 나카무라 후미노리《흙 속의 아이》

 

5. 소시민의 삶
한스 게오르크 가다머《철학자 가다머 현대의학을 말하다》, 마르틴 발저 《도망치는 말》

 

6. 죽음에 대해
마르틴 하이데거《존재와 시간》
필립 아리에스 《죽음 앞의 인간》

 

7. 성(聖)과 속(俗)
다윈의 진화론, 리처드 도킨스《이기적 유전자》, 문순태《포옹》

 

8. 절제의 쾌락
에피쿠로스의 쾌락주의, 밀란 쿤데라《느림》

공동체의 삶

 

9. 사회정의의 요건
존 롤스 《정치적 자유주의》,
박민규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10. 진리가 우리를 자유케 할까
버나드 윌리엄스《Truth & Truthfulness》,
조지 오웰《1984》

 

 

11. 자유주의 아이러니스트
리처드 로티《우연성 아이러니 연대성》,
최인훈《광장》

아이러니스트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의 마지막 어휘가 다른 사람에게서 가지고 온 것이 아닌, 온전히 자신만의 것이라는 확신이다. 아이러니스트는 자신의 용어로 자신의 삶을 요약할 수 있기를 원한다. 이것은 무엇보다도 일차적으로는 아이러니스트 자신의 사적인 완성과 관련이 있다. 자신의 인생이 자신을 넘어선 어떤 것에 의해서 좌우되거나 자신보다 큰 힘에 동화되는 것을 거부하고 스스로 자기 삶의 우연성을 긍정하는 것, 곧 삶의 자율성을 획득하는 것이야말로 아이러니스트의 관심사이다.

자유주의는 이러한 아이러니스트의 사적인 완성에 대한 관심을 지켜주는 장치이다. 그렇기 때문에 잔인성에 대해 반대하는 자유주의의 연대는 아이러니스트의 사적인 완성을 위한 노력보다 앞서야 한다. 플라톤을 계승하는 철학자들은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하리라고 외쳐대지만, 사실은 자유가 없다면 진리도 없다. 그래서 로티의 ‘자유주의 아이러니스트’는 각자가 저마다의 마지막 어휘를 가지고 고민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밀실’을 확보하기 위해 실천적인 연대의 ‘광장’에 나서는 것을 우선적인 과제로 삼는다.

p131~132 인용

 

 

 

12. 소비와 자유
지그문트 바우만《자유》, 제레미 리프킨《소유의 종말》,
장 보드리야르《소비의 사회》, 정미경 《무언가》

 

13. 지식인의 역할
플라톤《이상국가》, 황현《매천야록》

세월이 흘렀고 세상은 바뀌었다. 불의에 항거했던 민주주의의 투사들이 정권의 주역이 되었다. 80년대 총학생회장을 지냈던 민주투사 치고 국회의원이 되지 않은 자가 있다면 팔불출 소리를 듣는 세상이 되었다. 더 이상 독재정권은 없으며, 매판 재벌도 없다. 그리고 옛 투사들의 자녀들이 대학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 대학생들의 얼굴을 보면 80년대 대학생들의 얼굴에 드리워있던 그늘이라곤 찾아볼래야 찾을 수가 없다.
- 151쪽

 

14. 관용의 문제
마이클 왈쩌《관용에 대하여》, 김애란《침이 고인다》

서로가 모두 죽을 것 같은 두려움이 현실화될 때, 여기에서 관용이 나온다는 것이다. 그래서 관용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나오고, 관용은 같이 살기(공존) 위해서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것이다. 관용이 이성에서 나왔다고? 관용이 조화를 위한 것이라고? 이건 이성의 환상이라는 것이다. 세상이 그렇지 않은데 머릿속에서 나온 이념만 가지고 세상을 바꾸지는 못한다. 이런 태도는 왈쩌의 표현대로 ‘나쁜(악성) 유토피아’일 뿐이다. (송재우, 역자 후기에서 (마이클 왈쩌, ‘관용에 대하여’ 미토, 2004))
- 168쪽

 

15. 휘트먼과 나라 만들기
안토니오 네그리《제국》,
리처드 로티 《미국 만들기》, 월트 휘트먼《북소리》

 

16. 정치적인 것
샹탈 무페《On the Political》, 아베 코보《모래의 여자》

 

17. 인정 질서
프리드리히 헤겔《정신현상학》,
전상국《우상의 눈물》

 

18. 본다는 것
질 들뢰즈와 펠릭스 가타리《철학이란 무엇인가》, 주제 사라마구《눈먼 자들의 도시》
우연적이고 철학적인 진리

요즘 학생들의 상식으로 통하는 들뢰즈와 가타리의 책을 읽어 볼 기회가 있었는데, 포스트니체주의자인 이들은 아예 ‘본다는 것’을 제쳐두고 철학에 대해 생각하는 듯이 여겨졌다. 이들의 저서는 그 의미가 대단히 불확실한 용어들로 가득 차 있어서 명확히 이해하기는 불가능했는데,  어쨌든 이들은 철학이 무엇인지를 논하는 책에서 ‘본다는 것’의 중요성을 처음부터 논외로 하고 있다. 이들은 철학이 개념을 창조하는 기술이라고 주장하면서 관조, 반성, 소통은 철학의 본령이 아니라고 말한다.
- 210쪽

 

19. 마음의 존재
르네 데카르트《방법서설》,
정영문《달에 홀린 광대》

 

20. 자살하는 인간
알베르 까뮈《시지프의 신화》, 김훈《칼의 노래》

 

21. 텍스트의 바깥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논리철학 논고》,
아멜리 노통브《살인자의 건강법》

 

22. 소통의 목표
위르겐 하버마스《사실성과 타당성》,
파트리크 쥐스킨트《비둘기》

 

23. 구원 없는 종교
김용준《과학과 종교 사이에서》,
심윤경《이현의 연애》

 

24. 올바른 말
언어철학자들, 엠마뉘엘 카레르《콧수염》

 

25. 이성과 감성의 모호한 경계

프리드리히 니체《비극의 탄생》,
토마스 만《베니스에서의 죽음》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