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소개

저자 : 조정진

38년간 공기업 정규직으로 일하다 2016년 퇴직 후 4년째 시급 노동자로 일하고 있다. 버스 회사 배차 계장, 아파트 경비원, 빌딩 주차관리원 겸 경비원을 거쳐 버스터미널에서 보안요원으로 일하다 쓰러져 해고되었다. 7개월간의 투병 생활 이후 지금은 주상복합건물에서 경비원 겸 청소원으로 일하고 있다. jajw0408@naver.com

목차

들어가며 7
첫 번째 일터. 버스 회사 임계장이 되다 10
두 번째 일터. 아파트 경비원이 되다 48
세 번째 일터. 빌딩과 아파트를 오가며 132
네 번째 일터. 터미널 보안요원의 일 208
나가며 247
감사의 글 258

책 속으로

8쪽: 고용주들은 최저임금이 조금 오르면 업무량은 그대로인데도 인원을 대폭 줄였다. 또 무급 휴게 시간을 계속 늘려 최저임금이 올라도 시급 노동자는 더 받는 것이 없었다. 이것이 시급 노동의 현장이며, 은퇴 후 일터에 뛰어든 단기 비정규직 고령자들의 세상이다. 수십 만에 달하는 노인들이 믿기지 않는 비참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지만, 노령 노동에 대한 사회적 안전망은 전혀 없다.

39쪽: 나이 들면 온화한 눈빛으로 살아가고 싶었는데 백발이 되어서도 핏발 선 눈으로 거친 생계를 이어 가게 될 줄은 몰랐다. 문득 터미널을 둘러봤다. 구석구석을 쓸고 있는 등이 굽은 할아버지들과 늦은 오후 영화관으로 출근하는 할머니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 터미널만 봐도 인력의 80퍼센트가 비정규직이고 그중 많은 수가 임계장들이었다. 이 고단한 이름은 수많은 은퇴자들이 앞으로 불리게 될 이름이기도 할 것이다. 임계장은 나 혼자가 아니었다.

 

45쪽: “당신이 아직 세상 물정 모르니까 해주는 말인데, 버스 회사에서 업무상 재해라는 건 교통사고 하나뿐이야. 당신이 회사 버스에 치였어? 아니지? 당신이 한눈팔고 일하다 다친 거지? 그래 놓고 회사에 책임을 떠밀어? 내일부터 출근하지 마.”

86-87쪽: 똥을 무서워해서는 청소원 노릇을 못 하듯이 음식물 찌꺼기의 악취를 두려워해서는 경비원 노릇을 못 한다. ...... 잡균과 오물이 묻은 손으로는 밥을 먹을 수 없고, 주민의 심부름도 할 수 없으며, 택배를 다룰 수도 없으니, 하루 평균 손을 씻는 횟수가 서른 번, 어떨 때는 쉰 번이 넘을 때도 있었다. 하루에 몇십 번씩 손을 씻는 이가 경비원 말고 누가 있을까? 우리의 손은 하루 종일 더러운 쓰레기를 만지는 손이지만 그런 이유로 세상에서 제일 깨끗한 손이라고, 감히 자부한다.

109쪽: 실제로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2017년 들어 최저임금이 6030원에서 6470원으로 상승했는데, 그 상승분 440원을 주기 싫어서 무급 휴게 시간을 한 시간 더 늘린 상황이었다. 경비원들이 모이면 웅성웅성 울분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122쪽: “자네는 경비원도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그 생각이 잘못된 것이라네. 사람이라면 어떻게 이런 폐기물 더미에서 숨을 쉴 수 있겠는가? 사람이라면 어떻게 이런 초소에서 잘 수 있겠어? 사람이라면 어떻게 석면 가루가 날리는 지하실에서 밥을 먹을 수 있겠는가? 자네가 사람으로 대접받을 생각으로 이 아파트에 왔다면 내일이라도 떠나게. 아파트 경비원이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경비원은 할 수가 없어.”


126쪽: “여러분은 고령자가 일하는 모범 사례이십니다. 집에서 따분하게 노는 것보다 일을 하시니 건강에도 좋고 용돈도 벌 수 있으니 얼마나 좋아요?” 기대에 부풀었던 가슴이 서늘해졌다. 의원은 경비원이 ‘집에서 노는 것이 따분해서’ 일을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130쪽: “아이고, 선생님, 아파트에 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어떤 간 큰 구청장이나 시의원이 그런 조례를 만들려고 하겠어요? 당장 유권자의 절반이 넘는 아파트 주민들이 반발할 것이고 그리되면 다음 선거는 포기해야죠.”

152쪽: 졸음을 이기기 위해 봉지 커피를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생으로 씹어 먹는 버릇이 생겼다. 하루 종일 서서 일하느라 뜨거운 물에 커피를 타먹을 시간도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180쪽: 하지만 경비에게는 꽃잎도 치워야 할 쓰레기다. 종일 꽃잎을 쓸고 있는 내게 고참이 한 수 가르쳐 준다면서 말했다. “이 사람 경비원 되려면 아직 멀었군. 그렇게 꽃잎만 쓸다가 다른 일은 언제 하나. 꽃은 말이야, 봉오리로 있을 때 미리 털어 내야 되는 거야. 꽃이 아예 피지를 못 하게 하는 거지. 그래야 떨어지는 꽃잎이 줄어들거든. 주민들이 보게 되면 민원을 넣게 되니까 새벽 일찍 털어야 해.”

196쪽: “잘 들으세요. 예전에 118동 경비원이 지하실에서 죽었다고 합디다. 혼자서 뒈지는 바람에 한참 뒤에야 알게 되어 난리가 났대요. 난 경비원이 또다시 죽어 나가는 꼴은 보고 싶지 않소. 그러니 지하실에 들어가서 쉴 생각은 애당초 안 하는 게 좋을 거요.”


199쪽: 명절이면 경비원의 하루는 뜀박질로 바뀐다. ...... 경비원에게 명절의 ‘3대 공포’는 선물 상자 택배와 명절 쓰레기, 방문 차량이다.

217쪽: 똑같이 터미널에서 일한다 해도 터미널고속의 직원이냐, 파견 근로자냐에 따라 마시는 공기도 달랐다. 차량이 내뿜는 매연과 분진은 비정규직인 파견 노동자들이 마시고, 터미널고속 직원들은 신선한 공기를 마신다. 정규직은 공기 순환 장치가 달린 사무실에서 근무하고 용역인 경비원들은 매연으로 가득한 지하 주차장과 노상에서 일하기 때문이다.

219쪽: 맨 마지막 10호를 보면, “터미널고속의 직원이 지정하는 기타의 제반 업무”라는 포괄적 규정이 하나 더 있다. 이 규정에 따른다면 터미널고속의 직원은 경비에게 무슨 일을 시켜도 규정 위반이 아니었다. 이런 규정이 갑질을 부르고 경비원을 구속하는 족쇄와 굴레가 됐다. 전에 일했던 아파트와 고층 빌딩은 근거도 없이 갑질을 했지만 대기업은 갑질을 정당화하는 규정까지 만들어 놓고 있었다. 감독자들은 이 규정을 내세워 정규직의 고유 업무에 속하는 일들도 경비원에게 떠넘겼다. 대체로 고객과 실랑이가 벌어질 만한 일이나 운전기사들과 부딪혀야 하는 껄끄러운 일들이었다.

236쪽: 입사 첫날, 나는 별 생각 없이 미세 먼지 마스크를 지급해 달라고 요청했다. 직원이 멀뚱히 나를 쳐다보더니 돌아섰다. 등 뒤로 혼잣말이 들렸다. “염병…… 다 늙은 경비가 얼마나 오래 살고 싶어서…….”

238쪽: 이 터미널에서는 하루 열 시간 이상을 삭풍 한가운데 서서 일해야 한다. 견디다 못해 용역 회사에 방한 장비를 요청하니 터미널고속에 말하라고 하고 터미널고속에 말하니 용역 회사에 말하라고 했다. 추위를 견디다 못한 경비원들이 파카를 지급해 달라고 좀 더 높은 사람에게 건의해 봤다. 그는 이렇게 되물었다. “노인도 추위를 탑니까?”

244쪽: “병이 났다고요? 그럼 빨리 사직서를 제출하세요. 그러면 실업 급여는 받을 수 있도록 권고사직으로 처리해 드리겠습니다. 사직서를 내지 않으면 무단결근으로 해고하게 되며 이 경우 실업 급여를 못 받게 됩니다.” ...... “우리 회사는 규정에 질병 휴가란 것이 없습니다. 근로계약서 9조의 ‘특별한 사유가 있을 때는 우선적으로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라는 조항에 의한 적법한 조치입니다.” 닫기

출판사 서평

공기업에서 30년 넘게 일하다 퇴직한
63세 ‘젊지 않은 노동자’가
퇴직 후 경비로 일하면서 쓴
시급 노동 일지

50대 이상 시급 노동자 5년 새 7배 증가,
노인 경제활동인구 421만 명 시대,
노인 빈곤율 세계 1위 국가의
경비, 청소, 간병 등을 책임지고 있는
노인 노동자의 초상


* 줄거리


첫 번째 일터. 버스 회사 임계장이 되다

 

작은 버스 회사의 배차 계장으로 시급 일터에 처음 발을 들인 저자의 좌충우돌 적응기가 펼쳐진다. 25년간 자리를 지켰던 전임자가 바로 해고되는 바람에 인수인계도 받지 못한 채 일을 시작하게 된 저자는 공기업에서의 버스 배차 경험과 경쟁사 베테랑 ‘사부’의 조언에 힘입어 1인 3역을 해내는 데 성공하지만, 결국 3개월을 채우지 못하고 탁송 작업을 하다 허리를 다쳐 사흘의 질병휴가를 신청하자 해고되고 만다.

 

두 번째 일터. 아파트 경비원이 되다

 

아픈 허리를 끌고 일주일 만에 다시 아파트에 취직한 임계장의 경비원 생활이 펼쳐진다. 30년 넘은 오래된 아파트의 두 개 동 350세대를 담당하는 경비원으로서 각종 쓰레기 분리수거, 주차 관리, 소음 분쟁, 주민들의 갑질, 각종 잡역과 심부름들을 감당하면서도 성실한 노동을 멈추지 않는 저자의 모습이 눈물겹다.

 

세 번째 일터. 빌딩과 아파트를 오가며

 

격일제 근무 조건을 이용해 아파트에 이어 고층빌딩까지 투잡을 뛰게 된 저자의 월화수목금금금 24시간 극한 노동기가 펼쳐진다. 고층빌딩에 함께 몸담은 다른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아파트 옆 편의점의 청년 알바생들, 그리고 중등 검정고시에 도전하는 청소부 할머니와의 우정도 감동적이다. 하지만 빌딩에서는 VIP의 갑질로 해고되고, 아파트에서는 자치회장의 심기를 거스른 죄로 결국 재계약에 실패해 또다시 실업자가 되고 만다.

 

네 번째 일터. 터미널 보안요원의 일

 

배차 계장으로 있을 때 사귀었던 ‘사부’의 소개로 터미널고속의 보안요원으로 취직한다. 터미널고속이 대기업이었기에 이전보다는 나은 노동환경을 제공해 주리라 큰 기대를 품고 입사하지만, 이런 기대는 처참히 무너져 간다. 공중화장실을 마주보고 있는 지하 숙소에서 공용 침구를 덮고 자야 하는 경비원 16명의 공동생활, 마시는 공기조차 차이가 날 만큼 심각한 정규직과 비정규직 차별, 포괄적 업무 규정에 입각한 더 많은 잡일이 그를 기다리고 있던 것. 저자는 결국 2018년 혹독한 무더위 속에서의 극한 노동을 견디지 못하고 쓰러지고 만다.

나가며

 

7개월간의 투병 생활을 거쳐 다시 주상복합 건물의 경비 겸 청소원으로 복귀한 저자가 4년째 임계장으로 지내면서 비로소 알게 된 것들을 전수한다. 최근 경비업법의 실행과 관련한 논란에 대해서도 당사자의 시선에서 따끔한 비판을 가한다. 지금도 그는 소독통을 둘러메고 온몸에 소독약을 뒤집어쓴 채 건물을 지키고 있다. 퇴근길에 마주친 터미널고속의 친구는 코로나19가 유행 중인 지금도 경비 16명이 변함없이 공동 숙소를 쓰며 침구를 같이 쓰고 있는 현실을 전한다. 하지만 둘은 200명이 닭장 같은 사무실을 같이 쓰며 일해야 하는 콜센터 노동자들을 이야기하며 서로를 위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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