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오카 기요시

저서(총 8권)
일본의 대표적인 수학자. 다변수 함수론 분야의 최대 난제인 ‘3대 문제’를 해결하여 수학자로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오사카에서 출생했고 교토대학 이학부를 졸업했다. 3년간 파리에서 연구 생활했으며 귀국 후에는 히로시마대학, 나라여자대학 등에서 후학을 양성했다. 다변수 해석함수론을 전공했으며, 그 분야에서 눈부신 업적을 남겼다. 오카 기요시가 발견한 ‘부정역 아이디얼’은 그때까지 해결하지 못한 문제들에 대한 해답을 내는 데 탁월한 실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그의 연구 업적은 프랑스 수학자 앙리 카르탕(Henri Paul Cartan)에 의해 계승되고 발전하여 ‘층 이론’을 구축하는 토대가 되었으며, 그로부터 수학의 새로운 분야가 만들어졌다. 이로써 대수기하학, 소립자론 등의 분야는 이 개념 없이는 설명조차 안 될 정도로 대단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오카의 아이디어는 지금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새로운 생명력을 발휘한다. 청빈한 학자였던 오카 기요시는 수학 발전에 이바지한 공로로 일본학사원상?문화훈장 등을 수상했으며, 『수학자의 공부』로 마이니치 출판문화상을 받았다. 『풍란』 『보랏빛 불꽃』 『봄바람 여름비』 『달그림자』 『나의 인생관』 『일본의 마음』 등 많은 저서를 남겼다.


추천의 말
저자의 말_ 수학이 인류에게 무슨 득이 되느냐고 묻는 사람에게
“제비꽃은 제비꽃으로 피어 있으면 그뿐!”

제1부_ 수학을 배우고 즐기는 삶

발견의 황홀한 기쁨


│ 정서가 깊을수록 경지가 넓어진다 │


 운명처럼 수학을 만나다 │


수학의 발견, 그 찬란한 순간 │


소리굽쇠가 공명하듯 교감하다 │



지력을 단련하는 방법 (수학의 본체는 조화의 정신이다. 푸앙카레의 말이다. 지력을 단련하는 방법으로 저자가 제시하는 것은 대뇌의 과열을 줄이고 틈을 많이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푸앙카레의 <과학과 가설>이라는 책을 추천한다. 이 책에서는 수학이 완성되어가는 과정에 가장 중요한 지력이 무엇인지 터득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한다.  



세 가지 직관에 관하여 │



학문을 즐기는 경지 │



마음의 눈으로 보는 수학 │



수학은 어학이 아니다 │



계산도 이론도 없는 수학의 세계 │



수학의 본질은 조화에 있다 │


흉터는 나무의 일부가 된다 │


원형은 생명의 불꽃으로 이루어진다 │


어른이 되어 나비를 잡지 않는 이유 │


책 읽기는 생각의 씨앗 뿌리기



제2부_ 학문의 중심은 정서다

교육에서 ‘시간이 걸린다’라는 말의 의미 │ 학문의 중심은 정서다 │ ‘수학적 자연’을 창조하는 도구, 정서 │ 도덕의 근본은 타인의 슬픔에 공감하는 것 │ 자기 머리로 사고하는 사람으로 키워라 │ 표정 변화가 위기의 조짐인 이유 │ ‘암중모색’을 통해 스스로 깨치기 │ 대자연이 인간의 아이를 키우는 방법

제3부_ 내가 사랑하는 예술

수학자와 화가의 차이 │ 예술은 ‘음(音)’을 의심하지 않는다 │ 내가 사랑하는 예술가들 │ 여성의 정서를 깊이 이해한 문학가들 │ 금의 시대, 은의 시대, 동의 시대 │ 예술과 물리학의 경계 │ 입자형 인간 vs. 파동형 인간 │ 내 삶에 영향을 끼친 스승과 벗들

해제_ ‘정서’를 중시한 천재 수학자 오카 기요시의 학문과 인생







이듬해에 나는 중학생이 되었다. 중학교 입시에 한 번 실패한 뒤였다. 로그(대수)를 배운 것은 2학년 때였다. 학기말시험에서 두 문제를 겨우 맞혔다. 총 다섯 문제가 출제되었다. 나는 가장 어려워 보이는 문제를 먼저 푸는 버릇이 있었다. 그 바람에 1학기에 배웠던 풀잇법이 기억나지 않아 당황한 나머지 풀 수 있는 문제까지 틀리고 말았다.
학기말시험은 더 중요했다. 나름대로 열심히 준비했다. 로그 영역에서 68점을 받았다. 참담했다. 방학을 맞아 집에 돌아왔다. 오랫동안 끙끙 앓았다. 점수가 목에 걸린 생선 가시처럼 마음에 걸린 탓이었다.

― 본문 35쪽 중에서

계절에는 만물이 깨어나는 시기인 ‘봄’이 있고, 죽은 듯 서 있는 나무에도 파릇파릇한 새싹이 돋아나는 시점이 도래하는 법. 인간도 마찬가지다. 그늘에 따스한 햇볕이 비쳐들고 나무가 싹을 틔우듯 문리(文理)가 트이고 지식이 팽창하는 시기가 온다. 오카 기요시에게 지식의 대폭발기가 찾아온 것은 고등학교 3학년부터 대학교 1학년 무렵이었다. 오카는 동급생들과 마찬가지로 당시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 중 한 명이었던 아인슈타인의 영향으로 교토대학 이학부 물리학과에 입학한다. 그러나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물리학이 자신과 맞지 않는다는 걸 깨닫는다.
오카는 고민 끝에 결국 물리학과에서 수학과로 전과를 결심한다. 야스다 료라는 강사의 수학 강의를 들은 직후였는데, 그 강좌의 기말시험에서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

평소 습관대로 어려운 문제부터 풀기 시작했다. 한 문제당 2시간 정도 걸려서 답안을 작성했다. 문제를 제대로 풀었다는 확신에 나도 모르게 “해냈다!”라고 소리 질렀다. 감독관으로 들어와 있던 야스다 선생과 주위 학생들이 모두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겸연쩍게 웃었다. 연필을 집어 들고 강의실 밖으로 나갔다. 공원으로 달려가 해가 저물 때까지 벤치에 누워 있었다. 그 뒤의 시험을 몽땅 내팽개친 채였다. 날아갈 듯 기분이 좋았다. 내 인생에서 찬란한 수학의 발견, 증명법에 대한 최초의 발견 순간이었다.

― 본문 43~44쪽 중에서

공부에, 특히 수학에 자신이 없었던 오카 기요시는 그 후 조금만 더 노력하면 자기도 얼마든지 수학을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그리고 내친김에 수학과로 전과를 결심하고 실행에 옮겼다. 이후 그의 고백대로 “수학과에서 보낸 2년여 동안 서서히 눈을 뜨는 날들이 쉼 없이 이어졌다.”

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천재보다는 평범한 아이에 더 가까웠던 오카 기요시가 다변수 함수론 분야의 오랜 난제를 풀고 세상을 놀라게 한 위대한 수학자가 된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한마디로 그것은 ‘몰입’의 힘이었다. 물리학에서 수학으로 학문 연구의 진로를 바꾼 뒤 오카는 차츰 수학의 세계에 몰입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여러 번 ‘발견의 황홀한 기쁨’을 맛보게 된다. 그 후에도 몰입과 환희의 순간이 오카의 삶에 자주 찾아왔으며, 오카는 점점 더 깊이 아름다운 수학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두 달 남짓 그 일에 매달리자, 세 가지 문제가 하나의 산맥처럼 명료하게 드러났다. 이듬해 3월부터 그 산맥을 오르기 시작했다. 미해결 문제인 만큼 녹록하지는 않았다. 처음엔 어찌해야 좋을지 알 수조차 없었다. 어디서부터 시작하여 어느 길을 타고 산맥을 올라가야 할지 감을 잡기 어려웠다. 아침마다 방법을 바꾸어 하루가 끝나는 밤까지 시도하고 또 시도했다. 올바른 방법인지조차 판단이 서지 않았다. 며칠을 걸려 문제를 풀어도 그것이 정답인지 오답인지도 알 수 없었다. 낙담하여 한숨짓는 날이 이어졌다. 그렇게 석 달여 시간이 하릴없이 지나갔다. 맥이 풀릴 대로 풀려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지극히 단순한 문제마저 풀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문제를 억지로 붙잡고 있으면, 10분 정도 긴장되었다가 그 뒤부터 집중력이 떨어졌다. 졸음이 쏟아지기까지 했다.
……(중략)
9월이 되어 돌아갈 채비를 하고 있을 때였다. 나카야 씨가 자기 집에서 아침 식사를 같이하자고 불렀다. 식사를 마친 뒤, 연구실에서 가만히 앉아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때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생각이 한 방향으로 가지런히 모이는 느낌이 들더니 점점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두 시간 반 정도 시간이 흐르자, 어디를 어떻게 손을 대야 좋을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두 시간 반이라고는 해도 생각을 정리하는 데 시간이 걸렸을 뿐 대상이 확연히 떠오르는 데는 놀라우리만치 적은 시간이 걸렸다. 아무튼, 말할 수 없이 기뻐서 내 생각이 맞는지 그른지 의심하지도 따져보지도 않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기차 안에서도 휙휙 바뀌는 차창 밖 풍경만 무심히 바라보았다. 한껏 고무된 나머지 수학에 대해서는 아무 생각도 품지 않은 채로 앉아 있었다.

― 본문 21~23쪽 중에서

이때 오카 기요시는 커다란 발견의 기쁨을 얻었다. 그 전후로 발견의 기쁨을 맛본 적이 여러 번 있었지만, 그렇게 커다란 기쁨을 느끼기는 그때가 처음이었다고 그는 고백한다. 이듬해부터 오카는 ‘다변수 해석함수론’이라는 표제를 사용하여 2년에 한 번꼴로 다섯 차례에 걸쳐 논문을 발표했다. 긴장과 이완이 반복되는 몰입 상태에서 발견한 것을 바탕으로 완성한 대작업이었다.

몰입은 그런 식으로 찾아오는 것 같다. 약간의 긴장감을 유지한 채 난생처음 가는 길을 걷듯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일을 계속 진행하기. 거기에 더해 졸음만 쏟아지는 일종의 방심 상태에 놓여 있기. 이 두 가지가 ‘발견’의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던 게 아닌가 싶다.

― 본문 23쪽 중에서

‘몰입 ― 발견’의 선순환 구조는 오카가 점점 더 심오한 학문 연구의 세계로 빠져들게 해주었고, 다변수 함수론 분야의 최대 난제인 ‘3대 문제’에 과감히 도전하도록 용기를 불어 넣어주었으며, 마침내 그 난제를 모두 풀고 새로운 수학 이론을 정립한 위대한 수학자로 우뚝 서게 하는 근원적인 힘이 되어주었다.

오카 기요시에 관한 재미있는 일화를 한두 가지 소개하고자 한다. 오카가 지칠 줄 모르는 몰입과 열정적 연구를 통해 구축한 수학 이론 ‘부정역 아이디얼’이 프랑스에 소개되었을 때 그 이론을 맨 처음 접한 수학자들은 그 이론의 독창성과 천재성에 매우 놀랐다고 한다. 게다가 그때까지만 해도 그 이론을 정립한 수학자에 관한 구체적인 정보가 전혀 없었던 터라 그 이론이 걸출한 수학자 한 사람이 아닌 천재 수학자 집단에 의해 탄생했을 것으로 추측했다고 한다. 오카 기요시가 얼마나 천재적이며 위대한 수학자인지를 다시 한번 실감하게 해주는 일화라 할 수 있다.
‘수학의 노벨상’인 필즈상 수상자이자 베스트?스테디셀러인 『학문의 즐거움』의 저자 히로나카 헤이스케와의 독특한 인연도 인상적이다. 아래의 내용은 『학문의 즐거움』에서 발췌한 내용이다.

오랜만에 귀국하여 일본의 많은 쟁쟁한 수학자들 앞에서 나는 약간 흥분하고 있었다. ‘특이점 해소’의 이론을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지, 강연 전에 상당한 시간을 들여서 정리했다. 그런 면에서도 그때 나는 기세등등했다.
오카 선생님은 제일 앞줄에서 내 강연에 귀를 기울이고 계셨다. 많이 늙으셨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때의 강연 내용은 이야기가 길어지니까 생략하고, 강연이 끝난 후 청강자들을 향해서 질문이 있으면 해 달라고 말하니까 제일 먼저 오카 선생님이 일어나셨다. 오카 선생님은 “히로나카 씨, 그런 방법으로는 문제를 풀 수 없습니다. 보다 더 어려운 문제로 만들어야 합니다. 당신같이 한다면 문제를 풀 수 없을 것입니다”라고 단언하셨다.
‘그런 방법’이란 이런 이야기다.
“제일 이상적인 문제는 이것이며, 이것은 이런 식으로 풀고 싶지만 현재 상황에서는 과욕이니까 이런저런 조건을 붙여서 이런 식으로 풀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러나 그것도 욕심을 부리는 것 같으니까, 보다 구체적인 설정을 하여 이런 단계까지 물러서서 이것을 풀면 어느 정도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런 식으로 문제를 이상적인 형태에서 자꾸 하락하는 식으로 강연한 것이다.
그런데 오카 선생님은 이런 방법으로는 풀 수 없다고 단언한 것이다.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나는 속으로 울컥했다. 오카 선생님은 수많은 업적을 세운 위대한 수학자일지는 모르지만, 당시 ‘특이점 해소’ 문제에 있어서 나만큼 시간과 노력을 들인 학자는 없었다. 또 나에게는 이 문제에 관한 업적을 이미 몇 개 세웠다는 자부심도 있었다. 그러나 워낙 훌륭한 선생님이었으므로 그 자리를 적당히 넘기려고 나는 말없이 머리를 숙였다.
그랬더니 오카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문제라는 것은 당신이 하는 방법과 반대로 구체적인 문제에서부터 자꾸 추상화시켜서, 마지막으로 제일 이상적인 형태로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문제가 이상적인 모양이 되면 자연히 풀릴 것입니다.”
똑같지는 않지만 대략 이러한 뜻의 말씀이었다.
나는 “충고의 말씀 감사합니다”라고 인사를 했지만 화가 쉽게 풀리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서 ‘쓸데없는 말만 하고 있네’라는 심정이었다. 그러나 오카 선생님의 그때 말씀은 적어도 이 문제를 푸는 데 있어서는 정확한 충고였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나는 미국으로 돌아간 후 이 문제에 대한 사고방식을 약간 바꾸어 보았다. 이상적인 형태로 해본 것이다. 그리고 수개월 노력한 결과 드디어 완전한 해결을 볼 수가 있었다. 선생님이 지적했듯이 문제에 여러 가지 조건을 붙이면 본질을 놓칠 수 있고, 반대로 이상적인 형태로 깨끗이 하니 본질이 뚜렷이 보이게 된 것이다.

― 『학문의 즐거움』 131~133쪽 중에서

우리가 잘 아는 바대로, 히로나카 헤이스케는 그의 나이 40세 되던 해인 1970년에 복소다양체의 특이점에 관한 연구로 ‘수학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필즈상을 받는 영예를 누렸다. 한데, 위의 인용문을 통해 그 과정에 오카 기요시의 본질을 꿰뚫는 통찰력과 혜안으로 빛나는 조언이 만만치 않은 조력자의 역할을 하였음을 알게 된다.
이 일화를 통해 우리는 두 가지 사실을 짚어낼 수 있다. 하나는, 오카 기요시가 얼마나 뛰어난 통찰력과 깊은 사고력을 지닌 학자인가 하는 점이다. 또 하나는, 자신이 평생을 쏟아부어 얻은 놀라운 지식과 통찰력을 독점하려 하지 않고 후학들과 기꺼이 나누고자 하는 넉넉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는 점이다.

『수학자의 공부』는 1963년 일본에서 처음 출간된 이후 반세기가 넘는 긴 세월 동안 세대에서 세대로 전해지며 대를 이어 읽히는 책이다. 이 책은 일본인들이 가장 사랑하고 존경하는 위대한 수학자 “오카 기요시의 삶, 문학, 예술에 대한 남다른 통찰”을 담고 있으며, 학문에 뜻을 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고민했을 ‘공부의 본질’에 대한 대가의 명쾌한 대답을 담고 있다.

‘정서’를 중시한 천재 수학자 오카 기요시의 학문과 인생

오카 기요시는 연구자로서 독창적이고 특이한 삶을 살았습니다. 프랑스 유학을 거쳐 여러 대학에서 교수로 지낸 후 30대 후반의 나이에 오카는 교편을 놓고 농사일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밭일을 하면서 사색에 몰입하여 연이어 위대한 수학적 발견을 이루어내지요. 오카가 구축한 다변수 복소함수론은 논리가 아닌 정서적 기능에 의해 태어났습니다.

위의 인용문은 제26대 교토대학 총장 야마기와 주이치가 2017년 교토대학 대학원 입학식에서 낭독했던 축사내용 중 일부다. 위의 문장을 읽거나 듣다 보면 ‘다변수 복소함수론이라는 공식 수학 이론이 ‘논리’가 아닌 ‘정서’적 기능에 의해 태어났다’라는 말에 의문이 들지도 모르겠다. 우리의 통념상 수학은 ‘논리’나 ‘이성’에 가까울지언정 ‘정서’나 ‘감성’과는 거리가 먼 학문이라고 단정하기 쉽기 때문이다.
오카 기요시는 수학은 인간의 학문이며, “인간의 중심을 이루는 것은 ‘정서’다”라고 말한다. 또한 그는 “수학은 ‘정서’를 지성이라는 문자판에 표현해내는 학문적 예술의 일종이다. 이 예술을 오래전부터 서양인들은 ‘수학’이라는 이름으로 명명해왔다”라고도 말한다. 그러면서 그는 수학사에 길이 남을 자신의 위대한 업적을 다음과 같이 겸손한 말로 표현한다.

인간의 정서를 표현하는 일, 여기에는 한 가지 방법이면 족하다. 자연에 순응하며 끊임없이 사색하고 몰입하기. 어떻게 보면, 나는 뭔가 대단한 일을 한 게 아닐지 모른다. 나의 동양적 정서를 프랑스어라는 도구를 사용하여 논문으로 표현한 것 외에 아무 일도 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 본문 10쪽 중에서

‘정서’를 중시하는 오카 기요시의 사고와 신념 체계는 학문의 울타리 안에 머무르지 않고 인간과 사회, 그리고 자연?우주의 정체성과 본질, 존재 이유와 의미의 영역으로까지 확장된다. 이 책에 나오는 오카의 다음 말을 통해 그런 생각을 엿볼 수 있다.

정서 중심의 조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사람의 마음은 쉽게 부패한다. 그리고 그것은 사회와 문화에도 천천히, 그러나 분
명하게 영향을 끼친다. 이렇게 보면, 사계절이 뚜렷한 일본에서 봄에 나비가 사라지고 여름에 반딧불이가 사라진 사실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알 수 있다. 아마도 농약의 영향 탓일 것이다. 농약을 듬뿍 뿌려서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야 할 만큼 거대한 호박을 생산한들 무슨 의미가 있는가. 호박을 기르고 생산하는 방법이 집 안의 자그마한 문이라고 한다면 제비꽃과 나비가 날아다니는 들판은 ‘대문’이다. 이처럼, 그 두 가지는 서로 바뀔 수도 없으며 간섭해서도 안 된다. 정서의 중심이 인간의 대문이라는 사실을 좀 더 많은 사람이 알게 되기를 바란다.

― 본문 84쪽 중에서

이 책에서 ‘정서’를 중시하는 오카 기요시의 생각이 가장 잘 반영된 내용은 다음의 문장이다.

사람들은 내게 묻는다. 무엇에 쓰려고 그렇게 열심히 수학을 연구하느냐고. 봄 들녘의 제비꽃은 제비꽃으로 피어 있으면 그뿐이지 않은가. 피어 있는 것의 소용은 제비꽃이 알 바 아니다. 피어 있느냐 피어 있지 않으냐, 중요한 문제는 그것뿐. 나도 마찬가지다. 나로 말하자면, 단지 수학을 배우는 기쁨을 먹고 마시며 살아갈 뿐이다. 수학을 배우는 기쁨을 먹고 마시며 사는 존재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수학을 배우는 기쁨이란 ‘발견의 기쁨’이다.

― 본문 19쪽 중에서

모든 역사적 위인들을 통틀어 학문(수학)을 배우고 연구하는 의미와 가치, 기쁨에 대해 이보다 근사하고 품격 있는 답을 내놓은 인물을 알지 못하겠다.

‘지적 에세이’를 넘어 ‘인문서’로, 인문서를 넘어
‘현대인의 필독서’이자 ‘빛나는 고전’으로!

고등과학원 수학난제연구센터 교수이자 2015년 ‘올해의 여성과학기술자상’을 수상한 김성연 교수(그는 이 책의 저자 오카 기요시 교수가 정립한 ‘다변수 복소함수론’을 전공한 학자다)는 이 책의 ‘추천의 말’을 통해 “수학자뿐 아니라 학문을 하고자 하는 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고민했을 ‘공부의 본질’에 대한 대가의 대답을 들어보길 권한다”라고 이 책과의 조우를 권한다.
서울대 재료공학부 교수이자 베스트셀러 『몰입』 등으로 많은 독자의 삶에 심대한 영향을 끼친 황농문 교수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며 이 책의 일독을 권한다.

나는 성선설이나 성악설을 믿지 않는다. 대신 인간은 동물로 태어나서 올바른 교육과 삶에 의해서만 좀 더 완성된 인간으로 성장한다고 믿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미완성된 인간이 더욱 완성된 삶을 살 수 있을까? 저자 오카 기요시의 삶이 바로 그런 삶의 한 예를 보여주기에 이 책은 주목할 만하다.……(중략)
평생 수학자로 살아왔지만 그의 삶, 문학, 예술에 대한 통찰은 남다르다. 아마도 음미하고 감상하고 사색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삶을 많이 경험하기보다는 깊이 경험했다. 그의 삶의 방식으로부터 인생의 완성도를 높일 수 있는 귀중한 힌트를 얻을 수 있기에 일독을 권한다.

― 본문 5쪽 중에서

이 책 뒤에 실린 해제를 쓴 인류학자 나카자와 신이치는 “나는 이 책이 현대인의 필독서가 되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하면서 그 근거로 “지금 이 순간에도 정서 구조의 파괴가 심각한 수준으로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이야기한다.

인간 본성과 교육 문제에 관한 탁월한 통찰과 혜안으로 빛나는 책

인간은 동물이다. 단순히 동물이라고만 할 수 없는 존재이기도 하다. 비유하자면, 떫은 감나무에 단감나무를 접붙인 것 같다고 할까. 동물성이라는 나무에 인간성이라는 나무를 접붙여 생긴 나무가 인간인 셈이다. 오늘날 교육 현장에서는 그 나무가 바르게 자라는지는 신경 쓰지 않고 빨리 자라기만 하면 좋다는 사고방식이 퍼져 있다.
자라는 일에만 몰두하다 보면 떫은 감이 열리기에 십상이다. 떫은 감은 단감보다 생장이 빠르므로 그만큼 서둘러 열매를 맺는다는 점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서두르기보다는 느긋한 편이 좋다. 이것이야말로 교육의 근본 원칙이라고 생각한다.

― 본문 134쪽 중에서

‘한 천재 수학자의 학문과 인생 이야기’로만 읽고 말기에는 『수학자의 공부』는 너무도 뛰어난 통찰력과 독창적 사고, 심오한 지혜를 담고 있다. 그 일단을 엿볼 수 있는 내용이 바로 위에 인용한 문장과 같은 문장이다. 오카는 인간 본성과 교육 문제를 논하면서 인간에 대한 몰이해, 철학과 지식의 부재가 가장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분야는 놀랍게도 교육현장이라고 개탄한다.
오카의 지적대로, 인간은 동물이면서 동시에 동물이라고만 할 수도 없는 존재이며, ‘동물성’이라는 나무에 ‘인간성’이라는 나무를 접붙여 생긴 나무다. 한데, 그 나무를 빨리 자라게 하는 일에만 신경 쓰고 몰두하다 보면 새로 접붙인 ‘인간성’은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하고 본래의 나무인 ‘동물성’의 나무만 자라게 된다. 한데, 안타깝게도 오늘날의 교육이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동물성의 잎과 줄기만 무성한 나무. 이런 나무들을 기르는 일에만 혈안이 돼 있는 것이 오늘날의 교육이라고 그는 일갈하는 셈이다. 오늘날 커다란 사회문제가 되는 청소년 폭력 및 범죄 문제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다음의 인용문을 읽어보면 오카 기요시의 인간 본성과 교육 문제에 관한 성찰과 문제의식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의무교육 기간은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다. 그와 비례하여 여성의 초경도 빨라진다. 교육과 여성의 이른 초경 사이에 무슨 관계가 있느냐고 따져 묻고 싶을 수도 있겠다. 나는 인간성을 등한시하고 동물성을 키운 결과라고 본다. 소나 말 같은 짐승은 태어난 지 한 시간도 안 되어 걸어 다닌다. 인간은 스스로 걷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 1년이 되어서야 겨우 자기 힘으로 걷기 시작한다. 그렇다고 인간이 소나 말보다 열등하지 않다. 걷기를 준비하는 그 1년이라는 시간 동안 평생을 살아가는 데 힘이 되는 중요하고 가치 있는 일을 준비하기 때문이다. 여성의 초경이 빨라진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만큼 육체적으로 빨리 성장한다는 걸 뜻한다. 이는 인간으로서 갖추어야 할 중요한 요소를 소홀히 여긴 결과가 아닐까?
타인에 대한 감정은 인간이 인간으로 존재하기 위해 갖추어야 할 요소다. 유인원에서 출발하여 인간으로 진화했다는 것은 타인의 감정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는 일은 녹록하지 않다. 가장 헤아리기 어려운 것이 인간의 감정이다.

― 본문 135쪽 중에서

태어난 지 한 시간도 안 되어 걸어 다니는 소나 말 같은 짐승보다 생후 1년이 지나서야 겨우 걸음마를 배우기 시작하는 인간이 훨씬 우월한 이유는 그 1년의 ‘걷지 못하는 시간’ 동안 차분히 ‘인간성의 나무’를 키우고 평생을 살아가는 데 힘이 되는 중요하고 가치 있는 일을 준비하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오카는 ‘여성의 초경이 갈수록 빨라진다’는 사실에서 오늘날의 교육이 맞닥뜨리고 있는 심각한 위기의 조짐과 문제의 심각성을 날카롭게 짚어낸다.
이 밖에도 이 책은 인간 본성과 교육 문제에 관한 무릎을 치게 할 만큼 날카로운 통찰과 심오한 지혜, 사물과 현상을 꿰뚫어 보는 탁월한 안목과 식견으로 빼곡하다. 교사를 비롯한 교육에 종사하는 사람은 물론이고 실제로 온갖 시행착오를 겪으며 자녀를 양육하는 부모와 예비부모에 이르기까지 교육 문제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누구나 꼭 이 책을 정독하기를 권한다.

[책속으로 추가]

내 경험을 한두 가지 이야기하겠다. 초등학교에 다닐 무렵, 아버지가 바나나 향이 나는 바나나 모양 과자를 사 오신 적이 있다. 다른 과자들보다 맛이 좋았으므로 아버지는 접대용으로 쓰자며 캔에 담아 따로 보관하셨다. 이후 손님이 오실 때만 우리는 그 과자를 조금 맛볼 수 있었다. 손님이 언제 오는가만 목이 빠지게 기다렸다. 손님이 오면 뛸 듯이 기뻤다.
당시에는 그 과자가 굉장히 맛있었다. 요즘에는 아니다. 이유가 뭘까? 대뇌 전두엽이 지속해서 과열되고, 언제든 원하는 과자를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을 먹어도 맛있다고 느끼는 사람이 적어졌다. ‘맛난 과자가 있고, 그걸 먹으면 맛있다.’
모든 일이 이렇게 간단하면 편할지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다. 이런 식으로 가다 보면 처음보다는 두 번째, 두 번째보다는 세 번째에 더 강한 자극을 찾게 된다. 같은 과자를 먹어도 맛있다고 느낄 수 없게 된다. 꽃처럼 한 곳에 뿌리 내리지 않고 자극을 찾아 이곳저곳 떠돌아다니는 방식이다. 책을 직접 읽기보다는 읽고 싶다는 생각 자체가 더 중요하다.
모란꽃은 아무리 길어도 열흘이면 지고 만다. 지는 순간, 나무에 새롭게 자리 잡고 1년이라는 시간을 들여 꽃피울 준비를 한다. 피는 기간은 짧지만 나무에 머무는 시간은 길다. 이것이 자연이다. 인간도 자연처럼 준비 기간이 필요하다. 수학에 의지와 열정을 가진 사람이라면 꽃피우는 시간보다 나무에 붙어 있는 시간이 훨씬 중요하다고 말해주고 싶다.
수학과 인류의 복지, 이익과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과거에는 수학에서 계산이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다. 기계문명이 발달한 오늘날에는 기계적인 것은 기계에 맡긴다. 조만간 논리학도 인간의 손을 떠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수학은 기계가 하지 못하는 영역만 다루게 된다. 조화 정신을 가르치는 것이다.

― 본문 중에서 (58~59p.)

교육과 학문의 주체는 ‘인간’이다. 이 점에서는 동양과 서양에 차이가 없다. 사람들은 이 사실을 쉽사리 지나친다. 인간은 학문을 연구하고, 다른 인간을 교육하거나 교육받는다. 그런 만큼 인간을 이해하자면 생리학적으로 관찰할 필요가 있다.
이는 인간을 학문의 중심으로 다루는 일이기도 하다. 유감스럽게도 그런 학문은 존재하지 않는다. 의학조차 인간을 생리학적으로 다루지 않는 듯하다.
인간에 대한 몰이해, 철학과 지식의 부재가 가장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분야는 어디일까? 놀랍게도 교육현장이다. 유아교육과 의무교육을 하는 이곳에서 인간에 대한 이해와 철학의 빈곤으로 인한 문제가 빈번히 나타나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인간은 동물이다. 단순히 동물이라고만 할 수 없는 존재이기도 하다. 비유하자면, 떫은 감나무에 단감나무를 접붙인 것 같다고 할까. 동물성이라는 나무에 인간성이라는 나무를 접붙여 생긴 나무가 인간인 셈이다. 오늘날 교육 현장에서는 그 나무가 바르게 자라는지는 신경 쓰지 않고 빨리 자라기만 하면 좋다는 사고방식이 퍼져 있다.
자라는 일에만 몰두하다 보면 떫은 감이 열리기에 십상이다. 떫은 감은 단감보다 생장이 빠르므로 그만큼 서둘러 열매를 맺는다는 점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서두르기보다는 느긋한 편이 좋다. 이것이야말로 교육의 근본 원칙이라고 생각한다.
― 본문 중에서 (133~134p.)

끔찍한 사고가 참사 후에 일어났다. 참사 직후, 상행 열차가 오기까지 5분 정도 시간이 걸렸다. 한데, 그 짧은 시간을 참지 못하고 제멋대로 선로를 걷던 사람들이 열차에 치여 죽었다. 신호를 잘못 보아서 일어난 사고이기는 했다. 어쩌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로 그렇게까지 비난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렇지가 않다. 의무교육 과정에 아이들이 스스로 깊이 생각하고 판단하는 능력을 키우는 과정을 소홀히 하여 일어난 일이기 때문이다.
공자는 제자 안회를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깨우친다”고 칭찬했다. 이것이 교육이다. 하나를 가르쳐 주고, 나머지는 암중모색의 과정을 통해 스스로 깨우치게 해야 한다. 스스로 깨닫지 못하고 누군가에 의해 주입된 지식은 죽은 지식일 뿐 아니라 정작 어떤 일이 닥쳤을 때 그 지식을 활용하여 대처하지 못한다. 이런 사람이 기계를 다루다가 미카와시마 참사와 같은 참담한 사건을 일으킨 뒤 잠이 덜 깨서 그랬다는 식의 변명을 늘어놓아도 이상하지 않은 것이다.
기계를 다루는 사람이 사용법을 완벽하게 숙지하지 않으면 이런 참사는 앞으로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여기에 ‘지력’이 소용되는 것이다. 하나를 가르친 뒤 스스로 생각할 시간도 주지 않고 모든 원칙을 주입하기만 하면 지력이 힘을 발휘할 여지가 배제된 ‘기계 머리’가 되고 만다.
― 본문 중에서 (163~165p.)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