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지 15

전복의 질문 17
무한의 작은 한계 29
지면, 단어와 여백의 전복의 장소 36
시간의 바깥, 책의 꿈 39
고독, 문체의 공간 44
거처에 앞서 51
재현 금지 55
모래에게 바쳐진, 닮음의 책의 세 가지 ‘서평 의뢰서’ 78
생각, 단어를 통한 존재의 창조와 파괴 84
열쇠-말, 생각을 통한 존재의 창조와 파괴 89
기원으로서의 부재, 혹은 인내하는 최후의 질문 93

모래 103

Le petit livre de la subversion hors de soupcon 123
옮긴이 말 216





예상 밖의 전복의 서
시인들의 시인, 에드몽 자베스 국내 첫 출간!
모든 한계를, 모든 담장을 무너뜨리는 전복의 글

“모든 책은 자신들의 원천이 될 최후의 책 속에 남을 것이다. 책들에 앞선 책. 책들이 그토록 닮으려 하는 닮을 길 없는 책. 어떠한 모방으로도 필적 못 할 내밀한 모범. 신화의 책. 유일무이한 책.”
‘?다’를 통해 한국에 처음으로 소개되는 에드몽 자베스의 작품. 그동안 국내 작가나 평론가들의 글이나 입으로만 전해져 국내 문단에 풍문처럼 떠돌던 에드몽 자베스. 시집 《예상 밖의 전복의 서》는 작가 생전 마지막으로 출간한 책으로, 그는 파울 첼란과 함께 서구 현대시사에 가장 큰 족적을 남겼다. 《예상 밖의 전복의 서》는 평생 한 권의 거룩한 ‘책’을 ‘짓고’ 싶었던 자베스의 세계와 문체를 여실히 드러내는 책이다.

“진정한 시인은 거처가 없다”
이집트 카이로에서 태어났지만 이탈리아 국적을 가졌으며, 반면 프랑스어를 모국어처럼 쓰고 사용하던 에드몽 자베스. 반유대주의가 팽배했던 현대사에서 끊임없이 떠돌아야 했던, 결국 시인이 될 수밖에 없었던 그.

1956년 제2차 중동전쟁이 발발하였고, 1957년 결국 자베스는 이집트에서 추방돼 프랑스로 망명을 간다. 프랑스에 안착한 자베스는 자신에게 부과된 ‘유대인’의 운명을 받아들여야 함을 깨닫는다. 이때 유대인으로서의 운명이란 자베스에게 특정 종교나 민족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자베스에게 유대인과 신이라는 단어는 은유다. 신은 공허의 은유요, 유대인은 신으로부터, 공허로부터 비롯한 고통인 것이다. _‘옮긴이 말’ 중에서

자신의 고유 집단과 언어를 벗어나면 누구나 ‘정체성’이라는 난관을 맞닥뜨리게 된다. 자베스 역시 마찬가지였으리라. 프랑스에서의 불안한 삶 속에서도 글쓰기를 멈추지 않던 자베스는 매일의 단상을 지하철 표에 빼곡히 기록해둔다. 마침내 1959년, 첫 시집 《내 거처를 짓다》가 발간되고 프랑스의 저명한 문인들은 극찬을 아끼지 않는다. 레비나스는 “진정한 시인은 거처가 없다"며 자베스를 높이 평가했다.
후에 자베스는 프랑스 국적을 취득하고 수많은 문학상을 수상하며 명성을 드높이지만,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고뇌는 멈추지 않는다. 그는 《책으로의 회귀》에서 이렇게 말한다. “처음에 나는 나 자신이 작가인줄 알았으나, 이윽고 나는 나 자신이 유대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내 안에서 작가와 유대인은 분간이 가지 않게 되었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유배지의 백성으로 거처가 주어지지 않았다는 것, 그런 의미에서 “인간은 모두 유대인이다”라고 자베스는 말한다.

글은 거울이 아니다. 쓰기란, 미지의 얼굴을 맞닥뜨리는 행위다._‘본문’ 중에서

이방인의 삶을 인정하고 자처하는 그의 글은 언어를 극한으로 몰아세워 문학의 한계, 언어의 한계를 벗어난다. 모든 한계를 무너뜨리려는, 모든 담장을 허물어버리려는 전복의 글. 그런 그의 글들은 프랑스 현대시 역사상 가장 독창적이면서도 깊이 있는 작품으로 인정받는다. 그의 책에서 우리는 ‘미지의 얼굴’을 맞닥뜨리고, 이방인이 된다. 그리고 우리의 언어, 우리의 한계로는 알 수 없는 그 모든 것을 선사한다.

‘전체로서의 책’, 《예상 밖의 전복의 서》
자베스는 《예상 밖의 전복의 서》에서 유일한 ‘책’을 말한다. 책의 물성이나 역사가 아닌 오로지 한 권의 책, 책들의 이데아와 같은 책을 완성한다. 그리고 우리가 자연스럽다고 여기는 모든 것에 질문을 던진다. 질문 자체가 책의 몸이고 정신이기에 무엇에도 종속되지 않고 끊임없이 자문하며 읽게 된다. 문체에 대해서, 글쓰기라는 행위에 대해서, 책에 대해서, 궁극적으로 삶에 대해서. 이 책은 자베스의 대표적인 일곱 권의 《질문의 책》과 세 권의 《닮음의 책》과 공명한다.

이 책은, 제목을 통해, 이미 그 제목을 포함하고 있는 작품을 가로질러, ‘질문의 서書’ 열 권과 관계한다. 이 또한, 의심할 바 없이, 전복에 속한다. _‘본문’ 중에서

《예상 밖의 전복의 서》는 그의 역대 작품들을 완결하는 책이자, 에드몽 자베스 자신의 삶에 마침표를 찍는 유일무이한 책이다. 이방인이라는 신분과 생계가 까마득했던 극한의 현실 속에서도 계속 글을 써내려간 그의 힘은 바로 이 책에서 드러나는 질문들이지 않았을까. ‘삶’은 순간의 전복, ‘죽음’은 영원의 전복이라 했던 에드몽 자베스. 1991년 삶을 마감한 그는 《예상 밖의 전복의 서》로 그 ‘순간의 전복’을 해냈다. 그리고 독자에게도 자신이 느꼈던 그 ‘전복’의 순간을 함께 나누고자 이 책을 남겼으리라.




책속으로

글은 거울이 아니다. 쓰기란, 미지의 얼굴을 맞닥뜨리는 행위다. _7p

나 도처에서, 담장을 무너뜨리리라. 그리하여 내 작품에, 그 고유의 공간은 물론이요, 금지된 공간의 무한을 제공하리라. _10p

살기란 순간의 전복을 제 것으로 행하며, 죽기란 돌이킬 수 없는, 영원의 전복을 제 것으로 행한다. _11p

전복은 질서 없음을 증오한다. 전복 그 자신이야말로, 반동하는 어떤 질서에 맞서는 유덕한 질서다. _12p

“우주란 한 권의 책으로, 한 장 한 장이 매일이다. 네가 그곳에서 읽는 것이란 한 장의 빛이요―각성이요―그리고 어둠이요―잠이요, ―여명과 망각의 단어다.” _14p

“우리는 우리를 위협하는 것을 위협한다. 전복은 결코 일방적이지 않다.”_17p

사람은 사람에게, 기원이자 동시에 그 너머다. _18p

모든 책은 자신들의 원천이 될 최후의 책 속에 남을 것이다. 책들에 앞선 책. 책들이 그토록 닮으려 하는 닮을 길 없는 책. 어떠한 모방으로도 필적 못 할 내밀한 모범. 신화의 책. 유일무이한 책. _81P

“나는 밤을 질문으로 가득 채웠다. 다만 어떤 이들은 반짝이는 데만 열중한 별들을 바라보고자 할 뿐이었다. _109p

무한한 책이 끝을 맺는 것은 오직 자신의 예측 불가능한 연장 속에서만 가능하다. _111p

“나는 분명 내 책들의 기억이다. 그러나 나의 책들은 어디까지 내 기억이었던가?_111P

생각은 낮에 나지 않는다. 생각이 낮이다. _111P

신을 신에, 생각을 생각에, 책을 책에 맞서게 하여, 너는 하나로 다른 하나를 소멸시키리라. / 그러나 신은 신을, 생각은 생각을, 책은 책을 견디고 살아남는다. 바로 그들의 생존 속에서 너는 계속해서 그것들에게 도전하리라. 사막이 사막의 뒤를 잇는다. 죽음이 죽음의 뒤를 잇듯이. _120P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