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터진 '민간수용' 갈등] 재개발사업 갈등에 6개 노선버스 멈춰

재개발조합 '법적 보상 다했다' … 버스업체 '대체부지 없이는 못 나간다'
민간수익사업에 수용권을 준 게 문제 … '공시지가 기준 보상'이 갈등원인

2017-08-16 10:38:06 게재

서울 송파구 시내버스 6개 노선이 멈춰 시민들이 큰 불편을 겪었다.

송파구 거여동 2-2지구 주택재개발조합측(거여재개발조합)이 14일 대상지내에 버스업체인 '송파상운' 차고지를 강제철거하려 하자, 버스기사들이 집단 반발하며 버스 운행이 하루 동안 멈춘 것이다.

15일 서울 송파구 거여동에 위치한 송파상운 차고지 입구에 '대체부지 필요없다. 차고지를 사수한다'라는 구호가 적힌 노동조합 명의 현수막이 게시돼 있다. 사진 장병호 기자


재개발조합측은 '법적 보상이 끝났는데도 송파상운측이 차고지를 불법점거해 사업이 지연되고 있다'며 강제철거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반면 송파상운측은 '보상금만으로는 인근에 대체부지 마련이 불가능하고, 대체부지가 마련되기 전에는 나갈 수 없다'며 물러설 수 없다는 입장이다.

시행사인 조합측과 수용당하는 측의 갈등은 주택개발사업에서 예외없이 벌어지고 있다. 민간의 수익사업에 수용권을 준 점, 그리고 사업장 이전에 턱없이 부족한 현재의 보상기준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이런 갈등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의 지적이다.

◆"보상비론 대체차고지 마련못해" = 송파상운은 송파구 거여동 223-3번지에 위치해 3214, 3314, 3315, 3316, 3317, 3416 등 6개노선 85대 버스를 250여명의 기사가 운행하는 버스회사다.

거여재개발조합과 송파상운의 갈등은 송파구청으로부터 2012년 4월 사업시행인가와 2015년 7월 관리처분인가가 나면서 시작됐다. 구청으로부터 인가를 통해 수용권을 부여받은 거여재개발조합은 공시지가에 기반한 감정가로 송파상운 부지를 강제 수용해, 2016년 7월 소유권을 조합명의로 이전했다. 이후 조합측은 송파상운의 조속한 이전을 촉구해왔다. 거여재개발조합 김정수 조합장은 15일 내일신문과 통화에서 "송파상운 보상과 관련한 법적 조치는 모두 끝났다"며 "송파상운측의 불법점거로 인해 재개발사업이 원활히 추진되지 못해 막대한 손해가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송파상운측은 부지 보상비용이 턱없이 낮아 이전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여왔다. 15일 송파상운 차고지에서 만난 서울시내버스노동조합 송파상운지부 위원장 이영균씨는 "재개발조합이 준 보상비로는 인근에 비슷한 규모의 차고지를 마련하는 게 불가능하다"며 "다른 곳에 차고지만 마련해주면 바로 나가겠다는 게 회사측과 노동조합의 입장"이라고 말했다.

◆현실성 없는 서울시 중재안 =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거여재개발조합측과 대체부지 없이는 나갈 수 없다는 송파상운측의 입장이 맞부딪혀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양측의 갈등이 깊어지자 서울시가 중재에 나섰다. 거여동 인근 마천동에 대체 차고지를 쓰도록 주선한 것이다.

하지만 이영균 위원장은 "해당 부지를 대체 차고지로 쓰는데 지역 주민들이 반대하고 있고, 무엇보다 소유권자인 에스에이치(SH)공사가 자기들이 개발하기 위해 비워달라고 하면 나가는 조건으로 쓰라고 하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가 없다"고 말했다. 서울시가 제시한 대체부지가 안정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곳이 아닌 상황에서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게 송파상운측의 입장이라는 것이다.

양측의 갈등은 해결기미를 보이지 않은 채 장기화되고 있는 양상이다.

그동안 주택개발사업에서 숱하게 발생한 갈등과 마찬가지로 구조적 원인에 기인한다는 게 전문가의 지적이다.

◆"민간수용 허용한 57개 법이 문제" = 공용수용분야 전문가인 성균관대학교 김일중 교수는 "무려 57개 법률에서 민간이 민간의 토지를 강제로 취득하는 민간수용을 허용하고 있다"고 지적한 뒤 "토지가 강제로 빼앗기는 과정에는 헌법상의 '공공필요' 조건이 결여된 사례가 매우 많고, 공시지가를 기준으로 한 보상액이 시가보다 현저히 낮아 보상금으로 생활터전이나 영업시설을 이전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이는 사실상 사업시행자에 의한 재산권 강탈이라 표현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지적한 바 있다.

김 교수는 이어 "빼앗기는 시민들의 불만이나 억울한 사정은 가늠하기 힘들 정도인 반면, 반대로 빼앗아 가는 정부기관, 공사, 건설사 등 힘있는 곳에게는 손 짚고 헤엄치는 식으로 남의 땅을 헐값에 쉽게 넘겨받는 게임"이라고 지적했다.

공용수용 분야에서 현재 최고 권위자인 미국의 리차드 엡스틴(Richard Epstein) 교수는 "한국은 세계가 가장 주목할 만한 공용수용과 관련된 갈등들 상당수의 발원지가 되어 왔다"라고 지적한 바 있다.

한국부동산연구원 박성규 박사는 "장기간 안정적으로 운영되던 사업장이 수용되면, 인접 토지 가격상승으로 주변에 대체 사업장을 구하기가 어렵다"며 "더욱이 차고지 사례처럼 소위 주민기피시설인 경우 이전이 더욱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막대한 개발이익을 목적으로 하는 재개발사업으로 인해 강제수용 당하지 않았다면, 해당 차고지는 그대로 존속되었을 것"이라며 "민간수용사업일수록 보다 철저한 공익성 검증이 시행돼야 하며, 앞으로 민간수용사업의 경우 개발이익을 사업시행자와 소유자가 공유할 수 있는 방식으로 보상액 산정기준을 재정립 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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